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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이은솔 메디블록 공동 창업자 인터뷰

병원 옮길 때, 내 진료기록을 가져가야? 개인건강정보 플랫폼으로 간단히 해결

장재웅 | 250호 (2018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PHR(Personal Health Record)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는 메디블록. 이 회사는 지금까지 병원별로 각자 관리하던 환자의 개인건강기록을 통합해 환자가 병원을 옮길 때 자신의 진료 기록을 떼어 가야 하는 불편함을 덜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이런 플랫폼이 가능한 이유는 블록체인 기술이 가진 탈집중화 성격과 무결성 덕분이다. 건강정보 자체가 민감한 개인정보기 때문에 통합 관리가 어려운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서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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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솔 메디블록 공동 창업자는 영상의학전문의로 한양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인턴 및 레지던트를 거쳤다. 어려서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느껴 서울과학고 재학 시절에는 한국정보올림피아드 금상을 수상하는 등 컴퓨터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공중보건의 시절부터 의료 분야 창업을 고민하다 고등학교 동창인 고우균 공동 창업자와 함께 2017년 4월 메디블록을 설립했다.

암호화 화폐 열풍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도는 높아진 반면 이 기술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 블록체인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지 않은 것이 혼란을 가중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런 가운데 비트코인의 화폐적 실험에서 드러난 문제점들로 인해 블록체인을 평가절하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블록체인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분야에서 어떤 효익을 가져올 수 있을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 국내 블록체인 기반 스타트업 중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는 메디블록(Medibloc)의 이은솔 공동 창업자를 만났다. 그는 영상의학과 전문의 출신으로 의사로 활동하면서 느낀 국내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풀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만들고자 하는 서비스는 바로 개인건강정보 플랫폼. 이 플랫폼이 가능한 이유는 블록체인이 가진 탈중앙화 성격과 무결성 덕분이다.

현재 개인건강정보는 병원별로 보관할 뿐 통합된 데이터베이스가 없다. 건강정보 자체가 민감한 개인정보기 때문에 정부나 기업에서 이를 통합 관리하는 데는 제도적인 문제가 있다. 메디블록은 이런 한계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풀고 있다. 메디블록이 구축 중인 의료 종합 건강기록시스템(PHR, Personal Health Record)은 개인이 의료 데이터를 가지면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신뢰성을 확보한다는 개념이다. 지금까지 의료정보시스템에서 병원이 플랫폼 역할을 했다면 메디블록의 플랫폼은 블록체인을 통해 환자 스스로가 플랫폼이 되는 구조다.

메디블록은 플랫폼 구축을 위해 지난해 11월 암호화폐 메디토큰의 ICO(Initial Coin Offering, 가상화폐공개)1 를 통해 약 200억 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총 70개 국가에서 6500여 명이 메디블록 성공 가능성에 투자했다. 특히 ICO를 통해 자금 유치뿐만 아니라 잠재적 사용자 확보와 더불어 글로벌 홍보가 이뤄진 점이 성과라는 평가다. 또 플랫폼의 확산을 위해 국내 병원들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한양대 의료원, 경희대 치과병원을 비롯해 글로벌 화상 전문센터인 베스티안재단과 의료정보시스템을 제공하는 디자인 컨설팅 그룹 파인 인사이트 등과도 MOU를 체결했다. 동남아를 중심으로 해외 파트너사 확장에도 나서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초기 단계인 상황에서 뚜렷한 방향성을 갖추고 플랫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는 메디블록의 이은솔 공동 창업자에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메디블록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의대를 나와서 창업을 하게 된 계기는?

과학고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해왔다. 고등학생 때는 각종 컴퓨터 경진대회에서 수상할 정도로 프로그래밍을 좋아했다. 대학을 의대로 갔지만 대학 진학 후에도 넥슨 등 여러 IT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프로그래밍을 계속했다. 대학병원에 있는 연구실에서도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고 의대에 진학해 전공을 영상의학과로 선택한 것도 다른 과에 비해서 의료 분야와 IT 분야를 접목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였기 때문이다. 아산병원 영상의학과에서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당시 지도교수였던 서준범 교수가 인공지능(AI)의 미래를 보여줬다. 그러다 2014년부터 공중보건의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때 AI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부터 블록체인 기술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일단 의료 분야가 다른 어떤 분야보다 IT 발전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당시 모든 의료 정보들이 병원에 집중돼 있어서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제약사항들을 한 번에 풀 수 있는 기술이 블록체인이란 사실을 알게 돼 사업을 시작했다.

