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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루멜트: 크럭스, 디리스킹 시대의 새로운 비즈니스 전략

전략의 핵심은 회피가 아닌 ‘문제 해결’
우리만의 강점 찾아서 자원 집중하라

배미정 | 384호 (2024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전략의 핵심은 문제 해결이다. 많은 기업이 미사여구로 꾸민 열정이나 재무적인 성장 목표가 전략인 양 착각한다. 하지만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내가 목표를 이루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도전 과제, 일명 크럭스가 무엇인지를 따지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AI의 발전과 중국 리스크와 같은 불확실성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업은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투자를 분산시키기보다 본연의 강점을 활용해 자원을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리처드 루멜트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앤더슨경영대학원 명예교수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이론가이자 경영전략 연구자로 하버드경영대학원, 인시아드 등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UC버클리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후 나사 제트 추진 연구소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근무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시장 구조에 초점을 맞춘 전통적 시각에서 벗어나 기업의 고유한 자원을 강조하는 자원 기반 전략을 제시해 ‘전략의 거장’ ‘전략의 전략가’란 칭송을 받았다. 애플, IBM, GM 등 글로벌 기업과 비영리기구, 정부 기관 등에서 전략 컨설팅을 수행했다. 주요 저서로 『전략의 거장으로부터 배우는 좋은 전략 나쁜 전략』 『크럭스』 등이 있으며 크럭스는 2022년 파이낸셜타임즈 올해의 경영 도서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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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어떤 회사로부터 전략 수립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AI 스타트업일 수도 있고, 한국의 대기업일 수도 있다. 어떻게 하겠는가? 이번 강의를 통해 전략을 수립하는 원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좋은 전략 vs. 나쁜 전략

2018년에 로열필드(가명)라는 회사로부터 전략 자문을 받았다. 사내 워크숍 회의에 참석했는데 회사의 재무책임자(CFO)가 마블 영화 ‘토르’의 동영상을 틀면서 회사의 재무적 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하겠다는 내용을 야심 차게 발표했다. 그리고 그 CFO는 내게 와서 “우리 회사의 전략은 고객의 니즈를 가장 효과적으로 충족시키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딱 봐도 너무 진부하지 않은가? 내 생각은 그랬다. 이런 약속을 안 하는 회사가 어디에 있을까? 아주 형편없는 회사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성적표(score card)를 보여주면서 “15% 이익 성장과 15% 자기자본 수익률(ROI)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적표가 곧 성공이라고 말한 것이다. 남은 회의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을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그날 저녁 CEO와의 만찬에서 나는 “당신 회사의 야심 찬 목표가 무엇인지는 잘 알겠는데 다른 이슈가 있지 않나?”라고 물었다. 나는 “이 회사는 글로벌 회사이고 여러 분야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개별 기술들이 포화 상태를 이루면서 오히려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새로운 시대에 말을 타고 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그랬더니 CEO는 내 손을 꽉 잡으면서 “우리 팀원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말라”며 “목표 달성을 위해 직원들의 정신이 분산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나는 이게 다국적 기업의 CEO가 할 말인가 싶어 의아했다. 이 CEO는 전략을 수립하는 게 아니라 목표 관리(Management By Objective)를 하고 있었다. 이 회사에 전략은 없었다.

나는 책 『전략의 거장으로부터 배우는 좋은 전략, 나쁜 전략』에서 좋은 전략은 3가지 핵심 요소, 상황 진단과 추진 방침, 일관된 행동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전략을 보면 현재 상황에 대한 진단,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과 접근 방식이 무엇인지, 지금 당장 혹은 10년 내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나쁜 전략은 무엇인가? 미사여구로 가득 찬 말 잔치 혹은 ROI 같은 재무적 목표 숫자만 얘기하는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여기에는 ‘어떻게’가 빠져 있다. 예컨대 남자가 예쁜 여자랑 결혼하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것은 듣기에는 좋지만 전략이라고 할 수 없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얘기도 전략이 아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국가 전략의 일환으로 화석연료의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추진한다면서 동시에 자유롭고 개방된, 번영하는 안전한 미래를 비전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전 세계의 번영은 지난 100년 동안 화석연료에 의존해서 이뤄졌다. 화석연료를 빼면 사람들은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즉,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은 하루아침에 이뤄낼 수 없는 비현실적인 목표이다. 이런 앞뒤가 안 맞는 얘기를 전략이라고 볼 수 있을까?


