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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mini box : 지역 축제 1000개 시대

“지역 콘텐츠를 스토리텔링으로 잘 엮는 것이 핵심”

이창식 | 374호 (2023년 08월 Issue 1)
움츠렸던 유희본능이 다시 폭발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각종 페스티벌이 비대면 무관중 체계로 축소 운영됐다가 다시 활성화되면서다.

3년간의 비대면 시기를 거치며 축제는 원형을 유지하기보다 새롭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축제가 전통과 고유문화를 고스란히 이어갈 수 있도록 창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점은 여전하다. 전통의 근간은 지키되 스토리텔링이 있는 짜임새 있는 축제 프로그램을 개발해 이전보다 더 매력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지역, 인간, 특산품이 균형 있게 어우러져야

축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축제를 통해 요즘 세대는 그간 축적된 지식과 문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전통 지식을 미래로 펼쳐가는 촉매제와 같은 구실을 하는 셈이다.

특히 지역 축제는 지역민 결집, 지역 홍보, 문화관광 콘텐츠 축적, 지역에 연고가 있는 기업의 상품 개발 등을 이끌어내며 지역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보령머드축제, 이천도자기축제, 금산인삼축제, 함평나비축제, 화천산천어축제, 삼척정월대보름축제 등은 지역 특성을 잘 살린 우리나라 대표 축제로 자리 잡았다.

축제가 성공적으로 유지되려면 지역, 인간, 특산품 세 요소가 고루 어우러져야 한다.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지속성 있는 축제가 되기 어렵다. 대구약령한방축제, 천안흥타령축제, 영동난계국악제, 음성품바축제, 보은속리축전, 괴산문화제, 진천화랑문화제, 증평들노래축제, 허왕후신행길축제, 고창청보리밭축제, 옥천지용제, 단양온달문화제 등 다양한 지역 축제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딱히 끌리는 ‘킬러 콘텐츠’는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여느 지역 축제와 다를 바 없는, 비슷한 콘텐츠들로 채워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주직지축제, 충주세계무술축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등도 이름처럼 지역이 선점하고 있는 문화유산을 내세웠지만 딱 부러진 마인드마크가 보이지는 않는 실정이다.

지역의 인문학적 가치 담긴 스토리텔링이 필수

지역 축제의 정체성과 미래를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역을 관통하는 인문학적 콘텐츠를 찾아내는 것이 필수다.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경쟁적으로 ‘지역 홍보하기’와 ‘지역 상품 명품화’가 최우선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정체성을 담아낸 인문학적 기반을 소홀히 한 채 지역 축제가 열린 사례가 많았다.

청주직지축제의 ‘직지’는 현존 세계 최고의 가동(可動) 금속활자본의 증거다. 인류의 인쇄, 기록 문화에 있어 아주 탁월한 기술적 변화를 보여준다. 이에 힘입어 청주직지축제는 청주예술전당과 고인쇄박물관에서 무심철학, 인쇄선도, 기록유산을 키워드로 여러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다만 아직은 책과 기록물을 전시하는 박람회적 발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직지와 금속활자의 가치를 스토리텔링을 통해 담아내는 방식으로 축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우리 지역에는 어떤 문화유산이 있다’며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왜 지역이 그런 문화유산을 갖게 됐는지, 지역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정신인 무엇인지 담아내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최자가 기업이든, 지역이든 페스티벌에 스토리텔링은 성공을 위한 핵심적 요소다. 시인 정지용을 기리고 추모하는 옥천지용제, 고구려 문화유산을 활용해 온달과 평강공주 스토리를 골자로 한 단양온달문화제,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한 명인 박연의 업적을 기리는 영동난계국악제는 지역을 연고로 둔 인물을 내세워 어느 정도 인지도를 높인 지역 축제들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다 보면 역시 흡인력이 부족하다. 고구려 유산인 벽화를 축제 즐길 거리 개발에 좀 더 활용하거나 박연과 관련한 지역의 국악 명소와 소리 스토리텔링을 입체적으로 결합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올해로 17번째를 맞은 장수 한우랑사과랑축제는 앞선 축제들보다 지역적 특색은 덜하지만 지역민의 이해를 조화롭게 아울러 페스티벌로 발전시킨 예로 꼽힌다. 해당 지역은 사과 농가가 농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우와 사과는 어찌 보면 공통점이 없는 품목이지만 사과도 빨간색이고 한우 쇠고기도 붉은빛인 데서 축제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나아가 오미자, 토마토 등 지역 농산물도 한데 묶어 ‘레드 푸드’라는 핵심 아이디어로 브랜드 네이밍을 했다.

