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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성큼 다가온 웨어러블 로봇의 미래

일상이 될 ‘현실판 아이언맨’
꿈과 비전이 빚은 인간 중심 로봇

공경철 | 368호 (2023년 0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웨어러블 로봇의 가장 큰 매력은 인간 신체의 부족한 부분을 물리적으로 보강해 준다는 점이다. 안경과 렌즈의 등장으로 ‘시력 저하 장애인’이라는 말이 사라졌듯 웨어러블 로봇의 등장으로 ‘근력 약화 장애인’이란 말도 없어질지 모른다. 또한 웨어러블 로봇은 사람에게 밀착해 많은 데이터를 얻어내기 때문에 측정, 진단, 나아가 메타버스 세상에 접근하기 위한 입력 장치로서 활용도가 높다. 물론 디지털 세상에 물리적 경험을 더해 줄 웨어러블 로봇의 잠재력이 곧바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개발-상용화-시장 개척’ 등 단계마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하지만 로봇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두고, 사람의 삶을 향상한다는 비전을 명확히 보여준다면 꿈과 희망을 먹고 사는 산업은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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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화를 보고 로봇을 상상하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부터는 로봇공학이 대학 연구실의 단골 연구 주제로 자리매김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자 꽤 멋진 모습을 한 로봇들이 하나둘 현실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에도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은 로봇이라 하면 SF(공상과학) 영화만을 떠올렸다. 영화 속 로봇은 남녀노소가 모두 좋아할 만한 멋진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현실에서 마주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굳이 현실판 로봇이라 하면 애국가 영상에서 불꽃을 화려하게 튀기며 바쁜 손놀림을 보여주는 산업용 로봇 정도였다. 자동화된 공장에서 사람 대신 빠르게 부품을 조립하는 이런 로봇은 말이 로봇이지 자동화된 기계의 일부에 불과했다.

2020년대 중반을 앞둔 요즘, 컴퓨터 그래픽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교하고 화려한 동작을 뽐내는 로봇들의 영상이 SNS를 도배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도 어느새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집 안 로봇청소기는 이제 로봇으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많은 식당에선 로봇이 사람 대신 서빙을 하고 있다. 공장에선 사람들과 뒤섞여서 함께 일하는 협동 로봇이 즐비하다. 물론 우리 주변에서 보는 로봇은 SNS에서 보는 것과는 아직은 어딘지 좀 달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로봇은 우리의 예상보다 빠르게 일상의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웨어러블 로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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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 슈트? 웨어러블 로봇이란

일반적으로 웨어러블 로봇이라고 하면 영화 ‘아이언맨’ 속 슈트를 떠올린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영화 속 슈트도 웨어러블 로봇이 맞다. 입고 벗을 수 있는 로봇을 통칭하는 분야가 웨어러블 로봇이기 때문이다.

현실 속 웨어러블 로봇은 사람의 신체를 감싸 특정 운동 또는 동작 수행이 어려운 사람의 근력을 보조하기 위해 힘을 생성하는 로봇 장치다. 따라서 웨어러블 로봇을 입거나 착용하면 불가능했던 많은 일이 가능해진다. 예컨대 하반신마비 장애인이 웨어러블 로봇을 입으면 걸을 수 있다. 본래 근력으로는 들 수 없는 무거운 물건을 번쩍 들어 올리는 일도 가능하다. 구동 방식과 생김새는 다르지만 효과와 결과만 놓고 보면 현실 속 웨어러블 로봇은 영화 못지않은 많은 일을 해낸다.

이런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이 웨어러블 로봇의 등장 시기를 비교적 최근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웨어러블 로봇은 인간 형태의 로봇인 휴머노이드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휴머노이드는 1980년대 중반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반면 최초의 웨어러블 로봇은 그보다 앞선 1960년대 중반에 나왔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있도록 만든 ‘하디맨’이 기록으로 존재하는 최초의 웨어러블 로봇이다. 하지만 하디맨은 세상의 빛을 일찍 봤음에도 상용화에 실패했다. 손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로봇이었지만 무게가 700㎏에 달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용이 불편해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이후에도 웨어러블 로봇 관련 연구는 꾸준히 진행됐지만 수십 년 동안 연구개발 성과가 실제 제품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일종의 암흑기였던 셈이다.

