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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현재와 미래

시대에 따라 달라진 일의 미래
공채의 종말과 AI, 일의 의미도 바꾼다

이상준 | 379호 (2023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인류에게 일의 의미는 꾸준히 변화해왔다. 때로는 생존을 위한 ‘노동’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야 했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자는 국가적 차원의 ‘작업’에 동원되기도 했고, 이에 저항하는 ‘행위’를 통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오늘날 일의 의미는 더욱 큰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공채 제도가 막을 내리고 있고, 플랫폼이 자본의 지배적인 사업 방식으로 부상하면서 플랫폼을 통해 일이 거래되는 긱 이코노미가 확대되고 있다. 노사관계 역시 변화하면서 온라인에서 펼쳐지는 구성원 행동주의 현상인 ‘디지털 목소리’가 등장했다. 인공지능(AI), 특히 생성형 AI의 등장은 일의 세계에 더욱 큰 위협이 되고 있다. AI는 우리가 일을 하는 방식과 방법을 뒤흔들 뿐 아니라 많은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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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대한 전환의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보건 위기, 산업 고도화로 촉발된 기후 위기, 인구 구조의 변화와 같은 외부 충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경제적 체제와 그 토대를 뒤흔들고 있다. 특히 자동화(automation)와 인공지능(AI)에 기반한 기술 발전은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의 현재 모습에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정치경제학자 칼 폴라니가 주목했던 거대한 전환(Great Transformation)이 19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근대사회와 근대 시장의 결합으로 탄생한 20세기 시장 사회(Market Society)를 의미했다면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21세기의 거대한 전환은 그 결합의 전제였던 현대 국가 체제와 현대 시장 체제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폭발력을 갖고 있다.

일의 미래는 큰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일의 형태, 일하는 시간과 공간, 일하는 방식 등 모든 방면에서 일의 현재가 해체되고 일의 미래가 새롭게 탄생할 것이다. 새롭게 탄생할 일의 현실은 가상(virtual), 그리고 확장 현실(augmented reality)까지 포함해서 전개될 것이며 우리의 대응 방식에 따라 그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이러한 도전에 현명하게 대응하기 위해선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좌표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화가 폴 고갱이 그린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의 제목처럼 일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종합적으로 전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1. 일의 의미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필자는 일의 의미를 바라보는 철학적 시각 중 하나로 20세기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에 주목한다. 그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는 활동적인 삶(vita activa)을 구성하는 것으로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를 제시한다. 노동은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이뤄지는 모든 활동이 이에 해당한다. 작업은 환경을 변화시켜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일하는 것을 뜻한다. 창작 활동, 생산 활동 등이 이에 해당한다. 행위는 공동체 속에서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이뤄지는 일을 뜻한다. 공적 발언과 활동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필자는 노동, 작업, 행위가 일의 유형이자 구성 요소이면서 동시에 일의 의미를 구분 짓는 개념이라고 본다. 즉, 무엇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에 따라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s)에서 활발한 토론을 하던 이들은 행위로 가득한 삶을,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탄광에서 고된 채굴을 하던 이들은 노동으로 가득한 삶을 영위했던 것이다. 이렇듯 노동, 작업, 행위의 관점에서 바라본 일의 모습은 연대순으로 선형적으로 발전해온 것이 결코 아니다. 시대의 상황에 따라, 개인이 처한 조건과 맥락에 따라 일의 모습과 그 의미는 다르다.

필자는 노동, 작업, 행위라는 세 가지 개념에 주목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일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살펴보고 앞으로 일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그 상을 그려보고자 한다.


