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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승계 성공 케이스에서 배운다

후계자를 일찌감치 선정하고 육성
투명한 지배구조로 리스크 줄였다

김성남 | 389호 (2024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국내외 다양한 기업 사례를 통해 가업승계의 성공 전략을 발견할 수 있다. 청우하이드로는 일찌감치 후계자를 정하고 가업승계를 준비했지만 대한전선은 선대 회장의 갑작스런 유고로 급하게 승계가 이뤄져 결국 사업을 매각하게 됐다. 삼표시멘트와 진주햄은 가업승계에 앞서 지배구조를 명확하게 해둔 덕분에 승계 후 생길 수 있는 잡음을 줄이고 안정적으로 기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삼진인터내셔널은 가업승계 후 회사 규모가 커지자 외부 인재를 적극 영입하는 전략으로 비즈니스를 확대해 성공적인 가업승계의 표본이 됐다. 교보문고와 미슐랭은 가업승계로 경영자가 교체되는 변화 속에서도 창업 이념을 승계, 발전시킴으로써 기업의 가치를 지켜나갔다. 삼영기계는 승계 후에도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혁신을 거듭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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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 창업 1세대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원활한 승계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향후 10년간 약 32만5000개 사업체가 폐업 등으로 소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로 인한 매출 누적 손실액은 약 79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비관적 시나리오를 가정한 추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중소·중견기업의 원만한 경영권 승계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체감하기에는 충분하다.

잘 준비된 가업승계는 오너 가족의 재산권 차원의 문제를 넘어 고용과 경제 활력, 기업의 경쟁력 강화 등 사회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중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다. 부모 세대에 축적한 부를 자식들에게 단순히 넘겨주고 끝나는 일반 상속과 달리 가업승계는 상속 이후에도 ‘계속기업(going concern)’을 유지함으로써 법인(法人)이 갖는 사회적 책임을 계속해서 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것이 ‘부의 세습’이고 사회적 불평등이나 후진적 경영 방식이라는 등 부정적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막상 가족기업의 경영 성과를 분석한 많은 연구는 매출, 고용, 연구개발 등 여러 측면에서 일반 기업보다 가족기업의 성과가 평균적으로 더 높다고 밝히고 있다.

성공한 가족기업들의 사례를 분석한 책 『세계 장수 기업: 세기를 뛰어넘은 성공』의 저자 윌리엄 오하라는 그 이유에 대해 “가족기업은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영하고 변화에 순발력 있게 대응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주창한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s)’ 기업도 약 60% 정도가 가족기업이다.

그렇다고 해서 창업주의 2, 3세가 최고경영자 자리를 물려받아 성공적으로 경영을 이어가는 확률이 높은 것은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창업주가 일군 가업이 성공적으로 승계될 확률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급격히 낮아진다. 이는 그만큼 창업주의 비전과 철학을 지키면서도 변화하는 환경에 맞도록 사업 전략, 경영 시스템, 조직문화를 혁신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다. 세계적인 경영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 제임스 콜린스가 업계 최고 위치까지 올라갔다가 몰락한 세계적 기업 10여 곳을 조사했을 때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최고경영자 승계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경영권 승계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5~10년 정도가 소요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렇게 긴 시간 체계적으로 대비해 승계를 마무리하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여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창업주가 건강하고 활발하게 경영을 하는 동안에는 주변에서 승계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 부의 세습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의식해 적극적으로 준비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빠르게 바뀌는 경영 환경 속에서 사업을 키우고 지키는 데 몰두하다 보면 승계에 필요한 준비를 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쓰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언젠가는 물려준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을 뿐 언제, 누구에게, 어떤 절차를 거쳐 승계를 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경영권 승계는 승계자 결정, 지배구조, 경영 전략, 후계자 육성, 세무 관계, 대외 관계 등 복잡다단한 이슈가 얽혀 있는 문제로 어느 기업에나 적용 가능한 솔루션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며 사업주 철학, 사업 특성, 조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준비해야 하는 이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PwC가 2018년 세계 주요 기업 2500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83%는 해당 기업 내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은 내부 후보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뛰어난 외부 영입 경영자라도 조직 내·외부 상황을 단기간 내에 파악하는 것이 어렵고 사업 분야나 전략 등을 급격하게 바꾸는 것은 기업의 구조적 관성과 충돌해 생존 위험을 높인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이 글에서는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가업승계 케이스를 중심으로 가업승계의 핵심 성공 요인 5가지를 다루고자 한다.


