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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만 모르는 '꼰대'

249호 (2018년 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선다 피차이와 마리사 메이어는 어린 시절부터 ‘수학 천재’로 불리며 미국 최고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게 된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두 사람은 실제 최고경영진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운명이 갈린다. 피차이는 ‘수평적 리더십’으로 구글의 성공을 이어가고 있지만 38세에 화려하게 야후 CEO로 등극한 메이어는 ‘불통’과 ‘꼰대 리더십’으로 추락의 길을 걷는다. 굳이 미국의 유명 CEO 두 사람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 한국 기업에서도 현재 ‘꼰대 리더십’은 조직문화를 망치고 유능한 인재를 떠나게 하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꼰대, 특히 ‘중증 꼰대’의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이 ‘꼰대라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같은 지적을 하더라도 말하는 방식과 접근하는 방법을 바꾸고, ‘비교의 대상’을 ‘예전 그 시절의 나’로 변화시키며, 스스로 코치 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리더십의 변화’는 시작된다.

리더 스토리 #1 선다 피차이(Sundar Pichai)

선다 피차이는 1972년 7월12일 전기공학자 아버지와 속기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인도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했다. 피차이는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았지만 수학에는 큰 재능이 있어 인도의 MIT라 불리는 IIT(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공학 석사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피차이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 맥킨지에서 잠시 컨설턴트로 일하다 2004년 구글에 입사해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구글 입사 초기 구글 크롬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구글 드라이브, 지메일(Gmail), 구글맵(Google Maps), 안드로이드(Android) 등 현재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많은 기술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업적을 만들어 냈다. 구글 이사회는 회사의 혁신과 성공에 큰 공헌을 한 피차이를 2015년 10월24일 회사의 CEO로 임명한다.1

리더 스토리 #2 마리사 메이어(Marissa Mayer)

마리사 메이어는 1975년 5월30일 위스콘신에서 환경공학자인 아버지와 미술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피차이와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부터 수학과 과학에 두각을 나타낸다. 또 어렸을 때부터 발레, 수영, 토론, 피아노, 어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위스콘신주에서 단 2명만 선발되는 전미청소년과학캠프(National Youth Science Camp)에 선발되는 등 천재성을 과시하며 스탠퍼드대에 입학한다. 대학에서도 철학, 인지심리학, 언어학과 컴퓨터공학 등의 학문을 응용하는 학문인 symbolic system이란 분야를 전공하고 컴퓨터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으며 인공지능을 연구하게 된다. 2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메이어는 맥킨지를 포함한 14개의 기업에서 일자리를 제안했지만 1999년 구글의 20번째 직원으로 입사해 부사장까지 빠르게 승진한다. 메이어는 초창기 구글 검색엔진의 많은 부분을 개발했고 구글 시작 페이지의 디자인을 개발하는 과정을 이끌었다. 이후 메이어는 구글 수입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구글 애드워즈(Google AdWords)를 개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개발 직후인 2011년 1분기에는 애드워즈가 구글 전체 매출의 96%를 차지할 정도로 메이어는 큰 성과를 냈다. 메이어는 이런 천재성과 혁신 역량으로 2012년 7월16일 불과 38살의 나이에 미국 500대 기업 최연소 CEO란 기록을 세우며 야후의 최고경영자로 스카우트된다. 메이어는 포브스(Forbes)에 의해 2012년 ‘올해를 빛낸 가장 매력적인 여성 12명’과 포천(Fortune)의 ‘Most powerful businesswoman’ 16위에 선정되는 등 언론의 찬사를 한몸에 받는다.

실리콘밸리에서 젊은 나이에 탁월한 실력으로 전설이 된 두 사람, 선다 피차이와 마리사 메이어의 스토리를 간단히 정리해봤다. 어떤가? 수학 천재들의 전형적인 성공 스토리처럼 들린다고 생각할 독자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스토리의 유사점은 여기서 멈춘다. CEO가 된 후 피차이와 메이어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리더로서 두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이번 글의 주제다.

