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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효율 높이는 업무 공간 설계

좋은 공간이 인재 잡는 최고의 복지
‘오피스 저니’ 개념으로 공간 설계를

심소연 | 379호 (2023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팬데믹과 디지털 전환으로 일하는 공간, 오피스에 대한 의미도 달라지게 됐다. 재택근무가 점차 막을 내리면서 다시 오피스로의 출퇴근이 시작됐지만 이전에는 당연히 여겨지던 것들이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되며 오피스 공간에 대한 많은 회의를 낳게 된 것이다. 이제는 회사로 출퇴근하는 과정조차 업무의 연장선으로 포함됐고 이는 ‘오피스 저니’라는 개념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이에 오피스 설계자들은 기존처럼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책상을 구겨 넣는 게 아니라 일의 효율도 높이고 사용자의 이용 환경도 고려하는 새로운 오피스 설계를 고민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이미 인재 밀도와 공감 감도를 높이고, 직원들의 부정 경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다양한 공간 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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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네이버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제2사옥인 ‘네이버 1784’를 열었다. 첫 삽을 뜨고서 완공까지 6년이나 걸려 지은 이 건물은 단순한 사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공간이자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를 실험해보는 테스트베드 등 다양한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1784를 비롯해 한국타이어의 테크노플렉스 등 사옥이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나타내는 선례가 등장하면서 오피스 설계부터 기획에 직접 참여하는 기업이 점차 늘고 있다. 기업이 만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넘어서, 그들이 일하는 공간까지도 기업의 이미지를 대표할 수 있는 가장 큰 프로덕트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는 2가지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첫째, 원격 근무의 발달로 인해 오피스가 도심이 아닌 더 넓은 부지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됐다. 기존의 오피스는 많은 사람이 방문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가장 좋은 도심에 위치해야 했다. 도심의 높은 임대료 탓에 기업들은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좌석 수를 확보할 수 있는 효율성을 따져 업무 공간을 구성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재택근무와 워케이션 등 유연한 근무 방식을 경험했고 기업의 의사결정권자들은 공간의 밀도는 낮추고 감도는 높이는 좋은 오피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둘째, 오피스 공간이 소위 말하는 ‘인재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의 무기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일할 사람 역시 줄어들고 있다. 인구절벽으로 인해 근로자 1인당 생산성은 계속해서 높아져야 하는데 모셔 올 인재는 줄어드는 인재 전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넷플릭스의 성장 비결을 다룬 책 『규칙 없음(No Rules)』에서도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인재 밀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직원 규모를 크게 늘리는 것보다 뛰어난 인재 몇 명을 채용해 이들이 밀도 있게 협업하고 소통하며 상승효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피스 공간 역시 우수한 인재들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인재들의 사소한 고민조차 줄여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이에 필자와 같은 공간 기획자들은 일의 효율도 높이고 사용자의 이용 환경도 고려하는 새로운 오피스 설계를 고민하고 있다.


인재 밀도와 공감 감도를 높이는 오피스 저니

지난해 필자가 일하는 공간 기획 회사인 간삼기획에서는 ‘오피스 저니(Office Journey)’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집에서 출근하는 순간부터를 업무의 시작으로 여겨 시간대별로 직원들의 오피스 경험을 기획, 설계하는 큰 틀의 개념이다. 마케팅 및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 분야에서 사용하는 ‘customer journey(고객경험 여정)’ 개념을 빌려와 업무 공간을 이용하는 최종 공간 소비자인 직원을 고객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시도했다.

