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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역할과 자질

CEO는 속도보다 방향 결정하는 자리
사안마다 ‘만일 그렇다면?’ 통찰을

김성준 | 377호 (2023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CEO는 달성하기 어려운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홀로 조직을 꾸리고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회사의 전략 방향을 주도적으로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며 자신이 스스로에게 역할을 부여해야 하는 자리이기에 어렵다. 그만큼 선도자로서 본질을 명확히 짚어내고, 조직이 가야 할 방향성을 안내하는 힘이 중요하다. 이와 동시에 본인의 이상을 실질적으로 구현해 나갈 조직을 디테일하게 통찰하는 눈이 필요하다. 각 본부/부서가 어떤 상태인지를 명확히 알고 각 조직을 어떻게 지원하고 독려해야 하는지에 관해 선명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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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삼성그룹은 책 『사장학 개론』을 사내 내부용으로 엮었다. 5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인데 삼성 임직원 대다수가 그 존재 여부를 알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만들어져 삼성그룹 사장단과 핵심 경영진에게만 제공됐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리더 사관학교인 삼성그룹에서, 오랜 수련을 거쳐 사장 자리에 오른 이들에게 이런 책이 별도로 배포됐다는 얘기는 그만큼 CEO라는 자리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지를 반증한다.

다른 그룹에서 있었던 일이다. 역량이 매우 탁월해 많은 성과를 거둔, 그룹 내에서도 촉망받는 부사장이 있었다. 누구나 그가 사장으로 승진하리라 여겼고 실제로 그리됐다. 승진하고 얼마 후, 그는 그룹 인사팀에 전화 한 통을 걸어 이렇게 말했다. “부사장으로 일할 때까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했습니다. 윗사람을 견주어 보면서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해야지’ 가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장이 되고 나서 휘하 임원들, 동문들과 축하주를 마시느라 2개월이 지났습니다.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눈앞이 깜깜해지네요. 나는 사장으로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지?라고 자문해 보니 길이 안 보입니다. 갑자기 식은땀이 났습니다. 제 어깨 위에 임직원 수천 명의 생계가 달려 있는데 이렇게 아무 생각이 없었다니… 리더 생활은 오래 했지만 사장은 초보입니다. 초보 사장을 위한 가이드를 만들어 주길 바랍니다.”

조직에서 역할은 그 개인이 담당하는 기능으로 정의된다. 또한 상사, 동료, 부하들이 기대하는 바에서도 나온다. 고위 경영진으로 올라갈수록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전략으로부터 역할이 상당수 규정된다. 그런데 CEO는 독특한 자리다. 회사 전략 방향을 주도적으로 고민하고 결정하는 자리이기에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그만큼 어려운 자리다.


CEO의 자질

그토록 어려운 자리를 수행하는 CEO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여러 학자와 실무가가 다양한 역할을 꼽고 있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데이비드 푸비니 교수는 이해관계자 관리, 변화 관리, 이사회 관계 구축, 사회적 책임, 다양성 관리, 롤모델링 등을 꼽았다.1 우리나라에서 CEO의 자질을 오래 실천적으로 고민한 이는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다. 삼성그룹은 그가 업무적으로 지시하거나, 강조하거나, 술회한 말 중에서 중요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호암어록’이라는 자료로 보전해 왔다. 그 어록 536건을 텍스트 분석 기법으로 살펴보면 인재를 중심 화두로 거론한 어록이 비율로는 46%나 차지하고 있다.2 그 스스로 “나는 내 일의 90% 이상을 인사, 그리고 사람을 적재적소에 넣고 그들의 능력을 찾아내는 데 썼고 이런 일을 잘하려고 노력해왔다”고 밝힐 정도로3 그는 인간을 깊이 고민해 왔다. 그중 과반수 이상이 경영자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를 설파한 내용이었다. 초창기에는 그 홀로 사장 역할을 했는데 점차 계열사가 늘면서 누구에게 사업을 맡길지 고민하는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2007년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과의 인터뷰에서 “판이 커지면 사람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와 같다. 그는 “사업 초기는 원맨쇼와 같다. 할 일을 구상하는 것도, 실행하는 것도 나다. 그러다가 회사가 커지면 주로 사업 구상을 하게 된다. 나중에는 사업 구상도 남에게 넘기고 자신은 적임자 찾기에 몰두하는 때가 온다”고 설명했다.4

