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인터뷰

OB맥주 팔자 두산 위기설… 그래도 우린 혁신을 택했다

도미니크 바턴(Dominic Barton),클레이턴 G. 더치 | 19호 (2008년 10월 Issue 2)
도미니크 바턴 맥킨지 상하이 사무소 대표, 클레이턴 G. 더치 맥킨지 보스턴 사무소 대표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두산이 핵심 사업을 대대적으로 개편한 과정은 물론 한국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기업 인수에 성공한 배경과 원동력을 해부한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지역을 강타한 경제 위기에서 살아남은 두산은 이후 10년에 걸친 변화 과정을 통해 한국의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떠올랐다. 두산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극심한 부채위기에 직면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이는 소비재 업체에서 세계적인 건설·중장비 업체로 탈바꿈할 수 있는 단초가 됐다.
 
2007년 두산그룹의 건설·중장비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는 한국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인 글로벌업체 인수에 성공했다. 미국 잉거솔랜드로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소형건설장비 업체인 밥캣과 2개 사업 부문을 49억 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이러한 글로벌화의 주역은 두산인프라코어의 박용만 회장이다. 그는 두산에 비즈니스 및 리더십 개발과 관련한 가장 진보적인 접근법을 도입했다.
 
박 회장의 조부가 1896년 서울의 단일 점포로 설립한 두산은 맥주 사업으로 발 빠르게 시장에 진입한 후 기타 음료 부문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두산은 1990년대 말까지 소프트드링크·유제품·위스키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군에서 한국 내 선두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었으며 패키지·병마개·광고 분야에서도 활발한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박 회장을 포함한 두산의 최고경영진은 시장 구도 및 전망에 대한 조사를 거쳐 대대적인 변화를 감행하기로 과감하게 선택했다.
 
서울의 두산타워에서 맥킨지 상하이사무소의 도미니크 바턴 대표와 보스턴사무소의 클레이 더치 대표가 박 회장을 만났다. 박 회장은 두산그룹이 겪은 위기와 변화 과정, 기간산업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포부를 밝혔다.

 
1990년대 후반에 아시아 지역을 강타한 외환위기 이전부터 두산은 경영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우리는 진출 사업 분야에서 모두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맥주 시장 점유율은 무려 70%에 이르렀으며 소프트드링크 시장은 50%, 위스키 시장 점유율은 70%를 보였다. 그러던 중 한국 시장에 또 한 차례의 호황기가 찾아왔다. 1990년대 초 민간 소비가 늘기 시작했고, 증가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설비 증강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차입이 급격히 늘어났다. 당시 대다수의 한국 기업들이 이 같은 상황을 겪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기업의 부채 비율이 300%를 넘어섰다.
 
그 후 업계의 다양한 영역에서 경쟁업체들의 추격이 시작됐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응할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았다. 경영진이 영업이나 마케팅, 또는 경쟁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보다 설비 증강을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매출이 줄어들자 수익은 기대치를 밑돌았고, 부채 상환에 충분한 현금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1996년까지 두산의 연간 마이너스 현금 흐름은 매출 3조 원 가운데 9400억 원(약 11억6000만 달러)에 달했다. 말 그대로 부도 상황이었다. 외환위기가 닥치기 2년 전 우리는 이미 큰 위기에 직면해 있었고, 상황이 더 악화되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했나.
우리는 기존의 사업 포트폴리오 가운데 핵심 사업인 OB맥주를 포함해 수익성이 높은 사업 부문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합리적이고 냉철한 의사결정보다 정서적 유대나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당시 그 누구도 우리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현금흐름 압박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의 유입이 필요했다. 이에 사업을 정리하고 매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까지, 특히 대기업 가운데 구조조정을 위해 사업을 축소한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두산이 엄청난 경영난에 빠졌음이 틀림없다. 이제 두산은 끝났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이는 우리에게 전화위복이 됐다. 아시아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에 이미 구조조정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자산을 매각하는 업체는 없었고 모두 매수에 혈안이 돼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보유자산을 제 값에 처분할 수 있었으며, 현금흐름도 3년 내에 정상화됐다. 1996년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던 마이너스 현금흐름은 1998년 말 플러스로 돌아섰다.
   

가입하면 무료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