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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역사

덩치 키우려면 ‘모세혈관’도 늘려야

서광원 | 393호 (2024년 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단순히 세포의 숫자를 늘린다고 덩치를 키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세포 하나하나에 혈액을 전달하고 노폐물을 거둬가는 모세혈관도 함께 늘어나야 한다. 모세혈관이란 내실이 함께 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포 수라는 외형만 성장하면 생명체의 몸에는 탈이 날 수밖에 없다. 모세혈관은 혹사당하고, 세포들은 저산소증에 시달리게 된다. 코끼리나 우리 인간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모세혈관을 확보하는 데 성공해야 그만큼 덩치를 키울 수 있다. 기업이나 조직 역시 마찬가지다. 커지는 외형에 내부 조직의 성장이 따라주지 못하면 결국 불균형 속에 스텝이 꼬이고 성장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한때 잘나가던 스타트업을 경영하다 지금은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은 적이 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 딱 한 가지를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겠느냐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지금도 문득문득 머릿속을 맴도는, ‘그때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몇 가지가 있어요. 그중 하나가 외부와 내부의 속도를 맞추지 못했다는 겁니다. 어떻게든 치고 나가면서 매출을 키우면 다른 것들은 따라와 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어요. 온 신경을 써도 될까 말까 한 일을 CEO인 내가 신경을 안 쓰는데 누가 쓰겠어요? 한마디로 커지는 외형에 비해 내부 조직의 성장이 따라 주질 못했어요. 앞서가는 발을 다른 발이 맞춰주지 못하니 스텝이 엉키고 넘어질 수밖에요.”

비 온 후의 죽순처럼 쑥쑥 커가던 기업이 어느 순간 비틀거리다 성장력을 상실하는 일은 의외로 드물지 않다. 표면적 이유는 다양한데 이런 이유들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사태의 본질인 ‘원인의 원인’을 만나게 된다. 이 전직 스타트업 대표가 말한 외형과 내실의 불균형 성장 역시 자주 볼 수 있는 원인의 원인 중 하나다. 눈에 보이는 외적 성장에 취하다 보면 보이지 않게 부작용이 누적된다. 이렇게 내적 능력을 다지는 데 소홀히 한 대가는 나중에 반드시 돌아온다. 내부의 누적된 문제가 연쇄작용을 거쳐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흥미롭게도 생명체들 역시 몸집을 키우는 과정에서 이런 일을 겪는다. 큰 덩치를 가진 고래나 코끼리가 별 무리 없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것처럼 보이지만 살아 있음의 세상에 당연한 게 어디 있겠는가. 이들 역시 기나긴 자연선택을 거쳐 몸집을 키우고 생존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하루바삐 규모를 키우고 싶은 스타트업, 그리고 능력의 크기를 키우고 싶은 개인들이 생명체의 크기 진화 과정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생명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를 겪고 극복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체들이 크기를 키울 때 반드시 맞닥뜨리는 난관이 있다. 순조로운 성장을 하려면 3가지의 내부 변화가 필수적이다. 본 연재를 통해 짚어본 바 있던 골격근의 변화1 가 그 하나이고, 이번 호에 다루는 내용이 나머지 두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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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혈관은 길고 세포는 작을까?

우리 몸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놀라움투성이다. 피가 흐르는 혈관도 그중 하나다. 몸 곳곳에 산소와 영양분을 전달하고 노폐물을 회수하는 혈관의 길이를 다 합하면 얼마나 될까? 사람들의 키가 보통 2m가 안 되긴 하지만 온몸 구석구석까지 혈액을 전해야 하니 넉넉잡아 수백 m쯤 될까?

틀려도 너무 틀렸다. 무려 10만 ㎞쯤 된다. 지구 한 바퀴의 길이가 4만 ㎞가 조금 넘으니 지구 두 바퀴 반이나 되는 엄청난 길이의 혈관이 키 2m가 안 되는 우리 몸속에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긴 혈관이 필요할까?

혈관이라고 하면 동맥이나 정맥 같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혈관만을 생각하지만 사실 혈관의 대부분은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모세(毛細)혈관이다. 실핏줄이라고도 하는 모세혈관은 털(毛)처럼 가느다랗다(細)는 문자 그대로 지름이 0.005㎜에 불과해 실이나 털보다 훨씬 가늘다. 혈관의 끝부분에서 방사형으로 퍼져 있는 이런 작은 혈관들은 우리 몸에 무려 1조 개나 존재하는데 우리 몸의 세포가 30조 개가 넘기 때문이다.