호텔, 백화점 시설은 공간을 이용하는 고객과 늘 맞닿아 있기 때문에 소비자 중심의 개념이 발달해왔다. 그에 비해 기존의 업무 공간은 공간을 쓰는 직원들이 공간을 선택하는 개념이 아니라 최대 효율성의 원리에 따라 공급자인 경영자의 관점에서 일괄 공급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제 직원을 또 다른 공간의 소비자로 보기 시작하면서 기업은 직원들에게 최고의 환대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표가 생겼고, 필자와 같이 공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공간적 개념을 제안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사용자 경험이라는 일관된 맥락에서 설계한 오피스 단지는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가진 단 하나밖에 없는 공간이 된다. 건축 공간이 곧 브랜딩의 강력한 도구로 활용되는 것이다. 덴마크에 위치한 레고(Lego) 본사 사옥은 이에 가장 적합한 사례다. BIG(Bjarke Ingels Group)가 설계한 ‘레고 하우스(LEGO HOUSE)’가 시선을 끄는 이유는 마치 레고를 건축물로 옮겨 놓은 듯한 외관뿐만 아니라 레고의 철학을 공간 곳곳에 잘 구현했기 때문이다. 놀이를 중요시하는 기업답게 직원들이 언제든 가족들을 데려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장난감 블록이 요리해주는 콘셉트 식당 ‘미니 셰프(mini chef)’, 레고 놀이터 등 다양한 체험형 공간을 배치했다. 더 나아가 사옥이 주거 지역에 위치한 특성을 살려 시민들이 언제든 와서 쉴 수 있도록 광장 공간을 마련했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열리는 문화 전시에 참여하기도 하고 피크닉을 즐기기도 한다. 기업의 사옥이면서 동시에 지역 주민들의 문화 시설 역할도 하게 된다. 기업 사옥이 오피스 공간이라는 기능을 넘어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갖는 브랜드 경험 공간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이 국내외에서 적용되고 있는 사례들과 더불어 미래 오피스 공간은 어떤 모습일지 근무 시간대별로 정리해봤다. 최근 유연근무제로 근로자마다 출퇴근 시간이 다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보편적인 출퇴근 시간인 9 to 6로 설명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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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8:00 출근

부정 경험을 줄여라

평범한 출퇴근을 하는 노동자들이라면 고된 출근길에 지쳐 일할 의욕이 사라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재택근무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시 오피스로 출근하게 되면서 출근 역시 업무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이 확대됐다. 재택근무 때는 겪지 않아도 됐던 지옥철이나 꽉 막히는 도로 등 집에서 오피스로 출근하는 여정도 업무의 한 부분으로 느껴지게 된 것이다. 이에 도심에 위치한 오피스는 직원들에게 대중교통비를 지급하기도 하고, 비도심에 위치한 오피스는 주요 동선에 따라 출퇴근 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버스 정류장 위치는 직원들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한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직원들을 위해 주차장 역시 전기차 급속 무선 충전소, 자동 주차 시스템, 스마트 모빌리티 인프라 구축 등 에너지 효율화 관점에서 다양한 방법이 고안되고 있다. 부정 경험을 최대한 제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생활 밀착형 서비스 경험을 고도화하는 것이다.

매일같이 출근해야 하는 공간에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자연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직원들이 사계절을 보며 일할 수 있는 오피스’를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 오피스 단지에 진입하고 사무실의 자기 자리까지 가는 여정에서 녹지공간을 최대한 많이 마주칠 수 있도록 배치할 것을 권장한다. 건물 경계부에 공개 공지를 두어 활동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단지에 분산돼 있는 녹지를 유연하게 연결하는 산책로를 조성할 수 있고, 보행로와 차도를 분리하고 완충 공간을 계획해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저층부 녹지공간은 시민들에게 개방해 활력 있는 가로 공간으로도 기능하게 된다.

