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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경영’ 연구로 본 화이트칼라의 미래

경영자의 일, AI에만 의존하면 미래는 없다
직관, 창의성 전파 등 ‘인간의 힘’ 발산해야

임일 | 388호 (2024년 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AI가 인간의 업무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을 대체할지는 AI 관련 논의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과 AI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지식경영과 관련한 기존 연구에 따르면 기업의 경영활동에 필요한 지식은 형식지와 암묵지로 구성돼 있다. 형식지는 문서화가 가능한 지식이고 암묵지는 그렇지 않다. AI는 지식근로자의 업무 중 형식지화된 업무를 쉽게 대체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암묵지나 창의성이 필요한 영역은 AI가 쉽게 따라 하기 어렵다. 기업 입장에서 AI를 활용해 형식지에 해당하는 업무를 기계로 대체하는 것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 근로자들의 창의성을 빼앗는 일일 수 있다. 형식지 관련 업무가 창의성을 위한 중요한 재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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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AI의 발전은 생성형 AI(Generative AI)가 주도하고 있다. 챗GPT(ChatGPT)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지만 챗GPT 외에도 수많은 생성형 AI의 발전이 있었다. 구글의 바드(Bard), 메타의 라마(LLaMA), 국내 기업인 네이버 하이퍼클로버X와 같은 AI는 주로 텍스트 위주의 생성형 AI이고 여기에 더해 확산 모델(Diffusion model)에 기반한 수많은 이미지 생성 AI 모델이 발표됐다. 이들의 발전 속도는 눈부실 정도이고 경우에 따라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복잡하고 방대한 텍스트의 내용도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고, 사람이 만든 것 같은 이미지를 순식간에 만들어내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앞으로 이들 AI가 지식근로자라고 불리는 화이트칼라의 업무를 상당 부분 대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2023년 AI 때문에 미국에서만 약 4300개의 일자리(주로 화이트칼라)가 줄었으며 이런 현상은 앞으로 가속화될 전망이다. 특히 이 같은 일자리 대체는 화이트칼라 중에서도 중·상위층 관리자를 대상으로 많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전망이다.1 필자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예상에 동의한다. 그러나 AI가 지식근로자의 일을 100%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은 AI가 지식근로자의 일을 얼마나 대체할 것이고, 어떤 일을 주로 대체할 것이며, 반대로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일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해를 정확히 하는 것은 AI가 가져올 미래의 방향을 예측하고 대처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는 지식근로자의 일에 대해서 깊이 분석하고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경영학 석학들의 지식관리에 대한 통찰력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지식관리를 다시 생각한다

경영학에서 지식근로자의 일과 지식 경영에 대한 연구는 19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다. 지식관리 혹은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이라고 불리는 분야에서 지식근로자 업무의 본질이 어떤 것이고 컴퓨터에 의해서 어떻게 대체, 혹은 개선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주로 이뤄졌다. 그 당시 PC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기업의 업무 중 단순 데이터 처리 업무는 많은 부분이 컴퓨터화됐다. 이후 어떻게 하면 지식근로자의 업무를 더 효과적으로 컴퓨터화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기면서 지식관리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때마침 1995년 이쿠지로 노나카와 히로타카 다케우치가 공동 집필한 『The Knowledge Creating Company』2 라는 저서가 지식관리에 관심이 있는 많은 학자와 기업인의 주목을 끌었다. 이 책에서는 지식관리를 잘하는 일본과 미국 기업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기업에서 어떻게 지식의 창출과 전파가 이뤄지는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는 기업의 경영에 필요한 지식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형식지(explicit knowledge)’와 ‘암묵지(tacit knowledge)’라는 두 가지 종류의 지식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형식지는 지식 중에서 텍스트나 그림 등을 통해서 명확히 전달하고 학습할 수 있는 지식을 말한다. 즉, 형식지는 문서화가 가능한 지식이다. 이에 비해서 암묵지는 텍스트나 그림을 통해서 표현하거나 전달하기 어려운 지식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제품에 들어가는 원재료의 비율이나 기계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등은 서류나 매뉴얼을 통해서 명확히 표현되고 전달될 수 있는 형식지다. 이에 비해서 셰프의 요리 비결이나 시장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잘 포착하는 경영자의 능력 등은 문서화하기 쉽지 않다. 물론 일부를 문서화할 수는 있지만 그 문서는 해당 지식을 완전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암묵지라고 할 수 있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은 기업의 경영 활동에 필요한 지식은 형식지와 암묵지와 같이 성격이 다른 다양한 지식으로 구성돼 있으며 서로 다른 종류의 지식은 창출, 전파, 확산의 방식이 판이하다는 것이다. 또한 형식지와 암묵지는 서로 다른 종류로 변환되기도 하고 같이 사용돼 시너지를 갖기도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즉, 기업의 성공적인 지식관리를 위해선 형식지와 암묵지에 대한 효과적인 관리를 통해서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암묵지와 형식지는 아래의 4가지 방식으로 서로 변환되거나 새로 만들어진다.

