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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스노우피크’의 한국 시장 성장 전략

차별화된 품질과 감성 앞세운 ‘캠핑계 에르메스’
직진출+라이선스 투트랙 전략 통했다

장재웅,지희수 | 374호 (2023년 0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스노우피크는 일본에서 1958년 탄생한 캠핑용품 브랜드로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인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와 커뮤니티를 활용한 팬덤 마케팅을 바탕으로 캠퍼들이 열광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스노우피크가 추구하는 철학에 공감한 스노우피크의 진성 팬 ‘스노우피커’들의 지지가 큰 역할을 했다. 한편 국내에서 스노우피크의 인기가 크게 높아진 배경에는 국내 중소기업인 감성코퍼레이션도 한몫했다. 감성코퍼레이션은 2021년 스노우피크 일본 본사로부터 아웃도어 의류 사업 라이선스를 획득해 한국에 ‘스노우피크어패럴’이라는 의류 브랜드를 론칭했다. 스노우피크가 가진 프리미엄 제품 이미지에 심플하고 아웃도어 활동에 적합한 품질과 디자인이 덧대지면서 캠퍼가 아닌 일반 대중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했다. 소비자들은 의류를 통해 브랜드에 노출된 후 스노우피크가 운영하는 체험형 매장에서 캠핑용품 등을 체험해 보게 됐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캠퍼이자 스노우피크의 팬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수혜를 본 업종 중 하나가 캠핑 산업이다. 일부 마니아층만 즐기던 캠핑이 코로나19를 겪으며 ‘국민 취미생활’로 떠오른 것이다. 여행이나 야외활동 등에 제약이 생기면서 이 같은 수요가 캠핑으로 몰린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 결과, 국내 캠핑 인구는 2010년대 중반 150만 명 수준에서 70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급성장했다. 그 덕분에 캠핑을 할 때 필요한 텐트, 의자, 테이블, 식기류 등 장비도 불티나게 팔렸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캠핑 산업 규모는 약 7조 원까지 성장했다. 2017년 2조 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불과 5년도 안 되는 동안 3배 이상으로 시장이 커진 것이다.

팬데믹으로 캠핑 시장에 MZ세대가 대거 유입되면서 캠핑용품의 프리미엄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생존을 위한 캠핑이 아닌 도심을 벗어나 호젓한 공간에서 ‘불멍(불+멍때리기)’을 즐기거나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식사를 하는 ‘먹핑(먹고 마시는 캠핑)’ 등 즐기는 캠핑이 유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캠핑의 고급화가 이뤄졌다. 그 덕분에 캠핑용품 시장에서는 고가의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큰 인기를 누렸다. 스노우피크(Snow Peak)도 그중 하나다.

스노우피크는 일본의 아웃도어 장비 및 캠핑용품 제조업체로 캠핑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캠핑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린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차별화되는 성능의 오리지널 제품군과 제품에 대한 영구 보증 등으로 인해 고객들의 충성도가 상당하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는 인기 제품들이 대부분 완판되는 바람에 재고가 들어올 때까지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특히 스노우피크는 ‘커뮤니티 플랫폼 비즈니스의 정석’이라고 불린다. 따로 마케팅 활동을 하지 않는 대신 매년 스노우피크 웨이, 설봉제 등 다양한 오프라인 행사를 통해 고객들과 함께 캠핑을 하며 고객의 소리를 들으면서 팬덤을 강화하고 커뮤니티를 유지한다. 이 같은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스노우피크는 ‘스노우피커’라는 브랜드 진성 팬을 다수 확보할 수 있었다. 이들 스노우피커의 브랜드 충성심 덕분에 스노우피크는 2019년 이후 불어닥친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등의 여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 시장에서 매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설봉제와 같은 오프라인 이벤트 때만 풀리는 한정판 제품들을 사기 위해 매장 앞에서 이른 새벽부터 ‘오픈런’이 벌어지는 모습도 자주 연출된다.

스노우피크는 특히 2021년을 기점으로 일부 캠핑 마니아를 위한 브랜드를 넘어 일반 대중에게도 어필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는 2020년 론칭한 ‘스노우피크어패럴’의 인기 덕분이다. 2008년 한국에 스노우피크코리아라는 자회사를 세워 직접 한국 시장에 진출한 스노우피크는 감성코퍼레이션이라는 국내 업체에 의류 라인인 스노우피크어패럴 사업 라이선스를 줘 한국 시장에서 스노우피크코리아와 감성코퍼레이션이 하나의 브랜드명으로 사업을 전개하도록 했다. 통상 외국 브랜드가 국내 시장에 진출할 때 ‘직진출이냐, 라이선스를 통한 간접 진출이냐’를 두고 고민한다는 점에서 양쪽을 적절히 활용해 시너지를 낸 스노우피크의 ‘투 트랙 전략’은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실제 감성코퍼레이션이 론칭한 스노우피크어패럴이 캠핑을 하지 않는 일반 소비자 사이에서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로 큰 인기를 끌면서 스노우피크의 캠핑용품 매출도 끌어올리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결과, 스노우피크 코리아는 2022년 기준 380억 원, 스노우피크 본사는 307억7000만 엔(약 2800억 원)의 매출로 각각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DBR이 김남형 스노우피크 코리아 대표를 만나 스노우피크의 고객 인게이지먼트 전략과 감성코퍼레이션과의 공생 전략에 대해 들었다.


