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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Interview: 최원진 롯데손보 대표

이사회 매달 열어 경영 현안 철저 통제
경영진 전문성 키웠더니 변화의 추진력으로

배미정 | 299호 (2020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최근 PE펀드 운용사인 JKL파트너스로 대주주가 바뀐 롯데손보의 지배구조가 달라지고 있다.

1. 경영진의 사익 추구를 방지하기 위해 이사회의 기능을 강화했다.
2. M&A 전후 전략 기획과 실행의 연속성을 높임으로써 경영진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변화의 추진력을 높였다.
3. 경영관리목표와 지표를 중장기적인 관점의 내재 가치로 바꾸고 서류 보고를 없애는 등 업무 비효율을 최소화해 빠른 의사결정과 성과 중심 문화를 구축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구지수(한양대 국제학과 4학년) 씨와 장동욱(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기업 집단 계열사에서 PE펀드로 주인이 바뀐 롯데손해보험(이하 롯데손보)이 신속하면서도 급진적인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롯데그룹의 금융 계열사였던 롯데손보는 롯데그룹의 지주사 체제 전환 과정에서 매물로 나와 2019년 10월 프라이빗에쿼티(PE)펀드 운용사인 JKL파트너스의 품에 안겼다. 현재 국내 손보사 13개 중에서 외국계와 MG손보, 롯데손보를 제외한 대부분이 기업 집단 혹은 금융지주회사 계열이다. 대주주가 바뀐 롯데손보의 변화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JKL파트너스의 전무로 이번 M&A를 진두지휘한 데 이어 롯데손보의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최원진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롯데손해보험을 국내 최고의 지배구조를 갖춘 회사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 대표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담당했던 금융 관료 출신으로, 회사법 관련 논문으로 미국 로스쿨 법무박사(J.D.)를 받은 지배구조 전문가다. 롯데손보는 그런 그가 CEO로 처음 직접 경영하게 된 회사다. 최 대표는 “지배구조가 우수한 회사가 성과가 우수할 수밖에 없다. 대주주(지배주주)가 누구든지 간에 지배구조를 통해 경영진의 게으름과 사익 추구가 방지된다면 그 성과가 고스란히 회사와 전체 주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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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최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경영 전반에 걸쳐 많은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했다. 또 이사회의 위원회는 모두 사외이사로 구성해 사외이사 중심의 독립적인 이사회 운영을 보장했다. 이전에 없던 대규모 기업설명회도 수차례에 걸쳐 개최하면서 주주 가치 제고에 대한 의지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소수 주주와의 소통을 위한 공시 횟수도 늘었다. 올해 초 이례적으로 3년간 경영 목표를 공유하는 자율 공시를 낸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 경영관리목표를 단기 손익에서 장기 내재 가치 중심으로 바꿈으로써 조직 전체의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에 동참한 임직원들에게는 성과를 주식으로 공유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최근 우리사주조합에 30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출연해 직원들의 사기를 높였다.

롯데손보는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 386억 원을 기록, 전년 동기(187억 원) 대비 105% 증가하면서 M&A 이후 기업 가치가 신속하게 제고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국내 손해보험시장은 삼성, 현대, DB, KB 등 4개 사가 약 70%의 시장점유율(원수보험료 기준)을 차지하고 있다. 주인이 바뀐 롯데손보가 ‘언더독(underdog)’으로 급부상할 수 있을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가 최원진 대표를 만나 바람직한 지배구조에 대한 그의 생각과 롯데손보가 추진하고 있는 변화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들었다.

지배구조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2005년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에서 사무관으로 일하면서 자본시장법을 제정하는 실무 작업에 3년간 참여하고, 일명 ‘5%룰’1 을 포함해 금융과 지배구조 관련 제도를 직접 만들었다. 특히 당시 SK소버린 사태2 가 벌어지면서 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커진 때였다. 연수로 미국 미시간대 로스쿨에 가서도 자연스럽게 회사법, 특히 미국 기업의 지배구조에 관해 공부를 하게 됐고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의 미국법적 해석’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DBR mini box
롯데손해보험과 JKL파트너스의 만남

롯데손해보험은…
1946년 대한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로 창업, 1963년 한국무역화재보험을 흡수 합병했으며, 1971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첫 상장됐다. 2001년 당시 대주그룹 계열 대한시멘트에 인수됐으나 경영 위기를 맞아 2008년 롯데그룹에 인수돼 2008년 4월 롯데손해보험이 출범했다. 2017년 10월 롯데지주를 설립한 롯데그룹이 공정거래법과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 계열사를 공개 매각했고 2019년 JKL파트너스가 롯데그룹 지분 53.49%를 3734억 원에 인수했다. 최원진 JKL파트너스 전무가 2019년 10월 대표로 취임했다.