크럭스, 전략 수립의 첫걸음

나는 이처럼 열망과 전략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간 『크럭스』에서 정확한 진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전략을 얘기하면서 목표나 희망 사항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정말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나는 이를 ‘크럭스’라고 지칭했다. 나의 현재 상태와 내가 원하는 것 사이에 놓인 장애물을 말이다. 크럭스는 클라이밍할 때 가장 어려운 구간을 의미하는데 이를 건너뛰지 않고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전략의 핵심은 문제 해결이다. 어려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관된 정책과 행동이 더해진 전략, 도전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전략을 수립하는 데 3가지 기술이 필요하다. 첫째, 이 도전 과제가 왜 어려운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크럭스가 무엇인가? 이것이 왜 크럭스인지, 왜 도전하기 어려운 문제인지를 묻는 것이다. 나는 컨설팅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도전 과제인가요? 그것을 달성하는 데 애로사항이 무엇인가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전략을 수립하는 첫걸음이다. 두 번째로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회사들에 애로사항을 꼽으라고 하면 보통 20~25개 정도를 제시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해결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장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이런 전략 수립의 과정에서 조직 내부의 문제가 발견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HR 부서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대부분 전략을 이야기하면 시장, 상품, 경쟁 이런 것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런 업계의 변화를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기업은 그런 변화를 계기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유럽 최대의 금융 그룹인 UBS의 임원에게 전략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최고의 투자은행이자 자산 관리 회사가 되는 것이 UBS의 목표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목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상충하는 지점이 있다. UBS는 투자은행으로서 발행 증권의 가치를 높여야 하는 동시에 자산 관리 고객을 위해서는 저평가된 증권을 발굴해야 한다. 부자 고객들에게 판매되는 많은 증권이 이 회사가 발행한 증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천하기 힘든, 상충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역설로 인해 UBS는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클라이밍을 잘하는 사람은 크럭스를 마주했을 때 적절한 순간에 힘을 완전히 집중시켜 장애물을 넘어선다. 전략을 설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숙련된 전략의 설계자는 새로운 문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무엇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만드는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그 안에 숨어 있는 중요한 역설을 찾아낸다. 이런 역설의 본질을 명확히 밝힌 후에 비로소 해결책을 찾기 시작한다.

일론 머스크가 창업한 스페이스X는 문제의 본질인 크럭스에 초점을 맞춰 혁신적인 해결책을 고안한 대표적인 사례다. 나사가 오랫동안 추진한 우주 왕복선 프로그램은 기계공학적인 차원에서는 인간이 이뤄낸 엄청난 기적이지만 재무적으로는 크게 실패했다. 1파운드당 지구 저궤도 진입 비용이 2만5000달러가 넘는다. 처음에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창업자는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구형 로켓을 구매하려고 했다. 미국에선 우주선을 안 팔기에 러시아에 갔다. 그런데 러시아 기업에서 하루가 다르게 로켓 가격을 높게 부르는 통에 결국 사지 못했다. 머스크는 왜 이렇게 로켓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는지를 골몰했다. 문제는 로켓의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로켓이 지구 대기권으로 재진입할 때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고열이 로켓을 다 태워버렸다. 고열로부터 로켓을 보호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크다 보니 한 번 쓴 로켓은 버리고 새로운 로켓을 쓰는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머스크는 비용을 줄이려면 재사용이 가능한 로켓을 개발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고, 그 하나의 크럭스에 집중했다. 그리고 머스크는 어릴 때 공상과학 소설에서 봤던 것처럼 로켓이 반 바퀴를 돌아 엔진을 역분사해 육지에 소프트 랜딩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러려면 연료를 추가로 탑재해야 하지만 새로운 로켓을 사는 것보다는 훨씬 비용이 덜 들었다. 그렇게 스페이스X는 연료를 더 많이 실을 수 있는 로켓을 개발하고 재활용하는 데 성공했다. 스페이스X 팰컨 9의 1파운드당 지구 저궤도 진입 비용은 200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가격을 어마어마하게 절감한 것이다.

