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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지구에 예술은 없다’… 페스티벌의 전환 노력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한다면
공연의 지속가능성도 생각해야

이미지 | 374호 (2023년 0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페스티벌 관련 업계에서도 ‘지속가능성’이 화두다. 현장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각종 폐기물 방출을 최소화하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환경 이슈에 대응하고 있다. 국내외 공연예술 업계도 주도적으로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지속가능한 페스티벌을 만들기 위한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공연 산업의 규모가 큰 영국의 경우 페스티벌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 분석하고 나아가 환경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한 업계 전반의 접근 방식을 새롭게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페스티벌 주최 측의 노력 만으로는 변화에 한계가 있다.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아티스트, 관객 모두 지속가능한 페스티벌을 만들어가야 할 책임이 있다.



편집자주

이번 기고문 작성에는 무신사 어스팀 인턴 강호성, 임주혜 씨가 함께 참여했습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트립합 뮤지션 매시브어택(Massive Attack)의 로버트 델 나자(Robert Del Naja)는 라이브 음악 산업이 영국의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며 매년 46억 파운드 이상의 경제적 가치와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1 그래서 음악 산업의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대응 역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대표적인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멤버, 톰 요크(Thom Yorke) 역시 다른 많은 산업과 마찬가지로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라이브 음악 산업도 빠르게 변화해야 하고, 그러려면 정부의 인프라 지원과 계획이 필요하다며 지지 발언2 을 했다.

음악 마니아로서 이루고 싶었던 꿈 중 하나는 페스티벌 스테이지를 직접 프로듀싱하는 것이었다. 큰 규모의 록페스티벌에서 마침내 그 꿈을 이뤘다. 문화 다양성을 고려한 여러 프로젝트와 함께여서 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페스티벌을 마칠 무렵이 되자 마냥 꿈을 이뤘다는 개운함만 남지는 않았다. 현장에서 버려지는 수많은 쓰레기, 낭비되는 자원들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페스티벌은 여름 시즌 야외에서 진행된다. 계절 특성상 폭우가 잦다. 관객들은 우비, 일회용 우산, 중요한 물품을 담기 위한 비닐 팩이 필요하다. 홍보 혹은 판매용으로 준비된 이 일회용품들은 사용 후 여기저기 버려진다. 스태프들은 안전과 위생을 위해 치우기 바빴다. 대형 쓰레기봉투에는 페트병, F&B존에서 사용된 플라스틱 컵, 도시락, 비닐, 비옷, 장화 등이 가득 찬다. 즐거움의 이면에는 너무나 많은 쓰레기가 있었다. 음악을 즐기는 일회성 행사이니 괜찮다고 넘기기엔 공연과 페스티벌은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며 폐기물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다.

공연 산업은 지금까지 문화예술 자체로서의 완성도, 아티스트와 관객의 편의를 우선시해 왔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 이면을 깨달은 순간, 전환이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공연을 즐기는 환경, 나아가 지구의 환경이 파괴되면 공연은 지속될 수 없다. 죽은 지구에 예술은 없다. 따라서 공연과 페스티벌 산업에서도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기록하고, 줄이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인류는 기후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배출량을 유지한다면 지구 기온이 4도 상승할 것이라는 IPCC 6차 과학평가보고서를 떠올린다면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지킬 필요가 있다.3 매시브어택, 라디오헤드의 촉구와 같이 문화예술의 영역인 공연과 페스티벌 역시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를 빠르게 마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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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문화예술계의 기후 위기 대응 움직임

국내외 문화예술계에서도 기후 위기 대응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2021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글로벌 이슈인 기후 위기에 대응해 문화예술 분야의 책무와 역할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는 목적으로 ‘문화예술의 친환경적 관점 도입을 위한 연구’5 를 진행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그간 국내에서는 문화예술과 환경 이슈를 연계한 연구 자체가 많지 않았다. 환경과 문화예술 분야는 서로 크게 관련이 없다는 선입견이 있었고 정책적 근거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환경 분야의 입법 계획과 도입 예정인 국가 정책에는 문화예술 분야가 받아들여야 하는 정책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기존에는 환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문화예술을 활용하는 데 그쳤다면 ‘제2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2020-2040)’과 ‘제2차 녹색건축물 기본계획(2020-2040)’, 비법정 계획인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 ‘그린뉴딜 종합계획’에는 문화 시설 및 서비스 또한 염두에 두고 실천해야 할 정책적 조치들이 제시되고 있다.