오늘날 같은 웨어러블 로봇이 본격적으로 연구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일본의 쓰쿠바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 Berkeley)를 중심으로 하지 보행 보조 로봇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게 시초다. 그중 쓰쿠바대의 산카이 요시유키 교수팀이 대학 연구실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사이버다인(Cyberdyne)을 설립했다. 캘리포니아주립대의 호마윤 카제루니 교수팀 또한 대학 연구실의 연구 결과를 바탕 삼아 오늘날 엑소바이오닉스(Ekso Bionics)의 전신인 버클리바이오닉스(Berkeley Bionics)를 창업했다. 이처럼 2000년대 초반 대학교수들에 의해 시작된 사이버다인과 엑소바이오닉스는 오늘날 이스라엘의 리웍로보틱스(ReWalk Robotics)와 함께 웨어러블 로봇 사업 분야에서 3대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웨어러블 로봇 연구는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했다. 동시에 웨어러블 로봇의 상용화가 가속화됐다. 웨어러블 로봇을 구성하는 전기모터, 감속기, 모터 드라이버, 전자회로, 제어 알고리즘 등의 부품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덕분이다. 수십 년 전보다 웨어러블 로봇의 부피는 줄어들었고, 사용하기 불편하지 않은 수준에 이르렀다. 기술 발전과 더불어 이전과 달리 웨어러블 로봇을 ‘제품’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 것도 큰 변화다. 단순히 기술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연구가 아닌 삶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더 나아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목적으로 웨어러블 로봇에 접근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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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을 개선하는 웨어러블 로봇의 가치

이렇게 사람을 위해 등장한 대표적인 제품이 하지 전체를 보조하는 로봇과 단일 관절을 보조하는 형태의 웨어러블 로봇이다. 이들 로봇을 착용하면 걷지 못하거나 일부 관절이 좋지 못한 사람의 움직임이 확연히 달라진다. 나아가 적용 분야별로 제품군이 분리되면서 각각의 세분화된 시장도 형성되고 있다. 예컨대 근로자 작업 지원용 웨어러블 로봇은 주로 척추 보호를 위해, 무릎이나 발목 관절 보조용 웨어러블 로봇은 주로 일상생활 동작 보조를 위해 쓰인다.

여기서 엿볼 수 있는 웨어러블 로봇의 큰 매력은 바로 인간 신체의 부족한 부분을 물리적으로 보강해 준다는 점이다. 치아를 못 쓰게 되면 임플란트 치아를 사용하면 되고, 관절을 못 쓰게 되면 인공관절을 사용하면 된다. 이미 많은 인공장기가 상용화됐고, 최근에는 전기 신호를 이용한 인공 안구까지 상용화됐다. 그런데 약해졌거나 못 쓰게 된 근육을 위한 대안은 아직까지 웨어러블 로봇이 거의 유일하다. 안경과 렌즈의 등장으로 ‘시력 저하 장애인’이라는 말이 사라졌듯이 웨어러블 로봇의 등장으로 ‘근력 약화 장애인’이란 말도 없어질 수 있다.

웨어러블 로봇이 가진 또 다른 매력은 사람에게 밀착해 많은 데이터를 얻어낸다는 점이다. 지금도 카메라를 이용하면 사람의 동작을 측정할 수 있고, 웨어러블 센서를 이용하면 맥박과 호흡을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웨어러블 로봇은 이 모든 데이터를 한 번에, 그것도 매우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측정 장비, 진단 장비, 나아가 메타버스 세상에 접근하기 위한 입력 장치로서 활용도가 높다는 의미다.

결국 웨어러블 로봇은 디지털 세상과 현실 세상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아주 중요한 매개체가 될 것이다. 아직까지 디지털 세상의 정보와 지식들을 경험할 수 있는 수단은 디스플레이와 사운드가 대부분인데 웨어러블 로봇은 여기에 물리적인 경험을 더해줄 것이다.

기업들도 이런 시장의 가치에 눈을 뜨기 시작하고 시장이 커지면서 웨어러블 로봇 춘추전국 시대가 열렸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을 비롯해 여러 기업이 웨어러블 로봇 연구개발에 뛰어들었고 LG전자는 필자가 설립한 엔젤로보틱스에 투자를 했다. 앞으로 경쟁이 더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엔젤로보틱스의 사례를 토대로 웨어러블 로봇의 연구개발, 상용화, 시장 개척 등 각 단계에서의 경험과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정리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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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인사이트

1. 연구개발 단계: 웨어러블 로봇의 주인은 ‘사람’

필자가 이끄는 웨어러블 로봇 연구팀의 기술력은 2016년 스위스에서 개최된 제1회 사이보그올림픽(사이배슬론, Cybathlon)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국제 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참고로 사이배슬론은 신체적 장애가 있는 장애인에게 첨단 기술을 적용하고 일상생활과 관련된 과제를 시험해 경쟁하는 국제대회다. 2016년도 스위스에서 개최된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4년마다 개최되며 뇌-기계 인터페이스, 의족, 외골격 로봇, 전기자극 자전거, 의수, 전동 휠체어 등 총 6개 종목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엔젤로보틱스는 ‘워크온슈트’라는 웨어러블 로봇으로 외골격 로봇 종목에 참가해 2016 대회에서는 동메달, 2020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수상했다.

