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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정국을 통해 본 ‘K-사주’ 인문학

“성실하게 살되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
사주를 과학 잣대 아닌 K-문화로 봐야

김두규 | 375호 (2023년 0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사주는 미신인가, 과학인가, 통계인가? 질문부터 잘못됐다. 사주는 믿음의 영역이지 과학의 영역이 아니며, 문화이지 진리가 아니다. 사주는 운명, 즉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고 이를 엿보려는 시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화다. 위대한 성인의 반열에 오른 공자나 맹자도 운명론자였으며, 이들도 운명을 거스르기보다는 수용하는 것이 군자와 소인을 판가름하는 요인이라고 봤다. 사주는 또 ‘삼국시대→고려→조선→현대’의 시대적 흐름과 사회경제 체제에 맞게 변화를 거듭해 왔다. 21세기 글로벌 노마디즘 시대에도 사주가 의미를 가지려면 시대착오적인 해석을 뒤로 하고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인한 수명연장, 치안과 재난 구조 발달, 저출산과 만혼, 비혼 등 결혼 풍토의 변화, 직업군의 다양화 등의 맥락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유연한 접근과 현대적 변용이야말로 ‘K-사주’가 애물단지 골칫거리가 아닌 어엿한 문화로 인정받고 나아가 ‘세계-사주’가 되기 위한 선결 조건일 수 있다.



2023년 7월 25일, 미국 음악 전문 매체 빌보드는 BTS 정국의 첫 솔로 싱글 ‘세븐(Seven)’이 메인 싱글 차트 ‘핫100’ 1위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언젠가 영국 BBC 인터뷰에서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가수”로 정국을 소개한 바 있는데 그 말대로 된 셈이다. BTS의 막내인 정국은 ‘운명을 믿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팔에 새긴 타투에 자신의 운명을 새겨 넣은 것이 이를 보여준다. 정국의 타투는 ‘시계→사슬→마이크→음표’로 이어지는데 시곗바늘은 그가 태어난 시각인 3시 23분을 가리킨다. 시계는 마이크 줄(사슬)로 이어지는데 마이크의 목적어는 음표다. 그는 이를 두고 “태어날 때부터 노래할 운명이라는 뜻”이라고 해석하며 운명을 믿기에 “지난 일을 후회하는 것이 제일 미련한 짓”이라 말한다. 어차피 운명이니까.

결국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사주를 풀이하는 기술, 즉 사주술이 생긴 것도 이 ‘운명’ 때문이다. 사주술은 성실과 신의로 살되 그 종착지는 운명과 하늘의 뜻에 맡기자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운명과 하늘의 뜻을 엿보기 위한 시도인 사주는 과연 미신인가? 과학인가? 아니면 통계인가? 사실 이런 질문은 그 자체로 잘못됐다. 미신이냐, 과학이냐를 따지는 것은 ‘하느님이 있느냐, 없느냐?’와 같은 질문일 수 있다. 믿음의 문제이지 과학의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사주 풀이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다. 사회학적, 사상사적, 문화사적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연구해야 할 대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인문학 지식인들은 사주가 곧 문화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편견이자 오리엔탈리즘에 기반을 둔 입장이다. 서구인의 우월적 관점에서 동양에 대한 지식 체계를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긴 역사를 거치면서 사주에는 지배계급의 의도적인 봉건 윤리관이 반영되기도 했고, 역술가들의 주관적인 견해가 개입되기도 했다. 권력, 기만, 학술, 도참 등이 뒤섞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땅의 풍토와 역사 속에서 형성돼 왔고, 이 땅의 사회경제 체제에 맞게 변화를 거듭해 왔다는 점에서 분명 우리의 민속이자 문화다. 그리고 지금처럼 ‘K-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시기, ‘K-사주’도 얼마든지 ‘세계-사주’로서 동양을 넘어 서양에 수출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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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맹자 등 성현도 ‘운명’을 믿었을까?

