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ase Study: 현대차 연구전문가 제도
DBR mini box I: Interview: 김재연 열에너지시스템 리서치랩 연구위원 “실패 페널티 없어… 10년 내다보고 기술 연구” 연구전문가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가장 큰 장점은 실패에 대한 관대함이다. 친환경차 열에너지 시스템 분야의 경우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이 불모지였다. 아무런 기반이 없는 기술을 최초로 연구하고 실제 양산차에 적용하기까지 수년에 걸쳐 숱한 실패를 경험했다. 그런데 글로벌 R&D 전문가 풀에 들어온 이후로 실패를 두고 추궁을 당하거나 페널티를 받은 적이 없다. 인사팀에서도 실패라는 결과보다 문제를 해결해나간 과정과 그로부터 나온 통찰이 현업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평가했다. 당장 양산 개발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실패한 경험과 시간 자체를 헛되게 보지 않는 문화가 있었기에 연구전문가로서 꾸준히 신기술 개발에 도전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현업 부서는 연간 목표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단기 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R&D 전문가는 최소 2년, R&D 마스터는 3∼5년, 연구위원은 5∼10년 이후를 바라보고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 리서치랩의 연구 프로젝트는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 현재 총 8명이 15개에 가까운 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보통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두세 개 과제를 함께 진행한다. 리서치랩은 대학의 연구실과 달리 전문성을 증명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궁극적으로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러려면 연구 과제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아이디어 수준에서 장기적 관점으로 탐색해야 할 기술, 탐색은 끝났고 개발 및 검증해야 하는 기술, 검증이 끝나 양산 적용을 검토해야 하는 기술 등으로 연구 과제를 예상 소요 기간을 감안해 적절히 분배하고, 랩 차원에서 점진적으로 기술을 고도화하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사이클을 관리하고 있다. 예컨대, 3∼5년 후를 목표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있지만 5∼10년 후를 목표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기술 변화의 속도가 무척 빨라졌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미리 탐색하지 않으면 언제든 뒤처질 수 있다. 연구위원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글로벌 R&D 전문가 때는 팀 단위, R&D 마스터 때는 팀과 실 조직 단위에서 필요한 기술을 고민했다면 연구위원의 리서치랩은 그룹 차원에서 5년 이후의 미래에 필요한 기술을 탐색해야 한다. 이에 따라 열에너지시스템 리서치랩은 기존의 전기차 등 지상용 모빌리티의 열에너지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연구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을 지향하는 그룹의 2025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목적 차량, 로봇, 전기 항공기, 수소 솔루션 등 미래 스마트 모빌리티의 열에너지 솔루션과 관련된 연구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R&D 전문가는 이미 1만 시간 이상을 투자해 기술 전문성을 입증한 전문가이기에 본인의 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어떻게 다른 기술과 연결시킬 것인가, 혹은 새로운 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적용할 것인가를 창의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지난 10년 이상 동료들과 함께 연구개발에 매진해 히트펌프 등 전 세계 1등 수준의 효율을 자랑하는 친환경차 열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양산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이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유지함으로써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기술 리더로 남고 싶다. 또한 내가 연구한 기술을 전수하고 후배들을 기술 리더로 육성하는 것도 연구위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협업한 후배들 중에서 글로벌 R&D 전문가가 되거나 일반 팀장이 된 후배들이 있는데 굉장히 뿌듯하다. 리서치랩의 구성원은 내게 팀원이기보다 함께 연구하는 동료에 가깝다. 각자의 강점이 뚜렷하며, 이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의견과 관점을 반영했을 때 최선의 연구 결과가 도출된다. 더 많은 후배가 기술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 연구전문가 제도에서 앞으로 개선돼야 할 점이 있다면. 돌이켜보면 글로벌 R&D 전문가로 선발된 이후 회사가 인정해준 만큼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과 책임감이 컸고 때론 지치기도 했다. 후배들도 이 과정을 잘 견디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회사에서 좀 더 세심하게 배려해주면 좋을 것 같다. 그룹 내부와 달리 외부에는 아직 연구전문가 제도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예컨대, 글로벌 R&D전문가 혹은 마스터에 선발됐다고 가족 등 주변에 자랑했을 때 그게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명함에 글로벌 R&D 전문가 혹은 마스터를 표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조금 더 대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연구전문가들에게 더 큰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
