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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리더들이여, 다중의 자아를 존중하라

회사원 페르소나만 기대하던 시대 지나
직원들의 다양한 정체성이 혁신의 근원

이경민 | 307호 (2020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누구나 내면의 다양한 자아를 쉽게 드러내 놓을 수 있는 시대는 반대로 한 가지 자아만을 강요받으며 성장한 세대에게는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평생 회사형 자아만을 강요받아온 현재 조직 내 임원이나 관리자급은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발맞추지 못한 채 혼란스러움을 호소한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조직의 리더들에게 필자는 해결 방안으로 △구성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회사형 페르소나 외 다른 페르소나를 개발할 것 △자신의 다층적인 면을 발현할 것을 충고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어떤 자리에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내려놓고 온전한 모습으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조언한다.



최근 부캐(부캐릭터) 열풍과 함께 ‘멀티 페르소나’가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멀티 페르소나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시시각각 상황에 맞는 자아를 표출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직장에서와 직장 밖에서의 정체성이 다르고, 오프라인상에서와 SNS상에서의 정체성이 다른 것이 대표적인 멀티 페르소나의 특징이다. 이런 멀티 페르소나 트렌드는 다양한 영역에서 변화를 만들고 있다. 마케팅 영역에서는 ‘니치(Niche)한 시장이 리치(rich)하다’는 관점에서 한 개인의 욕구를 소수점 이하 단위로까지 분석하려는 시도들이 늘고 있다. 게임에서 본캐 외에 키우는 부캐처럼 조직에서도 본캐와 부캐가 분리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멀티 페르소나 혹은 부캐 현상은 왜 트렌드가 됐는가? 그리고 리더들은 멀티 페르소나를 보이는 구성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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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페르소나의 정신분석학적 정의

사람은 늘 다중의 자아를 가진 멀티 페르소나적 존재였다. 우리는 페르소나를 통해 칭호를 획득하거나, 지위를 나타내거나, 이것저것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타협에서는 흔히 당사자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관여한다.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개인 안에는 천 개의 페르소나가 있어서 상황에 따라 다른 페르소나를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집에서는 가정적이고 신뢰할 만한 배우자의 페르소나를, 조직에서는 엄격하지만 유능한 부장으로서의 페르소나를, 그리고 동창생들과 있을 때는 여전히 장난기 많은 친구로서의 페르소나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뇌과학적으로도 우리는 단일한 자아 혹은 단일한 페르소나가 아니다. 뇌는 별도의 기능을 나눠 맡은 2개의 반구(hemisphere)로 이뤄져 있다. 좌반구는 언어적이고 명시적인 기억(explicit memory, declarative memory)을 담당하며 의식적 자아를 형성한다. 이에 비해 우반구는 암묵적 기억(implicit memory)을 담당하며 무의식적 자아를 형성한다.

이렇게 분리된 좌뇌와 우뇌의 기능을 잘 보여주는 임상적 사례가 있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라는 책을 쓴 하버드대 뇌과학자 질 볼트 테일러다. 그는 37세에 극심한 두통과 함께 좌뇌가 심하게 손상되는 중증 뇌질환을 겪는다. 그는 남아 있는 우뇌를 통해 세상을 인지하면서 차츰 회복되는 좌뇌가 자신의 자아를 어떤 식으로 변형시키는지를 자세히 관찰해 기록으로 남겼다. 좌뇌는 사물을 범주에 따라 나누고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언어를 통해 사물을 파악하지만 우뇌는 직관과 이미지로 파악한다. 우뇌가 우세할 때의 테일러 박사는 긍정적이고 행복하며 어떤 것에도 제한받지 않는 무한대의 자아를 경험한다. 이후 치료를 통해 좌뇌가 회복돼 갈수록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며 현재의 문제와 자신이라는 경계에 집중하는 원래의 자아의 모습이 나타남을 느낀다.

