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2006년 아마존이 론칭한 풀필먼트는 지난 15년간 B2C 이커머스 물류의 최적화 관점에서 이해돼왔다. 하지만 오늘날 풀필먼트 시장 내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물류가 아닌 영역에서 신규 비즈니스를 창출해 풀필먼트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B2B 도매몰 사업으로 유통에 진출하거나(위킵), 글로벌 풀필먼트로 확장하거나(큐익스프레스 등), 셀러를 인수해 물류, 공급망 관리, 마케팅 등을 통합 제공하는(스라시오) 등 풀필먼트는 물류의 영역을 넘어서 진화하고 있다.
2006년 아마존이 남긴 풀필먼트의 망령이 2021년의 한국을 돌고 있다. 1999년 마켓플레이스를 론칭한 아마존이 3자 판매자들을 대상으로 물류 인프라와 시스템을 제공한 FBA(Fulfillment By Amazon) 이야기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은 저서 『발명과 방황』(2021)에서 ‘풀필먼트’를 마켓플레이스를 성공으로 이끈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풀필먼트는 3자 판매자 유입으로 마켓플레이스의 구색은 늘어났지만 통제되지 않던 물류 서비스 품질을 아마존의 위상에 맞는 수준으로 맞췄다. 아마존은 풀필먼트를 통해 자체 물량을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었던 물류를 ‘매출’에 기여하는 수단으로 전환했다.
2021년 한국에서도 풀필먼트가 활황이다. 네이버가 3월 초 ‘데이터 풀필먼트 시스템’을 구축해 네이버에 입점한 3자 판매자가 원하는 다양한 형태의 물류 서비스를 하나의 시스템에서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는 기존에 그들이 운영하던 오프라인 매장을 온라인 고객을 위한 도심 풀필먼트센터로 탈바꿈한다고 밝혔다. 이름에서부터 ‘풀필먼트’를 강조해온 쿠팡의 물류센터 운영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는 2020년 로켓제휴를 론칭한 이후 쿠팡 자체 상품뿐만 아니라 3자 판매자의 물량도 처리하고 있다.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국내 3대 택배업체도 모두 풀필먼트 서비스를 시작했다.
풀필먼트(Fulfillment)는 사전적으로 ‘처리’ 또는 ‘이행’을 뜻한다. 무엇인가 충족시켜주는 느낌이지만 이 단어만 들어서는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감이 오진 않는다. 실제 한국에서 업체들이 사용하고 있는 ‘풀필먼트’라는 단어의 용례는 제각각 다르다. 예컨대, 쿠팡은 자사가 매입한 로켓배송 물량을 소비자까지 전달하기 위한 물류센터 운영 처리 프로세스에 ‘풀필먼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물류센터가 하나도 없는 네이버는 IT 시스템을 중심축으로, 자본을 투자한 제휴 물류 업체들의 서비스를 연결해 풀필먼트를 하겠다고 한다. 신세계, 롯데 등 오프라인 유통 사업자들은 기존에 보유한 오프라인 거점을 온라인 주문 처리를 위한 센터로 조성하는 것, 즉 ‘온라인 주문 처리 센터화’를 풀필먼트라고 설명한다.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택배업체들은 라스트마일 물류 네트워크와 결합해 풀필먼트를 고도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업체들이 이야기하는 풀필먼트에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풀필먼트는 대부분의 경우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이커머스 물류’에서 쓰인다. 이커머스 물류이기 때문에 기존 매장이나 공장을 목적지로 설정한 B2B 기업 물류에 비해서 까다롭다. 기업 물류에서 물류의 역할은 팔레트(대형 화물 운반대)에 박스를 가득 올려서 11톤 간선 차량에 태운 뒤, 100여 개의 전국 대형마트 매장까지 출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물류는 한 고객이 주문한 다양한 상품을 합포장해서 작은 박스에 포장하고 택배 망을 연계해 수만 고객의 집으로 출고하는 프로세스로 바뀐다. 다뤄야 하는 재고 구색(Stock Keeping Units)도 기업 물류 대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에 따라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해졌다. 기존 기업 물류 용도로 사용하던 창고 관리 시스템(Warehouse Management System)을 이커머스 물류에 적합하도록 업그레이드하거나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매일매일 여러 개의 온라인 판매 채널에서 들어오는 산발적인 고객 주문을 통합 수집하는 주문 관리 시스템(Order Management System)과 창고 관리 시스템의 연동도 필요하다. 요약하자면, 풀필먼트는 자사 상품(1PL-직접 물류, 2PL-자회사 물류)이든, 타사 상품(3PL-3자 물류)이든 간에 물류창고 안에 미리 재고를 입고하고 고객 주문에 따라서 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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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보관된 상품을 피킹, 포장해 배송 차량 출고까지의 프로세스 최적화를 목표로 한다는 측면에서 B2B 기업 물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달라진 것은 매일매일 수많은 고객의 주문을 처리해야 하는 이커머스 특성이 결합되면서 난이도가 올라갔고, 이에 따라 새로운 물류 시스템이 필요해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풀필먼트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올리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IT 시스템의 발전으로 진입장벽이 낮아짐에 따라 풀필먼트 시장의 경쟁이 과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풀필먼트 업체들은 점차 물류센터를 벗어난 영역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찾고 있다. ‘협의(狹義)에서 광의(廣義)로’ 풀필먼트가 포괄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