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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를 비즈니스에 도입하려면

이용자 수 등 껍데기 성장 방식 버리고
기술 우위 정책으로 유료 고객 모아야

박제홍 | 372호 (2023년 07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챗GPT의 거센 영향력에 전 세계 스타트업들은 생성형 AI 도입에 발 빠르게 나서 경쟁력을 갖춰나가고 있다. 생성형 AI 서비스에 하드웨어를 접목하고,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통해 로컬 고객을 확보하고, 오픈AI가 접근하지 못하는 고급 데이터를 활용해 버티컬 서비스를 만드는 식이다. 생성형 AI를 비즈니스에 도입하려는 기업이라면 단순히 흥미를 끄는 ‘반짝 서비스’를 출시하기보다는 이용자들의 니즈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 꾸준히 사용할 만한 지속가능한 서비스를 만드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용자 수나 네트워크 효과 같은 기존의 성장 방식보다는 기술 우위와 고객 경험에 집중해 규모가 작더라도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 진성 고객을 모으는 서비스 전략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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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가트너는 생성형 AI가 인쇄, 전기, 철도에 버금가는 ‘생산성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 전망했다. 가트너가 발표한 보고서1 에 따르면 2025년까지 새로운 약물과 소재의 30% 이상이 생성형 AI를 활용해 발견되고, 합성 데이터 사용으로 머신러닝에 필요한 실제 데이터 규모가 70% 이상 감소할 전망이다. 또한 2025년까지 기업 커뮤니케이션 메시지의 30% 이상이 생성형 AI를 활용해 자동으로 작성되고, 2026년까지 1억 명 이상이 업무 수행에 있어 AI가 포함된 로봇의 도움을 받을 것으로 예측됐다. 이처럼 생성형 AI가 단순히 소프트웨어 등 특정 분야에 그치지 않고 우리 생활에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올 범용 기술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23년 3월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오픈리서치(OpenResearch),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공동 연구2 는 보다 구체적인 지표를 제시했다. 앞으로 미국 노동인구의 80%가 대규모 언어 모델 도입으로 업무의 10% 이상이 영향을 받을 것이며 상위 19%의 노동인구는 50% 이상의 업무가 AI의 영향으로 대체되거나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프로그램 매매, 보험 클레임 평가, 데이터 프로세싱, 신용도 분석, 재무 자문과 같은 분야는 단기간 내 AI로 대체될 영역으로 꼽혔다.

거세지는 영향력에 전 세계 스타트업들은 생성형 AI 도입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2023년 4월 5~6일 양일간 진행된 실리콘밸리 대표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의 데모데이에 참여한 282개 스타트업 중 32%에 달하는 91개 기업은 자신들을 AI 관련 기업으로 소개했으며 54개 기업은 생성형 AI를 전면에 내건 스타트업으로 집계됐다.

챗GPT의 월 활성 이용자가 2억 명을 돌파하는 등 오픈AI는 AI 서비스의 대중화를 앞당겼지만 챗GPT 출시 이후 생성형 AI 모델을 활용해 혁신적인 사업 기회를 창출하는 사례는 제한적인 상황이다. 이번 아티클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전개하거나 기존 사업에 접목하는 다양한 해외 사례를 살펴보고, 앞으로 기업들이 생성형 AI를 활용한 비즈니스를 도입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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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생성형 AI 비즈니스