이처럼 우리는 좌뇌적 자아와 우뇌적 자아가 분리돼 있는 ‘다중적 자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자아로 외부에 보이는 이유는 좌뇌와 우뇌가 ‘뇌량(corpus callosum)’으로 연결돼 의식적 자아와 무의식적 자아 간, 그리고 명시적 기억과 암묵적 기억 간의 조율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만 3세 이전의 기억을 거의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 좌뇌와 우뇌를 잇는 뇌량과 언어중추인 좌뇌가 충분히 발달하기 전이어서 기억이 암묵적 기억으로 무의식에 형성되기 때문이다.

다중 인격은 이러한 조율과 일치에 어려움이 생긴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역사상 다중 인격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77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납치 및 강간 혐의로 기소됐다 무죄를 선고받은 빌리 밀리건 사건이다. 빌리 밀리건은 어릴 적 계부의 성적 학대를 겪으며 자아가 분열되고 총 24개의 인격으로 성장하게 된다. 주(主) 인격인 빌리는 다른 인격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기억이 자주 끊어지며 시간의 흐름이 분절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범죄 행위로 인해 기소된다.

빌리 밀리건처럼 어린 시절 감당하기 어려운 정서적, 성적 학대는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기억 사이의 분절을 만들어내고 각 기억 간의 고립은 별개의 인격체로 자리할 수 있다. 이처럼 극심한 분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임상에서 흔히 화를 심하게 낸 후에 기억을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은 집안 가재도구를 다 때려 부술 정도로 화를 냈는데 끝나고 나서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혹은 흥분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앞뒤로는 기억이 흐리다고 하기도 한다. 이보다 좀 더 보편적인 사례는 고통스러웠던 과거 경험에 대해 몇 년이 지난 후 감정적 동요 없이 담담히 이야기하는 경우다. 그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 뇌는 사건에 대한 서술적 기억과 감정에 대한 암묵적 기억을 분리해 뇌의 서로 다른 부위에 저장한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면 나를 버린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눈물 없이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은 사실 다양한 기억과 자아가 혼합돼 있는 매우 복합적인 존재다. 이러한 측면에서 ‘나 자신’을 뜻하는 영어 단어가 myself가 아닌 myselves라는 복수형으로 표기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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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의 나’와 ‘집에서의 나’가 다른 이유

정신분석적으로, 뇌과학적으로 당연한 현상인 멀티 페르소나가 지금 한국에서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단일한 정체성에 대한 시각의 변화가 한 이유일 것이다.

『중용(中庸)』에는 “군자는 보지 않는 곳에서 삼가고(戒愼乎 其所不睹), 들리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두려워한다(恐懼乎 其所不聞)”는 글귀가 있다. 이런 경지에 오른 상태가 바로 ‘신독(愼獨)’이다. 혼자 있을 때조차 삼가는 태도, 사람들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동일한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 유학에서 말하는 개인 수양의 최고 단계인 것이다. 그래서 ‘표리부동(表裏不同)하다’라는 말은 개인에 대한 모욕적인 묘사로 받아들여진다.

얼마 전 필자가 진행한 그룹 코칭에서 한 임원은 조직에서의 모습과 가정에서의 모습이 달라 자신이 이중인격자가 아닌가 고민이 된다고 털어놨다. 그는 스스로를 회사에서는 웬만한 일에는 다 눈감아 주고 너그럽게 대하는 리더라고 표현했다. 화가 나도 속으로 참고 싫은 소리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집에 가면 가족들에게 화를 자주 내고 독재자에 가까운 엄한 모습으로 지낸다고 했다. 또 다른 임원은 정반대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자신은 구성원들에게 디테일한 것 하나까지도 모두 간섭하고 결정해야 성이 풀리는데 반대로 집에 가서는 배우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아무것도 개입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들의 진로에 대해 가이드만 줄 뿐 아들과 아내가 의견이 달라 매일 다투는데도 자신은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자신이 과연 정상인지 걱정했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의 상황도 자주 마주치게 된다. 글로벌 기업 워크숍에서 만난 한 직원은 자신을 5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라고 소개했다. 그는 회사에서 자신은 그다지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는 슈퍼스타급 인재는 아니지만 유튜브에서는 팬덤이 꽤 형성된 전문가라고 했다. 그는 회사 일에는 꼭 필요한 정도로만 에너지를 투입하고 남은 에너지를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퇴근 이후의 삶에 투입하는 지금의 삶에 만족감을 표했다. 그는 자신의 두 정체성에 대해 전혀 혼란스러워하지 않았고, 주변의 반응도 부러움과 찬탄이 대부분이었다.