블록체인의 어떤 특징을 눈여겨본 것인가.

개인건강기록은 과거부터 존재했던 개념이다. 이게 병원별로 나뉘어서 보관되고 있는 게 문제다. 개인건강기록은 개인정보인데 그 소유권이 개인한테 없다. 꽤 오래전부터 개인건강기록 플랫폼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 같은 시도들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인데 그 중에서 가장 핵심은 이 데이터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다. 즉, 개인이 자신의 병원 기록을 저장하고 있다가 다른 병원이나 연구자나 보험사 등에 이 자료를 제공한다고 했을 때 이 자료를 참고할 수는 있지만 이 기록을 바탕으로 보험료를 지급하거나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자료가 가공 및 수정된 자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을 예로 생각해 보자. 소개팅할 때 상대방의 사진을 받지만 그 사진을 100% 신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진에는 편집, 이른바 포토숍 작업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고는 하지만 이 사진에 있는 사람이 나올 것이라고 100% 기대하지는 않는다. 의료 기록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자신의 의료기록을 보관하게 되면 이걸 조작할 수도 있다. 전치 2주를 20주로 조작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보험사에서는 이 자료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이 같은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블록체인의 특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무결성’이다. 즉, 장부를 공동 소유하기 때문에 임의로 기록을 고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진본 증명이 쉽다는 뜻이다. 개인이 소유한 데이터를 병원이나 보험사에 제출했을 때 이 데이터가 개인이 병원에서 받은 원본 그대로라는 것을 블록체인 기술이 입증한다는 의미다. 과거에 개인건강기록 플랫폼을 만들려는 시도는 한 회사가 개인정보를 보관하고 관리하면 이 회사가 정보를 남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실패했다. 즉, 개인정보를 중앙집권화된 기업이나 단체가 보유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우리 비즈니스는 이 한계를 블록체인으로 해결했다.

개인건강기록 플랫폼이라고 하면 상당히 거창해 보이는데.

처음에는 의료 분야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초기에는 이미 성공적으로 안착한 ‘굿닥’과 같은 비즈니스 모델도 생각했고 이것저것 시도도 많이 해봤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가 병원에 쉽게 접근하게 만들까를 고민하면서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한때는 환자가 병원에 가기 전에 미리 챗봇을 활용해 설문을 작성하면 이 데이터를 병원에 제공해 진료 시간을 단축하는 모델도 연구했다. 결국 계속 해결하고 싶었던 것은 어떻게 하면 환자가 스마트폰 등 기기를 활용해 병원과 쉽게 연결될 것인가였다. 지금 메디블록의 비즈니스를 이해하려면 사진 앱을 상상하면 쉽다. 스마트폰을 사면서부터 찍은 모든 사진은 사진 앱에 저장된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든 병원 기록, 그리고 다양한 웨어러블 디바이스나 가정용 의료기기로부터 얻은 데이터들을 하나로 모아서 관리할 수 있는 그런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고 보면 될 듯하다. 사진도 사진앱에서 편집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여기저기 막 올릴 수 있듯 이 플랫폼도 다양한 비즈니스와 연결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플랫폼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재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면 도움이 되는지 추천을 받는다거나 맞춤형 음식이나 화장품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질병을 보유한 사람의 경우 이런 질병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진료가 필요하면 병원에 가라고 알림을 줄 수도 있다. 또 외국에 가서 취직을 하거나 학교에 입학을 하려고 하면 예방접종 기록 등 다양한 의료 기록이 필요한데 이런 것도 쉽게 전달해 줄 수 있다.

비슷한 시도를 하는 업체들도 있을 것 같은데.