사람이 잘나가면 자기가 잘나서라고 한다. 불행하면 조상 탓을 한다. 조상 탓하기가 죄송하면 운명을 탓한다. 성현도 마찬가지다. 잘나갔으면 운명을 말하지 않았다. 유학 창시자로서 석가·예수와 맞먹는 성인 반열에 오른 공자도 마찬가지다. 공자는 왜 운명론에 빠졌을까? 그는 일찍이 천하를 돌면서 자신의 정치를 펼치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좌절 후 운명 앞에 굴복했다. 이때 그의 나이 50세였다. “내 나이 50에 천명을 알았다(五十知天命)”는 말도 이런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운명론에 동의하면서 “사람의 살고 죽음에는 일정한 명이 있고, 부귀 여부는 하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공자는 이후 정치의 꿈을 접고 후학 양성으로 ‘업종 전환’을 한다. 만약 그가 계속 정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주변을 얼쩡거렸다면 ‘탐욕스러운 늙은이’로 비웃음을 사고 지금처럼 성인으로 불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공자의 2인자인 맹자도 운명론을 받아들였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도 그렇게 되는 것은 하늘의 뜻이고, 이르게 하지 않으려 해도 이르는 것이 운명이다”라고 말했다. 공자와 맹자 모두 군자와 소인 구분을 운명 수용 여부로 판별했다.

“운명이 아닌 것이 없지만 순수하게 그 바른 것을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운명을 아는 사람은 위험한 담장 아래 서지 아니한다. 도를 다하고 죽는 것은 바른 운명이고, 형틀에 묶여 죽는 것은 바른 운명이 아니다”라는 말에 그들의 가치관이 함축돼 있다.

공자와 맹자는 사람마다 정해진 운명이 있음을 인정했으나 그 원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 개인의 운명은 어떻게 정해질까? 운명의 근원, 즉 사람마다 운명이 다른 이유에 천착한 성현은 중국 최초 유물론적 사상가로 평가받는 후한(後漢)의 지식인 왕충(27~97)이다. 왕충은 운명론의 완결자이자 사주술의 선구자다. 가난으로 인해 책을 사 볼 수 없었던 그는 당시 수도 낙양의 책방을 돌며 책이란 책은 모두 읽었다고 한다. 한 번 읽은 책은 그대로 암기를 할 정도로 시대의 천재였지만 그는 ‘흙수저’였다. 배경이 없던 그는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고 가난에 허덕였다. 끝내는 알 수 없는 운명 앞에 굴복해 다음과 같이 독백했다.

“부귀에는 마치 신령의 도움이 있는 것 같고, 빈천에는 귀신의 재앙이 있는 것 같다. 귀하게 될 명을 지닌 사람은 남들과 함께 배워도 홀로 벼슬을 하고, 함께 관직에 나가도 혼자 승진한다. 그러므로 높은 재주와 후덕한 행실을 지녀도 반드시 부귀해지리라고 보장할 수 없으며 지혜가 모자라고 덕이 천박해도 반드시 비천해지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

마지막 문장 ‘높은 재주와 후덕한 행실’을 언급한 것은 공자·맹자 같은 성현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여기서 운명을 ‘운’과 ‘명’으로 구분한다. ‘운’은 이 글의 끝부분에서 설명하고 ‘명’부터 이야기하자. 명(命)의 근원은 무엇일까? 왕충은 사람이 어머니 배 속에 잉태될 때 하늘로부터 받은 서로 다른 기(氣) 때문이며 이러한 기는 하늘의 별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왕충에 따르면 인간과 별은 운명의 쌍둥이다. 그래서 생겨난 단어가 ‘숙명’이다. 숙(宿)은 별자리를 의미하며 명(命)은 인간에게 예정된 부귀와 빈천, 수명의 길고 짧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별 가운데 어떤 별이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가? 대표적인 것이 ‘음양오행’이란 별이다. 음양오행은 해(日)와 달(月) 2개와 지구(土)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있는 목성(木)·화성(火)·금성(金)·수성(水) 5개(오행)를 합친 것을 가리킨다. 이 7개 별인 칠성이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전통 사주술이다.


