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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으로 다시 읽는 역사

눈귀 막은 해금 정책, 우리 주위엔 없는지

최중경 | 340호 (2022년 0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조선의 해금 정책은 조선이 축적한 해양 역량을 사장시키고, 산업 발전을 막음으로써 중국에 더욱 예속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 동아시아 무역을 일본이 주관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본 국력이 강해지는 데 일조했다. 해금 정책의 사례는 리더의 사명감뿐 아니라 역량 자산과 비교 우위를 고려한 발전 전략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조선은 건국 이후 문을 닫을 때까지 민간인의 무역 활동을 금지하는 해금 정책을 실시했다. 그런데 우리 역사교실에서 조선이 해금 정책을 500년 동안 고수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한 파행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해금 정책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조선의 해금 정책은 해양을 중요한 활동 무대로 해야 하는 반도 국가 조선의 경제를 절름발이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조선을 바깥 세계로부터 단절시켰다. 또 경제, 외교 분야에서 중국에의 종속을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중국과의 조공무역이 조선의 거의 유일한 대외교역 창구가 되면서 주요 상품과 자원을 중국에 의존하게 됐다. 이에 따라 조선은 형식적인 조공외교를 통한 독립 국가라기보다는 문자 그대로 중국의 제후국으로 추락했다.

또 해금 정책은 조선의 눈과 귀를 닫아 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흐름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다. 조선은 개국 출발선에서는 금속활자, 측우기, 로켓의 원형인 신기전 등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수준급 과학기술 국가였지만 500년을 거쳐 경쟁력이 급격히 하락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해금 정책으로 눈과 귀를 닫은 채 바깥세상이 돌아가는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지낸 무사안일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반면 초기 조선에 비해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 후진국이었던 일본은 ‘조선이 버린 바다’를 통해 유럽과 활발하게 교역하면서 산업혁명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유럽과 미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소화해내며 번영해 세계적인 강국 반열에 올랐다.

최근 우리는 세계적인 해운사인 한진해운과 STX해운이 파산하는 것을 목격했다. 네트워크 비즈니스인 해운업은 반도 국가로서 무역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대한민국에 매우 중요한 산업이고 한번 무너지면 복구가 어려운 특성을 지녔지만 당시 정권은 큰 고민 없이 해운 산업 정리에 나섰다.1 우리 역사교실은 조선의 해금 정책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공과에 관해 제대로 토론하고 비판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반도 국가에 해양이 갖는 의미를 피부에 와 닿게 교육받은 적이 없었다. 해운 산업을 쉽게 정리한 이유 역시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론 조선 해금 정책의 공과를 제대로 교육하지 않은 부실한 역사교육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조선을 건국한 세력이 해금 정책을 채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반도 국가임에도 해양의 중요성을 무시했던 역사를 통해 현재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교훈을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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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중경 | 한미협회장

    필자는 33년간 고위 관료와 외교관을 지냈고 동국대 석좌교수, 고려대 석좌교수, 미국 헤리티지재단 방문연구원, 한국공인회계사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미 협력을 증진하는 민간 단체인 한미협회 회장과 자선단체 평가 업무를 수행하는 NGO인 한국가이드스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미국 하와이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저서로는 『청개구리 성공신화』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 『역사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가 있다.
    choijk19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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