서울 용산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사옥의 경우, 도로변을 따라 완충 녹지가 있고 건물 4면에 각각 출입구를 두어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전시, 리테일, F&B 등 다채롭게 배치된 문화 시설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기업과 자연, 도시가 자연스럽게 연결성을 갖게 된다. 또한 사내에는 직원들만 쓸 수 있는 옥상정원을 총 3곳(5, 11, 17층)에 배치해 도시의 경관을 오피스로 끌어들였다. 상층부에 위치한 중정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개방돼 있어 자연통풍과 채광을 최대화한다. 직원들은 용산 도심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위치에서 멀리 있는 산과 도시의 전망을 바라볼 수 있다. 서울 도심에서도 충분한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5층에는 물소리가 들리는 수 공간이 함께 있어 직원들이 정적인 휴식을 취하기에도 적합하다. 수 공간의 물이 얼지 않도록 안정적으로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시설적인 측면에서도 굉장히 많은 공이 들어가는데 좋은 공간 기획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운영하기 위한 공간기획팀의 많은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AM 9:00 업무 공간 도착

개인 맞춤형 환경을 만들어라

건물에 도착해 녹지공간을 경험한 사용자는 개인 좌석으로 향한다. 사무 환경에 있어서 기존에 최소한으로 규격화된 1인당 면적을 넓혀 사무 환경의 밀도를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면적 안에서 개인 맞춤형 사무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에는 모든 직원에게 같은 규격의 사무용 가구가 제공됐다면 이제는 개발자, 마케터, 기획자 등 개인별로 맡은 직무에 따라 일하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공간인 만큼 개인의 편의성을 우선시하기 위해 공간 기획 단계에서 사용자 인터뷰 및 VOE(Voice of Employee) 수집을 통해 직무를 그룹화하는 작업을 선행할 것을 권장한다. 임직원 인터뷰를 통해 직무를 그룹화하고, 직무별로 중요시되는 점에 따라 파티션 높이, 데스크 크기, 서랍 유무, 캐비닛 크기 등을 결정할 수 있다. 물론 직무별로 차별화된 업무 특성을 반영하기 이전에 휴먼 스케일을 기반으로 한국인의 인체 치수를 참고한 규격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이처럼 일하는 방식이 먼저 정립되고 나면 이에 맞춰 사무 가구, 워크스테이션 배치 등 공간이 따라간다. 기존에는 종이 서류를 보관할 수 있도록 깊이감이 있는 서랍장이 필수적으로 배치됐다면 이제는 대부분의 사무 공간에서 페이퍼리스 업무 환경이 구축되면서 다양한 전자기기를 수납할 수 있는 규격의 넓은 캐비닛을 제공하고 있다. 일하는 방식이 바뀌면 공간도 변화하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애자일 업무 방식을 도입하는 기업이 늘면서 팀이 아닌 프로젝트에 따라 인력 구성이 자주 변하기도 하는데 이에 따라 서로 호환될 수 있는 제작 가구를 선호하는 추세다. 전문 가구 회사를 통해 기업별 업무 방식에 따라 선호되는 규격을 제작하고, 품평회를 열어 직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다시 반영해 개인별 워크스테이션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기본적인 지정 좌석제에서 변화를 주고 싶지만 100% 자율 좌석제로 전환하는 방식은 부담스러운 기업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지정 좌석제 외에도 별도의 선택 좌석을 추가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직원의 소속감과 안정감을 위해 개인 지정 좌석을 마련하되 자율성을 위해 오픈형 업무 공간인 핫데스크(hotdesk) 존을 추가로 배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동료와 마주치며 부서 간 경계를 허물고 사내 직원들의 소통을 격려할 수 있으며 창의적이고 발전된 기업 문화를 조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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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다양한 워크스테이션을 제공해 개인에게 공간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은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본인이 편안한 업무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주도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분산 오피스 플랫폼 ‘집무실’의 경우 다양한 자세로 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워크 모듈을 선보이며 비교적 단조로웠던 공유 오피스 시장의 워크스테이션 선택 폭을 넓혔다. 몰입형, 개방형, 하이브리드형 등 개인의 업무 특성에 맞춰 매일 다른 모듈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창밖을 바라보며 일하고 싶을 때는 바 스탠드를, 집중하며 일하고 싶을 때는 새둥지 같은 네스트 모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유연한 업무 환경을 구축했다.

