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가 아니면 사람을 속이는 것… 양질의 콘텐츠가 문화사업의 요체죠”

173호 (2015년 3월 Issu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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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혁신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는 2008년부터 유명 전시회와 공연을 기획했다. 2013∼2014년의점핑위드러브는 사진전으로 관람객 10만 명을 넘어서며 큰 흥행을 거뒀다. 올해는 세계적인 추상 작가이자미국의 혼이라 불리는 마크 로스코의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많은 전시회를 성공시킨 비결에 대해 김 대표는철학이 없으면 문화 비즈니스를 하기 어렵다. 수익만 생각해서는 생명력이 짧고 유치해진다고 말했다. 예술의 진정성과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백현(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008까르띠에 소장품전’, 2009앤디워홀, 위대한 세계전’, 2010년 뮤지컬미스사이공’, 2010∼2011색채의 마술사 샤갈’, 2012∼2013에펠탑의 페인트공, 마크리부 사진전’, 2012∼2013불멸의 화가반고흐 in 파리’, 2013피영전’, 2013고갱:신화 속으로의 여행’, 2013∼2014세기의 인물과 날다, 필립 할스만 사진전’.

 

회사 창립 이래로 기획하고 투자한 공연 및 전시회다. 어느 것 하나 뺄 것 없이 모두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수만 명의 사람이 전시회와 공연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전시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이 중 필립 할스만 사진전은 국내 사진전 최초로 관람객이 10만 명이 넘었다. SNS와 블로그 등 인터넷에는 사진전에 대한 호평이 넘쳤고 사진전의 도록은 일찍이 품절 사태를 빚었다. 현재미국의 혼이라 불리는 마크 로스코의 국내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전시회 및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한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를 만나 성공비결을 들었다. 문화예술 전문기업을 운영하는 김 대표는 단호했다. “철학이 없으면 문화 비즈니스를 하기 어렵다. 수익만 생각해서는 생명력이 짧고 유치해진다. 문화 비즈니스를 일반 비즈니스와 똑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본질이지만 문화사업을 이와 똑같이 취급하면 실패한다는 그의 지론은 인터뷰 내내 이어졌다.

 

창업한 계기가 무엇인가.

 

어릴 때부터 그림 등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서울대에서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자연스레 예술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커졌다. 단순히 전시회를 기획하는 것을 넘어 문화사업 전반에 대해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2007년 문화예술 콘텐츠 기업 코바나컨텐츠를 만들었다.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

 

방향이 분명했기에 목표도 분명했다. 단순히 기업의 생존을 넘어 기업 창립 때부터 스스로가 원하는 사업의 최종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사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비전이 확고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사업에 대한 포트폴리오가 뚜렷했던 셈이다. 다른 문화기업이 하는 것처럼 좋은 콘텐츠에 투자하고 전시회를 기획하는 업무에 그치고 싶지는 않았다. 신진 아티스트 발굴, 출판, 전시공연, 홍보, 문화 레스토랑 운영 등 다양한 분야를 계획했다. 이 중 문화 레스토랑 운영만 빼면 창립 때 계획했던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회사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과 업무 편중도를 고려하면 전시회 기획이 가장 많지만 나머지 사업에서도 점차 이익을 확대할 계획이다.

 

회사라는 게 수익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문화산업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코바나컨텐츠를 열 때 코바나보태닉이라는 자회사도 같이 만들었는데 그 이유도 사회기여 때문이다. 전시회 때마다 코바나보태닉에서 커피잔, 엽서, 수첩 등 아트상품을 파는데 수익의 일부를 사회단체에 기부한다. 수익이 많지 않아서 아직까지 기부액이 많지 않지만 야생동물협회와 유기견보호협회 등에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또 문화 소외계층을 초대해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문화의 가치를 믿기 때문이다.

 

레스토랑 사업은 아직 계획 중이다. ‘외국에는 문화를 공유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카페가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왜 이게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한 건데 조만간 실행에 옮길 것이다. 외국의 타쉔, 꼬르소꼬모처럼 문화 콘셉트를 기본으로 한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코바나컨텐츠라는 회사 이름을 지을 때부터 이런 철학을 고려했다. 컨텐츠는 모든 생산물을 일컫는 말이다. 코바나는 하와이의 코나와 쿠바의 하바나의 합성어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도시에서 따온 말이다.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직관적으로 두 도시를 떠올렸을 때 청명한 느낌이 든다.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문화적 기업이 되자라는 생각에서 사명을 지었다. 문화가 너무 부담스럽게 다가가서는 안 되고, 편하게 다가와 일상에서 숨쉴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다.

