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에서 북경까지

꽃단장과 ‘말발’로 무장… 자신감이 승리의 원동력

281호 (2019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고대의 전쟁은 사기 싸움이었다. 최후의 1인까지 목숨 바쳐 싸우는 군대 같은 건 원래 없다. 대세가 기울어 패색이 짙어진 쪽의 병사들 사기가 급격히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병사들의 진형이 무너지고 패주한다. 그래서 그렇게 사기를 올리기 위해 장군들은 화려한 장식을 하고 목청을 높여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전쟁과 같은 상황’에선 때론 그럴 필요도 있지 않을까.


편집자주
인간사에는 늘 반복되는 패턴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함은 바로 그 패턴 속에서 현재의 우리를 제대로 돌아보고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의미일 겁니다. 철학과 역사학을 오가며 중국에 대해 깊게 연구하고 있는 안동섭 인문학자가 주(周)나라가 낙양을 건설한 후로 현대 중국이 북경에 도읍하기까지 3000년 역사 속에서 읽고 생각할 만한 거리를 찾아서 서술합니다.



어린 시절 필자는 미니카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달려라 부메랑’의 열렬한 팬이었다. ‘본방’을 사수(死守)했고, 다섯 종의 미니카를 모두 모았다. 주제가를 달달 왼 것은 물론이다. 25년이 족히 지나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완창이 가능하다. “푸른 신호다! 꿈을 싣고 달려라 부-메-랑.”

꼬깃꼬깃 용돈을 모아 문방구에서 2000원을 주고 부메랑 미니카를 살 기회를 잡았을 때 필자가 가장 먼저 구매했던 건 주인공 미니카인 ‘부메랑’이 아니라 보조역인 ‘캐논볼’이었다. 기체 디자인이 멋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만화 속에서 ‘캐논볼’을 운용하던 친구의 독특한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의 그는 자신감이라곤 한 방울도 없는 소심한 학우로 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하지만 헤비메탈 기타리스트처럼 짙은 얼굴 화장을 하고 나면 대단히 열성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투사 ‘카멜레온’으로 변한다. 방사능 거미에게 물린 것도 아니요, 약을 먹은 것도 아니요, 그저 화장을 조금 했다고 사람이 180도 변하다니, 이 얼마나 멋진 설정인가.



자신감에는 실로 그런 속성이 있다. 딱히 대단한 근거가 있어야만 자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새로 산 구두가 어색하지 않아서 자신 있고, 쇼윈도에 비춰보니 그날따라 말쑥해서 자신 있고, 키높이 굽을 3㎝ 넣었더니 윗동네 맑은 공기가 느껴져서 자신 있고, 고데기에 머리가 잘 말려서 자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필요한 중요한 일을 앞두고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고, 좋은 옷을 꺼내 입는다.

옛날 중국인들도 그랬다. 마치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이 적장의 목을 ‘뎅강 자르기’로 유명한 여포가 무슨 꼴을 하고 전쟁터에 나서는지 한번 보자. 비녀를 세 개나 꼽아 단정하게 정리한 머리에는 보랏빛 금관을 썼고(頭戴三叉束髮紫金冠), 몸은 온갖 꽃을 수놓은 서천의 붉은 비단으로 감쌌다(體挂西川紅錦百花袍). 갑옷은 괴수가 사람 머리를 꿀꺽 삼키는 문양으로 장식했고(身披獸面吞頭連環鎧), 반짝반짝 빛나는 허리띠는 사자의 형상으로 조각했다(腰繫勒甲玲瓏獅蠻帶).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스의 방패는 또 어떠한가.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와 싸우러 나가는 아킬레스는 자신의 영혼과도 같은 방패를 챙기는데 그 겉면에는 땅, 하늘, 바다, 태양, 달, 별자리들, 두 아름다운 성시(城市)를 가득 채운 시민들이 결혼하고 변론하고 싸우는 모습, 밭을 가는 농부들, 추수 때의 왕의 농장, 포도밭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이들, 소 떼의 선두를 습격한 사자를 쫓아내려고 노력하는 목동과 그의 개들, 양 떼 농장, 플로어에서 춤을 추는 젊은 남녀들, 그리고 도도히 흐르는 대양(大洋)이 조각돼 있었다. 1

여포나 아킬레스처럼 살아 있는 전투 기계가 아닌 이들도 병기와 갑옷의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썼다. 로마의 병사들이 머리에 깃털을 꽂고 장군들이 황금으로 갑옷을 만든 것은 깃털과 황금이 쇠보다 단단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근대 영국의 소총병들은 화려한 붉은 코트를 입었지만 붉은색은 보호색이 아니었고, 높이 솟은 검은 곰 가죽 모자를 썼지만 가죽은 방탄이 아니었다. 사무라이들의 투구에 달린 수사슴의 뿔과 같은 거추장스러운 장식들은 실제 수사슴의 뿔만큼이나 도움이 안 됐다. 예쁘니까 입은 거다. 2