JKL파트너스는…
2001년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로 출발한 국내 1세대 경영참여형 사모집합투자기구(PEF)다. 사명은 회사를 창업한 정장근(J) 대표와 강민균(K) 부사장, 이은상(L) 부사장의 영문 이름 첫 글자를 땄다. 2020년 현재 누적 기준 11개 펀드를 조성해 25개 기업에 투자(1조8000억 원)했다. 롯데손해보험뿐 아니라 GS ITM, 동해기계항공, 크래프톤 등에 투자하고 있다. 2017년 국내 기관투자가 최초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주주와 기업 가치를 중시하는 투자 철학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공직에 있다가 PE펀드 업계로 뛰어든 이유가 궁금하다.

운 좋게도 공무원으로 나이에 비해 중요한 일을 맡고,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연수로 간 미국 로스쿨을 졸업하고 미국 변호사로 로펌 심프슨대처바틀렛(Simpson Thacher&Bartlett)에서 일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문관으로도 활동했다.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커졌다. 특히 PE펀드 시장이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직접 딜을 리드해보고 싶어졌다. 내가 합류한 2015년에만 해도 JKL파트너스는 중견 PE펀드 운용사로 입지를 잡았지만 자산운용 규모는 1조 원이 채 안 됐다. 또 금융 관련 포트폴리오가 없었다. 금융업은 규제 산업이기 때문에 규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금융 관료 출신으로서 내가 이 부분에서 다른 JKL 파트너들이 줄 수 없는 가치를 제공하면서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롯데손보는 JKL파트너스가 첫 인수한 금융회사다. 금융업 중에서도 하필 보험업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나, 공무원 시절 보험업도 담당했었나.

아니다. 바닥부터 새로 공부했다. JKL에서 금융업 진출 방안을 고민하면서 금융업 중에서도 어떤 업종이 유망한지를 분석했는데 1순위가 바로 손해보험이었다. 보험업은 성장이 끝났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세분화해보면 그렇지 않다. 인구구조상 대가족 시대에는 가장의 사망 리스크가 컸기 때문에 사망 담보의 생명보험이 빠르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높아지고 1인 가구 비중이 늘어난 요즘은 죽음보다는 상해, 질병에 대한 리스크가 훨씬 커졌다. 실제로 손보업의 상해/질병 부문은 매년 10% 가까이 성장하고 있다. 해마다 은행 예금이 6%, 자산운용사 상품이 2∼3% 성장하는 데 비하면 놀라운 성장세다. 하지만 우리나라 보험업의 자산 규모는 생보가 손보의 3배에 달한다. 통계들이 생보와 손보를 같이 묶어서 발표하기 때문에 손보의 수익성이 잘 안 드러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국내에 손보사는 13개뿐이고, 우리는 매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나온 매물이 MG손해보험이었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았고, 이후 롯데가 지주사를 개편한다는 소식을 듣고 매물이 나오길 기다렸다. 오래전부터 스터디를 하면서 M&A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매물이 나오자마자 누구보다 빨리 도전할 수 있었다.

금융업 중에서도 보험은 가장 복잡한 비즈니스로 알려져 있다.

JKL파트너스 내 M&A를 준비하던 손해보험팀원은 5명이었는데 전문성은 대한민국 최고라고 자부한다. 또 당시 보험업에 탁월한 컨설팅 회사와 같이 전략을 짰다. 이은호 기획총괄과 양재승 상무보는 그때부터 우리와 같이 롯데손보의 전략을 짰는데 이 둘은 현재 회사에 영입돼 전략을 직접 실행하고 있다. 나는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외부 컨설팅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전략을 짜는 사람과 실행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략을 짜는 사람이 실행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 우리는 컨설팅 받기 시작할 때부터 당신들이 직접 전략을 수행하게 될 거니까 실행 가능한 전략을 짜 달라고 요청했다. 딜이 클로징되자마자 이들을 영입하고, 바로 전략 실행에 착수해 빠르게 변화를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럼 본인도 CEO가 될 줄 예상했나.

