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청소기? 아무도 안 사더라 고객도 모르는 Unmet Needs를 통찰하라

202호 (2016년 6월 l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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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김철수

Article at a Glance

 제품과 서비스를 기획할 때는 소비자의 숨겨진 요구사항, 즉 잠재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 소비자에게 물어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은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고, 안다고 해도 언어로 잘 표현하지 못한다. 말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맥락, 눈빛, 제스처 등과 같은 비언어적 증거나 평소의 습관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들이 더 정확할 수 있다. 컴퓨터를 이용한 데이터 분석뿐만 아니라 기획자, 혁신자, 의사결정자 본인이 고객의 환경 속에 직접 들어가 발견하는 수밖에 없다.

 

 

편집자주

필자는 시카고 IIT 디자인대학원(IIT Institute of Design)에서 혁신디자인 방법론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SK텔레콤과 SK플래닛에서 인간 중심의 혁신 방법론(HCI)으로 서비스와 상품을 제안하는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당신의 한 줄은 무엇입니까> <인사이트, 통찰의 힘>이 있다.

 

인도 중부 푸네(Pune)라는 지역의 한 가정을 방문해 소비자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필자는 가정 내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는 일명 홈투어를 60대 여주인에게 부탁했다. 부엌의 냉장고와 침실을 살펴본 후 다용도실에 들어섰을 때 필자의 눈을 끄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스테인리스 그릇으로 덮어놓은 큰 양재기였다. 얼핏 보기엔 평범한 물건이지만 사소한 것에서 특별함을 찾는 우리가 이것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뚜껑을 여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물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큰 양재기 안에는 음식이나 곡식이 아닌 100여 장은 될법한 사진들이 물에 가득 담가져 있었다.

 

필자는 당장 옆에서 지켜보던 여주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 이 사진들은 우리 딸 결혼식 때 찍은 것들인데, 딸이 쉽게 찢어 버리려고 물에 담가둔 거예요. 최근에 이혼을 했거든요.”

 

사연을 들어보니 상식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됐지만 나는 직업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그녀가 사진을 물에 담가서 보관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자리에 없어 직접 물을 수는 없었지만 딸에게 질문을 했어도 틀림없이 같은 답을 들었을 테리라. “쉽게 찢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어머니 말처럼 쉽게 찢기 위해 사진을 물에 담가둔 것이라면 딸에게 필요한 솔루션은 무엇이겠는가? 아마도 성능 좋은 가위나 파쇄기가 답이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녀가 가위가 없어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을까? 인터뷰가 끝난 후 동료들과 나는 이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그녀에게 보다 심층적인 욕구가 존재할 수 있다고 봤다. 나빴던 기억이든, 좋은 추억이든 이혼을 한 그녀에게는결혼 생활을 정리할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과 방법이 필요했을 것이다. 물론, 그녀 스스로는 인식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녀에게 가위는 오히려 마음정리의 시간과 심리적 여운을 너무 쉽게 빼앗아가는 솔루션이 될 수 있다.

 

이렇듯 같은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문제해결의 솔루션이 달라진다. 비즈니스 현실에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표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솔루션은 이미 수없이 많은 경쟁자들이 집중하는 영역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소비자를 위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냈다고 믿지만 정작 시장에서 외면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기업은 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심층적인 욕구를 제대로 간파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비즈니스 성공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스타팅 포인트임에는 틀림없다. 이번 호에서는 공감디자인에서 강조하는 인간의 언메트 니즈(Unmet Needs)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이것은 고객 통찰과 비즈니스 기회 발견을 위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이다.

