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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세대통합형’ 주거 방식

노인-청년 룸메이트 ‘함께 사는 리빙’
비용 절감은 물론 공동체 회복에 초점

박소정,정리=강지남 | 402호 (2024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미국의 시니어 주택 산업은 요양시설 개념의 1세대, 돌봄 위주의 2세대, 웰니스를 추구하는 3세대를 거쳐 여러 계층이 함께 어울려 사는 ‘3세대 확장판’으로 진화하고 있다. ‘세대통합형 시니어 리빙’은 청년과 노인이 룸메이트로 동거하거나 시니어 주택과 일반 주택, 아동돌봄센터, 대학 등이 통합 운영되는 등의 형태로 비영리기관은 물론 민간기업에 의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세대통합 거주는 주거비용 절감을 넘어 외로움과 고독을 해소하고 공동체 생활을 회복하고자 하는 모든 세대의 니즈와 맞물려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케어에서 웰니스로’ 시니어 리빙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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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즉 ‘건강한 장수’는 어느 시대에나 모든 사람의 염원이다. 현대인의 기대수명은 생활 환경과 식생활 개선, 의료 기술의 발달 등으로 모두의 염원대로 길어지고 있다. 단 늘어난 수명에 비례해 은퇴 이후 노후 기간 역시 길어지면서 ‘나이 들면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고령자 주거의 문제가 개인과 사회의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우리나라의 고령자 주거 산업은 이제 막 본격화되기 시작한 초기 단계다. 시작은 늦었지만 공공과 비즈니스 영역의 높은 관심에 힘입어 매우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반면 여러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정부와 민간이 고령자를 위한 주택을 다양한 형태로 개발해왔다. 고령자 주택은 시기나 지역을 달리하며 개별 주택 혹은 대규모 실버타운으로 개발됐고 현재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후발주자로서 우리나라는 이러한 선례를 참고해 우리의 현실에 어떤 형태와 내용의 고령자 주거가 적합한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세대통합형 시니어 리빙(Intergenerational Senior Living)’은 이러한 논의에 중요한 참고가 된다. 현재 시니어 하우징(Senior Housing)과 시니어 리빙은 유사한 의미로 통용되고 있지만 이 글에선 주거 시설과 식사 제공, 취미 활동, 의료 지원 등 다양한 서비스는 물론 다른 세대와의 동거까지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개념으로 시니어 리빙으로 통칭하기로 한다.

미국의 시니어 리빙 산업은 1960년대 후반에 시작해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여러 변화와 발전을 겪어왔다. 초기 1세기 모델은 돌봄과 의료 서비스에 집중한 전통적인 요양시설(nursing home)로 고령자의 건강관리를 주된 목표로 삼았다. 2세대 모델로는 독립생활(independent living)과 보조 생활(assisted living) 시설이 등장했다. 이는 고령자가 자율적으로 생활하면서 필요한 경우에만 돌봄 서비스를 받는 형태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고령자 주거에서도 커뮤니티 생활과 사회 활동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현재의 3세대 모델은 개인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이 모델은 고령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서비스와 웰니스(wellness)를 추구한다. ‘액티브 어덜트(Active Adult) 모델’이라고 불리는 이 유형은 우리나라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 형태가 다수로, 입주 대상은 흔히 액티브 시니어라고 불리는 상대적으로 젊고 건강한 고령자다. 주택 관리, 입주민 안부 확인, 운동 및 사회적 교류 프로그램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의료 및 돌봄 서비스가 의무적으로 제공되진 않는다.1 각 기관마다 규정이 다르지만 보통 55세 이상부터 입주가 가능하며 입주 시 평균 연령은 약 70세이다.2


중산층 시니어 위한 주거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중간 소득 계층의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주거 서비스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시니어 주택은 고소득층 혹은 반대로 저소득층 위주로 공급돼 왔다. 이 때문에 중간 소득층의 고령자는 시니어 리빙 시장에서 제외된다는 의미로 ‘잊힌 중산층(Forgotten Middle)’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 DC의 비영리단체 리딩에이지(LeadingAge)3 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약 800만 명이었던 미국의 중산층 고령자가 2029년에는 1440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들이 선호할 만한 적정 가격의 주거 모델과 필수적인 서비스 제공 모델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4