꼭 그렇진 않지만 나처럼 전략을 세운 담당 파트너가 CEO를 직접 맡는 것은 JKL 같은 경영참여형 PE펀드가 늘 고려하는 옵션 중 하나다. 컨설턴트와 마찬가지로 전략을 짠 사람이 실행을 할 때 강점이 크다. PE펀드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바로 밸류업(Value-up)인데 이 밸류업의 성패는 인수 초기에 달려 있다. 새로운 전문 경영인을 데리고 와서 우리 전략을 처음부터 설명해주고 실행시키는 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PE펀드에는 경영진의 사익 추구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즉 무한책임사원(GP, General Partner)이 유한책임사원(LP,Limited Patner)의 견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전제하에서 GP인 JKL의 파트너가 CEO가 됐을 때 초기 밸류업을 빠르게 진행하는 데 유리하다.

경영진의 사익 추구에 따라 발생하는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배구조의 핵심이다.
PE펀드의 경우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PE펀드는 외양만 보면 다수의 회사를 문어발식으로 운영하는 재벌, 금융지주와 동일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라면 PE펀드는 사익 추구를 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재벌 혹은 지주회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오너 혹은 지주회사 회장을 견제할 제도적 장치나 사회적 힘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PE펀드의 GP는 LP의 견제를 받는다. 우리는 LP와의 계약관계 속에서 정관을 통해 신의성실의무(fiduciary duty), 구체적으로 주의의무(duty of care)와 충실의무(duty of loyalty)를 지기 때문에 매달 지속적으로 성과를 보고하고,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 나는 PE펀드가 일종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는 재벌’이라고 생각한다.

JKL파트너스는 PE펀드 운용사 중에서 가장 먼저 스튜어드십 코드3 를 도입했다.

이미 내부적으로 LP들과의 계약을 통해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의 내용을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에 준비가 돼 있었다. PE펀드의 경우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 전후로 실질적으로 업무가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선언한 이유는 평판이 더 좋아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또 흥미롭게도 홈페이지 대문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공표한 이후로 내부 운용역들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사적인 계약에서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공식적인 약속을 한 데 따른 책임감(commitment)이 커졌다.

PE펀드와 달리 국민연금이나 공모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의 경우 국민 혹은 공모투자자에 대한 신의성실의무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튜어드십 코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의미가 훨씬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자발적인 선언에 그치기 때문에 한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변호사로서 말씀드리면 스튜어드십 코드는 신의성실의무의 두 가지 내용, 주의의무, 즉 게으르지 않아야 하고, 충실의무, 즉 사익 추구가 없어야 한다는 의미를 모두 포괄하고 있는데 국내 상법은 주의의무에 대한 책임만 강조하고 있어 선언의 실질적 의미가 약화되는 측면이 있다. 또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수탁자는 의무를 다하는 만큼 경영 판단 원칙(business judgement rule)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고 면책을 받을 권한도 존중받아야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한 컨센서스가 아직 없어서 의결권 행사가 소극적으로 이뤄지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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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측면에서도 PE펀드가 대주주인 롯데손보가 대기업 혹은 지주회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점이 있을까?

중장기적인 전략 실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금융의 3대 축을 은행, 증권, 보험이라고 본다면 부채 듀레이션(duration)을 따졌을 때 보험상품의 만기가 증권, 예금보다 훨씬 길다. 생보는 20년, 손보는 10년이다. 다시 말해, 한번 상품을 팔면 은행, 증권은 예컨대 1년 후에 리셋이 되지만 보험은 10년 동안 현금 흐름이 지속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금융지주 계열이나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들의 CEO 임기를 보면 대부분 2년이다. 2년마다 평가를 받기 때문에 한 해 기준으로 최대 수익을 내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보험사는 단기 손익 중심으로 팔면 10년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다시 말해, 지금 잘 팔리는 상품이 10년 후에는 기업 가치를 해칠 리스크가 크다. 그래서 적어도 보험업만은 오너가 장기적 시점에서 운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지분 매각을 목표로 하는 PE펀드가 무슨 장기적 시각이냐고 오해하는 분들도 있다. 우리가 5∼6년 후에 회사를 파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때 이 회사를 팔려면 사는 사람도 그다음 5∼6년을 기약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경영 시계는 10년 이상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늘 경영진에게 우리가 지금 파는 상품이 10년 후에도 문제가 없어야 5년 후에 제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장기적 시각이 구체적으로 전략에 어떻게 반영됐는가?