단일한 자아, 즉 ‘회사형 인간’만을 강요받던 두 임원에게 회사 일보다 일과 시간 외의 삶에 더 집중하는 요즘 직원들은 탐탁지 않은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어떠한 상황에서나 단일한 정체성을 유지하는 군자의 ‘신독(愼獨)’과 같은 모습보다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적절한 모습으로 바꾸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여기에 ‘캐릭터 부자’라는 말처럼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개인의 재능이나 역량으로 여기는 분위기까지 덧붙여지고 있다. 이러한 단일 정체성에 대한 시각 변화는 그 한편에 여러 가지 다른 이유가 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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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개인적 시간이 확대되고 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만 보내던 시절에는 다양한 정체성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회사에서의 얼굴이 하루 종일 내가 사용하는 거의 유일한 얼굴이기 때문이다. 조직에서의 직급과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나의 모습을 자기 전까지 유지하다가 잠자기 직전에야 간신히 내려놓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주말조차 출근을 하거나 업무 관련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고, 남은 얼마의 시간은 피로를 풀기 위해 늘어져 있는 것이 전부인 시절에 상황에 따른 다양한 페르소나는 그다지 필요치 않았다. 이 시기에 선생님이 직업인 사람은 집에 가서도 가족들에게 선생님처럼 지시하고, 고위 경영자인 사람은 사적 모임에 가서도 매사에 자신이 결정하거나 간섭하려 했다. 외부에서 주어진 역할에 자신이 동조화되는 페르소나의 고착인 것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퇴사할 때 오랜 시간 쓰고 있던 유일한 페르소나가 벗겨지며 민낯이 드러나게 될 때 개인은 무력감과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기도 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작되고 재택근무를 비롯한 업무 환경의 변화는 개인에게 근무 외 시간의 확대를 경험하게 했다. 그리고 다양한 정체성을 시도하고 장착할 여유를 가져다줬다. 직장에서는 비록 매사에 서툰 신입사원이지만 퇴근 후에는 러닝크루를 이끄는 리더일 수 있다. 회사에서는 항상 웃는 낯으로 고객을 대하며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영업직이지만 주말에는 혼자 등산하는 고독한 등반가일 수 있다. 거기에 비대면 업무에서 화면에 비치는 상의에는 출근복을 입고 하의는 편한 바지를 입는 것처럼 조직에서의 시간에서도 개인적인 정체성이 혼재되는 양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집에서 재택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나는 근로자(worker)인 동시에 온라인 수업을 듣는 자녀를 돌보는 부모이고, 주말에 떠날 캠핑장을 검색하는 초보 캠퍼이기도 하다. 이러한 복합적인 정체성은 조직에서 회사원으로서만 타인과 기능할 때보다 훨씬 다양하고 동시적으로 내 안에서 발현된다. 또 다른 예로 점심시간에 혼자 식사하는 것을 선호하는 직장인이 늘어나는 것이 그 단면이다. 자기 계발 등의 표면적인 여러 이유와 더불어 내면에서는 점심시간조차 회사원으로서의 페르소나를 쓰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둘째, 개인 간의 유대감이 느슨해지고 있다. 입사부터 퇴사까지 한 직장에서 동일한 사람들과 근무하던 시절에 비해 종신고용이 드물어지고 있는 요즘에는 한 직장에서 동일한 사람들과 같이 근무하는 시간과 햇수가 점차 짧아지고 있다. 현재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전체 인격의 모습을 다 보여줄 필요나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적당히 어울릴 정도로만, 혹은 조직에서 바라는 정도로만 가공해 나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나의 사적 생활로 들어가거나 혹은 다른 부서, 다른 회사로 옮겨 새롭게 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 과거 자녀들까지 서로 교류하며 너나없이 지냈던 시절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나와 관련된 정보를 제한적으로 오픈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가면 대 가면으로서의 만남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셋째,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달라지고 있다. 누구에게는 회사에서 성공하는 것이 제일의 과제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안정적으로 회사 생활을 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잘 운영하는 것이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의 시간만큼이나 회사 밖에서의 시간이 자신에게 중요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개인적 시간과 여유를 확보하기 위해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한 극명한 예가 아이돌 팬클럽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팬들은 자신이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일하는 것은 덕질할 시간과 돈을 확보하기 위한 부캐의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자신은 하루 종일 아이돌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쓰고 싶지만 본캐의 생활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사원으로서의 부캐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넷째, 조직에서의 몰입이 개인의 모든 것을 담보해 주는 시대가 끝나고 있다. 조직 밖에서도 독자 생존이 가능하도록 개인의 다양한 시도가 필요해지고 있다.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개인이 조직의 그늘을 벗어나서도 살아남기 위해 조직이 부과하는 페르소나 외에도 다양한 부캐를 시도해보고 연마하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해지고 있다. 스태프 부서이지만 코딩을 공부해 개발 영역을 아우르는 직원이 되려 하거나 안정적인 공기업이지만 그간의 개인적 연구 결과를 모아 책으로 출간해 한 분야의 전문가로 자리매김한다. 안전지대(Safety zone)를 벗어나 성장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 지금의 시대에는 필수적이 돼 가다 보니 본캐와 부캐, 멀티 페르소나는 어떤 면에서 시대적인 요구가 돼 가고 있다.