1. GPT-4를 하드웨어와 연계한 ‘리와인드AI’

2020년 4월 설립된 리와인드AI(Rewind AI)는 데스크톱에서 사용자가 조회한 화면, 영상 및 대화를 모두 저장해 언제든지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광학 문자 인식(OCR)3 을 이용해 저장된 화면의 텍스트 검색도 지원한다. 사용자는 GPT-44 를 연계해 개인 비서 챗봇과 대화하며 원하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신을 위한 완벽한 기억’을 모토로 내건 리와인드AI는 검색했던 페이지, 스쳐 지나갔던 유튜브 페이지나 페이스북 피드를 기억해 내기 위해 검색 히스토리나 쿠키를 찾아본 경험이 있는 사용자라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특히 리와인드AI는 GPT-4가 출시된 이후 이를 사용자 인터페이스(UI)에 접목한 ‘에스크 리와인드(Ask Rewind)’를 출시해 자신의 컴퓨터와 대화하며 과거의 사용 기록을 검색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리와인드AI는 단순히 오픈AI의 언어 모델이나 챗GPT와 같은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애플실리콘’이라 불리는 하드웨어와 연계해 새로운 서비스인 에스크 리와인드를 출시했다. 애플이 디자인한 시스템온칩(SoC), 시스템인패키지(SiP)5 를 통칭해 부르는 애플실리콘은 2020년부터 인텔 기반의 CPU를 대체했으며 현재 애플의 모든 맥북 시리즈에 적용되는 반도체다. 리와인드AI는 현재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된 자료를 최대 3750배 압축 저장해 평범한 하드웨어에도 몇 년 치의 화면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기술로 에스크 리와인드 서비스를 완성했다. 이는 애플이 맥북 시리즈에 적용하고 있는 M1 및 M2 시스템온칩6 에서만 구현 가능한 서비스다.

리와인드AI의 시장 전략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대중 서비스가 아닌 고사양 맥북을 소유한 특정 고객 군이 돈을 내고 사용할 수 있는 프리미엄 서비스에 집중한 것이다. 대중 서비스인 챗GPT에 더해 최신형 맥북 사용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진일보한 서비스를 출시하자 고객들은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서비스 출시 이후 유료 사용자가 급증한 리와인드AI는 최근 4000억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시리즈 A 펀드레이징에 성공해 주목받는 AI 스타트업으로 부상했다. 리와인드AI의 ‘소프트웨어+하드웨어’ 전략이 빛을 발한 것이다. 휘발성이 강하고 일회성 이용이 빈번한 모바일 서비스가 아닌 노트북을 이용하는 데스크톱 고객에게 집중한 역발상 또한 눈에 띈다. 특히 데스크톱 이용자가 모바일 대비 서비스 충성도가 높다는 면에서 리와인드AI의 전략은 고관여 고객을 대상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리와인드AI 유료 이용자의 월 이탈률은 2%로 초기 고객 지표가 매우 양호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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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피드가 경쟁력, 인도의 챗GPT ‘라이트소닉’

현재 생성형 AI가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분야는 텍스트 생성 영역이다. 이미지나 비디오 생성의 경우 아직까지 개인적인 관심사에 기반한 서비스가 대부분이나 텍스트 분야는 이미 오픈AI가 GPT-2 서비스를 제공하던 2020년부터 카피.ai(Copy.ai), 재스퍼AI(Jasper AI)와 같은 스타트업들이 등장해 카피라이팅 및 블로그 생성 등의 유료 서비스를 발전시켜오고 있다.

기존에 B2B 서비스를 통해 자사 언어 모델을 다른 사업자에만 제공해왔던 오픈AI는 작년 말 GPT-3.5와 챗GPT를 동시 출시하며 본격적으로 B2C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기존에 오픈AI와 공생 관계였던 많은 스타트업이 갑자기 오픈AI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혹자는 현존하는 가장 발전된 언어 모델을 보유한 오픈AI가 직접 고객 대상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기존 오픈AI 고객사들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애플의 스마트폰 출시 이후 전 세계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가 사라지지 않았듯 오픈AI의 서비스를 활용해 사업을 전개해온 스타트업들이 갑자기 밀려날 것이란 전망은 논리적 비약이다. 여전히 오픈AI의 GPT-3.5, GPT-4 모델을 활용해 사업 모델을 만들어가는 스타트업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의 챗GPT라고 불리는 라이트소닉(Writesonic)이다. 텍스트 생성 AI 엔진 분야의 후발주자로 시작한 라이트소닉은 사업 초기부터 로컬 서비스에 대한 선호가 강한 인도 시장에 집중했다. 그 결과, 오픈AI나 카피.ai, 재스퍼AI와 같은 기존 사업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현지 이용자들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라이트소닉이 돋보이는 점은 철저한 패스트 팔로워 전략이다. 2022년 11월 30일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하고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자 라이트소닉은 단 열흘 만인 2022년 12월 12일 챗GPT의 검색 결과에 구글 검색 결과를 접목해 보다 나은 답변을 생성하는 ‘챗소닉(ChatSonic)’ 서비스를 출시했다. 최근에는 누구나 손쉽게 자신의 챗봇을 생성, 훈련시킬 수 있는 ‘봇소닉(BotSonic)’ 서비스를 출시해 하루 만에 대기자 3만여 명을 끌어모았다.