베이조스의 말처럼 이병철 회장은 계열사가 늘어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CEO가 갖춰야 할 자질을 집중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CEO에 따라 사업과 조직의 성장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사장이라면 인격과 덕망을 갖춰야 하고, 주변의 의견을 많이 듣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며,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주위 사람들을 참여시켜야 하고 목표를 향해서 단결시킬 줄 알아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정치에 야합하지 말고 초연해야 하며, 공과 사를 구분하고 부정부패를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세계를 한눈에 굽어보는 넓은 시야를 갖춰야 하고,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안목과 지혜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CEO에게 필요한 자질로 다양한 요소가 거론될 수 있다. 그렇다면 탁월한 CEO들이 갖춘 핵심적 요소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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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도자로서의 사고력

우리나라 대다수 기업은 오랫동안 빠른 추격자 전략(fast follower)을 구사해 왔다. 선진 기업이 찾아 놓은 표준과 기준을 우리에게 들여와 쫓아가는 방식이었다. 업계의 표준과 기준, 그리고 정답이 알려져 있어서 빠르게 구현하면 됐다. 이런 전략 아래서는 머리를 써서 방향성을 짚어내는 일보다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어서 목표한 바를 달성해 내는 추진력이 중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 임원들에 비해 우리나라 임원들은 다른 역량보다 실행력이 압도적으로 발달한 경향이 있었다.5

그런데 최근, 적지 않은 기업들이 선도자 전략(path finder)으로 전환하고 있는 중이다.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탐험하고 개척하는, 업계 표준과 기준조차 설정돼 있지 않아서 스스로 이정표를 만들어가야 하는 조직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CEO에겐 사고력이 더욱 중요하다. CEO에게 필요한 사고력은 크게 본질을 명확하게 짚어내는 힘과 조직이 가야 할 방향을 구상하는 힘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본질을 명확하게 짚어내는 힘. 탁월한 CEO들은 명확한 사고가(Clear Thinker)다. 일상적으로 사용하지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개념들을 명확하게 정의한다. ‘혁신’이란 단어가 대표적이다. 많은 조직이 ‘혁신합시다’라고 강조하지만 정작 혁신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하는 조직은 드물다. 일반인들은 혁신을 매우 협소하게 암묵적으로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전례 없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내는 것’ ‘새로운 비즈니스 장르를 탄생시키는 것’이라 가정한다. 예컨대, 스티브 잡스가 2007년에 아이폰이라는 전무후무한 장르를 내놓은 일을 연상하곤 한다. 이와 같은 암묵적인 가정은 임직원의 생각을 협소한 울타리로 가두고 손발을 수갑으로 채울 수 있다. 연구개발과 신사업 부서의 구성원들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라고 지레 포기한다. 또 스태프 조직의 구성원들은 본인과 혁신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렇기에 CEO가 매년 신년사에서 혁신을 선언하고, 매번 경영 회의에서 강조하며 구성원들에게 촉구하지만 정작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혁신하자’는 경영진의 의도가 아래로 타고 내려가면서 곡해됐기 때문이다. 소위 이노간다(innoganda; innovation과 propaganda의 조합어)6 , 즉 혁신이 그저 선동 문구에 그치는 이유다.

반면 필자가 만난 탁월한 CEO들은 혁신에 관한 관점이 뚜렷했다. 일례로 어느 CEO는 혁신을 오래 고찰한 자신의 통찰을 이렇게 밝혔다. “많은 경영자가 혁신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혁신의 과정은 신경 쓰지 않고 결과만 강조합니다. 그러면 진짜 혁신이 구현될 수 있을까요? 조직에서 혁신이 출현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혁신은 아주 작은, 그래서 조직 내부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미세한 시도가 모이고 쌓였을 때 나옵니다. 기존과는 조금이라도 다르게 해보려는 마음의 습관이 길들 때 나옵니다. 구성원들이 자기 업무에서 작은 것도, 정말 사소한 아이디어를 내보고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만 비로소 혁신이 출현할 수 있습니다”.