하나의 예가 비영리시니어리빙개발단체 투라이프커뮤니티(2Life Communities)가 개발 중인 중산층 고령자를 위한 시니어 주거단지 ‘오퍼스 커뮤니티 프롬 투라이프(Opus Communities from 2Life)’다.5 이 주택 단지는 은퇴 이후에도 자원봉사와 사회 활동을 계속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베이비붐세대의 특성을 반영해 직원 고용을 최소화하고 입주민의 자원봉사를 적극 활용해 운영비를 절감한다.6 또한 지역사회 내 여러 기관과 협력해 입주민의 다양한 욕구에 유연하게 대응한다. 주택단지 내에서 모든 서비스가 제공되기보다 지역사회와 연계해 비용을 줄이고 수요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려는 접근 방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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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단지 내에 공동 식사 공간을 마련해 두지만 식사 서비스를 의무적으로 제공하지 않고 영양사나 요리사를 따로 고용하지도 않는다. 대신 인근 음식점과 제휴해 입주민이 할인된 가격으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2025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지역에 174세대 규모로 건립되는 오퍼스 뉴턴(Opus Newton)은 카페, 강의실, 회의실, 정원, 산책로 등을 지역사회에 개방한다.7 노인 입주민들이 고립되지 않고 다양한 세대 및 지역사회와 소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고령자의 고독감과 청년의 경제난

앞서 살펴본 1세대에서 3세대까지 시니어 리빙의 공통점은 고령자들끼리 ‘따로’ 산다는 점이다. 제공되는 서비스나 생활 방식이 달라지고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는 방향으로 시니어 리빙이 발전해왔지만 젊은 세대들과 분리돼 고령자끼리 따로 모여 사는 주거 형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2000년대 후반부터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고령자를 포함해 여러 연령층의 세대가 어우러져 ‘함께’ 생활하는 3세대 확장판 모델이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세대 간 분리를 추구해온 시니어 리빙이 다른 세대와 통합하려는 노력은 일견 전통사회로의 회귀라고도 할 수 있다.

변화의 배경에는 현대인의 외로움과 고립감이 있다. 갈수록 개인화되는 사회, 비대면이 일반화된 소통 방식, 가족 구성원 수 감소와 가족 간 결속력 약화 등이 마음속에 텅 빈 구멍이 생긴 듯한 외로움과 무인도에 혼자 있는 듯한 고립감을 심화시켰다. 미국 보건총감국이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고립감은 다양한 사회 집단에 퍼져 있지만 특히 청년층과 노년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8 청년층의 경우 1976년 이래 외로움을 느끼는 청년의 수가 매해 꾸준히 증가해왔다. 또한 모든 연령층에서 사회적으로 대면 교류하는 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코로나19 이후 사회연결망의 크기와 사회 참여도 또한 두드러지게 감소했다. 한편 청년 세대는 물가 상승보다 더디게 오르는 개인 소득, 지출과 수입의 불균형으로 경제적 궁핍에 시달린다. 세대를 가리지 않고 높은 주거비 부담은 미국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다.

워싱턴DC에 소재한 비영리기구 제너레이션 유나이티드(Generation United)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대통합 주거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서로 다른 세대가 경제적 이유로 함께 사는 사례가 증가했는데 특히 노인과 아이 돌봄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공간 운영의 경제적 이점이 부각되고 있다.

코네티컷주 노워크(Norwalk)에 위치한 비영리단체 언더원루프(Under One Roof)는 고령자 다세대주택인 더 마빈(The Marvin)과 3~4세 아동의 학습지원기관인 마빈어린이센터(The Marvin Children’s Center)를 폐교 건물을 활용한 주택 단지에서 함께 운영한다.9 ‘세대 간 상호작용을 촉진한다’는 운영 철학을 바탕으로 더 마빈의 고령자 입주민들은 어린이센터에서 아동 학습 지원 자원봉사자로 활동한다. 또 인근 공립학교 학생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누가 내가 늙었다고 말하죠?(Who Says I’m Old?)’라는 주제로 교류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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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 위치한 시니어 주택 포터힐스(Porter Hills)도 같은 건물에 위치한 제너레이션주간돌봄센터(Generations Day Care Center)와 긴밀히 협력하며 세대 간 교류를 촉진하고 있다. 포터힐즈의 고령자 입주민들은 정기적으로 돌봄센터에서 교육 자원봉사자로 활동한다. 이러한 교류를 지원하기 위해 포터힐즈와 돌봄센터 직원들은 매 분기마다 회의를 진행한다.