이처럼 엔젤로보틱스의 워크온슈트가 세계 무대에서 인정을 받고 우수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다른 회사와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대한 접근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기존의 대부분의 연구팀은 웨어러블 로봇을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는 방법으로 접근했다. 일단 개발해 놓고 사람을 로봇에 끼워 맞추려 했다. 쉽게 말해, 걷는 로봇을 만든 후 사람을 그 안에 넣겠다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연구팀은 발상을 바꿔 웨어러블 로봇의 주인은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고 봤다. 이에 연구의 초점을 사람에 두고, 장애인이 평소에 사용하던 보조기에 로봇을 덧대는 방식으로 제품을 개발했다. 이렇게 개발된 제품이 2016년 첫선을 보인 워크온슈트1이다.

사람 중심의 연구 방향이 맞다는 확신을 얻은 연구팀은 단순히 하드웨어만 사람에 맞추는 데서 나아가 착용자의 걸음걸이까지도 로봇이 학습하는 소프트웨어를 적용했다. 이렇게 나온 제품이 워크온슈트4다. 걸음걸이는 개인 식별 정보로 분류될 만큼 개인의 신체적 특징과 성향을 반영한다. 이에 궁극적으로 사람을 위한 제품을 만들려면 로봇이 사람의 걸음걸이까지 맞춰야 한다는 공감대가 연구팀 내에 형성됐고, 이 같은 방향은 정확히 명중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되면서 수십 년간 휠체어 생활을 해온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이 시속 3.2㎞의 보행 속도로 걷게 된 것이다. 이는 성인 남성 비장애인의 평균 보행 속도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그 결과 워크온슈트4는 사이배슬론에서 앉고 서기, 협소한 통로 통과하기, 계단 오르내리기 등 6가지 장애물 미션을 모두 완벽하게 수행하면서 50여 m의 거리를 3분대에 통과할 수 있었다. 2등 스위스팀과는 1분 가까이 격차를 벌린 기록이었다.

이런 연구개발을 거치면서 엔젤로보틱스는 (1) 인간 행동 의도 파악 기술, (2) 정밀한 힘 제어가 가능한 구동기 모듈 및 드라이버 기술, (3) 실시간 보조력 생성 및 제어 기술을 확보하게 됐다. 웨어러블 로봇의 주인이 사람이라는 가치에 집중해 기술력을 고도화한 결과 3대 웨어러블 로봇 핵심 기술을 갖추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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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용화 단계: 의류 시장에서 얻은 단서, 모듈화

하지만 이렇게 기술력을 인정받았다고 해서 최첨단 기술이 반드시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엔젤로보틱스는 시장과 고객의 수요를 철저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웨어러블 로봇 시장의 특징을 의류 시장에서 찾아냈다. 모든 사람이 필요에 의해 옷을 사지만 저마다 신체 구조가 다르고 좋아하는 디자인도 제각각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매일매일 입고 싶은 옷이 바뀌기 마련이다. 즉, 모든 사람이 머릿속에 그리는 웨어러블 로봇의 이미지가 다르고, 모든 사람의 몸에 맞는 웨어러블 로봇이 다르다.

문제는 이렇게 세분화된 수요에 어떻게 대응하냐는 것이다. 보통 로봇 1대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 적어도 수억 원이 필요하다.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웨어러블 로봇을 제조하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또 수십억 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회사가 택한 해결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들을 모듈화하고 플랫폼화하는 방법이었다. 마치 각기 다른 레고 블록을 준비해 놓고 필요에 따라 조합해 때로는 비행기도 만들고 때로는 성도 쌓는 것과 유사하다.

