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를 통해 본 세상

한국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고?

260호 (2018년 11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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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사내 유보금은 기업이 쌓아둔 현금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내 기업들의 사내 유보금이 과다하다며 여기에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기업소득환류세제’다. 하지만 이런 인식에는 문제가 있다. 국내 기업의 현금보유량이 외국 기업들보다 높지도 않거니와 사내 유보금 자체도 대부분은 기업의 가치를 증진시키기 위한 투자 자금으로 사용돼 기업 외부로 지출된 돈이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최종학 서울대 교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계학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회계를 통해 본 세상’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회계를 받아들이고 비즈니스에 잘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기업들이 돈을 벌어 쌓아놓기만 하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종종 제기된다. 과거 10년 이상 잊을 만하면 정치인들이나 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에서 이런 비판이 담긴 성명을 내놓고, 이를 일부 언론들이 그대로 받아 보도한다. 그동안 한국 경제가 침체한 것이 바로 기업들이 돈을 쌓아두기만 하고 투자를 하지 않아서라는 주장도 등장한다. 다음 신문 기사를 보자.

○○○ 의원이 19일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금융주·우선주 제외)의 연결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127조78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8년 전인 2008년 말(36조4300억 원) 대비 350.8% 늘어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 상장사 100대 기업의 자산 총액은 777조9800억 원에서 2084조4100억 원으로 267.9% 증가했다. 기업별로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이 32조1100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2008년 말(2조3600억 원) 대비 1360% 급증했다. 현대차는 2008년 말 1조7600억 원에서 지난해 말 7조8900억 원으로 449% 증가했다. …

… ○○○ 의원은 “대기업들이 현금만 쌓아 두는 것은 장기적으로 회사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일자리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내수가 늘고 결국 모든 경제 주체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일경제, 2017년 10월19일자)

이런 기사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 실제로 기업들이 현금을 금고에 쌓아 두고 있다고 오해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기업들은 소액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며 나머지 현금은 은행에 예금돼 있다. 은행은 예금을 통해 마련한 자금을 이용해서 자금이 필요한 기업이나 개인들에게 대출을 해준다. 따라서 기업들의 현금이 아무 곳에도 사용되지 않고 금고에 쌓여 있다고 비난하는 정치인들의 주장은 옳지 않다. 또한 일부 정치인들은 정권과 기업들 사이의 관계가 좋지 않아 기업들이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투자를 하지 않고 현금을 곳간에 쌓아 두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정권이 그동안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주장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정권과 기업이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현금 보유량 증가에 대한 논란
어쨌든 기업의 현금 보유 수준이 과다하다는 주장에 따라 2014년 취임한 최경환 부총리는 2015년도부터 기업이 벌어들인 소득의 일정 부분 이상을 투자, 배당, 임금 인상 등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세금으로 징수하겠다는 ‘기업소득환류세제’ 제도를 도입했다. 정권이 바뀐 2018년도에 이르러 이 법안은 그 내용이 일부 변경되기는 했지만 ‘투자상생협력촉진제’라고 이름을 바꿔 계속해서 시행 중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워낙 자주 언론에 보도되니 대부분의 사람은 한국 기업이 불필요하게 과다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고 믿기 쉽다. 과연 그럴까?

선행연구들은 대리인 문제 때문에 기업들이 필요 이상의 과다한 현금(기타 현금성 자산을 포함해)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1 대리인 이론에 따르면 경영진은 보유한 현금을 이용해 적정 수준 이상의 보상을 스스로 챙기고, 수익성이 낮은 프로젝트에 투자해서 기업의 규모를 과다하게 확장하는 등의 행동을 취할 유인이 있다. 2 이러한 주장과 일관되는 과학적 증거는 다수 있다. 예를 들면 주주에 대한 법적 보호 수준이 높은 국가들은 과다한 현금을 보유하는 경향이 줄어들며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들도 과다한 현금을 보유하는 경향이 줄어든다. 3