2. 개발 국가의 비전(vision)과 떠오르는 일의 세계

1950년대부터 살펴보자. 그 당시 한국에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작업과 행위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생존 그 자체만을 위해서 농촌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노동만이 가득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 국민의 절대다수였다. 작업에 해당하는 기업의 생산 활동은 그나마 남아 있던 설비와 장비가 한국 전쟁 속에 폐허가 되면서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다.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유의미한 공적 발언과 활동, 즉 행위는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극소수에게 허용된 특권이었다. 이렇듯 작업과 행위는 매우 미미했고, 노동으로 가득했던 시대였다. 이 당시 일의 의미는 바로 생존 그 자체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경제개발과 산업 부흥이 시작되면서 일의 양상이 변화했다. 농촌에서 서울로, 새롭게 탄생하는 산업 도시들로 인구가 이동하면서 일의 모습이 새롭게 탄생했다. 같은 노동이라 하더라도 그 일이 이뤄지는 공간이 농촌에서 도시로,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일이 이뤄지는 시간도 변화하게 된다. 자연의 계절 변화에 맞춰 농사가 이뤄졌다면 산업화에 호출된 노동은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의 영화 ‘모던 타임스(Modern Times)’에 나오는 것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체계적이고 규칙적인 ‘노동시간’에 맞춰 이른바 과학적 관리(Scientific Management)라는 이름 아래 통제된다.

이 시기엔 개발 국가(developmental state)의 산업사회 비전이 관료 조직과 재벌을 통해 위에서부터 아래로 촘촘하게 관철됐다. 농촌을 떠나 경공업과 중화학공업 현장에 들어간 일꾼들은 먹고살기 위해 노동을 하면서 제품을 만들고 도로와 건물을 짓는 국가적 차원의 ‘작업’에 투입됐다. 국가는 이들에게 ‘산업 역군’이라는 칭호를 붙여주면서 정체성을 부여했고, 이들의 노동과 작업이 그렇게 ‘조국 근대화’라는 목표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것으로 인정됐다. 즉, 국가는 개인의 노동과 집단적 근대화 작업을 포장해 숭고함을 담아 승격시킨 것이다.

이것은 아렌트가 말한 ‘행위’에 해당할까? 근대화에 동원된 일꾼을 국가의 부름에 끌려온 수동적인 존재로만 본다면 이것은 개인이 독립성과 자율성에 근거해 공적 공간에서 표출한 행위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일종의 국가적 의례(ritual)이자 예우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러나 만약 개인이 이러한 부름에 일종의 자발적인 의미를 부여해 바라본다면 이들의 삶을 산업화를 긍정하는 서사가 관통하는 행위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가 바로 그러한 인물을 상징한다. 덕수(황정민 분)는 흥남철수 작전으로 남으로 피난을 온 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광부로 일하러 독일로 향하기도 하고, 베트남 전쟁에서도 참전하며 치열한 인생을 살아간다.

한편, 노동과 작업을 하면서 국가가 그린 설계와 자본이 이끈 수행에 저항하는 이들이 있었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했던 노동 운동가 전태일이 바로 그러한 인물을 상징한다. 이들의 활동은 노동과 작업을 넘어서서 압축 산업화의 폐단을 조명하고 ‘인간적인 삶’을 요구하는 공적 발언과 활동에 해당하기에 아렌트가 말한 ‘행위’에 해당한다.

정리하면,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개발 국가의 호출과 동원이 농촌을 탈출하고자 하는 이들의 노동 욕구와 맞아떨어지면서 산업화, 근대화의 집단적 작업을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국가가 승인한 서사와 이에 저항한 행위가 격렬하게 충돌하기도 했다.


3. 민주화, 세계화, 그리고 붕괴하는 일의 세계

1980년대를 살펴보자. 이 시기에는 개발 국가의 관성이 유지되는 와중에 점차 도시 중산층이 형성되던 때였다. 정치학자 배링턴 무어가 “부르주아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no bourgeois, no democracy)”고 언급한 것처럼 산업화를 거치면서 형성된 도시 중산층의 존재는 민주화를 위한 필요조건이었다. 이 시기에는 일의 양상과 일의 시공간이 변화하게 된다. 도시 중산층의 소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서비스업이 출현해 성장하고, 일의 시간과 공간은 서울과 이를 둘러싼 수도권, 지방 대도시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특히 서울 내에서도 광화문, 여의도와 함께 강남이 중심 업무 지구로 성장하게 된다.