 

 

 

 

인간의 욕구와 비즈니스 시사점

 

이 글에서 필자는니즈를 인간의 기능적 필요와 심리적 욕구나 욕망을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인간의 니즈는 목적과 레벨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겉으로 드러나 있어 명쾌하게 정의할 수 있는 표면니즈(explicit needs)가 있다. 사람들 스스로 불편함이나 원하는 것을 쉽게 표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표현니즈라고도 한다. 반면 사람들 스스로 잘 인식하지 못하고 표현하지도 못하는 내면니즈(implicit needs)가 있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내면에 숨겨져 있다는 측면에서 잠재니즈(latent needs)라고도 한다. 이러한 잠재니즈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미충족의 욕구 상태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것을 미충족 잠재니즈, 즉 언메트 니즈라고 부른다. 마치 북극해에 떠 있는 빙하처럼 사람의 욕구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 스스로도 표현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심해의 욕구는 결국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기획자나 혁신가가 발견해야 하는 영역의 것이다.

 

표현니즈와 잠재니즈의 예를 한번 살펴보자. 몇 년 전 카드사, 통신사 등 기업의 제휴 멤버십과 관련한 사용자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프로젝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가 만났던 여성 고객은 자신의 스마트폰에 깔린 멤버십 앱을 보여줬다. 우리는 그녀의 앱 화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포인트가 95만 점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났던 사용자들 대부분은 2∼3만 점에 불과했다. , 이 상황에서 포인트를 이렇게 많이 모은 이유에 대해 고객은 어떻게 답변했을까? “5년 정도 모은 것 같은데 계속 쌓기만 하고 거의 못 썼어요. 써야겠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정작 어디에서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몰라서요라고 답했다.

 

3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나온 그녀의 표현니즈 중 하나는포인트 사용처를 정확히 알고 싶다이다. 그런데 과연 그녀에게 포인트 사용처 정보를 잘 정리해준다고 해서 포인트를 잘 쓰게 될까? 흔히 겉으로 표현된 고객의 1차적인 말이나 행동을 보고 쉽게 결론을 내리기 쉽다.

 

공감디자인은 확산과 수렴의 과정이기 때문에 당장 답을 내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더 많은 확산적 증거를 찾기 위해 그녀의 일상 속 커머스 활동을 세밀하게 탐침(探針)했다. 그 와중에 그녀가 자주 찾는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를 살펴봤다. 온라인 공간에서 회원들은 멤버십 혜택을 모으고 절약하는 방법들에 대해 자신들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자신의 노하우와 사례를 상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이 관찰결과에서 우리는 그녀가 포인트에 대해 가지는 욕구는 ‘애착과 자부심이라는 결론을 수렴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녀가 기업이 제공하는 포인트에 가지는미충족 잠재니즈. 아직 기업들의 솔루션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욕구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한 푼도 쓰지 않고 혜택을 모으고 있었으며, 그들만의 공간에서 자부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유형의 고객에게는 포인트 사용처를 제대로 전달하는 기능적 필요의 해결책이 아니라 고객과 포인트의 애착관계를 강화하거나 포인트를 적립하는 과정에서의 소소한 노력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감성적 욕구의 해결 장치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성공 가능성이 높다. 니즈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솔루션이 전혀 달라지는 것이다.

 

 

최근 들어 요즘 유행하는 캐시슬라이드 같은 잠금 화면 리워드 앱을 사용하거나 거래 시 혜택 적립을 챙기는 것은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잠금화면 리워드란 스마트폰의 잠금화면(초기 화면)에 광고를 띄우고 그 대가로 멤버십 포인트를 적립받게 해주는 앱이다. 이렇게 스마트폰 사용자에게 트렌드가 된 소비행태는 이미 밖으로 드러난 현상이지만 그 원인을 알면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또 다른 형태의 솔루션을 찾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 잠금화면 앱으로 포인트를 열심히 모으는 이유를 물어보면 한결같이별로 힘들이지 않고 커피를 바꿔 먹을 수 있잖아요라고 답한다. 사람들은 왜 포인트 적립에 열광할까? 진짜 커피를 바꿔 먹기 위해서일까? 그것은 표현니즈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나름대로 열심히 혜택을 챙기고 절약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면서 안심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아직 충족되지 않은 잠재니즈, 즉 언메트 니즈인 것이다.