청년-노인 룸메이트, ‘붐메이트’ 급부상

세대통합형 시니어 리빙의 모델로 최근 크게 주목받는 것은 일명 붐메이트(Boom-mate)라고 불리는 고령자와 청년의 ‘동거’다. 베이비붐과 룸메이트를 합성한 신조어 붐메이트는 은퇴한 베이비붐세대와 젊은 밀레니얼세대가 한 집에서 룸메이트로 함께 생활하며 각자가 가진 문제를 자연스럽게 완화하도록 하는 주거 형태를 가리킨다. 1980년대 초 두어 군데 비영리단체가 청년과 노인의 동거 프로그램을 시도한 적 있지만 이는 국소적인 시도에 그쳤을 뿐이다. 최근 흐름은 보스턴 같은 대도시에서 주거비 부담 완화와 사회적 고립 해소를 위한 대안으로 붐메이트 동거를 하는 것이다. 하버드주거연구소(Harvard Joint Center for Housing Studies)는 현재 미국에서 100만 명 이상의 65세 이상 고령자가 비가족 구성원과 함께 살고 있다고 추정한다. 룸메이트를 매칭해주는 사이트 스페어룸(SpareRoom)에 따르면 미국에서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의 4분의 1 이상이 45세 이상이며 이는 지난 10년 만에 2배로 증가한 수치다.10 룸메이트를 구하는 고령자가 증가하자 아예 고령자와 젊은 세대를 룸메이트로 연결해주는 전문 업체들도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2017년 보스턴에서 시작된 네스터리(Nesterly)는 고령자가 자신의 집 빈방을 청년들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제공하고 청년들이 고령자 집주인의 가사나 돌봄 활동을 돕는 방식으로 룸메이트 매칭 서비스를 제공한다.11 고령자는 추가적인 수입과 교류의 기회를 얻고, 청년은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확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최소 1개월 단위로 룸메이트를 구할 수 있고 이미 가구가 딸린 집에 바로 입주할 수 있어 고령자뿐만 아니라 학생, 단기 거주자들 등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고령자 집주인은 청년 입주자와 사회 및 여가 활동을 함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청년과 함께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참여하거나 공원 산책 및 영화 관람과 같은 여가 활동을 함께 즐긴다. 청년이 고령자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치고 고령자가 청년에게 요리법을 전수하는 모습도 관찰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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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출범한 실버네스트(Silvernest, 현재는 HomeShare Online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고령자와 청년을 연결해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이다.12 이 플랫폼은 법적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룸메이트 후보자의 배경 조사 및 계약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성향이나 관심사가 맞는 룸메이트가 미팅이나 메시지를 통해 매칭되고 합리적인 가격에 주택을 단기 혹은 장기로 임대할 수 있다. 이 서비스는 연령 제한을 명시하진 않지만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싶거나 은퇴 후 생활비를 절약하고자 하는 고령자들에게 좋은 대안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버몬트주의 홈셰어버몬트(HomeShare Vermont), 오리건주의 홈셰어오리건(Home-Share Oregon) 등도 고령자와 청년을 매칭해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동거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이러한 붐메이트 프로그램은 대부분 비영리단체나 지역 커뮤니티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고령자와 청년 모두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세대 간 상호 교류를 통해 고령자의 사회적 고립을 완화하고 청년에게는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새로운 주거 문화의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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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세대통합 주거는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미국에선 오래전부터 대학 기반 커뮤니티, 다세대 주택 인접 프로젝트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세대 간 유대 강화를 시도해왔다. 고령자와 청년 세대 사이의 커뮤니티를 강화함으로써 고령자의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평가 받아왔다.

그런데 최근의 세대통합형 주거는 고령자 주거에 돌봄, 건강, 각종 여가 서비스를 결합한 것에 더해 다른 세대와의 ‘생활 결합’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청년 세대는 저렴한 비용으로 주거 공간을 마련하는 혜택을, 고령자는 임대료 수익은 물론 주거와 서비스 통합을 통한 돌봄 비용 절약의 혜택을 얻는다. 청년 입주자들이 식사, 돌봄, 교육 프로그램 등 부가 서비스를 고령자 룸메이트에게 제공함으로써 추가 수익을 얻는 프로그램도 몇몇 스타트업을 통해 시도되기 시작했다.