 

 

지금까지 많은 전시회 및 공연을 성공시켰다.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화 콘텐츠, 그리고 사람에 대한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것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의미에서 코바나컨텐츠가 투자하거나 전시회를 기획할 때의 첫 번째 기준이 콘텐츠의 수준이다. 포트폴리오에 이름을 올릴 때한국에서 몇 번 열렸던 전시회인가’ ‘중복 전시인가’ ‘작품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등을 치열하게 고민한다. 예를 들어 샤갈전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샤갈의 작품 중에서 샤갈의 정신과 가치를 가장 잘 나타내는 작품을 가져오려고 한다. 작가마다 전성기 그림도 있고, 쇠퇴기 그림도 있다. 아무리 이름 있는 작가의 작품이라도 가치가 덜하다고 판단되면 아예 들여오지 않는다.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전시회는 후대에라도 평가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작품의 수준이 낮다면 기획이든, 투자든 그 사업에서 손을 뗀다. 작품을 많이 들여오는 것보다는 작품의 질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한국의 문화예술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에 유명한 사람의 작품을 가져온다고 해서 다 잘되는 시절은 지났다. 작품의 철학과 수준이 있어야만 한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중요한 것은 일류다. 일류가 아니면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질의 콘텐츠를 잘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문화예술 사업을 할 때는 특히 가치에 대한 포커스가 필요하다. 같은 립스틱을 팔더라도 내가 이 제품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서 가격 차이는 엄청나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도 가치가 있으면 대단한 것이 된다. 그게 문화의 핵심이다.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를 실현하는 데 사활을 건다. 문화에는 고급 문화 외에도 저급 문화, 퇴폐 문화 같은 것들도 있다. 우리를 이끌 수 있는 건 양질의 문화다. 이런 문화를 바로 수익과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여기에 대해 많은 딜레마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나는 그걸 양질의 콘텐츠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좋은 작품들을 계속 선보이면서 파트너와 관람객에게 모두코바나컨텐츠는 믿을 수 있다라는 신뢰감을 줬다. 꾸준한 일류지향성이 결과적으로도 비즈니스에 큰 도움이 됐다.

 

기본적으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명 작가의 오리지널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의미가 있고 또 홍보효과도 크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이 전시회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일까도 늘 치열하게 고민한다. 진정성과 그것을 의미 있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또 처음에는 언론사와 일을 많이 한 것도 긍정적이었다. 창업 직후 작은 회사가 세계 작가의 유명 작품을 가져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국내 미술전시를 이끈 서순주 박사께 배우고 또 스스로 포트폴리오를 쌓으면서 우리도 실력과 신뢰를 많이 키웠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공신력이 있는 언론사가 도움이 됐다.

 

실패한 적은 없나.

 

초반엔 힘들었다. 문화예술 기업들 가운데 규모가 영세한 곳이 많은데 무책임한 사람들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본 것 같다. 초반 4∼5년 동안은 특히 투자 분야에서 실패를 본 적도 있다. 사람을 믿고 투자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투자도 하지만 기획 등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전시에서도 계획처럼 일이 안 되는 사례가 많다. 실패라기보다 계획대로 안 됐던 사례가 있다. 피터 린드버그라는 세계적인 사진작가의 전시회를 열려다 못했다. 피터 린드버그는 사진 하나에 1억 원씩 하는 유명 작가로살아 있는 전설로까지 불린다. 이 작가의 작품을 가져오려고 했고, 계약 직전까지 갔다. 그런데 결국 취소됐다. 일반 사람들이 피터 린드버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정체성은 광고 사진 작가인데 계약 당시 그는 작가주의로 가고 싶어 했다. 이런 의견 차이가 원인이 됐다. 광고로 유명하다 보니까 우리 쪽에서는광고 사진 위주로 알려야 겠다는 생각이 어느 정도 있었다. 이런 방향으로 작품 셀렉팅을 하는데 피터 린드버그가 반대했다. 작가주의 사진만 전시하고 싶어 했다. 광고 사진을 빼면 이 사람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는데다 작가주의 작품을 가져왔을 때 그것의 반응을 고려해보니 ‘No’라는 답이 나왔다. 정말 어렵게 작가를 설득하고 유치가 거의 확정됐는데도 안 하기로 했다. 손해가 컸지만 모두 감수하기로 했다. 세계적인 작가의 사진전을 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우리가 애초에 원하는 바와 달랐기 때문에 과감하게 손을 뗐다. 이 일을 통해 우리 측의 의견을 제시하고 우리의 목표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가와의 호흡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전시회를 성공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무엇이든 많이 봐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좋은 게 무엇인지 알아야 좋은 것을 국내에 소개할 수 있다. 외국 박물관 및 공연장, 전시회를 엄청나게 다닌다. 해외여행도 많이 가고, 작품도 많이 본다. 회사 창립 때부터 전시 경험자를 데리고 와서 노하우를 배운 것도 도움이 됐다. 각 분야의 문화 리더도 많이 만나려고 한다. 그분들을 찾아가 늘 조언을 구한다. 영화도 많이 보고 외국서적도 읽는다. 책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는데 인문학이나 경영철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많은 일들을 호기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할 수 있다. 또 작은 경험이라도 교훈을 얻고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한다. 또 이것들을 통해서 영감을 얻고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늘 머리를 굴리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회는 무엇인가.

