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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한국 게임 역사 새로 쓴 ‘P의 거짓’

모바일게임서 소외된 언더독의 반란
콘솔게임 부문서 거짓말처럼 대히트

장재웅 | 390호 (2024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네오위즈가 만든 콘솔게임 ‘P의 거짓’은 출시 6개월 만에 글로벌 누적 이용자 수 700만 명을 달성하며 한국산 콘솔게임도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다. 특히 P의 거짓의 성공은 개발 난도가 높아 국내 게임업계가 한번도 도전하지 않았던 소울라이크 장르에 도전해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네오위즈의 성과가 역설적으로 과거의 실패 덕분이었다는 점이다. 네오위즈는 게임 시장 트렌드가 온라인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던 시기,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오랜 침체기를 겪었다. 하지만 이 실패 덕분에 경쟁사들이 모바일게임 시장에 집중하는 사이 콘솔게임 개발 역량 강화에 집중하면서 P의 거짓과 같은 대작을 만들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네오위즈만의 개발 문화(3킹즈)와 개발 방식(테스트 중심 개발)이 큰 역할을 했다.



“한국 게임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썼다.”

2023년 9월 19일 출시된 후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네오위즈의 콘솔게임 ‘P의 거짓’에 대한 평가다. 실제 P의 거짓은 콘솔 플랫폼 중심의 패키지 게임1 도 온라인게임이나 모바일게임에 버금가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는 확신을 국내 게임 업계에 심어준 기념비적 작품이 됐다.

P의 거짓은 정식 출시 전 이미 글로벌 게이머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대중들 앞에 첫선을 보였던 ‘게임스컴 어워드 2022’2 에서 ‘가장 기대되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최고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 ‘최고의 롤플레잉 게임’ 등 세 부문에 선정됐다. 당시 네오위즈는 P의 거짓의 신규 트레일러 영상과 방문객들이 직접 플레이할 수 있는 두 시간 분량의 체험 버전만을 공개했는데 행사장에는 체험 버전을 직접 플레이해 보고 싶은 게이머들이 몰리며 긴 줄을 형성했다. 또 미국 X(전 트위터) 트렌드 키워드에 P의 거짓이 1위에 오를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게이머들의 관심을 확인한 네오위즈는 2023년 6월 데모 버전을 출시해 사흘 만에 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9월 정식 게임을 출시해 한 달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 장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겼다. 또한 출시 5개월 만인 2024년 2월 기준으로 글로벌 누적 이용자 수 700만 명을 달성하기도 했다.3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이어지고 있다.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Steam)의 이용자 리뷰가 2024년 3월 말 기준 2만3600여 개가 달렸는데 그중 92%가 긍정적 평가다. 그 결과, P의 거짓은 스팀에서 ‘매우 긍정적’ 등급을 받고 있다. 스팀 이용자 리뷰는 실제 게임을 해 본 사람들이 직접 평가를 하기 때문에 게이머들의 구매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P의 거짓의 성공은 콘솔게임, 그중에서도 소울라이크 장르라는, 국내 게임업계가 한 번도 도전하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에 도전해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소울라이크 장르는 게임 중에서도 제작 난도가 높기로 유명해 소울라이크 명가로 불리는 일본의 프롬소프트웨어 외에는 이 장르에서 대작을 만들어 낸 사례가 드물다. 네오위즈는 이 게임 하나로 글로벌 게임 업계에 주목을 받게 됐으며 국내 게임 회사들의 숙원 사업인 글로벌 진출도 이뤄냈다. 실제 P의 거짓 판매량을 살펴보면 9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했고 그중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시장에서만 간신히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는 국내 게임 회사들에는 부러울 수밖에 없는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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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의 거짓은 흥행성뿐만 아니라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2023 닉스 게임 어워드 ‘올해의 최고 롤플레잉 게임’, IGN 어워드 ‘올해의 소울라이크 게임’, 애플 2023 앱스토어 어워드 ‘올해의 맥(Mac) 게임’ 등을 수상한 데 이어 국내 최고 권위의 대한민국 게임대상 2023에서 대상을 비롯한 기술•창작상, 우수개발자상, 인기게임상 등을 받으며 6관왕을 달성했다. 또한 최근 미국 게임 평론가 단체 NAVGTR(The National Academy of Video Game Trade Reviewers)이 선정하는 ‘NAVGTR 어워즈’4 에서 ▲아트 디렉션 부문 ‘시대적 배경(Period Influence)’ ▲게임 부문 ‘오리지널 어드벤처(Original Adventure)’ ▲오리지널 드라마틱 스코어 부문 ‘신규 IP(New IP)’ ▲사운드 이펙트(Sound Effects)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게임계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더 게임 어워즈(The game Awards·TGA)에 ‘베스트 아트 디렉션’ ‘베스트 RPG’ 등 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작품성을 증명하기도 했다.

P의 거짓 흥행 덕분에 네오위즈의 실적 역시 상승세다. 네오위즈는 2023년 매출액 3656억 원, 영업이익 317억 원, 당기순이익 465억 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과 비교해 매출 24.1%, 영업이익 62.2%, 당기순이익 252% 증가한 것이다. 이는 네오위즈가 2013년에 기록한 4429억 원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매출이다. 특히 국내 매출이 9.1% 성장한 데 비해 해외 매출이 전년 대비 55.1%가 성장하며 해외 매출 비중이 큰 폭(41%)으로 늘어난 것이 인상적이다.

과연 어떤 전략이 이러한 성장세를 견인했을까. 한국 게임사들이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소울라이크류 게임을 바탕으로 북미 및 유럽 등 시장에서 K-게임의 위상을 높인 P의 거짓의 성공 요인을 DBR이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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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위즈가 콘솔게임 제작에 집중한 이유

한국은 게임 잘하기로 유명한 E-Sports 강국이다. 스타크래프트를 시작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까지 E-Sports계에서 한국의 위상은 높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의 이야기다. 게임 개발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은 높지 않다. 일단 국내 게임사가 개발한 게임이 ‘TGA’에서 올해의 게임을 뜻하는 G.O.T.Y(Game of The Year)를 수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심지어 G.O.T.Y 수상 후보에 오른 경우도 2017년에 크래프톤이 만든 ‘배틀그라운드’가 유일하다. 단순히 수상 실적만이 문제는 아니다. 해외 유명 실시간 방송 플랫폼 트위치(Twitch) 상위 8개 게임 중 한국 게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왜일까. 한국의 게임 산업이 플랫폼은 모바일, 장르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으로 편중된 채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게임산업은 크게 모바일게임, PC게임, 콘솔(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X Box 등)게임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한국 시장은 한동안 모바일게임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또 장르로 보면 ‘리니지’로 대표되는 MMORPG가 주류를 이뤄왔다. 이 게임들은 2010년 중반부터 한국과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중국 시장이 워낙 크다 보니 국내 게임 업체들은 중국 시장을 타깃으로 잘하는 분야에 집중해 꽤 오랫동안 비슷비슷한 MMORPG 게임들만을 출시해 왔다. 하지만 중국이 2016년을 전후해 ‘한한령(한류 제한령)’을 이유로 한국 게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국내 게임 업계는 큰 위기를 맞게 됐다.