먹고사는 문제를 상당히 해결하면서 단순히 생존을 위한 노동을 넘어서서 의미 있는 작업을 추구하는 직무와 직종이 늘어나고, 이것이 바로 도시 중산층을 지탱하는 힘이 됐다. 그리고 그 힘은 곧바로 아렌트가 말한 공적 공간의 ‘행위’로 이어지게 된다. 즉, 정치적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커져가면서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이른바 넥타이 부대의 참여는 바로 그 당시에 이미 견고하게 자리 잡은 도시 중산층 사무직(white collar)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 시기에는 국가가 제공하는 서사와 이에 순응하는 행위에 대항해 자율성과 독립성에 기반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행위가 강하게 분출되던 때였다. 특히 6월 항쟁 이후 이어진 이른바 노동자 대투쟁은 향후 노동조합 결성과 활동을 통한 집단적 노사 관계 형성의 토대가 된다. 즉, 정치 영역에서는 6월 항쟁이, 경제 영역에서는 노동자 대투쟁이 이 시대를 사로잡았던 대표적인 ‘행위’였다.

1990년대의 시대정신은 이른바 세계화(globalization)였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등이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세계화를 위한 도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다. 이때를 기점으로 많은 이가 붕괴하는 일의 세계를 직면하게 됐다. 국가 근대화, 산업화 프로젝트의 약속이었던 생애 계약(lifetime employment)이 깨지고 정리 해고가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노동과 작업을 이른바 ‘평생직장’에서 할 수 있도록 보장했던 고성장 시대가 끝났고, 이는 곧 한국이 만들었던 한 시대의 사회 계약(social contract)이 끝났음을 의미했다. 정리하면, 모두가 믿었던 산업사회의 노동과 작업 기회, 그리고 도시 중산층의 윤택한 삶이 뒷받침한 저항 행위까지 담아낸 일의 세계가 한순간에 붕괴됐고, 이는 곧 가정과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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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저성장은 고착화됐고 청년 실업 문제가 부상했다.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두드러지면서 이른바 88만 원 세대 담론이 출현했다. 2007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면서 월스트리트의 위기가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 즉 실물경제까지 위협하고 경기침체를 불러왔다. 이는 곧 한국에서 1990년대부터 지속돼온 불안정 노동(precariat) 문제를 악화시켰고, 뒤집어서 말하면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를 향한 청년 세대의 갈망은 해소되지 못했다.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대기업 정규직과 노동조합이 없는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면서 이른바 ‘노동시장 이중 구조’ 문제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정리하면, ‘작업’과 ‘행위’는 꿈꾸지도 못한 채 ‘노동’할 기회조차 찾기 어려운 청년 세대의 좌절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2010년대 이후부터는 모바일 혁명과 플랫폼 기업의 등장으로 인해 노동과 작업이 본질적인 변화를 겪게 됐다. 통신 비용의 급격한 감소로 업무 지시와 통제의 시공간에 경계가 사라졌다. 아울러 일의 형태 또한 큰 변화를 겪게 됐다. 플랫폼 기업의 등장으로 고용 관계가 다변화됐으며 업무 또한 파편화됐다. 정리하면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노동과 작업의 안정성과 지속성이 위협받기 시작했고, 2010년대부터는 일 그 자체가 쪼개지고 전형적이지 않은 계약 관계 속으로 포섭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던 전형적인 일의 세계는 붕괴하기 시작했다.


