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경영

소비자의 창작욕을 자극하는 ‘모딩’

248호 (2018년 5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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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2017년 게임계에서는 ‘배틀그라운드’의 대성공이 큰 화제였다. 간만에 등장한 국산 게임 글로벌 히트 작품을 두고 다양한 성공요인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특정 게임의 데이터와 작동방식을 플레이어의 입맛에 맞게 수정하는 ‘모딩’의 관점에서 분석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실 모딩은 게임산업 전체, 조금 더 확장하면 현대의 콘텐츠 비즈니스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흐름으로부터 비롯되는 현상이다. 게임을 비롯한 콘텐츠/미디어 산업은 이제 단순히 완성된 형태의 완벽한 무엇인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소비자, 즉 프로슈머를 만들어내는 플랫폼 비즈니스여야 한다. 이러한 플랫폼을 만드는 과정에서 모딩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상품화하는 효율적인 전략이 된다.

게임계에서 2017년 한 해는 ‘배틀그라운드(이하 배그)’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어마어마한 열풍은 이제 다소 사그라들었지만 배그는 여전히 한국 게임산업계에서 무게감을 잃지 않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17년 말 기준 판매량은 총 2700만 장. 액수로는 6400억 원을 넘어섰으며 세계 최대 PC게임 유통 서비스인 ‘스팀’에서 단일 게임 동시접속 사용자 수 300만 명을 돌파하며 기네스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동안 내수시장에 크게 기대 오던 모바일 중심의 국내 게임산업계의 행보와는 사뭇 다른 ‘배그’의 기록들은 여러모로 국내 콘텐츠산업계에 새롭고 신선한 자극이 됐다. 1
‘배그’의 성공은 단지 매출 수치로만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 영역 전반에서 성공의 여파를 느낄 수 있다. 그동안 게임 강국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세계적인 히트작을 내지 못하던 한국 게임계에서 간만에 터뜨려 낸 성과는 인터넷 방송 스트리밍 플랫폼인 ‘트위치’에서 ‘최대 시청자 수를 보유한 게임’으로, 늘 외산 게임들이 지켜오던 ‘국내 PC방 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한 게임’으로 나타났다. ‘배그’의 성공은 그래서 단지 몇 카피가 팔렸느냐에 그치지 않고, 이 게임을 활용해 펼쳐지는 e스포츠, 각종 게임방송 등을 통해 게임 하나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디지털콘텐츠의 생태계 규모를 포함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런 규모의 성공을 일궈냈기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배그’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고 사례화한다. 물론 한두 가지의 요소만으로 이뤄낸 성공은 아닐 것이다. ‘배틀로얄’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유행을 적기에 캐치해 낸 개발진의 역량, 모험적인 아이템에 쉽지 않은 투자를 결정한 경영진의 인사이트, 도전적인 컨셉을 소비자의 입맛에 딱 맞게 만들어 낸 이들과 그들의 창의성을 흔들지 않았던 관리자들. ‘배그’의 흥행 성공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아 왔던 성공하는 프로젝트의 여러 요소들이 중첩돼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유독 특별해 보이는 한 가지 지점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부족하다. 이 지점은 비단 ‘배틀그라운드’뿐만이 아니라 게임산업 전체, 아니 조금 더 확장해서 현대의 콘텐츠 비즈니스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흐름으로부터 비롯되는 현상이다. 성공한 국산 게임 하나가 성공의 배경으로 품었던 이 지점 하나는 생각할수록 더 많은 의미로 다가온다. 바로 ‘모딩’이다.