이에 반해 네오위즈는 온라인에서 모바일로 게임 패러다임이 전환되던 시기에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꽤 긴 암흑기를 지나왔다. 네오위즈는 한때 엔씨, 넥슨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N 게임 업체로 불렸다. 지금은 넷마블이 3N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PC게임이 성행할 당시만 해도 네오위즈는 게임 포털 사이트 ‘피망’을 앞세워 게임 업계 공룡 기업 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네오위즈는 스마일게이트가 개발한 ‘크로스파이어’의 중국 유통을 맡으면서 게임 유통사로 빠르게 성장한다. 뒤이어 스페셜포스와 아바(A.V.A) 등 온라인 FPS 게임과 축구 게임 피파 온라인 등 손대는 게임마다 대박이 터지면서 201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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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네오위즈의 봄날은 길지 않았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2010년 초반 이미 업계에서는 네오위즈의 지속가능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네오위즈의 치명적 한계는 실적을 견인하는 인기 게임 중 자체 개발한 게임이 없다는 점이었다. 네오위즈의 경우 실적을 좌우하는 게임 대다수가 다른 게임사가 만든 게임이다 보니 게임 퍼블리싱 계약이 끝나면 실적이 큰 폭으로 휘청댔다. 일례로 2016년 4분기 크로스파이어 해외 유통 라이선스 계약이 만료되자 실적이 2000억 원대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네오위즈는 2016년을 기점으로 게임 유통을 넘어 게임 개발사로의 체질 개선을 시도한다. 그러나 게임 개발사로서의 도전은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특히 록맨 온라인, 블레스 등 자체 개발 게임이 실패를 겪으면서 네오위즈의 위상은 추락하게 된다. 블레스의 경우 개발 기간 7년에 총 700억 원의 개발비가 투입됐지만 출시 2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네오위즈는 온라인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는 게임 시장 트렌드 대처에도 실패한다. 그 결과, 2018년 이후 매출액 2000억 원대 벽에 갇혀 게임업계에서 존재감이 약해진다.

하지만 오히려 모바일 게임에서 대작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다. 네오위즈는 엔씨소프트 등 경쟁사들이 모바일용 MMORPG를 통해 중국 시장에서 큰 재미를 볼 때 이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를 당한다.5 회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찌감치 다채로운 게임 포트폴리오를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리듬게임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콘솔용 MMORPG ‘블레스 언리쉬드’와 같은 패키지 게임에도 도전하고 ‘스컬’ ‘산나비’ 등 인디 게임6 을 공격적으로 스팀7 에 퍼블리싱하면서 기존에 강점이 있던 ‘피망포커’ ‘피망 뉴맞고’ 등 웹보드 게임8 과 함께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성공한 것이다. 경쟁사들이 가장 확실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모바일 MMORPG만 개발하는 개발사로 고착화되는 사이 네오위즈는 기존의 성공 방식에 얽매여 혁신을 시도하지 못한 다른 경쟁사들과 다르게 다양한 시도를 통해 독자적인 생존 방식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라운드8 스튜디오, 실패를 통해 성장하다


콘솔게임은 모바일 게임보다 더 깊고 복잡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높은 수준의 개발력이 요구된다. 참신한 아이디어부터 짜임새 있는 스토리, 균형 잡힌 게임 밸런스, 화려한 시각적 연출까지 모두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게임사들이 한동안 모바일게임에 비해 리스크도 크고 수익성도 높지 않은 콘솔게임 개발을 등한시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국내 게임사와 해외 게임사 간의 콘솔게임 개발력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국내 게임사들은 점점 콘솔게임 개발에 손을 뗐다. 그러는 사이 자연스럽게 국내에서 콘솔게임 전문 개발 인력도 사라졌다.

이에 반해 네오위즈는 2016년 사내에 ‘라운드8 스튜디오’라는 콘솔게임 전문 개발팀을 만들고 외부에서 콘솔게임 개발 경험이 있는 인재들을 영입해 새로운 시장에 눈을 돌린다. 당시는 한창 모바일 MMORPG가 경쟁사에 큰돈을 벌어다주던 시기다. 그 때문에 네오위즈가 콘솔게임 제작에 나선다고 했을 때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네오위즈는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다. 이유는 ‘MMORPG에 대한 게이머들의 피로감’이었다.

통상 게임을 개발하는 데는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게임을 기획할 때는 3년 후에 인기 있을 만한 소재나 장르를 고민한다. 이를 위해 게이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나 시장조사도 수행한다. 네오위즈가 라운드8 스튜디오를 만들고 새로운 게임을 고민할 당시 시장에서는 이미 리니지류의 MMORPG 게임에 대한 피로감이 팽배했다. 특히 게이머 중 진성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헤비 유저층, 이른바 게임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비슷비슷한 성격의 게임만을 출시하는 국내 게임업계에 대한 불만이 높아져 갔다.

실제 국내 게임 시장은 6대4 정도로 모바일시장 비중이 크다. 하지만 두 시장을 단순 비교하기에는 게이머들의 특성이 상이하다. 모바일게임은 캐주얼 게이머들이 대다수다. 이에 반해 PC 및 콘솔게임 플레이어 중에는 게임 마니아가 상당수다. 이들은 게임을 즐기기 위해 고가의 고사양 PC나 플레이스테이션, X Box 등 콘솔게임기를 구매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장시간 몰입해 게임을 즐긴다.

라운드8 스튜디오가 타깃으로 삼은 고객은 바로 ‘게임 마니아’층이었다. 게임 마니아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국내 게임 회사들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2012년 카카오톡의 ‘게임하기’와 연계된 모바일게임들이 큰 인기를 끈 이후 국내에서 출시되는 게임은 플랫폼은 모바일, 장르는 MMORPG에 자동 사냥 기능을 뜻하는 ‘오토’가 기본으로 들어간 게임들만이 존재했다. 이에 대해 박성준 네오위즈 라운드8 스튜디오 본부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게임 시장의 성장을 이끈 것은 캐주얼 게이머들이다. 캐주얼 게이머는 스마트폰을 활용해 이동 중 혹은 휴식 시간에 잠깐씩 게임을 즐긴다. 모바일게임 시대에 접어들면서 캐주얼 게이머들이 큰 폭으로 늘었고 게임 회사들은 이들을 타깃으로 한 게임 개발에 집중했다. 그러는 사이 진성 게이머들은 소외감을 느꼈다. 우리는 이 시장에 기회가 있을 것으로 봤다.”