탁월한 CEO들은 혁신의 보편적 정의(일반적 정의)를 두루 살펴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종사하는 산업, 회사 상황에 맞게 세밀하게 정의(맥락적 정의)하고 있었다. 또한 혁신의 유형을 구분해 사례를 제시하고, 부서와 기능을 막론하고 임직원들이 ‘우리에게 혁신이란 무엇인가? 그래서 나는 무엇을 시도해볼 수 있는가?’를 피부에 와 닿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젊은 창업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기업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의 CEO이자 챗GPT의 아버지 샘 올트먼은 창업자들에게 명확한 사고를 강조한다.7 아무리 잠재력이 큰 아이디어를 갖고 있더라도 이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하면 투자금을 유치하기 어렵고, 채용도 힘들다. 고객들에게 자사의 서비스를 매력적으로 소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창업가들이 본질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그걸 왜 만들고 있는가?” “누가 그 제품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가?” “시장의 규모와 성장 속도는 어떤가?” “10년 후에는 그 시장이 어떻게 변화해 있을 거라 예상하는가?” “그런데 왜 창업을 하려 하는가? 이 일에 당신의 사명은 무엇인가?”

조직이 가야 할 방향을 구상하는 힘. 오늘날 경영 환경은 더욱 불확실하고 복잡다단하며 모호하게 변화하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어두운 밤, 격한 풍랑 가운데서도 CEO는 함선의 조향타를 제대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

2013년 GE그룹 이사회는 제프리 이멜트의 후임자를 찾을 때, 방향성을 짚는 사고력을 가장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선정했다.8 그들은 “격렬한 경쟁 환경에서 당신이 CEO라면 GE를 어떻게 포지셔닝하고자 하는가?” “당신이 추진하고 싶은 전략적 변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후보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이 측면에서 가장 탁월한 자질을 갖춘 우리나라 경영자는 바로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이다. 세상에 발표한 그의 유일한 수필집 제목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일 만큼9 그는 생각하는 힘을 강조했다. 수필집을 텍스트 분석 기법을 활용해 살펴보면 두드러진 사고 패턴이 드러나는데 바로 선견력(先見力)이다. 미래에 발생 가능한 사건이나 결과를 미리 추정하는 힘을 말한다.

그는 ‘경영’이란 단어를 언급할 때 ‘미래’ ‘상황’ ‘환경’ ‘예측’ ‘기회’ ‘선점’ ‘성장’ 등을 함께 빈번하게 사용했다. 이로 미뤄 볼 때 그에게 경영이란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지금 이 순간으로 앞당겨서 내다보고, 미리 대비하고 준비할 바를 모색하고 챙겨서 기회를 선점하는 행위’였다. 이를 바탕으로 기업이 가야 할 방향성을 눈에 선하게 그려내듯 구체적으로 구상하곤 했다. 대표적으로 그는 30년 전 1~2세대 이동통신을 시도하던 시절에 4~5세대 이동통신을 내다봤다. 21세기는 물이 부족할 것이기에 수천억 원을 투자해서 음용수를 연구하라고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자동차는 더 이상 기계가 아니라 전자기기가 될 것이라 내다보고 지능형 자동차를 꿈꿨다. 그와 더불어 배터리 사업을 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탁월한 CEO들은 이처럼 우수한 선견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그와 같은 사고력을 길러왔을까? 그들에게서는 공통적으로 3가지 습관이 관찰됐다. 첫째, 그들은 민감한 시대정신을 가지려 부단히 애썼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가 켜켜이 쌓여서 다가오게 될 그 언젠가이다. 현재 벌어지는 변화와 동향을 정확히 평가하지 않고서는 미래를 내다보기 어렵다. 시대 변화를 냉정히 관찰하면서 시대가 요구하는 바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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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역사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 내가 만난 탁월한 경영자들 중에서 우리나라, 서양, 동양 등의 역사를 탐독하거나 미술사 또는 음악사 등에 조예가 있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한 산업의 태초부터 지금까지 역사적 변곡점을 꿰차고 있거나 기술적인 쟁점의 변화를 초장부터 종장까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흔히 역사의 효용을 ‘과거를 길러 미래를 내다본다’라고 말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희곡 템페스트에서 “과거는 다가올 이야기의 서막이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과거 역사가 현재 맥락을 형성하고, 이는 다시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탁월한 경영자들은 이 같은 역사 감각을 바탕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습관을 길러 온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의 짧은 수필집에서도 ‘역사’라는 단어가 32번이나 등장한다. 이 단어는 대다수가 과거를 살펴서 미래를 내다보고, 그래서 현재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를 모색하는 맥락에서 사용됐다. 일례로 1800년대 조선이 펼친 쇄국 정책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 50년 이상 국가적 발전이 뒤처졌음을 지적하면서 그는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가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신사유람단을 해외에 파견했던 마음으로 잠재력 있는 인재들을 세계 여러 나라로 파견해서 현지를 보고 배우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0 그 사유의 결과가 바로 삼성의 지역전문가 제도이다. 이는 삼성의 글로벌 경영에 크게 기여해 왔다고 평가받고 있다.