라이트소닉은 오픈AI의 언어 모델을 활용하면서도 오픈AI가 아직까지 집중하지 않고 있는 영역을 적극 공략하는 틈새 전략도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검색엔진 최적화(SEO)에 특화된 블로그 작성 기술이다. 구글이 AI가 작성한 콘텐츠에 대한 필터링을 강화하자 라이트소닉은 반대로 검색 필터링을 피하면서 검색 결과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생성하는 엔진을 선보였다. 자칫 오픈AI로 인해 사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라이트소닉은 패스트 팔로워 전략과 틈새시장 전략을 적절히 활용해 유료 고객 수와 제품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난 1년간 매출은 8배 가까이 늘었다. 챗GPT의 인기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업 기회로 활용해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3. 고급 데이터로 만든 버티컬 서비스, AI 변호사 ‘두낫페이’

두낫페이(DoNotPay)는 세계 최초로 로봇 변호사 서비스를 출시해 인지도를 얻은 기업이다. 미국 스탠퍼드대에 재학 중이던 창업자 조슈아 브로우더는 잘못 발부된 주차 위반 티켓에 항의하기 위해 법원을 드나들며 터득한 법률 지식을 활용해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소액 재판(Small Claims)에 특화된 자동 소송 서비스를 출시했다. 생성형 AI 붐을 타고 탄생한 수많은 스타트업 중 한 곳인 것 같지만 두낫페이는 오픈AI의 언어 모델이 탄생하기 전인 2016년 설립된 기업이다. 처음에는 이용료 월 12달러를 내면 그 이상의 돈을 아껴준다는 것을 모토로 내걸고 주차 티켓, 월세 보증금 반환, 헬스장 환불 받기 등 소액 소송을 대신 싸워주는 프로세스 자동화 서비스로 시작했다. 이후 AI의 모델이 고도화되면서 서비스도 계속 업그레이드해 오직 ‘로봇 변호사’라는 외길만 걷고 있다.

GPT-4가 미국 변호사 자격시험(BAR Exam)에서 상위 10% 성적을 기록7 했다고 알려졌지만 아직까지 AI 언어 모델이 지식 노동자의 업무를 대체하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언어 모델이 조사 위주의 법무 보조원 역할은 대체할지언정 논리 싸움을 해야 하는 변호사의 영역에서는 그 역할이 아직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5년 이상의 실무 경험을 쌓은 두낫페이가 재판 참여 영역까지 넘보고 있는 반면 GPT-3.5 등장 이후 설립된 AI 기반 법률 자문 스타트업 하베이(Harvey)가 리서치 분야에 국한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는 점을 미뤄 봐도 알 수 있다.

두낫페이의 가장 큰 강점은 5년 이상 소액 송사를 대리하며 쌓아온 소송 데이터다. 그동안 사건 케이스 20만여 건에 참여했으며 승소율은 64%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처럼 실제 소송을 통해 축적한 데이터는 오픈AI와 같은 거대 언어 모델 서비스사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고급 데이터다. 아무리 생성형 AI의 기반이 되는 언어 모델이 학습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결국 학습 데이터의 한계를 벗어날 순 없다. 그 때문에 금융, 헬스케어, 법률과 같이 전문화된 영역은 여전히 자신만의 차별화된 버티컬 특화 데이터를 활용해 생성형 AI 시대를 앞서갈 기회를 노려볼 수 있다. 자사만의 특화 데이터에 챗GPT와 같은 거대 언어 모델을 활용하면 서비스를 더욱 고도화할 수도 있다. 2022년 12월 두낫페이가 출시한 챗GPT 연계 챗봇 서비스는 공개 7일 만에 유료(연간 비용 120달러) 이용 고객 3만5000명을 끌어모았다. 현재는 챗봇 유료 고객만 10만 명 이상이며 이미 연간 매출은 최소 150억 원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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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메타 검색 서비스로 대응하는 미국의 지식인 서비스 ‘쿼라’

