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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스페이스 테크 기업 ‘Xona Space Systems’의 도전

공짜였던 위치 정보 유료화 승부수
오차 없는 상업용 GPS로 세상 바꾼다

김윤진 | 387호 (2024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민간이 우주개발의 주축이 되는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가 열리면서 위성 발사 그 이후, 우주로 나간 다음의 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출현하고 있다. 저비용 저궤도 소형 군집 위성 체계를 구축해 정확도, 가용성, 보안 등 모든 지표에서 현행 GPS를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슈퍼 GPS’를 만들겠다는 스페이스 테크 기업 ‘조나 스페이스 시스템’도 그중 하나다. 최초의 상업용 위성 내비게이션 시스템으로 지금까지 공공재로 여겨지던 위치 및 시간 정보를 유료로 팔겠다는 이들은 제1 원칙 사고에 입각해 기존의 가정에 도전한다. 이들은 진화가 멈춰 있던 내비게이션 시장을 혁신하고 자율주행과 사물인터넷 시대에 걸맞은 위치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르고 비용 효율적 방법이 우주로 나가는 것이라 확신한다. ‘불가능한 것을, 단지 늦어지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단계적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우리는 빨리 결정하고, 빨리 실패하고, 틀을 깨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타일러 리드 조나 스페이스 시스템 공동 창업가 및 CTO)

“스페이스X에서 일하면서 속도의 한계를 뛰어넘는 법을 배웠고, 우리도 이 정신을 이어받아 기존의 가정에 도전하면서 가장 빠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브라이언 매닝 조나 스페이스 시스템 공동 창업가 및 CEO)

스페이스X에서 발사체 팰컨(Falcon)9 개발을 담당하던 전직 엔지니어 브라이언 매닝 CEO와 포드자동차 자율주행 사업부 출신의 타일러 CTO가 스탠퍼드대 항공우주학과에서 함께 수학하던 동문 8명을 불러 모아 창업한 스페이스테크 기업 ‘조나 스페이스 시스템(Xona Space Systems, 이하 조나)’이 도전하고 있는 일은 상식을 거스른다. 1983년 미국이 군용 GPS(위성 위치 정보 시스템, Global Positioning System)를 민간에 개방한 이래 거의 변하지 않고 멈춰 있던 위성 내비게이션 시장을 혁신해 빠르게 진화하는 시장으로 바꾸겠다는 게 이들의 비전이다. 사람들이 손쉽게 지도 앱만 열면 확인할 수 있는 ‘위치’와 ‘시간’ 정보를 팔겠다는 이들의 청사진은 공공의 영역에 있던 서비스를 민간의 영역으로, 무료로 제공되던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하는 사업 모델이라는 점에서 얼핏 가망 없는 ‘다윗 대 골리앗’ 싸움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감행하는 이유는 흥미롭다. 현재 사람들이 전 세계 어디에서나 내 위치와 시간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지도 위의 작은 파란색 점, 즉 GPS가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가장 가까운 카페와 쇼핑몰은 어디인지, 최적 경로로 이동하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우버나 카카오택시가 어디쯤 왔는지 알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모두 GPS가 우주에 떠 있는 위성으로부터 오는 신호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해 나와 대상의 위치를 알아내기에 가능해진 서비스다. 이 신호의 속력은 빛의 속력으로 워낙 빠르기 때문에 단 1000분의 1초의 오차만 생겨도 내 위치 정보가 수백 ㎞ 이상 빗나간다. 따라서 수억 분의 1초의 오차 정도로 정확한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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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스탠퍼드대에서 위성 내비게이션을 연구하던 이 분야 박사 5명과 석사 3명으로 구성된 8명의 ‘어벤저스팀’이 멀쩡히 다니던 빅테크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들이 하려는 일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초정밀 ‘슈퍼 GPS(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의 구축’이다. 시간으로는 나노(10억 분의 1)초, 위치로는 1m의 오차조차 허용하지 않는 최초의 상업용 GPS를 개발해 공공재로 여겨지던 기존 GPS와 그 밖의 글로벌 내비게이션 위성 시스템(GNSS)의 성능을 뛰어넘겠다는 발상이다. 이들은 “현재 GPS로는 완전 자율주행 시대를 열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어 기존의 1∼10m 수준의 오차를 30㎝, 10㎝, 5㎝, 2㎝까지 점점 좁혀 나가야만 운전자의 손을 떠난 자동차가 알아서 거리를 활보하는 시대에 걸맞은 정확도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궁극적으로 ‘사람 손바닥 너비’의 오차만 허용하는 견고한 위치 정보를 제공해 정부도 기업도 돈 내고 쓸 수밖에 없는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게 이들의 포부다.

상업용 위치 정보 시스템을 만들어 유료화한다는 발상도 생소하지만 이 초정밀 GPS를 구현하기 위한 접근법은 더 기상천외하다. 이들이 말하는 정확도와 신뢰도를 달성하려면 저궤도 소형 위성을 최소 32개, 궁극적으로는 300개 쏘아 올려 군집 위성을 형성해야 한다. 2022년 5월 스페이스X의 팰컨9을 이용해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위성 내비게이션 임무용 위성을 발사한 조나는 위성 생산 및 발사 비용이 줄어든 기회를 틈타 군집 위성 체계의 구축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벤처스와 도요타벤처스 등으로부터 2500만 달러(한화 약 330억 원) 투자를 받은 데 이어 본격적으로 궤도 안에 위성을 쏘아 올리기 위해 올해 시리즈 A 투자 유치를 준비 중이다.