DBR mini box 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1.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경력 경로를 명확히 정의 박종규 뉴욕시립대 경영학과 조교수 jonggyu.park@csi.cuny.edu 한국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개발자(Grey-haired programmers)’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미국에서 자주 접하는 이 단어는 ‘개발자(Programmers)’라는 특정한 직업이나 직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기술과 전문성을 가진 연구개발 관련 인력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본인의 전문성을 가지고 왕성히 활동하고 있을 때 주로 사용된다. 우리에게는 왜 아직도 이 단어가 생소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연구개발 전문인력들이 어느 정도 경험과 경력을 쌓으면 다음 경력 단계로 관리직, 즉 사람을 관리하는 매니저나 사업을 책임지는 임원이 되는 길을 주로 생각해 왔으며 회사의 승진제도 역시 이에 맞게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연구개발(R&D) 인재의 육성과 활용이 기업의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의 먹거리를 결정하는 회사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이들이 경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는 관리직으로 제한적인 게 현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의 연구전문가 제도는 반갑고 또 바람직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몇몇 대기업에서 시작된 이중경력 경로(Dual ladder career path) 제도는 앞서 말한 관리자 중심의 경력개발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무엇보다도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핵심 인재들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그 주요 목적이 핵심 인재 유지(Retention)에 있었던 만큼 그 혜택을 누린 이들은 극히 일부였고, 이 제도를 경력 개발(Career development)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보완하거나 확대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차의 연구전문가 제도는 지속적인 수정과 보완을 통해 조직 관점과 직원들 개인 관점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고, 더 많은 연구개발 인재들이 회사 안에서 경력 계획을 세울 수 있게 경력 목표와 구체적인 경력 경로를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성공 요인을 찾을 수 있다. 회사 관점과 직원 개인 관점의 밸런스 HR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경력 개발(Career development program, CDP)’은 회사 관점의 ‘경력 관리(Career management)’와 직원 관점의 ‘경력 계획(Career planning)’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이다. 다시 말해, 조직의 필요에 따른 인적자원의 최적 활용, 즉 적재적소(適材適所)라는 조직 관점은 물론이고 조직 내 구성원이 자신의 경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단계를 확인하고, 이를 실행해 나가는 과정인 개인 관점까지 고려해서 그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경력개발제도를 설명할 때 [그림 1]과 같은 저울 이미지가 자주 사용된다. 연구전문가 제도는 여러 시도 끝에 두 관점을 조화롭게 만들어 연구개발 인력들의 경력 개발에 대해 조직과 개인의 만족을 모두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원천 기술 개발 등 연구위원들이 원하는 과제를 스스로 기획하고 추진하게 해 개인 관점의 경력 개발과 만족에 더 초점을 뒀다. 하지만 이후에는 현업과의 갈등이라는 부작용을 해결하고 현재 양산되는 차와 관련된 시급한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하는 조직의 요구를 반영해 연구위원의 역할을 회사의 중장기 전략과 연계된 선행 기술 연구로 재정의함으로써 조직 관점의 요구 역시 제도에 반영했다. 이와 함께 리서치랩이라는 실질적인 지원 시스템을 통해 그 두 관점을 잘 조화시켰다. 이 균형은 리서치랩 도입 후 연구위원들의 연구 만족도와 성과뿐 아니라 연구전문가 제도에 대한 회사 내 인지도와 신뢰가 높아졌다는 데서 확인 가능하다. 두 관점의 조화를 위해서는 조직 관점 경력 개발의 운영 주체인 인사(Human Resource Management, HRM) 기능과 개인 관점 경력 개발의 운영 주체인 교육 개발(Human Resource Development, HRD) 기능의 긴밀한 협조 역시 필수적이다. 연구전문가 제도는 연구개발인사운영팀과 연구개발성장지원팀의 협업을 통해 이를 구현했다. 먼저, 인사운영팀은 연구전문가들의 경력 단계를 정의하고 대상자를 선발하는 데 직접 관여하고, 성장지원팀은 경력 단계별로 필요한 역량을 정의하고 대상자들이 해당 역량을 개발할 수 있는 다양한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 기회를 통해 성장한 연구원들은 다시 다음 경력 단계의 대상자가 되면서 순차적인 경력 개발 단계를 밟아가게 된다. 이렇게 연구전문가 제도의 주요 이벤트들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분리된 두 팀의 긴밀하고도 유기적인 협력으로 연계돼 있다. 