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DBR Case Study: K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메이크스타’의 성장기

실력 있는 ‘중소돌’을 해외 팬덤과 연결
영세 기획사들의 듬직한 ‘글로벌 도약대’

김윤진 | 372호 (2023년 07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해외 K팝 팬들을 상대로 한 비즈니스가 돈이 된다는 것을 이제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곳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이며, 매년 수없이 많은 회사가 소리소문없이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메이크스타는 K팝 등 K콘텐츠의 제작 및 아티스트 육성 시스템은 이미 상당한 궤도에 올랐으나 그에 상응하는 상품화 및 수익화 역량이 없는 중소 엔터테인먼트사들이 많다는 데 주목, 이들과 해외 팬덤을 연결하는 기술 기반 플랫폼을 고안했다. 인력과 자본, 시장에 대한 경험치나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군소 회사들이 데이터 깜깜이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팬덤 행동 변화에 맞는 상품을 기획하고, 고객 경험을 방해하는 결제·배송 병목 등을 없애면서 ‘중소돌’의 페인포인트 해소에 주력했다. 그리고 이제는 여러 팬덤 클러스터를 연결해 외연을 확장하면서 대형 기획사까지 아우르는 종합 플랫폼으로 도약을 꾀하는 중이다.



나날이 높아지는 ‘K콘텐츠 강국’의 위상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한국인의 끼와 흥, 창의성과 진정성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K경쟁’이다. 2023년 5월 말 기준 대한민국에 정식으로 등록된 대중문화예술기획업체, 소위 연예기획사의 숫자는 총 4515개에 달한다.1 올 들어 폐업하거나 휴업한 회사도 30곳이 넘는다. 대중이 쉽게 떠올릴 법한 대형 연예기획사가 하이브(HYBE),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등 기껏해야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것을 고려하면 얼마나 많은 콘텐츠 창작자가 바늘구멍을 뚫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한류를 등에 업고 K팝과 K드라마, K영화 등의 인기가 고공비행 중이라고 해서 모든 아티스트가 전 세계 팬과 만나고, 모든 엔터테인먼트사가 곧장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 외부 소셜미디어를 통하지 않고 팬과 직접 소통하거나 상품 및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는 자체 채널을 가진 곳이 드물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와 커머스 기능을 망라한 글로벌 팬덤 플랫폼을 보유한 회사는 자회사 위버스컴퍼니를 통해 ‘위버스’를 운영하는 하이브, 계열사 디어유를 통해 ‘버블(리슨)’을 운영하는 SM엔터테인먼트 정도다.

국내 팬덤 플랫폼의 양대 산맥인 위버스와 버블은 막강한 콘텐츠 파워와 아티스트의 영향력을 무기로 거대 플랫폼으로 도약한 사례다. 이처럼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두 플랫폼이 파편화된 팬덤 관련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인수·합병하는 상황에서 제3의 플랫폼이 설 자리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 틈새에서 오리지널 콘텐츠와 지식재산(IP) 없이 플랫폼만 가지고 350곳에 달하는 엔터테인먼트사들을 입점시키고 새로운 커머스의 장을 열고 있는 회사가 있다. 바로 FNC엔터테인먼트의 창립 멤버인 김재면 대표(CEO)와 빅히트엔터테인먼트(구 하이브)의 대표직을 약 6년간 지낸 채영곤 영업총괄이사 등이 의기투합해 창업한 메이크스타다.

20230626_132546


‘엔테크(엔터테인먼트+테크)’를 표방하며 2015년 12월 엔터테인먼트에 특화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론칭한 이 회사는 창업 초기 대형 팬덤 플랫폼에 참여하지 못하는 중소 엔터테인먼트사들을 흡수하면서 서서히 세를 키웠다. 그리고 이제는 데뷔 전, 갓 데뷔한 신인 그룹들은 물론이고 블랙핑크, 레드벨벳, 스트레이키즈, 에이티즈 등 대형 아티스트의 앨범, 화보집, 팬미팅, 콘서트 등까지 유통하는 플랫폼이 됐다. 지금까지 메이크스타에서 성사된 공동 프로젝트 수는 1500가지가 넘으며 방문한 이용자들의 국적은 총 235개국, 이 중 매출이 발생한 국가만 181개국에 달한다. 2021년 흑자로 전환하고 KDB산업은행, 알토스벤처스 등에서 140억 원의 시리즈 C 투자를 유치했으며 지난해에는 매출 479억 원을 기록했다.

무명 기획사였던 FNC엔터테인먼트를 맨땅에서 일으키고 FT아일랜드, 씨앤블루, AOA 등 유수의 아이돌을 키워내면서 중소 연예기획사들의 고충을 이해하게 됐다는 김 대표는 문화예술로서 K콘텐츠가 가지는 경쟁력에 비해 비즈니스 기회나 창구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데 주목했다. 인력과 자본, 시장에 대한 경험치나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군소 회사들이 더 많은 해외 팬덤과 연결하고, 수익 모델을 발굴하고, 글로벌 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 기반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세계적인 콘텐츠 경쟁력을 갖춘 대형 연예기획사 주도로 팬덤 플랫폼이 재편되고 있는 큰 흐름 속에서 메이크스타는 어떻게 플랫폼 하나로 수많은 협업 파트너의 마음을 얻고 시장에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DBR이 김 대표를 만나 메이크스타의 차별화된 성장 전략을 들어봤다.


