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3. 복잡성 해결을 위한 리더십

회의 자주 열고 결재 라인 늘리고…
불안한 리더가 복잡성의 함정에 빠진다

260호 (2018년 11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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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새로운 아이디어를 빠르게 적용해 시장 상황에 민첩하게 적용하는 것이 기업의 최고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관료주의와 위계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경직되고 복잡한 조직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이 복잡성을 해결하기 위해선 리더의 근원적 심리를 파악해야 한다. 이들의 마음 깊이 자리 잡은 심리적 불안은 직원들을 통제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외부의 평가와 시선이 중요하다 보니 결과보다는 열심히 하는 과정을, 단순하기보다 복잡하고 정교한 프로세스를 선호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려면 이런 리더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복잡성의 함정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미 중앙정보국 CIA의 전신 OSS는 적국에 침투한 스파이들에게 비밀 소책자를 배포했다. 이른바 ‘사보타주(태업) 현장 매뉴얼’로서 어떻게 하면 적국에 침투한 스파이가 적국 조직의 생산성을 떨어뜨려 연합군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본래 기밀문서였던 이 책자는 2008년 비밀 기간이 해제되면서 CIA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그런데 이 지침에는 한 가지 독특한 전략이 포함돼 있었다. 바로 복잡성이다. 다시 말해, 적국 조직 내에 복잡성을 만들어내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매우 흥미롭다. ‘모든 일을 정해진 경로나 창구를 통해 진행하자고 고집할 것, 의사결정을 단축하기 위한 어떤 방법도 용인하지 말 것, 지시를 내리는 절차나 방식을 늘릴 것, 한 사람이 충분히 승인할 수 있는 사안도 세 사람이 결재하게 만들 것.’

CIA는 이런 행동이 ‘적발될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도 조직을 망칠 수 있는 간단한 행동’이라고 묘사하면서 실제로 “미묘하지만 매우 파괴적”이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사보타주 현장 매뉴얼의 항목을 하나하나 읽다 보면 왠지 낯설지 않다. 마치 이 매뉴얼을 숙지한 적국의 스파이가 우리 조직에서 암약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의 조직에서도 이러한 복잡성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대한 자주 회의를 열어라, 모든 명령은 서면으로 요구하라”와 같은 몇 가지 항목은 OSS의 직접 지령을 받은 스파이의 존재를 의심하리만큼 매일의 작업 현장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들이다.

이렇게 복잡성은 매우 은밀하면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더욱이 VUCA(volatility, uncertainty, complexity and ambiguity)의 시대, 또는 전면적인 복잡계(Complex system)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경영 환경에서 복잡하지 않게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느껴진다. 이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2014년 발표한 자료에서 미국 및 유럽에서 100여 개의 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복잡성 현황을 추적 관찰한 결과를 밝혔다. ‘업무 절차, 조직 계층, 업무 조율 기구, 보고 승인 단계, 성과 측정 방법’ 등을 기반으로 개발한 ‘복잡성 지수’ 기준으로, 기업의 복잡성은 해마다 평균 6.7%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50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35배 수준으로 복잡해졌다.



복잡성은 기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복잡성의 자명한 결과 중 하나는 시간과 자원의 낭비다. 다시 말해, 본질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비본질적 업무에 시간과 자원을 쓰면서 기회비용을 낭비하는 것이다. 올 초 고객사인 국내 한 대기업의 일하는 방식을 컨설팅하면서 도출한 결과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났다. 해당 기업의 중간관리자 이하 직원들의 시간 중 40%가 고객가치 창출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에 8시간 근무를 한다고 가정하면 3시간이 넘는 근로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비본질적인 업무의 원인들은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보고’가 전체 낭비된 시간 중 30%를 차지했으며, 협업하지 않는 부서 이기주의 및 업무 떠넘기기 등으로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프로세스의 문제가 22%, 비효율적인 회의가 10%를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낭비는 당연히 매출 감소나 비용 증가 등 수익성 저하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되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비효율은 궁극적으로 기업의 수익성 저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독일의 기업용 솔루션 업체 SAP가 2013년에 발표한 글로벌 복잡성 지수(Global Complexity index)에 따르면, 복잡성은 기업의 수익성을 10분의 1 이상 감소시킨다. 이는 세계 상위 200대 기업의 수익 2370억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복잡성이 야기하는 두 번째 결과는 좀 더 은밀하고 측정하기 어려우나 더욱 강력하다. 바로 직원들의 조직에 대한 만족도와 동기를 저하시키는 효과다.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직 문화 진단을 하다 보면 유사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직급별 조직에 대한 만족도나 조직 건강도에 대한 인식 추이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사원/대리 직급보다 과장급의 직원이 조직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복잡성도 이러한 사기 저하의 주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신입직원들은 대개 처음에는 어려운 구직 전쟁을 뚫고 회사에 들어왔다는 점에 감사하기도 하고, 열심히 업무를 배우며 그 과정에서 발견한 기존 시스템의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조직 내에서 어떻게 벽에 부딪히는지, 그리고 조직의 복잡성이 시스템의 개선을 얼마나 어렵게 만드는지를 절실히 경험하면서 차차 좌절과 무기력감에 빠지게 된다. 2013년에 시행한 미국 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주어진 업무에 열성적으로 몰입하는 근로자가 전체의 13%에 불과하며, 나머지 87%는 직무로부터 만족감을 얻지 못하거나 회사를 위해 가치를 창조하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다.

