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못난 리더는 백성과 다툰다

26호 (2009년 2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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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순(堯舜) 시대
사마천의 ‘사기’는 첫 페이지부터 리더와 리더십에 관한 논의로 시작된다. ‘사기’의 첫 권은 <오제본기>다. 오제(五帝)는 전설 속의 다섯 제왕을 말한다. 전설 속 제왕들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사실 여부를 놓고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첫 권 ‘오제본기’의 요점은 “백성들이 바라는 이상적 리더상은 어떤 모습인가”로 귀착된다. 사마천은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백성들의 간절한 염원을 ‘사기’ 첫 권에 고스란히 반영했다. ‘사기’를 감히 리더와 리더십의 보물 창고라 부를 수 있는 이유도 사마천이 제시하는 리더의 모습과 리더십이 지금 우리의 문제와 절박하게 닿아 있기 때문이다.
 
<오제본기>는 이른바 ‘요·순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요·순 시대는 흔히 태평성세를 대변하는 용어이며, 요·순은 가장 바람직한 리더의 대명사로 쓰인다. 요·순으로 대표되는 <오제본기> 다섯 리더들의 모습과 리더십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 리더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자.
 
좋은 리더와 나쁜 리더
오제본기’에 등장하는 다섯 리더는 황제, 전욱, 제곡, 요, 순이다. 이들은 약 7대에 걸친 혈연관계에 있는 것으로 나온다. 사마천은 이들 다섯 리더들의 특징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들의 리더십을 표로 만들어 보았다.(표 참조)

 

 

오제의 리더십에서 일단 주목한 것은 기록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은 전욱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의 제왕들에게 공통적으로 ‘덕(德)’이라는 리더십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 밖의 항목들은 추상적인 개념부터 상당히 구체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이 리더십 항목들은 오늘날 리더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다. 사마천은 이런 리더십을 갖춘 리더나 이를 실천하려는 리더를 좋은 리더, 이상적인 리더로 봤다.
 
그렇다면 ‘사기’에 좋은 리더의 대척점에 있는 나쁜 리더에 대한 언급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사마천은 오제 가운데 가장 이상적 리더로 꼽히는 요의 리더십을 언급하면서 “요는 부유했으나 교만하지 않았고, 존귀했으나 거드름을 피우거나 오만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즉 나쁜 리더는 교만하고, 거드름 피우고, 오만한 자라는 뜻이다. 이 밖에 부정적 리더와 리더십에 대해 상호 공격, 백성을 못살게 구는 행위, 비방, 불효, 불화, 부도덕, 사심, 표리부동, 무능 등을 꼽고 있다.

 

   
덕’의 리더십을 갈망하다
오제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덕(德)’이라는 리더십은 대체 무엇인가. 지금 많은 사람이 우리 사회의 리더들에게 가장 부족한 리더십으로 덕을 꼽고 있다. 그러나 덕의 리더십에 굶주려 있음에도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고 있다.
 
오제에게서 나타나는 리더십 항목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덕은 무엇보다 ‘각박하지 않음’을 전제로 한다. 각박한 리더를 백성들은 가장 멀리 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백성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어루만질 줄 아는 어진 정치를 희망했다.
 
덕을 전제로 한 리더에게 다음으로 발견되는 공통된 리더십은 널리 보고 들으며, 세밀히 관찰하고,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등 실질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사리분별력’이다. 다른 표현으로 ‘식견(識見)’이다. 이 식견을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존망의 이치와 치국의 방법을 설파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는 것이다. 이런 리더는 꿈과 비전을 갖게 마련이다. 이것이 고차원적 통치 철학이다. 이 단계에 이른 리더의 통치는 더 이상 훈수가 필요 없다. 이것이 사마천과 백성들이 갈망한 ‘요·순 시대’요, ‘이상향(유토피아)’이었다.
 