4. 체제의 균열과 전환:
변화하고 역동하는 일의 세계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노동, 작업, 행위 개념을 바탕으로 해방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서 일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살펴봤다. 즉, 개인 차원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 차원에서 일의 의미가 어떻게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는지 그 역동적인 경로를 추적해봤다. 개발 국가의 비전을 통한 고성장 시대부터 민주화, 세계화를 거쳐 고용 없는 성장으로 대표되는 저성장 시대에 이르기까지 일의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왔다. 노동에서 작업으로, 그리고 작업에서 행위로 선형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체제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일의 세 가지 측면이 복잡다단하게 얽혀 변화하고 역동하는 것임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경제 체제와 일의 세계는 안정적인가? 필자는 매우 불안정하고 유동적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주목하고 있는 몇 가지 현상을 언급하고 일의 의미와 관련된 함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공채의 종말’로 대표되는 노동시장의 변화다. 공채는 기업 본사에서 정형화된 시험을 통해 정기적으로 대규모 채용을 해 계열사에 인력을 배치하는 것이다. 경력이나 경험이 아니라 시험으로 사람을 뽑는다는 측면에서 과거제도가 민간 영역에 도입된 것과 비슷하다. 한국, 일본 등 주로 동아시아의 특수적인 채용 제도이기도 하다. 공채 제도는 시험으로 범용 인재(generalist)를 선발해 회사의 사람으로 키워낸다. 그 과정에서 조직 내부 경쟁을 통한 성과 보상과 숙련 형성이 이뤄진다. 그룹 채용을 통해 여러 계열사에 배치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교육과 훈련을 통한 소속감 형성, 계열사 간 협업 증진에 유리하다. 한국에선 주로 재벌 그룹과 중견 기업을 위주로 공채 제도가 오랫동안 유지돼 왔다.

수시 채용은 부서 단위에서 직무에 적합한 인재(specialist)를 필요에 따라 선발해 곧바로 배치하는 방식이다. 이 새로운 흐름은 원래 서구에서 오랫동안 활용돼 왔던 채용 경로이자 방법이다. 조직 외부의 노동시장 경쟁을 통한 채용과 그에 기반한 성과 보상이 이뤄진다. 즉, 직군 및 직무에 초점을 맞추고 자유로운 이직을 통해 사람이 이동하면서 경력과 경험을 쌓으며 숙련을 형성하는 것이다. 미국의 기술 기업들이 모여 혁신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실리콘밸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에도 이러한 수시 채용이 도입돼 확산되고 있다. 2019년 현대차그룹을 시작으로 SK, LG, 롯데그룹 등 주요 대기업 집단이 대규모 공채를 폐지하거나 축소할 것임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채의 종말은 일의 의미에 어떠한 함의를 갖는가?

인력이 공채를 통해 선발되던 시대에는 기업이 일종의 중세 시대 가문(noble family)과 같은 위상을 갖고 있었다. 비유적으로 그러했고, 실제로도 소유주 일가를 중심으로 한 기업 지배구조가 그러했다. ‘현대 맨(Hyundai Man)’과 같은 표현이 보여주듯이 특정 재벌 그룹에 속해 일한다는 것은 그 ‘부족(clan)’과 평생을 함께하면서 경력과 경험을 쌓고 은퇴한다는 것을 뜻했다. 전형적인 공채의 시대에 일의 의미는 곧 가문의 영광과 좌절을 모두 함께하면서 사업의 세계에서, 혹은 아렌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작업’의 세계에서 성취를 거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수시 채용의 시대에 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제는 ‘가문’이 아니라 ‘개인’과 ‘직무’가 중요하다. 소속감과 충성심이 아니라 평판과 연결망에 따라 조직 외부의 노동시장에서 이동하며 괜찮은 일자리를 향한 경쟁과 함께 경력 경쟁이 동시에 벌어지는 체제로 전환되는 것이다. 기존의 공채 체제에선 기업이 조직 내부에서 숙련 형성 기회를 제공했지만 수시 채용 체제에선 개인이 인턴십, 계약직 등을 통해 경험과 경력을 쌓고 숙련을 형성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청년 세대에겐 바야흐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며, 기업에 속해 나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드넓은 호수에서 홀로 노를 젓고 나아가는 것과 같은 일의 세계가 도래한 것이다. 즉, 전근대적이지만 여럿이 함께하던 노동과 작업의 세계에서, 현대적이지만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일의 세계로 전환되고 있는 셈이다.