동시에 모바일 MMORPG 시장의 경쟁도 심화되고 있었다. 매년 한국과 중국 시장을 타깃으로 한 비슷비슷한 MMORPG 게임이 출시되면서 관련 시장의 성장세가 줄어들고 있었다. 동시에 중국 정부의 한한령이 본격화되면서 가장 큰 시장이었던 중국 진출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여기에 중국 게임 회사들이 빠르게 실력을 키우며 한국의 텃밭이었던 모바일 MMORPG를 공략해오는 상황이었다. 박 본부장은 “단순히 콘솔게임을 만들겠다고 했다기보다는 당시 시장의 니즈가 콘솔게임 등 게임성이 높은 게임을 원하는 방향으로 넘어가고 있었다”며 “네오위즈는 시장의 잠재된 수요를 빠르게 파악하고 대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운드8 스튜디오는 팀 생성 후 4년간 콘솔게임 개발에 공을 들인다. 그리고 2020년 그 결과물인 ‘블레스 언리쉬드’를 내놓는다. 네오위즈가 모바일 MMORPG로 자체 개발했다 큰 실패를 맞본 IP인 ‘블레스’를 활용해 PC 및 콘솔용 게임을 개발한 것. 안타깝게도 이 게임은 상업적으로 크게 재미를 보지는 못한다. 그러나 개발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는 이후 ‘P의 거짓’ 개발 과정에서 든든한 자양분이 된다. 박 본부장은 “콘솔게임 개발을 시도하다 보니 개발 기간도 오래 걸렸고 그 과정에서 콘솔이 갖는 하드웨어적 한계로 인해 고생을 많이 했다”며 “하지만 블레스 언리쉬드의 실패가 있었기 때문에 P의 거짓의 성공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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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게임 회사 최초로 소울라이크 장르에 도전하다

‘블레스 언리쉬드’ 이후 라운드8 스튜디오은 새로운 게임 기획을 고민한다. 아무래도 라운드8 스튜디오에 액션과 콘솔에 관심이 많은 인력이 유입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액션성이 강한 콘솔게임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다 내부에서 “기왕 하는 거 소울라이크 장르에 도전해 제대로 한번 해보자”라는 의견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이 ‘신의 한 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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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소울라이크에 대해 살펴보자. 소울라이크는 일본의 게임 회사인 프롬소프트웨어에서 개발한 소울 시리즈의 시스템을 차용하거나 영향을 받은 게임 장르를 의미한다. 소울라이크 장르 게임의 특징으로는 처음 접하는 사람은 게임을 포기하게 만드는 극악의 난도에 있다. 그 덕분에 소울라이크를 즐기는 게이머들은 스스로를 ‘망자’라고 부른다. 게임 도중 수없이 캐릭터가 죽기 때문. 또한 소울라이크를 ‘유다희(You died)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칭하는 밈도 생겨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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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려운 만큼 성취감이 커서 마니아층이 확실하다. 현질에 의존하는 모바일게임에 비해 파밍 등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보상을 얻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캐릭터를 성장시켜 게임을 조금은 수월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소울라이크류의 매력이다. (DBR Minibox Ⅱ ‘소울라이크라는 장르는?’ 참고.)

이런 소울라이크는 높은 난도만큼이나 잘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일본의 프롬소프트를 제외하고는 소울라이크 장르 게임으로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특히 국내 게임 업계는 수년 전부터 모바일게임 위주로 개발이 이뤄지다 보니 소울라이크 장르를 개발해 본 경험이 있는 개발자가 전무했다. 그 때문에 라운드8 스튜디오 내부에서 소울라이크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도 처음에는 “그게 가능해?”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럼에도 네오위즈 산하 라운드8 스튜디오가 소울라이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전 세계적으로 소울라이크 장르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소울라이크 장르의 시초를 2009년 데몬즈소울로 보는데 당시만 해도 데몬즈소울은 특유의 어두운 세계관과 어려운 게임 난도로 인해 일부 마니아를 위한 게임으로 여겨졌다. 판매량 역시 100만 장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다크소울 시리즈를 통해 1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인기 장르가 됐고 2022년 엘든링을 통해서 진정한 의미의 대중화를 이뤘다.

네오위즈 라운드8 스튜디오가 새로운 작품을 고민하던 당시인 2019년에는 세키로가 출시돼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이전인 2017년에는 프롬소프트가 아닌 코에이에서 출시한 소울라이크류 게임 ‘인왕’이 성공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특히 소울라이크 장르 게임은 대부분 작품성과 흥행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경우가 많았다. 판매량을 살펴보면 ‘다크소울1·2·3’ 시리즈는 모두 더해 3100만 장 이상, ‘세키로’는 500만 장 이상 판매됐다. 잘만 만들면 작품성과 흥행성을 다 잡을 수 있겠다는 것이 당시 라운드8 스튜디오 개발자들의 생각이었다.

또한 소울라이크 장르 게임은 개발 난도가 높다 보니 시장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다는 문제가 있었다. 박 본부장은 “소울라이크의 인기에 비해 공급되는 작품의 수도 적었고 출시 주기도 1년 반 내지 2년에 한 편 정도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잘 만들 수만 있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소울라이크 장르의 불모지 한국에서 네오위즈가 이 장르를 개발하기로 결정한 또 다른 이유는 근거리 액션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소울라이크 장르는 세계관, 스토리, 캐릭터 등 여러 특징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액션’이다. 특히 이 장르의 게임에서 대부분의 액션은 근접 액션이다. 그리고 이 지점이 북미, 유럽 등 대형 게임 개발사들이 소울라이크 장르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다. 북미나 유럽의 게임 개발사는 총기류 액션에 강하지만 상대적으로 근접 액션에 대한 기술은 떨어진다. 근접 액션과 원거리 액션은 액션의 구성부터 개발 방식까지 천지 차이기 때문. 네오위즈는 이 지점에서 기회를 발견한다. 박 본부장은 “블레스 언리쉬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게임 컨트롤러로 하는 근거리 액션에 대한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는데 이 노하우가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며 “특히 서양의 대형 게임 회사들이 쉽게 진출하지 못한다는 점만으로도 큰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험난했던 개발 과정
프로젝트 P 닻을 올리다