경영관리지표에서 단기 손익을 완전히 배제하고 장기 내재 가치를 반영했다. 장기 내재 가치는 우리가 지금 판 상품의 존속기간 전체, 예컨대 20년 만기 상품이면 20년을 기준으로 상품의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계산한 기술적 개념이다. 올해 손익 관리를 목적으로 잘 팔리는 상품만 팔면 올해 단기 손익은 좋아지더라도 미래 장기 내재 가치는 떨어질 수 있다. 우리는 철저하게 장기 내재 가치를 기준으로 전략을 짜고, 실행하고, 평가한다. 실시간으로 장기 내재 가치를 계산하고 매주 특정 상품의 내재 가치가 떨어질 경우 무슨 문제가 발생했는지, 상품과 인수 정책을 재점검해 전략을 수정한다.

CEO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경영관리지표에 가치, 성장, 수익, 자산운용, 경영효율, 리스크 등 6가지 지표가 있는데 그 최상단의 지표가 CEO의 KPI다. 그 아래 서브 지표들, 예컨대 가치라고 하면 신계약 가치 등이 나무처럼 설계돼 있는데 그 세부 지표들이 각각을 담당하는 총괄들의 KPI다. 각각의 총괄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이 총괄들이 잘하면 CEO의 지표가 올라가고, 총괄 중 한 명이라도 실적이 떨어지면 나의 KPI도 내려가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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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를 쇄신했다. CEO로서 이사회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국에서 이사회의 역할은 전략과 통제(Strategy and Control)로 명시돼 있다. 롯데손보 이사회는 그 같은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대표이사가 아닌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이 이사회 의장이다. 사외이사가 과반수 이상임은 물론 임원후보추천위원회, 감사위원회, 위험관리위원회 등 5개 소위원회를 모두 3명의 사외이사로 구성했다. 대표이사는 소위원회에 결정권이 없으며 아예 회의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사후 보고만 받을 뿐이다. 주요 경영 현안이 이사회의 철저한 통제를 받도록 한 것이다. 또 이사회도 최소 한 달에 1회 이상 자주 열고, 사외이사 분들과는 비공식적으로도 자주 만나 소통한다.

이사회에서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늘 문제가 된다.

독립성은 사실 정의하기 굉장히 어려운 개념이다. 독립성은 기본적으로 오너 혹은 대주주의 파워에 굴복하느냐, 마느냐의 싸움이라고 본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사외이사는 회사에서 월급을 받기 때문에 사외이사 입장에서 당장 쓴소리했다가 잘리면 생계수단이 막막해지는 한계가 있다. 이런 점을 감안했을 때 사외이사의 중요한 자격은 눈치 안 보고 경영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파워, 즉 명망과 전문성이라고 봤다. 사외이사제도를 갖춘 것과 실제로 사외이사가 과연 오너가 대표이사인 회사를 상대로 쓴소리를 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제도를 확실하게 갖춰놓고, 사외이사를 범접할 수 없는 명망가로 모셨다. 삼고초려 끝에 국내 최고의 금융 전문가로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박병원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윤정선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를 사외이사로 모셨다. “최 대표, 이건 좀 아니지 않아?”라고 언제든지 직언해 줄 수 있는 분들이다. 대표이사 개인 입장에서는 불편한 일이 될 수도 있지만 내가 언제까지 대표이사를 할지도 모르고 나중에 전문 경영인이 들어왔을 때 회사는 결국 이사회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 대주주인 JKL파트너스 입장에서도 대표이사인 나를 견제하려면 이 같은 강력한 이사회가 필요하다. 사외이사분들에게 틈날 때마다 질문하시라고, 반대 의견을 내시라고 얘기한다. 그 과정에서 나 또한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사외이사분들이 아무리 명망가라도 보험업의 전문가는 아니다.
과연 제대로 된 조언을 할 수 있을까?

