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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안전 기지의 중요성

실패를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가?
리더여, 완벽 강박증을 버려라

이경민 | 393호 (2024년 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한국인은 유독 실패가 두렵다. 왜 그럴까? 완벽주의의 기준이 높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실패에 대한 비용이 큰 사회에서 성장한 리더는 대개 실패의 경험이 없고 그로 인해 실패를 더욱 두려워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조직이 구성원의 실패를 포용하는 ‘안전 기지’로 거듭나려면 리더부터 스스로가 안전하다는 느낌을 충분히 경험해야 한다. 그래야 구성원을 존재 자체로 신뢰하고 비록 그들이 실패하더라도 가치가 충분하다고 인정해줄 수 있다. 그런 리더에게 구성원도 실패와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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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은 누구나 아는 유명한 말이다. 이 문장을 글자 그대로 읽으면 굳이 그 어머니를 삶에 초대하고 싶지 않은 게 우리 모두의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들이든 딸이든 ‘성공’이라는 자식이다. 개인과 조직에서 대부분의 경우 실패는 환영받지 못한다. 물론 어떤 개인, 조직도 실패 없이 성공을 추구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많은 기업이 실패를 과거와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실패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려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실패란 여전히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실패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어떻게 하면 실패를 위의 격언처럼 성공의 밑바탕이 될 수 있도록 잘 포용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을 정신분석적으로, 그리고 한국의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실패가 고통스러운 이유

정신분석적으로 볼 때 실패는 유기불안(fear of abandonment)과 수치심(shame)을 자극한다. 우리는 사회적 뇌를 가지고 태어났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고 받아들여지는가에 민감하다. 인간의 초기 역사에서부터 지금까지 무리에 속하는 것이(신체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생존에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 의도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무리에게서 호위를 받지 못할 위험이 있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느낄 수 있다. 공부를 잘해야, 말을 잘 들어야, 부모가 원하는 아이가 돼야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믿음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닌 부모가 원하는 모습이 되려는 소망으로 마음에 자리하게 된다. 성인이 돼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추구하고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기보다는 완벽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게 된다. 버려질지 모른다는 공포는 살아남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더 열심히 살며, 더 철저하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게 만든다.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 사람에게 실패란 그동안 노력하며 숨겨왔던 자신의 실체가 드러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사건이 된다. 그리고 극심한 수치심을 동반한다. 어떻게든 감추고 싶었던 초라한 자신이 사람들에게 발가벗겨져 폭로가 될 것이라는 수치심은 실패를 겉으로 이야기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상태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자신의 초라한 자존감을 가리기 위해 더욱 자신을 거대하게 포장하고 자신의 뛰어남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된다. 이렇게 부풀려진 거짓 자아(False self)는 성공과 주변의 인정을 통해 내면의 공허감을 외부의 찬사로 채우려 한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에 외부의 작은 단서에도 민감해지고, 외부의 평가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널뛰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 실패란 자신의 존재 가치 전부가 부정당할 수 있는 위험이 된다. 완벽주의자일수록 사소한 실패에도 지나치게 고통스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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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에 시달리는 한국인

여기에 더해 한국은 특히 완벽주의의 기준이 매우 높다. 어느 정도에서 만족하는 법이 없다. 인터넷에 아이가 98점이 쓰여 있는 시험지를 가지고 오면 부모가 “2점은 어디로 달아났니?”라고 말하는 밈이 있다. 최고가 아니면 루저라는 생각이 팽배한 한국에서 나고 자라면서 어느새 평균조차 모자란 것으로 간주되는 외적 압력이 자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스스로도 120%가 아니면 만족할 수 없어진다. 평균을 상회해야 마음이 놓일 판에 평균에조차 미치지 못할 위험이 있는 실패는 어찌해도 반길 수가 없다.