‘지속가능한 ACC콘텐츠 제작 가이드라인 (2021)’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연구에서 제시한 향후 과제에 대응하는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발간됐다. 여기서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체크리스트를 제공한다. 전시 과정은 기획, 운송, 설치, 전시 운영, 철수의 가치사슬을 가진다. 이는 공연 산업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가이드라인에서는 3R(최소화, 재사용, 재활용)의 측면에 중점을 둬 콘텐츠 기획 운영 과정을 1) 기획/준비(Pre-production) 2) 제작/운영(Production) 3) 사후(Post-production)로 구분해 단계별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각 단계별 실천도 중요하지만 체크리스트는 내부 관계자, 창작자, 관람자 모두가 참고할 수 있게 제작됐다. 전시, 공연 등의 이벤트가 갖는 특성상 이해관계자가 모두 변화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문화예술 분야 계획 및 정책으로는 유 네스코의 컬처 2030 인디케이터(Culture 2030 indicator) 영국예술위원회의 환경 리포트 발간 사업 등이 눈에 띈다. 영국은 특히 선제적으로 문화예술의 기후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런던광역시(Great London Authority)는 지속가능성 정책을 수립했는데 국제 이벤트 관리 표준(ISO20121)6 을 실천해 이벤트로 인한 사회환경적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에 목표를 뒀다. 이 정책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적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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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창작에서의 실천을 돕는 공개 툴

비영리기관 줄리스바이시클(Julie’s Bicycle)7 이 개발한 ‘창작자를 위한 기후 툴(Creative Climate Tools, CC Tools)’의 경우, 50개 이상의 국가, 총 5000개가 넘는 기관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 툴은 누구나 무료로 사용 가능하다. 각 프로젝트의 타입을 설정한 후 에너지 및 물 사용, 폐기물, 관객 이동 등의 데이터를 입력하면 이에 따른 배출량을 계산해준다. 측정해야 개선과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툴은 환경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미술관부터 브랜드까지 이러한 변화를 지향하고 있다. 미술관에서 선제적으로 전환을 시도한 사례들이 작년 국립현대미술관 탄소프로젝트에서 공유됐다. 삼성문화재단은 미술관의 ESG 지표를 월별, 분기별, 연도별로 목표치를 정하고 수치를 확인하는 로드맵을 가지고 다양한 부문에서의 전환을 실천 중이다. 모바일 티켓, 디지털 브로슈어, 전시 설치 파티션의 모듈화로 폐기물을 줄이는 방식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특히 이 중 전시 설치 파티션의 경우, 기존 방식으로 진행한 2021년의 전시는 27t의 폐기물을 배출했지만 모듈 파티션을 도입한 2022년에는 전시별 9.2t과 7.1t으로 두 전시 도합 16.3t이 발생해 획기적으로 폐기물량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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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특화 지속가능성 가이드

공연 산업 역시 변화의 방향을 모색 중이다. 영국의 협동조직 파워풀싱킹(Powerful Thinking)은 페스티벌에서의 에너지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목적으로 2010년 설립된 업계의 싱크탱크다. 창립 멤버로는 앞서 언급한 줄리스 바이시클(Julie’s Bicycle)을 비롯해 독립페스티벌협회, 아웃도어이벤트협회 등 페스티벌 관련 협회뿐 아니라 전국 케이터링 협회까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2015년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회의에 대한 페스티벌 업계의 대응으로서 ‘지속가능한 쇼’를 위한 솔루션을 마련하기 위해 『쇼는 계속돼야 한다(The show must go on Report, 2015)』를 발간했다. 영국 페스티벌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 분석하고, 환경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한 업계 전반의 접근 방식을 다룬 것이다. 이를 통해 2025년까지 10년 이내에 탄소배출량을 50% 감축시키는 시나리오까지 실었다.