그러나 기업의 현금보유량이 증가했다고 해서, 그 이유가 기업이 일부러 투자를 기피해서나 주주나 직원들에게 배당이나 임금의 형태로 환원하지 않아서가 아닐 수도 있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4 첫째, 영업 및 투자 환경의 변화로 기업에 필요한 현금 보유 수준 자체가 증가했을 수 있다. 즉, 과거보다 더 큰 투자가 필요하도록 기업 및 산업의 특성이 변했으므로 기업들이 이에 맞춰 더 많은 현금을 보유하게 됐다는 견해다. 둘째, 외환위기나 세계 금융위기 등을 경험한 이후 기업들이 과도하게 안정성을 추구함에 따른 결과물일 수 있다. 즉, 경제의 변동성이 높아짐에 따라 기업들이 만약에 닥칠 수 있는 위기상황에 대비해 과거보다 더 많은 수준의 현금을 보유하게 됐다는 견해다.

이러한 두 가지 견해를 종합하면 둘 다 논리적으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만큼 어느 한쪽 주장이 옳다고 쉽게 결론 내리기 곤란하다. 따라서 이 문제는 좀 더 과학적으로 검증해 봐야 할 문제라고 판단된다. 국내 기업들의 현금보유량이 과다하다고 비판을 종종 하지만 실제 한국 기업들의 평균 현금보유량은 선진국과 비교할 때 그렇게 높지 않다. 예를 들어 1995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 상장기업들의 평균 현금보유량은 총자산의 28.9%에 달한다. 일본 기업들도 약 15% 정도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동안 우리나라 상장기업들의 평균 현금보유량은 10.5%에 불과하다. 즉 미국의 3분의 1, 일본의 3분의 2 수준이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이 외국 기업들과 비교할 때 과다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5

한국 기업의 현금 보유 수준 추세
그러나 이런 통계수치만 보고 바로 한국 기업들의 현금 보유 수준이 높지 않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정확하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현금보유량 자체가 아니라 현금 보유 수준을 결정하는 회사의 특성을 고려해 불필요하게 과다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즉, 적정 수준을 초과하는 과잉현금(excess cash)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적정 수준의 현금이 얼마인지를 계산할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학계에서는 평균적인 기업들과 비교할 때 적정 현금 보유 수준이 얼마인지를 측정하는 몇 가지 모형들이 개발돼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모형은 기업의 규모, 수익성, 위험, 재무구조, 성장성, 투자 규모, 배당의 지급 유무 등의 특성에 따라 얼마만큼의 현금을 보유하는 것이 적정한지를 측정하는 모형이다. 6

예를 들면 규모가 큰 기업이나 수익성이 나쁜 기업은 현금을 평균적으로 덜 보유할 것이고, 배당을 지급하는 기업이나 투자 규모가 큰 기업도 현금을 덜 보유할 것이다. 따라서 계산된 적정 현금 보유 수준과 실제 현금 보유 수준을 비교해 실제 현금 보유 수준이 적정 현금 보유 수준보다 많다면 기업이 과잉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실제 현금 보유 수준이 적정 현금 보유 수준보다 적다면 기업이 과소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승희 등의 학자들은 이런 점들을 고려해 1995년부터 현재까지 한국 기업의 현금 보유 수준과 과잉 현금 수준의 변화를 계산했다. 그 결과는 [그림 1]에 제시돼 있다. 7

그림 상단부에 있는 현금성 자산 보유 수준의 변화를 보면 한국 기업들의 현금 보유 수준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총자산 대비 현금성 자산의 비율은 1995년 기준 8% 정도 수준이었으나 2015년에 이르면 12%대로 4%p 정도 상승했다. 최고점은 세계 금융위기 직전인 2005년과 2006년으로서 이때는 12%가 넘었었다. 2005년부터 2017년까지 현금성 자산의 비율은 정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즉 한국 기업들이 절대수준으로 볼 때 과거보다 총자산 대비 4% 정도 더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약 20년의 기간 동안 4%p 정도 증가한 것이 과다한 증가인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르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림 하단부에 있는 초과 현금 보유 수준의 변화 추세를 보면 전혀 다른 현상이 관찰된다. 적정 수준과 비교할 때 1995년대 후반에는 약 2% 또는 그 이상의 과잉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이러한 추세는 점점 감소한다. 그 결과 2000년대 중반부터 2017년까지의 초과 현금 수준은 거의 0에 근접한다. 즉, 한국 기업들이 적정한 수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과다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일부 정치권이나 언론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한국 기업들이 과거보다 더 합리적으로 행동해 최근 들어 적정한 수준의 현금만을 보유하고 있는 중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8