1) 외부화(externalization): 암묵지를 최대한 문서화해서 형식지 형태로 바꾸는 과정 (예: 셰프가 자신의 요리 비법을 레서피로 만드는 것)

2) 내부화(internalization): 형식지를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실행하면서 몸에 체화하는 과정 (예: 기계에 대한 매뉴얼을 반복 학습하면서 기계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것)

3) 조합(combination): 다양한 형식지를 결합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과정 (예: 제품의 수요에 대한 다양한 출처의 정보를 결합해서 더 정확한 예측을 하는 것)

4) 친교(socialization): 암묵지를 가진 사람과 계속 같이 지내면서 암묵지를 전수받는 과정 (예: 어떤 분야의 장인이나 전문가와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하면서 지식을 학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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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에 따르면 기업 내 암묵지는 외부화를 통해 문서화되고 이 문서를 학습한 사람이 이를 체화하면서 자신만의 암묵지를 만들기도 하고 서로 다른 형식지를 조합해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기도 한다. 또한 필요에 따라 전문가와 친교를 하면서 암묵지를 바로 전수받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잘 관리하는 기업은 그림에 있는 것과 같이 지식이 암묵지에서 형식지, 형식지에서 암묵지로 형태를 바꾸면서 점점 더 커지고 널리 전파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직관적으로 잘하는 경영자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런 직관적 의사결정 능력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의사결정을 어떻게 할지 모르기 때문에 컨설팅 보고서나 선배 경영자가 남긴 자료와 같은 형식지를 보면서 시도해 봤을 것이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의사결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할 것이 어떤 것인지, 상황에 따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경영자의 머릿속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종의 암묵지 또는 직관이 생성될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요리를 잘하는 뛰어난 셰프의 경우도 처음부터 요리를 잘하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처음에는 선배들의 레서피를 보면서 수없이 그대로 따라 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레서피라는 형식지가 자신의 몸에 체화되고 경험이 쌓이면서 재료와 조리법에 대한 스스로의 암묵지를 생성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어떤 재료는 너무 높은 온도로 조리하거나 특정 재료와 같이 사용하면 맛이 달라진다든지 하는 등 지식을 축적하고 기존의 레서피를 변형하거나 결합해서 자신만의 레서피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상의 예는 형식지를 반복, 학습하면서 암묵지로 변환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암묵지는 문서로 완전하게 전달이 어렵기 때문에 암묵지를 학습하는 것은 형식지보다는 어렵다. 암묵지를 학습하려면 일단 암묵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최대한 암묵지를 문서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의사결정에 직관을 가지고 있는 경영자는 자신의 직관에 대해서 최대한 문서화(외부화)하고 학습자는 일단 이것을 학습해야 한다. 그렇지만 암묵지는 문서만 학습하는 것으로는 완전히 습득할 수 없고 해당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계속 같이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며 지도를 받아야 습득될 수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셰프의 요리 비결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레시피만 공부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고 그 밑에서 오랜 기간 도제식으로 학습을 해야 하는 것이 이런 이유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의사결정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뛰어난 의사결정 능력을 갖춘 경영자와 상당 기간 같이 밀착해서 일하면서 전수를 받는 기간을 갖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지식관리에 대한 또 다른 유명한 저서는 지식 경영의 대가인 토마스 대븐포트와 로렌스 프루삭이 1998년에 공동 집필한 『Working Knowledge: How Organizations Manage What They Know』3 가 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지적인 활동을 코드화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The moment a realm of intellectual activity is codifiable, it ceases to be uniquely human)”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위에서 설명한 형식지/암묵지와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우리의 지식을 코드화, 즉 문서화할 수 있다면 이것은 사람이 아닌 컴퓨터와 같은 기계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에 대한 저자들의 원래 의미는 컴퓨터로 지식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코드화, 문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지만 이 말을 바꾸어 생각하면 지식을 코드화할 수 있다는 것은 형식지라는 것이고, 코드화가 되고 나면 AI가 코드화된 지식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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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 지식관리가 시사하는 점