 

‘점핑위드러브’다. 유명 화가의 이름을 내건 명화전도 아니고 필립 할스만이라는 사진전이었는데 나는 그 전시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고 믿는다. 예전까지는 사진전 하면 그림 전시회에 비해 약간 낮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고흐의 오리지널 그림은 정말 대단해라고 한다. 하지만 사진전에 대해서는돈을 주고 봐야 돼?’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런 통념을 깼다. 사람들이 사진전을 보고 깊은 의미를 느끼고 눈물까지 흘렸다. 관람객의 수보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감동했다는 것에서 나 역시 감동을 받았다.

 

 

 

우선 필립 할스만은 스토리가 있는 인물이다. 필립 할스만은 심리적 초상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한 사람이 깊은 심리적인 상태의 정점에 있을 때 사진을 찍는다. 보통 사진가들은앉으세요, 옆으로 하고 하나 둘 셋!’ 하고 찍는데 필립 할스만은 이런 사진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피사체와 2∼3시간씩 얘기를 하고 찰나의 순간에 사진을 찍었다. 피사체와 끊임없이 얘기하면서 찰나의 순간을 잡아낸다. 아인슈타인은 사진 찍기를 엄청 싫어했다. 사진기를 갖다대면 사진사를조명원숭이라고 놀릴 정도였다. 그런데도 필립 할스만은 계속해서 아인슈타인에게 말을 걸었다. 대화를 하면서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지식이 의도와 달리 살상무기 개발에 적용되는 것을 보고 굉장히 괴로워했다. 이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 필립 할스만은당신은 이 세상에 평화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었다. 아인슈타인은내가 생각하기로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절대로 평화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결정적인 모습이었다. 그 장면을 필립 할스만이 포착했다. 결국 그는 아인슈타인의 고민과 스스로에 대한 책망, 그리고 비애가 담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딸은 나중에 그 사진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일 것이다. 각 사진마다 이런 스토리들이 있다. 나는 그 스토리들도 세세하게, 그리고 감동적이고 재미있게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이런 재미난 스토리를 포착해 쓴 우리의 설명을 읽고, 사진을 본 관람객들은 뭔가 찡한 울림을 느꼈던 것이다. 특별히 홍보를 한 것도 아닌데 이런 감동들이 입소문으로 전해지면서 전시회가 큰 흥행을 거뒀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시지다.

메시지가 있어야 관람객에게

울림과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

 

점핑위드러브는 지금도 재전시 요청이 많다.

 

보통 유명 화가의 명화전은 어떤 기획이 없더라도 관람객이 몰린다. 점핑위드러브는 사진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점핑위드러브는 우리의 기획력이 발휘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명화의 주인이 누구인가가 중요했다기보다는 기획자의 기획 능력이 중요했던 전시였다. 같은 기획, 같은 전시를 담당자가 어떻게 기획하느냐에 따라 줄 수 있는 감동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줬다. 보통 개인 사진전에서는 유명 사진작가의 이름을 부각시키는 게 기존의 룰이었는데 나는 그 룰을 깼다. 사진가의 이름을 빼고점핑위드러브를 강조했다. 작가의 이름보다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가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필립 할스만은 지금까지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그중 대표적인 특징이 점프 사진이다. 그의 사진 안에서는 대통령도 점프를 했다. 영화배우를 비롯해 정치인, 노벨상 수상자 등 권위를 중요시하는 이들도 모두 다 했다. 점프를 하면 가식적일 수 없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연의 표정이 튀어나온다.

 

사회 젊은이와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나 힘을 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고, 이런 점에 착안해서 점핑위드러브를 기획했다. 점프는용기희망’ ‘새로운 도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 있는 정적인 모습보다 훨씬 에너지가 넘친다.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분명히 대한민국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진전을 열기 전에 관람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사진전을 우리끼리 막 준비하는 것도 있지만 늘 대중들의 관심도 신경을 쓴다. 설문조사를 통해 연예인, 운동인, 정치인 등 각 분야별로 총 셀러브리티 50인을 뽑았다. 국내 유명 인사들이 점프하는 모습도 사진전에 전시했다. 멋있어 보이거나 젠 체하는 모습 대신 인물들의 솔직한 모습을 담았다. 희망을 주는 메시지와 유명 인사들의 솔직한 모습 덕분에 관람객들에게 호평을 받은 것 같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시지다. 메시지가 있어야 관람객에게 울림과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