이러한 완벽주의는 매사에 어떠해야만 한다는 당위진술(should statement)이 많다. ‘1등을 해야 한다, 앞서야 한다,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등등. 전에 코칭했던 한 리더는 자신과 일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실망할 만한 상황을 하나라도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수십 년을 일만 했다고 했다. 그 결과 건강을 해쳐 지금은 더 이상 근무하는 것이 힘들 정도로 지쳐버렸다. 그럼에도 그는 어떻게든 자신이 주변을 실망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1%라도 남기고 싶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처럼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진술이 많을수록 자신이 기대한 상황과 다른 상황이 펼쳐질 때 사고가 경직된다. 대안을 생각하기 어렵고 파국적 사고(catastrophic thought)가 일어난다. 그 리더에게 주변을 실망시킨다면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물어보자 그는 딱히 대답을 하지 못하면서도 무언가 그러면 안 된다고, 그냥 그런 사건 자체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그건 자신의 커리어가 전체 다 망가지는 것이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우리가 실패했을 때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이런 파국적 사고와 자기 비난 때문이다. 남들이 뭐라고 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서 계속 증폭되는 자기 비난의 목소리가 최악의 상황으로 사건을 확장시킨다. 한 번의 실패가 마치 모든 것의 종말처럼 느껴지게 되고, 현실과 동떨어진 자신만의 괴로운 세계가 마음속에 펼쳐지며, 그 세계 속에서 실패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패배로 남는다. 임원 워크숍에서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는지 검사한 적이 있다. 많은 리더가 스스로를 괴롭히는 대처 양식인 반추(rumination), 자기 비난을 주로 사용했다.

한국인이 실패를 좋아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매우 좁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최근 지인이 이직을 했다. 그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이직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래처에서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다른 루트로 지인에게 연락을 했다. 이직 같은 소식도 이처럼 빠르지만 누군가의 실패 소식은 업계에서 더 빠르다.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지…’라는 말을 하지 않는 업종이 없을 정도로 한국의 산업계는 서로 매우 긴밀하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한국 조직에서 성공도 아니고 실패의 소식은 굳이 스스로가 나서서 밝히고 싶지 않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실패에 대한 비용이 큰 사회이다. 유명하다는 학원 레벨 테스트는 한 번 ‘실패(fail)’하면 몇 달을 다시 응시할 수 없다. 동물 이름이 들어간 초등 수학학원은 마치 수능처럼 테스트 날짜가 일 년에 한두 번 정해져 있어서 그 기회에 합격하지 못하면 다음 해를 다시 기다려야 한다. 수능은 그 하루에 고등 생활 전체가 걸려 있다. 처음 취업하는 곳이 중소기업인지 대기업인지에 따라 평생 기대하는 소득이 차이가 크다. 이런 실패에 대한 고비용은 어린 시절부터 실패를 어떻게든 하지 않으려는 문화를 만들어내고 역설적으로 실패를 해본 적이 없기에 더욱 실패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악순환에 빠지게 한다.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창립자인 레이 달리오는 실패를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심각한 수준이며 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실수의 과정을 통해 혁신하고 독립적인 사고방식을 배우기보다 그저 정답을 찾는 과정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달리오의 비판은 미국 사회를 향한 것이었지만 한국 사회로 눈을 돌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정답만을 찾는 교육을 하고 있으며 그 결과 실패를 극도로 꺼리는 개인들이 많아지게 됐다.

임원 코칭에서 자주 접하는 주제 중 하나가 실패를 해본 적 없는 리더의 리더십 문제이다. 최근 매우 성장이 빠른 기업의 고위 임원을 코칭하면서 직속 임원에게 그의 리더십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단적으로 말해 그가 가진 문제의 핵심은 승승장구를 하며 한 번도 잘못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그 어떤 실수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대표 앞에서나 다른 임원들 앞에서 조금의 낯도 깎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모든 발표 슬라이드를 한 장, 한 장, 글자 하나하나까지도 살펴 가며 완벽에 완벽을 기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 직속 임원들을 밤낮없이 괴롭혔다. 극단적인 사례일 수 있지만 많은 리더가 이 임원처럼 성공만 하며 위로 올라왔기 때문에 실패를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한다.