한국에 네이버 지식인 서비스가 있다면 미국에는 쿼라(Quora)가 있다. 2009년 서비스를 시작한 쿼라는 질문과 답변 기반의 온라인 지식 공유 플랫폼을 표방하는 서비스로 현재 월 방문객 수가 7억 명에 달한다. 하지만 챗GPT 등장 이후 가장 위협을 느끼는 서비스로 꼽힌다. 생성형 AI 서비스가 미래의 검색을 대체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검색엔진과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해 온 지식-답변 서비스 또한 챗GPT를 장착한 검색 서비스에 압도당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쿼라 창업자이자 오픈AI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는 애덤 디안젤로는 오픈AI의 발전을 처음부터 예상했다고 한다. 예전부터 AI를 통해 인간의 지식 검색을 진일보시키는 일에 관심이 많던 애덤은 챗GPT 출시 직후 이에 대응하기 위해 쿼라만의 AI 지식-답변 챗봇 서비스 포(Poe)를 출시하며 시장 방어에 나섰다.

인터넷 붐이 일던 2000년대 초 야후, 라이코스와 같은 검색엔진이 인기를 끌자 여러 검색엔진의 검색 결과를 모아 보여주던 ‘메타 검색 엔진’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이와 비슷하게 쿼라의 포는 단일 언어 모델이라는 오픈AI의 약점에 주목해 현재 오픈AI와 경쟁 관계인 앤트로픽(Anthropic)의 기업용 챗봇 서비스까지 통합한 검색 결과를 강점으로 내걸었다. 특히 현재 개인용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앤트로픽을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관심을 끌며 월 19.99달러의 유료 서비스임에도 이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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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라가 생성형 AI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집중한 부분은 바로 사용자 경험이다. 챗GPT가 등장하면서 AI로부터 최적의 결과를 얻기 위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8 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 관점에서 프롬프트가 검색 결과를 좌우한다는 건 챗GPT 서비스에 장벽이 있다는 뜻이다. 이에 쿼라는 포를 통해 오픈AI 서비스의 검색 결과뿐만 아니라 앤트로픽 등 여러 언어 엔진을 장착한 메타 서비스 앱으로 사용자에게 더 나은 답변을 제공하며 생성형 AI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나가고 있다.


생성형 AI 서비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1. 렌사AI가 보여준 바이럴 서비스의 한계

챗GPT 출시 후 일주일 만인 지난해 12월 초 렌사AI(Lensa AI)의 AI 기반 아바타 생성 사진 앱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렌사AI는 사진 10~20장을 업로드하면 디지털 아티스트가 만든 것과 같은 일련의 초상화를 몇 분 만에 만들어주는 AI 기반의 셀카 생성 도구인 ‘매직 아바타’ 서비스를 선보여 출시 일주일 만에 미국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렌사AI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한 달 만에 무려 500억 원에 가까운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올해 1월부터 유사 서비스가 범람하면서 순식간에 고객들이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렌사AI가 활용한 스태빌리티AI(Stability AI)의 이미지 생성 엔진 스테이블 디퓨전이 오픈 소스 모델을 채택하고 있어 비슷한 서비스가 시장에 우후죽순으로 쏟아진 것이다.

현재 시중에 출시된 AI 엔진을 활용해 서비스를 출시하고자 하는 기업은 렌사AI 사례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지는 AI 서비스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와우 효과’로 초기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고 있지만 꾸준하게 돈을 내고 사용할 만한 서비스로 발전하지 못하는 한계 역시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물론 렌사AI와 같이 출시 첫 달에만 500억 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한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볼 수 있지만 서비스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선 아직까지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AI 대중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앞으로 개인의 생산성이 극대화되고 1인 스타트업들의 전성시대가 열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 출시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오히려 의미 있고 지속가능한 서비스를 출시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AI를 활용해 돈을 버는 방법을 설파하는 영상과 블로그가 넘쳐나지만 아직까지 개인의 흥미 영역을 넘어서는 서비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AI를 활용한 사업 기회가 여전히 초기 개인화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생성형 AI를 비즈니스에 활용하고자 하는 기업이라면 단순히 흥미를 끄는 ‘반짝 서비스’를 출시하기보다는 이용자들의 니즈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 유료로 꾸준히 사용할 만한 지속가능한 서비스를 만드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2. 오픈AI와 플랫폼 종속화