절박한 ‘중소돌’의 페인포인트에 주목

최근 국내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의 곡 ‘큐피드(CUPID)’가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핫100’에 진입하고 K팝 걸그룹 최장기 기록을 세우며 화제를 모았다. 이들의 약진이 K팝 시장을 놀라게 한 까닭은 규모의 경제가 강하게 작동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대형 기획사 소속이 아닌 소위 ‘중소돌(중소기획사의 아이돌)’의 글로벌 차트 진입이 기적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데뷔 전부터 팬덤을 거느린 대형 아티스트 사이에서 자금이나 조직력이 받쳐주지 않는 중소돌이 대중에 존재를 각인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성공의 문이 협소하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의 법칙이 통용되는 곳이 바로 엔터테인먼트 업계다. 개별 회사의 명운이 특정 아티스트의 성패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빌보드는커녕 국내 차트에도 들지 못한 채 자취를 감추는 회사와 아티스트도 부지기수다. 일반적인 전속 계약 기간인 7년도 미처 채우지 못하고 해체하는 그룹도 많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대학 밴드 동아리 선후배들과 함께 차린 FNC엔터테인먼트를 키우는 과정에서 김 대표는 이렇게 자원이 한정적이고 포트폴리오 분산이 힘든 중소 기획사들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다행히 FNC는 운이 좋은 편이었지만 이렇게 큰 위험 부담을 짊어진 회사들이 조금이라도 성공의 문을 넓히기 위해서는 좁은 국내 시장에서 경쟁하기보다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봤다. 이미 2000년대 중후반부터 해외 팬덤 시장의 폭발 조짐은 감지되고 있었고 K팝이 대세까지는 아니었지만 FNC 소속 그룹들에도 일본만이 아니라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에서 콘서트나 팬미팅 요청이 쏟아지는 등 인기가 높아지던 추세였다.

하지만 이런 열기가 무색할 정도로 대다수 중소 기획사에 글로벌 팬덤은 여전히 ‘깜깜이’ 시장이었다. 해외 현지 프로모터들이 이벤트를 제안해 와도 어느 국가에 얼마나 팬이 모여 있는지, 사기꾼들은 아닌지, 막상 현지에 갔는데 객석이 비어 있는 건 아닌지, 행사 가격은 얼마 정도가 적정한지 등 정보가 없었다. 자연히 좋은 기회를 놓치거나 터무니없는 조건을 덜컥 승낙해 버리기 일쑤였다.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K팝이 확산되면서 글로벌 팬덤이 태동하기 시작했지만 대형 기획사와 달리 이들을 관리해 본 경험이 없고 제대로 된 구심점이 없다 보니 팬들의 규모나 지역 분포, 구매력과 지불 의사 등 기본적인 데이터조차 쌓이지 못했다.

20230626_132554


김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비즈니스 기회가 열리고 있다 해도 데이터가 없는 블랙박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 그 기회를 잡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나날이 인기를 더해가는 K팝과 해외 팬들을 연결하고 데이터를 결집할 수 있는 플랫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다. 하지만 개별 연예기획사가 이런 플랫폼을 갖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티스트를 육성하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 기획력과 자금력을 창작에 쏟아부어야 하는 이들에게 사업화의 부담까지 지우는 것은 무리였다. 홍보(PR), 마케팅, 팬덤 관리, 캐스팅 관리 외 다른 업무에 인력을 배치하기엔 일손도 모자랐다. 한 바구니에 모든 계란을 담아도 성공을 담보할 수 없는 시장에서 IT에 투자하고 개발 인력을 채용할 여력이 되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이에 김 대표는 새로운 회사를 창업해 보기로 했다. 기존 기획사들이 잘하던 것을 계속 잘할 수 있도록 돕되 산업 자체가 근본적으로 안고 있던 높은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는 기술 기반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한 것이다. 기획사 창업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면서도 기존 회사들과 상생 혹은 동반 성장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면 시장 플레이어 모두가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앨범 성적 하나에 회사의 뿌리부터 흔들리는 중소 기획사들이 아직은 불모지인 해외시장의 수요를 정확히 읽고 맞춤형 상품을 유통한다면 국내 시장에서만 경쟁할 때보다 위험을 낮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울러 특정 소속사의 아티스트와 IP(지식재산)만이 아니라 다양한 아티스트와 IP를 망라하는 플랫폼으로 도약하고 파트너십을 넓히려면 기존 회사의 울타리를 벗어날 필요도 있었다.

이렇게 새 회사를 창업하고 첫 번째 사업 모델로는 ‘크라우드펀딩’을 택했다. 영세한 회사도 초기 투자에 대한 부담 없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서 팬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을 만들어 팔 수 있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또한 크라우드펀딩은 기획사들의 진입 장벽이 낮을 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친숙한 활동이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 팬들 사이에서도 십시일반 돈을 모아 아티스트의 생일 광고를 내고 콘서트에서 흔들 야광봉이나 대형 선물 등을 준비하는 게 이미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실제로 이런 활동을 주도적으로 조직하면서 돈을 모으고, 제작을 맡기고, 상품의 유통을 총괄하는 ‘총대’란 역할도 존재했다.

이에 김 대표는 신생 플랫폼이 일종의 ‘총대’ 역할을 맡아 자금 조달, 상품 기획, 제작, 배송까지 대행해준다면 빠르게 성장해 회사와 팬들 사이의 가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크라우드펀딩이 팬들에게 단순 거래를 넘어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줌으로써 충성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데도 주목했다. 이렇게 첫발을 뗀 메이크스타는 일정 기간 동안 목표 금액을 달성해야 하는 크라우드펀딩 외에도 선주문, 예약 판매, 한정 판매, 일반 커머스 등 다양한 파생 모델을 추가하면서 ‘해외 팬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해 나갔다.

