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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경제학자의 아픈 상처가 준 교훈

김경호 | 85호 (2011년 7월 Issue 2)

 
편집자주DBR이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명문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듀크 MBA에는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마지막 학기에 꼭 수강하는 인기 과목이 있다. 이 과목은 2학년에게만 수강 기회가 주어진다. 때문에 학생들 중 일부는 입학할 때부터 내년이 되면 반드시 수강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다. 바로 <상식 밖의 경제학>과 <경제 심리학>이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댄 애리얼리 교수가 강의하는 행동경제학(Behavior Economics)이다.
 
아픈 상처가 행동경제학자의 밑거름이 되다
애리얼리 교수는 첫 수업 때 심한 화상 흉터가 남아 있는 자신의 얼굴에 관한 아픈 과거를 털어놓았다. 학창시절 마그네슘 폭발 사고로 심한 화상을 입어 오랫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을 돌보는 간호사들의 행동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화상 치료용 거즈를 몸에서 제거하고 다시 붙이는 동일한 치료 과정에서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거즈를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하지만 일부 간호사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거즈를 제거했다.
 
두 방법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거즈를 급하게 떼내면 순간적 고통이 크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환자가 고통을 느끼는 시간이 짧다. 거즈를 천천히 떼내면 순간적 고통은 크지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고통을 받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성적으로 보자면 환자들의 선호도에 따라 간호사들은 두 방법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신기하게도 어떤 간호사도 환자들에게 선호하는 방법을 묻지 않았다.
 
애리얼리 교수는 거즈를 빠르게 제거한 한 간호사에게 물었다. “왜 당신은 다른 간호사들과 달리 거즈를 급하게 제거하나요?” 그는 간호사가 이성적 대답, 즉 순간적 고통이 크긴 해도 환자가 빠른 시간에 고통을 마무리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는 말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 간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전 환자가 아픔을 느끼는 걸 볼 때마다 무척 고통스러워요. 가능하면 그 고통을 최소화하고 싶어요.”
 
애리얼리 교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합리성에 입각한 자신의 고정관념을 벗어난 간호사의 답변에 놀란 그는 인간이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으며, 그 비합리성 또한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는 관점에 매료됐다. 그가 인간의 합리성을 신봉하는 전통 경제학과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한 이유다.
 
인간은 왜 일을 하는가
심리학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애리얼리 교수의 행동경제학 수업은 매 시간 별도의 주제를 다룬다. 어느 날 수업 서두에 그가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은 왜 일을 하려고 하나요? 돈을 벌기 위해서? 과연 돈이 전부일까요? MBA 졸업 후 기업의 관리자가 될 여러분들이 설마 직원들에게 금전적 보상으로만 일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려고 하려는 건 아니죠?” 많은 학생들은 자신이 리더가 되면 직원들에게 구글의 본사와 같은 좋은 업무 환경, 다양한 교육기회 제공, 체계적인 경력 관리, 여행 및 연수 제공 등 비금전적 보상을 제시하겠다고 답했다.
 
애리얼리 교수는 답변 대신 스크린에 커다란 레고 사진을 보여줬다. 그는 레고를 조립하는 두 집단의 차이에 관한 본인의 과거 실험에 대해 설명했다. 첫 번째 실험 참가자들은 하나의 로봇 레고를 조립한 후, 다른 종류의 로롯을 제공받았다. 그들은 새로운 종류의 로봇을 계속 만들었다. 완성된 로봇은 실험 대상자 앞에 진열됐다. 두 번째 참가자들은 동일한 종류의 로봇을 계속 제공받았다. 또 그들이 완성한 로봇은 다른 사람이 그들 눈앞에서 분해했다.
 
 
두 실험 대상군은 동일한 금전적 보상을 받았다. 보상 구조는 완성된 조립품당 보상액이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형태였다. 실험 대상자들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추가로 로봇을 만들지 말지 결정할 수 있었다. 또 이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에 현재까지의 일로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를 평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언뜻 보면 이 실험은 동일한 로봇을 만드는 두 번째 집단에 유리한 실험일 수 있다. 동일한 로봇을 계속적으로 만들면 그 과정에 익숙해지게 되고, 새로운 로봇을 만들어야 하는 시간도 짧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결과는 정반대였다.
 
