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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스마트팩토리를 가다❷ LG 창원공장

공정 예측해 사고 줄이는 ‘디지털 트윈’
“로봇을 컨트롤하는 전문직” 자부심

허문명 | 380호 (2023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LG전자는 가전 분야 세계 1위 기업답게 첨단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공장을 구축하는 데 일찌감치 나섰다. 대규모 스마트 공장을 조성하면서 물류와 조달, 부품 조립 등을 자동화했고 이를 통해 불량률을 낮추고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다. 실제 공장 가동 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10분 후 상황을 예측하는 ‘디지털 트윈’은 사고를 예방하고 작업 중단 시간을 단축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근로자들의 작업 환경이 개선되면서 근무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이들이 단순 반복 작업에서 벗어나 고도의 전문성을 키워가면서 한층 역량 있는 인력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이다.



편집자주

AI의 발달로 국내 기업들의 생산 현장이 더 똑똑해지고 있습니다. 제조의 전 과정을 ICT로 통합해 효율과 안전을 높이고 불량과 원가를 낮추는 지능형 공장 스마트팩토리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DBR이 국내 대표적인 스마트 팩토리들을 방문해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해 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LG전자가 냉장고를 생산하는 창원 공장은 KTX 창원중앙역에서 차로 20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었다. 공장이 들어서 있는 창원국가산업단지는 현대로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두산에너빌리티 등이 있는 대한민국 방위산업 및 원자력산업의 메카이기도 했다.

LG전자 냉장고 공장은 1958년 부산에서 출발했다. 당시 브랜드는 ‘금성’이었다. 1976년 창원으로 옮겨온 뒤 ‘골드스타(Goldstar)’로 이름이 바뀌면서 냉장고·세탁기·식기세척기 등을 만드는 생활가전 최대 생산기지가 됐다. 사명이 지금의 LG로 바뀐 게 1995년이니 골드스타 브랜드를 기억하는 MZ세대는 별로 없을 것이다. LG전자 생활가전(H&A) 사업본부는 2021년 미국 기업 월풀을 제치고 ‘단일 브랜드’ 매출 기준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대한민국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1등이란 건 많은 사람이 알지만 가전까지 세계 1위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주인공이 LG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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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주목하는 가전 스마트 공장

창원 공장은 요즘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로봇과 빅데이터, AI(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5G통신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공장’이어서다. 이곳은 지난해 3월 국내 가전 업체로는 처음으로 다보스포럼으로 유명한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WEF)이 매년 선정하는 ‘등대 공장(Lighthouse Factory)’이 됐다. 밤하늘에 길을 안내하는 등대처럼 최첨단 기술을 생산 공장에 도입해 제조업의 미래를 비추는 미래 공장이란 뜻이다. 세계경제포럼은 전 세계 공장들을 심사해 매년 두 차례 등대공장을 선발한다. 기자가 공장을 방문했던 9월 14일, 튀르키예(터키) 최대 가전업체 아르첼릭 임원진 10여 명이 방한해 공장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종각 생산기술실장은 “LG 창원공장의 노하우를 익히고 싶다며 글로벌 유수 업체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며 “방문객들이 너무 많아서 별도 안내팀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LG전자는 인건비 상승으로 가전제품 마진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대신 2017년 총 8000억 원을 투자해 창원 공장을 스마트 공장으로 혁신했다. 무엇보다 가전 시장도 소품종 대량 생산에서 다품종 소비자 맞춤 생산 체계로 소비 패턴이 변화하는 상황이어서 고품질의 다양한 제품을 빨리 만드는 시스템이 절실했다. 현재 이 공장에서는 1개 생산라인에서 내수용·수출용으로 서로 다른 58종의 냉장고가 생산되고 있다. 공장은 두 개 빌딩으로 냉장고를 만드는 1공장과 세탁기·에어컨 등을 만드는 2공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1공장은 전체 4층 규모였다. 1, 2층은 부품을 조립하는 공간이고 생산은 3층에서, 4층에선 불량품을 검사하고 있었다.