이런 미세한 혈관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몸을 이루는 기본 단위인 세포의 지름이 0.01㎜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작아서다. 대여섯 개를 나란히 놓아야 우리 한국인의 머리카락 한 올 지름쯤 되는 이 작은 세포들에 혈액을 전달하려면 혈관 역시 작을 수밖에 없다. 동맥이나 정맥이 도시로 들어오는 커다란 수도관이나 가스관이라면 모세혈관은 각 가정집으로 들어오는 가느다란 수도관이나 가스관에 해당한다. 수도관과 가스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우리가 살아갈 수 없듯 혈관도 마찬가지다. 이곳이 느슨해지거나 막히면 곧바로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 피가 잘 통하지 않으면 몸이 탄력을 잃고 노폐물이 쌓이면 고혈압이 된다.

그럼 세포는 왜 작을까? 굳이 이렇게 작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우리가 고래나 코끼리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세포도 작은 걸까? 그러면 이들의 세포는 얼마나 크고, 작은 동물의 세포는 얼마나 작을까?


성장의 발목을 잡는 병목 구간

놀랍게도 모든 동물의 세포는 크기가 거의 비슷하다. 유전적으로 가까운 포유동물일수록 그러하다. 예를 들어 설치류와 사람, 고래는 덩치 차이가 어마어마하지만 세포 크기는 거기서 거기다. 다른 건 세포의 수다. 생명체들이 종(種)의 수준에서 몸집을 키울 때 세포의 크기를 키우는 게 아니라 개수를 늘리기 때문이다. 아니, 다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듯 세포 크기 역시 제각각 다르게 진화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하나 같이 세포는 작은 것일까?

세포가 크면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몸이 커다란 양동이이고 세포가 돌이라고 해보자. 이 양동이에 돌을 넣는다면 작은 돌을 넣을수록 빈틈이 줄어들고 큰 돌일수록 반대가 될 것이다. 세포는 에너지를 만드는 곳인데 빈틈이 많으면 어떨까?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포유류 중 가장 작은 축에 속하는 설치류 땃쥐와 육상 포유류 중 가장 큰 코끼리의 크기는 무려 1만 배 정도 차이가 나지만 이들을 이루는 세포의 크기는 거의 같다. 코끼리는 땃쥐보다 세포 수가 1만 배 많다.

그러면 덩치를 키우려는 생명체는 이런 세포만 열심히 늘리면 될까? 어느 정도 가능은 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세포들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노폐물인 이산화탄소를 거둬가는 모세혈관이 세포 생성 속도에 비례해 생겨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왜 세포는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데 모세혈관은 그러지 못할까?

세포와 모세혈관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워낙 작다. 그래서 에너지와 노폐물 전달을 위해 확산이라는 현상을 이용한다. 확산이란 물질이 고농도에서 저농도 쪽으로 퍼져 나가 똑같은 농도를 만드는 분자 운동이다. 쉽게 말해, 커피 티백을 물에 넣으면 갈색빛이 물 속으로 퍼져 나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말이 쉽지 아주 느리고 세밀한 과정인데다 머리카락보다 몇백 배나 가는 혈관으로 이 일을 담당해야 하기에 쉽게 만들어낼 수 없다.

만약 세포가 늘어나는 속도만큼 모세혈관이 늘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모세혈관 망의 간격이 점점 벌어진다. 어느 지역에 주택은 빠르게 늘어나는데 수도관과 도시가스 공급이 제대로 안 되면 결과적으로 띄엄띄엄 공급하는 양상이 되듯 그렇게 된다. 늘어난 세포에 에너지를 전달하고 노폐물을 회수하는 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세포 역시 제 기능을 발휘하기 힘들어지고, 지속될수록 각종 부작용 역시 커진다. 무작정 세포만 늘리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가장 큰 덩치를 갖고 있는 대왕고래는 작은 땃쥐보다 무려 1억 배나 큰, 200t이나 되는 무게를 자랑하지만 모세혈관 사이의 평균 거리는 겨우 약 4.6배 정도다.2 세포의 증가를 모세혈관이 따라가기 힘들어서다.


체온이 생각 이상으로 중요한 이유

문제는 일단 외형을 키우기 시작한 생명체들에겐 성장 모드를 멈추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덩치가 커지면 생기는 이점이 많기 때문이다.3 에너지 효율이 좋아져 덜 먹어도 되는데다 상대가 함부로 덤비지 못하는 등 큼직한 장점이 많고 수명 역시 늘어난다. 이 세 가지는 모든 생명체가 원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존에 핵심적인 것인데 이 좋은 걸 왜 멈추겠는가.