회사원 페르소나로만 살아가는 리더들을 위한 제언

멀티 페르소나 트렌드는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리 불편하지 않은 변화일 수 있다. 어려서부터 디지털 기기들과 함께 자라온, 이른바 MZ세대에게 상황마다 다른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랜 기간 회사원 정체성만을 강요받으며 조직 내에서 성장한 회사의 리더들이다. 리더십의 관점에서 이런 사회적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최근 만난 한 임원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저는 매일 전쟁터에 나오는 심정으로 일을 하는데 제 구성원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까요?”

그는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요즘, 매일 전쟁에 임하는 마음으로 밤낮없이 일에 몰두하는 자신에 비해 긴장감도 없고 몰입도 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구성원들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표현했다. 심지어 퇴근 시간만 기다리다가 칼퇴근하는 게 하루 목표인 것 같은 구성원들을 볼 때 이렇게 놔둬도 되는지 근심이 된다고 했다. 이 임원 외에도 최근 리더들로부터 (대부분이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인)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하면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리더들의 눈에는 노력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 인재들인데 회사 일에 그만큼 열심을 다해 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리더들에게 현재 삶의 모습을 물어보면 대부분이 업무 시간과 상관없이 하루 종일 회사 일로 머리를 가득 채우고 생활한다. 퇴근하고 자기 직전까지도 회사 일을 생각하고 심지어 자다가도 회사 생각에 새벽 일찍 일어나진다고 한다. 그리고 남들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회사에 나와 혼자서라도 하루 일을 시작한다. 야간에도, 그리고 주말에도 회사 생각이 머리에 가득하기 때문에 그 생각을 잊을까 봐 일과 시간 이외에도 중간관리자들에게 카톡을 보내게 된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회사 외의 다른 삶, 다른 주제, 다른 생각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역량의 120%를 쏟아부어서 회사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에너지의 70%도 안 되게 회사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성원들의 모습은 답답하기 그지없는 골칫거리였다.