모딩이란 무엇인가

모딩(Moding)이란 개선, 수정 등의 의미를 담은 모디피케이션(Modification)의 줄임말인 모드(Mod)로부터 파생된 말이다. 게임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는 모딩이라는 용어는 말 그대로 모드를 만드는 행위를 의미한다. 여기서 모드는 방식, 상태 등을 가리키는 Mode가 아닌 위에서 언급한 모디피케이션을 줄인 Mod를 가리키는 단어로, 특정 게임의 데이터와 작동방식을 플레이어의 입맛에 맞게 수정한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모드는 아주 사소한 부분부터 큰 부분까지 다채롭게 등장한다. 예를 들어 액션 게임에서의 전투 장면이 재미없다고 여겨질 경우, 몇몇 모더(Modder)들이 직접 해당 게임의 전투에 관련된 수치 데이터들을 수정해 좀 더 다이내믹한 전투로 바꿔놓는 모드들을 공개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가 가벼운 예라면, 이보다 훨씬 더 큰 변화를 게임 안에 가져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높은 그래픽 수준과 대단한 게임성으로 이름 높은 GTA(Grand Theft Auto)는 모든 시리즈에서 도로에 돌아다니는 멋진 자동차들을 플레이어가 직접 구매하거나 빼앗아(!) 탈 수 있게 돼 있는데, 각종 지재권 등의 문제로 인해 실제 존재하는 차량 디자인이 아닌 독자적인 디자인의 차량들이 기본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몇몇 모드들을 추가로 설치하면 현실에 실제 존재하는 각종 슈퍼카들이 그대로 게임 안에 구현돼 자동차 마니아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즉, 게임제작사가 만든 모든 게임 내 차량은 가상의 모델이지만 차량 마니아들의 작업으로 만들어진 모드에서는 실제 현실에 돌아다니는 슈퍼카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얘기다. 이는 차량회사도, 게임회사도 아닌 플레이어들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진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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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딩은 출시가 완료된 콘텐츠 상품으로서의 게임을 소비자가 직접 뜯어고치는 행위이기에 게임회사 입장에서는 언뜻 보기에 콘텐츠의 무단 사용과 재배포 등을 걸고넘어질 수 있는 불법 행위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뜻밖에도 많은 게임사는 오히려 이런 모드의 제작을 환영하는 편이며 모더들의 편의를 위해 게임 프로그램을 보다 손쉽게 수정할 수 있는 다양한 제작 툴 등을 게임과 함께 공개하기도 한다. 전통의 명작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게임에 포함돼 있는 맵 에디터는 단지 게임 속의 지형을 수정하는 기능을 넘어 프로그램 구현도 가능한 수준의 강력함을 자랑한다. 덕분에 스타크래프트 안에서 ‘마피아게임’과 같은 오프라인 게임을 만들어 즐기거나 아예 다른 형식의 롤플레잉 게임을 만들어 내는 등의 자유로움이 추가된다. 3

제작사들이 게임 소비자들의 모딩 행위를 자신의 콘텐츠를 훼손한다고 보지 않고 오히려 지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모딩의 본체가 되는 게임 콘텐츠의 자체 수명이 별도의 추가 비용 없이도 연장되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출시가 완료된 상태에서 게임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추가적인 개발비를 들이지 않아도 된다. 모딩이 쉬운 게임이라면 게임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달려들어 게임을 자체적으로 개선해 간다. 제작사 입장에서 매우 효율 좋은 개선 도구인 셈이다. 한편 소비자 입장에서도 본편의 불만족스러웠던 점을 직접 의견을 반영해 고쳐낸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모딩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의 ‘윈윈’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배틀그라운드의 게이머라면, 아니 게임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배그’와 모딩이 무슨 상관이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배그’는 별도의 모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드 제작을 지원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배그’의 성공에 관여하는 모딩에 관한 얘기는 방금 언급한 모딩의 장점으로부터 한발 더 나아가는 스토리다. 바로 ‘배그’ 자체가 모딩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점에서다.

배틀그라운드를 낳은 모딩의 이야기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가장 큰 특징은 이른바 ‘배틀로얄’이라는 게임 방식을 도입하고 이를 보편화했다는 점에 있다. 기존의 온라인게임들과 달리 ‘배그’는 100명의 참가 플레이어들이 이름 모를 섬에 낙하해 최후의 1명이 남을 때까지 싸우며 생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적, 점점 좁혀오는 안전지대, 갈수록 줄어드는 생존자 수를 넘어 최후의 1인이 됐을 때 쏟아지는 쾌감은 기존의 게임들이 제공하지 못했던 완전한 새로움이다.

그러나 이런 배틀로얄의 방식을 해당 게임의 제작사만 생각해 낸 것은 아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총기를 사용해 최후의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전투를 벌이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생각들은 각종 밀리터리 액션 게임의 모드를 통해 조금씩 게임 시장 전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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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전장 구현으로 이름 높던 게임 ‘ARMA 2’의 모드로 등장한 ‘데이 지(DayZ)’는 영화 ‘헝거게임’으로부터 가져온 모티브를 토대로 최후의 1인을 남기는 배틀로얄 방식을 담아낸 모드였다. 워낙 모드의 본체가 되는 ‘ARMA 2’ 게임이 현실적인 전장 구현에 충실했기 때문에 모드가 담아낸 배틀로얄의 장면은 생기가 넘쳤고 본편 이상의 인기를 게이머들로부터 모으기 시작했다.