둘째, 플랫폼의 부상으로 대표되는 기업의 변화다. 고정된 물리적 시공간에서 고용주-피고용인 관계가 명확한 전통적인 근로 계약이 점차 사라지고, 연결망의 축(hub)에 위치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는 플랫폼이 자본의 지배적인 사업 방식이 되고 있다. 우버, 에어비앤비, 유튜브 등 글로벌 플랫폼 모두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브로커(broker)로서 기능하면서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유지한다. 아울러 일 그 자체를 쪼개고 조각내서 맡기고 다시 이를 회수해 합치는 플랫폼도 등장했다. 흩어져 있는 다수 군중(crowd)이 일의 일부 조각(microtask)을 완성해 제공하고, 플랫폼 기업이 이를 다시 합쳐서 고객사에 제공하는 형태로,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Amazon Mechanical Turk)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AI를 학습시키기 위해 필요한 방대한 자료를 만드는 데이터 라벨러(data labeler) 또한 대부분 이러한 플랫폼 기업을 통해 일감을 받고 업무를 처리한다. 그 과정에서 라벨링 작업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자료가 어떤 AI를 학습시키기 위해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어떠한 목적과 용도로 개발되고 있는지 어렴풋이 추측만 할 뿐이다. 일하는 개인이 플랫폼을 통해 거래되는 일의 의미 자체를 파악할 수 없고 전체적인 상을 그릴 수도 없는 불투명한 노동과 작업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셋째, 디지털 목소리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노사 관계의 변화다. 필자가 창안한 개념인 ‘디지털 목소리(digital voice)’는 전통적인 오프라인 채널이 아니라 온라인 광장에서 펼쳐지는 구성원 행동주의(employee activism) 현상을 뜻한다. 즉, ‘온라인을 통해 분출되는 노동자의 목소리와 이에 의해 촉발된 여러 개별 활동과 집단행동(collective action)’을 말한다. 2021년 10월 초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스타벅스코리아 직원들의 트럭 시위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마케팅 이벤트 등 과도한 업무 부담에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직원들이 다른 이들과 블라인드 앱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토스 앱을 통해 익명으로 시위 비용을 모금했다. 이들이 주도한 트럭 시위는 많은 이의 관심을 받았고, 결국 스타벅스코리아 측의 개선책 발표를 이끌어냈다. 이들은 기업 측의 고충 처리 절차를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 민주노총의 지지와 연대 메시지를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행동을 끝마쳤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그 밖에 대한항공 소유주 일가 갑질 근절과 퇴진을 요구한 촛불시위(2018), 판교 IT·게임 서비스 기업 노동조합 설립 운동(2019), 공기업 일자리 정책 관련 시위(2020), 현대자동차·LG 등 제조 대기업 사무연구직 노동조합 설립 운동(2021)에 이르기까지 이들 운동은 모두 블라인드라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한 익명의 네티즌들이 느슨한 연대를 통해 움직인 결과다.

이러한 디지털 목소리 현상을 해석하는 이론적 틀로는 이탈과 항의 이론, 소통 비용 경제학, 네트워크 이론이 있다. 이를 통해 디지털 목소리 채널을 통해 분출되는 노동자의 목소리, 이러한 현상을 매개하는 플랫폼의 등장,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추동하는 느슨한 연대의 형성에 대해 고찰할 수 있다.

앨버트 허시먼(Albert O. Hirschman)의 이탈과 항의 이론1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 목소리는 일반적으로 항의를 포괄하는 발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퇴사와 같은 조직 이탈(exit), 업무를 게을리하는 태만(neglect), 묵묵히 고통을 감내하면서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충성(loyalty)이 아니라 문제 제기를 통한 집단행동에 해당한다.