1. 청우하이드로와 대한전선,
후계자를 일찌감치 선정하고 육성하라


인천 소재 펌프 제조기업 청우하이드로는 1967년 설립됐다. 오로지 산업용 펌프 생산에 집중하며 성장을 해오다가 1990년대 외환위기 사태로 회사 형편이 어려워지자 당시 창업주 안상구 회장의 아들 안송준 대표가 유학 중이던 미국에서 귀국해 가업에 합류한다. 임직원이 합심해 노력한 끝에 회사는 제자리를 찾았고 그 과정은 자연스럽게 경영 수업이 됐다. 안 회장은 2009년경 당시 안송준 전무에게 지분과 경영권을 넘기며 사실상 가업을 승계했고, 현재는 공동대표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후계자인 안 대표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현장에서 시작해 10년 동안 함께 일했기 때문에 구성원에게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승계할 수 있었다.

가업승계의 핵심은 후계자의 선정이다. 창업을 통해 사업을 처음부터 키우는 것과 달리 가업승계는 이미 완성된 사업과 조직을 물려받아 경영하게 된다는 점에서 어쩌면 창업보다도 더 어려운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하나하나 시도하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승계 순간부터 규모가 상당한 사업체를 경영하는 책임을 한 번에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는 기업의 전략, 조직, 시스템, 문화의 형성과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리더가 바뀌면서 승승장구하던 기업이 갑자기 몰락하기도 하고 반대로 침체와 위기에 빠졌던 기업이 단숨에 변신해 급성장하기도 한다. 앞서 가족기업의 경영 성과가 일반 기업 대비 더 뛰어났다고 언급했지만 자식들에게 최고경영자 지위를 물려주는 경우 외에 이사회 구성원으로만 참여하거나 경영에 직접 참여는 하지 않으면서 지분을 가지고 대주주 역할만 하는 경우도 포함한 경우다. 자녀에게 최고경영자 자리를 직접 물려주는 경우로만 한정하면 가업승계의 성공 확률은 크게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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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전선은 준비 부족으로 승계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다. 대한전선은 1955년 설립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전선 업체로 이미 1960년대에 증시에 상장하고 한때 재계 5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다양한 산업에 진출하고 공격적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렸으나 2004년 회장의 갑작스런 유고로 제대로 준비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급하게 승계가 이뤄졌다. 당시 24세의 자녀가 가업을 물려받았으나 막대한 상속세와 경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9년 후 사업을 매각하고 말았다. 대한전선은 사모펀드의 구조조정을 거쳐 2021년 호반산업에 인수됐다.

가업승계를 위한 후계자를 선정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일이다. 따라서 창업주는 명확한 평가 기준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후계자 선정 기준은 경영 능력, 경험과 전문성, 의지와 열정, 가치관 공유 등 다양한 측면이 고려돼야 하며 자녀라도 절대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상태에서 최고경영자 직책을 승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도 일찌감치 경영 후계자를 선정하는 것은 기업이 안정 속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위 세대에서 이뤄 놓은 경영 노하우를 습득하고 실력을 키울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가업승계 프로세스는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가장 먼저, 계획 및 준비 단계에서는 가족회의 등을 통해 승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후계자를 선정한다. 후계자는 승계에 필요한 경영 수업을 받도록 하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역할 등에 대해서도 교통정리를 해둔다. 별도로 법적, 세무적인 측면에 대한 사전 대비도 필요하다. 이 단계는 승계 시점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보통 5∼10년 전에는 이 절차가 시작돼야 한다. 경영 승계에 소요되는 시간은 현 경영자의 건강, 후계자의 나이, 사업 환경 등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어느 정도 경영 수업이 이뤄졌다고 판단되면 다음 단계에는 점차적으로 후계자의 경영 참여가 이뤄진다. 이 단계에서는 실제로 현재 경영자의 책임과 권한이 점진적으로 후계자에게 넘어간다. 물론 그 과정에서 후계자에 대한 멘토링과 코칭은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이 기간은 대개 2∼5년 정도가 소요되며 후계자가 보여주는 성과에 따라 기간이 다소 길어지거나 짧아질 수 있다. 마지막 단계는 공식적인 경영권을 넘겨받는 단계다. 후계자는 최고경영자 직책을 수행하며 기존 경영자는 명예직으로 물러나 일정 기간 동안 신임 경영자가 잘 안착할 수 있도록 조언과 지지를 보낸다.