음양오행설로 보는 BTS 정국의 사주


음양오행으로 BTS 정국의 사주를 볼 수 있는가? 정국은 1997년 9월 1일 3시23분에 태어났는데 만세력을 이용해 사주를 뽑고 음양오행으로 환원하면 [표 1]과 같다.

이를 오행으로 풀어보자. 정국은 화성의 기운 3개, 지구의 기운 4개, 금성의 기운 1개를 갖고 있다. 정국이 언젠가 같은 멤버 지민에게 자신은 ‘사주에 물(水)이 없다’고 했다. 맞다. 물뿐만 아니라 나무(木)도 없다. 정국 본인을 상징하는 병오(丙午)는 위아래가 모두 태양이다. 태양이 로켓처럼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아 대지를 밝게 비추는 존재다. 태양이 대지 위에 오르면 뭇 생명들이 활기를 띠듯 그가 뜨면 뭇사람들이 아연 활기를 띠며 우러러본다. 이렇게 기본 출발은 같으나 풀이를 진행하면서 역술인들은 서로 다른 풀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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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인 A: 밥상 위에서 태어났다. 남을 도울 줄 아는 사람 냄새 나는 팔자다. 인물 좋고 똑똑하고 체격 좋다. 재능을 바탕으로 태어나 전문성이 있다. 세련된 몸가짐으로 타인의 선망을 받는다. 남의 심리를 재빨리 꿰뚫는다. 입에서 돈이 나오는 (설단생금·舌端生金) 사주다.

역술인 B: 팔자가 약하니 공격보다는 방어 위주로 살아야 할 팔자다. 어머니·어른·선배와 책(학교·박물관)을 가까이함이 좋다. 물을 가까이함이 좋다.

역술인 C: 초가을 새벽잠을 자는 소와 같은 팔자다.

역술인 D: 흰 호랑이를 만나는 백호살(白虎煞)이 있어 산림의 제왕이 될 수 있지만 운 나쁘면 호랑이에게 물려 피를 볼 것이다. 역마살이 있어 온천지를 떠돈다.

역술인 E: 태어난 날짜가 모두 불(火)이라 강한 불처럼 화끈하며 성욕 또한 변강쇠와 같다. 사주에 불과 흙이 많은데 물이 없어 건조한 사주다. 비가 오는 날이 좋다.

중구난방이다. 누가 족집게 도사이고, 누가 사이비인지 알 수 없다. 그러한 까닭에 지식인들은 사주술이 객관성이 없는 미신이라고 경멸한다. 사주술에 호의적인 사람들만 사주가 일종의 오랜 통계학이라고 두둔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풀이가 제멋대로인 걸까?

동일 사주인데 각각 다른 해석이 나오는 까닭은 역술가들이 대개 시대에 따른 사주의 변천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일부만을 근거로 해석하고, 개인의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도 시대의 변화를 해석의 주요 변수로 고려하지 않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더욱이 개인이 태어나서 자란 곳, 부모의 직업 등을 제대로 반영하기도 어렵다. 유명인의 경우 직업과 현재의 사회적 위치를 알고 있어 이를 합리화하는 풀이를 하게 된다는 맹점도 있다. 따라서 사주가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불가신 불가폐(不可信 不可廢)’, 즉 ‘믿을 수도 없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다’라는 정도의 태도를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BTS 정국의 사주를 바탕으로 좀 더 이야기를 풀어보자.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온 사주 풀이

만약 정국이 고구려·백제·신라로 분열된 삼국시대에 태어났다면 정국의 사주를 어떻게 풀이했을까? 한반도에 12지(十二支) 관념은 신라 때 들어왔다. 지금도 경주 김유신 장군 무덤에 가면 둘레석에 새겨진 12지 석상을 볼 수 있다. 12지는 사람이 태어난 해를 동물(띠)로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주요 일간지의 인기 코너인 ‘오늘의 운세’는 바로 이 띠로 보는 간단한 사주술로 당나라 때 수입돼 ‘당사주’라고도 불린다. 이 당사주로 보면 정국은 소띠의 운을 타고났다.

