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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으로 다시 읽는 역사

再造之恩?… 되레, 조선이 명나라를 구했다

최중경 | 366호 (2023년 0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중국의 한국에 대한 우월 의식의 근간에는 중국이 임진왜란에 개입한 역사가 있다. 선조 또한 명나라가 군대를 보내 조선을 구한 은혜를 강조하며 ‘재조지은’을 내세웠다. 하지만 당시 명나라의 지원군이 갖는 군사적 의미를 논리적으로 따져봤을 때 오히려 임진왜란은 명나라가 조선을 구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조선이 뛰어난 전술과 화약 무기를 기반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나라 정벌 야욕에서 명나라를 구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중국과 한국의 전통적 관계에 대해 공식 석상에서 두 가지 관점을 제시했다. 2014년 7월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서 일본의 침략을 함께 물리친 역사를 강조하면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과 명나라 수군 부총병 등자룡(鄧子龍)이 함께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사실을 부각했다. 이는 한국과 일본 간의 간극을 넓히려는 전략적 발언임과 동시에 이순신과 등자룡을 의도적으로 동렬에 놓고 조명연합수군의 지휘관이 진린 제독임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추측한다. 그리고 2017년 4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의 공식 만찬 테이블에서 ‘역사적으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10분간에 걸쳐 역설했다. 이는 만찬이 끝난 후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의 발언을 기자들에게 공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중국의 조공국이었던 조선의 위치를 재확인함으로써 한중 관계를 동격의 국가 간 관계가 아닌 중국 우월주의 세계관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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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중국이 조선에 대해 갖는 우월 의식의 근간에는 중국이 임진왜란에 개입한 역사를 기반으로 한국과 한국인에게 느끼는 채권자 의식이 존재한다. 당시 선조 임금은 명나라가 천자의 군대를 보내 조선을 구한 은혜를 강조하며 나라를 다시 세워준 은혜, 소위 재조지은(再造之恩)을 내세웠다. 그런데 현대 전술 전략 측면에서 당시 명나라의 지원군이 갖는 군사적 의미, 즉 명나라 군대가 어떤 군사적 기여를 했는지를 논리적으로 따져볼 여지가 많다. 국제 관계에 있어 일방적 시혜는 있을 수 없으며 명나라 군대가 개입한 배경에는 명나라가 얻게 될 이익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국에 필요 이상으로 관대하게 대접하고 허물을 접어주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한 예로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과정에서 한국 수행 기자단의 일부가 중국 공안원들에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그때 우리 정부는 제대로 된 항의도 하지 못했고 국민들이나 언론 역시 중국을 크게 질타하지 않고 두루뭉술 넘어갔다. 만약 일본에서 유사한 일이 터졌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마도 광화문 일대가 함성으로 가득 찼을 것이고 일본대사관 건물이 온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에 대한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의 기저에도 임진왜란 때 중국이 우리를 도와줬으니 그 정도는 덮어줄 수 있다는 심리가 존재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작전 목표, 일본의 군사력, 조선 군대와 명나라 군대의 군사 역량과 역할을 자세하게 분석하면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즉, 명나라가 조선을 구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조선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나라 정벌 야욕에서 명나라를 구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번 글은 임진왜란을 조선이 명나라를 구했다고 보는 관점에서 새롭게 재해석하려는 시도에서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한다.

1.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과 일본의 군사력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쟁 목표는 한반도 정벌이 아니라 명이 지배하는 중국 대륙 정벌이었다. 조선에 보낸 국서에서도 ‘정명향도 가도입명(征明嚮導 假道入明)’이라고 명시해 조선으로의 진군 목적이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함임을 분명히 했다. 1 명나라를 공격하는 데 조선이 길을 내어주고 또 앞장서라고 요구한 것이다. 조선을 거의 신하국 수준으로 내려다보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도 자신의 중국 대륙 정벌 계획을 사전에 통보했다. 2 그렇다면 그 당시 일본의 군사력으로 중국 대륙 평정이 가능했을까?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 근거는 일본 육군은 전국시대를 거치며 총포를 이용하는 전술의 완성도를 높였고, 세계 최고 수준의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실전 경험이 풍부했다. 일부 군사학자는 그 당시 일본 육군이 무장과 전투 경험에서 볼 때 세계 최강의 육군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훗날 만주족이 10만 명 수준의 철갑 기병을 이끌고 중국 대륙을 평정한 것을 보면 소총으로 무장한 15만 명 수준의 일본 육군이 선전하리라는 관측에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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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중경 | 한미협회장

    필자는 33년간 고위 관료와 외교관을 지냈고 동국대 석좌교수, 고려대 석좌교수, 미국 헤리티지재단 방문연구원, 한국공인회계사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미 협력을 증진하는 민간 단체인 한미협회 회장과 자선단체 평가 업무를 수행하는 NGO인 한국가이드스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미국 하와이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저서로는 『청개구리 성공신화』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 『역사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가 있다.
    choijk19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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