셋째, ‘만일 그렇다면?(if – then)’을 계속 숙고하면서 여러 가능한 시나리오를 모색하는 경향이다. 한 CEO는 이렇게 말했다. “뉴스와 신문을 접할 때마다, 임원들에게서 업계와 기술 동향을 들을 때마다 계속 머리가 돌아갑니다. 만일 경쟁사가 그런 액션을 취하면 이 산업 지형이 어떻게 변화할까? 만일 그 신기술이 비용 효율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면 무슨 일이 펼쳐질까? 만일 그처럼 법적 제도가 바뀌면 우리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같은 질문들이 끊임없이 머리를 휘몰아치거든요. 그뿐만 아니라 거시적이고 간접적인 질문도 계속 떠오릅니다. 학령 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들면, 온난화가 가속된다면, 강대국의 패권 전쟁이 격화된다면,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들이죠.”

2. 디테일한 조직 통찰력

앞서 살핀 대로 CEO는 사고력을 바탕으로 주도적으로 방향성을 구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방향성을 실제로 구현하는 개체는 무엇인가? CEO가 그리는 방향성이 아무리 타당하고 멋지다 하더라도 조직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 이상을 달성할 수 없다.

어느 그룹사가 내부적으로 ‘성공하는 CEO, 단명하는 CEO’라는 주제의 연구를 진행했다. 수십 개 계열사의 역대 CEO를 대상으로 오랫동안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해 탁월하게 성과를 내며 장수하는 CEO들의 공통적 특성을 규명하고자 했다. 이를 바탕으로 CEO 후보자들을 평가하고, CEO로 선임하고자 할 때 무엇을 유의해야 하는지 고려하고자 했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CEO가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회사 성장 비전을 타당하게 수립하는 역량에 있어서는 양자 간 별다른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조직 전체가 그 방향으로 일관되게 전진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역량은 단명하는 CEO가 현저히 낮은 경향이 있었다. 단명하는 CEO들은 성장과 변화를 만들어내려는 CEO의 열정과 의지를 다수 구성원이 체감하게 하거나 구성원들로부터 깊은 공감을 끌어내고 변화에 동참시키는 노력이 부족했다. 아울러 그 방향성에 맞게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고, 일하는 방식을 개선해 나가는 측면에 주의와 에너지를 쏟지 않았다. 반면 탁월한 CEO는 회사 비전을 명확하게 수립할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을 동참시켰다. 함께 모여서 회사가 처한 상황, 고객들의 기대, 경쟁자들의 움직임, 기술의 변화 등을 논의하고, 경영진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으며,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지를 수시로 소통했다.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변화에 따르는 우려, 걱정, 불안을 충분히 들었다. 그것을 교조적으로 설득하기보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수용하고, 이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키려 노력했다. 각 조직이 어떤 태도와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지를 유심히 살피면서 비전 달성에 걸맞은 구조와 문화를 설계하고 가꿔 나갔다.