공장 탐방은 생산 라인이 있는 3층에서 시작됐다. 우선 청결하고 깨끗했다. 반도체 공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청결이듯 스마트 공장도 청결이 생명이다. 로봇들이 바깥세상을 인식하려면 QR코드나 센서가 제대로 작동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먼지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직사각형 모양의 기계 장치들이었다. 마치 로봇청소기처럼 바닥을 쓸고 다니고 있었다. ‘운반 로봇(AGV·Automated Guided Vehicle)’이었다. 이 로봇들은 물류 엘리베이터를 통해 1, 2층에서 올라온 부품 박스들을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로봇 근로자들에게 옮기는 ‘물류 로봇’으로 총 50대가 운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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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을 올려다보니 고공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각종 부품을 담은 물류 박스들이 1층과 3층을 부지런히 이동하고 있었다. 최대 600㎏까지 부품을 실을 수 있다고 한다. 이전에는 사람이 하루에 수천 번 오가며 할 일을 이렇게 로봇이 대신하고 있었다. 운반 로봇들은 자석이 아니라 바닥에 일정한 간격으로 부착된 6000여 개 QR코드를 인식해 돌아다니고 있었다. LG전자는 LG유플러스와 협업해 5G 전용 통신망을 공장 안에 구축했다. 와이파이가 아니라 5G로 움직이기 때문에 통신이 갑자기 끊겨 로봇이 정지하거나 오작동되는 일은 없다. 배터리가 소진되면 로봇 청소기처럼 충전대로 자동 이동한다.

공장에는 엘리베이터로 올라오는 부품을 옮기는 물류 로봇 말고도 생산 라인을 따라 최대 30㎏의 자재들을 올려보내는 고공 컨베이어가 설치돼 필요한 작업 구간으로 부품들이 자동 배송되고 있었다. PCB 기판, 도어 힌지, 정수기 필터 등 소형 부품들이 담긴 박스들이 수시로 아래에서 올라와 컨베이어에 얹으면 부품이 필요한 작업 구간으로 자동 배송되는 시스템이었다. 또 생산 라인에 설치된 지능형 무인 창고에서 실시간으로 재고를 파악해 부족한 부품들이 바로바로 공급되고 있었다. 이런 부품 조달 자동화로 자재 공급 시간은 기존 대비 25%, 물류 면적은 30% 줄었다.

공장 내부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어딘가에서 경고음이 들리면서 앞에 있던 운반 로봇 한 대가 멈췄다. 누군가 QR코드를 밟은 것이라고 한다. 잠시 후 경고음이 사라졌고 로봇도 다시 움직였다. 서서히 작업장 내부로 들어서니 마치 영화 ‘트랜스포머’ 촬영장 같았다. 근로자들은 로봇들이 일을 잘하는지 화면을 모니터링하거나 복잡한 배선을 설치하는 라인에서만 보였다.

공장 안에서 일하는 키 2m 정도 되는 로봇 팔 136대는 냉장고 문 부착이나 고주파 용접, 부품 조립, 포장 등 ‘인간 근로자’가 힘들어하는 공정에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었다. 이 중에서 제일 신기했던 건 냉장고 문을 붙이는 로봇이었다. 냉장고 문짝 하나 무게는 평균 20㎏ 정도다. 냉장고 한 대마다 총 4개가 들어가니 총 80㎏을 들어올려야 한다. 예전에는 20㎏짜리 문짝을 번쩍 들어 올려 작은 구멍에 끼워 맞추는 일을 사람이 했다. 힘과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공정인 터라 기피 부서였고 산재도 많아 퇴사율이 제일 높았다고 한다. 또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작은 실수에도 스크래치가 생겼고 시간대별로 효율이 달라 인간 체력이 떨어지는 오후가 되면 불량률도 높았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사람이 없다. 본체가 라인에 도착하면 로봇 팔이 1, 2초 만에 문을 붙인다. 더 대단했던 것은 종류와 모양이 조금씩 다른 58종 냉장고를 한 라인에서 만든다는 것이었다. 로봇들은 실제로 크기가 제각각인 문짝을 척척 빠른 속도로 붙이고 있었다. 로봇들은 A4 용지 세 장 두께인 0.25㎜ 정도의 미세한 차이까지 반영해 문짝을 붙이고 있었는데 이런 식의 냉장고 문짝 붙이기 기술은 세계 최초라고 한다. 핵심은 팔 위에 붙어 있는 3D 카메라가 냉장고 본체를 촬영해 결합할 본체의 위치 정보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이다. 도어를 본체에 붙이는 볼트 작업도 로봇 팔이 하고 있었다. 여기에도 3D 비전 인식 기술을 갖춘 로봇이 투입됐다. LG전자는 로봇 팔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로봇의 눈 역할을 하는 3D 비전 알고리즘을 자체 개발해 로봇이 정확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다음으로 신기했던 것은 컴프레서나 냉각기 등 화염이 튀는 용접 공정이었다. 용접은 산화가스가 나와 위험도가 높았지만 지금은 로봇들이 고주파로 13초 만에 해내고 있다. 용접 라인 로봇 팔들은 고주파 용접 기술을 딥러닝하고 카메라로 위치를 정밀하게 인식해 균일한 온도와 시간을 맞춰하고 있었다. ‘머신러닝’을 통해 얻은 최적의 각도와 온도로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일하고 있는 것이다. 용접 후 냉매 누설 여부까지 알아서 확인하고 있었다.


