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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눈의 진화와 시각 혁명

김현진 | 376호 (2023년 09월 Issue 1)
‘빅테크의 다음 혁신은 눈(eye).’

애플이 2023년 6월 개발자 대회에서 안경형 XR(확장현실, eXtended Reality) 헤드셋 ‘비전프로’를 선보인 이후 XR 기술에 대한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애플의 참전으로 다시 한번 주목받긴 했지만 사실 이미 대표적인 빅테크들은 우리의 눈을 미래로 돌리게 하는 기술에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메타의 ‘메타 퀘스트3’,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 등은 우리가 보는 물리적 현실에 디지털로 증강된 현실을 합성해서 보여주는 XR 기술을 근간으로 합니다.

와비파커테크놀로지에서 가상으로 안경을 착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버추얼 트라이 온(virtual try-on)’을 개발한 주역, 데이비드 로즈는 신간 『슈퍼 사이트(배우고, 생각하고, 연결하는 법을 바꿔놓을 시각 혁명)』에서 이러한 흐름을 1990년대 인터넷 혁명, 2000년대 모바일 혁명을 이을 ‘시각 혁명’으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향후 10년간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할 XR 기술로 인해 우리가 사물에 대해 ‘본다’고 말하는 단어의 정의까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현실의 감각을 시공간을 넘어 확장시키는 XR 안경의 대중화에 대한 기대감은 사실 코로나19 팬데믹이 쏘아 올렸습니다. 비대면 시대가 빚은 메타버스의 영향으로 XR과 관련된 기술과 콘텐츠들이 인기를 끈 겁니다. 벌써 “엔데믹과 동시에 한물갔다”고 진단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정도로 메타버스의 파급력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XR의 가치는 이제야 ‘본색’을 나타낼 것이라고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실체가 불분명하고 관념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던 메타버스 유행에서 벗어나면서 오히려 실질적인 차원의 기술 개발이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2013년, 세계 최초의 AR 글라스를 선보였지만 대중화의 벽을 넘지 못한 ‘구글 글라스’의 단점도 기술 진보를 통해 개선돼 왔습니다. 프라이버시 이슈 등 초기 모델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기술로 극복된다면 인간의 삶을 바꾸는 ‘넥스트 스마트폰’이 될 것임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안경과 같은 하드웨어 중심이 아닌 콘텐츠나 또 다른 기술 영역에서 혁신의 촉매제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일부 기술 전문가는 “세상이 AR을 기다리는 동안 AI 혁명이 발생했다”며 챗GPT의 등장과 더불어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된 AI 물결을 지적합니다.

이를 반영해 새로운 AR 작동 방식을 제시하는 기업도 나왔습니다. 애플에서 아이폰 초기 모델을 만든 주역 중 하나인 임란 차우드리와 역시 애플 출신인 베서니 본조르노 부부가 설립한 스타트업 ‘휴메인(Humane)’입니다. 이 회사가 선보인 ‘Ai Pin’은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데 AI 및 프로젝션 기술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에 e메일 내용을 요약해 음성으로 전달해줄 수도 있고 글라스와 같은 하드웨어 없이 손바닥이나 테이블 표면 등에 영상을 띄울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형식의 기술 발전이 XR 안경의 한계를 기회의 변곡점으로 전환시키는 비결이 될 것입니다.

XR 혁신의 목표는 인간에게 ‘시각 혁명’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 ‘눈’의 진화는 생물학, 인류사적으로 많은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번 호 DBR에 실린 ‘생명의 역사’ 아티클에서도 지구에서 생명의 역사가 시작된 건 36억 년 전이지만 5억4000만 년 전쯤 ‘눈 달린 동물’이 출연하면서 생물의 생존 가능성이 급상승했다고 말합니다. ‘어쩌다 입에 들어오는 먹이를 먹는 것’과 ‘내 눈으로 직접 먹이를 찾아 나서는 것’은 천지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화석으로 확인 가능한, 눈 달린 최초의 동물 삼엽충이 ‘눈’이라는 경쟁력 덕에 무려 3억 년을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고작 30만 년을 살아온 호모사피엔스 역시 눈의 잠재력에 더욱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 능력을 확장해준 눈의 경험은 또 다른 ‘퀀텀 점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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