복잡성이 불러올 수 있는 세 번째 결과는 결국 고객과 시장에 대한 경쟁력 저하다. 전통적인 기업 조직은 직급 체계에 따른 승인 절차를 층층이 거치는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조직에서는 실행과 의사결정의 주체가 대부분 분리돼 있다. 아래로부터 시장조사와 실무 등을 통해 과제에 대한 선택지를 마련해서 위로 보고를 올리면 위에서는 그 보고를 받아 검토한다. 자신의 의사결정 범위를 넘어선다는 판단이 들면 이를 다시 위로 올리거나 협업하는 부서와 공유한다(대부분 권한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권한이 있어도 그에 따른 책임을 위 또는 타 협력부서와 나누려는 의도 때문이기도 하다).

복잡한 계층이 존재하고, 이에 따른 계층별 협업 부서, 담당자들도 그의 계층 수만큼 늘어나게 되므로 아주 작은 의사결정도 결론을 내려면 수차례의 보고와 수정, 협의 미팅을 거쳐야 한다. 많은 대기업에서 내년도 전략을 수립하는 이전 해의 가을 즈음이 되면 초급 관리자와 중간관리자들이 몸살을 앓는다. 그들은 오너와 CEO가 그동안 발언한 것을 토대로 내년의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매우 넓은 범위의 전략적 옵션과 데이터를 검토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에서 이러한 전략수립 활동은 겨울까지 반복된다. 많은 직원이 보고서를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치는 동안 제때 처리돼야 할 많은 일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채 쌓이게 되고, 고객과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에 종종 처한다. 내부적인 회의와 보고를 수없이 반복하며 ‘나는 너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동안 회사와 사업의 본질적 경쟁력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은 낭비된다.

기업은 왜 복잡성에 빠지게 될까?
한국 조직의 지나친 위계질서와 관료주의는 기업을 복잡성의 늪으로 빠뜨린다. 문제는 이미 조직 문화가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리더들은 이 같은 업무 방식을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이러한 리더 밑에서 직원들도 복잡한 방식을 그대로 보고 배우면서 성장한다. 관성의 힘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런 절차나 방식이 복잡하고 불필요하다는 것을 일부 조직원이 인지하고 있다 해도 개선 시도는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에선 복잡성 제가가 불가능한 일일까? 필자들은 이 복잡성의 원인만 제대로 파악해 낸다면 충분히 개선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직을 이끌고 나아가는 리더들의 심리적, 근원적 요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복잡성은 가장 기본적으로 ‘리더의 불안’에서 기인한다. 안전, 통제, 권력 등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일을 계획할 때 되도록 안전하고 확실하게 일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 자신이 통제한다는 느낌을 갖고 싶어 한다. 이런 상충하는 욕망이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 내가 맡은 일을 안전하게 하고 싶고, 그래서 책임을 맡지 않고 싶은 안전에 대한 욕망과 그와 더불어 일에 대해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사람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통제와 권력의 욕구가 동시에 발현되면서 회의와 보고서, 결재가 증가한다는 얘기다.