한편 단순히 집을 셰어하는 것 이상으로 세대 간의 교류에 중점을 둔 주거 사례도 있다. 1994년 일리노이주에서 시작된 호프메도(Hope Meadow)는 고령자와 입양아, 입양아의 양부모가 함께 살며 서로를 지원하는 주거 커뮤니티다.13 은퇴한 고령자는 아이들을 돌보고 교류하며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찾고, 입양아들은 안정적인 가정 환경과 공동체의 멘토링과 지지를 얻고, 양부모들은 양육 부담과 주거 불안정 문제를 해소한다. 호프메도와 같은 주거 형태는 점차 다른 주로도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세대통합형 시니어 리빙은 고령자와 젊은 세대가 동거 또는 교류하면서 사회적 고립을 줄이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둔다. 고령자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과 소통하며 정신적 건강과 웰빙을 추구하고, 삶의 의미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고령자와 청년 둘 다 주거비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는 세대통합형 주거가 하나의 사회경제적 문제 해결의 방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하버드주거연구소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에서 2024년까지의 미국의 주택 중위 가격은 15%나 상승했고 임차 가구의 46%가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며 심각한 주거비 부담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4 보고서는 세대통합 주거 모델을 이러한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 대안으로 제시한다. 고령자와 젊은 세대가 한 집 혹은 한 지역에서 생활하며 젊은 세대는 주거비 혜택을 받고 고령층 또한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 공공시설 이용 비용 등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간과 대학도 세대통합 뛰어들어

민간 시니어 리빙 업계에서도 세대통합 주거에 큰 관심을 갖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시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서 세대통합 주거를 보급하는 일반적 방식은 시니어 타운에 입주자 외 외부인에게까지 개방하는 레스토랑과 기타 상업 공간을 두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여기서 한층 더 진화해 모든 연령대를 타깃으로 하는 다세대주택에 노인 전용 주거 시설을 함께 마련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기존보다 더욱 폭넓고 적극적인 세대통합 주거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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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마크 리타이어먼트 커뮤니티(Watermark Retirement Communities)는 2024년 7월 워싱턴주 벨뷰에 세대통합 커뮤니티를 오픈했다. 이 커뮤니티는 시니어 독립생활 타워와 다양한 연령대가 거주할 수 있는 럭셔리 아파트로 구성돼 모든 세대가 함께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공용 레스토랑, 피트니스센터, 활동 공간 등을 마련했고 세대 간 상호작용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일례로 워터마크 유니버시티(Watermark University)는 요리 워크숍, 외국어 수업 등 세대 간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기회를 제공하는 커뮤니티 내 교육 프로그램이다. 가상현실(VR) 등 고령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환경도 갖췄다.

다세대주택 및 임대주택 시장에서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그레이스타(Greystar)는 독립 주거, 보조 생활 시설에 더해 인지능력 관리(Memory Care) 서비스를 포함한 다양한 시니어 리빙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세대통합을 목표로 중간 소득의 액티브 시니어를 타깃으로 한 커뮤니티를 개발하고 있다. 저렴한 월세와 함께 편의시설을 제공하며 세대 간 자연스러운 교류를 촉진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레이스타는 이 같은 커뮤니티를 다세대 주거지와 함께 배치해 세대 간 상호작용을 강화하며 리테일 공간 및 공용 시설을 통해서도 주민들이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한편 기존 시니어 주택과 코하우징(Cohousing)이나 빌리지(Village) 등을 운영하는 기존의 비영리 커뮤니티들도 세대통합 주거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다양한 세대와의 교류를 위한 실험적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추세다.

대학 연계 기반의 비영리 커뮤니티 UBRC15 를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활용한 것이 이에 해당하는 하나의 사례다. 벨몬트 빌리지(Belmont Village)는 UC버클리와 협력해 시니어 리빙과 학생 주거를 결합한 세대통합형 주거 모델을 구축했다. 이 커뮤니티는 고령자의 사회적 고립을 줄이고 정신적 건강을 증진시키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세대 간 상호 학습과 문화 교류를 촉진하도록 설계됐다. 대학교 도서관이나 체육 시설, 학생 라운지 등의 공용 공간에서 자율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고령자들은 더 활발하게 사회에 참여한다. 이러한 대학 기반의 세대통합형 주거 모델은 고령자에게는 학습과 사회적 참여를, 학생에게는 위 세대와의 교류와 실질적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장점을 가진다.