라운드8 스튜디오 내부에서 개발의 방향성이 정해진 것은 2019년이지만 실제 ‘P의 거짓’의 프로젝트 명인 ‘프로젝트 P’가 닻을 올린 것은 2020년의 일이다. 그사이 박 본부장을 포함한 라운드8 스튜디오 리더들은 네오위즈 경영진에게 소울라이크 장르 콘솔게임 개발의 당위성을 설득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 회사 경영진 입장에서는 성공 사례가 많지 않은 콘솔게임을 개발에다 장르도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소울라이크라는 점에서 초기 반응이 부정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네오위즈 내에는 게임 개발 담당 PD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문화가 꽤 오래전부터 정착돼 있었다는 점이다. 네오위즈는 10년간 퍼블리셔에서 개발사로 환골탈태를 감행하며 사업팀이 개발팀에 훈수를 두는 퍼블리셔 특유의 문화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2017년 일찌감치 리듬 게임 ‘디제이맥스 리스펙트’를 통해 콘솔게임으로 선보일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문화’ 덕분이다. 당시에도 네오위즈 경영진은 디제이맥스를 모바일게임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당장 수익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괄 PD의 강력한 설득으로 콘솔로 방향을 틀었다. 블레스 언리쉬드 등 다수 게임을 콘솔로 출시할 수 있었던 것도 네오위즈의 문화 덕분이었다. 프로젝트 P 역시 라운드8 스튜디오 개발팀의 강력한 주장이 받아들여져 소울라이크 장르의 콘솔게임이라는 콘셉트로 개발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어렵게 경영진의 허가가 떨어졌지만 이후로도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젝트 P는 여러 측면에서 기존 게임과는 다른 콘셉트였다. 일단 콘솔 기반 액션 게임이기 때문에 전투 시스템을 그에 맞게 다채롭게 개발해야 했다. 또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바일게임이나 마우스와 키보드를 활용하는 온라인 PC게임에 비해 콘솔게임은 게임 컨트롤러를 활용하기 때문에 개발이 훨씬 복잡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프로젝트 P는 PC 외 플레이스테이션4·5, X박스 등 다양한 콘솔 플랫폼 동시 출시를 목표로 했다. 각각의 플랫폼이 하드웨어 스펙도 상이하고 서로 호환도 안 되다 보니 개발 과정이 더 복잡해졌다. 특히 국내 게임사들이 한동안 콘솔게임을 등한시한 탓에 국내에 콘솔게임 개발 경험이 있는 개발자 수도 부족했다. 이런 이유로 네오위즈 내부에서도 “이게 될까?”라는 회의적 시선이 있었다. “사실 초반에는 수치상 목표보다는 소울라이크 장르 자체를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각오로 임했다”는 것이 박 본부장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다행인 점은 라운드8 스튜디오가 블레스 언리쉬드 개발 과정에서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했다는 점이다. 특히 블레스 언리쉬드 때 콘솔 기반 MMORPG에 적합한 묵직한 액션을 구현하기 위해서 캡콤의 ‘몬스터헌터’ 개발진을 영입해 액션의 완성도를 높였는데 이때의 경험이 프로젝트 P 개발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됐다.

박 본부장은 “게임 개발 과정에서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튼튼한 팀이 중요한데 과거 블레스 언리쉬드를 개발한 팀이 그대로 P의 거짓 개발에 합류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내부 역량으로 부족한 부분은 외부 인재 영입을 통해 해결했다. 특히 프로젝트 P 총괄 디렉터로 최지원 디렉터를 영입하며 액션을 강화하고자 했다. 최 디렉터는 ‘다크블러드 온라인’ ‘애스커 온라인’ ‘로스트아크’ 등 액션이 유명한 게임의 전투 시스템을 개발했다.

피노키오를 소재로 활용하자는 제안도 최 PD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당시 라운드8 스튜디오 내부에서는 몇몇 게임을 참고해 게임 콘셉트를 고민하고 있었다. 당시 모티브로 삼았던 대표적 게임으로 ‘아메리칸 맥기의 앨리스’와 그 후속편인 ‘앨리스: 매드니스 리턴즈’가 있었다. 이 게임들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대중적인 소재로 각색한 작품이었는데 게이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런데 마침 최 PD가 합류하면서 피노키오를 게임으로 각색해 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글로벌 게이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누구나 알 만한 소재가 필요하고 피노키오의 원작이 사람들이 아는 것과 다르게 잔혹 동화에 가깝다는 것이 이유였다.9

박 본부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가 전혀 없는 네오위즈가 소울라이크 장르의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누구나 알 만한 IP가 필요했는데 마침 피노키오가 딱 맞는 대안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피노키오의 원작이 사람들이 아는 것과 다르게 상당히 어두운 내용이라 프로젝트 초기부터 원작을 꼼꼼하게 보고 다양한 요소를 재해석해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며 “소울라이크 게임에 필요한 내러티브를 강화하는 데 피노키오가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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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고, 해보고,
피드백받아 수정 ‘무한 루프’

P의 거짓은 AAA 게임이다. AAA 게임은 대형 게임사가 대량의 제작비를 투입해 만드는 게임으로 영화로 치면 ‘블록버스터’에 해당한다. 통상 AAA 게임은 개발 기간이 길고 그에 비례해 개발비도 많이 든다. 하지만 P의 거짓의 경우 초기 프로토타입 작업이나 후반부 최적화 작업 등에 걸린 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본 개발에 걸린 시간은 2년 남짓으로 짧다. 그 비결은 바로 라운드8 스튜디오가 자랑하는 ‘테스트 중심의 개발 문화’에 있다.

보통 게임 개발은 ‘기획 – 아트(원화 및 그래픽 작업) - 프로그래밍(테스터 및 디버깅) - QA -출시 및 프로모션’의 과정을 거친다. 기획팀이 게임의 콘셉트와 장르, 세계관, 스토리 라인 등을 고민해 전체 게임의 밑그림을 그리면 아트팀이 게임의 시각적 요소를 디자인한다. 개발자들이 게임을 실제 구현해 내고 QA팀이 오류나 버그가 없는지 테스트하는 과정을 거쳐 게임이 출시된다. 일반적인 게임사에서는 기획자들이 문서로 게임 콘셉트를 설명하면 이를 바탕으로 아트팀이 그림을 그리고 개발자들이 프로그래밍을 시작한다. 이때 문서로 된 기획안은 추상적이고 의도치 않은 오해를 만들기도 한다. 이럴 경우 힘들게 프로그래밍과 그래픽 작업을 했는데 기획팀에서 “우리의 의도와 다르다”라고 해 처음부터 작업을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라운드8 스튜디오의 경우는 기획자들이 기본적으로 ‘언리얼 엔진’10 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강점이 있다. 그래서 추상적인 텍스트가 아닌 엔진을 통해 실제 기획자가 구현하고자 하는 바를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 아트팀과 개발팀과 프로토타입을 실제로 해 보며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할지를 논의하며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런 테스트 중심 개발은 기획, 아트, 프로그래밍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기존 개발 방식 대비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임 개발 초반에는 라운드8 스튜디오 팀원들이 모여 유명한 소울라이크 게임들을 함께 해보며 어떤 게임을 만들지 의견을 나눴다. 특히 처음 도전하는 장르다 보니 어떻게 하면 소울라이크의 기본 공식에 맞게 게임을 만들면서도 P의 거짓만의 차별화 포인트를 넣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이후에는 2∼3개월마다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실제 플레이해 볼 수 있는 빌드를 개발해 팀원 모두가 함께 게임을 해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부분이 재미가 있고,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 논의했다. 특히 누구라도 재미가 없다는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공유했다.