사용자가 이렇게 여러 워크스테이션을 오가며 원활히 이용하기 위해서는 노트북, 태블릿PC 등 휴대용 업무 기기가 사내 보안망 내에서 언제든 호환될 수 있도록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사적으로 도입된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워크스테이션에서 끊김 없이 업무를 이어 나갈 수 있고 층간 이동 시에는 번거롭게 사원증을 꺼내는 대신 얼굴 인식 시스템을 통해 오피스 층을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자율 좌석제를 시행하면서도 개인 맞춤형 공간을 제공하고자 한다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있는 구글의 마운틴뷰 캠퍼스(Mountain View Campus)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예약한 핫데스크 좌석에 사원증을 태그하면 직원 본인이 사전에 설정해 놓은 대로 책상 높이와 모니터 각도가 자동으로 조절된다. 또한 개인별로 적정한 온도와 습도를 조정하기 쉽도록 패브릭으로 만들어진 오버헤드 에어덕트가 자리마다 설치돼 있어 냉난방 방향 및 풍량 역시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이렇게 각 층에서 업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공간적 대안을 충분히 마련한 후 여러 개의 층을 이용하는 오피스로 범위를 넓혀 볼 수 있다. 업무 연관성이 높은 부서를 인접해 배치할 것을 권장하고, 이를 더 적극적으로 시도해본다면 층별로 유기적인 소통을 위해 계단을 배치할 수 있다. 독일 프랑크프루트에 있는 현대캐피탈 HCBE(Hyundai Capital Bank of Europe) 사옥은 3개 층을 나선형 계단으로 엮어 3개의 공간 프로그램을 연계했다. 각 층별로 위치한 서재, 라운지, 게임룸은 서로 다른 층의 직원들을 끌어들여 직원 간의 우연한 교류가 일어날 수 있도록 했다.

판교에 위치한 한국타이어 테크노플렉스는 중심부 아트리움을 통해 수직으로 개방된 업무 공간을 구현했다. 층마다 아트리움 근처에 캔틴(프린터와 같은 사무기기, 냉장고, 커피 머신, 싱크대 등을 갖춘 편의 공간)을 두고, 캔틴 주변으로 소파와 테이블을 군데군데 배치해 열린 공간으로 구성했다. 캔틴은 업무 공간에서 적당히 떨어뜨려 소음을 완화하고, 이곳을 허브로 직원들이 자연스레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탁자와 의자를 일체화된 구조로 디자인해 구성원 간 다면적 교류 유도 동선을 연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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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12:00 점심시간

틈새 휴식도 밀도 있게

식당 공간은 기업마다 운영 방식이 다르지만 이 공간의 핵심은 ‘1시간 내외의 휴식 시간을 직원들이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존에는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식사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면 이제는 혼자 간단히 식사를 하고 개인의 성장을 위한 공부나 운동을 하는 등의 자기 계발 겸 휴식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이 많아졌다.

네이버 1784는 자율주행 서비스 로봇 ‘루키’를 통해 시간적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로봇이 직접 도시락을 자리로 배달해주고, 사내에 위치한 스타벅스 커피를 회의실로 가져다준다. 임무를 마친 로봇은 전용 엘리베이터 로보포트를 타고 충전소로 향한다. 사람과 로봇의 동선을 분리해 빌딩 내 혼잡도를 줄인 것이다. 로봇은 직원들의 요청을 반복적으로 처리하며 공간 데이터를 쌓아 갈수록 더 효율적인 루트를 계산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대기 시간을 단축하게 되고, 그렇게 쌓인 시간만큼 온전히 개인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식사 후 자연스럽게 이용하게 되는 카페 역시 미래 오피스에서는 다목적 기능을 가진 공간으로 활용된다. 대부분의 카페는 사옥 안에 있더라도 사무실 밖에 위치하거나 외주 업체로 운영되는데 토스의 사내 커피숍 ‘커피 사일로’는 업무 공간에 함께 위치하면서 바리스타를 토스 직원으로 채용해 직접 운영한다. 바리스타 팀원들 역시 단순히 커피와 디저트를 만드는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얼굴과 이름, 커피 취향까지 최대한 기억하며 팀원들의 기분과 컨디션을 살핀다. 토스가 구성원들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직원들은 바리스타 팀원과의 소소한 대화를 통해 업무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는 등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바리스타 팀원들은 곧 카운셀러이자 퍼포먼스 코치가 된다. 직원들이 카페를 들르는 행동은 커피를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업무에서 잠깐 빠져나와 환기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본질에 집중한 것이다. 사내 카페가 휴식의 개념을 넘어서 업무 생산성에 기여할 수 있는 창조적 휴식 공간으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PM 2:00 회의실