새로운 로봇을 제공받았던 첫 번째 집단은 평균 10.6대의 완성품을 만들었다. 이들은 평균 14.40달러의 보상을 받았다. 동일한 로봇을 계속 만들었던 집단은 평균 7.2대의 완성품을 만들고 11.52달러의 보상을 챙겨갔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애리얼리 교수는 ‘일의 의미’에서 해답을 찾았다.
 
“단순한 금전 보상으로만 인간의 노동에 동기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입니다. 두 번째 실험군은 끝없이 돌을 반복적으로 굴려야만 했던 시지푸스와 같은 운명에 처한 존재들이죠. 이들의 생산성이 좋을 리 없습니다. 여러분이 조직의 관리자가 됐을 때 반드시 생각해야 할 점입니다.”
 
당신이 스타벅스에 계속 가는 이유

어느 날 애리얼리 교수는 스타벅스의 카페라떼를 들고 나타나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은 왜 스타벅스에 계속 가나요? 가격이 합리적이라서? 맛이 좋아서?” 스타벅스의 커피 가격이 다소 비싸다고 생각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이용했던 필자 또한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뚜렷한 이유를 찾아내기 어려웠다. 애리얼리 교수는 ‘자신을 따라하기(self-herding)’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했다. 사람들은 무작정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따를 때가 많으며 심지어 자신의 과거 행동이나 의사결정 또한 답습할 때가 많다는 뜻이다.
 
“만약 당신이 스타벅스에 열 번째 방문했는데 스타벅스 커피가 너무 비싸다고 결론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스스로 이전 아홉 번의 방문을 어리석은 결정이었다고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계속 스타벅스를 방문합니다. 여러분들이 조직에서 어떤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가격결정을 내릴 때 이 점을 꼭 기억하세요.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의 가격에 대해서 내리는 평가는 단순히 그 절대적 숫자와 관련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과거 행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합니다.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도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의 반복적 소비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합니다.”
 
MBA 커리큘럼의 화룡점정, 행동경제학
필자가 이 수업을 신청한 이유는 매우 비이성적이었다. 과목의 내용도 잘 모르면서 단지 유명 교수가 하는 수업이니까, 2학년만 들을 수 있는 수업이니까 선택한 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애리얼리 교수의 수업을 들으며 필자는 왜 이 과목이 2학년에게만 수강이 허용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행동경제학은 필자가 2년의 MBA 과정에서 배운 전통 경제학, 재무관리, 마케팅이라는 큰 그림에 마지막 점을 찍어주는 멋진 수업이었다. 이 수업은 전통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비합리적 의사결정에 대해 다양한 실험 사례를 통해 새롭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했다. 또 이를 새로운 체계적 이론으로 완성시켰다.
 
MBA에 오기 전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느꼈지만 한 인간의 행동, 한 조직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은 결코 수학 공식처럼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은 과거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리더에게 풀라고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합리성만 신봉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 과목은 필자의 인생에서 학생 신분으로 듣는 마지막 수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마지막을 이 수업과 함께했다는 점은 큰 행운이다.
김경호 듀크대 후쿠아 경영대학원 Class of 2011 kk137@duke.edu
 
1968년 설립된 듀크대 경영대학원은 1980년 사업가 존 브룩스 푸쿠아(J.B Fuqua)의 기부를 기념해 푸쿠아스쿨(Fuqua School of Business)로 불린다. ‘남부의 하버드’라 불리는 듀크대의 명성, 뛰어난 교수진, 독창적인 커리큘럼 등으로 많은 언론으로부터 미국 내 Top 10 MBA로 꼽히고 있다. ‘Team Fuqua’라는 슬로건으로 뭉친 특유의 끈끈한 동문 네트워크가 강점이다. 매년 460명가량의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으며 20명 정도가 한국인 학생이다.
 
필자는 미국 뉴욕대(NYU)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블랙록자산운용에서 투자상품 업무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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