2019년, 반도체 업계의 리더들과 모여 인텔 케이스 스터디를 토론하는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인텔에 관한 논문 25편을 읽고 인텔이 당면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토론했다. 리더들은 무어의 법칙 무효화, 모바일에서의 입지 상실, AMD와의 경쟁, AI의 등장, 조직 문화 등 11가지 문제점을 꼽았다. 그리고 중요성과 해결 가능성, 이 2가지 기준으로 문제점들의 우선순위를 매겼다. 그 결과 인텔이 당장 집중해야 할 문제는 첫째, 10나노 공정에서 기술 개발이 멈춰 있는 것, 둘째, 무어의 법칙에 얽매여 신제품을 출시 못하는 조직 문화로 드러났다. 인텔이 취해야 할 전략은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나머지 9가지 문제는 내년이나 그다음에 해도 되지만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선 당장 행동을 취해야 한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가장 중요하고도 해결 가능한 문제를 찾아서 그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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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예측 불가능성

우리가 직면하는 대부분의 어려움은 변화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변화의 흐름은 알 수 있지만 그 결과가 무엇이 될지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1998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콘퍼런스에서 통신업체의 미래를 전망하면서 참석자들이 4가지 시나리오를 내놨다. 첫째 현상 유지, 거대 통신사들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 두 번째 고질라, 즉 통신사들이 서로 인수합병하면서 거대 공룡이 탄생할 것이다. 세 번째 식인 물고기 피라냐, 즉 새로운 스페셜리스트가 나타나 모두를 잡아먹을 것이다. 네 번째 묵시록의 4기수, 혁명으로 통신업이 붕괴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네 번째 전망이 그나마 가장 잘 들어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무선 통신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통신업계가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둬 승기를 잡은 가운데 스티브 잡스가 2007년 아이폰을 내놨다. 아이폰이 출시됐을 당시 이것이 성공할지에 대한 수많은 예측이 있었다. 블랙베리, 노키아, 모토로라 등에서 출시된 무선 폰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무선 폰이 대세임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아이폰이 나왔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CEO는 이미 수십억 대의 휴대폰이 판매되고 있는데 아이폰이 설 자리는 없다며 실패작이라고 얘기했다. 유명 기술 칼럼니스트도 경쟁이 심한 통신업계에서 애플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고 분석했다. 노키아의 전략 그룹장은 PC사업에서 MAC이 관심을 끌었듯 아이폰도 관심을 끌기는 하겠지만 결국 틈새 업체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하나같이 잘못된 예측을 했을까? 이들은 두 가지 실수를 했다. 먼저, 이들은 아이폰을 단순한 휴대폰 중 하나로 봤다. 하지만 아이폰은 휴대폰이 아니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웹 브라우저였다. 아이폰은 웹 브라우저 기능이 탑재된 휴대폰이었다. 이들이 저지른 두 번째 실수는 휴대폰 업계를 PC 업계와 비교한 것이다. IBM은 초기에 폐쇄형 시스템을 만드는 실수를 했지만 스티브 잡스는 앱스토어를 만들어 제3자가 수천 개 앱을 만들어 생태계에 기여하는 오픈 시스템을 제공했다. 컴퓨터도, 무선 폰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만든 것이다. 여기에 소셜미디어까지 합세했다. 오늘날 서울, 도쿄, LA 등 어디를 가든 좀비처럼 휴대폰에 고개를 박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만큼 휴대폰이 일상에서 너무나 중요해 졌다. 과거에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모습이다. 이런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그로 인한 리스크와 기회 모두 놓칠 수밖에 없다.

PC 업계 또한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1970년대 IBM을 비롯한 컴퓨터 회사들은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들을 갖고 있었다. CPU, OS, IO, 스토리지,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네트워크가 다 합쳐진 제품을 팔았고, 이런 통합된 시스템으로 서로 경쟁했다. 결국 시스템 엔지니어링, 각 파트들이 어떻게 서로 잘 융합이 잘 돼서 하나의 통합 시스템으로 굴러가게 할 것인가가 중요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CPU는 CPU대로, OS는 OS대로 파트별로 경쟁이 어마어마하게 심해졌으며 플러그 앤드 플레이(plug and play) 방식으로 시스템이 구성되고 있다. 고객 또한 더 이상 IBM 같은 한 회사에 종속될 필요가 없음을 안다. 이제 시스템 엔지니어링을 기반으로 살아남은 제품은 자동차, 휴대폰 등 얼마 남지 않았으며, 이들도 결국 다 분해되고 재통합될 수 있다.