하지만 당사주로 보는 ‘오늘의 운세’에는 맹점이 있다. 1997년 소띠 동갑들은 모두 BTS 정국 운세와 똑같다는 점이다. 1997년생들의 하루 운세가 똑같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운세를 들여다보는 것은 믿음보다는 재미를 좇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라 볼 수 있다.

그러다 통일신라·후삼국을 거쳐 한반도에 고려가 들어섰다. 고려는 전반기에는 중국의 송나라와, 후반기에는 원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고 문물을 교류했다. 특히 고려 후반기에는 원나라 부마국이 되면서 원나라 문화가 대거 유입됐는데 알다시피 원나라를 세운 몽골족은 유목민이었다. 이들은 농경사회와 정착 생활을 철저하게 부정했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뚫는 자는 흥한다”는 것이 몽골 정신이었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칭기즈칸 정신이다. 지금처럼 내비게이션이나 기상청이 없던 그 시절, 별을 보고 기상을 예측하며 가야 할 길을 정했다. 밤하늘의 별들이 인간의 삶에 중요했다. “밤하늘 별빛이 있어 지금 가야 하고, 또 가야 하는 이 길을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서양의 문예사상가이자 철학자인 게오르크 루카치의 저서 『소설의 이론』의 유명한 첫 문장이다. 이는 몽골족의 별 관념과 닮았다. 서양에서 점성술이 지금까지 유행하는 이유도 이렇게 별에서 가야 할 길을 찾던 문화의 잔재라고 볼 수 있다.

유목민족의 사주술 특징은 음양오행, 즉 7개 별뿐만 아니라 더 많은 별이 인간의 운명과 대응한다는 ‘신살(神煞)사주’였다. 이를 별점이라 했다. 고려 사주술의 특징은 ‘신살사주’였고, ‘고려사’는 이를 ‘점성(占星)’이라 표기했다. 고려의 신살사주(점성술) 수준은 대단했다고 한다. 당시 몽골은 세계 제국이었기에 몽골에서 성공하면 세계적으로 성공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BTS가 미국에서 인정을 받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과 같은 레벨이다. BTS 정국의 사주를 고려 후반기 유행했던 신살로 보면 다음과 같다.

생년: 백호살

생월: 암록·문창귀인·관귀학관·현침살·고란살

생일: 양인살·협록·현침살

생시: 없음

좋은 별(신·神)로는 암록·문창귀인·관귀학관·협록이 있고, 나쁜 별(살·煞)로는 백호살·현침살·고란살·양인살이 있다. 암록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재물이 넉넉하고, 문창귀인은 글을 잘하고, 관귀학관은 벼슬길로 나가면 크게 되고, 협록은 주변의 도움으로 재물이 풍성해진다는 의미다. 백호살은 운이 좋으면 뭇짐승의 왕인 호랑이 팔자지만 운 나쁘면 호랑이에게 물려 피를 본다는 뜻이고, 양인살은 투쟁과 경쟁심으로 남을 이겨 지도자가 된다는 뜻이며, 현침살은 촌철살인의 말재주가 좋고, 고란살은 부부운이 좋지 못하다는 뜻이다. 이처럼 신살사주는 한 사람에게 부여된 신살들을 종합해 그 사람의 운을 파악한다.


BTS 정국이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마지막으로 원나라가 망하고 중국에서는 명나라, 한반도에서는 조선이 들어섰다. 명나라와 조선 모두 새로운 사회경제 체제와 국교를 택한다. 국교는 성리학, 사회경제 체제는 농경을 근간으로 했다. 더불어 사주를 보는 방법도 달라졌다.

성리학은 인간의 본성(性)과 하늘의 이치(理)가 일대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며 이때 인간 개개인의 본성을 강조한다. 인본주의적 사상이다. 사주 여덟 글자 가운데 당사주처럼 띠를 중시하지도 않고 ‘신살사주’처럼 사주 여덟 글자에 균등한 비중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태어난 날짜 가운데 첫 글자를 중시하기 때문에 그 첫 글자와 다른 일곱 글자 사이에는 일종의 서열 관계가 형성된다.