보유 현금에 대한 주식시장의 반응
[그림 1]의 초과 현금 보유 수준의 변화 추세를 살펴보면 외환위기 시점인 1997년 우리나라 기업들의 적정 수준과 비교할 때 약 5% 정도 과다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위기 시점에서는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자산을 매각하거나 투자를 축소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현금보유량을 늘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당시에는 정부에서 나서서 적극적으로 기업들이 현금보유량을 늘리고 부채를 상환해서 재무구조를 안정화하라고 독려했다. 즉, 지금과는 정반대의 정책이 실시됐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시기에도 비슷하게 초과 현금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앞에서 소개한 방법 이외에 현금 보유 수준이 적정한지 살펴보는 다른 방법도 있다. 주식시장에서 기업의 현금 보유 수준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지배구조가 취약하므로 주식 가격이 낮게 형성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지배구조가 취약하면 주식투자자들이 기업의 정보를 신뢰하지 못하므로 기업이 보고하는 이익을 디스카운트해서 평가해 이익에 비해 주가가 상대적으로 낮게 형성된다는 의미다. 이런 관점과 동일하게, 만약 투자자들이 기업이 과다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현금이 주가와 관련되는 정도(학술적으로는 현금의 가치 관련성이라고 부른다)가 하락할 수 있다. 따라서 현금이 주가와 관련되는 정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외부 투자자들이 기업이 적정한 수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하는지를 살펴보는 방법이 된다. 9 이러한 접근 방법도 학술적 연구에서 널리 사용된다.

앞에서 소개한 양승희 등의 논문에서 이 방법을 이용해서 분석한 결과, 초과 현금 보유 수준은 전체적으로 기업가치(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현금 보유 수준 전체가 아니라 과잉 현금 수준과 주가와의 가치 관련성을 살펴본 결과도 유사했다. 주가뿐만 아니라 기업의 수익성과의 관계를 살펴봐도 유사한 현상이 관찰됐다. 즉, 기업이 보유한 과잉 현금 수준이 감소한다면 수익성도 하락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결론적으로, [그림 1]에서 보고한 것처럼 기업이 보유한 과잉 현금 수준은 현재 0 근처의 수준으로서 적정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주식시장에서는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 수준 또는 초과 현금 수준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따라서 이 두 관점에서 볼 때 한국 기업들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현금을 최근 들어 보유하고 있고, 그 때문에 한국 기업들의 주가가 디스카운트 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판단된다.

사내 유보금에 대한 오해
앞에서 2014년부터 기업소득환류세제라는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고 소개한 바 있다. 기업이 한 해 이익의 80% 이상을 투자, 배당이나 자사주 취득, 임금 인상분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그 차액의 일부를 법인세로 추가 징수하겠다는 제도다. 기업들이 벌어들인 소득을 사내에 유보해 쌓아 두기만 하기 때문에 가계와 사회로 환류되지 않아서 경기가 침체한다는 주장에 따라 이 제도가 도입됐다. 당시 여당과 야당 모두 이 제도의 도입에 절대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일부 의원은 ‘우리나라 상장기업들이 무려 700조 원이나 되는 막대한 현금을 사내 유보금으로 쌓아 두고 투자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 사내 유보금의 10% 정도만 세금으로 징수해도 부족한 세수 문제나 복지 지출을 위해 해결해야 하는 재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10