중국과 AI 리스크에 주목

한국 기업이 직면한 리스크는 우선 중국이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불안, 내수 경제의 둔화에 따른 수출 감소, 청년 실업 증가, 미·중 갈등 등이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중국의 15~64세 경제활동인구의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망에 따르면 현재 10억 명에 이르는 경제활동인구가 10년 후에는 8억 명대로 떨어지게 된다. 출산을 빠르게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기에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이는 더 적은 젊은 층이 더 많은 노령 인구를 부양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 서비스가 부족해지고, 부동산 가격은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임금은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인구 변화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산업화로 인해 사람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했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출산율이 떨어졌다. 앞으로도 이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적 갈등과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독일에서는 이미 3만 채의 집을 부쉈는데 살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민자가 그래도 그나마 들어오기 때문에 인구 부족을 어느 정도 메꿔줄 수 있다. 이런 인구 변화가 국제 교역에도 큰 파급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스스로 자급이 불가능한 나라들이 등장할 것이다.

또한 대만을 중심으로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대만을 둘러싼 전쟁을 시뮬레이션해 봤더니 6000~8000명의 미국인 사상자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낙관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느 편에도 유리한 결과는 아니다. 전쟁을 치르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바보짓이다. 한국, 일본 등 아시아가 주도적으로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

다음으로 인공지능(AI) 리스크를 꼽을 수 있다. 1990년대에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대체하기 시작했다면 오늘날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엔지니어의 역량이 수많은 시스템의 경쟁력을 결정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거대 언어 모델 기반의 AI가 에세이, 수필 등 문학 작품까지 쓰는 것을 보면 기계에 언어를 학습시키는 것이 생각보다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AI 모델이 소프트웨어의 코딩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는데 예컨대, 챗GPT에 파이선, C언어 등으로 코딩해달라고 요구하면 바로 해준다. 더 나아가 앞으로 예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소프트웨어가 더 이상 사람이 일일이 코드를 작성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산업재로서 대량 생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계가 소프트웨어를 찍어낸다고 상상해보자. 이는 세상에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누가 이런 변화를, 어떻게 주도할 것인가? 이렇게 되면 기계공이나 엔지니어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텐데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은 현재로선 없다.

내게 이런 리스크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묻는다면 “답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업이 어떤 리스크를 해결할지 선택할 수는 있다. 작은 기업이라면 일단 무조건 베팅해야 된다. 베팅에 성공하면 더 큰 기업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다. 대기업은 여러 군데에 베팅할 자원적 여유가 있지만 그럼에도 조직적으로 여러 가지에 베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서로 다른 베팅을 하는 팀 간에 시기와 경쟁이 커지기 때문이다.

리스크에 직면했을 때 기업은 여러 곳에 베팅하는 다각화를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 자원이 많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요즘같이 다방면으로 경쟁이 극심한 환경에서 효과적인 전략은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부분, 강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제조 공학 분야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겠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이처럼 자원이 풍부하고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어려움에는 늘 기회가 동반한다. 1970년대 초반 셸은 에너지 위기로 석유가가 폭등하는 급변의 위기를 겪었지만 그 시기를 해상 전력을 개발하는 계기로 삼았다. 앞으로의 여정이 평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정확하게 AI가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 모른다. 무선 휴대폰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연결될 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게임에 참여해야 된다.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분명한 사실은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지 못하면 영영 뒤처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량을 확보하고 실질적으로 잘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는 기업이 성공할 것이다. 위대한 전략가는 총체적인 비전과 더불어 집중하는 결단력을 가진 사람이다. 가능성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중에서 무엇을 선택해 돌파할지를 결정하는 게 관건이다.

DBR mini box I: 김한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의 대담

“기회는 안개처럼 다가와… 걷히기만 기다리면 늦어”



리처드 루멜트 교수는 김한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의 진행으로 포럼을 경청한 참가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김 교수와 청중의 질문이 담긴 질의응답 세션을 요약, 소개한다.