플랫폼 구축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데이터와 네트워크 기술이다. 엔젤로보틱스는 최근 웨어러블 로봇이 사용자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네트워크에 올린 뒤 동작을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또한 로봇으로 측정한 데이터로 착용자의 동작을 바로 분석해 의사에게 진단 데이터를 전달하기도 한다. 물론 모터와 구동기 등을 제어하는 하드웨어 기술의 완성도가 뒷받침돼야 가능한 기술이다. 사람의 보행 동작을 학습하고 이를 제어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이렇게 필자와 엔젤로보틱스는 지난 수년간 연구개발 끝에 웨어러블 로봇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3대 기본 플랫폼 기술을 확보했다. 첫 번째는 슈트 플랫폼이다. 웨어러블 로봇의 일부가 인체에 밀착돼 힘을 상호 전달하고, 인체로부터 각종 정보를 획득해 로봇에 전달하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다. 두 번째는 엑소 플랫폼이다. 해당 플랫폼은 구동기와 제어 회로, 배터리 등 하드웨어 전반을 포함해 물리적인 보조력을 생성하는 기술을 핵심으로 한다. 일반적인 로봇공학 기술이 여기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서비스 플랫폼이다. 이 기술은 로봇을 제어하는 알고리즘과 센서 신호를 처리하는 알고리즘, 안전 대책, 인터넷 클라우드 솔루션, 로봇과 슈트 및 신체 건강 정보로부터 발생하는 데이터 관리 등 소프트웨어 전반을 포함하며 서비스 개발을 위한 툴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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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장 개척 단계:
B2G에서 B2B, B2C로의 로드맵

이처럼 회사가 확보한 3대 핵심 기술과 3대 플랫폼 기술은 웨어러블 로봇 제품의 영역을 확장하고 시장 개척에 나서는 기반이 됐다. 웨어러블 로봇 시장에는 크게 4개의 메가 트렌드, ‘4E’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Enablement이다. 이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기적의 기술, 신체적 어려움이나 장애(Disability)를 극복하기 위한 재활 치료 및 보조 관점의 웨어러블 로봇이다. 헬스케어, 고령화, 보행 재활, 장애 극복 등의 키워드가 모두 이 트렌드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Enhancement이다. 일을 운동처럼 즐기면서도 몸은 안전하게 보호하고 근력은 증강시키는 인간 증강 웨어러블 슈트이다. ESG, 중대재해법 등의 키워드가 여기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Education이다. 화면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물리적 교감을 통한 실감형 레슨의 핵심적 기술로서 웨어러블 로봇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레저, 골프 레슨, 피트니스 등의 키워드가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이 Entertainment다. 가상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물리적으로 구현하고 가상과 실제의 간극을 더욱 좁히는 웨어러블 로봇이다. AR/VR, 메타버스 등의 키워드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처럼 크게 보면 웨어러블 로봇 시장은 Enablement에서 Enhancement를 거쳐 Education을 지난 뒤 Entertainment로 확대될 것이다. 이 네 가지의 메가 트렌드를 x축으로 놓는다면 y축은 고객을 가리킨다. y축을 떼 놓고 보면 시장은 정부 주도의 B2G에서 시작해서 전문 서비스를 목적으로 하는 B2B를 거쳐 개인 고객 대상의 B2C로 확대될 것이다. 엔젤로보틱스는 이런 시장 개척 로드맵에 따른 제품군을 준비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하지 불완전마비 환자를 위한 보행 훈련 로봇 브랜드인 엔젤메디(angel MEDI)의 경우 Enablement 시장에서 B2G로 출발해 점점 B2B로 고객 저변을 넓혀가는 중이다. 엔젤메디 브랜드의 첫 번째 완성 제품인 엔젤렉스 메디컬(Angel Legs M20)은 보행 재활 의료기기로서 병원과 요양원 같은 전문 기관과 전문 서비스 시장을 타깃으로 한다. 제품화 초기에는 조달청의 혁신제품지원사업이나 로봇산업진흥원의 실증 사업 등 정부 주도 사업의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3등급 의료기기 인증 및 의료보험 수가 적용이 가능해지면서 B2B 비즈니스를 본격화하고 있다. 실제로 신촌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의 상급 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일반병원, 요양병원 등이 이 제품을 환자의 재활 훈련에 활용 중이다.

B2B를 넘어 B2C 시장도 가까운 미래에 열릴 것으로 보이면서 이 시장에 대한 준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머지않아 웨어러블 로봇은 가정 또는 전문센터의 건강관리를 넘어 일상생활에서의 건강관리용으로 발전할 것이다. 가령, 2018년 개발에 성공한 엔젤슈트(angel SUIT) 브랜드는 일상생활용 로봇 보조기로 병원에서 재활을 마친 환자가 일상의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제품군이다. 엔젤슈트 기술을 바탕으로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엔젤핏(angel FIT) 홈과 전문센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엔젤핏 프로 출시를 위한 연구개발도 한창이다. 현재는 뇌졸중으로 인한 편마비 장애인의 발목을 보조하기 위한 소프트한 웨어러블 로봇도 상용화 준비 중이며 향후 부위별로도 라인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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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화 과정에서의 시행착오와 시사점

