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바디의 체성분 분석기 시장개척 전략
Article at a Glance - 전략
인바디(옛 바이오스페이스)는 종합병원, 대형 스포츠센터 등에서 쓰이는 전문가용 체성분 분석기 시장에서 전 세계적으로 두각을 보이고 있는 토종 중소기업이다. 지난 1996년 체수분, 체지방은 물론 신체 부위별 근육량까지 분석해 주는 신개념 장비 ‘인바디’를 선보이며, 당시 체성분 분석기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국내 전자의료 기기 시장에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정량적 데이터에 대한 니즈가 컸던 한방병원을 우선 공략 대상으로 삼아 시장 개척에 나섰던 전략이 주효했다. 사업 초창기부터 해외 시장 진출도 적극적으로 나서 현재 전체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수출로 벌어들이고 있다. 특히 일본 시장의 경우, 병원 고객을 직접 발굴하는 데 어려움을 겪자 ‘인바디’를 활용한 학술 논문이 많이 발표될 수 있도록 각종 학회 활동을 적극 지원, 학계의 신뢰를 먼저 얻는 전략을 취해 성과를 봤다. |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남궁용주(이화여대 국제학부 4학년) 씨와 유준수(서강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인바디(InBody)’ 측정 한 번 해보시죠.”
요즘 웬만한 규모의 헬스클럽에서 개인교습(PT)을 받으려면 본격적인 운동 시작 전에 반드시 거치는 단계가 하나 있다. 바로 개인별 맞춤 프로그램을 처방 받기 위해 체성분을 분석하는 일이다. 맨발로 ‘인바디’라 불리는 기계 위에 올라가 양손으로 막대 모양의 전극을 잡고 있으면 1분 안에 각 신체 부위별 근육량과 지방량을 알 수 있다. 팔, 다리, 몸통 등 신체 부위별 근육량은 물론 내장 지방량까지 일목요연하게 분석해 주는 게 ‘인바디’의 특징이다. ‘라이프피트니스(LifeFitness)’ ‘싸이벡스(Cybex)’ ‘테크노짐(Technogym)’ 등 대개 수입산 운동기구가 즐비한 헬스클럽에서 쉽게 마주치는 장비다 보니 ‘인바디’ 역시 으레 외국산 제품이겠거니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장비는 순수 토종 기업에서 독자 기술력으로 만드는 국산 기기다.
1996년 설립한 인바디(옛 바이오스페이스)는 종합병원이나 대형 스포츠센터 등에서 사용되는 전문가용 체성분 분석기를 개발해 현재 72개 국에 수출하고 있는 중소기업이다.1 2014년 기준 일본, 미국, 중국 3개국에 현지 법인을 운영 중이며 영국, 스페인, 핀란드, 브라질, 멕시코, 이집트, 러시아 등 전 세계 53개국에 대리점을 두고 있다. 사업 초기인 지난 1998년부터 수출을 시작한 이 회사는 지난 2011년 이후 내수시장보다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매출액이 더 크다. 작년에는 전체 매출액(개별재무제표 기준) 370억 원2 중 약 55%인 202억 원을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일본, 미국, 중국 3개 판매법인에서 올린 매출액도 약 200억 원에 달한다. 현재 ‘인바디’는 미국 FDA(식품의약국), 일본 JPAL(일본의료기기인증), 유럽 CE(유럽안전인증) 등 선진국 시장에서 요구하는 의료기기 승인을 모두 받았을 정도로 세계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 회사 차기철 대표는 “전 세계 체성분 분석기 시장의 1위 업체는 일본 타니타지만 가정용을 제외한 전문가용 시장만 따지고 보면 인바디가 1위”라고 자부했다. 앞선 기술력을 토대로 우수한 제품을 만들었더라도 시장 개척에 실패한 사례가 많다. 하지만 인바디는 경쟁 제품보다 두 배 이상 비싼 대당 1800만 원에 육박하는 고가 제품을, 그것도 중소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자체 브랜드를 들고 한국 및 글로벌 시장에서 고객 발굴에 성공했다. 국내 전자의료기기 업체로는 드물게 국제 경쟁력을 확보한 인바디의 시장 개척 전략을 DBR이 집중 분석했다.
신체 부위별 측정이 가능한
체성분 분석기 ‘인바디’ 개발
창업자인 차기철 대표는 엔지니어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KAIST에서 기계공학 석사 학위를, 미국 유타대에서 생체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타대 박사과정 시절인 1991년, 차 대표는 인체에 전기를 흘려 보내 측정한 수분량을 토대로 체성분을 측정하는 ‘생체전기저항분석법(BIA·Bioelectrical Impedance Analysis)’을 우연히 접하게 된다. 인체는 몸무게의 약 60∼70%가 전기가 잘 통하는 ‘수분’으로 이뤄져 있다. BIA는 바로 이 수분량에 따라 전기저항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활용, 인체에 무해한 미세 교류 전류를 흘려 보내 저항(Impedance)을 측정함으로써 인체 구성성분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인체를 물이 채워져 있는 커다란 ‘물통’으로 가정하고 전류를 흘려 보낸 뒤 저항값에 따라 실제 통에 물이 얼마나 들어 있는가를 추산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차 대표는 BIA 관련 연구 논문들을 계속 읽어나가던 중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당시 대부분 연구자들은 BIA 연구를 위해 미국 RJL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체성분 분석기를 활용해 얻은 결과치를 논문에 활용하고 있었다. 이 기계는 사람을 눕혀 놓고 한쪽 손과 발등에 전극을 붙여 전류를 흘려 보내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면 사람 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몸통을 직접 측정할 수가 없다. 인체는 몸통, 팔, 다리 등 각 부위별로 길이와 굵기가 다르다. 예를 들어, 얇고 긴 팔에 비해 몸통은 짧고 굵다. 당연히 같은 전류를 흘려 보내도 부위별로 저항값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RJL 방식은 신체의 일부분인 팔에서 다리까지 전류를 흘려 보내 측정한 저항값을 토대로 전체 체성분을 추산했다. 당연히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체성분 산출공식에 성별, 연령 등 경험 변수를 집어 넣어 결과치의 부정확성을 보완한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완벽한 대안은 아니었다. 동일한 사람이라도 성별, 나이 등을 다르게 입력하면 측정값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 대표는 “기존 장비들은 측정한 값이 얼마나 실제 값과 같은지를 나타내는 ‘정밀도(accuracy)’는 물론 반복 측정했을 때 오차 없이 일관성 있는 수치를 나타내는 ‘재현도(reproducibility)’ 모두에서 문제가 있는 기기였다”며 “기계공학과 출신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가 만들면 훨씬 더 좋은 기계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다. 당시 체성분 분석기 시장은 1980년대부터 학문적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해 1990년대 초반 들어 타니타, 오므론 등 일본 기업들이 뛰어들며 시장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었다. 차 대표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고령화 현상과 과체중·비만으로 인한 각종 문제들을 고려할 때 체성분 분석기는 진단 및 예방의학 측면에서의 활용도가 커 성장 잠재력이 높다고 판단했다”며 “태동기 산업인 만큼 기술력만 확실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승부할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차 대표는 이 같은 결심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으며 체성분 분석과 관련해 수많은 임상 실험을 진행했다. 그리고 1995년 1월 한국으로 돌아와 연구소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기계 개발에 착수했다. 양산 체제 구축을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가 관건인 저가의 가정용 체성분 분석기보다는 기술력만 갖추면 도전해 볼 수 있는 고가의 전문가용 체성분 분석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기존 장비의 문제점인 ‘정밀도’와 ‘재현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신개념 장비를 만드는 걸 목표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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