20230626_132606


온라인 발품 팔기로 데이터 깜깜이 탈출

하지만 2015년 1월 법인 설립 후 12월 서비스 론칭까지 1년 가까운 준비 기간에 메이크스타가 맞닥뜨린 가장 큰 난제는 기획사, 즉 콘텐츠 공급사들을 듣도 보도 못한 신생 플랫폼에 입점하라고 설득하는 일이었다.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보자고 해도 기획사들은 요지부동이었다. 해외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실체가 불분명한 해외 팬덤을 상대로 상품을 팔아보자고 말해도 데이터 없이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팬들이 과연 몇 명이나 모일지, 수요가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선뜻 아티스트의 얼굴이 박힌 상품을 파는 것을 꺼렸다.

데이터가 없는 건 메이크스타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김 대표를 위시한 창업자들이 업계에서 잔뼈가 굵고 네트워크가 있는 정보통이라 해도 플랫폼 사업은 처음이었다. 신중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을 움직인다는 건 결코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업의 특성상 아티스트의 브랜드 평판이 핵심 자산인데 검증되지 않은 곳에 아티스트의 얼굴이 담긴 굿즈나 서비스를 섣불리 노출시켜 이미지를 소진하는 것을 기피하는 게 당연했다. 크라우드펀딩 모델도 생소하다 보니 ‘물건이 팔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돈이 들어오냐’면서 의구심을 보이는 회사도 있었다.

이에 메이크스타는 주먹구구식이라도 데이터를 모아야 기획사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 봤다. K팝을 사랑하고 소통과 연결의 기회에 목말라하는 해외 팬들의 갈증을 보여주면서 설득해야 했다. 이에 김 대표는 일단 온라인에서 전 세계 팬클럽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커뮤니티와 웹사이트 등을 뒤지면서 온라인에서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선 인지도가 낮은 가수의 팬들도 잘 찾아보면 세계 곳곳에 숨어 있었다. 중남미 페루에 10여 명씩 모여 있기도 하고 국가별로 크든 작든 팬들이 삼삼오오 모여 정보를 교류하거나 공동 구매를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창업 멤버들은 이런 소모임을 일일이 검색해 모임을 이끄는 방장들에게 e메일과 다이렉트 메시지(DM)를 보냈다. 플랫폼을 만들어 놓고 팬들이 모이길 마냥 기다릴 게 아니라 먼저 손을 내밀어 그들의 수요를 읽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이었다.

다행히도 이 같은 막무가내 연락에 해외 팬들이 화답했다. 통상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플랫폼 기업이 당면하는 어려움은 소비자들이 정보 제공에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솔직하고 상세한 피드백을 주는 것을 주저하거나 귀찮아 한다. 하지만 K팝 팬들은 일반 소비자들과는 달랐다. 한국 팬들을 통해 알음알음 앨범을 구해야 했던 이들은 직접 원할 때 굿즈를 주문하거나 가수를 만날 수 없다는 데 답답함과 박탈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고 팬덤 활동의 일부가 될 기회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SNS에 올라오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할 수밖에 없던 이들에게 메이크스타라는 플랫폼의 등장은 일종의 동아줄과 같았다. 한국인, 그것도 ‘내 가수’와 알거나, 한 다리 건너 연락이 닿을지도 모르는 동종 업계 종사자가 연락해 왔다는 것만으로 이들에겐 단비 같은 소식이었고, 기꺼이 자신들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가 돼 있었다.

이 같은 수요를 간파한 메이크스타는 팬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질문했다. “너희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상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니?” “이런 서비스를 선보이면 얼마나 참여하겠니?” “어떤 상품과 이벤트를 원하니?” 등 설문 조사를 진행하면서 국가별 팬들의 참여 및 구매 의사, 지불 희망 가격, 예상되는 매출, 마케팅 효과 등을 담은 분석 자료와 결과 리포트를 작성했다. 테크 플랫폼을 표방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대단한 분석 도구나 방법론을 동원한 게 아니라 팬들이 있는 곳을 직접 두들겨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것이다.

해외 팬들의 관여도를 높이기 위해 발언 창구도 넓혔다. 대륙별, 국가별로 ‘메이크스타 서포터즈’를 공개 모집하고 “원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면 소속사에 대신 전달해주겠다”라며 의견을 내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러자 팬들은 관리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김 대표는 “이렇게 팬들이 낸 의견이 실제 프로젝트에 반영되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설령 반영까지 안 되더라도 팬들은 제작 과정의 일부가 되고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는 것만으로도 훨씬 더 높은 충성도를 보이곤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손에 잡히는 숫자와 팬들의 생생한 반응을 보여주면서 설득하자 기획사들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동방신기 멤버였던 김준수(JYJ)의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물꼬가 터졌다. 김 대표는 “액수가 크진 않았지만 팬덤의 화력에 힘입어 첫 프로젝트부터 매출이 발생했고 우리를 믿어 준 기획사들에도 약속했던 수익을 돌려줄 수 있었다”면서 “이렇게 초기 성과가 반복되면서 한때 깜깜했던 해외시장에 대한 데이터가 점점 축적됐고, 입점 업체도 자연 유입됐다”고 말했다. 시작은 발품 팔기였지만 이제는 개발팀 외에 데이터팀을 별도로 두고 매주 정기 회의에서 프로젝트별 팬덤의 유사성과 특수성, 재구매율, 재방문율 등을 논의하는 게 일상이 됐다. 프로젝트 수가 늘어날수록 어떤 팬덤이 어떤 제품을 주로 구매하고, 어떤 행사에 호응하는지 등 더 정확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20230626_132615