커뮤니케이션 포인트를 높여라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는 굳이 오피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팬데믹이 끝나자 다시 오피스 공간에 모여 일을 하는 것은 동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소통하는 것이 일을 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일수록 소통과 협업 능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미래의 업무 공간은 직원들 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면서 소통에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직원들 간의 연결 공간을 오피스 곳곳에 배치해 의도적으로 직원 상호 간 소통 지점을 높여야 한다.

업무 회의 시간은 소통의 역할이 가장 극대화되는 시간이다. 서울 용산의 아모레퍼시픽 회의실은 모두 투명한 유리 벽으로 만들어져 있다. 직원 간 거리감을 없애고 연결성(connectivity)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공간의 효율과 기능을 높이는 시스템도 개발해 도입했다. 당장 회의는 해야 하는데 회의실은 만석이라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많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러한 부정 경험을 해결하기 위해 회의실 자동 감지 시스템을 도입했다. 동작 감지 센서로 10~15분 동안 신체 열 감지가 되지 않으면 퇴실 처리되고 이는 자동으로 회의실 예약 시스템에 즉시 반영된다. 이를 통해 즉시 회의실이 필요한 다른 직원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직원들은 회의할 공간을 찾아 헤매는 부정 경험을 줄일 수 있게 되고, 공간이 없어 미뤄뒀던 10분 내외의 짧은 회의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직원들의 업무 반경 내에서 정말 필요한 시스템을 고안해 공간 효율성을 높이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운용한 사례다.

소통은 회의실 밖에서도 이어진다. 서울 잠실에 위치한 우아한형제들 사옥은 의도적으로 회의 공간 앞에 ‘우물가’라는 소통 공간을 마련했다. 보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벽이나 파티션으로 가로막힌 업무 공간이 나오는 것과 반대되는 공간 구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소통 공간이 이어지다 보니 직원들은 복도를 오고 가며 마주치고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다. 또 회의 시작 전과 회의가 끝난 후에도 동료들과 가볍게 스몰 토크를 하며 여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회의 앞뒤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적 여백을 마련해두는 것이다. 이는 ‘잡담이 곧 경쟁력’이라는 우아한형제들의 기업 철학을 공간에 옮겨온 것이다.

소통 공간을 구현하기에 면적의 한계가 있는 저층 오피스의 경우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구글 베이뷰 캠퍼스(Bay view campus)의 층간 연결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1층과 2층을 가로질러 연결하는 마더십 스페이스(mothership space)는 일반적인 계단에 모함(mothership, 母艦) 형태의 넓은 공간을 더했다. 이 공간에서 직원들은 간단한 회의를 하고, 휴식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각 층을 연결하는 계단의 기능을 하면서도 공용 공간과 업무 집중 공간을 구분 짓는 레이어 개념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PM 6: 00 퇴근

직장 밖의 삶까지 이어지는 오피스 경험

최근 오피스에서 두드러지는 공간적 변화는 오피스와 상업 시설의 기능이 결합된다는 점이다. 단순히 업무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개인의 풍부한 삶의 밀도를 위한 상업 시설의 기능이 함께 갖춰진 업무 시설이 경쟁력을 갖게 됐다. 여의도에는 ‘더현대서울’이라는 단일 건물이, 용산에는 ‘용리단길(삼각지역~신용산역을 잇는 맛집 거리)’이라 불리는 상업 시설 거리가 있다. 용산 아모레퍼시픽은 신용산역과 이어지는 저층부에 다양한 리테일 시설이 위치해 있고, 용산 하이브(HYBE) 사옥 최고층에는 사내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프 츠 커피가 입점하는 등 오피스와 상업 시설의 결합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다.