BTS 정국 사주의 경우 태어난 날짜인 병오(丙午) 가운데 첫 글자 병(丙: 태양)이 중요하고, 나머지 일곱 글자는 병의 하위 혹은 주변부를 형성한다. 즉, 유교를 표방한 정치 체제에서 계급사회·남존여비·관존민비 등 ‘서열 관계’가 중시된 것과 비슷하다.

정국은 태양으로 태어났다. 십간 가운데 태양만이 하늘에 떠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다. 옛날에 임금을 해[日]라고 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정국 사주에는 3개의 태양이 더 있다. 과거 왕조 시대에는 하늘에 임금이 둘, 셋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치열한 권력 다툼을 동반할 수 있는 사주다. 그런데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이고,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에서는 2개, 3개의 태양도 가능하다. 만약 정국이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권력 다툼에서 성공하면 왕이 됐을 것이고, 실패하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조선은 농업을 근본으로 하는 국가였는데 정국의 사주에는 흙(土) 4개, 농기구(金) 1개, 불(火) 3개가 있지만 물(水)과 나무(木)가 없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사주인 것이다. 땅은 넓은데 한쪽 구석에 트랙터 한 대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형국이다. 태양 3개가 뜨겁게 대지를 달구고, 비가 오지 않은 땅은 말라 쩍쩍 갈라진다. 더구나 그 땅에 심을 나무 한 그루 없다는 것은 건조하고 뜨거운 사막을 연상시킨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사주다. 불모지에서 태어난 사람이 성공은커녕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정국이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몹시 고달픈 삶이 됐을 수 있다.

조선에 태어난 정국이 고달픈 삶을 견디지 못해 한양의 족집게 점쟁이를 찾아갔다면 점쟁이는 한숨부터 쉬었을 것이다. 그 신세를 동정한 양심적인 사주쟁이라면 [표 2]와 같은 도표를 그려서 운을 고칠, 즉 개운(開運)할 방법을 알려주면서 물(水)과 나무(木)에 해당하는 것을 보완하라고 조언했을지도 모른다. 아무쪼록 정국이 조선 시대에 태어나지 않는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농경사회도, 계급사회도 아니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글로벌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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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글로벌 시대 현대인에게 맞는 해석

오늘날 한국의 사주 전문가나 역술인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간과한다. 이는 ‘K-사주’ 문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1.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인간 수명이 대폭 늘었다. ‘인생오십’이란 말은 옛말이고 이제는 100세 시대다.

2. 치안과 재난 구조 발달로 비명횡사·객사·실종 등이 현격히 줄었다.

3. 남북한은 경제·문화·이념 등에서 너무 달라졌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사람이라도 남과 북은 다른 운명의 길을 걷는다. 한국 사람은 북한보다 서구인들과 운명이 비슷하다.

4. 1970년대(부분적으로 그 이후도)까지 재력가나 권력가들은 공공연히 첩을 두었다. 지금은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5. 발달한 피임법과 결혼 기피로 저출산이 심각한 상황에서 자녀의 다소유무를 간단히 해석하기가 어려워졌다.

6.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주택 구입, 취직의 어려움으로 만혼·비혼이 증가해 결혼과 자녀 예측 시스템이 달라져야 한다.

7. 직업 차별이 없어졌고, 직업도 훨씬 다양해졌다. 천시받던 광대·무당이 지금은 선망받는 ‘연예인’ 직업군으로 떠올랐다. BTS 정국이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남사당패’가 돼 천대받는 힘든 삶이었겠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스타의 삶을 살고 있다.

현대인의 사주를 온전히 풀이하려면 이처럼 21세기의 환경을 무시해서는 안 되며, 위 요소들을 전제로 해야 한다. 삼국시대→고려→조선→현대(남·북한)로 나라가 바뀌고 사회경제 체제가 바뀌면서 사주술도 바뀌었다. 사주도 동시대의 문제의식에 대한 대응 논리로서 진화해 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한국의 사주 시장은 날로 커지고 있다. 연 15조 원 시장으로 추정될 정도다. 현대인들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사주를 통해 해소하려고 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사주 전문가’를 표방하는 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추세다. 사주 상담 기록으로 책을 써서 자기를 홍보하려는 부류, 전설적인 사주 대가의 기행과 기담을 과장하거나 신비화하는 부류, 중국의 사주책을 단순 번역해 출판하는 부류, 사주를 접목해 돈이 되는 상담을 해주는 부류 등 시장 틈새를 비집고 등장한 전문가의 면면도 다양하다. 인문학의 위기로 지방대 인문학 관련 폐과가 속출하는 가운데 위기 탈출을 위한 편법으로 ‘풍수나 사주 전공 특수대학원’을 만드는 학교들도 있다.