그들은 멀티 페르소나의 존재라기보다는 회사형 페르소나 하나에 집중돼 있는 사람들이었다. 처음부터 그런 모습은 아니었겠지만 조직에 적응하고 동화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개성, 취향보다는 회사가 원하는 모습을 가장 중요한 페르소나로 받아들이고 그에 순응했다. 그리고 그러한 몰두가 현재 자신의 성취를 이루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에 비해 필요한 정도로만 일하고 나머지 에너지는 회사 외의 자신의 취향, 관심사에 사용하는 구성원들은 멀티 페르소나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직장에서는 회사의 페르소나를 받아들여 사용하지만 퇴근 후에는 회사와는 다른 정체성으로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가지 페르소나에 익숙한 리더들은 자신의 모습이 직장과 가정에서 다를 때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괴로워한다. 앞서 예로 든 임원처럼 자신이 이중인격이 아닌가 남모르게 고민하기도 한다. 정신분석적으로 볼 때 이런 경우는 이중인격 같은 위선적인 모습이 아니라 근무 시간 동안 ‘너그러운 리더’라는 페르소나를 쓰기 위해 자신 안의 좋은 부분(good self)과 나쁜 부분(bad self)을 분리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회사에서는 자신의 좋은 부분만을 밖으로 보이려 하다 보니 나쁜 부분은 안으로 억제되고 상대적으로 더 안전한 공간인 가정에서 억눌렸던 나쁜 부분이 밖으로 투사(projection)돼 가족들에게 더 화를 많이 내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페르소나 자체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다. “사회적 성격(페르소나)은 한편으로 사회의 기대와 요구에 맞춰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사회적 목적과 열망에 맞춰져 형성된다”는 카를 융의 정의에서 보듯이 사회에서 잘살기 위해 개발된 외부적 가면인 것이다. 가면이 오래되고 강력할수록 본래의 자신은 눌리고 무의식으로 가라앉게 된다. 그리고 눌려 있는 무의식은 위 임원의 경우처럼 어떤 형태로든 주변에 그림자(shadow)를 드리운다.

이렇게 본래의 성격을 뒤덮을 정도로 조직이 원하는 페르소나를 자신의 주(主) 정체성으로 삼은 리더들이 보기에 조직화하지 않은, 다양하고 개인적인 페르소나를 회사에서도 종종 보이는 구성원들은 이해 불가의 존재로 보일 수 있다. 혹은 이해 불가를 넘어 계몽하고 이끌어야 하는 변화의 대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 마음들이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에게 동기부여할 수 있는지(혹은 어떻게 하면 자신처럼 조직에 강하게 몰두하는 페르소나를 갖게 할 수 있는지)” 묻는 답답함으로 표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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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성원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이러한 질문에 대한 코칭의 답변은 “그들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이다. 조직에서 70%의 에너지만을 사용하고 나머지를 다른 페르소나에 쓰고 있는 구성원이라면 이미 그의 마음에서 그 정도의 배분이 현재의 삶에 최적이라고 결정을 내린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직에서 지내면서 ‘내면의 그 이유’가 변화할 때 페르소나 사용의 비율과 방법이 자연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현재 왜 조직형 페르소나에 70%의 에너지만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그 이유를 찾고 이해하는 것이 리더로서 더 필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은 그런 초년의 시절에 어떤 방식으로 조직을 향해 동기부여됐는지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많은 리더에게 자신의 경우에는 어떻게 현재의 페르소나를 구축하게 됐는지를 물어보면 대부분 누가 동기부여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조직에서 인정받다 보니 성취감과 자율성 속에서 현재의 회사 몰입형 페르소나를 가지게 됐다고 대답한다. 자신에게 적용됐던 그 방식(자신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찾고 거기에 자율적으로 몰입하는 과정)이 지금 자신이 답답해하는 그 구성원들에게도 동일하게 페르소나를 교체하거나 구성하는 원리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어떻게 조직에서 의미 있는 일과 그를 통한 몰입과 보상을 경험하게 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성원들이 조직에 70%만 몰입해도 된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좀 더 조직적인 삶에 가치를 두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조직적 차원의 접근도 요구된다.