어느 정도 게임의 윤곽이 나온 이후에는 과감하게 외부 검증을 시도했다. 2022년 독일 게임스컴에 체험형 버전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네오위즈는 2개 스테이지를 포함해 두 시간 이상의 플레이타임을 제공하는 체험형 버전을 현장 참가자들에게 공개했다. 이때 나온 피드백을 바탕으로 게임의 완성도를 높여 2023년 4월과 7월 두 차례 FGT(Focus Group Test)를 통해 게임의 최적화와 재미 정도를 검증받고자 했다. 특히 소울라이크 장르 마니아들을 초대해 이들의 평가를 듣고 미진한 점은 게임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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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정식 버전 출시 전 이례적으로 게임을 체험할 수 있는 데모 버전을 공개하기도 했다. 통상 AAA급 게임이 데모 버전을 출시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P의 거짓 데모 버전은 3일 만에 1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며 흥행 기대감을 입증하기도 했다. 박 본부장은 “아무래도 처음 도전하는 장르다 보니 외부 검증을 통해 작품성과 흥행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특히 내부 직원들끼리 게임을 계속하다 보면 내성이 생겨 이 부분이 재밌는지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한 과감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네오위즈가 글로벌 게임 업계에서 인지도가 낮다는 점도 이 같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박 본부장은 “게임에 흥미를 느끼고 구매 욕구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신뢰를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그래서 데모를 통해 게임의 재미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게이머가 직접 검증할 수 있도록 하고 신뢰감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묻고 답하라

P의 거짓이 짧은 개발 과정에도 불구하고 개발 난도가 높은 소울라이크 장르의 콘솔게임으로 개발될 수 있었던 또 다른 비결로 라운드8 스튜디오만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꼽을 수 있다. 라운드8 스튜디오에는 스튜디오 모토인 ‘쓰리 킹즈(Three Kings)’가 있다. 여기서 쓰리 킹은 ‘퀄러티, 담당자, 대화’를 지칭한다. 퀄러티는 말 그대로 게임의 품질을 뜻한다. 양이냐 질이냐 선택에 놓인다면 라운드8 스튜디오는 항상 질(퀄러티)을 우선시한다. 경쟁사들이 비슷비슷한 MMORPG 게임을 양산할 때 게임의 본질인 재미에 집중해 콘솔게임 개발에 매진해 온 라운드8 스튜디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모토가 ‘Quality is king’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담당자 is king’이다. 담당자가 주도적으로 권한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항상 최고의 결과를 만든다는 뜻이다. 아무리 조직 내에서 직급이 높아도 그 분야를 가장 많이 고민하고 제일 잘 아는 담당자의 의견이 우선시된다. 앞서 살펴본 대로 네오위즈는 게임 퍼블리셔에서 게임 개발사로의 전환을 시도하면서 게임 개발에 있어 경영진의 개입을 최소화했다. 그리고 이 문화는 인하우스 개발 조직인 라운드8 스튜디오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실제로 P의 거짓 개발 과정에서 라운드8 스튜디오의 리더인 박성준 본부장은 게임 개발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박 본부장 역시 개발자 출신이지만 게임 개발에 관해서는 외부에서 영입한 최 PD와 라운드8 스튜디오 내 실무자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지원했다. 대신 본부장은 회사에서 예산을 따오고 게임을 어떻게 알릴지 고민하는 등 리더로서 실무자들이 불편함을 겪지 않고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마지막으로 라운드8 스튜디오은 유의미한 대화를 중시한다. 게임 개발과 관련해 의견을 주고받고 고민할 때는 직책, 조직 구조, 성별, 나이 등 어떤 것도 장애물이 돼서는 안 된다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라운드8 스튜디오 내에서는 누구든 게임 개발 중 ‘재미없다’고 느끼면 이를 지적하고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그래픽 작업을 하는 직원이라도 게임을 해보고 프로그래머에게 부족한 부분을 지적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프로그래머 역시 이를 ‘지적’이나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 본부장은 “사람마다 재미를 느끼는 관점이 다 다르기 때문에 다른 해석이 나오더라도 ‘모두 옳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털어놨다.

실제 P의 거짓 개발 과정에는 120여 명의 인원이 참여했다. 여기에는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아트, QA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하는 일도 다르고 심지어 쓰는 용어도 상이하다. 그럼에도 직급이나 직책과 상관없이 누구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거나 개선점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게임 개발 과정에서 피노키오가 인간성을 갖춰가는 요소를 어떻게 보여줄지를 고민하던 중 아트팀에서 낸 아이디어가 실제 게임에 적용된 사례도 있다. P의 거짓에는 크라트호텔이라는 장소가 존재한다. 게임 내 중립 구역이자 주인공 피노키오가 무기 및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속성을 활성화하는 장소다. 이 호텔에는 고양이가 사는데 게임 초반에는 인형이었던 피노키오가 고양이에게 다가가면 고양이가 하악질을 하고 피노키오를 멀리한다. 하지만 게임이 지속되고 피노키오가 인간성을 갖추게 되는 게임 후반부에는 고양이가 피노키오에게 다가와 몸을 비비거나 심지어 안기기까지 한다. 이는 게임 내에서 인형인 피노키오가 인간성을 갖춰가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박 본부장은 “개발 중반기쯤 아트팀이 아이디어를 냈지만 사실 당초 계획엔 없었기 때문에 개발팀 입장에서는 공수가 많이 들어서 망설였던 기능”이라며 “내부에서 치열하게 논의해 필요한 기능이라는 결론이 나와서 최종적으로 게임에 포함이 됐는데 유저들 평가가 가장 좋은 콘텐츠”라고 설명했다.