글로벌 명품 캠핑 브랜드 ‘스노우피크’

스노우피크는 1958년 탄생한, 올해로 65년 된 브랜드다. 오랜 역사와 함께 캠핑용품 업계에서 하이엔드 제품으로 포지셔닝돼 있다 보니 많은 사람이 유럽이나 북미에서 온 브랜드라고 착각하기도 하지만 일본의 시골인 니가타현 츠마베산죠 지역에서 탄생했다. 창업가는 츠마베산죠 지역에서 철물 도매상을 운영하던 야마이 유키오다. 그는 시간만 나면 니가타현과 군마현 경계에 있는 ‘다니가와다케(谷川岳)’1 에 자주 오를 만큼 등산 덕후였다. 하지만 1950년대 일본에서 구할 수 있었던 등산 장비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들여온 수입 제품들로 내구성도 떨어졌고 사이즈 역시 일본인 체형에 맞지 않는 등 여러 측면에서 열혈 등산가의 기준에 못 미쳤다. 평소 철물 도매상을 운영하며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자신이 가지고 싶은 등산 도구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후 그가 만든 하켄, 아이젠 등 등산용품의 품질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조금씩 주변 지역으로 등산용품이 팔려 나가기 시작한다. 평소 갖고 있던 ‘정말 가지고 싶은 것은 스스로 만든다’는 생각이 창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같은 창업자의 신념은 이후 스노우피크의 경영 이념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바로 ‘우리 스스로가 사용자(User)’라는 이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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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만 해도 스노우피크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스노우피크라는 이름은 1963년이 돼서야 회사 이름으로 쓰이기 시작한다. 그전에는 ‘야마이상점’이라는 이름으로 등산용품을 파는 구멍가게에 불과했다. 스노우피크가 본격적으로 캠핑용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2대 회장인 야마이 토오루가 취임한 이후의 일이다. 토오루 회장은 1986년 스노우피크에 합류한 이후 당시 일본에서 나타난 다양한 사회경제적 현상에 주목했다. 특히 베이비붐세대의 사회 진출, 국민소득 증가와 이에 따른 여가 문화에 대한 관심 증가, SUV 차량 판매 증가 등과 같은 현상을 보며 기존 백패커나 히치하이커 등 거친 야외활동을 하는 젊은 세대들의 전유물 느낌이 강했던 캠핑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일본의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될수록 오히려 가족 단위로 편하게 자연 속에서 휴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토오루 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웃도어 시장이 있는 나라의 공통점은 스트레스가 많은 선진국이라는 점입니다. 전력을 많이 사용하고, IT 강국이며, 조직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이죠. 문제는 그렇다 보니 동물로서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을 지키기 힘들게 되고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흘러가 버린 자연의 생활을 조금은 되돌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결국 아웃도어의 삶을 살아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토오루 회장은 ‘오토캠핑’이라는 새로운 캠핑 방식을 고안해 낸다. 오토캠핑은 말 그대로 자동차를 이용해 즐기는 캠핑이다. 하지만 북미나 서유럽 등 캠핑 선진국에서 주로 즐기는 캠핑카나 트레일러를 활용한 오토캠핑과는 다르다. 토오루 회장이 고안해 낸 오토캠핑은 SUV 등 자동차에 캠핑 장비를 싣고 교외로 떠나 텐트를 치고 즐기는 캠핑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캠핑 방식 역시 오토캠핑으로 그 시초가 바로 스노우피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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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캠퍼들이 열광하는 ‘오리지널리티’

오토캠핑이라는 새로운 캠핑 문화를 만들면서 스노우피크는 빠르게 성장한다. 특히 2대 경영자인 토오루 회장의 예상대로 일본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오토캠핑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스노우피크가 이 트렌드의 큰 수혜자가 됐다. 이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가 사용자’라는 창업 이념을 바탕으로 스노우피크가 내놓은 제품들은 오리지널리티를 갖출 수 있었고, 브랜드 이름이 캠핑 마니아들 사이에서 빠르게 인지도를 쌓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스노우피크 제품의 오리지널리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스노우피크 오리지널리티의 핵심은 ‘고객 지향성’에 있다. 사실 고객을 지향하지 않는 브랜드는 없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브랜드는 ‘고객 지향’을 외친다. 그래서 고객의 니즈를 찾기 위해 시장조사를 하는 것으로 제품 기획을 시작한다. 스노우피크는 이 지점에서 다른 브랜드와 차이가 있다. 스노우피크는 시장조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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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피크가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고객은 스스로 자신이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포커스그룹에 맞춰 제품을 디자인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 사람은 제품을 보여주기 전까진 자신들이 원하는 게 뭔지도 정확히 모른다”고 말한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스노우피크는 시장조사를 하는 대신 캠핑에 진심인 진성 캠퍼만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이들을 개발 과정에 참여시켜 고객도 인지하지 못한, 고객이 진짜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이렇게 고안된 제품은 직원들이 캠핑을 하면서 현장에서 직접 사용해 보고 수정을 반복하며 세상에 없는 새로운 제품으로 거듭난다. 김남형 대표는 “스노우피크 제품이 비싼 이유는 원가를 생각하며 제품을 제작하지 않고 유저 입장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최고급 제품을 만든 후 시장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노우피크 오리지널리티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리빙쉘’과 ‘화로대’를 들 수 있다. 리빙쉘 텐트의 경우 집의 거실을 야외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효과를 주는 텐트로 거실과 취침 공간이 분리된 것이 특징이다. 스노우피크가 리빙쉘 제품을 선보인 이후 경쟁 업체들이 비슷한 카피 제품들을 잇따라 선보이면서 리빙쉘이라는 제품명이 그대로 고유명사가 됐다. 특히 리빙쉘 제품 중 2009년 내놓은 ‘랜드록’의 경우 15년 넘게 텐트 업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며 요즘에도 없어서 못 파는 정도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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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피크가 1990년대 선보인 화로대의 경우 캠핑 문화 자체를 바꾼 제품으로 손꼽힌다. 화로대를 선보인 초기에는 “누가 일부러 비싼 돈을 들여 전용 화로대를 사겠느냐”는 냉소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화롯불은 빈 식용유통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이면 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잔디를 보호하고,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빈 깡통이나 바닥에 직접 장작불을 피우는 것을 금지하는 캠핑장이 늘어났고 실용성만 중시하던 캠핑 문화도 브랜드와 전용 장비를 따지는 방향으로 변했다. 특히 ‘폼 나는 캠핑용품’에 대한 수요와 ‘불멍’의 인기로 인해 화로대는 스노우피크를 대표하는 히트작이 됐다.