거래비용 경제학(Transaction Cost Economics, TCE)2 의 생각 실험을 빌려온 소통 비용(communication cost) 경제학3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 목소리 플랫폼에서는 가입자가 온라인 광장에서 자유롭게 글을 쓰고 댓글을 달 수 있으며, 이는 곧 플랫폼이 관리하는 서버에 기록되고 저장된다. 즉, 플랫폼은 소통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다자 간 소통을 지속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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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조직 이론4 은 디지털 목소리 채널과 플랫폼이 싹 틔울 수 있는 느슨한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의 광장과 탑5 의 비유를 빌려 설명하면 이는 무질서한 소통의 광장(square)도 아니고 노동조합, 노사협의회, 기업 고충 처리 절차와 같은 체계처럼 견고하게 짜인 소통의 탑(tower)도 아니다. 디지털 목소리 플랫폼에서는 느슨한 연대가 작동한다. 즉, 네트워크다.

강한 소속감에 기반한 단체 행동과 이에 대한 대응으로 상징됐던 한국의 노사 관계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공채의 종말, 생애 계약의 종말, 고용계약의 다변화, 작업과 업무의 파편화는 이원화된 노사 대립 구도를 붕괴시킬 것이다. 특히 퇴사와 이직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청년 세대는 이러한 노사 관계 속에 편입되지 않고 새로운 방식을 개척할 것이다. 디지털 목소리는 집단적 노사 관계에서 이뤄지는 공적 발언과 행동, 즉 아렌트가 말한 ‘행위’ 자체를 온라인으로 이동시킨 것이며, 이는 곧 한국의 노사 관계에 균열과 전환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소속(membership)의 시대에서 접속(access)의 시대로 건너가고 있다.


5. AI가 바꿀 현실과 우리의 미래,
그리고 일의 의미

공채의 종말, 플랫폼의 부상, 디지털 목소리의 등장과 함께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여겼던 일의 세계에 어떠한 변화가 찾아올지 살펴봤다. 더 나아가 AI,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의 탄생과 발전은 변화가 아니라 혁명적 전복이자 일의 세계에 큰 위협이다. AI가 바꿀 현실과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앞으로 일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우선,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작동 방식을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세 가지 요소로 표현할 수 있다. 입력(input), 모델(model), 출력(output). 인간의 글, 그림, 사진, 소리, 음악 등 모든 형태의 데이터가 채집될 수 있으며, 앞서 언급한 대로 주로 플랫폼 기업을 통해 이뤄지는 다수 군중의 데이터 라벨링 작업을 통해 AI 모델이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가 준비된다. 이어서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 좀 더 세부적으로는 심화 학습(deep learning)을 위해 고안된 모델에 이러한 데이터가 투입돼 작동한다. 챗GPT의 경우 거대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에 기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데이터를 학습한 AI 모델이 사용자의 요청에 출력을 한다. 챗GPT의 응답이 바로 그러하다.

이러한 작동 방식에 따르면 앞으로 우리는 세 종류의 사람으로 나뉘게 될 것이다. AI를 위해 일하는 사람(input maker), AI를 설계하는 사람(designer), AI를 활용하는 사람(output user)이다.

먼저, AI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앞서 언급한 대로 채집, 라벨링처럼 단순 반복 업무를 통해 자연계의 모든 인지 가능한 정보를 AI 모델에 전달해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앞으로 일자리를 잃을 많은 이는 AI의 눈과 귀, 손과 발이 돼 데이터를 수집해오고 분류해 정리해주는, 즉 AI의 육신이 되는 노동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AI를 설계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오픈AI와 같은 조직에서 혁신적인 AI를 개발하는 기획자, 개발자 집단이다. 이들의 일자리는 안전할까? 수많은 코드와 이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는 깃허브(GitHub)의 코딩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향후 이러한 기획자, 설계자 집단까지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운영체제(OS)를 설계하는 AI의 등장도 가능하다.