조직이 안전 기지가 되려면

실패를 좋아할 수 없는 정신분석적, 사회문화적 이유는 이렇게 다양하지만 여전히 실패는 멀리하기에는 너무 소중한 기회이다. 특히 조직에서의 실패는 많은 정보를 가진 소중한 자산이 된다. 그렇기에 많은 기업이 실패를 숨기기보다 주변과 공유하고, 기록하고, 다음 시도를 위한 도약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실패를 꺼리기보다 오픈하고 성장의 동력을 만들기 위해 조직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첫째, 조직은 실패를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 기지(secure base)가 돼야 한다. 부부 치료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순간은 서로 신뢰가 거의 없는 이혼 위기의 부부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권하는 때이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이 저 사람에게 나를 공격할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불화 부부들은 아주 사소한 자신의 상처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말이 어떻게 들릴지, 상대가 어떻게 반격할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직에 대한 신뢰가 없는데 실패를 공개적으로 말한다는 것은 잠재적인 적들에게 나를 공격할 무기를 주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충무공 이순신은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여기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실패로 바꾸어 보면 심리적 안전감이 없는 조직에서 느끼는 구성원들의 마음속 외침이 될 것이다. “나의 실패를 적에게 알리지 말라.”

조직은 구성원에게 안전감과 신뢰를 줘야 한다. 안전 기지, 혹은 심리적 안전감의 개념은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과 관계가 깊다. 존 보울비의 연구에서 태동한 애착이론에서 유아기의 아이는 기어다니며 새로운 물건을 만져보고 세상을 탐험하다가 두렵거나 무서운 상황을 만나면 엄마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다. 엄마 품에서 아이는 위안을 받고, 마음이 편안해져 다시 세상을 탐험하러 엄마 품을 떠난다. 아이에게 엄마는 항상 나를 지지해주고 무서운 상황에서 나를 구해주는 애착 대상이자 안전 기지인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있어 몇 번이고 새롭고 두려운 세상을 향해 발을 뗄 수 있다.

조직은 구성원에게 이러한 안전 기지가 돼야 한다. 실패했을 때 앞서서 책임자를 추궁하고 질책하고 망신을 주는 곳이 아니라 실패의 결과를 같이 책임지고 과정의 문제를 같이 고민하는 곳이 돼야 한다. 애착이론에서 아이가 두려워할 때 그 감정을 엄마가 잘 받아주고 완화시켜주는 것을 담아내기(containing)라고 한다. 우리 조직이 구성원들의 두려움을 잘 담아주는 공간인지, 아니면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곳인지 고민해보자. 실패해도 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완벽주의를 요구하는 이중의 메시지를 구성원들에게 주고 있다면 그런 곳에서 결코 심리적 안전감이 자라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심리적으로 가용(available)해야 한다. 아이는 엄마가 물리적으로는 접근 가능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부재할 경우,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다. 아이가 엄마를 불렀을 때 아이가 원하는 반응을 섬세하고 즉각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면, 이를테면 우울, 불안 등 엄마 자신의 문제로 인해 아이에게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하면, 아이는 엄마로부터 심리적 위안을 얻지 못한다. 또는 엄마가 아이에게 무관심하거나, 변덕스럽게 굴거나, 공포의 대상이 되면 아이는 엄마로부터 심리적 안전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리더는 구성원들에게 심리적으로 적절한 정서적 반응을 보여줄 수 있는 가용성(availability)의 대상이 돼야 한다. 그럴 때 구성원들은 리더에게 실패를 비롯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오픈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리더 스스로가 안전 기지를 경험해야 한다. 리더 자체가 누군가로부터 혹은 무엇인가로부터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아봐야 다른 사람에게 그런 존재가 돼 줄 수 있다. 내가 누구와 있을 때 위로와 위안을 받는지, 힘든 일이 있을 때 어떤 상황에서 그 힘듦을 잊고 새 힘을 얻을 수 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내가 의지하고 힘을 얻는 대상이나 활동, 또는 어떤 것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나의 안전 기지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보라. 그것은 배우자나 가족일 수도 있고, 오래된 친구일 수도 있고, 직장의 믿을 만한 누군가일 수도 있다. 또는 취미나 봉사활동, 종교나 명상, 혹은 코칭이나 상담이 안전 기지가 돼 주기도 한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위에 열거한 리스트들을 시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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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임원의 코칭을 시작하면서 성인 애착 질문지를 통해 애착 유형을 검사했다. 검사를 마치며 그는 자신이 회피형 애착(avoidant attachment)임을 알게 됐다. 친밀감, 감정적 교류, 소중한 사람과의 의미 있는 시간 등에 대해 평가절하하며 성공만을 위해 살아왔지만 정상에 선 지금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며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안전 기지를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구성원들도 자신의 성공을 위한 도구로만 바라봤다. 코칭을 받으며 그는 자신이 있는 그대로 수용되고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고, 조직에서도 구성원들을 존재 자체로 신뢰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먼저 경험해야 다른 사람에게도 그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조직문화에서 실패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최근 한 지인에게 실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실패라는 게 있나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뭐를 실패라고 할 수 있나요?”라고 되물어왔다. 생각이 유연하고 자존감이 건강한 그 사람에게 실패란 삶의 긴 과정 중에 있는 한 사건(event)일 뿐 어떤 것도 실패가 아닌 것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서울대 산업공학과의 이정동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실패라는 말 자체가 아주 잘못된 개념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실패는 어떤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시행의 연속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그 시행을 하나하나를 매번 실패라고 정의하면 그 행위자는 매번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나가는 셈이다. 실패란 없고 시행이 있다는 식으로 프레임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패는 없다’를 넘어서