얼마 전 만난 대기업의 최고위 임원은 이러한 불안이 극도로 높은 상태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위기를 극복하라는 임무를 띠고 계열사 간 이동을 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과로 증명해야 한다는 그의 불안은 곧 복잡한 관리 활동의 증가로 이어졌다. 우선, 아무 이슈가 없어도 정기적으로 매주 월요일 아침 8시 지방 공장으로 출근해 팀장 이상 전원이 참석하는 회의를 주재했다. 초기에는 그 회의가 몇몇 과제들을 매우 집중력 있게 풀어내는 듯했다. 몇 개월이 지나서 조직이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음에도 그 회의는 계속됐다.

중간관리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이제 딱히 제기해야 할 이슈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월요일마다 회의에 올릴 어젠다를 짜내느라 고민한 지 1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해당 회의에서 논의된 안건에 대해 팔로업(Follow-up)을 지시받은 과제만 해도 100여 개가 넘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과제 중 실제로 그 임원이 기억하고 계속 점검하는 과제는 10% 미만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해당 임원과 굉장히 친분과 신의가 돈독한 상사가 해당 계열사 CEO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그가 조장하던 무수히 많은 관리 활동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심지어 월요일 아침 회의도 30분 이내로 간단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자신을 믿어주는 상사가 오니 보여 주기식 회의도 불필요해졌고 매번 새로운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난 것이다.

리더가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부작용도 생긴다. 직원들에게 권한 위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직에는 무수히 많은 일이 있고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해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만약 리더가 직원들을 신뢰하지 못해 자신이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하고, 일일이 보고를 받아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능력이 있고 일에만 몰두하는 일부 리더는 훌륭히 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리더는 과도한 업무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업무 과부하가 걸리면 업무를 제대로 파악해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직원들의 생각이다. 만약 리더가 자신을 믿지 못해 자신이 하는 일을 매번 감시하고 확인한다고 생각한다면 직원들도 자신 있게 일을 수행하기보다 안전하고 보수적인 업무 처리만을 고집할 것이다.

기업이 복잡성을 가져오는 또 다른 심리적 원인은 리더가 일을 계획하는 과정 자체가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인지적 오류 때문이다. 많은 리더는 활동을 계획하고 문제와 해결책을 의논하기 위해 회의를 열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 자체를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라 믿는다. 결국 조직은 실제 성과를 내는 것보다 일을 준비하는 과정인 기획 단계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 형식적인 계획 수립이 갖는 효과에 대한 기존 연구 결과는 명확하다. 기획은 조직 성과와 본질적으로 무관하다는 것이다.

경영학의 구루 중 한 명인 헨리 민츠버그(Henry Minzberg)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편향된 시각을 가진 연구자들은 기획이 제 몫을 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연구에 착수했지만 하나같이 그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모든 종류의 이론들이 부각시킨 것은 기획이 갖는 숱한 문제들이었고, 기획을 위해 첨단 기술의 힘을 빌린 다양한 분석과 투입된 방대한 시간 또한 그다지 성과와 연관이 없었다.” 다시 말해 일 자체가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한 기획은 성과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조직은 리더의 지휘 아래 여전히 기획과 보고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소진한다. 회의를 줄이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어떻게 회의를 줄일 것인지 회의하는 것이 실행(전체 회의 수와 시간을 줄이는 것)을 대체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기획하는 것이 실제로 실행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말이 행동을 대체하는 것이다.

세 번째 리더의 심리적 원인은 프로세스를 매우 복잡하게 만들면서 그러한 복잡성을 ‘전문성과 고민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향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Master(대가) 콤플렉스’라고 불리는데 난해한 아이디어나 물건을 만났을 때 사람들이 그것을 날카롭고 뛰어난 지성의 결과물로 여기는 경향을 의미한다. 조직도 마찬가지로 복잡성을 선호한다. 복잡한 언어, 전략, 개념을 선호하는 취향은 부분적으로 옳은 동시에 부분적으로는 잘못된 아이디어다. 제프리 페퍼 교수는 저서 『생각의 속도로 실행하라』에서 그 논리와 논리의 허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1) 기업들은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 개발을 추구한다. 경쟁 우위란 그 정의상, 흉내 내기 어려운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2) 더 복잡한 경영 시스템 전략, 아이디어, 분석들은 단순한 것들보다 흉내 내기가 더 힘들어 보인다. (3)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는 그래서 복잡하고 실행하기 어려운 업무 방법, 제품, 서비스를 만들어낸다. 이 논리는 필연적으로 단순한 처방은 큰 가치를 가질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이러한 논리 사슬의 근본적 전제는 옳다.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는 남들이 따라 하기 힘든 것들을 실행함으로써 구축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 과정에서 실행이 쉬운 것과 이해가 쉬운 것이 혼동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권 존중, 권한 위임, 상호 협력 같은 아이디어들은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수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해하기 쉬운 것이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많은 조직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단순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토스(Toss)나 배달의민족 등의 사례를 들며 ‘신뢰에 기초를 둔 조직 문화’의 원칙이 매우 단순하다고 이야기하면 많은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손사래를 친다. 그렇게 단순한 규칙만으로는 잘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부정적인 질문을 쏟아낸다.