구체적인 경력 경로의 제시 경력 개발이 가진 대표적인 이미지는 ‘길(path)’이다. 직원들은 개인의 경력 개발을 생각할 때 경력 경로(Career path)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회사 안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은 누구나 있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기업이 경력개발제도를 운영할 때 가장 신경 써서 준비해야 할 것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경력 경로다.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한 경력 목표 및 그 목표로 올라가는 각 단계는 물론 각 단계별 요구 사항을 포함해야 함을 의미한다. ‘실질적’이라는 조건은 그 경력 목표와 경력 단계가 여러 사람에게 열려 있고 또 실현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력 목표라는 산꼭대기를 향해 등산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 정상에 오른 이가 거의 없거나 혹은 그 등산길에 이정표 같은 가이드가 부실하다면 도전할 마음조차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연구전문가 제도는 글로벌 R&D 전문가-글로벌 R&D 마스터-연구위원-수석연구위원의 4단계로 이뤄진 경력 경로와 단계별로 필요한 핵심 역량과 기술 역량을 명확히 정의하고 있다. 2014년 이전의 3단계 경력 경로는 글로벌 R&D 전문가가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가능성조차 낮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 R&D 마스터라는 신규 직위를 도입해서 경력 경로를 세분화한 것은 실질적인 경력 경로를 마련한 좋은 예다. 이에 더해 더 많은 인재가 연구전문가 경로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그 풀을 확대하고 글로벌 R&D 전문가 지원 조건을 완화한 것(예: 글로벌 R&D 전문가 지원을 위한 최소 연공 요건 폐지)은 인재 활용뿐 아니라 동기부여 및 몰입 강화라는 경력개발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에 충실한 바람직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단계별·연차별로 필요한 전문 기술을 비롯한 주요 역량들을 정의하고 그 역량에 기반해 체계적이고 다양한 사내·외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연구전문가 경로가 매우 구체적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장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해 잘 짜인 경력 개발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R&D 마스터들을 대상으로 해외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에서 1년간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은 현대차가 기술 인재들의 능력과 가치를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근거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은 직원들이 더 높은 동기와 몰입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전문가 트랙이 디폴트i 인 해외 기업 경력 경로나 경력 사다리 개발은 SHRM(Society of Human Resource Management)ii 에서 툴킷iii 으로 제공할 만큼 많은 기업이 활용하는 HR제도 중 하나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해외 기업들은 직원들의 개발과 몰입도 제고, 인재들의 유입과 유지를 위해 다양한 경력 관리 및 경력개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해외 IT, 엔지니어링, 제약회사 등 바이오 기업들은 전문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관리자 경로로 가기를 원치 않는 기술 인재들을 위해 현대차의 연구전문가 제도와 같은 이중 경력 경로나 전문가 트랙을 더 공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해외에서 소위 ‘머리가 희끗희끗한 개발자’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이들 기업의 공통적인 특징은 [그림 2]의 오른쪽 이미지처럼 전문가 트랙(Technical Track)을 디폴트로 한 이중 경력 경로를 운영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는 과학자, 개발자, 연구개발 등 특정 전문직군을 대상으로 경력 목표를 펠로우(현대차의 경우 수석 연구위원)로 삼고, 경력 경로의 디폴트 역시 전문가 트랙으로 정한 후, 그중 관리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인원들만 별도로 관리자 트랙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는 왼쪽 이미지인 Y자 형태의 전통적인 이중 경력 경로나 관리자 트랙이 디폴트가 되는 경력 경로보다 기술 인재들과 그들의 전문성을 훨씬 더 중시하고 그들을 회사 안에 남겨놓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R&D 이외의 다른 직군이나 핵심 인재 관리로의 확대 적용 앞서 설명한 전문가 트랙 중심의 이중 경력 경로 제도는 연구개발(R&D)이 핵심 조직 역량인 기업들이 주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경력개발제도의 상위 개념인 핵심 인재 관리(Talent management)나 승계 계획(Succession planning) 관점에서 연구개발 이외에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 직군이나 핵심 인력만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경력 경로를 설계하고 경력개발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례들도 있다. 