예전부터 개인건강기록을 통합 관리하고자 하는 니즈는 있었다. 하지만 결국 어떤 기업이나 단체가 그 데이터를 다 모아서 관리하겠다고 하면 반발이 있었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들의 협조를 얻기 어려웠다. 그 회사 배만 불려주는 거 아니냐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고 이 데이터에 대한 키(Key)는 개인과 병원, 당사자들끼리만 갖게 하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하니까 이해관계자들이 긍정적으로 협조했다. 사실 이 플랫폼을 우리가 만들었지만 우리 회사도 이 안에 정보를 들여다볼 수 없다. 데이터는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만 오고 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플랫폼을 만든다고 해서 데이터에 대한 독점 권한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완전히 열린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환경이다.

플랫폼을 만들어도 메디블록이 어떤 권한도 가질 수 없다면 메디블록은 무엇으로 수익을 남길 계획인가.

이게 블록체인과 ICO의 흥미로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암호화 화폐 중 비트코인은 ICO를 하지 않았지만 이더리움은 했다. 이더리움재단을 설립했고 그 재단에서 이더리움 개발을 주도함과 동시에 원하는 참여자들 누구나 오픈 소스 형태로 참여할 수 있게 하면서 프로젝트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기본적으로 이더리움재단은 자기가 할 일을 다한 것이다. 재단이 없어져도 완성된 생태계가 있고, 그 생태계를 유지하는 구성원들이 있고, 이 생태계를 바탕으로 수많은 앱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들려는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ICO를 한 것은 투자자 및 이해관계자들에게 ‘우리가 탈중앙화된, 수익이 목적이 아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든다’는 사인을 주기 위해서다. 이게 우리의 1차 목표다. 이것을 달성하면 우리가 할 일은 일단 다한 거라고 보고 있다. 우리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게임기로 치면 콘솔에 해당한다. 콘솔을 만들고 나면 이 콘솔에 맞는 게임 팩이 있어야 하듯이 플랫폼이 완성되고 나면 이 플랫폼용 앱들이 필요하다. 이 앱들을 개발해서 생태계를 어느 정도 키우는 소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외부 투자를 받는 대신 ICO를 선택한 이유는 결국 플랫폼을 만드는 과정에서 뚜렷한 수익모델이 없어서는 아닌지.

그런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우리의 목표가 탈중앙화된 플랫폼이었기 때문에 ICO를 통해 이 생태계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을 필요가 있어서 ICO를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만약에 우리가 중앙화된 구조를 만들어 개인의 건강 데이터를 다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만들고자 했다면 ICO보다 투자를 받는 편이 옳았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려고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이 생태계에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했다. 암호화 화폐를 분배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ICO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또 우리가 만든 플랫폼이 누구의 관리하에 있지 않은 자생적 플랫폼이 되려면 누군가 이 플랫폼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도 채굴을 통해 네트워크가 유지되듯이 우리 플랫폼도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들에게 인센티브를 어떻게 줄지를 고민하다 생각한 게 암호화 화폐 ‘메디토큰’이다.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권한을 완전히 가져가면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그 네트워크에 참여했을 때 보상을 줘야 하기 때문에 개발한 게 메디토큰이다.

네트워크를 유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비트코인의 채굴자(Miner)2 들을 생각하면 된다. 메디토큰에서는 네트워크 밸리데이터(Network Validator)들이 될 수 있다. 즉, 네트워크에 거래내역이나 정보가 올라왔을 때 이게 정당하고 우리 네트워크에 편입될 만한 정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또 이 네트워크에 자신의 건강기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이 생태계에 기여하고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이다. 예를 들어 스팀잇3 은 자신들의 플랫폼에 사람들이 콘텐츠를 올리도록 하기 위해 ‘스팀’이라는 토큰을 지급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네트워크 생태계에서 자기 의료 정보를 계속 올리게 되면 결국 그 사람은 네트워크에 기여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보상의 의미로 메디토큰을 지급한다. 이 메디토큰은 거래소를 통해 사고파는 것도 가능하고 추후에 플랫폼에 다양한 서비스들이 생겼을 때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가로 지불할 수도 있게 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먼 미래에는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자신의 데이터를 다국적 제약회사에 제공하고 그 대가로 메디토큰을 주고받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한다.