그렇다. 실패는 없다. 조직문화에도 이런 프레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일일 뿐 어떤 것도 실패는 아니라는 관점의 변화가 이뤄질 때 구성원도 리더도 좀 더 편안하게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을 기억하자. 유명한 제품이 완성품으로 나오기 전에 무수한 실패를 거쳤던 것처럼 조직에서의 실패란 더 나은 결과를 찾기까지의 과정일 뿐이다.

다만 실패 후 다시 목표를 향해 시도해 볼 수 있는 힘은 ‘실패가 없다’는 프레임의 전환만으로는 얻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실패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다시 시도하려면 전보다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도 실패했는데 이번에는 잘할 수 있을지, 역시 마찬가지로 다시 실패하지 않을지 스스로 의구심이 들고 자신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두 번째, 세 번째 다시 일어나 시도하는 것은 처음보다 매우 힘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에서 먼저 믿어주는 것, 언젠가는 성공하리라고 신뢰해 주는 것, 때로 결국 성공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평가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믿음 안에서 구성원들은, 그리고 리더들은 다시 시도할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전체적인 실패 안에서도 성공한 부분을 찾아보고, 그 작은 성공이라도 축하하고 향유할 수 있는 시간과 문화를 제공하는 것이 실패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만들어 낼 것이다.

조직이 이렇게 실패를 잘 포용하기 위해 노력할 때 그동안 숨기려 했던 실패는 서로를 위한 중요한 아카이브(archive)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동안 실패해 마음 한구석에 미뤄둔 일이 있다면 지금 다시 시도해보자. 다시 시도하는 순간 그 실패는 실패로 남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한 과정으로 남을 것이다.
  • 이경민 | 마인드루트리더십랩 대표

    필자는 정신과 전문의 출신의 조직 및 리더십 개발 컨설턴트다.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Bethesda Mindfulness Center의 ‘Mindfulness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용인병원 진료과장과 서울시 정신보건센터 메디컬 디렉터를 역임한 후 기업 조직 건강 진단 및 솔루션을 제공하는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기업 임원 코칭과 조직문화 진단, 조직 내 갈등 관리 및 소통 등 조직 내 상존하는 다양한 문제를 정신의학적 분석을 통해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kmlee@mindrou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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