2. 삼표시멘트와 진주햄,
지배구조를 명확하게 하라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란 기업 내부의 중요 의사결정 및 그에 따른 책임과 역할을 규정하고 대내외적으로 소통하는 시스템 또는 체계를 의미한다. 가업승계 이후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는 다양하다. 법적 및 규제 위반으로 벌금이나 소송 등의 비용 부담을 초래할 수도 있고 효율적인 자금 운용 및 재무관리가 되지 않아 경영 안정성을 위협할 수도 있다. 신임 경영자가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데도 적절한 통제가 되지 않으면 투자 실패, 생산성 저하, 조직 내부 갈등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고객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쳐 신뢰 상실, 고객 이탈,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중소·중견 기업의 경우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높지 않은 경우가 많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오너 가족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으면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사업 규모가 작기 때문에 외부 감사나 경영 정보 공개의 수준이 높지 않고 치밀한 내부 관리 체계를 갖추기 어려운 요인도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비교적 잘 성장해 왔다면 그것은 창업주의 사명감과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실행력을 잘 발휘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카리스마는 흔한 자질이 아니고 딱히 유전되는 것도 아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창업자의 2세, 3세가 평범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십 년이 넘도록 성공적인 경영을 이어나가는 기업들은 예외 없이 개인의 리더십과 카리스마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 시스템과 조직문화에 의한 경영을 추구하는데 그 기초 중 하나가 투명한 지배구조다.

따라서 가업승계 시에는 기업 지배구조를 명확하게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지배구조의 핵심 구성 요소로는 독립적이고 책임 있는 이사회 운영, 유능한 최고경영진 임명, 실질적인 내부 감사 및 감사위원회 운영, 주주 의사결정 참여 보장 등이 있다. 한국ESG기준원에 따르면 기업 지배구조 모범 규준은 이사회 리더십, 감사, 이해관계자 소통, 주주권 보호를 들고 있다.

삼표시멘트는 2023년 처음으로 ESG보고서를 발간했다. 뒤이어 한국ESG기준원이 선정하는 ‘지배구조 우수기업’으로 인정을 받았다. 국내 시멘트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선정된 것이고 전년도 ‘C등급’ 평가에 이어 3단계나 순위가 상승한 ‘A등급’ 평가를 받은 것이라 의미가 더 크다. 이런 결과를 얻기까지 삼표시멘트는 이사회 평가 도입,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설치,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ESG위원회 신설, 검증된 ESG보고서 발간 등 투명성 제고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은 삼표그룹의 3세 후계자 승계 과정에도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삼표그룹을 이끄는 정도원 회장의 장남 정대현 부회장은 2005년 입사 후 여러 계열사에서 근무하며 경험을 쌓다가 2019년 삼표시멘트 사장을 거쳐 2023년 말, 그룹 부회장에 보임됐다.

가업승계 기업의 지배구조는 일반적으로 한 명의 최고경영자가 경영을 총괄하는 방식이지만 경우에 따라 가족 구성원 중 두 명 이상이 공동 경영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구조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창업주 가족 내 화합이 전제돼야 한다. 과거 일부 기업에서 경영권을 두고 ‘형제의 난’이 발생했던 전례를 떠올려보면 이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진주햄의 박정진, 박경진 형제 사례는 인상적이다. 고(故) 박남규 회장이 1963년 창업하고 이어 박 회장의 셋째 아들인 고 박재복 회장이 외환위기 시련 속에서 지켜낸 회사는 2000년대 들어 CJ, 롯데 등 대기업의 육가공 사업 진출로 또다시 고전을 겪게 된다. 이에 2006년 당시 26세이던 박재복 회장의 차남 박경진 부사장이 먼저 경영에 참여했고, 2010년 부친이 타계한 후에는 당시 글로벌 금융 기업 씨티그룹(Citigroup) 상무였던 장남 박정진 사장도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가업에 뛰어들었다. 형제간의 우애가 두터웠던 덕분도 있지만 두 형제가 각자 잘하는 부문에 주력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 뛴 덕분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승계 후 회사는 더욱 성장했다. 2대에 걸쳐 쌓아 올린 육가공 사업 역량을 바탕으로 매년 70~80개의 신제품을 출시하고 고객 세분화와 채널 확장 등 마케팅을 강화했을 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 공략과 수제 맥주 등 신사업 진출 등을 통해 종합 식품회사로 도약을 이뤄냈다.