 

차별화에 목마른 기업은 언메트 니즈를 제대로 발견해 문제를 해결하면 비즈니스 금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이것은 기획자나 혁신가가 몰입과 열정으로 발견해야 하는 해석의 영역이다. 기계나 빅데이터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다. 수천 대의 컴퓨터와 연결된 알파고조차도 계산할 수 없는 인간의 복잡한 생각과 경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인간의 욕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고려해야 할 니즈의 속성에 대해 <인사이트, 통찰의 힘>에서 소개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4가지 다면적 인간요소를 고려하라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기획자나 혁신가들은 복잡하고 다면적인 인간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고객의 욕구는 단면으로 이뤄져 있지 않고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 영향을 주면서 발현되기 때문이다. 감성적, 문화적 요소와 같은 심리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물리적, 인지적 요소 같은 기능적인 영역들을 조화롭게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① 감성적 인간요소(Emotional Human Factors)

살아 있는 인간은 언제나 특정한 감정 상태에 있다. 비즈니스적으로 보면 소비자들의 감정상태는 구매를 결정하는 중요한 동기로 작용한다. 비합리적이고 감정적 경제주체로서의 인간을 탐구한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주장처럼 경제활동에서 소비자의 의사결정의 순간은 합리성이나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적이고 즉흥적 요소들이 작용할 때가 많다. 여자 친구와 데이트 중 대학가에서 마주친 람보르기니 자동차와 정비소에서 수리 중인 자동차에 대해 느끼는 구매욕구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사용자들을 만나보면 주변환경이나 사람들과의 관계, 경제적 이득, 감정상태에 따라 행동 패턴이 달라지거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평가가 상반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② 문화적 인간요소(Cultural Human Factors)

인간의 욕구를 포착하는 데 있어 문화적 인간요소와 사회적 맥락의 이해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독특한 문화코드를 가지고 있다. 개인마다 다른 선천적인 성향, 성장과정과 가족 관계 등이 영향을 준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문화코드는 지역적 관습이나 세대, 사회제도 등 총체적인 문화 안에 녹아 있을 수밖에 없다. 오랜 기간 사회적으로 형성된 문화코드 안에서 사람들은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문화적 인간요소의 이해가 부족하면 비즈니스에 있어 낭패를 보기 쉽다. 일본 무사시노예술대학의 하라 켄야 교수는 <디자인의 디자인(Designing Design)>에서 일본 국기인 일장기의 붉은 원에 대한 문화적 코드는 같은 동양권에서도 다르게 나타난다고 했다. 일본의 전후 세대에게 그것은 평화로운 국가와 안정감을 상징하지만 중국 학생들에게 그것은 붉은 피, 군국주의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이 지역과 세대, 문화권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은 기획자에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해당 지역이나 세대군에게 적용할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의 방향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생소한 지역이나 전혀 새로운 사업영역으로의 진출을 모색할 때 해당 상품을 사용하게 될 사람들의 디테일한 역사, 문화적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가장 필수적인 활동이다.

 

③ 인지적 인간 요소(Cognitive Human Factors)

시끄러운 소음을 없앤 진공청소기가 출시된다면 어떨까? 실제로 미국의 한 가전회사에서 소음을 줄인 청소기를 시장에 내놨지만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의 가정에는 대부분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는데 청소할 때 소리가 나지 않으니 소비자들은 청소가 제대로 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먼지가 잘 빨려 들어 간다고 느끼는 것이다. 노트북에서 자판 두드리는 소리를 완벽히 없앤다고 하더라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오감으로 전달되는 외부 신호와 자극에 대해 두뇌(중앙처리 장치)에서 유추와 가설평가를 통해 의사결정과 반응을 선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보의 수, 대상의 색상이나 모양새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전 경험이나 기억 등이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대체로 인지적 불편함이나 개선사항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실제로 사용자들을 만나 보면 모바일이나 인터넷 화면의 구성과 그 사용경험에 관한 의견을 많이 표출하곤 한다.