고객 경험 가로막는 결제·물류 병목 제거

하지만 기획사들의 마음을 얻고 많은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자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다. 여러 회사를 입점시켜 콘텐츠를 확보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카페24, 쇼피파이 등 외부 솔루션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전 직원 가운데 3분의 1이 플랫폼 개발자일 정도로 IT 인력 확보에 매진했다. 하지만 플랫폼 구현보다 어려운 것은 전 세계 국가에 흩어져 있는 팬들이 구매를 한 뒤 결제를 하고 배송을 받기까지 ‘엔드 투 엔드(end-to-end)’ 경험이 마찰 없이 이뤄지도록 하는 일이었다. 매끄러운 고객 경험을 저해하는 병목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 숨어 있었다. 한국 토종 플랫폼 기업이 200개국에 달하는 국가의 소비자들을 상대로 직접 온라인 결제,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다 보니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한 예로, 해외 팬들이 쉽게 결제할 수 있게 하려면 페이팔, 알리페이 등 전자 결제 서비스 지원은 필수였다. 하지만 세계 방방곳곳에 흩어진 개인이 모두 해외 간편 결제를 할 수 있게 구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결제 대금의 액수가 크고 수금이 원활하지 않아 곤혹을 치러야 했다. 김 대표는 “당시 페이팔에 따르면 한국에서 B2C(기업 대 소비자)로 이렇게 많은 국가에서 매출을 일으키는 회사가 항공사를 제외하면 없었다고 한다”며 “창업 초기에는 페이팔 한국 지점도 없었고 아시아 본부도 매우 영세할 정도로 해외 간편 결제가 일상적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페이팔 정책상 하루 송금 한도가 최대 2000만 원일 정도로 아시아에서는 거액의 결제가 이뤄진 예가 없었다. 상품 판매에 성공하고도 결제 대금을 받지 못한 채 페이팔에 거치해 둔 현금이 20억 원을 넘어가기도 했다. 불만을 계속 토로해 추후 송금 한도를 하루 2억 원까지 늘리긴 했지만 결제대행(PG) 업체와의 협업부터 순탄치 않았다는 얘기다.

물류는 더 말썽이었다. 처음에는 EMS, DHL 등 제3자 물류(3PL) 업체에 상품 분류와 포장, 배송 등을 맡겼지만 오배송률이 전체 상품의 10%를 넘어갈 정도로 실수가 잦았다. 분류와 포장 등을 담당하는 직원들, 더욱이 팬도 아닌 중년 여성들이나 남성들에겐 상품을 식별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이제 막 데뷔하거나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아이돌 그룹이 생소한 것은 물론이고 멤버 수도 많고, 얼굴이나 스타일도 비슷비슷하다 보니 굿즈가 섞이거나 뒤바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고객과의 접점에서 일어나는 실수는 단 한 건만으로도 고객의 영구적인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유통사가 방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김 대표는 “팬들은 배송이 늦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내 가수’가 아닌 다른 가수의 상품이 도착하는 것은 용납하기 힘든 실수로 여긴다”면서 “결국 고객과의 접점에서 신뢰가 영구적으로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물류도 직접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결국 메이크스타는 내부에 물류 전문가가 아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송을 외부에 위탁하기보다는 A부터 Z까지 회사가 직접 전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가정집을 개조한 2층짜리 사무실 지하에서 30명 남짓의 직원이 직접 상품을 쌓아 두고 일일이 분류, 포장하기 시작했다. 배송지에 따라 국가별 송장도 다 따로 뽑아야 하고, 언어도 제각각이고, 재고 관리 경험도 없었으나 처음에는 수작업 외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지금은 경기도 용인시에 9900㎡(약 3000평) 규모의 물류센터를 짓고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있지만 물류의 시작은 직원들의 단순 ‘노가다’였다.


팬덤 갈증 채워주는 ‘덕업일치’ 상품 기획

신생 플랫폼의 진입 장벽이 높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메이크스타가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던 비결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요 예측의 적중률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소 기획사를 중심으로 굿즈 기획 단계에서부터 판매 경험이나 노하우가 많은 메이크스타에 알음알음 자문을 구해오는 곳도 많아졌다. 간혹 아티스트의 활동 콘셉트나 홍보 등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팬들이 소속사를 원망하곤 하는데 회사들이 이런 엇박자가 나지 않도록 미리 팬덤의 반응이나 프로젝트 성공 여부를 타진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전 물량을 얼마나 제작해야 재고가 남지 않을지, 어떻게 하면 비용이 수익을 앞지르는 것을 막을지, 새 앨범의 콘셉트가 팬들의 취향에 부합할지, 어떤 이벤트를 진행해야 진성 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가 주된 고민이었다.