취임 2년 만에 실리콘밸리의 아이콘이 된 피차이

피차이는 탁월한 능력과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으로 구글에서 파격적인 승진을 거쳐 CEO가 됐다. 피차이를 아는 많은 이는 그를 한결같이 겸손하고 배려심이 많으며 직원들의 성장과 발전에 다양한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으로 평가한다. 그는 CEO가 되기 전부터 자기의 입장이 아니라 직원들의 입장에서 얘기하고 유능한 인재를 뽑아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장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업무를 줘 직원을 성장시키려 노력하던 상사였다. 그가 이끌던 팀원들은 인재들이 많이 모여 있기로 소문난 구글에서조차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많은 직원이 그와 함께 일하기를 원했다고 한다.3 LA타임스는 피차이가 구글의 CEO로 선정됐다는 발표가 난 직후 한때 그의 보스였던 마리사 메이어의 사무실 앞에서 자신의 팀원들이 정당한 성과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몇 시간이고 대기하면서 직원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줬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피차이의 조용하지만 직원들의 성장과 성공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리더십을 소개하기도 했다.4

‘조용한 사람’이 별명인 피차이는 ‘나를 따르라!’ 식의 강압적인 리더십보다 ‘존중과 성장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수평적 리더십을 통해 조직 구성원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CEO로 임명된 지 불과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미 실리콘밸리의 아이콘이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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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빛나려 했던 ‘꼰대 리더십’의 상징, 메이어의 몰락과 야후의 매각

고전하던 야후가 2012년 메이어를 CEO로 스카우트하자 시장의 기대는 높아졌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메이어는 CEO로 부임하자마자 많은 변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을 추진해 가면서 메이어는 ‘나를 따르라’식으로 모든 결정을 혼자 내렸다. 그리고 이를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한 후 이를 따르지 않으면 해고를 해버리는 방식으로 많은 직원의 반발을 사게 된다. 예를 들면 메이어는 취임하자마자 IT 업계에 폭넓게 시행되던 재택근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직원들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해버림으로써 많은 갈등을 야기했다. 또한 2013년에는 성과 평가 방식을 바꿔 매니저가 직원들을 종모양(bell curve)으로 나열해서 하위 10%로 평가된 직원들을 해고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런 평가 방식은 직원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해고된 직원들은 2016년 캘리포니아주와 연방법을 어겼다며 야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5

메이어는 회사 운영을 위해 많은 변화를 실행했지만 동시에 30억 달러나 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해 50여 개의 기업을 인수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M&A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예를 들면 2013년에는 11억 달러를 투자해 텀블러를 인수했지만 그 후 텀블러의 가치는 2억3000만 달러가 돼 ‘5분의 1토막’이 나는 사태가 벌어진다. 야후의 기업가치는 계속 하락했고 2016년 포천은 메이어를 전 세계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CEO로 선정했다. 메이어가 CEO를 맡았던 5년 동안 50% 이상의 야후 임직원들이 회사를 떠났고 회사는 버라이즌(Verizon)이란 통신회사에 48억 달러라는 헐값에 매각되기에 이른다. 이 매각 금액은 야후의 전성기였던 2000년 당시 시가총액의 4%에 불과한 금액이었고 메이어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17년 6월에 CEO 자리를 사임하고 회사를 떠났다.6

메이어, 무엇이 문제였나?

야후의 구원투수로 많은 기대를 한몸에 받고 불과 38살의 나이에 300억 달러 기업에 CEO로 스카우트된 메이어는 어떻게 5년 만에 회사에서 쫓겨나다시피 사임을 하고 기업은 헐값에 매각되는 상황이 일어났을까? 일관된 전략의 부재 등 회사의 전략과 혁신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는 논외로 하고 메이어의 리더십과 관련한 이슈들에만 초점을 맞춰보자.

첫째, 메이어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혼자 거의 모든 결정을 내린 후 직원들에게 통보하는 일방적인 소통을 하며 많은 갈등을 야기했다. 재택근무를 폐지하고 직원들을 수직적으로 평가해 하위 10%를 해고하는 평가 방식은 직원들의 삶과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다. 하지만 메이어는 이런 중요한 결정조차도 직원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실행하는 불통의 리더십을 보여줬고 이는 핵심 직원들의 이탈과 소송이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은 자신의 생각과 결정이 무조건 옳고 정답이라는 잘못된 확신과 요즘 유행하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스타일의 ‘꼰대 리더십’으로 변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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