그런가 하면 스노우피크에는 ‘쾌적 기준 치수’라는 기준이 존재한다. 수없이 많은 필드 테스트를 통해 스노우피크가 찾아낸 아웃도어 필드에서 사용할 때 가장 편한 치수가 그것이다. 일례로 알루미늄 파이프와 IGT 다리 조합으로 사용하는 데스크의 대표 제품인 ‘멀티펑션 스탠드’는 높이가 660㎜로 규격화돼 있다. 아웃도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서 검증을 실시한 결과 버너 두 개를 상판에 얹어 사용할 때 가장 이상적인 높이가 660㎜다. 이 밖에도 서서 조리를 하는 하이 스타일은 지상고 830㎜, 벤치에 앉아 BBQ를 즐기는 로우 스타일은 지상고 400㎜, 땅에 직접 앉아(좌식) 조리나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그라운드 스타일은 지상고 300㎜ 등 스노우피크 제품은 각 상황에 맞는 쾌적 기준 치수가 정해져 있다. 진짜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필요한 제품을 구상하고 이를 실제 현장에서 수없이 테스트하면서 찾아낸, 필드에서 사용하기 가장 편안한 수치인 쾌적 기준 치수는 스노우피크의 품질에 대한 집착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스노우피크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집착은 스노우피크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됐다. 김남형 대표는 “이미 잘 팔리는 제품을 따라 만들면 순간적으로는 더 잘 팔릴지도 모르지만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는 스노우피크의 지향점과는 거리가 멀다”며 “이런 스노우피크의 가치관 덕분에 사용자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가장 먼저 만들어 낼 수 있었고 경쟁 업체와의 차별성을 키우며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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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철학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

브랜드 철학은 그 브랜드가 세상을 보는 관점과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담고 있다. 그리고 잘 만들어진 브랜드 철학과 이 철학에 일치하는 브랜드의 의사결정 및 행동은 조직 내부의 직원이나 외부 고객 모두의 공감을 사며 대중들에게 해당 브랜드를 진정성 있는 브랜드로 인식되게 한다. 그 결과, 대중은 해당 브랜드의 소비자를 넘어 팬을 자처하게 된다. 대표적 예가 미국의 친환경 패션 브랜드 파타고니아다. 파타고니아는 ‘환경보호’에 진심이다. 이 브랜드는 ‘인간과 환경 모두에 이로운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란 목표 아래 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2011년에 선보인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란 광고는 환경보호에 대한 파타고니아의 철학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2 그 결과, 파타고니아는 수많은 팬을 확보한 브랜드가 됐고 파타고니아 브랜드의 철학·가치까지 추종하는 팬들은 기존 열성 소비자들과 달리 브랜드·제품을 주변에 적극 전파하는 브랜드 옹호자(brand advocate) 역할을 한다.

스노우피크 역시 브랜드 철학을 오랜 기간 잘 지켜오며 그 진정성을 인정받은 케이스다. 스노우피크의 브랜드 철학은 ‘삶 속에서 자연을’이다. 자연으로 나가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수단으로 캠핑을 주목하고 캠핑을 통한 아웃도어 생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스노우피크가 추구하는 목표다. 이를 위해 스노우피크는 스스로를 단순히 캠핑용품 업체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왜 도심을 벗어나 아웃도어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집중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설계해 나가는 브랜드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Outdoor life value creator’로 칭한다. 이런 스노우피크의 철학과 목적성은 실제 그들의 활동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스노우피크는 ‘삶 속에서 자연을’에 맞춰 ‘자연에서의 인간성 회복’을 표방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크게 4가지의 브랜드 지침을 바탕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① 자연과 일상생활을 결합시키는 제품을 만든다.

② 오랫동안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폐기량을 최소화해 환경에 이바지한다.

③ 자연보호를 위해 나무 소재는 전부 대나무를 사용한다.

④ 구입 시기에 상관없이 평생 AS를 원칙으로 하는 ‘영구보증제도’를 실시한다.


스노우피크는 특히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강조하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그래서 제품 기획 때부터 친환경 소재를 고수하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철저한 필드 테스트를 거친다. 불필요한 디자인은 덜어내 부품 수는 줄이되 편리한 기능을 더해 안전하고 쉽게 파손되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 폐기량을 최소화하는 노하우 역시 스노우피크 제품 곳곳에 묻어 있다.

경영 전반에 환경 민감성을 반영해 소재 하나를 선택할 때도 이에 기반해 결정을 내릴 때가 많다. 대표적 예로 스노우피크는 2006년부터 자사 제품에 들어가는 모든 목재를 대나무 집성재로 바꿨다. 아시아 열대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다른 수목에 비해 성장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른 것이 대나무를 선택한 이유다.3 특히 대나무의 경우 뿌리를 내리는 속도도 빨라 적절한 시점에 솎아내 벌채하지 않으면 죽림 전체가 시들게 되는데 성장 속도가 빠른 대나무를 일반 목재 대신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죽림 및 산림 자원을 보호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단순히 자연보호 목적만은 아니다. 대나무의 섬유질은 강화 플라스틱(FRP) 섬유 구조와 같아 최소량의 강화 섬유로 최대의 강도를 발휘할 수 있다. 대나무의 강도는 금속과 나무의 중간 정도로, 노송과 비교하면 1.5~2배가량 강하다. 또한 적당한 탄력을 갖고 있어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도 매우 우수하다.

또한 스노우피크는 구입 시기와 상관없이 평생 AS를 받을 수 있는 영구 보증 제도도 운용 중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 오래 쓰게 하는 것이 소비자에게도, 더 나아가 환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 스노우피크의 생각이다. 이러한 전략 덕분에 스노우피크는 구매가가 다소 비싸지만 구매할 가치가 있는 브랜드로 통한다. 심지어 캠퍼들 사이에서는 “비싸서 다른 브랜드도 써봤지만 결국 돌고 돌아 스노우피크”라는 반응이 많다. 오래된 제품에 대한 중고 거래도 활발하며 중고가가 높게 형성돼 있는 것도 특징이다. 대부분의 회사가 브랜드에 생동감을 주기 위해 적당히 빠른 주기로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행보다. 김남형 대표는 “한 번 구매한 물건을 계속 고쳐서 쓰다 보면 회사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스노우피크만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이 같은 철학이 결국 스노우피크의 헤리티지를 만들고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자평했다.