3. 삼진인터내셔널,
내·외부 전문가를 적극 활용하라


전쟁 통에 부산에 내려온 피난민에게 먹거리로 어묵을 만들어 팔던 삼진어묵은 2011년 공장 신축 과정에서 발생한 채무로 경영 위기에 빠졌다. 당시 미국에서 학업을 막 마친 28세의 박용준 대표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해 가업에 뛰어들었다. 거래선 납품에 의존한 기존 사업 방식을 탈피, 소비자 직접 판매를 개척하고 2013년 어묵 베이커리 사업에 진출함으로써 ‘반찬에서 베이커리’로 사업 모델 변신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2016년 매출이 700억 원을 넘어가기 시작하자 조직 관리의 한계를 느끼고 식품업계 30년 경력의 동원F&B 황종현 부사장을 삼진어묵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그리곤 자신은 마케팅과 해외사업 개척에 집중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삼진어묵은 프리미엄 어묵 시장의 선구자가 됐고 경영 승계를 마친 2013년 82억 원이던 매출이 2018년 960억 원으로 10배 이상 늘어 성공적인 가업승계의 표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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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가 사업을 청산하지 않고 유지하면서 넘겨주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혈연(가족, 친족)에 의한 승계, 전문경영인에 의한 승계, 다른 기업(법인)에 매각을 통한 승계가 그것이다. 전문경영인 승계나 타 기업에 매각하는 경우는 승계 이후 경영 관리를 위한 충분한 전문성이 갖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혈연에 의한 승계의 경우 상당한 경영 수업을 거치지 않는 한 처음부터 전문경영인 수준이 되기는 어렵다. 공식적인 승계가 이뤄진 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내·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자문과 조언을 구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삼진인터내셔널처럼 선대 경영자의 유고나 경영 위기 등으로 인해 급하게 승계에 나서는 경우는 전문경영인을 영입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가업을 승계한 최고경영자는 전문경영인으로서 역량을 키우기 위한 네트워크를 잘 구축하고 활용해야 한다. 우선 해당 업계 전문가와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사업 기회와 위험 요인 등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식 서비스 업종이라면 식품 및 외식 전문가, 유통 및 물류 전문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소비자 트렌드의 변화를 읽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폭넓은 네트워크와 신뢰를 구축하는 데는 시간이 소요되므로 인내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산업 분야 외에 법률, 회계 등 분야의 전문가들과도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최고경영자라도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혼자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큰 부담이 된다. 그래서 경영자는 ‘외로운 자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혼자 할 필요는 없다. 분야별로 자문이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멘토 또는 코치가 있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략 방향, 조직 문제, 인사 이슈 등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의 경우 해당 분야에 풍부한 경험과 식견을 갖춘 전문가나 권위자로부터 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기존 경영자의 멘토링을 받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젊은 경영자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시대에 맞는 조언과 아이디어라는 점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근면, 성실과 같은 조언은 현실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최고경영자 과정에 등록하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후계자가 경영에 대한 전반적인 소양을 갖출 기회가 부족했다면 효율적으로 부족한 경영 지식을 보충하는 기회가 된다. 이런 과정은 대개 최신 경영 트렌드 및 기술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비슷한 처지의 동문들과 친밀한 관계를 쌓는 기회도 제공한다. 다만 교육 자체로는 현장에서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고 상당한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도 감수해야 한다.

외부 컨설팅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가업승계 기업 경영자에게 좋은 전략이다. 외부 컨설턴트들은 전문가라는 점 외에도 중립적이며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업의 강점과 약점을 식별하고 전략적 개선 방안을 제안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마케팅 전문 컨설턴트를 고용해 시장조사와 경쟁 분석을 수행하고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개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업은 시장에서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고객들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외부 컨설팅을 받는 것은 전략 수립, 비즈니스 모델 강화, 경영 효율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유용하다.