사실 상당수 기업의 인사제도는 이러한 심리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국내 몇몇 대기업의 인사 조직은 1년의 절반 이상을 연간 인사평가 및 보상 배분을 기획하고 처리하는 데 쓴다. 우선 사원부터 CEO에 이르기까지 평가의견을 수집하고, 이러한 결과를 분석해 평가위원회 자료를 준비한다. 수백 명에 대한 자료가 준비되면 직급별 평가위원회 회의를 실시하는데 이 평가위원회에서 실제 수백 장 출력해 놓은 자료를 사전에 읽어보고 참여하는 평가자들은 없다.

평가위원회 회의가 끝나면 인사팀은 평가위원회 결과를 다시 정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실적 및 역량 평가를 집계해서 상대평가를 실시한다. 그러나 이 상대평가의 기준은 매우 자의적이어서 평가자들의 성향에 따라 후한 부서와 박한 부서가 나뉘기 마련이다. 그러면 인사부서에서 전체 인력의 점수를 ‘사후 통계적으로’ 조율하기 위해 또 거의 한 달을 보낸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방대한 인사평가 과정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기능인 ‘보상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전혀 제공해주지 못한다. 다만 인사부서가 1년 내내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과 무언가 복잡한, ‘전문적인’ 방식으로 고유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는 이미지만이 남을 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기업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미국 인적자원관리협회의 연구 결과를 보면 기업들이 수행하는 인사고과의 90%가 전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지막으로 리더나 기존 조직이 이렇게 형성된 복잡성의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관성이 이후에 그 복잡성을 결과적으로 더욱 배가시킨다. 도대체 왜 조직과 사람들은 복잡하고 불편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계속 이를 반복하거나 심지어 더 복잡하게 만들까?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의 ‘사회적 증거(social proof) 이론’이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자신이나 소속 조직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남들이 하는 대로 하게 된다.

특히 비슷한 사람이나 조직을 따라 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의 선례는 좋은 사회적 증거가 된다.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기보다는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 또 다른 이유는 조직과 사람에게 과거의 행동을 유지하는 일관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일관성이 없게 행동하는 사람이나 조직은 신뢰를 얻지 못한다. 때로는 정체성을 의심받기도 하고 변덕스럽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이나 조직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행동에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그렇다고 관성을 타파하기 위해 개인이 조직을 대항으로 도전하는 것은 위험하고 힘든 일이다. 같은 방식의 일 처리는 조직과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지속성을 보장하고 조직 문화와 가치관의 정립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늘 하는 방식에 도전하는 것은 바로 그 정체성과 가치관을 공격하는 일이다. 조직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이유로 종종 무리에서 배척되거나 충성심이 적은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복잡성, 어떻게 제거할까?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리더의 불안, 복잡한 것이 전문적이라고 생각하는 착각, 그러한 복잡성을 유지하려는 조직 내 직원들의 관성이 상호작용하면서 조직의 복잡성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복잡성이 조직의 성과를 저하시키지 못하도록 복잡성을 제거하고 단순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리더가 스스로 복잡성의 근간이 되는 불안과 두려움을 줄여야 한다. 그동안 불안과 두려움은 경영 기법으로 중요하게 활용된 심리 기제다. 그동안의 경영 기법에서는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두려움과 압박감을 느끼지 않으면 부지런히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다시 말해, 사람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므로 직원들을 감시하고 절차를 위반할 때 처벌하지 않으면 조직을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최근에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은 끊임없이 외부에서 조직을 챌린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직의 규율과 감시가 없다면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조직에는 아무도 제대로 일을 할 사람이 없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성과를 관리하고 조직 외부에서 감시를 하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해야 비로소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할 것이라 봤다.