고객 인게이지먼트 전략

“시대가 다변화하면 마케팅은 한계가 있다. 상품 개발은 마케팅에 의존하는 것보다 철저하게 소비자 입장에 서서 깊이 고뇌하는 메이커가 더 잘한다. 스노우피크가 그의 전형적인 사례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무라카미 류는 한 방송에서 스노우피크를 이처럼 표현했다. 그의 말처럼 스노우피크는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특별히 마케팅 활동을 하지 않는다. 또한 고객과의 대화를 담당하는 부서도 없다. 대신 직원 모두가 캠핑에 대한 열정과 스노우피크의 철학과 스노우피크가 만드는 제품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직접 고객들을 만나 이들과 소통을 이어가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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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노우피크 웨이

스노우피크의 고객 소통 활동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1998년에 시작한 ‘스노우피크 웨이’ 이벤트다. 스노우피크 웨이는 우수 고객을 캠핑장에 초청해 2박 3일 동안 스노우피크 직원들과 함께 캠핑을 하는 오프라인 커뮤니티 활동이다. 스노우피크 웨이는 1998년 이래 매년 9~10회 정도 열리고 있다. 이 기간 동안 고객과 직원들은 함께 캠핑을 하며 제품 활용법 교육이나 캠핑 경험 및 노하우 등을 나눈다. 신제품을 이 자리에서 선보이기도 한다.

특히 스노우피크 웨이의 대표적 프로그램으로는 참가자들이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닥불 토크’가 있다. 모닥불 토크는 가장 오랫동안 진행해 온 스노우피크 웨이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참가자들이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는 자리다. 캠핑에 대한 경험담을 공유하거나 스노우피크 제품 사용 후기를 공유하는 참가자들도 있고, 그냥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김남형 대표는 “깜깜한 밤에 모닥불을 피워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도 유대감이 생긴다”며 “특히 스노우피크 웨이 참가자들에게는 캠핑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기 때문에 훨씬 빠르게 마음을 열고 친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모닥불 토크가 단순히 잡담만을 하는 자리는 아니다. 스노우피크는 모닥불 토크에서 고객들이 내놓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의견과 아이디어를 회사 측의 경영 과제로 선정하거나 제품 기획에 반영하기도 한다. 일본에 비해 동계 캠핑이 인기를 끄는 한국 고객을 위해 기존 스노우피크 텐트 하단에 스커트가 부착된 한국형 텐트가 출시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한국인에게 익숙한 좌식 스타일에 맞게 그라운드시트와 매트 세트를 출시한 사례나 ‘불멍’과 요리를 함께할 수 있는 ‘직화로 테이블’의 개발 등은 스노우피크 웨이와 같은 오프라인 행사에서 고객이 요청한 사항들에 착안해 제품 개발이 이뤄진 케이스다. 스노우피크는 스노우피크 웨이 각각의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통해서 고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소통의 기회를 늘리며 친밀감을 유지하는데 이것은 고객들이 브랜드와 상호작용을 통해 소비자가 브랜드에 몰입하고, 관여하는 단계에 이르면서 지속적으로 관계성을 강화해 나가는 계기가 된다. 김남형 대표는 스노우피크 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스노우피크 웨이에 참석한 고객들은 스노우피크 직원들과 같이 캠핑을 즐기며 스노우피크가 추구하는 가치를 체험하게 되고 여기에 동화됩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낸 의견이 경영에 반영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팬이 되죠. 최근에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어려서 부모님 손에 이끌려 스노우피크 웨이에 참가했다 캠핑이 좋아져 나중에 입사까지 하는 사례가 생길 정도로 스노우피크 웨이는 회사를 상징하는 행사가 됐습니다.”

실제 스노우피크 웨이 행사는 고객들의 브랜드 로열티를 높이는 데 큰 공을 세우고 있다. 한국에서 2016년과 2017년 4차례에 걸쳐 스노우피크 웨이에 참석한 고객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약 90%의 고객이 스노우피크 웨이에서의 브랜드 체험과 소통 활동에 “만족한다” 이상의 답변을 하고 있다.4 또한 스노우피크 웨이에 참가했던 경험이 있는 고객은 참가 이후에 매출 객단가와 재방문율이 상승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2017년 스노우피크 웨이에 참가한 고객의 1년간 객단가는 330만 원으로 전체 고객의 평균 객단가 79만 원 대비 4배 이상 높았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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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설봉제(雪峰際)

설봉제는 스노우피크 웨이와 함께 스노우피크가 자랑하는 오프라인 행사다. 매년 봄과 가을에 두 차례 진행되는 고객 감사 축제로 고객들을 본사와 직영 매장6 으로 초청해 스태프들과 함께 어우러져 캠핑을 즐긴다. 스노우피크 웨이와의 차이점은 이때에는 오직 설봉제 때만 구매할 수 있는 특별 한정 상품이 기획돼 판매된다는 점이다. 이 제품들은 고객들로부터 희소가치를 인정받아 매우 높은 경쟁률로 판매된다. 실제 설봉제 행사 직전에는 스노우피크 매장 앞에 고객들이 텐트를 치고 한정판 제품을 사기 위해 노숙도 불사한다.

설봉제 행사에서는 스노우피크 웨이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고객들에게 브랜드 이념과 체험 가치를 전달한다.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 캠핑 사진 콘테스트, 드레스 코드의 설정 및 시상, 토크 콘서트 등의 프로그램은 가족, 자연, 소통, 연결이라는 브랜드의 핵심 테마를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브랜드가 지향하고 있는 철학과 콘셉트를 전달할 뿐 아니라 고객으로 하여금 브랜드가 발신하는 정보와 지향하는 가치를 더욱 세세하게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벤트에서는 참가한 고객이 스태프와의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해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사용자들 간 교류와 친목을 도모하며 공통의 관심사와 가치를 공유하면서 상호작용 촉진을 통해 브랜드 몰입과 결속을 유도해 나간다.

3. 스페셜 미팅(Special Meeting)

단 1%의 상위 고객에게 참가 기회가 주어지는 특별한 행사다. 매년 연말 무렵에 스노우피크 제품을 1000만 원 이상 구입한, 포인트 카드 블랙 등급 이상의 고객을 대상으로 개최하는 오프라인 이벤트다(DBR mini box Ⅰ ‘스노우피크의 포인트 카드 시스템’ 참고.)