전문가 네트워크는 아니지만 다양한 이사회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가족기업에서는 일반적인 이사회 외에도 자문이사회(advisory board), 가족이사회(family board)를 두며 운영할 수 있다. 자문이사회는 사외이사와 비가족 구성원, 기업의 자문역 등으로 구성되며 소규모 가족기업에 많이 존재한다. 가족이사회는 지분을 보유한 가족 구성원으로 이뤄진 이사회로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가족 구성원도 포함된다. 특히 다른 네트워크 채널이 마땅치 않을 때 오너의 독단 경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다.


4. 교보문고와 미슐랭,
창업 이념을 승계하고 발전시켜라

지난 2월 미국 데이터 전문 기업 스노우플레이크(Snowflake Inc.)의 최고경영자 프랭크 슬루트만이 은퇴를 발표하자 회사의 주가가 하루 만에 20%나 폭락했다. 이와 같이 상장 기업 최고경영자의 변경은 종종 시장에서 주가 폭락 또는 폭등과 같은 극적인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시장의 이런 반응은 기업의 미래에 미치는 경영자의 영향력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반영한다. 그런 면에서 경영자는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원하는 구세주로 칭송될 수도, 멀쩡한 회사를 망가뜨리는 악당이라고 매도될 수도 있는 자리다. 이런 기대는 가업승계 기업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승계 이후 최고경영자가 바뀐 후에도 기업의 지속성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기에 대한 답은 창업 이념에서 찾을 수 있다.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경영 사상가 피터 드러커는 최고경영자의 근본적인 업무 중 하나가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업의 본질, 즉 조직이 어떤 비즈니스에 속해 있는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창업 이념이 기업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미래 방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가업승계로 경영자가 교체되는 것과 같이 중차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일수록 이를 승계하고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창업주의 열정과 비전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은 대체로 사기가 높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려고 한다. 또한 창업 이념은 구성원 개개인에게 일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조직의 응집력을 강화하며 목표 의식을 고취하는 데 기여한다. 그래서 주요 기업들은 창업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경영진이 바뀌어도 창업 이념을 소중하게 생각한다.1

창업 이념이 구체적인 업무 지침으로 남아서 수십 년을 유지하는 사례도 있는데 바로 교보문고다. 교보생명의 창업주 고(故) 신용호 회장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사업을 시작한 민족 사업가다. 광화문 한복판에 사옥을 지은 후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점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1981년 사옥 지하 1층에 교보문고를 열었다. 틈날 때마다 매장을 돌아보던 신 회장은 직원들이 서점을 찾는 손님들을 대하는 모습을 관찰한 후 다섯 가지 지침을 정리해 실천하도록 했다고 한다. ‘책을 한곳에 오래 서서 읽는 것을 절대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앉아서 노트에 베끼더라도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등 당시 직원들에게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지침이었다. 책을 상품 이전에 문화를 위한 시민들의 양식으로 생각한 선대 회장의 철학은 세기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실천되고 있다.

경영 지식이나 노하우는 전문가를 뽑든지 돈 주고 사올 수 있지만 가치와 이념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해외의 장수 기업들을 보더라도 환경 변화에 따라 전략과 사람을 바꾸더라도 경영 이념과 핵심 가치만큼은 적어도 수십 년, 길게는 100년 이상 대를 이어 지켜 간다. 그런 기업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현재 생산량 기준 세계 최대의 타이어 제조사인 프랑스 미슐랭(Michelin)이다.