10분 전 사고 예측이 가능한 지능화 시스템

3층 생산 라인 탐방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오니 로비 오른쪽 벽면에 대형 모니터들이 보였다. 생산, 부품 이동과 재고 상황 등 실제 공장의 가동 상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트윈’으로 실제 공장과 똑같은 쌍둥이 공장을 가상 공간에 재현한 것이다. 생산 공정마다 설치돼 있는 바코드와 센서, 운반 로봇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지금 이 시간 실제 공정이 어떻게, 어떤 속도로 돌아가는지 환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느 공정에서 어떤 부품이 부족해진다는 걸 예측하고 미리 부품도 옮겨놓는 식이다. 실시간으로 생산 과정을 시뮬레이션하기 때문에 한 개 라인에서 여러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공정에 맞춰 부품과 자재를 적시에 공급한다. 자동화를 넘어선 지능화의 현장이었다. 이 지능형 공정 시스템 역시 AI, 빅데이터와 시뮬레이션 기술을 결합해 LG전자가 자체 개발했다고 한다.

디지털 트윈의 가장 큰 장점은 데이터 딥러닝으로 제품의 불량 가능성이나 생산 라인의 설비 고장 등을 사전에 감지해 예측을 통한 사고 예방이 가능하다는 것. 예를 들어 사출 라인의 경우 사출 온도가 900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920도, 940도로 올라가고 있다면 이런 상황을 미리 알려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식이다.

디지털 트윈 기술은 물류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30초마다 공장 안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10분 뒤 생산 라인 상황을 예측한다. 예를 들어 10분 뒤에 라인 일부에서 자재가 부족해 정체될 예정이라면 미리 해결하도록 안내한다. 오세기 부사장은 “30초마다 공장 안에서 보내오는 데이터를 모두 수집 분석해 라인에서 향후 10분 뒤에 벌어질 일들을 미리 알려주기 때문에 공장 내 모든 상황을 10분 일찍 예측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입체 물류 자동화 시스템은 업무와 공간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했다. 자재 공급 시간은 기존 대비 25% 단축됐고 물류 면적은 30% 정도 감소했다. 예기치 못한 설비 고장으로 작업이 중단되는 시간도 96% 감소했다. 공장 곳곳에 설치된 센서는 생산 과정 전반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하루에 수집하는 데이터양은 약 500라고 한다. 이전보다 1만 배가량 많은 양이다.

로봇 근로자들과 디지털 트윈이 도입된 후 공정은 놀랄 만큼 개선(47%)됐다. 이전에는 사람이 직접 제품 이상 여부를 확인하고 불량이 발생하면 어떤 설비에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고 어떻게 수리해야 하는지 동분서주하면서 많은 시간을 썼지만 스마트 공장으로 바뀐 이후에는 불량 원인 분석 시간이 기존 대비 약 50% 단축됐고 불량률도 30% 정도 낮아졌다. 스마트화 이전엔 한 달에 10시간 정도 라인이 멈췄다면 지금은 24분가량으로 줄었다. 그 결과 시간당 제품 생산 대수는 20% 가까이 증가했다.


단순 반복 생산직에서 로봇을 컨트롤하는 전문직으로

로봇이 위험하고 까다로운 작업을 도맡으면서 작업자들이 단순 반복 작업을 하는 기능공이 아니라 생산 라인이나 로봇 작동 상황 등을 모니터링하고 컨트롤하는 데 집중하는 전문 생산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했다.