로열티가 높은 블랙 등급의 고객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브랜드 행사에 참가해 자신의 선택에 자부심을 확인하는가 하면 스태프들과 심화된 신뢰감을 쌓는다. 이 자리에서는 브랜드의 로열 고객으로서 출시 전의 신상품을 가장 먼저 보고, 예약할 수 있는 기회와 함께 차기 연도의 마케팅 계획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일반 고객에게 판매되지 않는 특별 선물(사케 등)을 받는 등 VIP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스페셜 미팅 참가로 인해서 남다른 우월감을 갖게 되고, 일반 고객들 역시 높은 등급의 로열 고객으로 랭크업(Rank-up)하고자 하는 동기부여 효과로 작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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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피크의 포인트 카드 시스템

스노우피크는 마일리지 기반의 포인트 카드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 포인트 카드는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에서 발급되고 사용할 수 있으며 구매 금액에 따라 등급별 포인트가 차등 적립된다. 적립된 포인트는 오직 포인트로만 구매할 수 있는 한정 상품의 구입, 각종 이벤트의 참가비, AS 비용의 결제, 캠핑장 할인 혜택 등 멤버십 회원에게만 제공되는 혜택을 이용하는 데 활용된다. 특히 구매에 따른 적립 포인트로만 구입 가능한 한정 상품은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더욱 자극하게 하고 고객 만족도 상승과 브랜드 몰입감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그 결과, 2022년 기준 일본 내 스노우피크 포인트 카드 회원 수는 77만 명을 넘어섰으며 100만 엔 이상 구매해야 도달할 수 있는 프리미엄 등급인 블랙 등급 회원 수도 9400명에 이른다. 한국에선 2023년
7월 기준, 약 12만3000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으며 그중 1000만 원 이상 누적 구매 고객인 로열 커스터머 수가 2242명에 이른다.


한국 시장에서 스노우피크가 전개하는 투 트랙 전략

스노우피크는 일찍부터 한국 시장에 공을 들였다. 스노우피크는 1996년으로 캠핑 선진국인 미국에 해외 지사를 설립한 후 2007년 독일, 2008년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며 해외로 사업을 확장한다. 특히 스노우피크의 한국 지사인 스노우피크 코리아는 미국, 유럽 등 전통적인 캠핑 선진국들에 이어 세 번째로 문을 연 스노우피크의 해외 지사다. 국토의 70%가 산으로 구성돼 있고 전통적으로 등산 인구가 많은 한국의 아웃도어 시장을 스노우피크가 미리부터 주목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스노우피크 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김남형 대표는 2009년 스노우피크에 합류했다. 평소 캠핑 덕후였던 김 대표는 스노우피크가 한국에 진출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한국 법인을 찾아갔다. 본인이 좋아하는 캠핑을 일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캠핑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채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던 스노우피크 입장에서도 김 대표는 좋은 선택지였다. 그렇게 2009년 김 대표는 경기도 파주에 문을 연 스노우피크 1호 직영점 점장이자 스노우피크 코리아의 9번째 직원으로 스노우피크와의 인연을 시작한다. 이후 성과를 인정받아 입사 4년 만인 2013년, 스노우피크 코리아 대표에 취임한다.

스노우피크 코리아는 일본 본사의 철학과 지향점을 그대로 계승해 같은 방식으로 한국에서도 사업을 전개한다. 자연에서의 인간성 회복을 강조하며 스노우피크가 수십 년간 지켜온 철학과 가치를 한국 지사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한편 스노우피크 웨이, 설봉제 등 일본에서 진행하던 오프라인 활동 역시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한국 내 스노우피커 양성에 공을 들인다. 그 결과, 취임 이후 3년 차7 인 2016년부터 16년 연속 매출 성장을 기록하며 스노우피크의 해외 법인 중 가장 좋은 실적을 올리는 등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갔다.8

그러나 이 같은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2020년 이전까지 스노우피크는 일부 캠퍼가 사랑하는 브랜드에 불과했다. 캠핑을 즐기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스노우피크는 여전히 낯설었다. 하지만 코로나19 기간을 지나면서 스노우피크는 대중적인 브랜드가 됐다. 그리고 여기에는 국내 기업인 감성코퍼레이션이 2020년 론칭한 의류 브랜드 ‘스노우피크어패럴’의 인기가 큰 역할을 했다.

감성코퍼레이션을 이끄는 김호선 대표는 텐트 레저 사업 ODM(Original Design Manufacturing) 전문 기업 라이브플렉스(현 ES큐브) 대표 시절 국내외 10여 개 브랜드의 텐트 제작 사업을 한 경험이 있다. 당시 김 대표는 디스커버리라는 브랜드로부터 텐트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라는 이유로 거절했던 경험이 있다. 이후 의류 패션 기업 F&F(Fashion & Forward)가 다큐멘터리 채널 ‘디스커버리’의 라이선스를 빌려와 의류 및 잡화를 자체 기획 및 제작, 판매해 대박이 나면서 라이선스 사업이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후 적당한 라이선스 사업 파트너를 물색하던 중 하이엔드 브랜드로서 다수의 충성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스노우피크를 눈여겨봤고, 2019년 일본 본사에 스노우피크어패럴 사업을 제안하게 된다.