점차 배틀로얄이라는 방식의 게임 규칙이 인기를 모으기 시작하자 실제로 배틀로얄을 중심에 담는 게임들의 기획과 제작 움직임이 나타났다. 최초로 모드를 통해 배틀로얄의 원형을 구현해 냈던 모드 제작자, 브랜든 그린은 곧이어 정식 게임으로 배틀로얄을 담아낸 ‘H1Z1’의 제작에 컨설턴트로도 참여한다. 그리고 전편보다 더 뛰어난 그래픽으로 돌아온 ‘ARMA 3’에서 다시 배틀로얄 방식의 모드를 제작하던 브랜든 그린을 한국의 게임 개발사인 블루홀이 직접 영입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지금의 ‘배틀그라운드’다.

인기 액션 게임의 모드로 시작된 배틀로얄 게임의 아이디어가 한 회사의 정식 콘텐츠상품으로 출시되기까지의 과정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총기류가 등장하는 액션 게임들이 제공하지 않던 배틀로얄 방식이 개인에 의해 모드로 제작됐다는 것은 다음 시대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보여준 일종의 ‘바로미터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흐름을 빠르게 알아채고 모드 제작을 통해 그 아이디어를 가장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던 브랜든 그린이라는 모더(Modder)와 그의 아이디어를 게임사가 직접 구매함으로써 일개 게임의 모드에 불과했던 아이디어는 2017년을 뒤흔든 최고의 게임 ‘배그’로 탄생할 수 있었다. 소비자의 니즈가 콘텐츠의 변용을 불렀고, 변화한 콘텐츠가 소비자로부터 인기를 검증받았으며, 이 과정을 가장 빠르게 캐치해 내 상품화로 옮겨낸 기업이 최종적인 과실을 거머쥔 것이다.

모딩으로부터의 게임 콘텐츠 상품화

소비자의 취미에서 출발한 모딩이 하나의 콘텐츠 상품으로 자리 잡은 사례는 ‘배틀그라운드’ 외에도 많다. 의외로 적지 않은 인기 게임들이 모딩으로부터 시작된 아이디어를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콘텐츠 비즈니스 측면에서 깊이 살펴봐야 할 현상이기도 하다.

당장 ‘배틀그라운드’의 등장 이전까지 한국 PC방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가 대표 사례일 것이다. 다섯 명의 플레이어가 한 팀이 돼 자신의 캐릭터를 조종하면서 지도상의 주요 거점들을 점령해 나가며 상대 팀의 본진을 함락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 ‘LOL’ 역시 아이디어의 기원은 모드로부터 나왔는데, 원전은 바로 ‘워크래프트 3’였다.

‘스타크래프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으로 이미 국내에서는 최고의 인지도를 쌓아 올린 블리자드사의 판타지 기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워크래프트 3’는 강력한 맵 에디터 기능을 탑재해 많은 이가 커스터마이즈된 미니 게임들을 손쉽게 제작하고 플레이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Defense of The Ancients(DoTA, 도타)’라는 이름의 커스텀 게임은 자동으로 적진을 향해 공격하는 아군 유닛들 사이에서 강력한 영웅 유닛 하나를 플레이하는 방식을 통해 오히려 ‘워크래프트 3’ 본편 게임보다 더 큰 인기를 얻었다. 이 게임은 AOS(Aeon of Strife: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에서 처음 시작돼 DoTA와 ‘리그오브레전드’까지 이어지는 게임 방식) 장르의 기초가 됐는데, 최근 수년간 최고의 인기 게임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LOL’은 그 ‘DoTA’의 파생형 게임 중 하나인 ‘도타 올스타즈’의 개발자인 스티브 픽(닉네임 guinsoo)을 신생 게임사인 라이엇게임즈가 영입해 와 만든 게임이다.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이끌어 낸 ‘LOL’의 최대 경쟁작인 ‘DoTA 2’도 이름에서 드러나다시피 앞에서 언급한 바로 그 모드가 정식 단독 게임으로 출시된 작품이다. 게다가 이들 두 게임과 함께 사실상 서구 e스포츠 분야를 석권하고 있는 또 다른 밀리터리 액션 게임인 ‘카운터 스트라이크’도 심지어는 유명 FPS게임인 ‘하프 라이프’ 모드로부터 시작돼 독립 게임으로 출시된 사례다. 사실상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게임의 상당수가 다른 게임의 모드로부터 출발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톱 티어 게임들의 출신 배경이 상당수 모드라는 기반에 모여 있다는 점은 현대의 콘텐츠 비즈니스가 바라봐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드로부터 시작되는 흥행 게임들의 사례는 크게 두 가지의 시사점을 우리에게 전한다. 하나는 현대의 콘텐츠 소비자들이 보여주는 창조적 수용의 자세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창조성을 상품화하는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다.