물론 딥테크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를 뚫고 조나가 기대하는 속도의 빠른 변화와 상식을 깨는 도전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무리 위성 발사 비용이 줄었다 한들 스페이스 테크 사업은 근본적으로 자본집약적이기 때문에 자본 조달 여부가 기업의 성패를 가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불가능한 것을, 단지 늦어지는 것으로’ 만드는 도전의 길목에 서 있다. 이 도전을 이해하고 왜 조나의 창업가들이 자동차, 항공, 금융, 통신, 농업, 건설 등 전 산업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현행 GPS가 자율주행 시대에 불충분하다고 믿는지, 왜 최소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위성을 쏘아 올려야 한다고 믿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은 성패와 무관하게 향후 각 산업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왜 이들은 더 나은 위치 및 시간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에 대한 상업적 요구가 증가할 것이라 확신하는 것일까. DBR이 실리콘밸리의 한적한 업무 지구, 샌프란시스코 벌링게임(Burlingame)시에 위치한 조나 본사를 직접 방문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버스로 10분 정도 달려 본사에 도착하자 한눈에 펼쳐진 샌프란시스코 베이 해안과 산책로의 풍광이 탄성을 자아냈다. 한 쪽 벽면이 통유리로 돼 있어 회사 내 사무실에서도 태평양으로 흘러가는 긴 늪지와 호수처럼 잔잔한 바닷물이 연출하는 장관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타일러 CTO는 보이는 것처럼 잔잔하지만은 않은 조나의 치열한 도전과 시행착오, 우주가 열어줄 새로운 기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와 독감 탓에 화상으로 만난 브라이언 CEO와의 인터뷰를 종합해 기업의 비전과 현주소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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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안전해야 충분히 안전한가”
잠재 고객의 문제를 정의하다

조나의 공동 창업가 8명은 모두 민간 항공용 위성항법장치와 GPS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각기 뿔뿔이 흩어져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다른 산업군에 있던 이들을 다시 불러 모아 창업의 불씨를 지핀 것은 현 CTO인 타일러였다. 포드 자율주행사업부에서 일하던 그는 앞으로 실현될 완전 자율주행에 필요한 모든 시스템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내비게이션이 “얼마나 정확해야 충분히 정확한지” “얼마나 안전해야 충분히 안전한지”의 표준을 정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포드가 새로 투자해야 할 기술을 찾는 것도 임무 중 하나였다. 이를 위해 그는 포드 내부는 물론 외부의 자동차 부품 공급업체와 실리콘밸리 혁신 기업을 들쑤시고 다니면서 전문가들을 수소문했다. 어떻게 하면 ‘충분히 정확하고 안전한’ 자율주행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가 도출한 결론은 차가 어디에 있는지,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가 최대한 국지적으로 특정돼야(localization)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차량이 주변 대상과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일정 경계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30∼35㎝ 오차 범위를 넘지 않는 위치 정보가 필요했다. 자동차 폭이 평균 약 2m라고 할 때 차량이 약 3m 폭의 차선을 벗어나지 않고 직선 도로뿐 아니라 곡선의 코너에서도 다른 차량 및 사물과 충돌하지 않으려면 30∼35㎝ 이상 오차를 허용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 것이다.

더욱이 레벨 4 이상의 완전 자율주행 단계1 로 가면 운전석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고 사람이 감독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항상 모니터링할 수 있는 현 단계보다 훨씬 더 정밀하고 엄격한 안전 기준이 있어야 했다. 현재는 자율주행차에 카메라를 달아 전후방을 모니터링하고 라이다(LiDAR), 레이더(LADAR)로 레이저 펄스나 전파를 발사해 그 빛이 주위의 대상에 반사돼 돌아오는 거리로 주변의 모습을 그리는(매핑하는) 센서 기술이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이 기술에만 의존하기에는 약점들이 있었다. 센서로 감지하는 신호가 방해받거나 왜곡될 수 있고, 눈보라와 비바람이 몰아치고 차선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아무리 많은 카메라가 있어도 자동차가 차선을 이탈했는지 알지 못할 수 있다. 아울러 모든 차에 라이다와 카메라를 달고 시범 주행을 하는 비용부터 만만치 않다.