당장의 수익성보다 확장성을 택하다

네오위즈는 P의 거짓 론칭 전후 게임을 알리기 위해 철저히 언더독 입장에서 마케팅 및 홍보 활동을 진행했다. 파리, 일본, 독일, 미국, 대만 등에서 열리는 게임쇼에 참가해 신작 게임의 트레일러 영상을 공개하고 데모 버전을 만들어 게이머들을 만난 것은 물론 해외 유명 인플루언서 ‘아스몬골드’와 직접 인터뷰를 하는 등 적극적 행보를 보였다. 또한 신세계아이앤씨와 아시아 독점 퍼블리싱 계약을 맺는 등 다양한 회사와 협업을 진행했다. “회사나 게임 모두 해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언더독이기 때문에 먼저 열심히 찾아가고 우리를 알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박 본부장의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네오위즈는 P의 거짓의 유통에 있어서도 수익성보다는 확장성을 택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마이크로소프트 X Box의 구독형 게임 제공 서비스 ‘게임 패스(Game pass)’에 게임을 입점시킨 것이 대표적 예다. 통상적으로 구독형 게임 제공 서비스에 게임을 입점시킬 경우 패키지 게임 판매량에 부정적 영향을 줘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네오위즈는 당장의 수익성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방향을 택했다.

네오위즈는 또한 확장성을 위해 게임 플랫폼 ‘스팀’ 역시 적극 활용했다. 스팀은 일일 동시접속자 수가 3000만 명을 넘는 글로벌 최대 게임 플랫폼이다. 그 때문에 최근에는 게임 타이틀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스팀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문제는 스팀이 게임당 판매 금액의 30%라는 높은 수수료를 받고 있다는 점. 하지만 통상 국내 시장에 먼저 게임 타이틀을 내놓고 반응이 좋으면 해외 유통사와 판권 계약을 맺고 여러 나라에 진출하는 방식을 쓰거나 해외에 자회사를 설립해 직접 유통을 하는 방식을 쓰는 국내 게임사들과는 달리 ‘P의 거짓’은 개발 초기부터 타깃이 북미 및 유럽의 게이머들이었다. 글로벌 게임업계 언더독인 네오위즈가 북미와 유럽의 게이머들에게 P의 거짓을 알리기 위해서는 눈앞에 수익에 집착하기보다는 게임을 더 많은 사람이 즐기고 입소문 나게 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언더독의 반란 일궈낸 네오위즈

과거의 성공이 때론 독이 되기도 하고, 한때의 실패가 때론 득이 되기도 한다. P의 거짓의 성공은 역설적이게도 국내 게임업계의 트렌드에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16년 ‘리니지2 레볼루션’이 큰 성공을 거둔 후 국내 게임업계는 발 빠르게 리지니라이크 게임 개발에 몰두했다. 네오위즈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이 거대한 흐름에서 소외됐다. 하지만 이 실패가 결과적으로는 P의 거짓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경쟁사들이 과거의 성공에 취해서 비슷비슷한 게임들을 만들어낼 때 성공을 경험하지 못했던 네오위즈만이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네오위즈는 블레스 언리쉬드 등을 통해 상업적 실패를 경험했지만 이 실패가 자양분이 됐다.

실제 블레스 언리쉬드는 개발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던 작품이다. 콘솔 MMORPG를 표방했지만 콘솔 기기의 한계로 제작의 어려움을 겪었다. MMORPG는 기본적으로 여러 플레이어가 동시 접속을 해야 하는데 콘솔 기기의 스펙이 이를 받쳐주지 못하니 로딩 문제와 메모리 제약 등이 자주 발생해 최적화를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또한 출시 후에도 다양한 버그가 생기면서 게이머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모바일 게임이나 마우스와 키보드를 활용하는 온라인게임과 비교해 모든 움직임을 게임 컨트롤러의 버튼으로 조작해야 하기 때문에 게임 제작 자체도 쉽지 않았다. 블레스 언리쉬드 개발 당시만 해도 언리얼 엔진을 제대로 쓸 줄 아는 구성원이 없어 팀원들이 모여 엔진 사용법을 따로 공부하며 게임을 개발했다.

또한 블레스 언리쉬드의 경우 초기 X Box용으로 유럽 시장에만 출시된 이후 플레이스테이션4, 스팀으로 서서히 확장을 했다. 콘솔게임 개발이 처음이다 보니 확장성이 좋은 플랫폼부터 순차적으로 게임을 출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러나 P의 거짓의 경우 스팀, 플레이스테이션 4·5, 엑스박스 게임패스, 맥 등 다양한 게임 플랫폼에 동시 론칭했다. PC와 콘솔 등 다양한 플랫폼에 최적화해 동시에 게임을 출시할 수 있는 역량은 과거 블레스 언리쉬드 때의 시행착오 덕분이다.

P의 거짓 개발 시에는 골드행11 직전에 메모리 이슈가 생겨 전 팀원이 날밤을 새며 오류를 해결한 일도 있다. 메모리 이슈는 콘솔마다 스펙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데 특정 콘솔에서 메모리 이슈가 생기면 이를 수정한 후 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플레이해가며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보통 메모리 이슈는 QA팀에서 담당하지만 당시는 출시 직전에 문제가 생긴 터라 라운드8 스튜디오 내 전 직원이 모여 게임을 플레이하며 문제가 생기는 지점이 없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이 모여 한국 게임사에 큰 족적을 남긴 게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P의 거짓의 성공으로 네오위즈가 단숨에 글로벌 탑 티어 게임 회사가 됐다고 자부할 수는 없다. 네오위즈는 여전히 글로벌 게임 시장의 도전자일 뿐이고 이는 P의 거짓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P의 거짓을 통해 네오위즈는 콘솔 플랫폼 중심의 패키지 게임도 온라인게임이나 모바일게임에 버금가는 충분한 비즈니스 모델(BM)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P의 거짓 성공 이후 국내 게임업계들이 앞다퉈 콘솔게임을 출시하거나 콘솔게임 개발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 증거다.

