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와 같은 가상 인플루언서가 인기를 끈 배경은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콘텐츠 시장이 급성장한 가운데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Z세대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가상 인플루언서의 외형과 인격, 가치관은 Z세대의 현재 모습과 그들이 추구하는 미래를 모두 반영하고 있다. 가상 인플루언서는 사람 인플루언서의 한계를 보완하며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 무대를 넓히면서 IP 가치를 높일 것이다. 한편 AI 챗봇 이루다를 둘러싼 성희롱 문제처럼 가상 인플루언서 시장이 확장되면서 생기는 범죄 등의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필자주 본 원고는 인터비즈가 취재해 연재한 시리즈 ‘가상 인간을 만드는 사람들’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2021년 7월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의 합작 법인 ‘신한라이프’의 출범을 알리는 광고에 한 신인 모델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주근깨 가득한 개성 있는 얼굴의 모델은 역동적인 안무를 소화하며 대중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이 모델의 정체가 밝혀지자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그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이하 싸이더스)가 만든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였기 때문이다.
‘이름은 오로지, 나이는 영원한 22세, MBTI는 ENFP.’ 싸이더스는 로지를 이렇게 소개한다. 로지는 시각 특수 효과(VFX) 분야 업계 최고로 꼽히는 로커스에서 마케팅을 총괄하던 백승엽 이사와 게임 시네마틱 영상을 연출하던 이유리나 감독이 자회사 싸이더스로 옮기며 야심 차게 기획한 가상 인플루언서다. 신한라이프 광고 이후 로지는 Z세대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반얀트리호텔, 쉐보레 전기차, 질바이질스튜어트 등 8건 이상의 광고를 찍었고 100건 이상의 협찬을 받으며 2021년에만 1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알려졌다.
로지 같은 가상 인플루언서의 인기는 한국에서만 갑자기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캐릭터 산업이 발달한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해외에서도 가상 인플루언서들이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는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인 보컬로이드에 2D 캐릭터를 입힌 하츠네 미쿠가 2007년부터 화제가 됐다. 당시 하츠네 미쿠의 제작사인 크립톤 퓨처미디어는 하츠네 미쿠의 이름과 외형, 목소리만 공개했을 뿐 별다른 스토리를 내놓지 않았다. 그런데도 팬들은 일러스트와 만화 등 2차 창작물을 만들며 스토리를 입혔고, 이를 토대로 탄탄한 팬덤이 형성됐다. 미국에서는 2016년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브러드(Brud)가 내놓은 릴 미켈라(Lil Miquela)가 막대한 성공을 거뒀다. 릴 미켈라는 인스타그램 광고용 게시물 하나에 약 8500달러(약 1000만 원)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20년 연 수입만 1170만 달러(약 130억 원)로 추정된다.
한국에서는 LG전자가 CES 2021에서 가상 인플루언서 김래아를 발표한 뒤 업계의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로지가 광고 업계에서 활약하면서 다른 기업들도 앞다퉈 가상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마케팅에 뛰어들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가상 쇼호스트 루시, 스마일게이트는 자사 VR 게임 ‘포커스온유’의 주인공인 한유아, 디지털 휴먼 제작사 온마인드는 수아, AI 문화기술 스타트업 클레온은 우주와 은하 등을 선보였다.
가상 인플루언서가 큰 인기를 끌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 콘텐츠 시장이 급성장한 가운데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Z세대가 브랜드 마케팅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현재 가상 인플루언서 시장은 ‘Z세대에 의한, Z세대를 위한, Z세대의’ 스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들 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가상 인플루언서인 릴 미켈라의 인스타그램은 팔로워 대부분이 24세 미만의 Z세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기업이 앞으로 시장의 주역이 될 Z세대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가상 인플루언서를 활용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