인력 관리와 동기부여에 대한 이러한 접근법은 사실 매우 전통적인 경영 기법으로 20세기 산업공학의 기반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은 생산성 통제와 예측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를 관리하면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인적 요소는 조직에서 가장 약하고 신뢰하지 못할 연결고리로 여겨진다. 근태와 근로 태도, 규칙, 정교하게 고안된 평가지표 및 핵심 성과지표를 반영한 인센티브를 설정하고 그것을 통해 조직이 원하는 방식으로 성과를 내도록 근로자를 유인하는 게 당연시된다.

이제까지도 많은 사람은 조직을 거대한 기계로 바라봤으며 20세기적인 경영 기법에 의혹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산업화로 억눌려온 인간 본성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감시와 처벌이 성과를 저해한다는 증거가 훨씬 더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리더부터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사람들을 통제하지 않아도 일을 더 잘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으며, 업무 집단 내에서 타인을 돕거나 업무 자체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보고서의 숫자가 틀렸고 그것을 자신이 먼저 발견했다 해도 이게 부서 전체를 발칵 뒤집고, 직원들에게 고함을 칠 만큼의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혼내지 않으면 직원들이 배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접어야 한다.

DBR mini box: 애자일 조직, 한국에선 왜 어려울까
최근 관심이 높아진 애자일 경영도 새로운 리더의 인식 위에서 달성할 수 있다. 애자일 경영은 복잡한 경영 환경하에서 고객과 시장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조직구조와 일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원래 소프트웨어 개발의 방법론이었던 애자일을 조직 운영의 틀로 가져온 개념을 들여다보면 기존 위계조직에서 층층이 만들어졌던 직급 체계(Layer)를 단순화하고 실무자들에게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고객/시장에 대한 대응을 신속하게 한다는 개념이다.

물론 이미 많은 기업이 수평적 조직으로의 변화를 고민하고 있는 시점이다. 실제로 애자일 조직을 시도하고 있는 기업도 많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변화에서 대부분의 기업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조직은 수평화를 하고, 애자일(Agile)의 형태를 갖췄으나 정작 조직을 운영하는 가치관 및 방식은 여전히 과거의 형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과거 패러다임에 기반한 거버넌스 체계다. 대부분의 대기업 계열사는 지주사에 경영 보고를 하면서 관리를 받고 있다. 이러한 경영 관리 체제는 계열사 자체의 독립 경영을 보장하지 못한다. 불필요한 관리의 복잡성을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배가한다. 이러한 거버넌스하에서는 하부 조직이 아무리 애자일한 형태로 세분화되더라도 결국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오히려 세분화된 조직 간 소통과 보고 비용 및 자원 낭비가 이전보다 더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

애자일이 국내 기업에서 실행되기 쉽지 않은 또 다른 원인은 협업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조직별 경쟁을 조장하고 이를 통해 전체적인 비용을 효율화하려는 전통적 경영 기법의 관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각자의 영역에서 얼마나 성과를 잘 내고 있는지에 대한 KPI는 수없이 만들어내고 측정하면서도 정작 조직 간 협업을 얼마나 하고 있으며, 어떠한 세부 조직 간 협업이 활발한지 파악하고 있는 리더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심플하고 빠르며 민첩한 의사결정은 협업 지향적인 태도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 협업 지향적인 태도를 가지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조직 내 협업을 승인받기 위한 또 다른 보고와 소통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투명하고 단순한 거버넌스 체계와 협업 문화는 복잡성 제거와 애자일 정착에 결정적 기여를 할 수 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는 조직에서 실수는 불가피하다. 실수를 인정했다는 이유로 질책한다면 그러한 처벌이 유발하는 공포가 건설적인 시도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병원에서 외과의사들은 수술 중의 실수를 감추거나 부정하는 경우 더 큰 질책을 받는다. 그 실수를 인정하고 문제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진정으로 환자를 돕는 의사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실수 없이는 학습이 일어나지 않는다. 실수를 찾아내 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실수한 사람이 배울 수 있도록 돕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 직원들에게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다. 많은 리더는 직원들에게 전적으로 일을 맡기면 실수가 늘어나거나 실패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 걱정한다. 그래서 자신이 모든 업무와 결정사항을 통제하려 한다. 하지만 오히려 권한 위임을 통해 긍정적인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 리더의 압박을 줄이면서 직원들의 성취감을 높일 수 있는 업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다거나 직원들의 일을 관리 감독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함께 일을 하고, 함께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두려움과 불신의 풍토에서는 실험도, 혁신도, 배움도 지식의 실천이 이뤄지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성과를 향상시키기 위해선 리더들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려움을 추방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조직이나 직원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내려와야 한다.