하지만 미흡한 내부 변화 상태로 성장을 지속하면 부작용이 불거지기 시작한다. 덩치가 커지고 세포가 많아지면 세포들에 여유가 생긴다. 손상이 줄고 노화가 더디 진행되는 덕분에 수명 역시 늘어난다.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어느 정도까지만이다. 세포는 여유로울지 몰라도 이들 세포를 지원하는 모세혈관들은 ‘인원 보충’이 안 돼 혹사당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커지는 속도가 빠를수록 세포들에 전달되는 에너지가 적어질 수밖에 없어 저산소증이라는 산소 결핍 현상에 시달리게 된다. 필수 에너지 공급이 안 되는 치명적인 상황이 되는 것이다.

모세혈관이 ‘극한 노동’에 시달리며 손상과 마모가 늘어나면 세포 역시 영향을 받는다. 수도관과 가스관이 고장 나면 생활에 이상이 생기는 것처럼 몸에 질환이나 암 같은 것들이 나타나고 노화 역시 다시 빨라진다.

크기를 키울 때 거쳐야 할 관문이 하나 더 있다. 덩치가 커지면 열을 쉽게 잃지 않기에 체온 유지 효과가 높아지는 큰 장점이 생기지만 언제나 그렇듯 장점은 혼자 오지 않는 법. 그만한 단점 역시 생긴다. 움직임이 많아지거나 급격하게 움직일 때 생기는, 적정 수준 이상의 열이 그것이다. 이 열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야 한다. 집 안이 더워질 때 창문을 열거나 에어컨을 켜는 것 같은 조절 능력이 있어야 쾌적하게 살 수 있듯 생체 역시 내부에서 생기는 열을 처리하는 능력이 있어야 덩치가 커지는 장점을 누릴 수 있다. 이 열 관리를 못하면 열사병 같은 치명적인 상태를 맞을 수 있는데 이 열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살아가는 힘을 만들어내는 신체의 대사율은 살아 있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 다시 말해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속도를 말한다. 이 대사율은 크기나 무게가 아니라 온도에 아주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몸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들이 대체로 화학 반응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온도가 10도 올라가면 신체 내부의 생산 속도, 그러니까 대사율은 2배가 된다. 세포가 2배의 일을 하는 ‘과로’ 상태가 지속되면 에너지 소모 역시 많아지면서 열이 증가한다. 이걸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세포가 망가져 노화가 빨라진다. 육상동물 중 가장 덩치가 큰 코끼리의 귀가 다른 동물보다 엄청나게 큰 이유가 이 때문이다. 덩치가 크면 클수록 내부의 열 역시 많아지기에 이 열을 식히는 냉각 장치가 필수다. 우리 인간이 지금의 크기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땀을 흘리는 냉각장치를 개발해 문제를 해결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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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려면 약간 춥게 살고, 덜 먹으라고 하는 게 이래서다. 세포가 쉴 수 있고 노폐물을 처리할 시간 또한 넉넉하게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체온을 1도만 낮춰도 수명을 10~15% 늘릴 수 있고, 음식 섭취량을 10%, 그러니까 하루에 200kcal를 줄이면 10년 가까이 더 살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물론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일관된 것이어야 하지만 말이다. 기후 온난화가 개인들에게도 중요한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평균 기온이 2도 오르면 대사 속도가 20~30%나 빨라진다.


심장이 진짜 힘을 쏟는 곳

코끼리나 우리 인간처럼 덩치를 키운 생명체들은 부족해지기 쉬운 모세혈관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심장의 적극적인 지원에 답이 있다. 생체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곳곳에 보내는 심장은 펌프식 작동으로 생긴 힘의 대부분을 모세혈관을 지원하는 데 쓴다. 얼핏 생각하면 동맥이나 정맥의 혈액이 잘 흐르도록 하는 데 쓰는 것 같지만 심장이 여기에 쓰는 힘은 의외로 많지 않다. 이곳은 공간이 큰 덕분에 마치 강물이 물결의 흐름으로 흘러가듯 고동치는 자체의 힘으로 흘러가는 까닭이다. 더구나 흐름에 대한 저항이 생길 만한 곳마다 두 갈래로 나눠지는 분기점을 마련해 저항을 최소화한다.