타일러 CTO는 업계가 필요로 하는 안전 표준을 정했는데도 이 요구 사항을 만족시킬 수 있는 완전무결한 기술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현존하는 기술과 향후 자율주행 시대에 요구될 기술 간 간극이 있고 자동차 회사가 위치 정보의 오차를 줄여줄 솔루션에 대한 지불 용의가 있어도 지불할 데가 마땅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잠재 고객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법을 모색하기 시작하자 시선이 점차 우주로 향했다.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 지금보다 더 정확한 위치 정보를 구하기 위해서는 ‘슈퍼 GPS’가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가 2015년 발표한 논문 주제였던 ‘저궤도 소형 위성 군집을 활용한 차세대 GPS 구축’에 성공한다면 시장 공급과 수요의 괴리, 즉 미충족 수요를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계산이 맞아떨어진다면 지구에서 2만 ㎞ 떨어진 곳에서 맴도는 30개의 고비용 위성 대신 약 1000㎞ 떨어진 곳을 맴도는 300개 저비용 위성의 군집을 만들어 초정밀 GPS를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가 2019년부터 이 비전에 공감한 친구들을 불러 모은 게 조나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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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친구가 만장일치로 동의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GPS는 괴물이다’라는 사실이었다. 그 무한한 가능성에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만약 저궤도에 있는 소형 군집 위성으로 구현한 슈퍼 GPS가 위치, 시간 정보를 완벽에 가깝게 알아낸다면 자동차 산업은 물론 주변 정보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산업에서 복잡한 경우의 수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도 인프라에 모든 문제를 떠넘길 수 있었다. 브라이언 CEO는 “슈퍼 GPS가 있으면 자동차가 어느 도로, 어느 차선, 차선의 몇 번째 줄에서 달리고 있는지도 알 수 있고, 시야가 가려지더라도 안전하게 차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가치가 클 것이라 봤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GPS를 수신하는 칩셋의 비용은 센서 비용보다 저렴했다. 타일러 CTO는 “GPS 칩 가격은 하나당 5∼10달러에 불과한데 이 작고 저렴한 칩 하나로 모든 날씨 조건과 복잡한 시나리오를 극복할 수 있다는 데서 무한한 가능성을 봤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자명했다. 1나노초의 신호 오차가 약 1피트(30.48㎝)의 위치 오차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10㎝ 미만의 위치 정보를 구현하려면 모든 위성이 거의 완벽에 가깝게 동기화돼야 오차를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누구도 상업용 위성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구축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어, 수신, 신호 설계 등 전체 공급망에 걸쳐 혁신이 필요했다. 사실상 완벽에 가까운 신뢰도의 위성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완성해야 하는 미션 앞에서 그들은 질문을 던졌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과연 불가능한가?”

DBR mini box I: ‘위치 내비게이션’의 미래

자율주행-사물인터넷 시대, 현재의 GPS로는 감감



약 100년 전, 항해를 하던 인간이 위치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밤하늘을 쳐다보고 별의 각도를 계산해야 했다. 천체과학을 동원해 위치를 가늠해 봐야 오차 수준은 수 ㎞에 달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0년대 항공 서비스가 발달하자 새로운 교통수단을 지원하기 위해 수백 m 오차 범위의 정확도가 요구되기 시작했고, 이런 항공 수요에 부응해 최초의 무선 내비게이션 시스템인 Long Range Navigation(Loran)이 등장했다. 이후 1970년대 냉전 시대 미사일과 전투기 등의 위치 파악을 위해 미국 국방성이 위성을 띄우면서 GPS(Global Positioning System)가 처음으로 출현했다. 군용으로 쓰이던 GPS가 민간에 개방된 것은 1983년이다. 당시 대한항공 007편이 무선 내비게이션 시스템 오류로 항로를 이탈하고 옛 소련 상공에서 격추돼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군용으로만 쓰던 GPS의 민간 개방을 결정했다.

하지만 GPS가 본격적으로 일상 깊숙이 침투한 것은 2000년 이후다. 미국이 GPS를 민간에 개방하기는 했지만 2000년 전까지는 다른 나라가 군사용으로 쓰는 것을 막기 위해 고의로 잡음을 포함했고 위치 오차는 100m에 달했다. 그러나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2000년 고의 오차를 없애면서 차량용 내비게이션 등 민간 활용이 급성장하게 됐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누구나 주머니 안에 1∼10m 오차 범위의 위치 및 시간 정보를 들고 다니면서 쉽게 경로를 검색할 수 있게 됐다. 이렇듯 약 30년 주기로 위치를 파악하는 시스템의 정확도는 크게 향상됐고, 이를 견인한 것은 주로 교통수단의 발전이나 통신 기술의 진보였다. 기술 혁신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대대적으로 이뤄진 결과였다.

이런 역사의 흐름을 미뤄볼 때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교통수단의 발전), 사물인터넷 시대(통신기술의 진보)의 도래는 곧 위치 정보 정확도의 향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게 슈퍼 GPS 기술의 필요성을 확신하는 조나의 설명이다. 타일러 CTO는 “2030년까지 GPS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을 지원하는 기기만 70억 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실내외에서 위치 파악이 필요한 10억 개 이상의 사물인터넷 장비, 7억 대 이상의 차량 및 기타 교통수단에 GPS 내비게이션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사람 인구보다 더 많은 수의 기기가 이런 위성 내비게이션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과연 불가능한가”
제1 원칙에 입각해 상식에 도전하다