암호화 화폐를 거래소에 상장함으로써 나타나는 부작용은 없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용자가 적고 메디토큰을 가진 사람이 소수일 때 투기 가능성이 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드는 플랫폼의 구조가 잡히고 규모가 커지면 그 자체로 플랫폼의 가치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가 대형주가 되면 변동성이 낮아지듯이 시간이 걸리겠지만 초반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ICO를 한 이유도 비슷하다. 사람들에게 최대한 분배하고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이 플랫폼이 개인에게는 편리할 듯하지만 대형 병원들은 필요성을 별로 못 느낄 듯한데.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병원들의 생각도 달라지고 있다. 우리가 5년 전에 이런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했다면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을 것 같다. 특히 병원들이 싫어했을 거다. 최근에는 병원들도 생각이 변하고 있다. 예전처럼 고압적으로 환자를 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환자들의 니즈에 맞춰서 병원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의료 환경 변화와 연관이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병원이 갑이었다. 환자가 진료를 받으러 가도 의사가 하자는 대로 하고, 싫으면 다른 병원 가보라는 식이었다.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조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평적인 환경으로 바뀌었다. 환자의 권위나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것도 있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특히 과거에는 병원들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SNS로 환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스마트폰 등이 대중화되고 환자들이 병원에 대해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병원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됐다. 특히 대형 병원들에 밀리는 중소규모 병원들의 경우에는 환자에게 자신들의 정보를 보여주고 어떤 진료를 받을지 안내해 주는 식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결국 대형 병원이 나서지 않으면 플랫폼의 생명력에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대형 병원이 니즈가 약하다는 지적은 동의한다. 하지만 대형 병원일수록 강도 높은 경쟁에 노출돼 있다. 예를 들어 서울 아산병원이나 분당서울대병원 등은 자체적으로 앱을 개발한다. 내부에 개발팀을 두든, 외주를 주든 앱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 병원들과 경쟁을 해야 하지만 규모나 자금력 면에서 약간 밀리는 병원들은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환자 중심 병원’ 혹은 ‘첨단 병원’의 이미지를 가지고 가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메디블록이 만드는 플랫폼이 가장 적당하다고 인식하고 우리와 접촉을 해오고 있다.

중복 진료가 이슈가 되고 있지만 사실 병원 입장에서는 중복 진료도 수익 아닌가.

그런 부분이 없지 않다. 꼭 중복 진료가 아니라도 의무 기록 사본을 발급할 때 환자들이 병원에 돈을 낸다. 이것도 병원 수익의 일부다. 그렇게 벌어들이는 수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병원이라면 우리가 만들려는 생태계를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병원 입장에서 이런 부분이 그렇게 크지도 않을뿐더러 우리 플랫폼을 활용하면 병원에 환자가 왔을 때 그 환자의 병력 청취(History Taking)를 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그 시간에 더 많은 환자에게 서비스를 해서 수익을 늘릴 수도 있다.

이 플랫폼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기나 의료 방법 등의 표준화가 필요할 듯하다.

작은 병원에서 MRI를 찍었는데 큰 병원에서 영상 품질이 떨어져서 판독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경우들이 있다. 또 임상 기록이나 병원에 갔을 때 작성하는 차트, 피 검사 결과 등은 아직 표준화가 덜 됐다. 장기적으로는 표준화가 되면 좋지만 일단 우리 회사는 HL7 FHIR(Fast Healthcare Interoperability Resources)이라는 표준을 쓰고 있다. 이 방식 말고도 표준은 많다. 그래서 우리 회사의 경우에는 HL7 FHIR을 기본으로 하고 다른 표준을 사용할 경우에는 이 표준으로 변환할 수 있는 장치를 활용하고 있다. 향후 확장해갈 계획도 갖고 있다.

곧 출시되는 앱에는 어떤 서비스가 담겨 있나.

기본적으로는 각 병원에서 생긴 의료 데이터를 다 모아서 개인이 관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그다음에 이 플랫폼을 활용해 무료 서비스와 유료 서비스들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특히 초기 목표로 삼고 있는 타깃층은 젊은 엄마들이다. 젊은 엄마들은 지금도 육아 노트를 쓰고 있다. 본인 아기용 초음파 앱도 따로 있고, 예방접종 기록도 따로 모아둔다. 이렇게 개별적으로 데이터를 모으는 수고를 덜어줄 수 있기 때문에 젊은 엄마들은 베네핏이 없어도 기록을 모은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 그래서 이들을 1차 타깃으로 삼을 생각이다. 또 엄마들은 커뮤니티가 있어 입소문을 내기도 용이하고 자신들이 써봐서 좋은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주위에 알리는 집단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초기 입소문을 내는 데 가장 적합한 타깃 고객층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건강기록의 공개 정도는 어떻게 되나.