 

④ 물리적 인간 요소(Physical Human Factors)

기업의 상품기획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의 정책 입안 과정에서 물리적 인간요소 고려는 필수적이다. 몇 년 전 뉴스에서 앞으로 좌측 보행 대신 우측 보행 정책을 실시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그 전까지자동차는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 길이라는 노래가 있었을 정도로 좌측 보행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지만, 사실 좌측 보행은 일제의 영향으로 1921년부터 최근까지 지켜온 것이었다. 일본에서도 폐지된 좌측 보행은 사무라이들의 칼집 휴대 문화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사무라이들이 왼쪽 허리에 칼을 차고 다니다보니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무라이들과 칼집이 서로 부딪혀 자주 싸움이 발생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한 좌측 보행이 사회제도로 정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른쪽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물리적 인간요소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것이었다. 좌측으로 걷다보니 건널목에서도 오른쪽에서 달리는 자동차와 사고가 나는 경우가 빈번했다.

 

상품기획이나 디자인 과정에서 물리적 환경이나 공간, 신체 조건 등을 고려하는 것은 인지적 인간요소와 함께 기능적 편의성 측면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에서 이러한 고려 없이 디자인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불편함은 고객으로부터 즉각적인 불만 표현과 비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체적인 경험 여정으로 사고를 확장하라

 

“호텔 경험을 리디자인하라(Redesign the users’ hotel experiences)” 이것은 IIT 디자인 대학원에서 3명으로 구성된 우리 프로젝트팀에 주어진 서비스 디자인 과제였다. 필자는 당장 새로운 아이디어의 단서를 얻기 위해 시카고 시내의 중급 호텔들을 찾아 다니며 관찰과 현장 인터뷰를 진행했다.

 

호텔 룸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호텔 로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몰두하던 필자는 호텔 로비에서 어떤 부부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것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폭넓은 사고의 확장을 가져왔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부부는 호텔 로비에서, 이제 어디로 가볼까? 뭔가 이 동네에서만 할 수 있는 재미난 게 없을까?”라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한참을 망설이더니일단 나가 볼까?”라며 호텔 문을 나서는 것이었다. 그동안 왜 나는 호텔 사용자의 경험을 호텔룸과 로비에 가두고 있었을까?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호텔 안에서의 멋진 서비스가 아니라시카고에서의 특별하고 즐거운 여행 경험일 것이다. 호텔 경영자나 기획자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전혀 다른 솔루션을 고민하도록 돕는다. 당연하면서도 익숙한 공급자의 시선이 아니라 사용자의 시선에서 경험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사람들의 호텔 이용 경험은 이미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 오히려 부정적인 검색어로 리뷰를 찾아보거나(스캐닝), 생생한 경험정보를 갖고 있는 친구들의 조언을 구한다. 여행 기간 동안 비가 올까봐 염려하기도 한다.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호텔이 사진에서 본 것처럼 멋질까 상상해보며 빨리 가서 더 좋은 룸을 얻고 싶은 기대감을 갖기도 한다. 호텔에서 머무는 동안도 마치 집에서처럼 편리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또 남들이 다 가는 관광명소보다는 잠시라도 현지인들처럼 먹고 마시면서 로컬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한동안 현지 여행의 즐거움과 여운을 이어가기를 원한다.

 