현재 양측 농가가 협업하며 새로운 축제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지역 차원에서 단순히 방문 관광객 숫자나 특산물 생산 판매량 위주의 점수 매기기에만 집중한다면 이런 새로운 축제를 발굴해내기 어렵다. 관련 부처의 정량적 평가 기준에 얽매이기보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

경북 상주에서 매년 12월에 열리는 상주곶감축제도 좋은 예다. 일반적인 지역 축제라면 특산품에 얽힌 스토리를 발굴하고 개발하기보다 기존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상주곶감을 홍보하고, 판매하기 급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주시는 상주곶감이 몸에 좋다는 『조선예종실록』을 바탕으로 임금 곶감 진상품을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관련 전문가들을 상주로 불러들여 꼼꼼히 고증해 각종 콘텐츠를 만들었다. 이러한 지역민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국고 예산을 확보해 외남면에 곶감공원과 곶감박물관을 건립했다. 축제를 위해 콘텐츠와 스토리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해당 지역의 또 다른 문화 콘텐츠 발굴과 활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생긴 것이다.

한바탕 놀아야 지역에 스며든다

축제의 가치는 주민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고, 관광객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데 있다. 평창송어축제와 태백눈꽃축제는 지역애(地域愛), 곧 공동체의 자부심에서 출발한 놀이형 축제다. 송어축제는 1963년 우리나라 최초로 송어 양식에 성공한 평창을 알리자는 취지에서 개최하기 시작했다. 오대천 물을 얼리고 눈을 뿌린 곳에서 관광객들은 송어를 잡고 눈썰매를 타고 놀며 시간을 보낸다. 매년 1월 강원 태백시에서 여는 태백눈꽃축제는 눈조각 경연대회, 눈사람 만들기 대회 등을 열며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놀이는 흔히 비생산적이고 시간 낭비로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근대사회에서는 생산성만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분위기에서 놀이는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단순 쉼’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축제에서의 놀이 콘텐츠 개발은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해 관심을 높이고 지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원동력이 된다.

축제는 방문객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주민과 관광객들이 축제에서 한바탕 재밌게 놀아야 한다. 즐겁게 놀아야 축제와, 지역에 비로소 스며든다. 그래야 지역에서도 원하듯 기념품이나 특산품 구매 등 지역의 경제적 이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지역 축제 1000개 시대

한국에서 개최되는 축제는 어느덧 1000여 개가 넘었다. 이 가운데에 3일 이상 열리는 축제만 해도 절반이 된다. 지자체 230개 시, 군, 구로 보아 한 곳당 4개 이상 열리는 셈이다. 문체부가 지원하는 축제들은 대개 그 지역의 문화 자본을 투입해서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것이 목적이다. 발굴해낼 관광자원이 풍부하고 매력도가 높은 지역을 지원 대상으로 선정해놓고 정작 음악제나 영화제, 오페라축제 등 문화 예술을 축제의 원천으로 삼는 것이 대부분이다. 융합적 강점을 살리되 지역 정체성을 드러내는 축제에 비중을 둬야 한다. 축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는 다음의 요소들이 고려돼야 한다.

첫째, 융복합은 경쟁력의 원천이다. 지역 축제의 융복합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재해석이 필요하다. 독창적 주제가 부족하고 선심성 이벤트형 축제 만들기로 예산이 낭비되는 폐해를 줄이기 위해 축제 관련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 축제에 대한 전반적인 발전 방향 수립을 통해 활성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지역 축제의 킬러 콘텐츠를 기획하고 실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미래 지향적 도전에는 기업, 지자체, 지역문화재단, 관련 위원회, 전문가 집단 등이 모두 어우러진 융합적 피칭 워크숍이 필요하다.둘째, 기존 연구 성과를 통해 축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융합적 연구를 통해 풍부한 소재를 발굴해내리라 기대된다. 지금까지 지역 축제 연구는 질적·양적 면에서 크게 확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료를 해석하고 응용하는 측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은 실정이다.

셋째, 축제의 본래 취지를 퇴색시키는 역기능은 최소화해야 한다. 예컨대 여러 지역 축제에서 야생동물이나 조류를 위협하는 풍선 날리기를 하거나, 지나친 소음을 발생시켜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최근 논란이 된 값비싼 통돼지 바비큐 사례처럼 지역의 바가지 상혼은 축제의 악이다. 철저한 대책이 필요하다.

한 가지 해결 방안은 초기에는 지원을 받더라도 해가 거듭될수록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듯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역 축제를 통해 문화 정체성을 올바로 세우고 협력과 조화, 창조의 시대정신을 전승 맥락으로 확대하는 작업이다.

무엇보다 지역 축제와 관련된 지역 특화 인문 자원을 수집하고 분석해 고부가가치가 있는 원천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스토리텔링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축제의 관습적 재현을 탈피해 취향이 중시되는 시대 트렌드에 맞춰 가야 한다.

지역 축제의 이미지를 활성화하는 이야기 콘텐츠와 문화 네트워크, 브랜드의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메타버스 기술처럼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의 융복합을 통해 온·오프라인 참여를 병행할 수 있어야 한다.
  • 이창식 | 세명대 미디어문화학부 교수

    필자는 세명대 인문예술대 교수다. 문화재위원과 한국공연문화학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인문학의 상상력과 융합콘텐츠』(글누림) 등이 있다.
    chang-07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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