예를 들어, 보험심사역의 언더라이팅(Underwriting) 역량이 매우 중요한 보험회사들은 해당 전문 역량 개발을 중심으로 대상자들의 경력 경로를 일반 직군과는 다르게 세분화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보험심사역의 직군을 견습 심사역(Underwriter Trainee)-보조 심사역(Assistant Underwriter)-Underwriter)-선임 심사역(Senior Underwriter)-부사장 심사역(VP, Vice President of Underwriting)-최고심사역(CUO, Chief Underwriting Officer) 등의 경력 경로로 세분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각 기업은 조직 차원의 전략적 니즈를 반영한 세부 역량이나 직군을 타깃으로, 다시 말해 특정 인력을 위한 이중 경력 경로나 별도의 경력개발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런 프로그램을 도입할 때 회사나 운영 주체들의 경험이나 준비도가 낮은 상황이라면 전 직원이나 모든 직군을 대상으로 제도를 설계하기보다 소수를 대상으로 선택과 집중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앞으로의 과제 현대차의 연구전문가 제도는 그 대상이 되는 남양연구소 연구 인력들에게 공식적인 경력 경로로 인정받고 있다는 면에서 성숙기에 접어들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앞으로의 계획이 연구전문가들 간의 네트워킹 강화를 통한 공동 학습과 시너지 확보라는 점은 회사 내 지식 전수나 보호 차원에서 필요한 기술 중심의 승계 계획(Technical Succession Planning)iv 은 물론이고 회사 내 인력들이 보유한 사회적·인적 관계망을 보전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소셜네트워크 중심의 승계 계획(Social Network Succession Planning)v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방향성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부품과 철강은 물론이고 로보틱스나 AI 등 다양한 분야의 내·외부 관계사들과 협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내부 전문가들 사이의 네트워킹 강화를 넘어 외부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를 유지하거나 발전할 수 있는 방안 역시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현대차의 연구위원들이 자신의 지식뿐 아니라 양질의 내·외부 네트워크까지도 전승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상위 경력 단계에 있는 연구전문가들이 구축한 좋은 관계를 후배들이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다면 경력 개발은 물론이고 지식 관리나 승계 계획까지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의 확장과 발전을 통해 현대차의 연구전문가 제도가 연구개발(R&D) 인재의 육성과 활용이 중요한 한국의 많은 기업들에 좋은 본보기와 베스트 프랙티스로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LG인화원에서 근무했으며 타워스왓슨과 딜로이트에서 HR과 전략 컨설팅을 수행했다. 현재 미국 로스웰앤드어소시에이츠(Rothwell & Associates)의 파트너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리더십과 조직 개발이다. |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2. 팀장의 위기, 업무·인재 리더 분리로 해소 김진영 커넥팅더닷츠 대표 jykim.2ndlife@gmail.com 구글에는 제프 딘이라는 유명한 개발자가 있다. 한때 구글의 인공지능 개발을 선도했고, 부사장 직책까지 맡았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현재 그는 아무런 자리를 맡고 있지 않다. 자신은 독립 기여자(individual contributor)임을 선언하며 개발에만 몰두하고 있다. 한국 기업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관리자-전문가 투 트랙의 필요성 한국의 팀장은 일반적으로 관리자를 의미한다. 실무자(팀원)는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일하는 스페셜리스트지만 팀장부터는 제너럴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업무 총괄, 회의 참석, 보고와 지시 등 관리자 역할을 담당한다. 최근에는 인재 육성, 감성 지능, 코칭 등과 같은 리더 역할까지 요구받는다. 실무자는 하드 스킬(직무 역량)을, 관리자는 높은 소프트 스킬(리더십 역량)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경험상 한국 팀장의 20%가량은 소프트 스킬 부족을 체감한다. 실무자였을 때 훌륭했지만 팀장이 되고 나서 혼란을 겪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팀장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아직 한국에서 면(免) 팀장은 흔한 일이 아니다. 특별한 이슈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개인의 경력을 고려해 면 팀장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전문성은 있으나 관리력 또는 리더십이 부족한 리더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만약 이들이 비자발적인 퇴사를 결정하게 되면 회사는 전문가를 잃게 되는 꼴이다. 따라서 전문가 트랙을 만들어 제너럴리스트가 되지 않아도 조직 내에서 오랫동안 기여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효과적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의 남양연구소는 연구전문가 제도를 통해 연구 역량이 특출난 인재가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과거 국내 몇몇 대기업에서 비슷한 제도가 있었지만 현대차의 연구전문가 제도만큼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발전하지 못했다. 주된 이유는 전문가 트랙에 있는 사람들을 임원 레벨까지 승진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현대차의 경우 임원까지 오를 수 있도록 확실한, 관리자-전문가 투 트랙 체계를 확립했다. 