김호선 대표의 라이선스 사업에 대해 일본 본사가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검토한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노우피크는 2012년 3세 경영인인 야마이 리사가 회사에 합류한 이후 2014년부터 일본 본사 차원에서 이미 어패럴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 시장 직진출 법인인 스노우피크 코리아도 아닌 제3의 사업자가 스노우피크 브랜드를 활용해 의류 사업을 벌인다는 것에 대해 필요성을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특히 하나의 브랜드를 활용해 두 개의 회사가 별도의 의류 사업을 벌일 경우 브랜드 가치 훼손이나 카니발라이제이션9 등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다른 어떤 브랜드보다 브랜드의 철학과 목적을 중시하고 그런 브랜드의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만을 직원으로 뽑는 스노우피크의 특성상 내부 직원들의 이 같은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회사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인이 스노우피크가 지켜온 가치를 무시하고 판매 및 수익 위주의 전략을 펼칠 경우 오랜 기간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스노우피크 역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어패럴 사업이 캠핑용품에 비해 크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수년간 텐트를 만들며 한국의 캠핑 시장과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던 김호선 대표는 일본 본사를 찾아가 그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었다. 즉, 일본에서 만드는 스노우피크 의류는 제품군이 다양하지 않고 아웃도어 활동보다는 일상복에 더 가까워 한국에서 큰 인기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국에는 한국에 맞는 아웃도어 제품 론칭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경영진을 설득한 것이다. 실제 스노우피크 본사의 의류 사업은 ‘아웃도어 라이프 밸류 어패럴’이 기본 콘셉트다. 그래서 일상과 아웃도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목표로 일상에서 편하게 입고 아웃도어에서 기능성이 충분히 발휘되는 옷을 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반해 감성코퍼레이션이 준비하고 있던 스노우피크어패럴의 콘셉트는 ‘아웃도어 액티비티 어패럴’이다. 큰 틀에서는 아웃도어 의류를 표방하지만 일본의 제품보다 더 액티브한 활동을 즐기는 젊은 고객을 타깃으로 해 기능성과 디자인, 색감, 로고 등을 한국 20~40대의 취향에 맞춰 만들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같은 제안은 스노우피크의 경영진에게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스노우피크 본사는 감성코퍼레이션에 한국은 물론 중국, 대만 등 중화권에서 스노우피크 의류 사업을 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제공한다. 또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감성코퍼레이션의 전신인 버추얼텍의 보통주 380만 주(약 31억 원, 6.6%)를 취득하며 한국에서 감성코퍼레이션이 벌일 의류 사업에 직접 관여할 뜻을 밝힌다. 김남형 대표는 “한국은 아웃도어 시장이 급변하는데 한국의 패션 시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일본 본사보다 한국이 잘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일본 경영진이 라이선스 판매를 허가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본 스노우피크의 경영진과 김호선 대표가 스노우피크 텐트 ODM 제작을 하며 쌓은 신뢰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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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코퍼레이션의 스노우피크어패럴은 2020년 론칭 이후 ‘고프코어 룩’의 인기에 코로나19 특수까지 겹치며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스노우피크어패럴의 인기 속 감성코퍼레이션은 2022년 회사 설립 이후 최대 실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62억 원으로 전년 대비 1310% 급증했고 지난 1분기 영업이익도 556% 증가한 45억 원으로 ‘깜짝 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을 이뤄냈다. 특히 20~40대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서도 ‘스노우피크어패럴’이라는 카테고리가 따로 생겼을 정도다.

또한 스노우피크어패럴의 인기는 결과적으로 스노우피크 브랜드 자체의 소비자 계층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 캠핑 마니아가 즐기는 고가의 캠핑용품 브랜드에서 경쟁 제품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가심비’를 갖춘 의류 브랜드로 카테고리를 확장하면서 기존에 고객이 아니었던 소비자들까지 새롭게 유입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기존 브랜드 이미지 훼손은 막으면서 캠퍼가 아니어서, 혹은 스노우피크 제품이 너무 비싸서 스노우피크를 경험해 보지 못한 고객층에게까지 스노우피크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스노우피크 코리아와 감성코퍼레이션이 전개하는 스노우피크어패럴 사업은 스노우피크라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는 유지하면서 각자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전개하는 방식과 상품의 선은 명확히 구분하면서도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에서는 완벽히 하나의 브랜드로 보이도록 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대표적으로 검색창에 ‘스노우피크’를 치면 공식 사이트는 하나만 검색이 된다. 이 사이트에 접속해 가장 먼저 뜨는 랜딩 페이지에 들어가서야 ‘아웃도어 라이프 밸류 어패럴 & 캠프’와 ‘아웃도어 라이프 액티브 어패럴’이라는 각각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고, 클릭하면 각 자사 몰로 연결된다.

또한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고객들은 두 회사가 판매하는 제품들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다. 스노우피크 코리아가 운영하는 체험형 오프라인 매장의 경우 캠핑용품 외에도 스노우피크어패럴 제품이 함께 전시돼 있다. 스노우피크 코리아가 스노우피크어패럴의 의류 제품을 사입해 매장에서 직접 판매하는 방식이다. 마찬가지로 백화점 등에 있는 스노우피크어패럴 매장에서도 스노우피크 코리아가 유통하는 텐트 등 캠핑용품 등을 함께 전시해 소비자들의 혼란을 막고 있다.

김남형 대표는 “스노우피크어패럴 론칭 전 스노우피크에 대한 고객들의 인지도가 20% 수준이었다면 최근에는 60%가 넘을 정도로 스노우피크가 일반 대중에게도 친숙한 브랜드가 됐다”며 “스노우피크 코리아와 감성코퍼레이션의 협력 모델은 스노우피크의 문화와 철학은 유지하면서 감성은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해서 기존 스노우피크가 가진 한계점을 극복하고 시장을 넓힌 좋은 사례”라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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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코퍼레이션은 어떤 회사?

감성코퍼레이션의 전신은 버추얼텍이었다. 버추얼텍은 마이크로소프트에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며 IT 붐 시절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2000년에는 벤처기업 처음으로 코스닥에 상장하고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등 대대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닷컴버블 당시에는 코스닥 시장의 랠리를 이끈 주역 중 하나였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치열해진 IT 시장 경쟁 탓에 조금씩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이후 인력 구조 조정, 미국 법인 철수, 주력 사업 변경 등 여러 자구책을 진행했지만 회생이 쉽지 않았다. 이에 2019년 3월, 당시 버추얼텍 대표는 현재 스노우피크의 어패럴 사업을 이끌고 있는 김호선 대표에게 회사 지분을 넘겨주게 됐다. 그렇다면 김호선 대표는 왜 버추얼텍을 인수했을까. 김 대표는 처음부터 아웃도어 의류 라이선스 사업을 할 목적으로 인수 대상을 물색했고 그 과정에서 상장사임에도 실적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잇는 버추얼텍이 눈에 들어왔다. 김 대표는 버추얼텍 인수 후 2019년 5월 종속회사 데브그루를 신설하고 일본 캠핑 브랜드 ‘스노우피크’의 의류 관련 라이선스를 확보했다. 이후 2020년부터 데브그루를 통해 본격적으로 스노우피크 브랜드를 단 의류 제품을 론칭했다. 2021년에 버추얼텍의 사명을 감성코퍼레이션으로 변경하고 같은 해 4월 아웃도어 의류 사업을 전개하던 데브그루를 흡수 합병하면서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이 완성됐다. 현재 감성코퍼레이션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의 스노우피크 의류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아웃도어 활동의 모든 것이 되고픈 스노우피크