컨설팅을 방불케 하는 긴밀한 협업이 일상이 되다 보니 아예 프로젝트 기획 단계에서부터 메이크스타가 참여해 상품 기획, 제작, 유통의 전 과정을 함께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메이크스타 매니저가 붙어서 앨범과 팬 행사 등 상품을 어떻게 묶어 기획해야 하는지, 어느 시장을 겨냥해 마케팅을 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16년 당시 섹시한 콘셉트를 앞세웠던 걸그룹 ‘스텔라’의 경우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었지만 메이크스타가 취합한 데이터에 따르면 해외 팬덤의 규모가 상당했다. 이에 기획사를 설득해 처음부터 국내 시장이 아니라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앨범 판매를 진행하면 더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입점시켰고, 예상은 적중했다. 첫 번째 앨범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는 421.8%의 달성률로 약 4200만 원을, 두 번째 프로젝트는 520%가 넘는 달성률로 약 6200만 원을 모으는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실제로 프로젝트 참여자의 92%가 해외 팬들이었고 국내 팬들은 약 7~8% 불과했을 정도로 해외에서의 반향이 컸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메이크스타는 프로젝트의 성패가 결국 팬덤 수요의 정확한 예측에 달려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이에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기본으로 하되 상품 기획을 맡은 콘텐츠 기획팀 직원을 뽑을 때도 흔히 ‘덕질’이라고 부르는,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향한 열성적인 팬덤 활동을 이해하는지 여부를 중요한 채용 기준으로 삼았다. 상품 기획에 있어 창의력과 빠른 실행력 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팬들의 숨겨진 속내를 포착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다른 회사들도 직원을 채용할 때 이런 팬들에 대한 이해를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겠지만 메이크스타의 차별점은 이렇게 분석한 팬들의 수요를 토대로 아티스트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를 활용한 2차 상품 및 고객 서비스를 기획해 유통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팬덤에 최대한 밀착돼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는 팬들이 느끼는 불편이나 문제에 대한 맞춤형 솔루션을 빠르게 구현해 커머스로 전환하는 동력이 됐다. 팬덤 활동인 ‘덕질’과 현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덕업일치’를 실현한 직원들이 철저히 팬의 시각에서 어떤 상품과 서비스가 필요한지 고민하다 보니 고객 지향 솔루션에 더 빠르게 다가갈 수 있게 됐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1. K팝 행동주의 흐름에 편승한 ‘포카앨범’

메이크스타가 ‘CD를 뺀 앨범’, 즉 모바일 앱과 피지컬 앨범의 장점을 결합한 대체 앨범을 제작하게 된 것도 팬들도 이를 원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9년께부터 회사 콘텐츠 기획팀 내부에서는 기존 앨범의 형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이 같은 문제 제기가 그동안 업계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CD플레이어가 자취를 감춘 시대에 CD 앨범은 ‘예쁜 쓰레기’에 지나지 않았다. 더는 앨범이 음악을 듣는 용도가 아니라는 공감대도 진작에 형성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에게 앨범은 여전히 ‘제1호 굿즈’로서 의미가 컸고, 최소한 하나, 혹은 여력이 닿는다면 최대한 많이 사는 게 팬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의무였다. 팬덤 문화 안에서 앨범은 단순 소장용을 넘어 아티스트의 음반 판매량을 높이기 위한 응원과 지지의 표현이었다. 또한 대개 앨범을 사면 팬사인회 등의 이벤트 응모권이 따라오기 때문에 아티스트와 만날 수 있는 권리를 사는 수단이기도 했다.

이렇듯 앨범이 팬덤 문화와 결합돼 다양한 의미를 띠고 있는 만큼 업계 내에서는 표준화된 형태를 섣불리 바꾸면 자칫 팬들 사이에서 거부감이 일거나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염려가 짙었다. 공식으로 앨범 판매량에 집계되지 않으면 상품의 가치가 없어진다는 것도 문제였다. 개별 회사가 선뜻 나서지는 못했던 이유다.

하지만 K팝 문화에서 앨범이 가지는 중요성을 차치하더라도 “대체 앨범에 CD는 왜 들어 있는 거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특히 부피도 크고 무거운 데다 진성 팬들은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을 동시에 사재기해야 하니 처치가 곤란했다. 앨범 처분으로 골머리를 앓는 것은 팬만이 아니었다. 기획사도 버려지는 CD를 계속 제작하기 위해 비용을 대는 데 피로감을 느꼈다. 이렇게 팬들이 원하고, 기획사들까지 원하는데 그 사이를 잇는 플랫폼사가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시장이 원하고 있으니 바뀌어야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LP에서 카세트테이프, CD로 변화를 거듭해 오던 앨범이 또 한 번 새로운 형태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온 것이다.

이에 메이크스타는 음악을 스마트폰으로 듣는 세상에 맞게 모바일과 연결되고, 폐기 문제에서 자유로우면서 부피까지 확 줄일 수 있는 CD 앨범의 대체재를 고안하기 시작했다. 모바일과 연동하더라도 팬들의 소장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손에 잡히는 실물은 반드시 필요했다. 고민 끝에 메이크스타가 기획한 대체 품목이 바로 ‘포카앨범’이다. 이 포카앨범은 보통 팬들이 수집하는 포토카드와 유사하지만 QR이나 NFC로 찍으면 모바일에서 음원을 들을 수 있고 디지털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피지털(physital, physical과 digital의 합성어)’의 성격을 띤다.

20230626_132626


대안은 마련됐지만 상용화에 있어 상품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출시 타이밍이었다. 출시를 2~3년이나 준비하고 2022년 중순에나 신제품을 선보인 까닭도 시장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지 않으면 업계 표준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 봤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회를 엿보던 중 K팝을 환경 문제와 연결 짓는 ‘K팝 행동주의’가 고개를 들었다. 원래도 팬들이 아티스트의 이름으로 함께 나무를 심거나 작은 숲을 조성하고, 학교를 짓고, 기부하거나 봉사활동에 나서는 자발적 행동들은 있어 왔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화두가 되면서 젊은 팬들 사이에 CD 앨범으로 인한 플라스틱 폐기물 양산을 직접적으로 문제 삼거나 제작사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메이크스타는 이렇게 K팝의 주 소비층인 MZ세대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은 대체 앨범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도 높아졌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했다.