 

기획하면서 많이 느끼는 건데 뭔가 역발상적인 것들은 늘 효과가 있다. 늘 그렇듯이 이번 전시회 때도 새로운 것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여주려고 했다. 사진전에서 오드리 햅번, 마릴린 먼로, 그레이스 켈리의 사진을 한 곳에 전시했다. 이 세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나는 제목을사랑에 철저하게 패배한 아름다운 세 여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남자에게 철저하게 시련당하고 상처받고 패배했던 이야기들을 적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세상에 남부러울 것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에게 남들이 생각지 못한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필립 할스만이 찍은 그 여인들의 가장 아름다운 전성기 때의 모습과 내가 쓴 스토리는 오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특히 여성들이 이곳에서 감동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현대 추상표현의 거장’ ‘미국의 혼으로 불리는 마크 로스코의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가져오는 게 굉장히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

 

마크 로스코전은 가장 자부심 있는 전시회가 될 것이다. 미국의 국립박물관에 있는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지금처럼 대량으로 한꺼번에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다. 우리나라에서 그간 오르세미술관, 루브르박물관 등에서 많은 작품을 가져왔지만 미국 국립박물관에서 이처럼 많은 작품이 들어온 적은 없다. 리움에서 27점의 작품으로 소규모 전시회를 연 적은 있지만, 국내에서 회고전의 형태를 가지는 마크 로스코의 대규모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국립박물관은 미국의 자존심으로 웬만해서는 작품을 잘 빌려주지 않는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제대로 전시할 역량이 우리에게 있다고 믿어준 것이다. 포트폴리오와 우리의 기획이 그들에게 신뢰를 준 것 같다. 들여오는 작품의 가치만 25000억 원에 이른다. 대한민국 사상 최대 규모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지난해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등을 할 정도로 인기다. 우리 역량에 대한 믿음도 컸고, 또 우리가 중요한 기회를 잘 포착했다. 미국 내셔널갤러리가 개국 이래 최초로 마크 로스코 전시관 전체를 리모델링 하는 시기다. 그때라서 이렇게 대량으로 많은 그림을 빌려올 수 있었다.

 

오랫동안 그의 작품을 한국에서 전시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름값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어떤 정신적인 기운을 불어넣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마크 로스크는미국의 혼이라고 불린다. 세계적인 유명 작가가 즐비한 세계 속에서 단연코 빛나는 미국인이다. 마크 로스코는 미국의 시민의식이 만들어낸 작가다. 보통 작가들의 그림을 보면 어떤 형상이 있다. 그런데 마크 로스코는 그걸 다 뭉개버렸다. “내 그림을 형상대로 해석하지 말라는 뜻이다. 얼핏 보면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황당할 수 있다. 커다란 흰색 도화지에 네모 그림 두 개가 달랑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마크 로스코가 정한 최적의 높이, 최적의 조명, 최적의 거리에서 본다면 그곳에서 진짜 그림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그림은 절대 모방할 수 없다.

 

전시회마다 메시지를 강조했다. 그렇다면 마크 로스코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마크 로스코는 팽창해가는 미국의 물질주의에 메시지를 던진 작가다. 명상적 성찰을 통해서 미술이 기능을 하길 원했다. 그의 작품은 그림 이상의 정신적인 가치를 전달한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럴듯한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마크 로스코는 기존 질서를 깨부수고 자신만의 것을 창작할 용기가 있었다. 누가 저런 단순해 보이면서도 의미 깊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는 정신적인 작품을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한국 사회는 개국 이래 그 어느 때보다 힘들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순수해야 하고 그 순수성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가치들이 훼손되고 있다. 뭔가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크 로스코는 그런 위로의 상징이기도 하다. 미국 최대 부자가 마크 로스코에게 그림을 의뢰하며 그 그림을 자신이 짓는 예배당에 걸고 싶다고 했다. 마크 로스코 역시 예배당을 짓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기에 제안에 응했다. 그 그림에 진정한 치유와 위로의 메시지를 담았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 있는 예배당은 종파를 초월한, 이 세상에 유일한 공간이다. 이 예배당을 완성하고 마크 로스코는 안타깝게도 이듬해 자살했는데, 봉헌식에는 천주교인들뿐만 아니라 유대교, 크리스트교, 불교, 이슬람교 등 각 종교의 정신적 리더들이 참여했다. 이미 종파와 이데올로기를 초월했다는 의미다. 인간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그의 그림과 그의 정신은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마크 로스코가 필요하다고 봤다. 우리 사회에도 하나의 마음이 필요한 때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동아비즈니스리뷰 248호 Reframing Culture 2018년 5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