모바일게임의 경우 그간 게임 진행에 필수적인 아이템을 유료화하거나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재료를 ‘뽑기’ 방식으로 제공하는 식의 ‘인게임 결제’가 정석으로 받아들여진 반면 콘솔게임의 경우 패키지 판매 외에는 뚜렷한 수익 모델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스팀, 게임패스 등 게임 플랫폼들이 발전하고 콘솔게임 역시 온라인 접속이 당연해지면서 인 앱 결제 방식이나 DLC(Downloaderable contents)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P의 거짓 역시 최근 DLC(확장팩)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P의 거짓 세계관을 확장한 후속작 개발도 추진 중이다. 또한 북미의 한 영화사로부터 P의 거짓의 영화화 제안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P의 거짓 IP가 가진 서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박 본부장은 “성공한 MMORPG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은 수익을 거두지만 그 이면에는 사후 개발, 라이브 운영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면도 있다”며 “반면 패키지 게임은 개발이 마무리된 후에는 추가적인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플랫폼별 할인 등에 따라 장기간 추가 이익이 발생하는 만큼 그사이 온전히 속편이나 후속작 개발에 몰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❶

차세대 제품으로 추격하는 ‘리프프로깅’ 전략 적중



최병철 한국외국어대 경영대학 교수 bcchoi@hufs.ac.kr



새로운 분야에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성공의 경험이 많은 기업으로서도 여전히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기업은 합리적으로 보이는 온갖 이유를 만들어가며 마지막까지 새로운 도전을 미루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효율성과 익숙함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P의 거짓을 출시하며 한국 게임 개발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긴 네오위즈 역시 이러한 함정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네오위즈의 역사는 한국 게임 산업 내에서 눈부신 성장과 굴곡의 연속이었다. 한때 엔씨소프트, 넥슨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 회사 ‘3N’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이 회사는 PC게임의 전성기 동안 게임 유통사로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개발한 게임이 부족하다는 근본적인 한계와 게임 산업의 패러다임이 PC에서 모바일로 급변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함으로써 긴 어려움의 시기를 겪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오위즈는 국내 게임사 최초로 소울라이크 장르의 콘솔게임인 ‘P의 거짓’을 성공적으로 세계시장에 출시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네오위즈의 이러한 변화는 오랜 시간 동안 기업을 가로막았던 무기력함과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연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1. 우리의 한 걸음은 당신의 두 걸음보다 멀리 간다: 리프프로깅 전략

후발 주자가 선발 주자를 추격할 때 종종 사용되는 용어인 ‘리프프로깅(Leapfrogging)’은 ‘개구리 점프’ 정도로 직역되지만 경영 전략에서는 ‘단계를 뛰어넘는 추격 전략’으로 의역할 수 있다. 일반적인 추격 전략에서는 후발 주자가 선발 주자가 걸어온 단계들을 차례로 따라가며 점차적으로 속도를 높여 나가다가 결국 추월하는 과정을 밟는다. 즉, 선발 주자가 닦아 놓은 길을 더욱 신속하게 통과하면서 단위 시간당 자원 소모를 줄여 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여기서 절약되고 축적된 자원을 바탕으로 어느 시점에서 선두 주자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을 들 수 있다. 중국은 내연기관 차량을 넘어서 전기차 및 배터리 기술에 집중함으로써 현재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전통적인 지급 결제 기술과 인프라 발전을 건너뛰고 바로 세계 최대의 간편결제 시장으로 급부상했다. 이 같은 전략이 대표적인 리프프로깅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즉, 후발주자가 리프프로깅 전략을 채택한다는 것은 선발 주자가 지금까지 개발해온 지식이나 기술을 단순히 따라 하지 않고 바로 차세대 제품에 주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프프로깅 전략은 주로 산업 내에서 기업 간 경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지만 기업 내부 전략에서도 유효하다. 크리스텐슨 교수가 지적하듯 ‘새로운 길’이란 개념은 상대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네오위즈가 콘솔게임 시장이라는 전에 가보지 않은 영역에서 국내 어느 기업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것은 네오위즈에 있어 리프프로깅 전략 이상의 도약이며 겉보기에는 무모해 보일 수 있는 큰 도전이었다. 이는 마치 자동차 시장에 처음 진출하는 기업이 곧바로 슈퍼카 제작에 도전하는 것과 유사하다. 네오위즈는 어떻게 도약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을까. 조직 구조와 구성원 관리 측면에서 이를 분석해본다


2. 한 지붕 두 가족: 구조적 양손잡이 전략

기업이 기존의 사업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여러모로 쉽지 않다. 조직의 구조, 업무 프로세스, 인사 제도가 모두 현재 주력하는 사업에 최적화되게 설계되고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은 기존 사업의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사업의 씨앗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취하는데 이를 ‘양손잡이 전략(Ambidexterity strategy)’이라고 한다. 양손잡이 전략은 크게 조직 구조를 활용하는 방식과 조직문화를 활용하는 방식이 있다. 양 전략 모두 장단점이 있다. 조직 내 신사업을 위한 독립적인 조직을 두는 것을 구조적 양손잡이(Structural ambidexterity)라고 한다. 록히드 마틴의 스컹크워크스팀(Skunkworks team),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팀원들을 무인도로 보내서 작업하게 한 예시 등은 이미 전설로 남아 있다. 구조적 양손잡이 전략의 장점은 구성원들이 조직의 관성(organizational inertia)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고 틀에 박히지 않은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구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오위즈는 라운드8 스튜디오에 콘솔게임 개발에 대한 전권을 부여하고 이들의 자율성과 독립적인 업무를 보장했다.

구조적 양손잡이 전략의 단점으로는 아이디어가 개발된 후 사업화 과정에서 기존의 조직과 협력할 때 가치 및 업무 방식에 있어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독립된 조직에 속해 있는 구성원들이 이 과정에서 빚어지는 갈등으로 인해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조직을 떠날 수도 있다. 따라서 구조적 양손잡이 전략을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문화적 토대와 프로세스 구축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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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통하는 혁신 공간의 필수 자재: 심리적 안전감

에이미 에드먼슨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불확실한 상황을 돌파하는 기업의 생존 전략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핵심 사항을 소통하고 피드백을 교환하는 시스템을 잘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조직의 구성원이 안전감을 느끼는 환경에서 갑자기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황으로 전환될 때 그 내적 변화 과정은 결코 간단치 않다. 이런 때 가장 필수적인 것은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다. 에드먼슨 교수는 혁신이 종종 높은 스트레스와 긴장을 수반하는 작업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심리적으로 안전함을 느끼는 환경에서 가장 잘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에드먼슨 교수는 위험과 긴장도가 높은 병원의 응급실을 관찰해 심리적 안전감이 높은 팀일수록 소통을 원활히 하고 많은 실수를 발견하지만 그 결과로 뛰어난 성과를 올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심리적 안전감이 높은 팀의 일원들은 의사든 간호사든, 자신들의 실수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더 나은 솔루션을 제안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기 때문에 최적의 솔루션에 더욱 빠르게 접근할 수 있었다. 구글이 2012∼2016년 사이 구글 내 180개 팀을 분석한 결과 가장 혁신적이고 높은 성과를 보이는 팀의 특징이 학력이나 성비 같은 요인이 아니라 팀의 심리적 안전감 지수였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네오위즈의 인하우스 개발 조직인 라운드8 스튜디오에서는 게임 개발 담당 PD가 게임 개발과 관련한 전권을 위임받는 문화가 꽤 오래전부터 정착돼 있었고 이는 사문화된 규정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문화였다. 누구든지 재미가 없다는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었고 기획팀, 아트팀, 개발자들은 다른 팀의 업무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작업의 유기성을 올렸다. 만약 개별 팀이 각자의 업무에만 집중하거나 다른 팀의 의견을 참견으로 받아들였다면 P의 거짓에 등장하는 풍부한 스토리와 미학적으로 가득 찬 미장센(Mise-en-Scène), 생동감 넘치는 액션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테스트 중심의 개발 문화’는 언뜻 당연해 보이지만 실제 테스트는 결국 시행착오 시스템을 의미하며 많은 조직이 이 과정에서 다양한 갈등을 경험하고 한계에 부딪힌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문화를 구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연세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오리건주 포틀랜드주립대에서 석사를, 뉴욕주 런슬레어공과대학에서 기술혁신전략으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에서 창업지원단장을 맡고 있다. 주 연구 분야는 기업벤처링(corporate venturing)과 기술경영(technology management)이다.