김 대표는 “물론 아직 소수의 목소리일 수 있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이미지를 사고파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이렇게 회사의 평판과 관계된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면서 “CD 앨범으로 인한 쓰레기 문제가 거듭 거론되는 것을 보면서 시장이 대체 앨범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품이 출시되자 서클차트(구 가온차트) 등 정부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공식 차트에서도 대체 앨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포카앨범을 정식 앨범 판매량 집계에 포함하는 등 구조적 변화가 따라왔다. 아울러 QR이나 NFC 등 익숙한 기술을 접목했기 때문에 금세 여러 회사가 동참하면서 포카앨범이 범용화됐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자 하이브도 위버스 앨범을 출시했고, SM엔터테인먼트는 미니레코드 등과 함께 Smini를, YG엔터테인먼트는 네모즈랩과 손잡고 YG TAG 앨범을 선보이는 등 업계 전반에 걸쳐 대체 앨범으로의 이행이 가속화됐다. 김 대표는 “어려운 기술을 접목한 게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포카앨범을 제작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꼭 시장을 독점하지 않더라도 팬들이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발 빠르게 선보이고 시장을 선도한다는 믿음을 팬들에게 주는 게 플랫폼의 성패에는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2. 비대면 전환을 기회로 삼은 ‘영통팬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터졌을 때 업계에서 가장 먼저 비대면으로 팬미팅을 열고 ‘영통팬싸(영상통화 팬사인회)’를 론칭한 것도 메이크스타였다. 이 영통팬싸는 팬이 아티스트와 스마트폰 화면 너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서비스로 코로나로 인한 빗장이 풀린 지금까지도 해외 팬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이제는 다른 플랫폼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업계 표준으로 안착했다. 통화 시간은 약 1~2분 안팎으로 짧지만 이 서비스는 팬들이 아티스트와 잠깐이라도 눈을 맞추고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점에서 대체할 수 없는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해외 팬덤의 적극적인 참여를 가로막던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도 이 비대면 팬미팅이 가지는 강점이다.

메이크스타는 아티스트가 해외에 나갈 수도 없고, 팬들이 한국에 올 수도 없는 상황에서 팬미팅의 기회가 단절된 글로벌 팬들의 갈증을 최대한 빠르게 채워주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일단 서비스를 론칭한 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보완해 나가더라도 출시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봤다. 이에 서비스의 완성도보다 속도를 우선순위로 두고 가장 익숙한 비대면 채널인 줌 미팅과 흡사한 1대 다 팬미팅의 형식으로 비대면 서비스를 개시했다.

예상했듯이 처음부터 팬들의 마음에 쏙 드는 서비스가 나온 것은 아니었다. 팬들의 불만 섞인 의견도 있었다. 가령, 오프라인 팬미팅에서는 팬사인회에 아이돌 그룹 멤버 전원이 등장하는 만큼 영통팬싸도 별다른 의심 없이 1대 다 서비스로 시작했고, 화면 앵글에 모든 멤버가 들어오도록 카메라를 배치했다. 하지만 정작 팬들이 원하는 것은 실제 영상통화를 방불케 하는 1대1 미팅이었다.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멤버와의 실감 나는 소통을 원했고 그의 얼굴을 더 가까이에서 보길 바란 것이다. 이런 피드백을 수용해 앵글을 바꾸고 멤버들을 나눠서 1대1로 팬과 만나게 하자 훨씬 더 반응이 뜨거웠다.

또한 처음에는 영통팬싸에 통역까지 붙였지만 팬들은 그 짧은 찰나의 시간을 제3자와 공유하기를 원치 않았다. 통역이 중간에 끼어들어 아티스트가 함께하는 시간을 잡아먹는다는 원성이 자자했다. 본인이 서툰 한국어를 배워서 인사를 건네든, 영어가 능통한 멤버를 지정하든 통역의 개입 없이 ‘알아서 하겠다’는 게 팬들의 기본적인 태도였다. 실제로 영통 이벤트에 참여할 정도로 열성적인 팬들 중에는 기본적인 한국어 말하기와 듣기 정도는 가능한 이들이 많았다. 이 같은 의견을 반영해 통역도 없애 팬들이 원하는 1대1 소통의 경험을 충실하게 구현했다.

이처럼 화상 연결의 기술적 안정성을 구축하고 팬들의 요청에 맞게 부가 서비스와 접속 환경 등을 바꿔 나가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시장을 선점하고 운영 노하우를 축적한 덕분에 메이크스타와 함께 이벤트를 진행하려는 기획사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비대면 미팅이 일상화되던 시기를 틈타 회사의 성장세도 더 가팔라졌다.


다양한 클러스터 연결해 플랫폼의 외연 확장

통상적으로 팬덤 플랫폼들이 가지는 특징 중 하나는 팬들이 소수의 특정 아티스트에 충성하고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기들끼리 소통한다는 점이다. 대형 기획사 주도로 만들어진 팬덤 플랫폼들은 애초부터 해당 기획사 아티스트의 팬덤이 플랫폼에 진입하기 때문에 더욱 끈끈하고 결속이 강할 수밖에 없다.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더라도 어느 팬덤 소속이냐에 따라 이용자들이 서로 다른 군집을 이룬 채 단절돼 있는 ‘클러스터링(clustering)’이 나타난다.

