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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과 콘텐츠

살림?아름다움?어울림한국이 문화전쟁에서 승리할 무기들

이기상 | 150호 (2014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혁신,인문학

 

오늘날 콘텐츠는 단순히미디어에 담긴 정보나 내용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콘텐츠화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예컨대이야기는 미디어에 담긴 어느 특정 이야기만 일컫지 않는다. 삶의 구석구석 보이지 않게 묻어 있는 온갖 이야기가 다이야기. 이 때문에 콘텐츠를 만들어낼 때, 즉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진정한 창의성을 발휘할 때 우리가 가진 독특한 문화와 정신을 배제하고는 전진할 수 없다. 융합과 조화, 어울림, 통합 등과 같은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적 흐름이다. 특히살림아름다움’ ‘어울림에 주목하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지 않고 살아 있도록 보살피는 생명학적 소명, 개개인의 독특함을 최대한 살리고 처신하는 행동, 개별적으로 확보된 아름다움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모양새,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문화적 근원이다.

 

 

콘텐츠 시대의 창의성

1. 콘텐츠를 둘러싼 강대국의 문화 전쟁

우리가 사는 지구촌 시대, 오늘날 핵심은문화. 온갖 문화권의 사람들이 한곳에 어울려 사는 글로벌 시대에 문화다양성은 인류의 존속을 위한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정치, 경제, 사회 등과 비교해 항상 밀리던 문화가 이제는 최우선순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과거 정치, 경제, 사회에서 각각 중요하게 여겨지던 가치는 문화의 세기가 필요로 하는 가치와 다를 수밖에 없다. 기존 규칙이 아닌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것, 지금이 바로 그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며 그것이 문화의 세기에서 요구되는 핵심이다.

 

문화 강국 하면 연상되는 나라 중 1순위는 논란의 여지없이 영국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전 세계에 식민지를 만들어 스스로의 문화를 전 세계에 퍼뜨렸던 대표적인 문화제국이다. 문화인류학도 영국 식민지 통치의 일환으로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문화인류학은 식민지의 풍토, 생태환경, 민속풍습 등을 연구·조사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생긴 학문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식민제국주의, 문화제국주의라는 이름이 명예스럽지 않다. 영국은 콘텐츠 시대를 맞아 문화로 전 세계를 선도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지향점을 다르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Creative Contents’, 창의적 콘텐츠를 표방한다. 문화대국이면서도 자신들의 콘텐츠에 문화라는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자신들이 만든 콘텐츠에 문화적 콘텐츠가 아닌 것이 없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를 붙이는데서 발생할 수 있는, 식민지 경험이 있는 민족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하기도 했을 것이다.

 

미국은 반대다. 미국은 나름의 독자적 문화를 형성하기에는 역사가 일천하다. 고작 근대만 존재할 뿐이다. 미국은 콘텐츠 창조에 엔터테인먼트적 측면을 강조하며 거기에 승부를 건다. 재미와 오락에 초점을 맞춰 그 분야를 적극 공략한다. ‘디즈니랜드를 비롯한 수많은 거대 테마 오락시설이 발달하고 그것을 수출해 막대한 수입을 창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엔터테인먼트 하면 쇼와 영화를 빼놓을 수 없다. 막대한 자본을 들여 최고의 재미와 즐거움을 보장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작해 전 세계 영화관에 유통시킨다. 미국산 콘텐츠는 문화 콘텐츠일 수 없다. 그래서 미국은엔터테인먼트 콘텐츠(Entertainment Contents)’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캐나다도 비슷하다. 다만 엔터테인먼트에서 미국을 당할 수 없으니 자신들만의 독특한 전략을 구사한다. 예술에 초점을 둔 콘텐츠 개발이다. 캐나다에서아트 콘텐츠(Art Contents)’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이유다.

 

 

 

2. 콘텐츠 새롭게 이름 붙이기

21세기 들어 정보화 시대는 모바일로 무장한 새로운 미디어 기구들을 앞세워 콘텐츠 시대를 열고 있다. 굴뚝 없는 산업이라는 콘텐츠 시장은 선진국의 경제 체계를 재편성하도록 한다.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가 일으킨 신드롬, 영화반지의 제왕이 불러온 프로도 경제효과1 등 새로운 명칭들에서 콘텐츠가 산출해내는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콘텐츠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굴지의 글로벌 대기업이 자동차를 팔아 남기는 수익보다 훨씬 많다니 놀라운 일이다. 경제대국들은 앞 다퉈 콘텐츠 개발과 제작, 생산과 유통, 홍보와 활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필자는 철학을 전공하고 문화콘텐츠학을 정립하려고 시도하는 학자로서창의성과 콘텐츠라는 개념을 정리하고 그 상관관계를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콘텐츠라는 개념을 우리말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를 두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래서 얻은 결과물이거리. 정확하게는 ‘∼할 거리. 대표적인 것이먹을거리또는먹거리라는 표현이다. 같은 맥락에서 콘텐츠는인간이 자연과 사회 속에서 사람이나 사물과 교류하고 소통하며 나누는 온갖 거리. 즉 삶 속의 모든거리가 전부 콘텐츠가 된다.

 

오늘날 콘텐츠는미디어에 담긴 정보나 내용물이라는 의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콘텐츠화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확장돼가는 추세다. 다시 말해 알 거리, 볼거리, 들을 거리, 느낄 거리 등 온갖 즐길 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가 모두 포함된다. 예를 들어이야기는 구체적인 미디어에 담긴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삶의 구석구석 보이지 않게 묻어 있는 온갖 이야기가 다 이야기다. 쓰인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말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도 있고 삶의 흔적으로 간직돼 온, 이야기될 거리로 대기 중인 이야기도 있다.