이상적 리더상은 꿈인가
<오제본기>의 첫 주인공인 황제에 대해 사마천은 널리 보고
들어서 사리분별이 분명하고, 열심히 생각하고 실천하며, 청취하고 관찰하는 리더로 묘사하고 있다. 제곡은 눈과 귀가 밝아 백성의 절박한 요구를 잘 알았으며, 자신의 이익 대신 남을 이롭게 한 리더로 묘사했다. 요는 관리들에게 형벌 집행에 신중을 기하라고 거듭 강조했으며, 민간에서 순을 발탁해 상당 기간 훈련시킨 다음 자리를 잇게 하는 이상적인 권력 이양, 즉 선양(禪讓)을 실천했다. 순 역시 친자식이 아니지만 치수사업을 비롯하여 나라 발전에 이바지한 우(禹)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 자기 아들이 아닌 순에게 자리를 물려주면서 요는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 세상사람 모두가 손해 볼 수는 없지 않은가.”
 
하나 같이 현실과 거리가 먼, 전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리더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상에 그런 리더가 어디 있냐는 핀잔이 적잖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사마천은 이 리더들의 유적지를 직접 탐방한 뒤 다른 곳과는 달리 오제의 유풍이 남은 곳은 풍속이나 교화의 수준이 높았다고 전한다. 이는 훌륭한 인물이 남긴 정신문화의 전통과 유풍이 갖는 부가가치를 언급한 것이자 훌륭한 리더에 대한 향수를 반영한 것이다.
 
사마천은 리더의 통치 행태를 다음과 같이 몇 등급으로 나눴다. 
1등급: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정치, 즉 순리(順理)의 정치.
2등급: 이익으로 백성을 이끄는 정치, 즉 백성을 잘 살게 만드는 정치.
3등급: 백성들이 깨우치도록 가르치는 정치, 즉 훈계형 정치.
4등급: 백성들을 일률적으로 바로잡으려는 정치, 즉 위압 정치.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니다. 사마천은 여기에 가장 낮은 등급을 하나 더 꼽았다. 바로 ‘가장 못난 정치는 백성들과 다투는 정치’라는 것이었다. 
사기’에서 제왕의 기록인 ‘본기’의 전반부 몇 권은 사마천이 상제(上帝, 하늘)의 마음을 빌려 백성의 희망을 대신 표출한 것이다. 어질고 덕 있는 리더를 추대하려는 백성들의 마음을 사마천은 붓을 들어 대신 표현했다. 반면에 백성에게 고통을 주는 나쁜 리더에 대해서는 붓으로 매질을 가했다.
 
꿈을 꾸게 하는 리더
자신의 입으로 직접 왕조를 교체하자거나 나쁜 통치자를 내쫓자고 할 수 없는 시대에 사마천이 백성의 희망을 빌려 ‘사기’의 첫 시작으로 삼은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백성의 희망과 의지를 상제의 그것으로 치환시키는 절묘한 안배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선양’의 고사는 바로 이 의지의 극적인 표현으로 읽어야만 한다. 사마천은 ‘사기’ 첫 권에서 제왕의 교체를 아름답고 이상적으로 묘사했을 뿐 아니라 선양을 제후의 기록인 ‘세가’ 첫 권인 <오태백세가>와 ‘열전’의 첫 권인 <백이열전>에서 재연하는 집착을 보였다.
 
사마천이 그리고 있는 전설시대 제왕의 교체, 즉 ‘선양’은 덕 있는 리더에게 권력을 이양한다는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붓끝 아래에는 권력과 리더의 본질을 통찰한 생명력 넘치는 감동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백성이 진심으로 갈망하는 희망의 불꽃이 반짝이고 있다.
 
좋은 리더라면, 좋은 리더가 되고 싶다면 현실과 이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꿈과 이상, 비전이 없는 리더가 가장 비참한 리더이며, 그런 리더를 가진 백성이야말로 가장 슬픈 백성이다. 리더의 꿈은 고스란히 백성들을 향해 있어야 한다. 백성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백성들과 함께 꿈을 꾸는 ‘덕의 리더십’을 갖춘 리더, 이것이 수천 년 보통 사람들이 꿈꿔온 리더상이다.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꿈을 잃었거나 포기한 사람일 것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69호 Gen Z 2019년 3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