김한얼 교수 박사 과정 시절 접했던 교수님의 책에서 그동안 우리가 공부했던 경영 이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따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루멜트 교수 사실 나도 굉장히 많은 시간을 들여 이론적인 프레임워크를 만들고 가르쳤다. 그런데 기업들과 일하면서 그들의 문제는 경쟁 우위 모델 같은 이론을 모른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완전히 잘못된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또한 금융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재무 목표 달성을 전략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했는데 이 또한 기업이 직면한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시대에 뒤처지게 된 코닥에 기존의 전략 이론이나 금융적인 접근 방식은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전략을 통해 실질적으로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관점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책을 썼다.

전략 수립에서 의사결정의 관점보다 디자인의 관점을 강조했다. 이 두 가지는 어떻게 다른가?

결정 이론은 수많은 대안과 그 결과물의 가치, 가능성을 따져서 효용을 극대화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것은 컴퓨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선택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전략의 본질은 이런 선택지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만드는지에 달려 있다. 선택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의사결정과 관련된 변수가 정량화가 가능할 때는, 예컨대 공장을 어느 지역에 설립할지에 관한 의사결정은 합리적인 선택이 가능하다. 그런데 AI 연구 과제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때, 무엇을 먼저 연구할지를 모색할 때 우리의 의사결정을 도와줄 수 있는 모델은 없다. 모든 게 다 불확실하다. 문제 자체가 굉장히 모호하기 때문에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기반으로 선택해야 된다.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넷플릭스 사례를 자세히 설명해주면 좋겠다.

2018년도 말 넷플릭스의 어려움은 치열한 경쟁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당시 넷플릭스는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의 선두 주자로 가장 큰 고객 규모와 자산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디즈니 등 콘텐츠 제작업체들이 너도나도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에 뛰어들면서 콘텐츠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 졌다.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장 쉽게는 다른 기업들처럼 자체적으로 스튜디오를 설립해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넷플릭스만이 할 수 있는 강점을 찾아야 한다. 당시 넷플릭스의 차별점은 글로벌 고객 비중이 높다는 점이었다. 특히 인도, 남미, 유럽 등에서 대규모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넷플릭스는 이런 강점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로부터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스페인, 인도, 터키 등 구독자가 많은 국가에서 콘텐츠를 제작한 다음에 전 세계로 스트리밍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글로벌한 콘텐츠를 구상하고 그에 맞는 제작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새로운 전략이 될 수 있겠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일부 이런 전략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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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있다. 그래서 전략을 짤 때도 문제에 집중하기보다 빨리 해결책을 내는 데 급급한 것 같다.

나는 한국적인 방식을 존중한다. 한국인들은 굉장히 신중한 동시에 빠르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잘하는 나라들은 별로 없다. 이번 포럼에 참여하는 과정에서도 사무국에서 거의 매일 진행 상황을 꼼꼼하고 신속하게 업데이트해줘서 굉장히 놀라웠다. 이런 한국적인 문화가 전략 수립에 방해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회는 굉장히 흐린 안개 속에 숨어 있다. 잘 보이지 않는다. 스키를 탈 때 안개가 껴 있으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무섭고 두렵기에 안개가 걷히기까지 기다리고 싶어 진다. 하지만 기다렸다가 안개가 걷히고 나서 보면 기회는 다른 사람이 이미 채간 뒤일 것이다. 기회는 늘 안개와 함께 찾아 온다. 그렇기 때문에 빠르게 실험하는 능력이 기회를 잡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안개가 다 걷히길 기다려서는 늦는다. 안개를 뚫고 실행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워싱턴 정계와도 일을 많이 하시는데 미·중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한 말씀해달라.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근본적으로 아시아인들이 협상을 통해 주도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전 세계의 리더 격으로 다른 국가의 사안에 일일이 개입하는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미국은 중국의 대만 점령을 막지 못할 경우 미국 중심의 동맹이 깨질 것을 우려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 간의 동맹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리더들이 협상을 통해 합의에 나서야 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협력해서 더 나은 대안을 찾아내야 된다.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특히 워싱턴 정계는 이런 논의에 도움이 안되는데 여전히 미국이 제국으로서 세계를 제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아시아 국가들, 특히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긴장을 완화시키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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