구성원들이 100%의 몰입을 조직에서 보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헌신이 보상받을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 판단 때문이다. 내가 고생해도 그 성과는 팀장이 가져가고, 올해 성과가 좋아도 고과는 이미 승진 예정자가 받을 것을 알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필요 이상의 노력을 조직에 기울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작년 여러 기업의 조직문화 컨설팅에서 “조직을 위해 묵묵히 일할 수 있다”라는 항목에 대해 젊은 세대일수록 반발감이 심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리더 개인이 구성원들에게 원하는 만큼의 승진이나 보상을 충분히 줄 수는 없다. 그래서라도 자신이 동기부여됐던 방식이 승진이나 보상뿐만은 아니었음을 기억해 구성원들이 내적으로 동기부여될 수 있는 다른 방식의 보상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2. 회사형 페르소나 외의 페르소나를 개발하자

다른 한편으로 리더들에게 더 중요한 코칭은 자신들 또한 그 구성원들처럼 멀티 페르소나를 개발해야 하는 과제일 것이다. 구성원들이 회사에 충실한 페르소나를 70% 사용하고 개인적 삶에 투자하는 페르소나를 30% 사용하는 것처럼 리더들도 회사형 페르소나를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쓰고 사는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은 일 속에 삶이 다 들어가 있었다면, 그래서 일 외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할 부분이 없을 정도로 일로만 나의 일상이 다 채워져 있었다면 앞으로는 일과 삶의 무게추를 조금 더 개인적 삶으로 옮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회사에서 원하는 모습을 자신의 주된 페르소나로 받아들이고 평생을 그 페르소나에만 자신을 맞춰 생활하다 보면 퇴직 후 페르소나가 벗겨지면서 당혹감을 느끼는 리더들이 많다. 한 임원은 퇴직 후 자신이 몸이 불편한 장애인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아무것도 혼자서 할 수 없고, 직함을 떠나서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찾기 어려워 힘들었다고 했다. 현직에 있을 때 회사형 페르소나 외의 자신의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는 것이 회사 이후의 삶을 대비하는 데 필요하다.

일하는 동안에도 회사형 페르소나와 자신 간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페르소나에 자신이 매몰돼 버리면 업무에 대한 평가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업무의 부침에 따라 개인적 자존감과 스트레스가 같이 요동칠 수 있다. 그러나 일 외에도 개인적 정체감이 든든히 있는 사람은 비록 업무적인 면에서 여러 사건을 겪는다고 해도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나 안정감을 쉽게 잃지 않는다.

3. 자신의 다층적인 면을 발현하자

리더십을 펼치는 방식과 관련해서도 멀티 페르소나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리더십은 그동안 많은 이론이 명멸했다. 1920년대의 자질 이론(trait theory)1 은 1940년대 스타일 이론(style theory)2 으로 대체됐다. 현재의 리더십 연구는 리더십은 특정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조건부 이론(contingency theory)이 우세하다. 업종마다, 시기마다 다양한 상황이 펼쳐지는 만큼 하나의 고정된 리더십이 아닌 상황에 맞는 적합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즉, 상황에 따른 다양한 페르소나를 갖춘 리더가 리더십이 더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현업에 적용해 보면 승진을 한 후에도 여전히 실무자의 페르소나만을 사용하는 리더들을 볼 수 있다. 어느 정도가 지나면 현업은 아래로 위임하고 더 큰 단위의 일을 계획하고 관리해야 함에도 과거 익숙했던 방식대로 실무자로서만 업무를 처리하려 한다. 이럴 경우 상황에 맞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개발해야 한다. 즉, 실무자가 아닌 전략가, 코치, 관리자로서의 페르소나의 개발이 더 나은 리더십을 위해 필요하다. 또는 팀장이 된 후에 친근한 동료라는 페르소나 외에도 결정하고 책임지는, 그래서 때로는 쓴소리도 해야 하는 결정권자의 페르소나가 필요하다. 특히 성격이 유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섬세히 인지하는 리더들은 구성원들에게 냉정한 말을 해야 함에도 그들이 받을 상처나 영향을 고려하느라 엄하게 질책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럴 때 연극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하고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본성과는 맞지 않지만 냉정한 리더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연기를 통해 자신 안에 내재해 있던 다양한 모습을 시도해 본다고 생각하면 좋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처럼 때로는 그런 시도가 자신도 모르는 새로운 모습들을 밖으로 이끌어 자신의 성향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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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을 위한 제언