이 보고서에서 페스티벌은 단순히 음악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이자 영감과 혁신의 장소라고 정의한다. 특히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 시작한 페스티벌들은 주류 정치와 삶의 방식에 도전하는 장으로서 지난 50년간 상당한 상업화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장르의 음악과 예술의 형식, 정치 및 환경 문제까지 표현하고 탐색하고 공유하는 장의 기능을 해왔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페스티벌들은 젊은 인구층을 끌어들여 미래의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기본적으로 페스티벌, 쇼는 일상과는 분리되는 도피적인 즐거움과 경험을 주는 사업임을 인정하고, 모든 축제가 환경 문제에 대해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대신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기후 위기 대응에 기여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이 페스티벌들의 환경적 영향을 고려해 책임감 있게 관리할 것을 제안한다.

그들은 279개의 영국 여름 음악 페스티벌을 조사했다. 2013년 기준으로 페스티벌에 참석하는 ‘페스티벌 고어들’은 연간 317만 명에 달한다.

이에 따르면 관객들의 이동에 의한 탄소배출량이 전체 배출량의 약 80%나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현장’에서의 탄소배출량은 에너지가 65%, 폐기물이 35%를 차지했다. 페스티벌에서 배출되는 탄소는 누구의 책임인가에 대한 설문과 논의도 이뤄졌는데 페스티벌의 주최뿐 아니라 관객, 지방 당국 모두가 책임의 주체로 다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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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사에 응답한 영국의 페스티벌은 이미 관련 인증을 취득하고, 공식적이지 않더라도 관련 정책을 가지고 노력하는 상태였다. 페스티벌이 끝나고 남겨진 텐트를 줄이기 위한 ‘Love your tent’ 이니셔티브와 협력하거나 ISO14001을 획득한 공급 업체의 물품을 조달하고, 퇴비 화장실을 사용해 수세식 화장실보다 물을 덜 사용하고, 운송이 최소화되는 옵션 등을 채택하는 것이다. 또한 주목할 만한 점은 글로벌 물 문제에 대한 고민도 함께한다는 것이다. 행사에서 물 사용으로 인한 탄소배출량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에너지나 폐기물에 비하면 적지만 더 넓은 맥락에서 고려해야 할 가치 있는 노력이라고 언급했다. 간단하게 물 소비를 줄이는 방법으로 절수 수도꼭지, 물이 없는 변기나 퇴비 변기, 혹은 절수 기술을 사용하는 화장실 등의 조치를 제안하는 식이다. 이에 나아가 샴발라(Shambala) 페스티벌의 경우 일회용 병에 담긴 음료 판매를 금지했고, 관객의 10%가 ‘브링 어 보틀(Bring a bottle)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텀블러를 구입해 플라스틱을 줄인 사례로 제시된다. 물을 절약의 대상, 세계가 공유하는 자원으로 바라보는 경우 이 정도의 구체적인 실천까지 가능하다는 점이 인상 깊다.