브라이언 CEO는 타일러 CTO의 비전이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문들의 연줄과 경험을 이용하면 팰컨9를 활용해 소형 위성을 발사할 수 있을 것이란 ‘믿는 구석’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가 스페이스X에서 배운 제1 원칙2 사고(first principle thinking)에 입각했을 때 안 될 이유가 없었다. 문제의 근본 원인에만 집중하면 가야 할 길이 분명하다는 판단이었다. 브라이언 CEO는 “스페이스X는 매우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그 핵심은 기본으로 돌아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이런 요구 사항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묻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확신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는 정신이다”라면서 “슈퍼 GPS가 다양한 시장에서 잠재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게 명확했기 때문에 다른 복잡한 요소는 생각하지 않고 밀어붙였다”라고 말했다. 타일러 CTO도 “우리는 제1원칙 사고에 따라 누군가 ‘안 될 거야’라고 말할 때마다 ‘물리책에 안 된다고 적혀 있어?’를 자문했다”면서 “물리적으로 안 될 이유가 없다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가정에 도전하고, 왜 과거에 안 되던 게 미래에 될 수도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빠르고 비용 효율적인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들의 자신감에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스페이스X가 연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소형 위성의 대량 생산에 따른 규모의 경제 확보, 위성 제조 단가의 하락, 민간 업체가 개발한 상업용 위성의 증가 등 여건들이 무르익은 상태였다. 정부가 우주개발의 중추적 역할을 하던 ‘올드 스페이스(Old Space)’의 시대가 저물고, 그 자리에 서비스 혁신과 수익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앞세운 민간 기업들을 주축으로 한 생태계가 무한 팽창하는 중이었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산업군이 “AI 아니면 우주”밖에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로 벤처 투자 대상도 AI 중심의 소프트웨어 기업들과 스페이스 테크 중심의 하드웨어 기업들로 양분되고 있었다. 특히 우주산업은 첨단 선행 기술의 집합체로서 국방 산업은 물론 반도체, 통신, 자동차 등 다른 제조 산업으로의 파급 효과(spillover effect)가 크고 서비스의 근간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원래는 위성 발사 비용이 회계 장부의 이상치(outlier)였다면 이제는 장부의 또 다른 한 줄에 지나지 않게 되자 더 수명이 짧고, 더 작고, 더 저렴한 위성들이 신뢰할 만한 우주 서비스를 구현하기 시작했다. 발사 그 이후, 위성이 우주로 나간 다음의 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나도 그중 하나였다. 이 흐름에 잘 올라탄다면 저비용 소형 위성을 처음으로 ‘내비게이션 분야’에 도입하는 것도 결코 먼 얘기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창업가들의 자신감과 달리 막상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코로나19가 끝나고 유동성 잔치가 멈추면서 시장의 분위기도 급격히 냉각됐다. 가장 많이 따라붙는 질문은 결국 “무료인 서비스와 어떻게 경쟁하냐” “연간 20억 달러 예산을 GPS 서비스에 투입하는 미국 정부와 경쟁해서 이길 수 있냐”는 것이다. 이렇게 회의적인 투자자들을 설득하려면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지부터 고민이었다.

브라이언 CEO는 “위치 정보 서비스의 공급과 수요 사이에 격차가 크고 이를 해소해줄 새로운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할 방법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면서 “무료 서비스를 싫어하는 이는 없지만 고객은 때때로 무료 서비스가 제공하는 것 이상을 원한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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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슈퍼 GPS의 성능이 좋아도 잠재 고객들이 얼마나 지불 용의가 있을지를 그 누구도 정량화하거나 측정한 적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난관이었다. 그런데 막상 기업들이 위성 내비게이션 서비스에 아무런 비용도 쓰고 있지 않은가를 질문해 보니 ‘그렇지는 않다’는 답이 나왔다. GPS 수신 자체는 무료지만 이미 숱한 업계에서 기존 GPS의 결함을 보완하고 성능을 아주 미세하게라도 더 끌어올리기 위한 보강(augmentation) 및 보정(corrections) 기술에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있었다. 일례로 농업 무인화 혁신을 선도하는 농기계 업체 ‘존디어’는 일직선으로 곧게 씨앗을 심고, 거름을 주고, 작물을 수확하기 위해 정확한 위치 감지를 위한 보정 기술을 끊임없이 고도화하고 있는 대표적인 회사다. 산이나 울창한 나무가 많은 곳, 비닐하우스 등에선 GPS 신호가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존디어는 무인 자율 트랙터가 빠르게 보정 데이터를 수신해 자체적으로 위치를 감지하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해 오차를 1m 단위로 줄이고 있었다.

조나는 GPS는 고정돼 있다는 전제하에 오차를 바로잡는 보정 기술의 시장 규모가 100억 달러(약 13조 원)를 넘어간다는 데 주목했다. 그리고 개별 장비에 보정 기술을 적용하지 않아도 더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슈퍼 GPS만 있으면 수십억 개 장비에 고성능 위성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으며 기업들도 기꺼이 돈을 낼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렇게 고객들을 설득하자 투자자들도 시장의 확장성과 범용성에 서서히 공감하기 시작했다. “서비스는 무료지만 성능은 무료가 아니다(service is free, but capability is not free)”라는 게 조나가 내세운 메시지였다.


“서비스는 무료여도 성능은 무료 아냐”
기존 기술의 허점을 파고들다

고성능 내비게이션 서비스에 대한 고객들의 지불 용의가 있다는 점을 설득한 뒤 슈퍼 GPS 구축을 위한 남은 과제는 이것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솔루션 가운데 ‘최선’임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현행 GPS는 물론 보정 기술이라는 경쟁 서비스 대비 압도적 비교 우위를 입증해야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나는 크게 정확성(accuracy), 가용성(availability), 보안(security)의 세 가지 지표에서 기존 기술 대비 모두 우위가 있는 유일한 선택지가 슈퍼 GPS라는 점을 보이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보정 기술로 가까스로 정확도를 끌어올린다 한들 가용성과 보안 측면에서는 기존 GPS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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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성