중요한 지적이다. 제도를 만들고 명망가를 모셔도 업의 전문성이 없으면 또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보험업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정기적으로 교육 세션을 진행한다. 한 번 할 때마다 사외이사 교육용 교재를 따로 만들고 내부 임원이 3시간에 걸쳐 교육을 한다. 장관 출신이라고 예외는 없다. 대표인 나도 참석해 사외이사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준다. 사외이사들이 아무리 금융 전문가여도 보험업의 각론까지는 잘 모른다. 회사의 운영 방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국제회계기준(IFRS), 지급여력비율(RBC), 리스크 평가 방식 등 보험업의 각론을 다 가르쳐드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의 이사회는 거수기라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미국에서 이사회가 활발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소유 분산이 잘 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을 이사회가 지도록 법과 제도가 발달했다. 특히 델라웨어 법원이 끊임없이 이사회에 책임을 물으면서 이사회의 신의성실의무라는 개념,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은 이사회에서 하고, 경영판단원칙으로 판단을 보호해주는 동시에 의무를 위반하면 배상 책임을 지는 관행이 발달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주주가 이사를 거수기로 만든 측면이 있다. 미국에서는 ‘이사가 이사회 운영에 대해 궁금하면 물어라, 모르겠으면 반대하라’는 원칙을 분명히 세우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사회의 결정에 대한 면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기업에서는 오너, 주인 없는 기업에서는 회장이 전권을 휘두르고, 또 그 친구들이 사외이사로 들어와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상법을 통해 이사회 책임을 제대로 물을 필요가 있다.

롯데손보는 JKL파트너스가 최대 출자자인 투자목적회사 빅투라(유)가 지분을 77% 갖고 있다.
다른 소액주주와는 어떻게 소통하는가?

주주와 소통하는 자리를 많이 만드는 동시에, 자율 공시를 활용해 법 테두리 내에서 최대한 회사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자 한다. 최근에 이례적으로 3년 치 영업목표 수치를 자율 공시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였다. 기업설명회도 자주 개최해 회사 실적에 대한 투자자들의 이해를 높이고 있다.

M&A 이후에도 롯데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호텔롯데의 지분이 5%인데 롯데와의 관계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롯데그룹은 우리의 주요 고객이며, 2008년부터 2019년까지 롯데라는 브랜드가 롯데손보가 성장하는 데 자양분, 디딤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롯데는 소액주주에 대한 신의성실의무 이상으로 성장의 동반자라고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상호 윈윈하는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회사를 인수한 다음 바로 대규모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직원들의 반발은 없었나?

10년 이상 근속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해 전체 직원 약 1700명에서 460명가량이 회사를 떠났다. 퇴직금 외에 별도로 기본급 39개월분을 제공했고, 20년 이상 근속자에게는 최대 48개월분을 지급했다. 회사를 이만큼 키운 분들에 대한 예우이며, 그분들이 명예롭게 나갈 수 있는 퇴로를 여는 것도 회사의 의무라고 봤다. 그분들이 나가서도 계속 롯데손보의 팬으로 남아 있어야 우리 회사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명예퇴직을 하면서 많은 분을 내보내는 와중에도 핵심 인력을 유지시키는 게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그분들에게 JKL파트너스가 가진 비전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고자 대화를 많이 했다. 다행히 회사가 필요로 한 인력은 대부분 남았다. 명퇴 이후 중간관리자의 평균 연령이 40세로 이전보다 7세가량 젊어지면서 인력 구조도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피라미드형으로 바뀌었다.

직원들은 새로운 롯데손보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가? 근무환경이 급격히 변했다고 들었다.

PE펀드에 피인수된 회사 직원들은 초반에 힘들 수밖에 없다. PE펀드의 밸류업 활동은 일대일 고강도 퍼스널 트레이닝(PT)에 비유할 수 있다. 조직에 문제 해결 능력,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민첩성, 조직문화의 유연성 등 이전에 안 쓰던 근육을 키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직원들 모두 지금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들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이 붙으면 몸매가 변하는 것을 느끼면서 재미있어지는 단계가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파트너 대신 전문 경영인이 와서 요요 현상이 없도록 잘 관리해주면 된다.