오픈AI는 2022년 말 챗GPT 출시 전까지는 자사 대규모 언어 모델을 외부 앱 개발사를 통해서만 제공해 왔다. 구글이 알파고 출시 이후에도 자사 AI 엔진에 대한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던 시점에 오픈AI는 자사 언어 모델을 외부 개발사에 공개하며 생태계 조성 전략을 채택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런 선택적 개방 전략은 오픈AI가 단기간에 자사 모델의 학습 속도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됐다. 대표적인 사례인 카피.ai는 오픈AI가 GPT-2를 개발하던 2020년부터 관련 엔진을 활용해 마케팅 문구를 자동으로 생성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하지만 오픈AI가 챗GPT 서비스를 대중에 공개해 직접 B2C 서비스에 뛰어들면서 AI 모델 운영사와 AI 서비스 개발사 간의 역학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언어 모델로 평가받는 GPT-4를 가진 오픈AI가 챗GPT 같은 B2C 서비스를 직접 운영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업을 통해 생산성 소프트웨어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입하면서 독자적인 언어 모델을 가지지 못한 소규모 스타트업은 이제 오픈AI라는 잠재적 경쟁자를 두고 서비스를 출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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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AI(Jasper AI)는 2021년 2월 서비스 출시 이후 불과 1년 반 만에 연 환산 매출(ARR)이 약 1000억 원으로 성장한 텍스트 생성 AI 분야의 선도 기업이다. 특히 작년 10월에는 인사이트 파트너스,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 IVP 등 실리콘밸리 유명 VC들로부터 무려 2조 원에 가까운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시리즈 A 펀딩을 완료했다. 하지만 대규모 시리즈 A 라운드를 유치한 지 한 달 만에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하면서 재스퍼AI는 고객 이탈 등의 위기를 겪게 된다. 재스퍼AI는 블로그 자동 작성과 같은 분야에 특화된 서비스였는데 무료로 제공되는 챗GPT에서도 비슷한 결과물을 낼 수 있어 한 달에 이용료 80달러를 내고 재스퍼AI를 사용하던 이용자들이 무료인 챗GPT 서비스로 대거 이탈한 것이다.

이처럼 AI로 무장한 서비스가 기존 사업자를 순식간에 밀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은 국내 기업들에도 위협 요소다. 특히 오픈AI의 챗GPT나 구글의 바드를 통해 알 수 있듯 지난 20년간 한국 인터넷 산업의 외부 진입 장벽으로 작용했던 한글은 더 이상 국내 기업들의 무기가 아니다. 네이버의 번역 서비스 파파고는 독일의 신경망 기반 번역 엔진 ‘딥엘(DeepL)’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며 챗GPT를 영어 공부에 활용하는 법이 알려지면서 전화 영어, 카톡 영어와 같은 교육 서비스도 조만간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

앞서 살펴봤던 리와인드AI, 라이트소닉, 두낫페이와 같은 기업들의 성과는 오픈AI 플랫폼이 막강한 시장 환경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이들은 하드웨어를 접목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통해 고객을 유지하고, 오픈AI가 접근하지 못하는 데이터를 활용해 버티컬 서비스를 만드는 방식 등으로 거대 플랫폼과 함께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이 같은 사례를 참고해 거대 플랫폼이 지배하는 시장 환경을 헤쳐 나갈 생존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3.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디지털 시대의 성장 방식