매사추세츠주 뉴턴(Newton)에 있는 라셀 빌리지(Lasell Village)는 대학 캠퍼스를 활용해 세대 간 교류를 촉진하는 독특한 시니어 리빙 커뮤니티로 주목받고 있다. UBRC와 라셀 빌리지는 대학과 협력해 시니어에게 교육과 교류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라셀 빌리지는 일부 학습 프로그램 참여를 의무화한 점에서 차별화된다. 라셀 빌리지는 ‘평생 학습’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시니어 입주자에게 연간 450시간의 학습 활동을 의무 사항으로 요구한다. 학습 프로그램 참여를 의무화한 이유는 단순한 생활 지원을 넘어 고령의 입주자들이 지속적으로 자기 계발 활동을 이어가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고립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는 다른 시니어 리빙 커뮤니티와 차별화된 접근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고령의 입주자와 대학생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커뮤니티 생활 트렌드와 맞물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미국의 비영리단체와 민간기업 모두 세대통합 주거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리를 추구하는 산업계가 외로움과 고립이라는 사회적 문제, 공공보건의 문제, 경제적 문제를 새로운 비즈니스의 핵심 요소로 주목하는 이유는 이것이 단지 노인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령자뿐만 아니라 다른 연령층에서도 세대통합 주거에 대한 니즈가 증가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세대통합 주거에 수익성과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세대통합 주거는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의 문제 외에도 ‘커뮤니티 중심의 생활 추구’라는 새로운 트렌드와도 맞물려 있다. 사람들은 이제 폐쇄적인 요양시설이 아닌 열린 공간에서 다양한 연령대와 함께 살아가며 삶의 질을 높이고 공동체 의식을 느끼고 싶어 한다. 젊은 세대도 갈수록 개인주의화 돼 가는 생활 흐름 속에서 표현하지 못하고 쌓아 놓기만 했던 외로움과 고립감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공간과 관계의 격리를 경험한 모든 세대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원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웰빙’ ‘액티브 에이징’이라는 개념과 부합하며 시니어 리빙 산업이 단순한 돌봄을 넘어 삶의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건설사나 금융사 등에 의해 활발히 개발되고 있는 시니어 리빙 모델은 아파트 형태의 레지던스16 를 고령자 대상으로 확장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미국의 기존 시니어 커뮤니티들처럼 고령자 입주민과 지역 주민이 단지 안팎의 주변 시설과 녹지 공간 등을 공유하는 소극적 형태로 교류를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간의 공유’만으로 주민 간 유대감이 생겨날지 의문이다. 쾌적한 식당과 편의시설들,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공동 구매하고 공동주택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외로움이 자동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파트 생활을 오래 해온 한국인들은 잘 알고 있다.

환경노년학 연구자와 시니어 리빙 업계는 시니어 리빙 비즈니스 성공을 위한 세 가지 핵심 요소로 △물리적 안전성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있는 사회적 공간 △세상과의 연결성을 꼽는다. 현재 주로 미국에서 목격되는 세대통합 주거 트렌드는 이 중 마지막 요소, 즉 연결성에 대한 욕구와 밀접하게 관계돼 있다.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커뮤니티 라이프 구현’을 적극 고민하는 시기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대비하려면 개발 초기인 현재부터 건강하고 활동적인 고령자가 원하는 편의시설과 지역 주민이 원하는 공간 사이의 균형, 그리고 세대 간 소통을 고민해야 한다.

미국의 1세대 시니어 리빙은 노인들만 거주하는 돌봄 중심의 시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라이버시와 안전·보안 간의 균형 잡기가 주요 과제로 부각됐다. 최근 등장한 액티브 어덜트 모델에서도 건강하고 독립적 생활이 가능한 입주자들과 돌봄이 필요한 고령자들이 서로의 생활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공간 설계가 초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통합과 연결을 강조한다고 해서 여러 모델을 섣불리 결합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특히 고급화를 내세운 영리시설의 경우 차별화된 프리미엄 가치를 훼손할 우려도 있다. 개인 생활 보호와 사회와의 연결을 동시에 실현하려면 섬세한 공간 설계,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을 조율할 연결자(Connector), 즉 사람의 역할이 핵심이 된다.

