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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진정성’이란 마법의 가루

김현진 | 383호 (2023년 12월 Issue 2)
‘중소돌의 기적.’

아이돌이 어떤 소속사에서 데뷔하는지, 즉 출발점 자체가 성공 방정식에 가장 강력한 불쏘시개가 되는 시대. 중소 기획사에서 데뷔한 아이돌 그룹, ‘피프티 피프티’가 올 초 보여준 언더독 신화의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연말 시상식에서 중소돌 출신으론 최초로 처음 대상을 탄 뒤 오열하던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의 과거가 오버랩되며 걸그룹 버전의 ‘BTS 신화’가 재현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불과 데뷔 4개월 차였던 이 그룹은 첫 싱글 타이틀곡 ‘큐피드(Cupid)’를 최단기간 내 빌보드 핫100 차트에 진입시키더니 K팝 걸그룹 중 최장기간 차트인하는 유의미한 역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소속사 대표가 차 팔고, 시계 팔고, 노모 돈까지 모아 자본금을 마련했다는 ‘짠 내’ 스토리까지 전해지자 저도 모르게 관련 유튜브 영상에 ‘좋아요’를 누르고 음원을 다운로드받는 방식으로나마 이들을 응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랬던 그룹이 불투명한 정산 등을 근거로 소속사를 상대로 전속 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이들 뒤에 ‘작전 세력’이 있다는 의혹이 일자 여론은 단숨에 바뀌었습니다. ‘배신돌’이란 오명 속에 특히 한국 사회에선 ‘신의’라는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하는 뜻밖의 역사를 쓰게 된 것입니다.

한편 날로 위상이 높아지는 K팝 신(scene)에서의 이모저모 외에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올해의 ‘히트상품’을 꼽자면 단연 베이글입니다. “한국식 베이글이 정말 맛있다고 들었다”며 발길을 재촉하는 외국 친구 덕에 빵집 ‘오픈런’도 해봤습니다. 베이글 전문점은 소금빵, 약과, 탕후루 등 쟁쟁한 경쟁 디저트들을 압도적 차이로 제치고 최근 국내에서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매년 연말, DBR 편집진이 치열한 토론을 통해 엄선하는 올해의 비즈니스 케이스들을 꼽고 보니 올해의 사례들 속엔 이처럼 제가 경험한 2023년의 일상들이 오롯이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올해는 의식주와 관련된 다양한 소재가 포함된 것이 눈에 띕니다.

유통업에서는 중국 초저가 쇼핑 앱 ‘테무’, 롯데의 소주 브랜드 ‘새로’와 같이 MZ세대 소비자 행동을 면밀히 분석한 끝에 취향 저격에 성공한 사업 모델들이 화제가 됐습니다. 루이뷔통을 제치고 유럽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등극한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 역시 비만 치료라는 전 인류적 과제의 사회적 파급력과 중대성 측면에서 큰 시사점을 줍니다.

‘챗GPT’ 개발사 오픈AI는 DBR 편집진 회의에서도 만장일치로 현재와 미래에 주목해야 할 케이스로 선정됐습니다.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50%를 점유하게 된 한국 업체들의 활약, ‘승차감(성능)’에 더해 ‘하차감(사용자 이미지)’을 잡는 데도 성공한 현대차 제네시스의 럭셔리 마케팅에도 주목해볼 만합니다.

올 한 해 아쉬운 성적표를 보였던 사례들도 있었습니다. 아파트 기둥 철근 누락 등의 초유의 사태로 오명을 입게 된 GS건설 ‘자이’, 미국 역사에서 세 번째로 큰 은행 파산으로 기록된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 업종별로 명암이 갈린 공유 비즈니스 등은 조만간 반전의 역사를 쓸 수 있을지 지켜볼 만한 소재들입니다.

사전 출판사 메리엄웹스터는 온라인 검색량 등을 기반으로 매년 ‘올해의 단어’를 뽑는데 공교롭게도 2023년의 단어는 ‘진짜의’ ‘진품의’라는 의미의 ‘어센틱(authentic)’이었습니다. AI 기술 발전이 급물살을 타면서 딥페이크가 흥하게 되는 등 탈진실(post truth)의 시대를 살면서 ‘진정성의 위기’를 겪게 된 것이 ‘진짜’와 ‘진정성’을 갈구하게 한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올해 선정된 DBR 비즈니스 케이스들도 진정성과 진심의 여부가 소비자들을 사로잡게도, 외면하게도 하는 ‘마법의 가루’ 역할을 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 우리 회사는, 그리고 나는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되돌아면서 ‘진정성의 힘’을 키우는 계기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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