이렇게 사용자의 경험 여정을 여행의 관점에서 계획-이동-체크인-호텔 이용-현지 여행-체크아웃-경험공유 등으로 확장할 수 있다. 전체적인 과정에서 호텔은 고객에게 어떤 경험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사용자 중심의 확산적 사고는 호텔 운영상의 디테일한 아이디어에서부터 호텔의 영역을 벗어나는 사용자 가치와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을 발상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스마트 디바이스, IoT 기술의 활용과 생활밀착형 온디멘드(on demand) 서비스와의 연계 등은 호텔이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고 선도적 이미지를 얻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이때의 경험은 필자가 솔루션적 사고(solution thinking)와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의 차이점을 경험적으로 체득하는 계기가 됐다. 그전까지 나는 늘 사업자가 제공하는()의 바운더리안에서 해결책을 찾곤 했다. 디자인적 사고는 철저히 사용자의 욕구를 찾아 전체적인 사용자 경험으로 생각의 범위와 깊이를 확장시킨다. 이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한 분야에 오래 몸 담을수록 우리의 사고체계는 그 틀 안으로 점점 가두려는 경향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과 사고의 고정된 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획자나 혁신가의 의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사용자 통찰, 즉 진정한 언메트 니즈를 발견하려는 마음가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주제와 산업 영역에 관계없이사용자 경험 여정의 확장적 사고 습관은 유용한 생각의 툴이 될 수 있다. 새로운 기회는 늘 봐오던 중심부가 아니라 생각지도 않았던 주변부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사람들의 욕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유의해야 할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첫 번째, 사람들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 코닥이 매출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소비자를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나 좌담회를 실시했다고 해서 사람들로부터 디지털 카메라의 새로운 미래 경험에 대해 의견을 들을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단지 자신이 기존에 경험했던 필름 카메라의 경험 범위 내에서만 이야기할 뿐이다. 새로운 기술과 학습 비용으로 인해 오히려 낯선 미래 경험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는 고객에게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기획자나 의사결정자들이 미래지향적 사용자 통찰을 발견하고 그 결과물을 고객의 손에 선물해야 하는 영역의 것이다. 소비자는 온전한 상품으로 두 손에 쥐어졌을 때 스스로조차 몰랐던 욕구를 깨닫게 된다. “그래, 내가 원했던 게 바로 이거였어!”라고 말이다.

 

두 번째,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항상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남들 앞에서 자신의 특이한 행동에 대해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필자는 프로젝트의 주제와 관계없이 사용자의 가정을 방문할 때면 양해를 구하고 냉장고 속을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 냉장고 속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물건을 발견할 때가 많은데, 특히 화장품과 의약품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터키, 인도, 한국 등 국가나 문화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공통점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사람들이 그러한 물건을 냉장고에 보관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온라인 쇼핑몰 사업과 관련한 인사이트 도출을 위해 터키 이스탄불의 한 가정을 방문했을 때에도 냉장고 속에서 10개가 훨씬 넘는 립스틱을 발견했다. 립스틱을 냉장고에 보관하는 이유를 묻자 30대 초반의 여주인은 머뭇거리며아이들이 자꾸 얼굴에 립스틱을 발라서 일부러 냉장고 속에 숨겨둔 거예요라고 답했다. 그러나 10살쯤 되는 아이들이 립스틱을 얼굴에 바를 것 같지 않아 보였다. 필자는 침실과 거울 앞을 유심히 살펴봤지만 화장품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립스틱은 그녀가 쓰는 화장품의 전부였던 것이다. 립스틱은 상온에서 보관하도록 생산됐기 때문에 굳이 냉장 보관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유일한 화장품을 조금이라도 오랫동안 변질 없이 보관하고 싶은 나머지 자신만의 대안적 솔루션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리고 갑작스런 방문자의 질문에 아이 핑계를 댔을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신은 진실이라고 믿고 말하지만 왜곡된 정보인 경우도 의외로 많다. 아무리 자신의 경험에 기초해 답변하더라도 경험과 응답 시점의 시차로 인한 기억의 왜곡은 생각보다 크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이러한 특성을 이해한다면 언어적 조사가 가지는 한계 또한 깨닫게 된다. 말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맥락, 눈빛, 제스처 등과 같은 비언어적 증거나 평소의 습관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들이 더 정확할 수 있다. 언어적 방법과 행동관찰 방법을 보완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진짜 욕구를 잘 알지 못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굳이 고객의 니즈를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은 기획자나 의사결정자, 스타트업에게 차별화된 상품 기획과 비즈니스 혁신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획자나 의사결정자에게 사용자 공감과 욕구의 해석 역량이 중요한 것이다.