미국의 지역사회 기반 시니어 리빙 시설에는 주택 코디네이터, 서비스 코디네이터, 커뮤니티 매니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소통 조력자들이 있다. 입주자와 시니어 리빙 시설 사이를 연결하는 이들은 입주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맞춤형 프로그램을 통해 정서적 지원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액티비티 코디네이터는 미술 공예, 운동 수업, 문화 탐방, 교육 워크숍 등 다양한 활동을 조직한다. 입주자 간 소통을 촉진하고 외부 서비스 제공자와의 연결을 조율하는 것도 소통 조력자의 역할이다. 최근에는 입주민의 복합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주택 수리 담당자 등으로 구성된 종합 팀을 운영해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늘고 있다. 한편 미국 주택도시개발부와 전국서비스코디네이터협회는 서비스 코디네이터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입주 노인의 신체적·인지적 기능 저하, 우울증, 고독감 등 다양한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한 서비스 패키지를 구성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데 중점을 둔다.


갈등과 충돌 리스크에 대비해야

세대통합형 시니어 리빙은 공간의 공유를 통해 상호작용을 촉진하려는 시도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기업의 사업성 측면에서 보자면 여러 리스크가 존재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생활 방식의 차이로 인해 커뮤니티 내에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긍정적인 교류보다 충돌이 더 많이 발생한다면 전통적 시니어 리빙 모델보다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지역사회 기반의 고령자 주거 모델의 선례가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미국과 같이 지역 주민 혹은 다른 세대와 함께 노년을 보내는 모델을 바로 적용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인허가 등의 규제와 부족한 정부 지원도 우려되는 리스크 중 하나다. 미국의 다양한 시니어 리빙 모델을 한국에 도입하려면 이를 가능하게 할 법적, 사회적 조건을 갖춰야 한다. 빠른 보급을 위해서 정부는 공공주택 공급에만 집중하지 말고 민간의 시니어 리빙 사업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미국은 저소득층 주거와 통합된 개발 프로젝트에는 저소득 주택 세액 공제(Low-Income Housing Tax Credit, 이하 LIHTC)와 같은 재정적 혜택을 주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이다. LIHTC은 저소득 가구를 위한 저렴한 임대주택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주택 개발단체에 대해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주택을 개발할 경우 세금 혜택을 제공하는 미국 연방 프로그램이다.17 일본의 대표적인 고령자 주택인 ‘서고주’(서비스 제공 고령자 주택)도 많은 부분 정부 지원을 통해 빠르게 보급됐다.

한국의 시니어 리빙 산업은 이제 막 본격화되고 있다. 공공에서는 저소득 고령자를 위한 주거 공급에 집중하고 민간에서는 고소득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고급 주거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반면 인구 구성상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중간 소득층 고령자를 위한 주거 모델은 아직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국이 매우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산업이 다각화되기보다는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프리미엄 모델과 중간 소득층을 겨냥한 모델이 동시에 다수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빠른 고령화로 인한 수요 확대는 중요한 비즈니스 찬스인 것이 분명하지만 선진국의 기존 사례와 변화 과정, 최근의 트렌드를 제대로 분석해 반영하지 않는다면 한국형 실버 리빙 산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막 출발점에 선 입장인 만큼 서두르기보다는 올바른 방향성을 찾아 중장기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 박소정spark30@wustl.edu

    워싱턴대-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쿨 교수

    박소정 교수는 워싱턴대 세인트루이스의 브라운스쿨에서 연구 중인 환경노년학자다. 시카고대 석사를 거쳐 미시간대 사회복지학과와 심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환경 자원을 적절히 활용해 사회 계층에 따른 건강과 웰빙의 격차를 해소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 관심이 많다. 다양한 방식의 노후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동 대학 에이징센터 및 공공보건센터 소속 연구교수, 미국과 한국의 사회복지 단체들에서 이사로, 보건복지부 및 보건사회연구원 전문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구 비영리법인 ‘Aging Together(함께 늙어가기)’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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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강지남jeenam.kang@gmail.com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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