철저하게 개인 위주다. 개인이 원하지 않으면 누구도 볼 수 없다. 개인건강기록은 그 개인과 이를 제공한 병원만 볼 수 있고 제3자가 보려면 정보의 소유주인 개인이 키값을 제3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또 개인이 원하면 제공하고 싶은 정보만 제공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수십 장의 의무기록 중 정신과 기록이나 비뇨기과 기록 같은 것들은 빼고 싶으면 빼도 된다는 의미다.

플랫폼 이후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

우선 이 플랫폼이 계속해서 개선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더리움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개선이 안 되면 어느 순간 다른 플랫폼이 더 나은 서비스로 우리 자리를 빼앗아 갈 수도 있다. 플랫폼은 평생에 걸쳐 개선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앱과 관련해 우선 첫 단계로는 단순히 데이터를 모아서 사용자들이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모델들이 나올 수 있고, 더 나아가면 이 플랫폼을 활용한 다양한 앱들이 나올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아직 원격 의료가 안 되지만 한국과 외국 간 교류는 가능하다. 이 서비스를 하는 앱이 나올 수도 있고, 질병별로 맞춤형 진료를 하는 앱도 출시될 수 있다. 우리는 이 플랫폼을 구축하고 여기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 돈을 벌지를 계속 연구 중이다. ICO로 모은 돈이 소진될 때까지 이 기본 목표에 충실할 생각이다. 네이버나 구글도 초기에 포털을 만들 때는 특별한 수익원이 없었지만 포털을 구축하고 나서는 여기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수익 모델들이 나왔다. 아직 초기 단계라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도 그런 수익 모델들을 만들어 낼 계획이다.

경쟁사는 없나. 해외 진출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공동 창업자인 고우균 대표가 최근에 해외 출장을 다니며 외국 기업들과 프로젝트 협의를 많이 하고 있다. 어차피 일본이나 동남아, 유럽 시장 등은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고 현지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파트너들을 만들고 있는 단계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사실 IT 분야는 미국이 앞서가고 있지만 의료 분야에서는 미국 시장의 특성상 우리가 제공하려는 플랫폼에 대한 니즈가 약하다. 미국은 보험사 중심으로 수없이 많은 산하 병원이 있는 구조다. 그래서 그 보험사 앱 하나만 있으면 이 병원들끼리 환자 정보가 공유된다. 우리나라는 병원끼리 완전히 분리된 구조인데 미국은 그렇지 않다 보니 우리와 같은 플랫폼을 못 만들고 있다. 그 때문에 미국의 스타트업들은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지 못한다. 우리가 빨리 시작하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메디블록은 현재 퍼블릭 블록체인 중 하나인 ‘퀀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퀀텀을 개발한 퀀텀파운데이션의 법인이 싱가포르에 있기 때문에 퀀텀을 활용해 아시아 시장을 우선 목표로 진출하기 위해서다.

여전히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불안감도 있는 것 같다. 특히 내 개인정보가 잘못 활용될 수 있다는 불안함이 존재할 듯한데.

일단 사람들이 블록체인에 대해 불신하는 것은 사실 암호화 화폐 거래소들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해킹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거래소들이 해킹을 당하면서 블록체인도 안전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불신이 생겼다. 그런데 해킹을 당한 건 거래소지 암호화 화폐가 아니다. 거래소는 중앙화된 시스템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것이 아니다. 또 우리 플랫폼이 블록체인 기술로 만들어졌지만 이 플랫폼에 모든 것을 올리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메디블록의 블록체인에는 데이터에 대한 무결성 증명을 위한 장치만 올라가고, 나머지는 환자와 병원만 나눠 가지는 방식이다. 또 메디블록은 지난해부터 병원들과 POC(Proof of Concept)를 진행했다. 이 과정을 통해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 검증을 받아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결국 단순히 블록체인 기술이 안전하다고 떠드는 것보다는 이해 관계자들이 우리 플랫폼을 신뢰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플랫폼을 개선해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여인호(경희대 외식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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