리더 스스로 복잡성의 ‘관성’에 빠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과거의 결정들을 고수하는 관성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는 ‘인지적 폐쇄(cognitive closure,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의 것을 반복하려는 인지적 경향)’가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인지적 폐쇄에 대한 요구는 질문에 대해 확고한 답변을 원하고 모호함을 피하려는 인간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밝혔다. 인지적 폐쇄에 대한 요구는 ‘영구성 성향(permanence tendency)’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인간 대부분이 과거 지식에 얼어붙은 듯이 매달리며 자신이 믿는 것에 부합되지 않는 증거는 회피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과거의 지식에 얼어붙듯이 매달리는 경향은 (1) 데드라인이나 의사결정으로 중압감을 느끼거나 기타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 처했을 때 (2) 피로 때문에 새 정보를 처리할 여력이 없을 때 (3) 신체적 불편 또는 두려움 등 정보처리를 어렵게 만드는 기타 상황에 처했을 때 (4) 인지적 폐쇄를 윗선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 특히 커진다.

위에서 살펴보듯이 인지적 폐쇄는 마감이나 의사결정을 빨리 내려야 하는 압박과 두려움에 시달릴 때, 과도한 업무, 책임으로 인한 피로감, 스트레스 등이 생길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리더들은 인지적 폐쇄가 자신이 일하는 방식이나 환경의 결과라는 점을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스스로가 쫓기고 있는 상황이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다거나 업무가 과중해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건 아닌지 진단해 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더 나아가 업무 외에 혼자만의 휴식시간을 가지면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도 좋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과정은 쉽지 않고, 리더의 또 다른 부지런함을 요구하지만 그 보상은 엄청나다. 리더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보다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상태에서 업무를 하는 것이 보장된다. 불신이 아닌 신뢰가 넘치는 분위기에서 일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조직 내 은밀하게 깔려 있는 복잡성을 발견해내고 이를 걷어낼 수 있는 새로운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리더의 인식과 태도만 바뀌어도 조직 내 복잡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의사결정 과정을 최대한 단순화해 현재의 위계적 계층조직을 빠르게 수평조직으로 재편하고, 이를 불가역적으로 유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수많은 기업이 ‘일하는 방식 혁신’ ‘워크 스마트’ ‘심플 워크’ 등을 기치로 많은 활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효과적이지 않다는 반응을 자주 접하게 된다. 실제로 TF를 운영하거나 새로운 경영기법을 도입하는 것만으로 복잡성 해소가 잘되지 않는다. 이유는 복잡성 제가가 앞서 살펴본 대로 리더의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리더의 인식 변화는 TF 운영이나 경영 기법 도입만으로 불가능한 과제다.

리더의 인식 전환은 복잡성 제거의 필수 요소다. 스스로가 불안을 인지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조직의 부담을 없애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미 관성적으로 존재하는 복잡성의 요소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모든 것을 위에서 통제해야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투자나 자원 확보, 협업을 위한 지원 체계 등과 같은 필수적인 역할 외에 대부분의 의사결정 권한을 하부에 위임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 없이 리더가 통제 욕구를 그대로 지닌 채 과거의 경영 관리 패러다임을 지속한다면 어떤 현란한 경영 기법을 도입해도 복잡성 해소는 불가능하다.


필자소개 이경민 · 장은지 이머징(Emerging Leadership Interventions) 공동대표 kmlee@emerging.co.kr, ejchang@emerging.co.kr

장은지 이머징 공동대표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모니터그룹, 액센추어 등 글로벌 전략컨설팅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했고, 맥킨지 서울사무소 맥킨지리더십센터장을 지냈다. 국내외 유수 기업을 대상으로 전략 및 조직개발, 리더십/인재 육성 관련 프로젝트를 15년간 수행했으며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진행한 한국 100개 기업의 조직건강도와 문화 진단 보고서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최근에는 기업정신건강 및 리더십/조직개발 컨설팅 전문회사를 만들어 기업을 돕고 있다.

이경민 이머징 공동대표는 정신과 전문의로 기업정신건강 진단 및 관계/갈등 치료 전문가다. 이 대표는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Bethesda Mindfulness Center의 ‘Mindfulness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이 대표는 용인병원 진료과장과 서울시 정신보건센터 Medical Director 등을 역임했다. 대한우울조울병학회 정회원이자 학회지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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