애플의 아이폰 출시와 함께 시작돼 지난 15년간 디지털 서비스를 지배한 성장 방식은 선 이용자 확보, 후 과금 모델이었다. 스타트업이 초기 적자를 무릅쓰고 이용자 확보에 전념한 이유는 일정 수준 이상의 이용자 규모가 곧 서비스 경쟁력이자 다른 기업에 진입 장벽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카카오, 네이버의 라인도 초기에는 수천억 원의 적자를 무릅쓰고 빠른 사용자 확보에 주력했기에 수십조 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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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상향으로 꾸준히 사용자를 모아 서비스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디지털 시대의 성장 전략은 AI 시대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챗GPT가 증명한 것처럼 사람들이 반응하는 서비스의 확산 속도가 이전에는 보기 힘든 성장 곡선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용자 규모가 곧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렌사AI 사례처럼 서비스 흥망성쇠의 사이클이 무척 빨라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AI 시대에는 서비스를 복제하는 것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수월하다. 렌사AI의 인기가 불과 한 달에 그친 것도 유사 서비스가 일주일도 안 돼 전 세계 곳곳에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AI 시대에는 사용자 수나 네트워크 효과는 그다지 위협적인 경쟁력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기술 우위와 고객 경험과 같은 차별점이 AI 서비스의 중심축이 될 것이다. 챗GPT의 기반이 되는 언어 모델인 GPT-3.5는 현존하는 다른 언어 모델 대비 6개월 정도 학습 능력이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기술 우위와 대화형 검색이라는 직관적인 UI가 만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챗GPT만 봐도 단순히 이용자 확보에만 주력해서는 경쟁 우위를 선점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무료로 서비스를 풀어 사용자를 모으기보다는 규모가 작더라도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 진성 고객을 모으는 서비스 전략이 중요해질 것이다. 렌사AI, 카피.ai, 재스퍼AI 사례에서 알 수 있듯 AI 서비스 사용자는 새로운 기능에 빠르게 반응하며 가치 없다고 느끼면 곧바로 다른 서비스로 이동하는 얼리 어댑터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앞으로 AI 서비스를 평가할 때는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나 일일 활성 사용자 수(DAU)처럼 규모를 나타내는 트래픽 지표보다는 리텐션(Retention)이나 인게이지먼트(Engagement)와 같이 사용자의 서비스 충성도를 나타내는 것들이 핵심 지표로 자리 잡을 것이다.

생성형 AI, 여전히 기회는 있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생성형 AI 관련 콘텐츠는 흥미와 공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는 AI로 그린 그림을 어떻게 수익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콘텐츠의 조회 수가 높다. 이처럼 흥미에 주안점을 둔 결과물은 정확성이나 품질이 높지 않다. AI 모델이 만든 예술 작품을 보면 처음에는 참신함을 느껴 한두 번 관심을 기울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금방 잊어버린다. 그럼에도 더 많은 결과물이 더 좋은 것이라는 심리적 경향 때문에 현재까지 생성형 AI 서비스는 질보다 양에 초점을 맞춰왔다. 우리가 입력하는 질문 하나에 챗GPT가 서너 문단에 달하는 장문의 답변을 생성하는 화면을 보며 놀라워하는 것도 답변 수준에 관계없이 일단 그 양에 압도되는 것이다.

하지만 B2B 서비스는 다르다. 생성형 AI가 B2B 서비스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기존 서비스와 같은 시간에 더 나은 결과물을 산출하거나 같은 결과물을 내더라도 그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까지 많은 온라인 여행사가 생성형 AI를 도입해 여행 경로나 목적지를 추천하는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특별히 고객 경험이 개선됐다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생성형 AI가 짧은 문구를 작성하거나 방대한 자료를 요약하는 데 요긴하지만 더 가치 있는 의견이나 주장을 작성하고 판단하는 영역에서는 그다지 나은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성형 AI가 B2B 분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정확성과 속도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이는 곧 관련 분야의 잠재력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생성형 AI 시장은 아직 발전 초기 단계이지만 앞으로 새로운 기회의 창은 꾸준히 열릴 것이다. AI 시대에도 고객의 니즈를 해결할 수 있는 기업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불문율은 변하지 않는다. 세상의 변화 속도가 빠를수록 새로운 기능을 출시하는 속도에 몰두하기보다 자사만이 가진 고객에 대한 통찰에 집중하는 기업이 더 매력적인 기회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 박제홍 | 아틀라스퍼시픽 대표

    박제홍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공인재무분석사(CFA)다. 에이티커니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근무하며 국내외 대기업과 다수의 성장 전략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이후 국내 사모펀드에서 중소중견기업 경영권 인수 및 성장 자본 투자를 이끌었다. 현재는 실리콘밸리 소재 벤처캐피털 ‘아틀라스퍼시픽’에서 전 세계 혁신 기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으며 스타트업 및 테크 전문 뉴스레터 ‘CapitalEDG’를 운영하며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DBR 주최 CES 2024 참관 투어에서 현지 모더레이터로 활동했다.
    jehong@atlas-pa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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