이 보고서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은 업계의 협력이다. 페스티벌 업계의 협력과 공동 이행을 통해 공급망에서도 지속가능한 솔루션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고, 관객들에게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매력적으로 전달하며, 창의적으로 관객들을 참여시키는 방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단지 ‘이벤트의 지속가능성’이 티켓 구매의 주요 동기가 되진 않겠지만 관람객들이 그들이 참석하는 이벤트가 환경적으로 책임 있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을 알게 된다면 훨씬 더 나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국내에도 지속가능 축제를 위한 재사용 컵을 도입한 케이스가 있다. 대표적인 업체 중 하나인 ‘트래쉬버스터즈’는 2022년 열린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서 모든 F&B 부스에 다회용기를 제공했다. 사용 용기의 개수는 총 22만 개로 이로 인해 축제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을 전회 대비 48% 감소시켰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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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발라 페스티벌10 의 경우 이러한 노력을 선구적으로 보여준 좋은 사례다. 이들은 2001년부터 현장에서 작은 규모로나마 태양광과 풍력에너지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지속가능성을 넘어 재생을 추구하기 위한 2025년 그린 로드맵도 공개하고 있다. B corp 인증을 받고, 재생에너지로 100% 전환하며, 모든 물자를 페스티벌의 생태계 내에서 최대한 재사용되도록 하는 계획 등이 포함돼 있다.11 이러한 목표 달성에는 제작진, 아티스트, 공급 업체, 관객 등 모든 사람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샴발라의 Recycling Exchange 캠페인도 눈길을 끈다. 샴발라 페스티벌 티켓을 구매할 때는 10파운드의 재활용 예치금이 자동으로 추가된다. 페스티벌에 도착해 받는 녹색 봉투(재활용품을 위한)와 회색 봉투(폐기물을 위한)에 페스티벌 기간 동안 발생한 쓰레기를 담아 가져오는 사람들에게만 환불되는 금액이다.12 샴발라 페스티벌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공연 산업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하고 있는 커뮤니티 에코리브리움(ecolibrium)의 창립(2015) 멤버이기도 하다. 샴발라는 모든 차량 및 캠핑카 티켓 가격에 에코리브리움에 내는 탄소 상쇄 기부금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 기부금의 100%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자된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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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특화 지속가능성 가이드

이처럼 기후 위기에 대한 종사자(아티스트, 기획자 등)의 높은 공감대와 인식을 바탕으로 영국에서는 자발적으로 공연 가이드라인을 제작하려는 흐름이 존재해왔다. 시어터 그린북은 뷰로하폴드(Buro Happold)가 영국 공연 예술계와 협력해 제작한 지속가능한 공연 가이드라인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연극의 역할과 변화의 필요성, 변화를 위한 주요 원칙들을 제안한다. 재료의 선택, 조달과 이동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2021년부터 그린북의 가이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2030년 탄소 중립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고 있다. 2030년 탄소 중립을 성취할 계획 아래 연간 탄소 감축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고 있다.14

시어터 그린북은 공연 기획 단계별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1편 지속가능한 제작(The Theatre Green book 1 – Sustainable Productions)에서 프로덕션팀은 기초 단계를 달성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과제 목록을 정했다.


· 모든 재료의 50%가 재사용 또는 재활용된 출처인지 확인

· 그중 65%가 보관 또는 재사용을 통해 다음에도 사용될 수 있도록 하기

· 유해하고 지속 불가능한 물질은 사용하지 않기

· 기술 시스템을 지속가능하게 운영하기

· 장거리 이동 및 배송 줄이기


툴킷15 역시 누구나 다운로드할 수 있다.

이 그린북을 참고한 연극이 국내에서도 작년 국립극장 무대에 올랐다. ‘기후 비상사태- 리허설’이 그것으로 제목에서 추론 가능하듯 작품 자체의 주제를 기후 위기로 다뤄 화제가 됐다.16


영국 음악 산업의 앞선 발걸음

영국에서만 음악 공연으로 매년 40만5000t의 탄소가 배출된다.17 그만큼 영국 공연 산업의 규모가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해관계자들의 문제 인식 수준이 높고 해결을 위한 선제적인 연구와 실천 사례 역시 많다. 먼저, 공연 산업의 주요 이해관계자인 아티스트가 직접 목소리를 내고 관련 연구 및 캠페인을 주도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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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시브어택의 전방위적 활동