예컨대, 롯데손보 조직에도 다른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비효율적인 보고 문화가 문제였다. 보고 체계가 길고, 또 철저하게 서면으로 진행하면서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었다. CEO로 부임하자마자 모든 보고는 e메일로 하라고 지시했다. 보고서 뿐만 아니라 파워포인트 양식까지 금지했다. 형식이 필요한 대외적인 내용을 제외한 모든 보고를 e메일로 쓰라고 지시했다. 처음에는 사내 동료 간 e메일 사용 자체가 거의 없었던 탓에 다들 어색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외국계 회사처럼 거의 모든 소통을 e메일로 한다. 대리가 상무에게 e메일로 바로 보고하고, 임원들도 나한테 업무의 90% 이상을 e메일로 보고한다.

e메일 보고의 장점은 개인별로 논리력과 작문 실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임원들 입장에서 메일을 쓰기 전에 사전에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공식적인 임원 회의 횟수를 줄이고, 회의도 기존에 e메일로 공유한 내용을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했다. 이렇게 업무 처리가 신속하게 이뤄지면서 임원들의 업무량은 오히려 더 늘었다. 흥미롭게도 임원과 달리 팀장 이하의 젊은 층에서는 e메일 보고 덕분에 업무량이 줄어서 좋다는 의견이 많다. 명예퇴직으로 직원 수가 줄었기 때문에 업무량이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업무 효율성을 높여 직원들의 반발을 줄인 효과도 있다. 대신 임원들의 부담은 훨씬 더 커졌다. 이전처럼 아래 직원들이 예쁘게 만들어준 보고서로 대충 무임승차해 보고하는 일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조직의 미래는 젊은 직원들의 아이디어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조직문화혁신 TF를 통해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더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 브라운백 런치 미팅을 통해 직접 직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브라운백 런치는 직원 누구든지 참석할 수 있다. 샌드위치 주문을 위해 사전 예약을 받긴 하지만 담당 부서는 참석자 명단을 만들지도 않고 따로 회의 진행 자료도 준비하지 않는다. 내가 세운 유일한 원칙은 “누구나 환영. 단, 샌드위치를 들고 나가지만 말 것”이다. 회사에서 이런 형태의 CEO와의 소통은 처음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새로운 대표 얼굴 한번 보겠다는 생각으로 왔다 어색해하던 직원들도 곧 질문을 쏟아낸다. 손보업 전망이나 디지털 전략뿐 아니라 성과주의를 어떻게 도입할지, 조직문화를 어떻게 바꿀지 본인들의 생활과 관련된 구체적인 질문을 하기도 한다. 우리 회사 광고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연예인이 누구인지를 묻는 재미있는 질문도 있었다. 브라운백 런치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사내에 알려지고 있어 앞으로 미팅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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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 사이에는 지분매각(exit)에 관한 막연한 불안감도 있을 것 같다.

롯데손보가 70년이 된 회사인데 그동안 주인이 5번이나 바뀌었다. 회사 내부에 패배주의도 존재했다. 그동안 주인이 바뀌면서 딱히 나아지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취임사에서부터 5∼6년 후에 엑시트할 것이라고 직원들에게 딱 시기를 박아 얘기했다. 진정성을 갖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소통의 출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 우리의 매각이 롯데손보의 마지막 매각이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장기적인 경영이 가능한 가장 바람직한 매수자를 찾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그게 국내 토종 PE펀드 운용사인 JKL파트너스가 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진심을 임직원들에게 솔직하게 전달했다.

또 열심히 일한 직원들에게는 반드시 성과로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이전까지 직원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노조 협상의 결과에 따라 임금 상승폭이 제한돼 있었다. 롯데손보처럼 장기 내재 가치에 따라 운영되는 회사에 가장 효과적인 성과 보상 수단은 바로 주식이다. 올해 초 30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임직원들에게 나눠준 것처럼 회사가 목표 이상의 성과를 달성하는 대로 그 성과의 상당 부분을 현금이나 주식으로 나눠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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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분기 호실적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코로나19의 영향도 있나?

코로나19 위기 초반에 일시적으로 자동차 운행이 감소해 보험금 청구가 줄어들어 손해율이 떨어지는 효과가 있기는 했지만 곧 생활 방역 체제로 들어가면서 그런 위기 효과는 사라졌다. 우리는 전략적으로 상품 포트폴리오에 변화를 준 성과라고 판단하고 있다. 인력 감축에 따라 절감한 비용을 수익성과 성장성이 좋은 상해, 질병 부문의 마켓 셰어를 늘리는 데 투자했다. 손해율이 높은 상품의 인수를 중단하고, 손해율이 낮은 상품 매출에 집중하다 보니 전체 매출은 일부 줄어들었지만 손해가 줄어서 이익이 좋아졌다. 포트폴리오를 직접 바꾼 노력이 재무적인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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