2022년 5월 조나가 사전 기술 검증을 위해 발사한 첫 민간 내비게이션 임무용 위성 ‘허긴(Huginn)’의 경우 2㎝ 이하의 오차 범위를 보였다. 소형 군집 위성 체계의 구축이 GPS 정확도를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고 보정 기술이란 대안이 존재하지만 정확성을 기준으로 슈퍼 GPS를 따라잡을 방법은 없다는 조나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였다. 현행 GPS의 위치 정보는 약 1∼10m 오차 범위 안에 있고 이 신호를 수신하는 기본 칩셋 가격은 약 1∼10달러다. 하지만 여기에 보정 기술을 적용해 0.5∼3m로 오차 범위를 줄인 칩셋 가격은 약 10∼1000달러로 늘어나고, 20∼50㎝로 줄인 수신기 가격은 1000달러∼1만 달러를 호가한다. 그런데 아직 존재하지 않는 슈퍼 GPS의 경우 이 오차 범위를 5㎝ 이하로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어느 서비스와 비교해도 훨씬 정확하다.


2) 가용성

사물인터넷의 발전으로 점점 실내에서 GPS 신호를 필요로 하는 장비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도심에서 건물 지붕에 가려진 실내 공간이나 나무 등에 가린 실외 공간에서는 신호가 방해받아 GPS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스마트폰과 기타 웨어러블, 홈디바이스와 자동차 등이 모두 연결된 세상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GPS 신호는 일반 이동통신 신호보다 약 1만 배 정도 약하다. 하지만 실험 결과에 따르면 지구에서 2만 ㎞ 떨어진 고궤도가 아니라 약 1000㎞ 떨어진 저궤도에 군집 소형 위성을 구축할 경우 현행 GPS보다 약 170배 더 강한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 1∼2개 벽이 가로막고 있더라도 실내에서 간섭과 전파 방해를 크게 줄일 수 있어 접근성과 가용성이 높아질 것이란 의미다.


3) 보안

현행 GPS는 보안에 취약하다. 2016년 위치 기반 스마트폰 게임인 ‘포켓몬고’가 출시됐을 때 원하는 포켓몬스터를 잡기 위해 핸드폰 기기에서 GPS 조작 프로그램을 사용해 스마트폰의 위치를 변경하는 부정행위가 부쩍 유행했다. 이는 게임뿐 아니라 일상생활이나 다른 애플리케이션에서도 얼마든지 위치 정보를 변경해 GPS를 속이는 게 어렵지 않아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위치뿐 아니라 시간 정보 역시 조작이 가능하다. 통신 네트워크 등 모든 인프라가 GPS가 보내는 시간 정보에 의존하기 때문에 시간 기록을 위조하면 금융 거래 사기도 가능하다. 이에 반해 슈퍼 GPS는 군사용 수준의 보안을 보장하도록 설계됐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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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존 기술의 허점을 해결한, 완벽에 가까운 대체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딥테크 기업에 맞는 기술 전문성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조직 구조가 필요했다. 조나가 스타트업에서 찾아보기 힘든 큰 리더십팀을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브라이언 CEO는 “공동 창업가가 8명이 되고 각각 다른 파트를 담당하는 이유는 보안 전문가, 신호 수신 전문가, 내비게이션 알고리즘 전문가, 위성 전문가, 사업 개발 전문가 등이 다 독립적으로 기능해야 전문성을 극대화하고 기존 기술을 대체할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면서 “우리는 회사의 큰 방향이나 사명을 논의할 때만 뭉칠 뿐 독립적인 지휘 체계와 조직도에 따라 움직인다”라고 말했다. 물론 초기 스타트업인 만큼 경영진의 이견이나 충돌이 없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인 데다 최고 전문가들이 모인 만큼 “우리만 해낼 수 있고, 함께해야만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저변에 있다는 설명이다. 브라이언 CEO는 “힘들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을 사람들이고, 담금질을 당할수록 앞으로 나아가 일을 해내는 팀이라고 믿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기어 가더라도 가야 한다”
단계적 상용화 전략으로 선회하다

서서히 조나의 비전에 공감하고 그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는 투자자들과 최종 고객들이 많아졌지만 딥테크 스타트업, 그중에서도 스페이스 테크 기업에 일정의 지연은 필연적인 숙명과도 같았다. 특히 벤처 시장이 얼어붙자 지연은 더욱 불가피해졌고, 투자자들을 설득하려면 단순히 비전만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300개의 군집 위성을 완성하기 전 최소 32개 위성만으로도, 혹은 그 이전에도 수익을 창출하고 손익분기점(BEP)을 넘을 수 있도록 서비스의 단계적 출시 전략을 고안해야 했다는 의미다. 궁극적인 GPS의 ‘혁신’에 앞서 ‘점진적 개선’부터 실현하기 위해 전략을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브라이언 CEO는 “창업 초기에는 속도만 생각하면서 최대한 빠르게 300개 군집 위성 체계에 도달한다는 목표에만 집중했고 이를 위해 여러 일을 동시에 병렬적으로 진행했다”면서 “하지만 전력 질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기어가고, 걷고, 뛰면서 연쇄적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했고, 이에 맞게 회사의 전략과 구조를 바꾸는 게 가장 어려운 작업이었다”라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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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조나는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슈퍼 GPS로 기존 GPS를 대체하겠다는 야심은 잠시 접어두고 시장 상황에 적응할 방법을 모색했다. 보정 기술을 약간 웃도는 기술 수준의 위치 정보 서비스부터 제공하기 시작해 점진적으로 성능을 개선해 나가는 단계별 상용화 전략을 수립한 것이다. 조나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확보하고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를 영위할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는 게 우선순위가 됐다. 발사 시기가 예상보다 늦춰지더라도 위성이 0개, 32개, 66개, 258개로 늘어날 때마다 고객이 더 나은 성능을 누리게 하려면 매번 새로운 하드웨어를 구매하지 않고도 기존 칩셋, 수신기의 펌웨어 업데이트만으로 조나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했다.