하지만 메이크스타에는 대형 아티스트 팬덤보다는 여러 군소 기획사, 군소 아티스트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팬들이 몰려 있다 보니 양상이 조금 다르다. 특정 아티스트나 노래에만 빠진 이들도 물론 있지만 ‘K팝’ 자체를 하나의 장르로 즐기고 다양하게 소비하는 외국인들도 많다. 자연히 클러스터를 넘나드는 이동이 비교적 활발하고, 한 아티스트나 노래에서 시작된 관심이 다른 아티스트나 노래로 옮겨가고 확장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콘텐츠를 찾아보다가 자연스럽게 다른 그룹의 콘텐츠에 매료되는 식이다. 메이크스타에 따르면 어떤 이용자는 지금까지 진행한 1000여 개 프로젝트 중에 200개 이상, 아티스트 숫자로는 약 50개 팀의 굿즈와 행사에 참여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 같은 플랫폼의 특징은 기획사들이 메이크스타에 입점해야 할 유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클러스터 간 이동이 활발하다는 것은 기획사들 입장에서는 신규 고객의 유치가 가능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확고한 팬덤을 상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아니라 원래 팬이 아니었던 부동층에게까지 프로젝트를 알리고 구매를 유도하는 홍보 마케팅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주로 갓 데뷔하거나 데뷔 전의 신생 아티스트, 인지도가 낮은 중소돌을 모아 시작했던 메이크스타에 최근 대형 기획사 소속의 아티스트들까지 입점하는 까닭도 코어 팬층 울타리 너머의 해외 이용자에게 소구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자체 플랫폼을 보유한 대형 연예기획사 입장에서도 똑같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자층이 다른 제3의 채널에서 판매하고 잠재 고객과의 접점을 극대화할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350곳이 넘는 회사 소속의 K팝 아티스트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중소 엔터테인먼트사를 넘어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와도 손잡으며 개방형 플랫폼의 저력을 입증한 메이크스타는 지금보다도 외연을 더 넓히겠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최근 들어 박해일, 송새벽 등 유명 배우를 영입하며 배우 매니지먼트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전략의 연장선이라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배우 매니지먼트업 진출을 계기로 더 폭넓은 분야의 아티스트를 포섭해 K팝을 넘어 K드라마, K영화 등 콘텐츠로부터 파생되는 상품 및 서비스를 기획, 유통하는 플랫폼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K팝은 2000년대부터 이어져 온 한류 열풍 덕분에 수익화의 경로도 제법 다변화되고 콘서트, 팬미팅, 사인회 등으로 이어지는 2차 상품 및 서비스 시장이 이제는 제법 활성화된 데 반해 K드라마나 K영화 관련 해외시장은 여전히 불모지에 가깝다”면서 “이 시장에도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여지와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이 세계적인 히트를 쳐도 해외 팬들을 겨냥한 굿즈나 이벤트는 찾아보기 힘들다. 제작사들의 수입원은 IP 판매, 배우 매니지먼트사들의 수입원은 아티스트의 출연료나 광고 수입이 사실상 전부다. 콘텐츠의 경쟁력이나 영향력에 비해 창출되는 부가가치는 훨씬 제한적이란 얘기다. 팬들 입장에서도 작품에 대해 계속해서 곱씹거나 다양한 형태로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경험을 확장하기가 어렵다. 팬들과 출연 배우 사이에 접점도 거의 없고 작품이 끝나는 순간 모든 경험이 종결된다.

이렇듯 K드라마나 K영화 시장은 메이크스타가 2015년 창업 초기 포착한 K팝 시장의 문제점을 여전히 답습하고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K팝은 이제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춰지고 비즈니스로 정착된 반면 아직 드라마나 영화는 팬덤의 충성도나 관여도도 낮고 해외 팬들을 위한 상품 및 서비스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 메이크스타가 봉준호 감독, 박찬욱 감독 등 세계적인 연출자들의 작품에 출연하는 연기파 배우부터 우선적으로 영입하기 시작한 것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K콘텐츠의 파급 효과를 키우고 판로를 뚫겠다는 분명한 목표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플랫폼의 외연을 넓혀 K콘텐츠가 글로벌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해외에서의 높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 무대에 머물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더 많은 해외 팬을 만날 수 있도록 교두보가 되겠다는 게 메이크스타의 비전이다. 김 대표는 “K팝 팬덤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7년여의 시간이 걸렸지만 그 노하우와 경험을 살려 K드라마와 K영화 시장에서는 이 시간을 더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DBR mini box I : 향후 과제 및 시사점

수요자-공급자 모두 만족 ‘양면 네트워크 효과’가 핵심



김병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kyukim@yonsei.ac.kr



메이크스타는 전 세계에 있는 K팝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K팝 아티스트의 한정판 앨범이나 포토앨범, 굿즈 등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이다. 최근 세계 곳곳에 K팝 팬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K팝 아티스트와 관련된 상품을 구매하거나 관련 정보를 얻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반대로 수많은 중소기획사 입장에서는 아티스트의 앨범 제작과 홍보를 위해서 당장의 수익 마련이 절실히 필요한데 해외에 흩어져 있는 팬들을 만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수요자(해외 K팝 팬)와 공급자(중소기획사)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메이크스타는 플랫폼을 통해서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에 존재하던 간극을 없애고 이들을 직접 만나게 해줌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즉 플랫폼 비즈니스의 기본 공식을 따르고 있다.