영국의 대표적인 트립합 밴드인 매시브어택은 정부에 공연 산업의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정책을 요구한 데 이어서 2021년 COP26 기간에는 소셜미디어(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및 트위터 등)에 유포된 기업의 그린워싱 광고 및 콘텐츠를 수집하고 시각화해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했다.18

이 밴드는 2022년 투어를 위해 6개의 주요 탄소 배출 감축 모듈을 설계하고자 틴달(Tyndall) 기후변화연구센터에 직접 연구를 의뢰했다. 이 연구 결과물은 영국의 라이브 음악 산업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역할을 하기 위한 로드맵이기도 하다. 공연 산업계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인 아티스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룹 측은 ‘매년 영국에 46억 파운드에 달하는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라이브 음악 부문을 위한 청정 배터리 기술, 청정 인프라, 또는 저탄소 식품 공급 등에 대한 투자 계획은 어디에 있는가?’라며 정부의 역할에 호소했다.19

이러한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 달성이 어려운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매시브어택의 경우 철도를 통한 밴드 여행을 통해 즉각적으로 기존 대비 31%의 탄소배출량을 감축했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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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라디오헤드의 선제적인 연구 및 영향력

이보다 앞서 진행한 라디오헤드 북미 투어의 생태 발자국 및 탄소배출량 보고서(Ecological Footprint & Carbon Audit of Radiohead North American Tours 2003&2006, July 2007) 사례도 있다. 특히 라디오헤드의 리더 톰 요크 역시 기후 위기 대응 활동에 직접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기로 유명하다. 업의 특성상 투어 공연을 해야 했던 그는 미래 투어를 계획하며 환경적 영향을 줄이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기 위해 이 초기 연구를 진행했다. 그들은 2개의 북미 투어 일부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관련 생태 발자국 및 탄소배출량을 조사했다. 2006년의 극장급 투어(관객 총 7만 명, 6개 쇼)와 2003년의 아레나급 투어(관객 총 24만 명, 4개 쇼) 샘플을 통해 각 영향을 추정한 것이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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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타입의 투어 모두 주요 영향은 팬들의 여행이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이 배기가스가 발생하는 자동차를 운전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또한 밴드의 투어 영향 역시 전세기를 활용하는 여행 및 에너지 사용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전세기 사용을 차로 전환하고 화물 역시 트럭에서 철도로 전환하면 탄소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공연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4가지 부문에서 측정했다.


· 팬의 여행 거리

· 팬의 이동 수단

· 케이터링- 팬들은 얼마나 많은 맥주와 음식을 소비했나

· 폐기물 - 팬들은 얼마나 많은 음식 및 패키지 쓰레기를 남겼나


라디오헤드는 이러한 선구자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2008년 최초의 ‘Carbon Neutral World Tour’를 목표로 투어를 시작했다. 관객 이동으로 인한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콘서트는 대중교통 연결이 잘되는 도시에서만 열렸다. 인센티브로는 대중교통으로 도착한 팬을 먼저 입장시켰다. 또한 티켓 구매 단계에서 에코리브리움의 여행 탄소 계산기22 와 같은 계산기 서비스 및 기후변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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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시스템은 각 현지에서 임대해 운송을 줄였다. 트럭은 가능한 경우 바이오 연료로 운행했다. 이들은 투어 공연에서의 탄소배출량 감축뿐 아니라 팬과 제작진에게 일상생활에서도 변화하도록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하고 있다.

2012년 라디오헤드의 첫 내한이 있었다. 단독 투어가 아닌 지산밸리록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초청됐던 공연이었다. 이들은 주최 측에 친환경 요구사항을 전달해 이색적이라고 주목받았다. 일반적으로 정상급 헤드라이너들은 내한 시에 물 하나도 본인이 평소에 마시던 해외 브랜드로 지정하는 등 깐깐한 편인데 라디오헤드가 요청한 내용은 이런 것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대기실 주변 및 공연장 전반에 재활용 분리 쓰레기통을 마련해 줄 것, 아티스트의 식기는 일회용이 아닌 다회용기로 구비할 것, 냅킨 역시 패브릭으로 구성해주며, 음식 역시 공연장 인근에서 조달할 수 있는 품목 어떤 것이든 좋다고 했다. 대기실의 전구 또한 전력 소비가 낮은 사양을 이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주최 측은 ‘지산밸리록페스티벌 모든 스태프가 물통을 사용하자’는 지침 등을 마련하며 라디오헤드의 지향점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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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콜드플레이의 탄소 중립을 향한 여정