DBR mini box IV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❷

“싱글 게임도 성공할 수 있다” 도전 정신 일깨워



김재석
디스이즈게임 기자 outi@thisisgame.com



‘P의 거짓’이 독창적인 게임이었느냐 묻는다면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게임은 ‘다크소울’과 일련의 액션 게임으로 게임 생태계에 축적된 ‘소울라이크’의 전형을 밟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발팀도 인터뷰에서 ‘장르적 재미에 충실한 게임’을 제작 목표로 제시했다. 던전을 탐험하며 급습하는 적의 패턴을 이해해 무찌르고 함정을 피하는 게임 구성은 이제 전통적 방법론이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P의 거짓이 한국 게임사에서 기념비적 전환점이 된 게임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다고 답하고 싶다. 네오위즈는 2003년 게임 사업을 시작했다. 게임 포털 ‘피망’을 필두로 ‘피파 온라인’ ‘스페셜포스’와 같은 다수의 온라인게임 흥행작을 운영했다. 한국 게임 업계의 대형 게임사 넥슨, NC 등을 아울러 부르는 3N의 원래 주인은 넷마블이 아닌 네오위즈였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네오위즈의 게임 포트폴리오의 한 축을 차지했던 것은 ‘고포류’, 즉 고스톱과 포커 등의 웹보드게임이다. 고포류는 네오위즈의 매출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피파 온라인’ 퍼블리싱권이 넥슨의 손에 넘어갈 때도 네오위즈의 지지대 역할을 했다. 또한 네오위즈가 개발비 700억 원을 들여 도전한 MMORPG ‘블레스’가 실패로 끝났을 때도 고포류는 뒤에 설명할 ‘도전’을 위한 펀더멘털을 지켜주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

네오위즈는 모바일게임 시장이 열리자 자사의 고포류 게임에 대한 모바일 버전을 출시하는 한편 스팀 시장과 콘솔 시장에 지속해서 도전장을 던졌다. 다른 게임사들이 개발 인력 수백 명을 투입해 모바일 MMORPG 개발에 주력했을 때 싱글게임의 문을 두드리는 차별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산나비’ ‘스컬’ 등 다수의 인디게임을 유통하기 위해 인디게임사와 물밑에서 접촉했고 리듬게임 ‘DJMAX’를 부활시킨 것 역시 네오위즈의 차별화 전략이었다.

이러한 네오위즈의 기조가 결실을 맺은 작품이 바로 P의 거짓이다. 네오위즈는 앞서 설명한 기조 속에서 자사의 MMORPG IP였던 ‘블레스’를 콘솔게임으로 이식하려 했는데 그 작품이 ‘블레스 언리쉬드’였다. 네오위즈 산하 스튜디오 ‘라운드8 스튜디오’을 일군 개발자들은 ‘소울라이크’ 장르의 콘솔 액션 게임 팬으로 구성됐는데 이것이 P의 거짓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P의 거짓 제작을 총괄한 최지원 디렉터는 ‘로스트아크’의 액션을 담당했고 노창규 아트디렉터는 ‘블레스 언리쉬드’의 아트 디자인을 맡았다.

물론 블레스와 블레스의 콘솔 버전인 블레스 언리쉬드도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실패 경험은 고스란히 P의 거짓 개발의 밑거름이 됐다. 요컨대 P의 거짓은 앞선 두 게임의 경험과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빚어낸 결합물이다. 그 덕분에 P의 거짓은 까다로운 취향의 ‘소울라이크’ 유저와 평단의 고른 호평을 받았다.

P의 거짓은 한국 게임사에 ‘싱글게임도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줬다. 그간 국내 게임 회사들은 초고속 인터넷의 이른 도입에 힘입어 MMORPG 같은 온라인게임을 만들어 오며 이력을 쌓았다. 자연히 개발력도 관련 분야에 치중됐던 경향이 있었다. 최근까지도 국내 게임사가 개발하는 게임의 상당수는 MMORPG다. 그러나 게임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며 한국 게이머들은 한국산 MMORPG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MMORPG에 공통적으로 적용된 ‘뽑기 아이템’의 확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수백 명의 유저가 게임 회사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네오위즈는 이러한 시류 속에서 경쟁사 대비 발 빠르게 움직였고 결국 P의 거짓의 성공으로 열매를 맺었다. 한국 대형 게임사가 약 30시간 분량의 싱글게임을 만들어 성공한 사례는 흔치 않다. 가까운 사례로는 2021년 출시된 추리 어드벤처 게임 ‘베리드 스타즈’를 꼽을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게임을 만든 진승호 디렉터와 그의 사단 역시 최근에 이전 회사를 떠나 네오위즈로 합류했다는 점이다. P의 거짓의 성공은 단순히 상업적으로 네오위즈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을 넘어 간접적으로는 훌륭한 개발팀을 회사로 영입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P의 거짓의 성공은 향후 주요 게임사들이 도전할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데이브 더 다이버’를 성공시킨 넥슨은 액션 RPG ‘빈딕투스 디파잉 페이트’와 ‘퍼스트 버서커: 카잔’을 제작 중이며 엔씨소프트는 인터랙티브 필름 ‘프로젝트M’을 발표했다. ‘배틀그라운드’를 제작한 크래프톤의 ‘인생게임’ ‘인조이’ 또한 지난해 지스타에서 시연되며 많은 기대를 모았다. 이들 싱글게임이 P의 거짓으로부터 전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무리한 해석일 수 있지만 MMORPG를 주요 포트폴리오로 삼았던 개발자들에게 도전을 이어나갈 용기를 준 것만은 사실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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