프로슈머, 창조하는 소비자를 만드는 플랫폼 비즈니스

먼저 짚어볼 부분은 바로 창조를 통해 소비하는 새로운 콘텐츠 소비자의 등장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프로슈머(prosumer)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소비자가 더 이상 과거처럼 단순한 소비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확인한 바 있다.

하지만 게임 콘텐츠 영역에서 모딩과 모더들의 의미는 기존의 프로슈머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 이상의 것들을 담고 있다. 단지 생산된 제품을 리뷰하고 이의 개선을 건의하거나 의견 집단을 만들어가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모더들은 아예 제품 자체를 스스로 개조하고 이를 자발적으로 배포해 나간다. 한때 프로슈머의 파생어로 유행했던 크리슈머(cresumer. Create+consumer)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크리슈머 개념으로서의 모딩이 게임 분야에서 활성화되고 또 다른 제품의 출시로까지 이어지는 오늘날의 현상은 여러 가지 흐름들이 중첩되면서 만들어지는 새롭고 복잡한 결과물이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문화적 영역에서 드러나는 생산과 소비라는 전통적 양식의 퇴조를 불러오는 포스트모던의 기류다. 이는 비단 게임 영역에서의 모딩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당장 과거 방송 콘텐츠의 제작을 한 군데에서 독점적으로 쥐고 있었던 지상파 중심 시대가 개별 BJ와 1인 제작자들의 콘텐츠로 채워지는 인터넷 스트리밍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흐름만 봐도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지상파 방송의 광고 수익의 지속적인 감소와 1인 미디어 수익의 가파른 상승은 더 이상 개별 소비자가 단순한 수동적 수용에 머무르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경향성은 단지 문화적 흐름만을 원류로 삼는 것은 아니다. 고전적 의미의 생산자-소비자 관계가 구성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생산 혹은 제작에 필요한 도구와 자산의 비용이 높았다는 점이 자리 잡고 있다. 제작 도구의 보편화를 만들어낸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개별 소비자들이 직접 생산과 제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가정용 캠코더 보급의 시대를 넘어 이제는 스마트폰 카메라로도 풀HD 영상을 높은 프레임으로 녹화할 수 있게 됐고, 각종 편집용 프로그램도 개선에 개선을 거듭해 전문가가 아닌 이들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송출 면에서도 거대한 방송 송출 장비 대신 간단한 업로드로 전 세계에 같은 영상을 내보낼 수 있는 유튜브, 트위치 같은 플랫폼들이 대세가 되면서 개별 소비자들의 창작에 대한 욕망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며, 비로소 크리슈머라는 말이 유의미한 시대를 열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모딩, 모더의 개념이 결국 플랫폼 산업이라는 키워드와 맞닥뜨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게 되는 시대는 결국 기존의 산업들이 더 이상 완성품을 만들어 유통시키는 것이 아닌 제작에 필요한 도구로서의 콘텐츠를 만드는 쪽으로 흘러가도록 한다. 지상파 영상산업의 자리를 유튜브가 차지해 버린 것은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까? 또 무엇을 의미할까? 우선 고가에 전문 방송국으로 납품되던 제작·편집 소프트웨어의 매출이 저가에 일반용으로 널리 보급하는 동영상 소프트웨어의 매출보다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콘텐츠 생산이 고전적 의미에 머무르지 않고, 소비자가 창작욕을 일으킬 수 있도록 자극하는 역할도 한다. 많은 게임이 소비자들의 모딩을 지원하는 이유도 결국 플랫폼의 관점에서 사고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딩: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상품화하는 효율 높은 전략

앞서 우리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게임의 모딩 현상, 방송산업의 변화 양상을 읽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배그’가 모딩에서 출발해 성공적인 콘텐츠로 자리매김한 사건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이 존재한다. 바로 모딩을 통해 도출된 결과물을 어떻게 재상품화하는가에 관한 문제다.