포브스(Forbes)가 발표한 ‘향후 100년간 살아남을 100대 기업’ 리스트에도 높은 평점을 받으며 당당히 포함된 이 회사에는 5가지 핵심 가치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고객 만족’이다. 잘 알려진 미슐랭가이드 사업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런 핵심 가치를 실천하려는 일환이었다. 고객사의 성공을 위해서는 대중들이 차량을 이용한 여행을 많이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운전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는 생각에 호텔, 레스토랑에 방문했을 때도 운전자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정보 가이드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업승계 기업의 신임 경영자가 창업주의 경영 이념을 정착, 발전시키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하다.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창업 이념과 핵심 가치를 실천하는 직원들을 찾아내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런 사례들은 회사의 교육 프로그램에 포함해 강조하는 것도 좋고 대외적으로도 회사의 웹사이트, 홍보 자료, 지역사회 활동 등을 통해서 전파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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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삼영기계,
승계 후에도 혁신은 계속돼야 한다


충남 공주에 소재한 엔진 부품 제조기업 삼영기계의 한국현 사장은 카이스트 공학박사 출신으로 삼성전자에서 미국 산호세 연구소 주재원을 포함해 10년 이상 경력을 쌓고 부친의 가업을 승계했다. 1975년 설립된 삼영기업은 선박 등에 쓰이는 중속(中速) 엔진 부품인 피스톤, 실린더헤드, 실린더 라이너, 엔진블록 등을 주로 생산하는 기업으로 한 사장이 2013년 합류하기 전까지만 해도 핵심적인 주조(casting) 공정을 100% 수작업으로 해왔는데 힘들고 위험한 업무 특성상 회사는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100년 기업’ 꿈을 이루는 데 동참하겠다고 결심했던 그는 ‘삼영 비전 TF’를 추진해 조직과 공정의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임직원들과 함께 찾고 ‘샌드 3D프린팅’이라고 하는 최첨단 기술 및 장비도 도입했다. 이 기술로 주조 공정에 필수로 여겨져 온 금형 작업 없이 거푸집을 제작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수작업을 80%까지 줄였다. 이런 혁신 노력에 힘입어 회사는 꾸준히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2 우리나라 제조 중소기업 중 창업 이후 업력 20년이 넘어서도 종사자 수가 50인 미만인 성장 정체 상태에 놓인 기업 비중이 20.5%에 달한다고 한다. 중소기업이 사업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큰 어려움인지를 잘 보여주는 결과다. 어느 정도 성장을 했는가 싶다가도 외부 환경이 바뀌고 경쟁이 치열해지면 다시 역성장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가 성장 기회가 적은 현재 업종을 고수하는 데 있다.

『히든 챔피언』의 저자 헤르만 지몬은 탁월하고 지속적인 혁신 없이는 미래 시장은 물론 현재 시장에서조차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다. 히든 챔피언들이 오랜 기간 세계 정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비록 특정 상품이나 기술, 사업 분야에 특화하지만 그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시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비단 히든 챔피언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창업주의 성공을 물려받아 키워가는 가업승계 기업에서는 지속적인 성장의 모멘텀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 기존 제품의 성공에 안주해 신제품 개발에 실패하거나 현재의 시장에 만족해 새로운 시장을 도외시하는 경우 또는 미래 먹거리를 개발하기 위한 투자를 하지 않는 등 ‘현상 유지의 오류’에 빠지면 사세가 언제 갑자기 위축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가업승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존 경영 방식의 우수한 부분은 유지하되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잘하는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는 방식은 일반적으로 한 분야에서 최고 기업이 되는 데 유리한 전략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대기업들조차 개별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나 환경 변화로 갑작스런 생존 위기를 맞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세기 말 설립돼 오랜 세월 사진 필름 시장에서 세계 선두를 달렸던 ‘코닥’은 디지털 변화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파산했고 1985년 설립 후 북미의 비디오 대여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블록버스터’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대두 속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고전하다가 2010년 사업을 접은 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례다.

가업승계 기업의 경우도 기존 사업의 틀 안에 갇혀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실패하기 쉽다. 기존의 경영 전략이나 사업 모델이 과거에 효과적이었더라도 바뀐 트렌드와 소비자 요구를 소홀히 하면 안 되는 이유다. 과거의 성공을 유지하는 수준의 가업승계를 목표로 하는 경우 경쟁에서 뒤처지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성공적인 가업승계는 기존의 성공 공식에 안주하지 않고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이 수반돼야 한다.
  • 김성남 김성남 | 칼럼니스트

    필자는 듀폰코리아, SK C&C 등에서 근무했고 머서, 타워스왓슨 등 글로벌 인사/조직 컨설팅사의 컨설턴트로 일했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과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미래조직 4.0』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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