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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대한제국부터 힙합세대까지 '부채표 활명수'의 전략적 유연성

2017-11-28 | 장재웅

안녕하세요, 장재웅입니다. 요즘 고구마, 사이다 이런 단어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상황이나 행동이 답답하면 고구마, 그 상황을 해결해 주는 속 시원한 말이나 행동을 사이다라고 표현하죠. 예전에는 이럴 때 ‘활명수 마신 것 같다’고 하기도 했는데요, 부채표 활명수는 무려 120년이나 이어온 장수 브랜드이자 상표등록 1호이기도 합니다. 활명수가 이렇게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바로 전략적 유연성입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활명수는 1897년에 태어났습니다. 1897년은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해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진통제인 아스피린이 출시된 해이기도 합니다. 활명수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상표 등록이 된 브랜드이자 120년간 한번도 이름이 바뀌지 않은 제품입니다. 지금까지 팔린 활명수가 85억병 이상이고 지금도 1년에 1억병씩 팔리는 스테디 셀러이기도 합니다.

활명수는 임금을 경호하던 궁중 선전관 노천 민병호 선생이 궁중 비방과 서양의학을 접목해 만든 최초의 양약입니다. 왕정 국가이던 당시 왕족에게만 허락된 비방을 활용해서 민간용 약을 만들었기 때문에 출시 초반부터 인기를 끌었습니다. 요즘도 재벌가나 연예인들이 사용하는 제품이라고 홍보하면 잘 팔리는 것을 보면 왕이 먹던 약을 짓는 방식으로 만든 약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았던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활명수라는 이름도 탁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활명수는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인데요, 당시는 약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이기도 했거니와 국운이 기울어 백성들이 끼니를 걱정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먹을 것이 항상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먹을 게 생기면 폭식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엔 이렇게 불규칙한 식사에 폭식을 자주 하고, 위생 문제도 있다 보니 배앓이가 잦았는데요, 당시만 해도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서 급체와 구토, 심한 설사로 죽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시가에 궁중 비방을 이용한 소화제가 나왔으니 잘 팔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더 놀라운 건 1910년에 활명수를 만들던 동화약방이 활명수와 부채표를 상표 등록을 우리나라 최초로 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상표나 브랜드 보호라는 개념도 없을 때 이런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 놀랍다고 하겠습니다. 덕분에 부채표와 활명수는 국내 1호 브랜드로 기네스북에 올라있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활명수의 가격 정책인데요, 1900년대 초반 활명수 병당 가격이 40전, 설렁탕 2그릇 가격이었다 합니다. 현재 가격이 1000원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 비싼 가격인데요. 그래서 1919년 3 1 만세 운동 이후에는 활명수가 독립 운동 자금 마련에 큰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독립운동가들이 국내에서 돈 대신 활명수를 들고 중국에 가서 이것을 팔아서 독립운동 자금을 대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활명수는 일제 시대와 한국 전쟁 등의 혼란을 거치면서도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60년~70년대 고도 성장기를 맞이합니다. 한국 전쟁 이후 혼란이 잦아들고 경제가 살아난 데다가 제약 산업 전반적으로 생산 설비 및 제조 설비의 현대화가 이뤄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결정적으로 활명수가 120년간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활명수가 시대 트렌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대표적 사례가 ‘까스활명수’입니다. 1960년 중반까지 활명수는 액체 소화제 시장 절대 강자였습니다. 그런데 65년 삼성제약이 액체 소화제에 탄산가스를 주입한 ‘까스명수’를 출시하면서 시장의 판도를 바꾸죠. 초기 활명수는 탄산을 첨가하기를 거부합니다. 70년 전통에 흠집이 난다는 생각에서죠. 그러나 사이다와 콜라가 인기를 끌면서 탄산 음료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탄산이 들어간 ‘까스명수’에 열광하자 활명수는 액체 소화제의 원조라는 자존심을 과감히 버리고 ‘까스활명수’를 출시하며 맞대응합니다. 똑같이 탄산이 첨가된 소화제로 경쟁하자 당연히 브랜드 파워가 쌘 “까스활명수”가 더 많이 팔리게 됐죠. 이때 자신감을 얻어서인지 그 후로 동화약품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활명수를 조금씩 개량한 신제품들을 선보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데요, 1970년 선보인 알파활명수나 1991년 기존 제품의 성능을 개선한 까스활명수-큐 등이 그것입니다.

이후에도 활명수는 2015년 여성용 ‘미인활명수’나 2016년 어린이용 ‘꼬마 활명수’를 내놓으면서 제품 라인업을 확장합니다. 특히 2012년부터는 약국에서만 판매할 수 있는 일반 의약품 외에 ‘까스활’이라는 편의점과 슈퍼용 의약외품을 내놓으면서 시장 확대에도 성공합니다. 지금도 활명수가 1년에 1억병씩 팔리고 54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한 타깃 고객을 위한 맞춤형 제품을 출시하고 유통 채널을 다변화 하는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무려 120년을 사랑받으며 국민 소화제 반열에 오른 활명수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고루한 이미지가 그것인데요. 워낙 오래된 브랜드다 보니 젊은 세대들에게는 고전적 제품? 어른들이 쓰는 제품?의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동화약품도 이런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죠. 이런 이미지 탈피를 위해 동화약품은 2013년과 2014년에는 유명 아티스트들과 콜라보로 기념판을 제작하기도 했고 2015년부터는 아예 나전칠기 문양을 넣은 특별판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또 2016년에는 인기 캐릭터 ‘카카오 프렌즈’와 손잡고 기념판을 제작하는데 이 기념판이 대박이 납니다. 2016년부터는 아예 ‘힙합’을 선택해 ‘힙’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2016년 언프리티랩스타와의 콜라보를 시작으로 2017년에는 쇼미더머니6과의 콜라보를 통해서 젊은층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쇼미더머니 출연자 박재범씨와 함께 제작한 ‘리본(Reborn)’이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조회수 800만건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기업 수명이 100년을 넘기기도 어려운 시대에 한 가지 브랜드가 120년을 사랑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유연성’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소비자의 기호 변화에 맞춰 발빠르게 제품을 업그레이드 하고 사람들의 생활 패턴 변화에 맞춰 약국 외 편의점을 공략하는 등 변화에 대한 기민한 대처가 활명수의 생명력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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