이런 MVP의 확보와 단계적 출시를 위해 조나는 파트너들과 손을 잡았다. 가장 먼저, 자동차든 스마트폰이든 GPS 신호를 수신할 수 있으려면 칩셋 및 수신기를 제조해야 했기에 부품 제조업체들과 협업하기 시작했다. 부품을 제조하는 후방 시장과 함께 전통적인 칩셋에 조나의 GPS의 초기 서비스를 통합하고, 이후 펌웨어 업데이트만으로 더 개선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판단이었다. 그래야 실수요자인 전방 시장에도 더 쉽게 접근하고 시장에 침투할 수 있을 것이란 전략적 고려도 있었다. 통상적으로 칩셋 및 수신기 제조업체들이 글로벌 내비게이션 위성 시스템(GNSS)의 가장 빠른 얼리어댑터라는 점도 이런 단계적 상용화에 힘을 실어줬다.

타일러 CTO는 “최종 고객이 그들의 구매 행태를 바꾸지 않고 기존 칩셋 및 수신기를 사용하면서도 최대한 쉽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더욱이 수직 계열화를 한 기업의 경우 칩셋 및 수신기 제조업체들이 곧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등 완제품 업체, 즉 최종 고객과 일치하는 경우도 있어 이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후방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다지고 있는 부품 제조업체들 역시 조나와의 파트너십에 호의적이었다. 업계 선두 주자들일수록 고성능 위성 내비게이션 서비스에 대한 갈증, 미충족 수요 해결의 시급성에 공감하고 신기술의 출현을 고대하는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회사에 따르면 GPS 장비 제조업체의 약 80%가 조나와의 협업을 약속했다. 타일러 CTO는 “칩셋 제조, 유통사 입장에서도 이런 슈퍼 GPS 혹은 개선된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통합하는 것이 차별화된 경쟁력으로서 판매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낀 것 같다”면서 “기존 GPS의 성능을 보완하는 데 한계에 부딪혔던 업체들이 새로운 돌파구로서 조나의 기술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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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조나와 함께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성능을 시험하고 있는 협력 업체들로는 농업 분야 대형 기계에 들어가는 칩셋을 만드는 ‘노바텔(Novatel)’과 ‘셉텐트리오(septentrio)’, 자동차나 드론 등 산업용 장비에 들어가는 칩셋을 만드는 ‘ST 마이크로’, 모바일과 사물인터넷(IoT)에 들어가는 초소형 칩셋을 만드는 ‘후루노(FURUNO)’ 등이 있다. 회사에 따르면 새로운 GPS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이들 기업 모두 자비로 조나의 신호를 수신하기 위한 통합 작업을 수행했다고 한다. 주요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애플이나 삼성전자 역시 칩셋을 제조할 뿐만 아니라 모바일 기기까지 제조하는 최종 고객이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협력 군단을 넓혀 나가면서 농업, 건설 등을 시작으로 자동차, 모바일, IoT 등의 업계에 진출하겠다는 게 회사의 계획이다.

물론 이렇게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협력사들과 고객들이 있더라도 향후 투자 유치와 상용화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이 닥칠 수 있다. 또한 파트너사들도 사전 기술 검증에 이어 양산용 위성을 궤도 내 정식으로 발사해 기술을 검증해야 계약을 체결하겠다는 유보적 태도를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시장 상황에 적응하고 그에 맞게 조직의 전략과 구조를 바꾸면서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면 언젠가 세상에 없는 GPS를 만들자는 회사의 사명을 달성할 것이라는 게 조나 창업가들의 신념이다.

브라이언 CEO는 “일론 머스크와 함께 일할 때 구체적인 방법은 동의하지 않을 때도 많고 단기적으로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느낀 적도 많지만 그가 가려는 큰 방향이 옳다는 것은 의심한 적이 없었다”면서 “우리도 마찬가지로 작은 벤처이기 때문에 큰 회사가 될 때까지 방법은 계속 바뀔 수 있겠지만 우리가 나아가려는 방향이 옳다는 확신을 공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개 목걸이부터 787 항공기에 이르기까지, 배송부터 자율주행까지 더 나은 위치 정보를 필요로 하는 모든 서비스를 혁신하겠다는 설명이다. 타일러 CTO도 “지금부터 5년 뒤,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의 경영진이 더 신뢰할 수 있는 통신과 위치 정보 확인을 위해 위성을 쏘아 올리고 싶어 하는 미래가 올 것이라 상상한다”면서 “그때 조나의 기술이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라고 덧붙였다.