마지막으로, 조직은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멀티 페르소나가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는 갑을 관계가 명확하게 규정돼 있는 수직적 조직문화에서 자신의 위치에 기대되는 을로서의 모습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의 진짜 모습에서 분리된 회사형 페르소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출근하면서 영혼을 집에 두고 간다”는 개념이 젊은 세대 사이에 있다. 그들은 회사에 있는 동안 월급을 받기 위해 일종의 역할극을 수행하고 빨리 퇴근 시간이 돼 원래의 자아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보이는 모습과 퇴근 후 모습이 크게 다르고 그 차이만큼 에너지를 들여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가면을 쓰고 생활해야 하는 회사에서의 시간을 단축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현상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리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선입견과 정답을 내려놓아야 한다. 조직에서 원하는 모습이 획일적일 때 개인은 그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여겨지는 자신의 일부를 분리해 다른 존재로 분열시킨다. 이러한 분열은 종국에는 개인의 해리로 연결돼 신경병증적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 현대대상관계이론 발전에 중심이 된 정신분석학자인 오토 프리드먼 컨버그(Otto Friedmann Kernberg)는 ‘경계선적 인격조직(borderline personality organization)의 개념’에서 이러한 내면적인 분열을 다뤘다. 그는 아동이 정신적 발달을 겪는 과정에서 대상을 ‘완전히 좋은 것’이나 ‘완전히 나쁜 것’으로 분리해 보는 분열(splitting)이 해소되기 시작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달 과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대상과 자아에 대해 끊임없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리하는 분열의 방어기제가 활성화되고 이를 통해 자아가 해리된다(dissociated ego states). 조직에서 개인의 다양성을 억압하고 일률적인 모습을 요구하면 개인은 그에 맞는 모습만을 외부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억압하느라 자아의 일부를 분열시키게 되고 이러한 분열이 장기간 지속되면 컨버그가 말하는 해리된 자아 상태가 돼 본질적인 자신의 모습을 잃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구글을 비롯한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은 분절된 자아가 아닌 “완전한 자아로 일터에 나가라”라는 모토의 조직문화를 지향한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깨어 있는 경영(Conscious Business)』의 저자이자 비즈니스 코치인 프레드 코프먼(Fred Kofman)은 구글에 “완전한 자아로 일터에 나가라”는 철학을 반복해 도입했고 이에 감화된 셰릴 샌드버그가 2012년 하버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이 개념을 다시 언급했다. 또한 슬랙(Slack)의 CEO 스튜어트 버터필드(Stewart Butterfield)는 그러한 태도를 기업의 우선 과제로 삼았다. 즉, “정시에 출근해서 맡은 일을 처리하고 동기나 목표 달성을 향한 열정을 제외한 개인적인 감정은 절대 드러내서는 안 된다”라는 암묵적 당위성 대신 직장에서도 진정한 자기 모습으로 일할 수 있도록 온전한 모습으로 일하는 문화를 지향한다. 이는 이들 혁신 기업이 출근 전과 출근 후의 자아를 분리하지 않고도 직원들이 온전한 자신의 자아 그대로 자신의 열정과 신념을 불태울 수 있는 직장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애쓴다는 의미다.


이경민 마인드루트 대표 kmlee@mindroute.co.kr
필자는 정신과 전문의 출신의 조직 및 리더십 개발 컨설턴트다.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Bethesda Mindfulness Center의 ‘Mindfulness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용인병원 진료과장과 서울시 정신보건센터 메디컬 디렉터를 역임한 후 기업 조직 진단 및 솔루션을 제공하는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기업 임원 코칭과 조직문화 진단, 조직 내 갈등 관리 및 소통 등 조직 내 상존하는 다양한 문제를 정신의학적 분석을 통해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 이경민 | - 마인드루트 대표 / 정신과 전문의
    - 기업정신건강 진단 및 관계/갈등 치료 전문가
    - 대한우울조울병 학회 정회원 및 학회지 편집위원
    - 前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 前 서울시 정신보건센터 Medical Director, 前 용인정신병원 WHO 협력기관 Research coordinator
    -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및 석사
    - 미국 Bethesda Mindfulness Center 'Mindfulness 전문가 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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