이렇게 제대로 된 교육이나 양성기관 없이 방치돼 있는 한 사주술은 서양의 문화와 학문에 밀려 뒷골목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과거 조선왕조에서는 관상감이란 관청에서 명과학(命課學)을 둬 사주 전문가를 선발하고 양성한 바 있다. 명실상부한 ‘국학’이었다. 중국 역대 왕조는 ‘흠천감’, 일본에서는 ‘음양료’란 관청을 둬 한문으로 된 다양한 사주 문헌을 이해하고 이를 국가 통치에 활용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청나라·조선·일본 바쿠후가 망하면서 사라졌다. 이 국학에 제대로 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전문가를 사칭하는 이들이 횡행하도록 방치하면 시장은 커지더라도 사주술은 황당한 미신과 다를 바 없어질 것이다.


인간의 흥망성쇠에 관여하는 운

앞서 ‘운명’이 하나의 단어가 아닌 ‘운’과 ‘명’의 합성어임을 말했다. 지금까지 타고난 명, 즉 금수저인지 흙수저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와 같은 사주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운을 설명할 차례다. 전통적으로 한 개인과 집단, 즉 회사의 흥망성쇠에는 다음 5가지가 순차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일명(一命), 이운(二運), 삼풍수(三風水), 사적음덕(四積陰德), 오독서(五讀書).

첫째가 명이라면, 둘째는 운이다. 명을 자동차에 비유하면 운은 도로에 비유할 수 있다. 명을 항해하는 배로 본다면 운은 항해할 때 부는 바람으로 볼 수 있다. 순풍일 수도 있고, 역풍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운은 때(時, 타이밍)를 말한다. 경기에서 우승한 선수에게 기자들이 우승 비결을 물으면 대부분 “운이 좋았어요”라고 말한다. 즉, 타이밍이 좋았다는 이야기다.

이 운은 출세를 결정짓기도 한다. 때가 맞아 출세한 ‘작품’으로 대표적인 게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모나리자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을 찾는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보는 그림인 모나리자는 다빈치의 대표작도 아니고, 당시 걸작으로 평가받던 작품도 아니다. 작품 탄생 후 400년 동안 사람들은 모나리자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모나리자가 유명해진 것은 순전히 운 덕분이었다. 1911년 루브르박물관 잡역부 페루자가 퇴근길에 ‘모나리자’를 작업복 속에 숨겨 나왔는데 2년 후 페루자는 모나리자를 조국 이탈리아 미술관에 판매하려다 체포됐다. 사건은 전혀 다른 반향을 불렀다. 프랑스인들은 분노의 충격에 빠진 반면 이탈리아인들은 모나리자를 조국으로 반환한 페루자를 영웅으로 추대했다. 이 같은 ‘모나리자 절도 사건’이 세계적 뉴스가 되면서 갑자기 작품도 유명해졌다. ‘모나리자’란 작품의 명은 별 볼 일 없었지만 400년 후 우연히 때를 만나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때를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BTS 정국은 스스로 운이 좋은 편이라고 평가한다. “뽑기를 하거나 가위바위보를 할 때면 늘 평균 이상의 승률을 보여 스스로를 금손”이라 할 정도다. 이때 운은 특정한 시점과 결부된다. BTS 정국은 자신의 타투에 ‘110604’를 새겼다. 2011년 6월 4일, 그가 부산에서 서울로 오던 때를 표기한 것이다. 그때 운이 좋았음을 기리는 의미다.

