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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품격

에피쿠로스는 과연 방탕자였을까

김헌 | 380호 (2023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흥청망청 유흥과 향락에 빠져드는 무절제한 생활을 조장한다는 오해가 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육체적 쾌락보다 마음의 쾌락을 중시했다. 또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비결이라고 생각했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을 만들어 제자, 동료들과 철학을 실천하는 삶의 즐거움을 추구했던 그를 방탕자로 취급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인생을 즐겨라, 그것이 행복이니.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특히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캡틴, 오 마이 캡틴’이라고 불리면서 존경받던 키딩 선생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학교의 역사가 담긴 사진들, 특히 오래전 선배들의 사진을 보면서 했던 말이다. 1989년 영화가 개봉했을 때, 그 장면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있다. ‘오늘을 즐겨라,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은 없으니’ 대략 이런 뜻으로 통한다. 대학 시절에 친구들, 선후배들과 어울려 술 마시며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노래 부르면서 외쳤던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말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라틴어 ‘카르페(Carpe)’는 원래 ‘꽃이나 과일을 따다’이고 ‘디엠(Diem)’은 ‘하루, 날’이라는 뜻이다. 카르페라는 동사는 소나 염소, 양이 풀을 뜯어 먹을 때, 벌이 꽃에 앉아 꿀을 빨아 먹을 때 쓰기도 한다. 거기에서 ‘즐기다, 만끽하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예컨대, ‘Carpet nunc molles somnos’라고 하면 ‘그는 지금 단잠을 즐기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카르페 디엠이라고 하면 마치 농부가 잘 익은 과일을 따듯, 소가 평원에서 풀을 뜯어 먹듯, 벌꿀이 꽃에 앉아 꿀을 빨 듯이 오늘,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즐기라는 뜻이 된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구 ‘카르페 디엠’이 들어 있는 시의 전문을 감상해 보자.


그대 묻지 마라, 아는 것이 불경이니

나에게 그대에게 신들이 어떤 종말 주게 될는지,

레우코노에, 바빌론의 점성술에 기대지 마라.

뭐든 견디는 것 얼마나 더 좋은가?

더 많은 겨울을 윱피테르가 허락하든,

아니면 지금 튀레눔 바다를 맞선 바위로

힘을 빼는 이 겨울이 끝이든,

현명함을, 술을 흐르게 하라.

짧은 인생에서 긴 희망은 잘라버려라.

말하는 사이에도 달아난다,

샘 많은 세월은.

오늘을 즐겨라,

내일은 가능한 한 조금만 믿고.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와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쾌락주의 철학에서 ‘즐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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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헌 |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필자는 서울대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 및 서양고전학 석사, 서양고전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에서 서양고전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 『천년의 수업』이 있으며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 교수로 일하고 있다.
    kimch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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