모세혈관은 상황이 다르다. 앞에서 말했듯 가뜩이나 좁은 통로인데다 심장에서 멀리 있다. 흐름에 대한 저항력이 커지는 건 물론이고 혈액의 점성까지 높아지는 까닭에 지원이 없으면 나아가기 힘들다. 심장에서 출발한 혈액은 초당 40㎝로 빠르게 흐르지만 머리카락보다 훨씬 작은 모세혈관에서는 흐르는 속도가 초당 겨우 약 1㎜에 불과할 정도로 줄어든다. 확산이라는 느린 방식으로 에너지와 노폐물을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이다.4 이런 어려움을 심장의 힘 있는 지원으로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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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생산한 에너지의 대부분을 혈관 네트워크의 말단에 쏟는다는 사실은 리더십 차원에서 보면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기업 조직에도 절실하지만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형이 급속히 커지는 상황에서 특히 그렇다. CEO 역시 인간인지라 눈에 보이거나 발등에 떨어진 일을 우선하게 된다. 주변에 있는 이들 또한 최고 리더가 관심을 두는 것에만 우선순위를 두다 보면 조직의 모세혈관이라 할 수 있는 말단이나 현장엔 소홀하게 된다. 당장 처리하지 않아도 별문제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다 눈에서 쉽게 보이지 않는 먼 곳에 있기에 덜 급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체 조직이 그런 것처럼 이곳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갈수록 문제가 커져 갈 길 바쁜 발목을 잡히게 된다. 무엇보다 요즘 같은 격변기에 현장은 격렬한 전쟁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최전선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데도 승전할 수 있을까?

최근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생산 알고리즘이라고 하는 일하는 기준을 정해 놓고 있다. 그중 하나가 ‘관리자는 실무 경험을 갖춰야 한다’이다. 소프트웨어 관리자는 업무 시간의 20% 이상을 코딩에 써야 하고, 태양광 지붕 관리자는 일정 시간 이상 지붕에 올라가 설치 작업을 해야 한다. 머스크는 왜 이걸 명문화까지 했을까? 조직의 말단 망이라 할 수 있는 현장에서 멀어지지 않아야 실질적인 성장이 이뤄진다는 걸 아는 것이다. 성장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으니 두각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시대의 총아로 꼽히는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 역시 틈만 나면 ‘낮은 곳’을 찾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조직이 열받으면 생기는 일

생체 조직이 커질 때 열 관리 능력을 같이 개발해야 하는 것 역시 리더들이 유념해야 할 생체의 교훈이다. 조직이 커지면 구성원 간의 마찰과 갈등 같은 문제들이 늘어나면서 과열 양상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의하면 섭씨 27도의 주전자 속 물 분자는 주변 물 분자들과 지속해서 충돌하고, 매번 부딪힐 때마다 평균 초속 370m로 날아간다. 공기 중 음속보다 빠르다. 주전자에 물을 끓이면 이런 분자들이 속에서 좌충우돌하게 되는데 섭씨 100도가 되면 충돌이 더 심해져 물 분자들이 수증기로 변해 밖으로 튀어 나간다. 우리가 ‘물이 끓는다’라고 하는 상태다.5 리처드 파인만은 생명체 역시 이런 원자들이 지글보글하는 것(jigglings and wigglings)이라고 했는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회사 조직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이 많아지고 부서가 늘어날수록 상하좌우 사이에 크고 작은 충돌이 폭주하면서 마음속은 스트레스로 부글부글 끓고, 머릿속은 골치 아픈 일들로 뜨끈뜨끈해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상태가 온전한 성과로 이어질 리 없으니 이런 것들이 문제화되지 않도록 열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열받아서 좋을 일은 없다. 이 글의 서두에 나온, 한때 잘나갔던 CEO가 깊은 한숨을 토해 내며 한 말이 있다. “다시 그런 상황이 오기는 힘들겠지만 온다면 좀 천천히 달리더라도 외부와 내부의 속도를 맞추는 데 온 힘을 기울일 겁니다.”

잘 달리려면 빠르게 달리고자 하는 마음과 실제로 달리는 몸의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 이 어울림이 진정한 속도다. 마음만으로 달리면 금방 숨이 차 갈수록 달리기 힘들어진다. 기업 또한 외형의 변화만큼 내부 변화가 이뤄져야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사람들이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를 확실하게 안다는 착각 때문”이라고 했다. 중요한 걸 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역시 우리를 곤경에 빠트리는 건 매한가지다.
  • 서광원 |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
    araseo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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