다시 말해, 아무리 좋은 이상도 CEO 혼자서만 북을 치고 장구도 치며 바쁘게 동분서주해서는 성과를 낼 수 없다. 조직이 움직이지 않는 한 그의 이상은 그저 헛된 몽상으로 전락하고 말 가능성이 높다. 결국 CEO는 회사를 통해서 이상을 구현하고 성과를 내는 존재다. CEO에게 ‘조직 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필자는 이 단어를 지양하고 대신 ‘조직 통찰력’이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흔히 조직 관리라 하면 ‘조직을 강하게 장악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암묵적인 가정은 빠른 추격자 전략을 구사하던 시절의 유산이다. 선도자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에서는 그 같은 정의가 결이 맞지 않는다. 조직 통찰력은 우리 조직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 객관적으로 조망하고 CEO로 구상하고 있는 방향성을 고려할 때 조직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구상하는 힘을 의미한다.

필자가 기업 현장에서 만나는 경영진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한 그룹은 매우 탁월해서 CEO 후보감으로 거론되는 집단이다. 다른 그룹은 조직에서 안타까운 이들로 오랫동안 조직을 위해 헌신했으나 균형을 잃어서 조직이 망가지고 성과가 나질 않는 집단이다. 그들과 일대일로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될 때 필자는 “지금 담당하는 조직의 상태는 어떠한가?”라고 질문을 하곤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두 집단 간에 극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후자는 이 질문에 말문이 잠시 막힌다. 잠시 후 답변을 하려 하지만 구체성이 매우 떨어지고 모호하다. 자신이 담당하는 조직의 상태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전자는 그 답변이 매우 구체적이다. 어느 경영자는 본인 회사의 현재 상태를 세세하게 언급하면서 이렇게 비유했다. “우리 산업은 F1 레이싱이에요. 그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고 변화가 심합니다. 저는 그 차에 올라타서 운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이싱 선수가 자기 차의 특성과 상태를 모르면 필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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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만난 탁월한 CEO들과 그 후보자들은 조직의 상태를 매우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구상하는 방향대로 조직이 나아갈 수 있도록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자신만의 통찰을 갖고 있었다.

한 회사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사업부가 필자를 초대해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 사업부는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인재를 끌어모으고 조 단위 투자액을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성과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조직 차원의 정신과 태도, 일하는 방식이 목적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은 사기가 크게 떨어져 퇴사율이 급증했다. 부서와 부서, 팀과 팀 간에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지 않아서 업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확인되지 않은 악성 루머들이 조직을 떠돌았고, 구성원들은 불안감도 심해서 업무에 몰입하지 못했다. 사업부 경영진과 관리자들은 자기 보신에만 집중하고 있었고, 정치 싸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필자가 몇 주에 걸쳐 조직을 관찰하고 진단한 결과를 놓고 CEO와 얘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이 회사의 CEO는 엔지니어 출신인데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명징함을 좋아했다. 그뿐만 아니라 명확한 정답이 없는 분야인 사람과 조직에도 깊은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새로운 방향성을 설정하고 임직원이 수천 명에 달하는 회사를 변화시켜 나가고 있었다. 해당 사업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현상 또한 객관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을 보좌하는 스태프 부서로부터 상세하게 보고를 받기도 했지만 그가 조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예의 주시하고 있었던 덕분이기도 했다. 이 CEO는 외부인 자문과 더불어 그만의 식견을 바탕으로 해당 사업부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개입(intervention) 방법을 적용해 실행해 나가고 있다.