실제로 오피스 설계를 위한 사용자 설문 조사를 진행했을 때 세대 구분 없이 맛집, 운동 시설, 학습/교육공간, 리테일 시설을 선호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다만 젊은 세대들은 시설의 다양성을 넓혀서 많은 선택지를 제공받기를 원하는 특징이 두드러졌다. 내가 고른다는 주도적인 감각, 즉 자율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문화적 인프라가 풍부하지 않은 비수도권에 위치한 오피스 시설일수록 강해진다.

‘워라밸’ ‘부캐시대’와 같은 개념이 대두되면서 기업의 정량적인 복지뿐 아니라 개인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 정성적인 복지까지 중요해졌다. 예전에는 대기업에 입사하면 그 이름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됐다. 그러나 지금은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데 반해 정년퇴직 기간은 그대로이거나 체감상 더 짧아졌기 때문에 직장이 갖는 아이덴티티와 별개로 개인이 어떤 관심사와 취향을 갖고 있는지가 강점이 되는 ‘직업인’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근로자 개인은 시장에서 대체되지 않기 위해 자기 계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본래의 업무 숙련도를 높이는 학습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개인 업무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또 다른 분야에 도전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미래 오피스에서는 직원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기도 하고, 직원들이 다양한 도전을 해볼 수 있도록 취미 공간을 마련해 직원 개인을 존중한다는 제스처를 보여줄 수 있다.


만능 오피스보단 기업만의 철학이 드러나야

하지만 무조건 최고의 서비스로 점철된 만능 오피스만이 능사는 아니다. 생산성을 높여주는 유일무이한 해결책이란 없다. 그 기업이 중점적으로 비중을 두고자 하는 가치와 철학이 공간에 드러날 수 있도록 공간 사용자인 직원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오피스 설계 시 주안점으로 삼을 뿐이다.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을 두고 다투는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한 공간을 시간 내서 방문하게 만들고 오래 머무르게 하려면 그곳만의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 그 공간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재가 많아질수록 그 공간은 힘을 잃는다. 업무 공간 역시 그렇게 변하고 있다. 이 오피스를 시간 내서 방문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줘야 한다. 꼭 오피스를 가지 않아도, 그 일이 아니더라도,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무한대로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오피스 공간을 만들어가는 이해관계자들이 사용자 경험을 고려한 시스템을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은 일하는 방식에도 다양한 옵션이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일을 대하는 태도는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다. 공간은 이를 지속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공간은 생명력을 가진 유기체이므로 단순히 하드웨어만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조직의 유연한 시스템이 있어야 오피스 공간은 무한한 생명력을 갖는다. 좋은 동료가 최고의 복지이듯, 좋은 공간 역시 최고의 복지가 될 수 있다.
  • 심소연 | 간삼기획 사업기획팀 팀장

    필자는 업무 공간, 상업 시설 등 건축 공간 안에서 다양한 내러티브를 만들어가는 공간 기획자다. 간삼건축 브랜드팀을 거쳐 간삼기획에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마스터플랜, 삼성전자 DS부문 미래오피스 컨설팅, 하나금융그룹 청라 HQ 공간기획 등 다수의 오피스 관련 컨설팅을 진행했다. 필자가 소속된 간삼기획은 간삼건축의 기획 자회사로서 공간 브랜딩, 사업기획, 상환경컨설팅 등 공간 기획 업무를 주력으로 하고 있다. 최종 공간 소비자 관점에서 가치를 규명하고 운영사업 확장을 통해 ‘간삼’이라는 일관성 있는 브랜드 경험을 만들어가고 있다.
    ssy299@gans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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