셋째, AI를 활용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챗GPT와 같은 공개 AI와 MS 코파일럿(Copilot) 같은 기업용 AI를 모두 활용해 업무에 적용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이들이다. 사무실과 공장 모두에서 목격될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 즉 AI 활용 격차는 우리 시대 소득 격차의 요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 세 집단 중 어디에 속하는지에 따라 일의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단순 반복하는 일은 ‘노동’에, 기획하고 설계하며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일은 ‘작업’과 ‘행위’에 더 가까울 것이다.

다음으로 AI가 일의 세계에 끼칠 영향을 살펴보자. 노동 과정, 노동시장, 공공 정책에 대한 영향으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노동 과정에 끼칠 영향을 생각해보자. AI가 산업 전 분야에 걸쳐서 강력한 도구로 활용되면서 우리가 일을 하는 방식과 방법에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제조 과정, 생산품 서비스화, 전자상거래와 물류, 금융, 기업 경영, 창작, 의료와 법률 등 전문 영역, 코딩, 클라우드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AI는 이미 모든 산업 분야에 침투하고 있고, 앞으로 그 침투율이 더 높아질 것이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을 AI가 순식간에 대신 처리해주면서 인간은 무엇을 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둘째, 노동시장에 끼칠 영향을 생각해보자. AI에 더 많이, 더 깊게 노출될 직업은 더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즉, AI 노출도(AI exposure rate)에 따라 직업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는 얘기다. 이는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일자리의 양과 질 모두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은 사무직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고, 육체노동 일자리가 오히려 더 안전할 것으로 보인다. 로봇 분야의 발전 속도를 살펴보면 아직 사람처럼 정교하게 육체노동을 하는 로봇이 나오진 못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교육과 숙련 형성 체계 모두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AI가 자료 조사와 글쓰기까지 모두 해줄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가르침과 배움을 통해 성장을 추구하는 모든 학교 공간은 곧 무엇이 교육의 본질에 해당하는지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아울러 현장의 암묵지(tacit knowledge)를 포함한 숙련 또한 센서와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AI가 침투하면서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고, 이는 곧 숙련에 기반한 임금 체계의 토대를 뒤흔들 수 있다.

셋째, 공공 정책에 끼칠 영향을 생각해보자. AI의 등장과 함께 인간 중심의 인공지능(Human-Centered AI) 철학과 원칙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 사람의 참여를 활성화하는 AI 활용, 사회적 대화를 통한 인간 중심의 AI 설계, 채용 결정 등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판단 주체로 참여하는 AI에 대한 가이드라인, 알고리즘을 통한 플랫폼 일감 배분 등 노동 과정과 노동시장에 개입하는 AI에 대한 규제 등 다양한 정책 쟁점이 부상할 것이다. 즉, 바야흐로 AI가 노동 과정, 노동시장, 노사 관계 영역 모두에서 중요한 주체가 되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진정 일의 의미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감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살아 있는 인간, 우리 자신이라는 점이다. 노동, 작업, 행위를 하며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은 바로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며 우리 개개인의 마음과 감정에 깊이 각인된다. 아울러 AI가 일의 의미에 대한 멋진 원고를 작성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는 곧 인류의 지식과 지혜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AI가 항상 멋진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면 우리의 몫은 언제나 멋지게 질문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기에 앞으로 가장 철학적이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질문을 AI,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던지며 일의 의미를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다.
  • 이상준 |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필자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과학 학제과정(Social Studies)을, 케네디스쿨에서 정책학(Public Policy) 석사 과정을 마치고 스탠퍼드대에서 사회학(Sociology)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사회학의 대가인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 교수의 제자다. 사회과학 분야 국제 학회인 사회경제학회(Society for the Advancement of Socio-Economics) 2017년 신진 연구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일터 민주주의, 디지털 전환 등을 포함한 일의 미래를 화두로 삼고 연구하고 있다. 앞으로 AI와 일의 미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sjlee@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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