‘배그’는 그 시작점으로 ‘ARMA’라는 게임의 모드를 가지고 있지만 최종 결과물을 ‘ARMA’의 제작사가 가져간 것은 아니었다. ‘DoTA 2’와 ‘리그 오브 레전드’의 탄생에 기여한 모드 기계로서의 ‘워크래프트 3’는 정작 두 게임의 성공으로부터 어떤 비즈니스적 이득을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사의 게임이 다른 형태로 변모해 생명력을 늘려갔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창의성이라는 것은 아무리 조직 안에서 사람을 늘리고 문화를 개선해도 결국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배그’를 만들어 낸 블루홀이 아이디어 기획자를 늘린다고 해서 ‘배그’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었을 것이다. 블루홀의 선택은 그런 면에서 귀감이 된다. 모더들이 제작하는 콘텐츠의 흐름을 유심히 살폈고, 그중 가능한 아이템을 빠르게 챙겨 현명하게 키워 냈다는 점에서다.

게임 영역에서 하나의 모드가 등장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아 인기를 얻었다는 점을 되짚어보면 무척 빠르고 간편하게 소비자의 취향을 정확히 짚어내고 반영한 콘텐츠를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배그’의 블루홀, ‘LOL’의 라이엇 게임즈,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밸브는 모두 이 점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막대한 사전조사 비용이나 엄청난 규모의 싱크탱크, 수백 장이 넘어가는 트렌드 보고서보다 훨씬 더 간편하게 소비자의 의중을 읽어낼 수 있는 수단으로서 게임의 모드는 큰 의미를 가졌고, 이들 세 회사는 이를 빠르게 자사의 비즈니스 모델 안으로 편입시킴으로써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역시 비단 게임 영역에만 국한되는 이슈가 아니다. 주요 개인방송 BJ들 중 성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인물들을 빠르게 영입하고 투자했던 콘텐츠 플랫폼 회사들은 ‘될성부른 떡잎’을 위한 영양 높은 토양을 만들어주면서 지금의 1인 방송 콘텐츠 비즈니스를 새롭게 열었다. 게임과 방송 콘텐츠처럼 아직은 물질적인 영역 바깥의 비즈니스에서만 확인되는 흐름이지만 4차 산업혁명 같은 생산양식의 변화가 보편적인 수준에 이르게 될 경우를 가정한다면 이러한 흐름은 좀 더 넓은 생산의 영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아 보인다.

새로운 산업에서의 창의성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주도하는 많은 게임의 배경이 모딩이라는 소비자 창조 영역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첨단의 기술 매체인 게임산업이라는 영역이라 무척 새로운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혁신이라는 주제에 있어서는 오히려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어진 방법론의 변형이다. 간단한 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이 농업에서의 종묘 개량이다. 어떤 종자든 손쉽게 자라날 수 있는 비옥한 농토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가장 좋은 작황을 보이는 품종을 지속적으로 파종해 나가는 종묘 개량의 기초 방식은 소비자의 아이디어가 마음껏 창작욕을 발휘할 수 있는 모딩 환경을 만들고, 그로부터 나타난 아이디어 중 뛰어난 것들을 모아 재상품화한 현대 인기 게임들의 방법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 혁신은 혁신적이면서도 그 자체로는 언제나 원론적인 어떤 것과 맞닿아 있는 무언가로 나타난다.

늘상 새로운 아이디어에 목말라 하는 비즈니스 현장의 수많은 전략가에게 게임 산업의 모딩이 갖는 의미 또한 그래서 무척이나 고전적이고, 두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하고 있다. 아이디어를 짜내기보다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리고 도출된 아이디어가 현실화할 수 있는 충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 4차 산업혁명과 빅데이터, 포스트 모더니즘과 플랫폼 비즈니스, 온갖 새로운 용어와 개념 속에서도 우리는 혁신과 창의성의 근본이 일종의 원리처럼 작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다. 기술이 바뀌고 환경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창발성의 기원을 잊지 않아야 함을 다시금 깨닫는 사례로서 게임 속의 모딩이 보여 준 흥행의 사례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로 다가온다.

편집자주

현대사회에서 게임은 세계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자 많은 사람의 생활 공간이며, 동시에 첨단의 미디어이기도 합니다. 게임이 구성되는 원리, 스토리와 캐릭터에 반영되는 철학과 사람들의 행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또 하나의 게임판에서 생사를 건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경영자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국내 최고 게임컬럼니스트 이경혁 게임연구자가 ‘게임과 경영’을 연재합니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grolmarsh@gmail.com

이경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등에서 일하다 퇴사한 후 현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게임문화 연구를 전공하고 있는 게임연구자다. 매체로서의 게임이 현대사회와 인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게임화’하는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사이트를 찾고 전파한다. 성균관대에서 ‘게임과 인문학’이라는 교양과목을 운영하고 있으며 시사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게임 관련 패널로 출연 중이다. 저서로는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공저)』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8, 공저)』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63호 2018 Business Cases 2018년 12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