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경영의 근간이었던 평균주의와 테일러주의는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조직 역동의 문제를 선형적 방식으로 단순화했다는 한계를 보였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혁신의 자유재량이 박탈당하기 일쑤였고 효율적 관리를 위한 위계 구조는 혁신 여정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직원들의 의욕을 꺾어 놓고 말았다.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심화될수록 몰입, 창의, 공유에 기반한 현장의 집단지성이 더욱 필수적인데 이것들은 하나 같이 구성원들이 혁신의 주체가 돼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자기다움과 일이 연결되고 이를 통해 의미 있는 영향력을 끼치며 존재감을 만끽하게 될 때 생긴다. 이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구성원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다. 이제 미래 조직의 번영은 구성원들의 ‘자기다움 존중’에서 그 동력을 찾아야 한다.
미국 클리블랜드 건강박물관에는 ‘노르마’라는 조각상이 있다. 산부인과 의사 로버트 L. 디킨슨이 조각가 아브람 벨스키와 합작해 만든 작품이다. 디킨슨이 1만5000명의 젊은 성인 여성들로부터 수집한 신체 치수 자료를 바탕으로 벨스키가 빚어낸 조각상이다. 디킨슨은 대규모 자료에서 산출해낸 평균값이 여성의 전형적 체격, 즉 여성의 정상 체격을 판단하는 데 유용한 지침이 돼 준다고 믿었다. 이것이 공개되자 체질인류학계는 노르마의 체구를 인체의 완벽한 전형이라고 칭했고 예술계는 노르마의 아름다움을 뛰어난 귀감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교육계는 노르마를 젊은 성인 여성의 이상적 외형의 표상으로 삼으며 그 이상형에서 벗어난 학생에게 운동을 요구했다. 결국에는 노르마를 ‘이상적 여성상’으로 산정하고 노르마와 신체 지수가 근접한 여성을 선발하는 대회를 개최하기까지 이른다. 가히 열풍을 넘어 광풍이라 할 만했다.
이후 과학자 아돌프 케틀레가 이를 ‘평균적 인간’이란 개념으로 정리11케틀레는 우리 각자는 인간의 보편적 원형의 결함 있는 모사작이라고 주장했다. 특정 시대에 어떤 개인이 평균적 인간의 모든 특징을 지니고 있다면 그 사람은 위대함이나 훌륭함이나 아름다움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Adolphe Quetelet(1869). A Treatise on Man and the Development of his Faculties. Edinburgh: William and Robert Chambers, chap. 1. 참고..
닫기함으로써 이른바 ‘평균의 시대(Age of Average)’가 열렸다. 여기서 평균적 인간 개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각 개인의 독특함(unique)이 ‘오류’에 해당하고 평균적 인간을 ‘바람직한 정상’으로 간주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평균이 정상이 되고, 개개인이 오류가 되며, 과학이 그 정형화에 정당성을 각인시켜주는 ‘평균주의 사회’가 된 것이다. 이는 사물을 단순화하고 복잡한 인간을 정형화하고 싶은 인간 본연의 충동이 과학적 정당성과 만난 합작품이다.
수학자였던 프란시스 골턴은 평균이 인간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과학적 토대를 이루기는 하나 평균적 인간이 이상향이라는 전제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그는 평균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정규분포상의 좌우 영역을 단순한 평균 이탈자로 동일시하지 않고 ‘우월층(Eminent)’과 ‘저능층(Imbecile)’으로 구분했다. 인간은 열등한 이들, 평범한 이들, 우월한 이들이란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22골턴은 인간을 최하위 계층인 저능층(Imbecile)에서부터 중간 계층인 평범층(Mediocre)을 거쳐 최상층인 우월층(Eminent)까지 14가지 계층으로 분류했다. 이 분류는 평균의 의미에 획기적 변화를 일으켜 평균을 정상의 개념에서 평범함의 개념으로 탈바꿈시켰다. 인간의 가치가 평균치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에 따라 더 잘 측정될 수 있다는 인식을 인류에게 장착시킨 사건이다. 골턴은 이 계층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새로운 통계법을 착안했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에게 익숙한 상관관계 분석이다. Michael Bulmer(2004). Francis Galton. Baltimore: JHU Press, 175. 참고..
닫기 즉, 평균 이탈을 모두 오류로 봤던 기존 전제에서 벗어나 평균 미만 이탈자와 평균 초과 이탈자를 구분하고 평균 미만 이탈자를 저능 그룹, 평균 초과 이탈자를 우수 그룹이라 간주한 것이다. 당연히 이상향은 평균 언저리의 평범한 이들이 아니라 평균 초과 이탈자들이 된다. 이러한 전제는 평균이 신체 및 정신 건강, 성격, 경제적 지위 등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넘어 이제 능력과 성과를 판단하는 데도 유용하다는 믿음으로까지 확장됐다. 결국 케틀레와 골턴에 의해 정립된 평균과 계층이라는 두 개념은 현재 전 세계의 교육 시스템, 대다수의 채용 관행, 상당수 업무 평가 시스템 이면의 근간 원칙으로 작동하게 됐다. 이로 인해 수 세대에 걸쳐 부모들은 자녀가 평균 기준에 따라 우수 그룹으로 성장하지 못할까 봐 초조해 하게 됐고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건강이나 사회생활, 부의 축적, 경력 등이 평균에서 이탈할 때면(특히 아래쪽일 경우) 자연스레 불안감을 느끼게 됐다.33필자는 이를 ‘평균 이탈 염려증’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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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열soulpark77@hyundai.com
현대자동차그룹 경영연구원 전임교수
박정열 전임교수는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서울대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LG경영개발원을 거쳐 삼정KPMG에서 Learning & Development Center Director를 지냈다. 자기다움에 기반한 마인드 빌드업 프로그램, ‘미래인재마인드’ 과정을 개발해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산업교육학회 이사로도 활동 중이며 대표 저서로는 『휴탈리티 미래인재의 조건(저녁달, 2023)』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