지금까지 메이크스타가 이뤄낸 성과는 그 자체만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K팝 시장에서 플랫폼 비즈니스를 탄생시킨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K팝 산업과 팬덤에 대한 깊은 이해와 기획사와의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동시에 플랫폼을 운영할 수 있는 IT와 노하우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이런 플랫폼을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성과도 적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이제부터 어떠한 전략적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서 메이크스타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메이크스타를 여타의 일반적인 플랫폼 비즈니스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기존 플랫폼 비즈니스의 전략에 비춰 메이크스타의 성장 가능성을 살펴보자.

1. 양면 네트워크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가?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시켜주는 플랫폼의 성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양면 네트워크 효과다. 양면 네트워크 효과란 수요자가 모이는 곳에 공급자가 모이고, 공급자가 모이는 곳에 수요자가 모이면서 일정 규모에 도달한 네트워크의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K팝 시장은 이러한 양면 네트워크 효과가 작동하기에 커다란 장애물이 존재한다. 바로 ‘팬덤’이다. K팝 아티스트의 팬은 일반 상품의 소비자와 다르게 자신이 구입하는 상품이 미리 정해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특정 아티스트의 팬들이 메이크스타에 아무리 많이 찾아와도 다른 기획사의 매출 증대 효과는 작을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많은 기획사가 메이크스타에 들어와도 특정 아티스트의 팬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수 있다.

양면 네트워크 효과를 발생시키지 못하면 메이크스타는 일부의 중소기획사와 그들의 팬들이 굿즈를 구입하는 플랫폼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 어떻게 해야 메이크스타가 양면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은 ‘팬덤’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미 팬덤이 형성된 아티스트가 아니라 자신이 팬이 되고 싶은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플랫폼이 되면 양면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다. 참여하는 기획사가 많아질수록 이곳에서 아티스트를 발굴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참여하는 기획사도 많아질 것이다. 팬덤 플랫폼인 메이크스타가 팬덤을 벗어나는 것은 역설적인 선택으로 들리며 메이크스타의 지향점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양면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려해볼 만한 방향이다.

2. 운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가?

플랫폼에는 두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하나는 플랫폼이 말 그대로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 역할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플랫폼이 공급자의 상품에 플러스 알파(배송이나 포장, 상품 소개 콘텐츠, 고객 서비스 등)를 제공해 수요자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전자의 방식은 공급자가 완성된 형태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경우에, 후자의 방식은 공급자가 상품은 가지고 있지만 서비스 제공 능력이 없을 때 적합하다. 두 경우 모두 플랫폼의 운영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데 메이크스타의 경우에는 이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다. 플랫폼을 이용하는 중소 기획사들의 경우에는 수요자에게 제공할 상품(수준 높은 포토 앨범이나 굿즈 등)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이크스타가 플랫폼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공급자를 위해서 상품과 서비스 자체를 기획하고 제공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메이크스타가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당장은 중소 기획사들이 메이크스타에 들어올 중요한 유인으로 작동하겠지만 메이크스타 입장에서는 지속적으로 고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메이크스타가 중소 기획사에 제공하는 서비스를 최대한 자동화하고 규모의 경제를 창출해서 운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광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가?

플랫폼 비즈니스의 수익에 있어서 광고 수익은 중요하다. 플랫폼이 가장 비용 효율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광고 수익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공급자들이 동일한 수요자를 두고 경쟁을 해야 한다. 또한 공급자들이 광고비 지출을 늘릴수록 매출이 증가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메이크스타에서는 이런 구조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한 기획사가 아무리 광고를 해도 다른 아티스트의 팬들이 자신의 아티스트의 굿즈를 구입하지 않는다면 굳이 광고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중소 기획사들이 메이크스타에 경쟁적으로 광고를 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이 방법을 찾는 것이 메이크스타의 장기적 성장에 중요할 것이다.

4. 메이저 플레이어를 유입시킬 수 있는가?

커머스 플랫폼에 있어서는 유명 브랜드의 존재가 중요하다. 유명 브랜드의 많은 충성 고객이 플랫폼으로 유입되며, 플랫폼의 인지도와 신뢰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많은 커머스 플랫폼이 유명 브랜드와 럭셔리 브랜드를 입점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메이크스타에 있어서 유명 브랜드는 하이브, SM, YG 같은 곳이다. 이들 대형 기획사에 속한 아티스트를 메이크스타에 데려올 수 있는지에 따라서 메이크스타의 이용자 수, 인지도, 신뢰도, 매출이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현재 메이크스타가 제공하는 서비스만 봤을 때는 K팝 산업의 대형 기획사들이 메이크스타를 이용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적어 보인다. 메이크스타가 지금보다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형 기획사들이 메이크스타를 앞으로도 유용한 협력 대상으로 인식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일반적인 플랫폼 비즈니스의 경영 전략 측면에서 메이크스타의 성장에 필요한 요인들을 살펴봤다. 다만 메이크스타는 기존에 존재하는 플랫폼 비즈니스와는 다른 성격의 플랫폼이기 때문에 기존의 플랫폼 전략이 메이크스타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식이 메이크스타에 적합할지도 모른다. 자신들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서 전례가 없던 성공 신화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K팝 팬의 한 사람으로서 메이크스타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김병규 교수는 서울대 심리학 학사, 경영학 석사를 받고 펜실베니아대 와튼경영대에서 마케팅 박사 학위를 받았다. USC마셜경영대학 교수를 거쳐 연세대 경영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마케팅협회 최우수 논문상인 폴 그린 어워드(Paul E. Green Award)와 오델 어워드(William F. O'Dell Award)의 유일한 한국인 수상자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