DBR mini box II : 전략적 시사점

‘Zero to One’… 누군가 풀어야 할 문제를 파고들다



박제홍 아틀라스퍼시픽 대표 jehong@atlas-pa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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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딥테크, 초격차란 단어가 미디어를 통해 언급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정부는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한 ‘12대 국가전략기술’을 발표i 하며 글로벌 5대 기술 강국을 강조하고 있고 그동안 스타트업의 불모지로 여겨져 오던 딥테크 분야 지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R&D 지원 정책에서부터 정부 자금 투자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보면 ‘딥테크 르네상스’라 부를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특히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닌 차별화된 기술력이 밑받침돼야 하는 과학기술 분야라면 초기 스타트업이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은 극히 제한적이다. 자원과 인력이 한정돼 있는데 수십조 원의 자금력을 보유한 대기업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딥테크 스타트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단순히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노력 이상의 인내심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일반적인 디지털 분야 스타트업은 빠른 실행력, 끊임없는 고객 피드백을 통한 제품 개선, 가설 검증에 기반한 사업 모델 구축 등 속도를 중시하기 마련이다. 작은 조직으로서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만이 유일한 경쟁 우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려운 과학기술 문제에 도전하는 딥테크 스타트업들은 입장이 다르다. 말 그대로 ‘속도’보다는 ‘초격차’가 중요하다. 우선은 장기간 R&D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하다. 사업 초기 3∼5년은 매출 없이 기술개발에 매진하는 일도 각오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언제 나올지 모르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프로토타입만 놓고 꾸준히 투자자들을 설득해 회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탄을 마련해야 한다.

조나는 딥테크 스타트업이 어떻게 무에서 유를 창조해 ‘제로투원 (Zero to One)’의 과정에서 살아남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2019년 4월에 설립, 횟수로는 6년 차에 접어드는 기업이지만 아직까지 시리즈 A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초기 스타트업이기도 하다. 조나가 가진 미션과 목표에 비춰 볼 때 아직까지 회사의 성공 여부를 단정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회사가 스타트업임에도 불구, 최고의 GPS 전문가들을 규합해 현재까지 그 누구도 쉽게 도전하지 못한 분야에서 성과를 만들어오고 있는 모습은 분명 많은 사업가에게 시사점을 줄 수 있다.


1. 도전할 가치가 있는 문제에 집중하라

테슬라의 본사가 위치한 프레몬트 공장에 가면 회사의 미션이 벽면에 새겨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테슬라의 미션에 ‘자동차’나 ‘전기차’란 단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Tesla Mission: Accelerate the world’s transition to sustainable energy (테슬라 미션: 전 세계의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 가속화)ii

테슬라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계로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미션을 가지고 시작한 회사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달성이란 측면에서 가장 효과가 큰 전기차를 핵심 사업으로 선정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전기차 세계 1위, 또는 자동차 기업 시가총액 1위 등과 같은 계량적 목표보다 훨씬 담대한 목표를 세운 셈이다.

이처럼 딥테크 스타트업은 가능성은 낮더라도 성공했을 때 인류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큰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단순히 기존에 출시된 제품과 서비스를 조금 개선하는 수준의 문제에 도전한다면 어느 순간 대기업이 자본력과 기술력을 앞세워 금세 시장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딥테크 분야 혁신은 기존 시장을 장악한 대기업이 카니발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 신제품이 기존 주력 제품의 시장을 잠식하는 현상)이 두려워서, 혹은 조직의 관성 때문에, 아니면 변화에 대한 느린 대응으로 시장에 빈 공간이 생겼을 때 탄생하기 마련이다. 기존 자동차 대기업들은 전기차 출시에 소극적으로 일관하다가 테슬라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고, 구글은 알파고를 통해 AI의 잠재력을 처음 세상에 알렸음에도 비밀주의를 고수하고 정부 당국의 눈치를 보다가 오픈AI에 추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조나가 도전하고 있는 초정밀 GPS 또한 마찬가지다. 미국 납세자들이 받는 가장 큰 혜택이라고도 불리는 GPS는 ‘정부가 제공하는 무료 서비스’라는 인식이 워낙 지배적이다 보니 강력하고 정확한 GPS가 가져다줄 수 있는 명백한 혜택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섣불리 도전하지 못하는 분야였다. 특히 GPS 신호를 와이파이와 같은 지상 통신 기술을 통해 보정할 경우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 없는 위치 정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던 터였다. 이에 따라 관련 기술은 30년 전에 개발된 GPS 기술을 상수로 놓고 이를 보정하는 점진적 개선(Incremental Improvement)의 방향으로만 발전해 왔다.

조나는 여기에 반기를 든 스타트업이다. 조나 팀은 지상에서 가까운 저궤도 위성을 통해 더 강력한 신호를 송신하면 GPS의 정확도가 수십 배 향상될 뿐 아니라 인터넷 같은 보완 기술이 없는 환경에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오히려 이 지점에서 ‘왜 아무도 이 분야에 도전하지 않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조나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300개 이상의 저궤도 위성을 운영해야 비로소 전 세계에 조나의 초정밀 GPS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 계산에 따르면 앞으로도 이들 사업에는 대규모 자본 투자가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나는 풀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에 도전한다는 의지만으로 도요타벤처스와 록히드마틴벤처스를 비롯, 다수 투자자의 지지를 이끌어내며 첫발을 내디뎠다.