공장 3층 ‘로봇교육센터’가 그 산증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6, 7명의 직원이 교육을 받고 있었다. 교육생들은 강사로부터 열심히 로봇에 내리는 명령어 교육을 받고 있었다. 교육생들 각각 1인당 로봇 모듈이 놓여 있었고 교육생들은 노트북으로 친 명령어대로 로봇이 잘 움직이고 있는지 옆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름하여 ‘로봇 프로그래머블 로직 컨트롤(PLC)’ 교육이다. 로봇을 움직일 신경망 조직에 해당하는 프로그램들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었다. 이전에는 공장 내 기계장치를 관리하고 고장이 나면 관리하는 엔지니어 조직이 따로 있었는데 로봇이 많은 공정에 투입된 현재는 현장 생산직 근로자 대부분이 프로그래밍 일을 배우고 있었다. 교육은 1인당 1개 과정에 3, 4일씩 연간 28회 정도를 받는 일정이었다. ‘로봇작동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명령 프로그램 입력 초급 중급 상급 과정’ ‘PLC 보수교육 초급 중급 고급 과정’ 등이 이뤄진다. 얼마 전까지 평택에서 띄엄띄엄 교육을 했는데 재작년부터는 아예 공장 내에 별도 교육 공간을 만들었다. 스마트화에 따른 인력 감축은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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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책임은 “생산 물량이 늘어 직원들을 더 뽑고 협력사 주문도 늘어서 자연히 협력사는 라인도 더 깔고 직원을 더 뽑는 선순환 구조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전체 300개 공정에서 일하던 인원이 기존에는 270명대였는데 지금은 230명대 수준이다. 여기에 설비 운용이라는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다. 생산직 근로자들이 단순 작업이나 무거운 물건 나르는 일을 하다가 전문 교육을 받으면서 고도의 전문직으로 변하고 있다. 생산량도 연간 45만 대에서 평균 60만 대, 최대 63만 대까지 늘었다. 류재철 사업본부장은 “LG스마트파크는 세계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는 고객 경험 혁신의 전초기지”라며 “첨단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가전 제조업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공장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최종 완공 연도가 2025년이다. 공장이 완공되면 현재 최대 200만 대 수준인 냉장고 생산 능력이 300만 대 이상으로 늘어난다. LG전자는 스마트 공정 기술을 해외 생산 법인에도 확대할 계획이다. 스마트파크가 최종 완공되는 시점인 2025년에는 고도화된 냉장고 생산라인 1개를 추가하고 제조 혁신 노하우가 녹아든 오븐, 식기세척기 라인도 확대 구축해 생산 효율과 품질을 높일 계획이다.

DBR mini box: Interview: 제정근 작업반장

단순 반복 생산직에서 로봇을 컨트롤하는 전문직으로

스마트공장이 들어서면서 무엇보다 획기적으로 바뀐 것은 인간 근로자들의 근무 환경이다. 로봇이 어렵고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동안 인간 근로자들은 생산 라인이나 로봇 작동 상황 등을 모니터링하고 컨트롤해 품질과 제품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과연 사람 작업자들의 근로 환경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공장에서 만난 근로자들은 한결같이 AI 로봇 근로자들의 도움으로 생산 효율은 높아지고 작업 환경이 안전해졌다며 만족도가 높았다. 현장에서 만난 올해로 21년 차, 제정근 작업반장은 양문에 꽃그림이 그려진 냉장고부터 만들었던 베테랑 근로자다. 도어 부착부터 선반 조립 마무리 공정까지 두루 거쳤다. 수리도 하고, 설비라인 오퍼레이션도 하고, 미국, 중국, 폴란드, 인도, 이란, 두바이까지 다니며 기술 지도도 했다고 한다. 그는 창원공장이 아날로그에서 스마트 공장으로 바뀔 때 안전관리감독자로 태스크포스팀에 소속돼 일해 공장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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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문을 붙이는 일을 했을 때, 그는 한 짝에 20∼25㎏이나 되는 문을 하루 평균 1000여 개 넘게 붙였다. 매일 땀을 너무 많이 흘려 검은 티셔츠를 입고 출근한 날은 퇴근 무렵이 되면 거의 흰색으로 변해 있을 정도였다. 퇴근 무렵에는 소금 한 짐을 지고 가는 것처럼 몸이 축 늘어졌다고 한다. 그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


하루 근무시간은 얼마나 됐나.

오전 8시 출근해서 두 시간 일하고 10분 쉬는 스케줄로 저녁 6시까지, 잔업하는 날은 저녁 8시 반까지 일했다. 주야간으로 교대근무도 많이 했다.