최근 가장 주목받은 사례는 역시 콜드플레이일 것이다. 그들은 티켓이 팔릴 때마다 나무를 심는다. 이것에 머물지 않고 리더 크리스 마틴은 지난 2019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공연이 지속가능할 뿐 아니라 환경적으로 유익한 방법을 찾기 위해 앞으로 투어 공백 기간을 가질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이는 공연에서의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을 넘어 환경에 도움이 되는 공연을 하겠다는 급진적인 의지였다. 이 밴드는 당시 앨범 투어를 통해 약 5억2300만 달러(한화 약 6785억 원)의 수익을 얻었는데 이를 포기한 것이기도 하다.24 그리고 약 4년 만에 밴드는 환경에 중점을 둔 새로운 투어 ‘뮤직 오브 스피어스(Music of the Spheres)’를 발표했다.

다음 투어를 가능한 한 지속가능하고 저탄소로 만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투어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해결하기 위한 12가지 지속가능한 액션 플랜을 만들었다.

이 계획은 세 가지 원칙으로부터 시작된다.


· 감소: 소비 감소, 재활용을 통한 폐기물 감소, 배출량 50% 감소

· 재창조: 새로운 녹색 기술과 지속가능한 초저탄소 여행 방법

· 복원: 자연 및 기술 기반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해 투어가 생산하는 것보다 더 많은 탄소배출량을 줄임으로써 가능한 환경적으로 유익한 투어로 전환


23년 6월 2일 그들의 웹사이트에 업데이트된 내용에 따르면, 이전 투어(2016-17) 대비 공연별 직접 탄소배출량은 47% 감축, 500만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특히 이 데이터 및 환경영향 평가는 MIT의 ESI(Environmental Solutions Initiative)와의 협업으로 이뤄졌다.25 그들의 지속적이고도 다각적인 노력이 탄소 중립 공연의 포부를 이뤄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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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본 바와 같이 공연 산업의 가치 사슬은 길고 복잡하며 이해관계자 역시 다양하다. 특히 관객의 경우 탄소 배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공연을 기획하는 조직의 소속이 아니라는 특이성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지속가능한 공연으로의 전환은 관객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협력이 필수이다. ‘쇼는 계속돼야 한다’ 보고서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업계는 공유된 표준을 향해 협력해야 한다. 특히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이라는 기후 정의를 위한 목소리를 내는 K-pop 팬덤과 같은 관객의 요구 움직임도 눈에 띈다.

이 팬덤은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는 슬로건으로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 배출이 없는 콘서트를 요구하고, 한국의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이 100% 재생 에너지 전환을 선언할 것을 요구하는 등26 다양한 영역에 대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공연, 음악을 포함한 콘텐츠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지속가능한 산업으로의 전환 요구 역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속가능한 공연 산업을 위한 전환 노력이 필요한 때다.
  • 이미지 | 무신사 어스 카테고리 오너

    이미지 무신사 어스(earth) 카테고리 오너는 기업 지속가능경영 담당자로서 사회·환경적 가치를 만들고 확산하는 일에 전념해왔다. CJ주식회사 CSV경영실, 코오롱FnC를 거쳐 임팩트투자사 HGI에서 기업의 임팩트 전환 전략을 연구했다. 현재 ‘지속가능한 생산 및 소비로의 전환’을 위한 실행 중심 이니셔티브 무신사 어스 서비스를 이끌고 있다.
    miji.lee@musin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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