2. 어벤저스팀을 구성하라

조나의 공동 창업자가 8명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장기간 과학과 기술의 영역에서 어려운 문제에 도전해야 하는 딥테크 분야의 스타트업에 있어 기술 인재가 가지는 가치를 보여준다. 한두 명의 뛰어난 창업자가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업계 최고의 인재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는 팀플레이가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처음 이 문제에 집중하기로 하고 아이디어를 낸 타일러 CTO가 CEO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가장 많은 지분을 챙기는 것을 우선순위에 뒀다면 지금의 조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본인이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브라이언을 영입했고 CEO로 임명했다. 또한 GPS 분야에서 전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네트워크를 보유한 스탠퍼드 엔지니어링 GPS 연구소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비전에 공감하는 인재들을 초기에 데려왔다. 이런 전향적 태도는 조나가 단기간 안에 위성 발사를 포함해 의미 있는 결과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최고의 인재를 아무런 자본도 없는 스타트업에 데려오는 비결은 간단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어렵지만 인류를 위해 해결할 가치가 있는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스타트업의 99%는 원래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실패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 최고의 인재들이 스타트업으로 몰리는 이유는 가치 있는 문제에 도전한다는 사명감, 만에 하나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 인류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임팩트 등 다양한 ‘의미’에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특히 장기간 하나의 문제에 끈질기게 집중해야 하는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라면 더더욱 단기간의 금전적 보상이나 명성보다는 의미를 강조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가치 있는 도전에 우선순위를 두는 인재들을 불러 모아 한 단계씩 난제들을 해결해 나갈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성과들을 기대할 수 있다.


3. 죽음의 계곡을 건너야 플라이휠이 돌기 시작한다

미국의 디펜스 분야 스타트업들에는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iii ’이란 용어가 공공연하게 사용된다. R&D(연구개발) 기반 창업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초기 기술 기반 스타트업은 미 고등연구계획국(DARPA,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또는 미 에너지고등연구계획원(ARPA-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Energy)과 같은 정부 기관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초기 사업 매출을 만들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나 또한 사업 초기부터 미 공군의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AFWERX, Air Force Research Laboratory)의 프로젝트를 주기적으로 수행하며 사업 실적을 쌓아오고 있다.

문제는 연구 프로젝트의 성격이 강한 해당 과제들을 몇 차례 수행할 때까지 유의미한 사업 모델 또는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기관과의 파트너십을 찾지 못하면 회사가 사업적인 어려움에 처하기 쉽다는 것이다. 기술적 연구에서는 진전을 보이지만 상업화 가능성에는 이르지 못해 민간 투자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인 단계에서 생기는 자금 조달 진공 상태는 대부분의 초기 딥테크 스타트업들이 겪는 공통적인 문제다. 이는 단순히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고 해서도 해결될 수 없는, 어떤 측면에서는 하나의 기술이 사업으로 연결되기 위한 ‘진실의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조나는 일찍부터 자신들이 개발하는 초정밀 GPS가 전장에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전장에서 인터넷이 차단되거나 도청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기존의 GPS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미 국방부 내부에서부터 등장했다.

다행히 일찍부터 초정밀 GPS의 잠재 고객을 탐색해 왔던 조나는 2020년 미 국방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부터 정부 기관뿐 아니라 록히드마틴 같은 방산 기업과 협력 관계를 구축해 올 수 있었다. 록히드마틴 또한 자신들의 무기 시스템이 조나의 초정밀 GPS와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사업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그 결과 2022년 록히드마틴의 벤처캐피털그룹인 록히드마틴벤처스가 시드 라운드 투자 검토를 위해 조나를 찾았을 때는 이미 회사가 록히드마틴 본사와 기술 검증 등을 완료한 상태여서 투자 검토도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조나가 단순히 뛰어난 기술을 개발하면 누군가 사용할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론을 견지했다면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 초기부터 미래 서비스에 대한 고객을 적극 확보하기 위해 뛰어다닌 결과 조나는 2022년 5월 첫 위성 발사에 성공하고 8월 록히드마틴 주도의 추가 자금 조달에도 성공했다. 과학과 기술이 시장을 만나는 영역을 빠르게 찾은 덕분에 사업 시작 4년 만에 비로소 ‘제품 시연’ ‘자금 확보’
–인재 영입’이라는 사업 성공의 플라이휠이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스타트업 입장에서 초기 죽음의 계곡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단 한 명의 고객이라도 자신들의 비전에 공감하고 함께 리스크를 질 수 있는 상대를 찾아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만약 우리가 개발 중인 솔루션이 상용화될 경우 가장 먼저 가장 큰 혜택을 볼 수 있는 고객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해당 고객이야말로 서비스에 대한 돈을 지불할 용의가 가장 큰 잠재 고객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첫 번째 고객을 찾아내는 것은 회사가 다음 단계로 전진하기 위한 중요한 단계일 뿐 아니라 결국은 회사의 창업자와 경영진이 답을 찾아내야 하는 외로운 과정이다. 그리고 조나는 지금도 이 외로운 과정을 묵묵히 견디며 이들의 미션에 동참할 아군들을 포섭, 성장해 나가고 있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공인재무분석사(CFA)다. 에이티커니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근무하며 국내외 대기업과 다수의 성장 전략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후 국내 사모펀드에서 중소·중견기업 경영권 인수 및 성장 자본 투자를 이끌었다. 현재는 실리콘밸리 소재 벤처캐피털 ‘아틀라스퍼시픽’에서 전 세계 혁신기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으며 스타트업 및 테크 전문 뉴스레터 ‘CapitalEDG’를 운영하며 에디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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