최근 AI가 잘하는 지식 관련 업무를 보면 모두 다 형식지다. AI의 작동 원리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다. 최근 활용되는 AI는 대부분의 경우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 학습용 데이터를 사용해서 학습을 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수도는…” 다음에 올 단어가 무엇인지는 답이 명확하다. 이와 같이 문제와 답이 맞춰져 있는 학습용 데이터를 사용해서 AI에 학습을 시킨 후에 주어진 문제에 대해서 답을 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답이 명확한 문제일수록 더 잘 학습할 수 있기 때문에 형식지의 성격이 강할수록 잘 학습하는 반면 암묵지의 성격이 강한 분야에서는 학습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학습을 위한 데이터를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① AI가 대체하지 못할 것: 암묵지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AI가 발전을 해도 암묵지에 해당하는 분야는 사람을 대체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물론 대체가 전혀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암묵지도 어느 정도는 문서화가 가능하다. 셰프들이 자신의 요리 비결을 문서화한 레서피를 잘 학습하면 셰프의 요리를 어느 정도는 따라 할 수 있다. 최근에 등장한 요리하는 로봇은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레서피가 요리 비결을 완벽하게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뛰어난 셰프의 레서피를 그대로 따라 한다고 그 셰프와 똑같은 맛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경영자의 역량을 구성하는 요소를 생각해 볼 때 형식지에 해당하는 논리적, 분석적인 부분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말로 설명이 안 되는 암묵지에 해당하는 부분도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최고경영자의 경우 본인의 직관이나 통찰력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기업을 위기에서 구하거나 크게 성장시키는 경우를 종종 본다.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이라는 전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서 시장에 출시한 것이나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판단한 것 등이다. 만일 현재의 AI(혹은 미래에 더 발전된 AI도 마찬가지)에 스마트폰을 만들어야 할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해야 할지를 물어봤다면 아마 제대로 답을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AI가 대답할 수 있으려면 비슷한 사례에 대한 학습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경영자의 직관이나 통찰력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직관으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행했다가 실패한 경우가 성공한 경우보다 어쩌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위의 예와 같이 결정적인 의사결정은 암묵지에 해당하는 부분이 많고 이런 일은 AI가 잘 못하는 분야라는 점이다.

최고경영자의 전략적 의사결정뿐 아니라 중간 경영자의 업무 중에도 암묵지에 해당하는 것이 많다. 만일 여러분이 중간 경영자라면 본인이 하고 있는 일 중에서 다른 사람에게 문서나 말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라. 아마 문서화나 설명이 쉽지 않은 업무가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런 업무가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업무다.