조직에 관한 통찰력은 이건희 회장에게도 두드러지게 관찰되는 특징이었다. 1993년부터 신경영을 외치면서 그룹을 변화시켜 나갈 때, 그는 각 계열사의 상태와 해결 대안을 매우 통찰력 있게 조망하고 있었다. 그는 조직을 인간이 겪는 여러 병증으로 묘사했다. “우리 그룹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회사가 전자, 중공업, 건설, 종합화학이다. (중략) 전자는 암 2기다. 삼성중공업은 영양실조다. 자금과 기술자만 좀 더 넣고 노력하면 살아날 수 있다. 건설은 영양실조에 당뇨병이다. 더 열심히 뛰어야 되고 사람을 많이 넣어야 된다.”11 경영자에게 방향성을 짚는 사고력이 ‘앞심’이라 한다면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조직에 관한 통찰력은 ‘뒷심’이라 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앞심과 더불어 뒷심을 갖췄기에 실제 탁월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MS)를 대대적으로 변화시킨 사티아 나델라도 조직 통찰력이 탁월한 인물이다. 2014년 MS 역대 세 번째 CEO로 임명된 그는 오랫동안 집중해왔던 개인용 컴퓨터 중심의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MS가 지속해서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클라우드, 플랫폼, 모바일로 전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면 실리콘밸리에 있는 작은 스타트업들뿐 아니라 숙명적 라이벌인 애플과도 적극적으로 협업할 수 있어야 하고, 조직이 그 방향에 맞게 움직여야 했다. 그는 조직의 현재 상태를 면밀하게 살폈다. “관료주의가 혁신을 대체했고, 사내 정치가 팀워크를 대신했다.(중략) 우리 조직에는 융통성이 없었다. 직원들은 회의실 안에서 자기가 모든 내용을 알고 있고,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증명해야만 했다.(중략) 직급을 뛰어넘는 회의를 열기는 어려웠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 몇 단계 아래 직급에 있는 사람의 에너지나 창의성을 활용하고 싶으면 그의 상사를 불러야 했다. 그렇게 계급이나 서열이 조직을 지배하면서 자발성과 창의성이 고통받았다”12 특히 그는 “직원들은 이권 다툼을 하는 조직 폭력배처럼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상태가 큰 문제라 여겼다. 내부 부서 간에도 협업이 안 되는 상태를 넘어서 서로 맹렬히 싸우고 경쟁하고 있는데 외부 기업들과 개방적으로 협업할 리가 없다고 봤다. 전면적인 조직 쇄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CEO의 C는 문화(Culture)의 약자다. CEO는 조직 문화를 담당하는 큐레이터다”라고 단언했고13 조직의 정신과 태도, 일하는 방식을 전면 개선하기 시작했다.

CEO는 최고의사결정권자로서 각 본부/부서가 어떤 상태인지를 명확히 알고 각 조직을 어떻게 지원하고 독려해야 하는지 선명한 관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 CEO에게 요구되는 조직 통찰력이 궁금하다면 다음 5가지 질문에 관해 본인이 관점을 갖추고 있는지 체크해보자. ①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에 구성원들이 공감하고 있는가? ② 각 산하 조직은 그 방향에 연계한 목표를 세우고 실행해 나가고 있는가? ③ 산하 조직 간 역학 관계가 어떠한가? ④ 그 방향에 맞는 일하는 방식을 갖추고 있는가? ⑤ 이 회사의 최고의사결정권자로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리더십은 진공 상태에서 발휘하는 행동이 아니다. 철저히 맥락으로부터 나온다. CEO로서 구상하는 방향성, 이를 실질적으로 이뤄 나가야 하는 조직의 상태를 면밀히 파악해야 비로소 회사 전체를 이끌어 가는 선명한 통찰과 힘이 생길 수 있다.
  • 김성준 | 국민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필자는 현재 국민대 경영대학원에서 조직 문화와 리더십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LG그룹, CJ그룹, 기아에서 인사 자문을 하고 있다. SK그룹 SUPEX추구협의회에서 임원 진단과 분석을, 롯데그룹에서 임원 육성을 담당했다. 저서로는 『조직문화 통찰』 『최고의 조직: 리더가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등이 있다.
    leadership@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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