 

콘텐츠는 그 의미상 기술 기반의 미디어에 담긴 유형(有形)의 내용물을 지칭한다. 오늘날에는 유형의 콘텐츠만 콘텐츠가 아니라 무형의 콘텐츠도 콘텐츠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가면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물건과 제품, 사건과 사태들로 확장될 수 있다. 그 물건이 어떻게, 무슨 용도로 만들어졌는지가 바로 그 물건의 콘텐츠다. QR코드를 인식하면 해당 상품의 정보(콘텐츠)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콘텐츠며, 물건에 담긴 생산과 유통, 활용과 수리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콘텐츠다. 이는 더 나아가 예술 작품이나 인물들까지 외연을 넓힐 수 있다. 자연 사물들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소나무, 감나무, , 고양이, 소 등에 물음을 던질 수 있고 다양한 관점에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공학에서 이야기하는 온톨로지(ontology)2  또는 시맨틱(semantic)3 과 연결될 수 있다. 인간의 소통 대상이 되는 순간, 모든 사물과 사건, 사태는 콘텐츠의 지평 안으로 들어선다.

 

따라서 콘텐츠는 본질상 문화콘텐츠일 수밖에 없다. 미디어에 담긴 내용물로서의 콘텐츠는 인간의 문화적 욕구와 행위의 산물이다. 무형의 콘텐츠 역시 인간 삶의 숨결과 흔적이 짙게 밴 문화적 욕구와 욕망의 표현이다. 콘텐츠는인간이 자연 속에 다른 사람과 더불어 기호와 상징을 사용해 인간다운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 유통하는 온갖 종류의 거리다’. 콘텐츠에는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 모습이 깊게 각인돼 있다.

 

새로운 것의 발견과 이름 붙임

이제는 창조(), 창의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교육학용어사전(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1995)>에서는창의성(創意性, creativity)’을 이렇게 정의한다. “새로운 관계를 지각하거나, 비범한 아이디어를 산출하거나 또는 전통적 사고 유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유형으로 사고(思考)하는 능력.” <매스컴대사전(한국언론연구원, 1993)>에서는 ‘creativity’창조성(創造性)’이라는 표제어 아래 이렇게 정의한다. “창조란 기존 소재를 창조자가 새롭게 다뤄낸 것을 말하며 창조성은 과학이나 예술의 기본적 요소다.” <사회학사전(사회문화연구소, 2000)>에서는창조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독창성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지능의 측면을 말한다. 창조적 능력은 해결을 향해 여러 가지 방향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다면적 사고를 말한다.”

 

종합 정리해 보면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만들어내는 능력이나 그 산물이 결국 창조성이나 창의성의 핵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찾아낸다는 점이다. 이럴 때 우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인가. 바로 이름을 붙이는 일이다. 이름을 붙이고 등록해서 그 이름에 대한 저작권과 소유권을 주장한다.

 

1. 이름을 둘러싼 싸움

오늘날 미국에서 이름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보이지 않는 외교전이 펼쳐지고 있다. 지금까지일본해(Sea of Japan)’라고 표기됐던 미국 교과서에 동해를 병기해일본해/동해(Sea of Japan/East Sea)’로 바꾸자는 법안이 미국 버지니아 주 하원을 통과했다. 이 기세를 몰아 뉴욕 주에서도 같은 일을 벌이자고 뉴욕 동포사회가 똘똘 뭉쳐 힘을 모으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어느 희곡(‘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이름이란 뭐지? 장미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향기는 그대로인데…” ‘동해로 불리든, ‘일본해로 불리든 일렁이는 파도와 거기에 있는 온갖 물고기, 그곳에 자리 잡은 많은 섬들은 달라질 것이 없는데과연 그럴까? 여기에 소위 이름과 대상(사물, 지표)의 상관관계에 대한 철학적 논쟁이 깔려 있다. 이름은 단순한호칭이 아니다. 거기에는 부르는 사람과 호명된 사물 사이의 운명적인 인연이 얽혀 있다.

 

예를 들어 나라 이름은 그 나라의 민족, 역사, 문화 전체를 좌우한다.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대표적이다.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남부 유럽 발칸반도 중부에 있는 나라다. ()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6개 공화국 중 하나였으나 1989년 동유럽을 휩쓴 공산정권 붕괴의 소용돌이를 틈타 1991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했다. 이 나라의 정식 명칭은 마케도니아 공화국(Republic of Macedonia)인데 그리스인들이 이 명칭 사용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마케도니아하면 알렉산더 대왕과 연관된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를 자신의 지배 아래 두고 통치했으며 그리스 문화를 전 세계에 퍼뜨린 인물이다. 그런데 현재의 마케도니아인은 고대 그리스계가 아닌 6∼7세기 이주한 남슬라브인 계통이다. 그리스는 마케도니아 왕국을 그리스 문화를 떼고 생각할 수 없다며 이름 사용에 반발했다. 나라 이름을 둘러싼 싸움은 장기간 지속되다가마케도니아 구 유고슬라비아 공화국(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 약칭 FYROM)’이라는 긴 이름으로 부르기로 외교적으로 합의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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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상 | -(현)한국외국어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현)한국외대 철학과 명예교수
    -(현)우리사상연구소 소장
    -(현)국가기록관리 위원장
    -한국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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