지금까지 필자와 필자가 이끄는 KAIST 웨어러블 로봇연구팀, 그리고 엔젤로보틱스가 걸어온 과정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특별히 실패를 많이 했다고 이야기할 정도는 아니다. 원래 연구개발은 어제까지 맞았던 것을 오늘 아침에 모두 부정하고 비판하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무지로 인해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너무 많이 거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우선 제조업의 무게감을 과소평가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연구실 단계에서 성공한 작은 기술 하나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품처럼 생긴 시제품 하나를 만들고 인증을 받으면 제품화가 자동으로 이뤄지고 비즈니스도 덩달아 자동으로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시제품과 인증을 모두 마무리하고, 소위 기술 성숙도(Technology Readiness Level, TRL)의 최고 단계를 달성하고 나니 그때부터 새로운 숙제가 주어졌다. 제품을 똑같이 5개를 만드는 것은 노력으로 가능했는데 10대, 50대를 똑같이 만들려고 하니 생산 라인도 필요하고, 절차도 필요했다. 그만큼의 공간과 인력도 필요했다. 이 시점부터 들어가는 비용의 규모는 연구개발비의 10배는 족히 넘었다. 더 큰 문제는 품질이었다. 품질 문제를 해결하는 이론과 방법은 대부분 대량 생산을 가정한 것이다. 50대의 제품을 대량 생산이라 부르기는 어려웠다. 결국 애매한 수량의 초정밀 제품을 생산하면서 회사 자체적인 생산과 품질 기술을 쌓아야 했다.

인사관리의 어려움도 간과했다. 연구개발에 관심이 큰 공학자다 보니 아무래도 회사의 인사관리나 성과 평가, 회사의 운영 시스템은 기존에 널리 알려진 방법과 소프트웨어 툴에 의존하려고 했다. 유명한 툴은 대부분 사용해 본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큰 착각이었다. 결국 회사(會社)라는 단어의 앞뒤를 바꾸면 사회(社會)가 되듯이 하나의 회사라는 사회를 구성하는 규칙이나 문화는 리더의 말과 행동, 사고방식에 정교하게 맞춰져야 했다. 결국 외부에서 도입하려던 모든 규칙, 평가 방법, 소통 툴은 모두 실패하고, 경영자 본인의 기획에 따라 업무 진행 및 성과 평가 툴을 개발하자 운영이 안정화됐다. 시스템을 직접 만드는 것이 외부에서 찾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효과적인 시스템을 찾아 방황했던 수년간의 시간과 비용을 아끼고, 인력 유출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 분야에서 기술과 시장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로봇 분야의 대표적인 기업들을 보면 학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분들이 창업을 하고 실질적인 경영을 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마크 라이버트(Marc Raibert)는 MIT 교수와 카네기멜론대 교수를 거쳐 현재의 기업을 창업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인 레인보우로보틱스도 KAIST의 오준호 교수가 창업한 회사다. 앞서 언급한 웨어러블 로봇 분야의 선두 주자, 미국 엑소바이오닉스와 일본 사이버다인도 각각 UC 버클리, 쓰쿠바대의 교수가 창업한 기업이다. 이들 기업 대부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교수 출신 창업자가 직접 회사를 이끌고, 지금도 성공적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시사점은 분명하다. 로봇 산업은 아무래도 경험과 노하우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습득해야 할 이론이 있고, 학습해야 할 툴이 있다. 단순히 제품화만 잘한다고 시장에서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핵심 기술과 그 기술을 고도화할 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다. 로봇 시장이 폭발할 조짐은 여러 가지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꿈과 희망이 주는 마케팅 효과를 무시할 수 없는 분야인 이유다. 이렇게 로봇만이 가진 독특한 사회적 가치는 어린아이들이 로봇 만화영화를 싫어하게 되는 그날까지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로봇 사업을 꿈꾸는 경영자나 관리자라면 생산, 운영, 인사관리 등 비즈니스적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로봇을 만든다는 비전을 보여주고, 미션을 제시하며, 이를 실현해 줄 기술 개발에 몰입해야 한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막연하게 로봇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갖고 있는 한 산업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인재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단순히 매출과 이윤을 높이고자 하는 상업적 동기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 공경철 |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공경철 교수는 서강대 기계공학과, 동 대학원 기계공학 석사를 거쳐 2009년 UC버클리(UC Berkeley)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2011년 서강대 기계공학과 교수로 부임해 2019년부터는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어 이론을 전공하고 로봇공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사람을 보조하기 위한 각종 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웨어러블 로봇을 상용화하기 위해 엔젤로보틱스를 창업하고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kcko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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