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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이겨내는 힘 ‘나는 누구인가’

MBTI보다 훨씬 중요한 ‘서사정체성’
과거와 미래의 나를 이야기로 엮어야

박선웅 | 375호 (2023년 0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자신을 둘러싼 바깥세상이 불확실성으로 가득할 때 기댈 수 있는 확실성은 오로지 자기 내면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 같은 확실성은 자신에 대한 이해, 즉 ‘정체성’이 확립돼 있을 때 비로소 나올 수 있다. 최근 MBTI 같은 성격 유형 검사가 유행하는 까닭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네 글자의 손쉬운 답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MBTI 16개 유형 중 어디에 속하는지가 아니라 내가 신경질적인지 아닌지 등을 보여주는 성격적 ‘특질’, 특정 상황에 대처하거나 적응할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주는 ‘특징적 적응’, 그동안 살아온 삶의 궤적을 담은 ‘서사정체성’을 알아야 한다. 조직 역시 MBTI 유형을 토대로 직원을 뽑거나 소통을 시도하기보다는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인생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개인의 이야기와 조직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엮이고 그 방향이 일치할 때 비로소 조직이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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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알아야 하는 이유

“너 자신을 알라.” 흔히들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잘못 알고 있지만 이 말은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 입구에 새겨진 말이다. 그리고 아폴론 신전에는 이 말 외에도 “무엇이든 과하지 않게” “화를 참아라” “부모를 공경해라” 등 150개 가까운 격언이 새겨져 있었다. 누가, 왜 이 격언들을 새겨 놓았는지에 대한 고고학적 진실은 아마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왜 이 격언들이 신전에 적혀 있었는지, 그리고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왜 특히 유명한지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해석해 볼 수는 있다.

아폴론 신전은 신탁, 즉 신으로부터 메시지를 받던 곳이었다. 그리고 여러 아폴론 신전 중에서도 특히 델포이에 있는 신전이 가장 유명했다. 오늘날에 빗대어 말하자면 델포이 아폴론 신전은 그리스에서 가장 용한 무당이 있는 점집이었던 셈이다. 당시 권력자들은 많은 돈을 내고 이 무당으로부터 신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럴 돈이 없었던 수많은 사람은 무당을 직접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답답한 일이 있을 때 신전을 찾아갔을 것이다. 이렇게 신전 앞을 기웃대던 사람들도 신전 밖 기둥이나 벽에 새겨져 있는 격언만큼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격언 중 ‘너 자신을 알라’가 가장 유명한 이유는 아마도 이 말이 그 누가, 그 어떤 고민이 있어도 통용될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점을 보는 이유와 자신을 알고 싶은 이유는 결국 같다.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서다. 이미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상황에서는 점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별로 생겨나지 않는다. 점을 보는 것과 자신을 아는 것은 모두 결정의 방향성에 대한 답을 준다는 점에서 같지만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다. 점은 우리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어 왜 그런 점이 나왔는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점은 축적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고, 이로 인한 결과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만큼 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는 깊어지고 다음번에는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즉, 자신에 대한 이해는 축적된다. 나아가 우리의 노력에 따라 더 깊고 넓어질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갈망이 삶의 방향성을 찾고자 하는 갈망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왜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신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따라야 할 삶의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자신이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타고난 신분이 답을 제공했다. 전쟁 후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하던 1970~1980년대에도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은 그리 절실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열심히 학교 다니고 회사 다니면 대부분 정년까지 일할 수 있었고, 1980년 기준 평균수명이 대략 66세였으니 퇴직 후 얼마간 휴식을 취하면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이렇게만 살면 된다는 식의 지침을 주지 못한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으니 기댈 수 있는 확실성은 오직 자신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확실성은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이해, 즉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에서 가치를 느끼며,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의 방향성에 대해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체성이라고 부른다. 이 글은 자신에 대한 관심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올라타 최근 유행하고 있는 MBTI의 문제점을 짚어본 후 그에 대한 대안은 무엇이고, 조직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한다.

MBTI를 통한 정체성 찾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체성 문제는 삶의 방향성이 밖에서 주어지던 과거보다 자기 안에서 방향성을 찾아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더 중요하다.1 문제는 이에 대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그에 대한 답을 찾았다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MBTI가 힘을 발휘한다. MBTI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에 네 글자로 손쉬운 답을 제공한다. 이런 용이성 덕분에 많은 사람이 자신의 MBTI 유형을 잘 인식하고 있고, 조직에서도 MBTI 유형을 바탕으로 동료와 의사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기도 한다. 심지어 새로운 구성원을 뽑을 때 특정 MBTI 유형을 선호하는 조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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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MBTI는 심리학적 기반을 잘 갖춘 성격검사 도구가 아니고, 심리학자들로부터는 크게 외면받고 있다. MBTI가 학자들의 비판을 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인간의 심리적 속성이 MBTI에서 전제하는 것처럼 명확히 구분될 수 있는지의 문제다. MBTI에서 측정하는 E-I(외향-내향)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E인지 I인지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는 설문 문항에 대한 사람들의 점수를 모두 모아보면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의 분포가 [그림 1의] 왼쪽 그래프(쌍봉 분포)처럼 나타날까, 오른쪽 그래프(정규 분포)처럼 나타날까? 마찬가지로 호기심을 측정한다고 해보자. 사람들의 호기심 점수를 모두 모아보면 왼쪽처럼 호기심이 없는 사람과 많은 사람으로 명확하게 구분될까, 아니면 호기심이 매우 적은 사람부터 매우 많은 사람까지 연속적으로 퍼져 있을까? 친절함, 성실함, 행복 등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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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선웅 |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필자는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이스턴대에서 사회 및 성격심리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심리적인 개인차가 개인의 삶과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정체성 형성이라는 개인차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정체성의 심리학』이 있다.
    sunwpark@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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