② AI가 대체하지 못할 것: 창의성

AI가 잘하지 못하는 분야 중의 하나는 창의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의 창의성과 관련된 대표적인 업무는 광고 카피라이팅, 디자인이나 일러스트레이션, 사진/비디오 촬영, 혹은 시장에 맞는 신제품의 기획 등이 있다. 이들 업무는 최근 발전하는 챗GPT나 디퓨전 모델에 기반한 이미지 생성 AI가 많은 부분을 대신할 수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같이 학습하는 멀티모달(Multi-modal) AI에 지시하면 관련 이미지나 동영상을 금세 만들 수 있다. 패션 기업의 경우 전에는 많은 돈이 들던 시즌별 카탈로그 작성도 이미지 생성 AI를 사용하면 모델 사진 몇 커트와 제품 사진만으로 원하는 배경의 원하는 포즈의 사진을 추천해주고 수만 장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업무는 AI로 대체될 것인가? 상당 부분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창의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AI로 만들어내는 이미지나 동영상은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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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문제는 ‘창의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창의성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정확히 말하면 창의성은 ‘관련이 없다고 생각되던 것을 관련짓는 능력’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은 신의 영역이고, 인간의 창의성은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것 중에서 그동안 관련이 없던 것들을 관련짓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프라이드치킨과 고추장 양념을 연결하면 양념치킨이 만들어지고, 컴퓨터와 전화를 연결해 스마트폰을 만드는 것 등이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AI도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학습한 것들을 연결하고 조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우주인과 말을 결합해서 유명한 ‘말을 타는 우주인’ 이미지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AI의 창의성에는 두 가지 한계가 존재한다. 첫째, 이러한 새로운 조합은 대부분 사람의 명령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주인과 말을 연결 짓는 아이디어를 사람이 만들어서 AI에 지시(프롬프트)한 것이다. 즉, 가능한 수많은 연결과 조합 중에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는지를 AI는 잘 판단하지 못한다. 둘째는 조합의 대상인 기존에 학습한 것으로 제한된다. A와 B를 조합하라고 사람이 명령을 해도 자신의 학습 데이터에 A나 B가 없었다면 이를 조합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서 치킨의 조리법에 대한 학습을 충실히 한 AI라도 자신이 학습한 데이터 중에 고추장이 없었다면 양념치킨은 생각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창의적인 분야, 특히 큰 가치를 갖는 창의적인 분야는 여전히 사람이 AI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AI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지식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AI가 형식지에 해당하는 일을 잘하니 형식지에 해당하는 일은 AI에 맡기고 사람들은 암묵지에 해당하는 부분에 집중하면 효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형식지와 암묵지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에서 설명했듯 암묵지를 창출하기 위해선 형식지를 반복적으로 학습하면서 몸에 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형식지를 몸에 체화하고 관련 분야에 경험을 쌓는 과정을 거쳐야 암묵지가 만들어진다. 만약 AI가 형식지에 해당하는 일을 잘한다고 AI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암묵지에 관련된 업무 능력도 저하될 수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AI에 특정 업무를 완전히 맡기기보다는 일부라도 사람이 직접 수행하면서 지식을 체화하고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최고경영자로서의 역량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만일 중·상위 경영자의 일을 AI가 대체하면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고경영자를 육성할 기회를 잃어버릴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직원의 일을 AI가 대체하면서 효율성이 올라간다는 점만 볼 것이 아니라 중요한 암묵지를 갖춘 인력을 어떤 방식으로 양성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조직 전체의 암묵지가 줄어들어 조직 역량이 약화할 수도 있다. 또한 뛰어난 암묵지(직관)를 가지고 있는 경영자가 차세대 경영자와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암묵지를 직접 학습할 수 있는 친교의 기회를 주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노력도 없이 10년 이상을 보낸다면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최고경영자의 역량이 떨어져 AI로 얻은 효율성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AI보다 사람이 더 잘할 것이라고 얘기한 창의성도 형식지의 반복적인 학습에 의한 체화 과정에서 개발되는 경우가 많다. 창의성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식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식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낼 수 없고, 금융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금융과 관련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어려운 것이다. 해당 분야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 특히 형식지를 쌓고 이를 체화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 어떤 특정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고민하다 보면 머릿속에서 떨어져 있던 것이 어느 순간 연결이 되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창의성에 관한 연구가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창의성 발현에 있어서의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첫째는 해당 분야의 기본적인 지식이고, 둘째는 잠시 해결하려는 문제에서 떨어져서 지내는 소위 ‘여유 시간(slack time)’이다. ‘유레카’로 유명한 아르키메데스는 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 지식은 충분히 있었고, 문제 해결을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목욕탕에서 여유를 가지고 머리를 식히다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긴 것이다. 앞으로 AI가 지식근로자의 일을 대신하면 창의적인 일을 위한 여유 시간은 지금보다는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여유 시간만 있다고 창의성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형식지의 학습을 통해서 기본 지식을 체화한 사람은 여유 시간이 많으면 창의성도 올라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여유 시간이 많아져도 창의성이 떨어지거나 제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즉 AI를 많이 활용할수록 여유 시간이 많아져서 창의성이 올라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AI가 대체하는 형식지 관련 업무가 창의성을 위한 중요한 재료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기업의 창의성에 관한 전략도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구성원의 창의성을 높이는 데 있어 해당 분야에 대한 기본 지식보다는 여유 시간이 부족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직원들이 여유를 가지고 쉴 수 있는 사무실 환경을 만드는 것 등이 창의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왔다. 만일 앞으로 AI가 많은 일, 특히 형식지와 관련된 일을 대신한다면 창의성에서 장애 요인은 여유 시간보다도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는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직원들에게 해당 분야의 형식지를 어떻게 학습시킬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즉, 현재는 업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형식지를 앞으로 AI가 대체하게 되면 직원들이 이런 지식을 체계적으로 체화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디자인하고 실행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AI가 많은 화이트칼라의 일을 대신하거나 도와주면서 기업의 효율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처럼 지나치게 AI에 의존하는 것은 기업의 경쟁력에 해가 될 수 있음을 과거의 지식관리의 고전이 말해주고 있다.
  • 임일 임일 |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영학 학사와 석사를 받은 후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정보시스템 분야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New jersey Institute of Technology 교수를 거쳐 2005년부터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관심 분야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개인화, 추천 시스템 등이다
    il.lim@you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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