문짝 붙이는 것이 제일 힘든 일 같은데 초과수당을 받나.

부품을 박는 단순 작업이나, 문짝 붙이는 일이나 임금은 다 같다. 하지만 힘든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하는 마음으로 했다. 하루에 대략 1000∼2000개, 1700개까지 붙인 적도 있었다. 도어 부착 공정은 대부분의 근로자가 기피했다. 또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심리적 압박감이 대단했다.


공장이 바뀌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나.

아날로그 라인을 스마트 공장 라인으로 레이아웃을 짜고 설비를 전부 바꾸는 일을 4, 5년간 했다. 처음에는 6명이 모여 완제품을 만들었다.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테스트하면서 최적화하는 작업을 했다. 정말 힘든 작업이었다. 2019년부터 시작했는데 기획에 2년, 안정화되는 데 3년이 걸렸다. 초창기 6명이 230명으로 확대되는 과정이었다. 하루 생산 두 대, 세 대에서 260대가 됐다. 2021년 3월에야 라인이 안정화됐다고 보면 된다.


힘든 일을 로봇이 하니 어떤가.

사원들의 만족도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한마디로 로봇 동료들하고 일하는 게 즐겁다. 근무 환경도 구축 낡은 아파트에서 신축으로 이사한 느낌이랄까. 실내 온도를 25도로 유지해야 하고 먼지가 없는 청정 공장이다 보니 너무 쾌적해졌다. 얼마 전 직원들이 부모님들을 모시고 공장을 견학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부모님들이 정말 좋아하셨다.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고 먼지가 없는 공장에서 일하다 보니 올여름 폭염도 잊었다. 구 공장(식기세척기, 건조기) 작업자 분들이 와서 보곤,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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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디지털 공장으로 바꾼다고 하면 인력 축소 등이 우려돼 반대하는 여론이 있을 것도 같은데.

정반대다. 경쟁사들은 인건비가 싼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데 LG는 라인을 스마트 지능화해서 그대로 운영한다고 하니 고용 안정을 느끼며 다들 열심히 일했다. 스마트 공장 건설은 생산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고 여기서 그대로 생산하는 것이니 근로자들에게도 심리적인 안정을 줬다.


스마트화 과정에서 제일 힘들었던 공정은?

역시 도어 부착이었다. 각도가 너무 다양해서 수차례 시도를 했지만 실패가 이어져 시스템적으로 안 되겠다고 포기할 정도였다.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가이드라인이 없었다. 현장과 연구진이 피땀 흘린 협업의 결과가 바로 이 공장이다. 지금은 에러가 나면 3분 안에 해결된다. 무엇보다 디지털화의 1등 공신은 아날로그 노하우를 가진 오래 숙련된 선배 근로자들이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노하우가 데이터로 바뀐 것이다. 그분들의 아이디어와 조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 라인에서 모델이 다른 58종이 생산된다는 것이 생산성 향상에 결정적인 요소로 보인다.

맞다. 그래서 해당 모델에 해당하는 부품들을 로봇들이 알아서 부품 안에 넣고, 이를 로봇근로자들에게 갖다 주는 기술이 중요했다. 냉장고 모델 하나에 들어가는 부품들을 모두 케이스 하나에 넣고 QR코드를 입혀 작업자에게 가져다주는 매칭 공정이다. 기존에는 모든 부품을 라인에 좍 깔아놓고 해야 해서 공간도 많이 차지했고 사람이 일일이 부품을 찾아다녀야 해 굉장히 힘들었다. 용접을 로봇이 해주는 것도 대단한 거다. 총 11개 부위에 용접이 필요한데 이걸 다 사람이 했다. 불꽃 때문에 위험하기도 했지만 유해가스가 나와서 담당 근로자들은 따로 정기 건강검진을 받았을 정도였다.


로봇 공장 운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뭘까.

로봇과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로봇을 작동시키고, 고장을 막고, 고장이 생길 경우 대처하는 능력이 우선 필요하지만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로봇 때문에 사람이 다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봇은 프로그램이 입력되는 대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작동하는 동안 사람이 들어가면 안 된다. 로봇이 서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했다가 움직여 버리면 큰 사고가 일어난다. 그래서 로봇 주변에 안전막을 치는 것은 물론 안전 센서를 이중 삼중으로 설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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