기술 개발에 적성이 맞는 직원을 위해 안정적인 경로 개발의 길을 확장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작년 말 삼성전자는 우수 엔지니어 중 ‘DE(Distinguished engineer)’를 선발해 전문가 트랙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관리자와 전문가 모두를 아우르는 인재 체계 개편에 기업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적과 육성, 다 잘하기 어렵다 사실 한국의 중간관리자(팀장, 파트장, 부서장 등)는 조직의 실적을 내야 하고, 직원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실적은 결과 중심이고, 육성은 과정 중심으로 상반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결과를 만들려면 직원을 압박해야 하며, 결과까지 이르도록 동기를 끌어내야 한다. 다시 말해, 중간관리자는 관리자의 역할과 리더의 역할 두 가지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많은 기업의 팀장이 스스로 팀장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다고 말한다. 일은 넘치는데 마땅히 리더십을 발휘할 수단은 부족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 추궁은 심해서 그렇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팀원 상당수마저도 팀장이 되기를 꺼리고 있다. 우리 팀장이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팀장 업무의 효율화 정도가 아니라 일의 절대량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까지 와버렸다. 관리자-전문가의 투 트랙 제도는 이런 답답한 팀장의 숨통을 트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차나 삼성전자처럼 이공계 직무에만 한정되는 투 트랙 체계는 다른 직무로도 확산할 수 있다. 예컨대, 호주 최대 통신사 텔스트라(Telstra)i 는 ‘업무 리더(leader of work)’와 ‘인재 리더(leader of people)’로 관리자를 물리적으로 분리해 운용하고 있다. 즉, 업무 리더는 실적 달성을 맡고, 인재 리더는 역량 강화를 맡는다. 이는 애자일 방식을 준용한 것이다. 애자일 형태의 조직에서 업무는 ‘스쿼드’ 단위에서 수행하고 실적을 내며, 역량 개발(기술 지원, 역량 면담 등)은 챕터 단위에서 진행한다. 즉, 스쿼드 리더가 업무 리더가 되고, 챕터 리더가 인재 리더가 되는 식이다. 이렇게 관점이 상이한 두 업무(실적 달성, 인재 육성)를 구분하고 전문화해 더욱 적합한 사람을 배치함으로써 높은 효율을 끌어내고 있다. 사람마다 다른 하드 스킬과 소프트 스킬 수준을 감안해 강점 활용을 극대화한 조직 운영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밖에 IBM, 구글, 메타 등에서도 일부 조직에는 ‘인재 리더(people manager)’를 별도로 두며 관리자의 업무를 분업화하고 있다. 이들은 업무에 따라 적용 방식을 다르게 한다. 어느 팀에는 팀장(team lead)과 인재 리더가 각각 한 명씩 배치된 경우도 있고, 인재 리더가 여러 팀의 팀원을 동시에 담당하기도 한다. 또한 인재 리더가 프로젝트 관리자를 수행하기도 한다. 업무의 강도와 투입 인력의 수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다. 업무 리더와 인재 리더는 평소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성과 달성과 인재 육성의 톱니바퀴를 맞춰가며 과업 수행을 촉진한다. 업무 중심으로 ‘역할’에 대한 유연한 사고가 반영된 사례라고 하겠다. 팀에 대한 새로운 생각 경력 개발의 길을 확장하기 위해선 우선 부서(팀) 제도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오래된 기업에 가 보면 팀장을 10년 이상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임원 승진은 안 되고, 퇴사 처리는 어려우니 계속 직함만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조직 활성화 측면에서 좋지 않다. 순환이 필요하다. 따라서 부서(팀)를 고정으로 생각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역할’ 중심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조직의 역할에 대해 리마인드를 한 후 가장 적합한 사람을 팀장으로 앉히는 것이다. 이러면 팀장으로 임명되고 내려오는 것은 하나의 일상이 된다. 선배 또는 팀장이 실력 없고,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오래 다녀서 연봉만 높다는 후배 직원의 불만을 상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텔스트라의 사례처럼 직제의 공식적 변경이 당장 어렵다면 ‘전문가 위원회’ 구성을 고려할 수도 있다. 중간관리자 레벨에서 전문성 활용이 필요하거나 관리자로서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이동시켜 배치한다. 그들에게는 ‘시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과제’를 부여한다. 대개 조직에는 중요하지만 뒤로 미뤄뒀던 일이 있게 마련이다. 혹여 이들이 모멸감을 느끼지 않도록 부서 이동 시 이임 파티를 열어주고, 전문가 수당을 지급한다. 전문가 위원회의 미션을 잘 수행한 경우 본인의 요청에 따라 현업 부서 복귀를 고려할 수 있다. 상설화되면 관리자-전문가 간의 인력 순환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이처럼 투 트랙 제도는 직원에겐 경력 개발의 활로와 고용 유지의 안정을 줄 수 있고, 회사로선 경쟁력 보전과 조직 활성화라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특히 중간관리자(팀장)의 붕괴까지 우려되는 현재 기업의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필자는 전략, 신사업, IT 기획자로 24년 동안 조직에서 일했다. 현재는 리더십 코칭과 강의로 조직의 변화를 돕고 있다. 저서로는 『팀장으로 산다는 건 1, 2』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