 

 

 

 

 

언메트 니즈 적용 사례: 타깃(Target) 신학기 상품 개발

 

미국의 혁신컨설팅 기업 점프(Jump Associate)의 컨설턴트 콜린 머레이(Colleen Murray)가 시카고 강연에서 소개한 종합유통기업 타깃(Target)의 이노베이션 사례는 고객의 언메트 니즈 발견과 사용자 통찰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미국에서 8월은 유통업계의 큰 대목이다. 신학기를 맞이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지갑을 열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타깃은 점프와의 협업을 통해, 특히 대학생활을 처음 맞는 신입생 세그먼트의 매출을 늘리는 방안을 찾고자 했다. 한 유통매장에서 점프의 컨설턴트들은 전기주전자를 살까 말까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학생과 학부모를 관찰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이런 주전자는 필요 없어. 다 있을 거야라는 아빠의 주장에 학생은기숙사에서 공부하다보면 분명히 필요할 거예요.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거라고요라며 반론을 펼쳤다. 서로 의견을 굽히지 않는 둘의 대화는 한참 이어졌는데, 결국 주전자를 사지 않고 마트를 떠났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장면은 여러 곳에서 관찰됐다고 하는데 점프 연구팀에서 발견한 사용자 통찰은경험하지 못한 낯선 환경에 대해 신입생들이 가지는 두려움이었다. 전기주전자를 살까 말까 다투는 과정에서 아들이 보여준 반응은 그 두려움의 표현일 뿐이다. , ‘기숙사에서 쓸 주전자를 마련하고 싶다는 것은 표현니즈다. 대학에 입학하는 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언메트 니즈는새롭고 낯선 학교 생활에 제대로 된 준비를 마쳤다는 안심과 자신감이었다.

 

이런 사용자 통찰을 바탕으로 타깃은 기존과 다른 판매전략과 다양한 형태의 상품들을 개발했다고 한다. 수많은 상품들을 나열하고 소비자가 알아서 선택하게 하는 기존의 상품 전달 방식에서 벗어나이것만 사면 다 준비된 거예요라는 확신을 주는 세트 상품들을 출시했다. 대표적인 것이다시 대학을(Back to College)’ 캠페인의 일환으로 준비된 ‘Kitchen in a box’ 주방용품 세트다. 이런 노력으로 2002 3분기, 타깃은 다른 경쟁자들의 저조한 판매 실적과 달리 전년 대비 12%나 성장한 84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사람들의 표면적인 니즈가 아니라 스스로조차 잘 인식하지 못하는 언메트 니즈의 중요성과 몇 가지 사례를 살펴봤다. 현상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에 집중하면 폭넓고 깊이 있는 통찰과 솔루션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제조, 유통, 서비스, 공공 등 산업영역에 관계없이 혁신은 기술, 사업, 사람의 3가지 관점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완성된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하는 것, 실행하는 것, 그것을 사용하는 것도 모두 사람이다. 비즈니스의 중심에 사람을 둬야 하는 이유다.

 

고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욕구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솔루션을 선물하려면 기획자나 혁신가의 고객 공감과 창의적 발상, 탁월한 실행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특히, 현상을 객관적으로 담아내는 정리의 기술이 아니라 현상 뒤에 숨은 의미를 발견하는 관점 전환적 통찰의 기술은 비즈니스 혁신에 있어 필수적이다.

 

평소 자신에게 익숙한 책상을 떠나 고객들의 환경 속으로 탐험을 떠나는인사이트 헌터(insight hunter)’가 돼보자.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단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현장에서 사용자 통찰을 발견하는 데 유용한 관찰과 소통의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할 예정이다.

 

 

Tips for Practitioners

상대방의 속마음을 끌어내는 인터뷰 Tip

● 누구인지, 무엇을 알고 싶은지 대상자와 질문을 마스터한다.

● 단답형이 아닌 자신의 경험을 끌어내는 오픈형 질문을 한다. (open-ended question)

● 전체 경험여정을 묻고 세부 단계별 디테일한 질문을 한다. (general to specific)

● 내가 원하는 답을 확인하거나 유도질문을 하지 않는다.

 

김철수 SK플래닛 매니저 myconceptone@gmail.com

동아비즈니스리뷰 237호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 교육 2017년 1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