사업을 할 때도 운이 따라 줘야 한다. 언제 하느냐, 즉 때가 중요하다. 예컨대, CEO가 최종 의사결정을 언제 하느냐에 따라 또한 성패가 달라진다. 어느 계절, 어느 달, 어느 날, 어느 시각에 함이 좋을까? 연예인들이나 유력 정치인들이 점집을 찾는 것도 ‘언제 자신의 운이 들어올까’를 알기 위한 절박한 심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타고난 명을 넘어 운을 예측함으로써 운명을 제대로 엿보고 흥망성쇠를 짐작하고자 하는 심리가 존재하는 한 ‘K-사주’는 한국에서든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든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K-사주’가 ‘세계-사주’가 될 수 있을까?

문명과 과학이 발달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는 것에 비례해 인간은 더 왜소해지고 실존은 더 불안해지고 있다. 공동체가 파괴되고 나 이외 그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시대가 되면서 실존 불안도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가뭄, 홍수 등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불안을 공동체가 함께 떠안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고통을 나눌 공동체가 사라지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일반인도, 지도자도 더욱 ‘도참’ 혹은 ‘운명 예측’에 의존하려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과연 운명 예측이 가능할까? 사주는 어떤 도움이 될까? 도움이 된다면 당사주, 신살사주, 조선 시대 사주 중 어느 게 가장 유용할까?

여러 가지 질문이 나올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에게 보편타당한 사주술은 없다는 점이다. 농경사회에서는 역마살 사주를 꺼렸지만 IT와 무역, 문화, 관광 산업을 바탕으로 하는 글로벌 노마디즘 시대에는 역마살이 있는 게 더 유리하다. 과거에는 홍염살과 도화살도 ‘기생 팔자’라 해 꺼렸지만 요즘은 사람들의 주목과 인기를 얻는 사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연예계 등 예체능계에서 성공하려면 ‘끼’가 있어야 하고, 장사나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경우 손님을 많이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주를 해석할 때는 변화된 시대상과 윤리관, 가치관 등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하고 개인의 성별·연령·직업·지위·거주지·성격 등에 따라 선택적으로 쓸 수밖에 없다.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하나의 정답지를 찾는 이들에게는 이런 가변적인 특징은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사회경제 체제와 시대상에 맞게 변화를 거듭하는 유연성이야말로 K-사주의 저력이자 ‘K-사주가 세계-사주가 될 수 있는’ 이유다. 분명한 것은 사주가 운명을 엿보려는 시도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화’라는 점이다. 그리고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살리면서 현대적으로 변용하는 것은 후속 세대가 해야 할 일이다. 21세기 중국이 배출한 석학 가운데 한 명인 홍비모(洪丕謨, 1940~2005) 교수(상하이 화둥대)는 1991년 출간한 『중국고대산명술(中國古代算命术)』이란 사주 학술서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사주술 자체만 놓고 보면 이론적 허구가 많다. 그러나 미신으로 부정할 수 없다. 문화 사상의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것을 통해 인민들은 가치관을 정립해왔고 그에 맞는 행동 양식을 보여 왔다. 사주술에 담긴 잠언(箴言)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사주나 풍수지리 등을 소중한 문화로 재평가하고 있다. 한반도에도 이 문화가 유입돼 ‘한국적 사주·풍수’로 변용된 지 1500년이 넘는다. 한국 문화의 일부로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기독교 정신이 근간인 서구인이나 그 시각을 받아들인 이들이 이런 사주를 미신이라 비난한다면? 성경은 말한다:

“A person can receive only what is given him from heaven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27절)
  • 김두규 |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김두규 교수는 한국외대 및 동 대학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에서 독문학, 사회학, 중국학을 수학한 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해 1994년부터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0년에 공식적으로 독일 문학에서 풍수지리로 전공을 바꾸었다. 2007년부터 2017년 4월까지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풍수지리)으로, 2017년 5월부터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민속학)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주의 탄생(2017)』 『권력과 풍수(2021)』 등 총 24권의 역서와 저서를 집필했고 ‘사주이론들의 사회사적 배경 연구 시론’ 외 10여 편의 사주와 풍수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dgkim@woos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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