그러나 정치권의 주장과는 달리 학계나 기업계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반론도 많이 제기됐다. 우선 상장기업들이 무려 700조 원이나 되는 막대한 현금을 사내에 유보시켜 ‘사내 유보금’이라는 명목으로 쌓아두고 있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다. 사내 유보금이라는 용어는 재무제표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으며 기업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도 아니다. 사내 유보금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불확실하다. 이들이 주장하는 ‘사내 유보금’이란 회계상으로는 ‘이익잉여금’이라고 불리는 계정이다. 영어로는 retained earnings(이익 중 보유분) 또는 reinvested earnings(이익 중 재투자분)이라는 용어로 불린다. 정치인들은 이 계정에 적힌 금액이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라고 오해를 하고, 이를 세금으로 징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익잉여금은 현금이 아니다. 이익잉여금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 중 일부를 배당으로 지급하고 남은 금액이다. 물론 이 금액 중 일부는 현금 자산의 형태로 회사 내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익 중 대부분은 기업의 가치를 증진시키기 위한 투자 자금으로 사용돼 기업 외부로 지출된다. 예를 들면 벌어들인 이익 중 일부를 기계설비를 취득하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고, 연구개발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Reinvested earnings라는 영어 용어를 봐도 이 금액이 투자 목적으로 사용한 금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내 유보금을 다 사용한다면?
따라서 이익잉여금이 많다면 기업들이 벌어들인 돈을 배당으로 주주들에게 다 지급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 부분이 많다는 것뿐이며 이익잉여금이 많다고 현금이 많다고는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당기순이익 1000억 원을 기록한 대기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평균적인 한국 기업들은 당기순이익의 20∼30%쯤을 배당으로 주주들에게 지급한다. 따라서 배당금을 차감하면 이 기업의 금년도에 증가한 이익잉여금은 700억 원이 된다. 이 중 대부분, 즉 650억 원 정도는 미래 성장을 위한 추가적인 투자 자금으로 사용될 것이고, 그 결과 그중 일부인 50억 원만이 현금이나 기타 현금성 자산의 형태로 기업이 보유하고 있다. 즉, 700억 원 전체가 현금이 아니다.

매년 유보금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정치인들이나 시민단체도 있는데 이러한 비판 역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평균적인 기업들이 당기순이익의 20∼30%쯤을 배당하므로 나머지는 이익잉여금으로 기록하게 된다. 따라서 매년 이익잉여금의 비율이 증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이익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을 배당한다고 하더라도 배당을 하지 않고 남겨진 이익잉여금 금액 이상을 투자에 사용한다면 이익잉여금은 늘어나더라도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만약 벌어들인 이익의 100%를 배당으로 지급한다면 이익잉여금은 증가하지 않는다. 100% 이상을 지급한다면 이익잉여금이 줄어든다. 이익의 100%를 배당한다면 기업은 전혀 성장 발전을 할 수가 없고 정체 상태에 빠진다. 벌어들인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배당했으니 신규 투자에 쓸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돈을 배당하기에 충분한 현금이 없다면 아마도 외부에서 돈을 빌려와서 배당을 지급해야 할 것이다. 2006년 외국계 펀드의 경영권 공격을 받고 타협을 했던 KT&G가 외국계 펀드와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돈을 빌려 상당한 배당을 지급하고 자사주를 취득했던 사례도 있다. 그 결과 해당 펀드는 상당한 이익을 보고 철수했지만 KT&G는 그때 진 빚을 갚느라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11 필자야 내부 사정을 잘 알지 못하지만 아마 빚을 갚은 기간 동안은 필요한 투자도 제대로 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추측이 된다.

이익의 100% 이상을 배당한다면 기업의 규모는 줄어들게 된다. 배당을 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팔거나 긴축 경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국내 기업을 인수했던 몇몇 외국계 펀드가 단기간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 사용한 방법이다. 예를 들면 위니아만도를 인수했던 CVC나 JP모건, 극동건설을 인수했던 론스타, 브릿지증권을 인수했던 BIH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보유 중이던 자산(본사 사옥이나 설비, 사업 부문)을 팔고 직원들 임금을 삭감하거나 직원들을 해고하는 방안을 이용해서 인건비를 줄여 마련한 자금을 배당이나 유상감자의 형태로 회수해 큰 사회 문제가 됐던 경우다. 그 결과 회사의 규모는 크게 축소됐고, 격렬한 노사분규가 일어나기도 했다.