이처럼 스노우피크의 성장 스토리는 브랜딩의 정석에 가깝다. 소비자의 니즈 파악을 위한 시장조사보다는 직원 모두가 캠퍼가 돼 실제 캠핑 현장에서 스스로가 필요로 하는 제품이 무엇인가를 고민해 새로운 제품을 구현해 내고 수없이 많은 필드 테스트를 통해 제품의 완성도를 높여 캠퍼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제품들을 생산해 낸다는 이야기는 현실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사례다. 또한 빠른 신제품 출시보다는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영구 AS를 제공하며, 광고나 마케팅에 돈을 쓰기보다는 고객들과 직접 캠핑 현장에서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고객의 의견을 실제 기업 경영에 반영한다는 스토리 또한 교과서에나 나올 만한 이야기다. 그러나 스노우피크는 65년 동안 한결같이 이 같은 원칙을 지키며 ‘캠퍼들이 가장 갖고 싶은 브랜드’로 그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노우피크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일까. 최근 몇 년 사이 스노우피크가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모습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현재 스노우피크의 사업 영역은 크게 5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이를 스노우피크는 ‘의·식·주·동·유(衣食住働遊)’이라고 부른다. 먼저, ‘의(衣)’는 일상과 아웃도어의 경계를 허무는 디자인과 기능을 접목한 의류 사업이다. 본사에서도 일본 최고의 디자인 스쿨인 ‘문화복장학원’ 출신인 야마이 리사가 회사에 합류하며 본격적으로 의류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식(食)’은 캠핑 감각을 체험할 수 있는 카페&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업이다. 단순히 외식업을 운영하는 것이 아닌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제철 식재료를 활용해 다양한 스노우피크의 캠핑용품으로 요리하고 음식을 담아내는 식당과 카페를 운영 중이다. 카페나 레스토랑에서도 캠핑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주(住)’는 캠핑 도구를 집안 및 실생활에서도 사용하는 어반 아웃도어 제품 판매 사업이다. 실제 스노우피크의 캠핑용품은 아웃도어뿐만 아니라 주거 공간에서도 활용 가능하게 설계돼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스노우피크가 내놓은 가구 브랜드 ‘쓰구카’가 있다. 쓰구카는 좋아하는 유닛을 조합해 내가 원하는 공간을 만드는 모듈형 가구다. 사용자의 라이프 스테이지,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자유롭게 디자인하고 세대를 초월해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자연 친화적인 오피스 환경을 조성해 더욱 창의적인 소통 공간을 만드는 캠핑 오피스 사업(働)과 스노우피크의 본질인 캠핑 활동을 기반으로 다양한 여가 활동(遊)을 제안하는 것까지 다방면으로 사업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스노우피크의 사업다각화는 분야는 각기 다르지만 결국 스노우피크의 철학과 지향점을 구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지향점은 결국 ‘자연과 인간의 연결을 통한 인간성의 회복’이다. 김남형 대표는 “캠핑을 한 번도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도 아웃도어 생활의 가치를 체험하고 느낌으로써 도시와 자연의 경계를 없애고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려는 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브랜드의 진정성이 고객의 ‘자아 표현 욕구’ 충족시켜



구민정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SKK GSB) 부교수 min.koo@skku.edu



‘캠핑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스노우피크는 타사 경쟁 제품보다 월등히 가격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열광하는 ‘팬’이 많고 기존 고객의 재구매율 또한 상당히 높다. 이러한 성공은 단순히 제품의 우수성에 기인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품질이 좋다는 이유로 비싼 가격을 반복해서 지불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스노우피크는 어떻게 캠퍼들이 열광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1. 브랜드는 ‘자아 표현(Self-expression)’의 도구다.

스노우피크의 성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명품을 왜 사는지에 대한 심리부터 잠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매슬로의 피라미드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와 만족은 5단계(생리적 욕구 · 안전 욕구 · 소속 욕구 · 존경 욕구 · 자아실현 욕구)로 이뤄져 있으며 아래층의 욕구가 충족돼야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 기존의 소비자들, 즉 베이비붐세대부터 X세대까지는 4번째 단계인 존경의 욕구가 명품을 사는 주된 이유였다. 명품을 소유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존경과 인정을 받고 높은 신분으로 상승하고 싶은 욕구, 상류층에 속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브랜드를 ‘소유’했을 때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정도, 즉 브랜드의 네임밸류가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MZ세대로 불리는 지금의 소비자들이 명품을 사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남들과 다른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self-expression), 즉 매슬로 피라미드에서 존경 욕구보다 더 상위 단계인 5단계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명품의 소비를 통해 나의 정체성을 얼마나 표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브랜드는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단순한 네임밸류가 아닌 브랜드의 스토리, 역사적 신뢰성, 윤리성, 진정성 등이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내가 자연을 사랑하고 캠핑을 하는 사람이라면 ‘캠퍼’라는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브랜드를 선택해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소비를 통해 자아 표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스노우피크는 이 조건을 매우 잘 충족시키고 있다.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든다”라는 창립 이념하에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기업 철학과 진정성과 현대화, 문명화, 파편화된 삶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가치를 캠핑을 통해 구현하는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자아 표현을 명품 소비의 이유로 꼽는 MZ세대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고 그들이 기꺼이 스노우피크의 팬이자 브랜드 정신을 널리 알리는 앰배서더가 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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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브랜드의 진정성은 ‘이해관계자 중심(Stakeholder-oriented)’에서 온다.

스노우피크가 사람들의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오리지널리티, 즉 브랜드의 진정성(authenticity)에 있다.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서의 브랜드가 가짜인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현대의 주요 소비자로 꼽히는 MZ세대는 소위 ‘의견이 강한 회의론자 세대(Generation of opinionated skeptics)’로 불리는데 이는 그들이 기업이 표방하는 마케팅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고 뒤에 숨은 기업의 진정성과 진짜 의도를 중요하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브랜드의 진정성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우리는 그 힌트를 이해관계자 모델(Stakeholder Model)에서 찾을 수 있다. 이해관계자 모델은 ESG의 기본 바탕이 되는 이론으로 기업이 단순히 주주나 이익 추구에만 초점을 두는 대신 다양한 이해관계자(고객, 직원, 사회, 환경, 공급업체 등)의 이익과 필요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깨어 있는 자본주의 운동(Conscious Capitalism Movement)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라지 시소디아 교수는 『Firms of Endearment』라는 유명한 그의 저서에서 “이해관계자 중심적 경영이 위대한 기업을 넘어서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기업이 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설명한다.