기업소득환류세제의 효과
우리나라 상장기업들의 이익잉여금 총액이 700조 원쯤 된다는 이야기는 옳지만 이 700조 원이 현금이라는 주장은 잘못됐다. 대부분 기업은 현금 및 기타 현금성 자산의 비중은 이익잉여금의 5% 미만이다. 삼성전자의 경우는 2% 정도다. 그러니 사내 유보금의 10%를 세금으로 걷어야 한다는 주장은 기업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 전부뿐만 아니라 보유 중인 기계나 건물도 팔아서 세금을 내라는 황당한 주장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기업들은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주장이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기업이 현금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보다 투자를 하거나 배당 또는 임금의 형태로 개인들에게 지급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경기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부 과장되거나 잘못된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의도에서 정치인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도입된 제도가 기업소득환류세제다. 그렇다면 효과는 어떨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 제도가 도입되면 이 제도의 적용을 받게 되는 기업들은 우선적으로 배당이나 자사주 취득을 늘릴 것이 분명하다. 추가적인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려면 투자, 배당 또는 자사주 취득, 임금 인상으로 이익의 80% 이상을 사용해야 하는데 연말이 돼서 단기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 배당이나 자사주 취득뿐이기 때문이다.

투자는 보통 오랜 준비기간이 필요하고 대규모의 지출을 수반한다. 따라서 연말에 계산을 해보니 기업소득환류세제의 규제 대상이 된다고 판단됐다고 하더라도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투자 지출을 갑자기 늘리는 것은 곤란하다. 또한 투자 규모는 적정한 투자 기회가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므로 투자 기회가 없다면 남는 돈이 있더라도 투자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임금 인상도 마찬가지다. 한 번 돈이 남았다고 임금을 인상했다면 다음 연도에 경기가 어려워졌다고 임금을 줄이기 곤란하다. 한 번 오른 임금은 절대 하락하지 않는다. 학술적 용어로는 하방경직성이 높다고 표현한다. 그러니 내년 형편이 어떨지 모르면서 금년도 돈이 남았다고 함부로 임금을 크게 올릴 수 없다.

그런데 투자와 임금 인상과 비교할 때 배당이나 자사주 취득은 이런 제약점이 적다. 배당금을 지급하거나 자사주를 취득하는 것은 며칠은 아니더라도 몇 주 내로 실행할 수 있는 것이며 금년도에 했다고 해서 내년도에 반드시 다시 해야 한다는 보장도 없다. 한 번 배당금을 올렸다면 내년도에 경기가 어려워졌다고 다시 내리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임금을 내리는 것보다는 배당금을 내리는 것이 쉬울 것이다. 자사주 취득은 이런 제약점도 없다. 금년도에 자사주를 취득했다고 해서 내년도에 또 취득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당연히 배당이나 자사주 취득 금액이 일부 늘어났었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학술적인 연구의 결과도 이런 주장을 뒷바침한다. 즉, 세제 도입 이후 배당이나 자사주 취득은 일부 증가했으나 투자나 임금 인상에 기여한 부분은 거의 없다고 한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 정부가 할 일은?
배당이 늘었다고 해도 이 중 국내 경기 활성화에 기여한 부분은 적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배당이나 자사주 취득을 늘린 기업들은 대부분은 수익성이 뛰어난 대기업이고, 이 대기업들의 주주는 외국인 비중이 특히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취득을 제일 많이 하는 기업은 삼성전자로서 2017년 한 해 동안 무려 10조7000억 원을 이 목적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주주들 중 외국인의 비중은 대략 53∼55%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니 국내에 머물러서 사용되는 돈보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이 더 많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글로벌 시대에 외국인 주주와 내국인 주주들을 차별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정책을 실시한 목표가 국내 경기의 활성화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국내 경기가 활성화되는 효과는 배당의 지출 규모에 비해 작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경기 활성화를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 해답은 글의 앞 부분에서 소개한 신문기사에 이미 등장한다.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야 일자리가 늘어나고, 그 결과 일자리를 새로 얻은 사람들이 소득이 생겨서 소비를 증가시킬 수 있다. 기존에 일자리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소득이 늘어나서 소비를 늘림으로써 경기가 좋아진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투자를, 특히 국내 투자를 더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즉, 외국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 투자했을 때 더 이익이 되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투자액이 국내로 돌아올 것이다. 그래야 국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다.

필자소개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acchoi@snu.ac.kr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 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권과 『재무제표 분석과 기업가치평가』, 수필집 『마흔, 감성의 눈을 떠라』가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61호 감성 분석 2018년 1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