스노우피크의 진정성은 바로 이해관계자 중심의 경영에서 나오고 있다. 첫째, 스노우피크는 이해관계자인 ‘고객’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1998년 일본 본사에서부터 시작된 ‘스노우피크 웨이’는 바로 이 소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이벤트로 임직원과 고객이 캠핑을 통해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식사를 하고, 서로 도와주고, 모닥불 앞에 앉아 인간적인 교류를 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제품 개발과 서비스에 반영한다. 고객들은 단순히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가 아닌 브랜드의 성장과 비전에 함께하는 동반자다. 이러한 동반자적 관계 형성은 지금의 팬덤을 만든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된다.

또한 스노우피크의 다른 이해관계자인 ‘직원’은 모두 캠핑을 사랑하는 캠퍼이자 장비, 용품의 유저이다. 직원들에게 스노우피크는 일하는 직장이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를 하는 곳이다. 일본 본사는 49만5000㎡(약 15만 평)에 달하는 거대한 캠핑장에 지어졌는데 이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캠핑을 하며 “내가 가지고 싶은 제품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철학에 맞게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함이다. 그 결과, 직원들은 스노우피크에서 일하며 회사의 캠핑에 대한 진정성을 느끼게 되고 동시에 이 진정성을 고객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전달자 역할을 하게 된다.

스노우피크의 또 다른 이해관계자는 ‘사회’ 및 ‘환경’이다. 단순히 어려운 이웃을 돕고 기부하는 CSR의 형태가 아닌 제품 사이클의 중심에 사회와 환경에 대한 고민이 있다. 높은 사양으로 제품을 만들어서 한 번 사면 다시 살 필요가 없게 하고, 고장이 나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고쳐 쓸 수 있게 한다. 자연을 보호하고 공존하려는 마인드는 이해관계자인 고객과 직원을 통해 시너지를 이루면서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구현한다.

유명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를 이용해 포장만 그럴싸하게 하는 브랜딩은 절대로 진정성을 만들지 못한다. 고객, 직원, 사회와 환경, 공급 파트너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기업의 비전을 공유하고 진심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우려고 하는 노력이 바로 브랜드 진정성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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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니치(Niche) 브랜드의 포트폴리오 확장 전략

스노우피크의 한국 진출 전략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어패럴 사업 분야를 직진출 형태가 아닌 라이선스 형태로 감성코퍼레이션과 함께 전개해 나간다는 점이다. 사실 브랜드의 철학과 진정성이 가장 중요한 스노우피크의 이러한 선택은 브랜드 전문가 입장에서 매우 의아한 선택이다. 버버리나 구찌 등 실제로 많은 하이엔드 브랜드가 라이선스를 함부로 판매했다가 브랜드의 이미지가 훼손되고 희소성을 잃으면서 브랜드 가치를 잃는 경험을 했다. 이들 브랜드는 이후 훼손된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에서의 이러한 공생 전략은 일단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니치(Niche) 브랜드의 효과적인 포트폴리오 확장 전략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니치는 ‘틈새’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니치 브랜드는 특정 세그먼트의 작은 시장을 타기팅해 그들만의 고유한 정체성과 제품을 갖춘 브랜드를 말한다. 특정 고객 그룹과 강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충성도를 높이고 고객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는 있지만 대중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거나 브랜드 확장을 할 때 한계점이 있다. 스노우피크는 바로 이 니치 브랜드에 해당되는데 캠핑용품이라는 좁은 카테고리의 한계와 높은 가격 때문에 트렌드가 중요한 한국 시장에서 성장 속도가 느린 편이었다. 오래가는 브랜드는 성장과 유지(leverage and protection)의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클을 그려야 하는데 한국 시장에서의 스노우피크는 성장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접근성이 좋고, 가격이 낮은 입문 레벨 브랜드(Entry-level brand)로의 포트폴리오 확장이 필요했다.

입문 레벨 브랜드를 론칭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브랜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입문 레벨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메인 브랜드를 알리고 고객을 유입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브랜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스노우피크는 감성코퍼레이션과의 긴밀한 협업과 직접적 관여를 통해 이 일관성을 유지시키는 데 성공한다. 예를 들어, 스노우피크를 검색하면 어패럴과 캠핑용품은 하나의 웹사이트에 표시가 되며 단지 라이프 밸류, 라이프 액티브라는 매우 미세한 차이로만 분류가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입문 레벨 브랜드인 라이프 액티브 어패럴과 메인 브랜드인 라이프 밸류 어패럴 및 캠핑용품은 하나의 동일한 브랜드이며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면 각각 다른 회사에서 생산되고 판매되는지 모른다. 이러한 원 브랜드 포트폴리오 전략의 성공은 스노우피크 측의 직접적 관여와 감성코퍼레이션이 가진 브랜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협조 덕분에 가능했다. 하지만 반대로 자칫 감성코퍼레이션이 브랜드 가치에 어긋나는 제품을 출시하거나 과도한 확장을 한다면 브랜드 이미지 훼손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지난 3년간 입문 레벨 브랜드 론칭을 통해 한국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이뤄온 스노우피크는 니치 브랜드로서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바로 캠핑을 일상의 영역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것인데 더 이상 캠핑에 국한되지 않고 자연 친화적인 주거 공간과 오피스 공간을 스노우피크 제품들을 통해 구현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이와 같은 포트폴리오 확장은 브랜드의 성장을 위해서는 필수적이지만 충성도가 높은 캠핑 중심 팬들(스노우피커)의 반발과 이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니치 브랜드만이 가진 전문성과 희소성을 잘 지켜나가는 동시에 ‘원 브랜드 전략’을 잘 유지할 수 있는 통제력과 일관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구민정 교수는 연세대 심리학, 영문학 학사를 받고, 시카고대 부스경영대에서 MBA 석사와 마케팅/행동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사회인지학회(ISCON) 최우수논문상의 한국인 최초, 최연소 수상자이며 2018년 한국연구재단/엘스비어사에서 올해의 신진 연구자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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