하지만 예쁜 것이 아주 무익한 것은 아니다. 고대의 전쟁은 사기 싸움이었다. 최후의 1인까지 목숨 바쳐 싸우는 군대 같은 건 없다. 대체로 대세가 기울어서 승패가 정해졌다 싶으면 패색이 짙은 쪽 병사들은 사기가 급격히 떨어진다. 사기가 바닥나면 자연스럽게 진형이 무너지고 패주한다. 따라서 장군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병사들을 찬양하고 고무하는 것이었다. 수하의 사기를 높이고 또 유지시키기 위해선 우렁찬 목소리와 완력만큼이나 눈에 보이는 요소들이 중요했다. 그래서 장군들은 대개 수탉처럼 화려하게 입었다. 특히 머리에 신경을 썼는데, 모자와 장식품들은 대체로 하늘 위로 솟구쳐서 착용자의 키가 커 보이도록 했다. 사람들이 대체로 권위와 명망이 ‘높은’ 사람들의 키를 실제보다 ‘높게’ 기억하곤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3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채펄 힐(UNC at Chapel Hill) 아시아학과에서 중국 초기 역사와 문화, 언어에 대해 연구하는 우페 베르게톤(Uffe Bergeton) 교수의 근간(近刊)에 따르면 기원전 500년을 전후해 ‘글월 문(文)’자의 의미가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본디 지배자가 온몸에 두르고 있는 장엄하고 화려한 장식과 그러한 장식이 발산하는 경이롭고 아름다운 아우라를 뜻하던 이 글자(文)는 공자가 활동하던 시대를 전후해 인품, 행동거지, 교양 등 보다 체화된 형태의 세련됨과 아름다움을 지시하게 됐다. 후자의 의미는 오늘날 한국어에서 문화(文化), 문명(文明) 등의 용례로 남았고 전자의 의미는 문신(文身)과 같은 형태로 남았다. 4


주(周)나라가 강태공(姜太公)의 도움으로 기원전 11세기경에 상(商)나라를 정복하고 중원을 통일한 사건은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 오래도록 회자된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많은 버전은 보통 주나라의 (사실상) 창건자인 문왕(文王)과 그의 아들 무왕(武王)을 대비시킨다. 문왕은 비(非)군사적인 성격의 온화한 군주로 조용하고 얌전하지만, 무왕은 군사를 독려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군인 왕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베르게톤 교수의 분석대로라면 문왕은 조용히 앉아서 문자를 쓰고 읽는 얌전한 군주라기보다는 온몸에 찬란한 기물을 치렁치렁 달고 있는 위풍당당한 지도자다. ‘문’은 여포의 자금관이요, ‘무’는 여포의 칼과 창이다. 이렇게 보면 문무(文武)는 애초에 상호 모순되는 대립항이 아니요, 한 존재의 양면(兩面)이다.

하지만 지도자가 예쁘게 차려 입거나 몸에 용 문신을 하는 것만으론 수하의 사기가 충분히 차오르지 않는다. 말(馬)을 타고 쳐들어오는—그래서 키가 커 보이는— 적에 맞서 높은 사기를 유지하려면 말(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장군들은 병사들을 향해 끝없이 독려의 말을 외친다. “우리가 진다!” “우리는 필시 질 것이다!”라고 외치는 장군 밑에서 활을 쏘고 칼을 휘두르자면 얼마나 기운 빠지겠는가. 그러니 불리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유리하다!”라고 외치는 장군들을 비웃을 순 없다. 격려의 말은 유리한 전황에 대한 보고라기보다는 유리한 전황에 대한 요청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다”라는 방송인 노홍철 씨의 말처럼 꼭 어떤 근거가 있어서 자신감이 생기는 게 아니라 일단 어떻게든 자신감을 창조해내고 나면 근거는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

그래서 승전한 장군들이 외친 말들을 모아두고 보면 예고하고 홈런을 때렸다는 전설 속의 야구선수처럼 멋지지만 패전한 장군들이 외친 말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름을 가리고 나열해보면 양자는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닮았다. 양자 모두 분석의 말이 아니라 독려의 말이며, 모든 독려의 말은 사실 비슷하기 때문이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말로 소속 장졸을 독려해 전투에서 승리하면 명언이 되지만 비슷한 말들로 군대를 독려하다 모두 얼어 죽고 패배하면 불후의 조롱거리가 된다.

실제로 프랑스어 사전엔 당연히 ‘불가능’이 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언어학(言語學)적 분석 끝에 저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분석의 말은 참모들의 몫이다. 참모들은 사기가 충천한 군대의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막사에 들어가서 가장 차분한 자세로 전황을 파악하고 계획을 수립한다. 이들은 보통 언성을 낮춰 행여나 막사 밖에서 누가 들을까 걱정한다. 장졸들의 피를 뜨겁게 하는 웅변이 장군의 미덕이라면, 막사 안에 모인 머리들을 차갑게 식히는 언변은 참모의 미덕이다. 장군이 낙관주의를 설파할 때 참모는 비관주의적 경고를 잊지 않는다.

문(文)과 무(武)가 둘이 아닌 것처럼 장군과 참모도 둘이 아니다. 막사 밖에서 격렬한 연설을 마친 장군은 막사로 돌아오는 순간 자금관을 벗고 참모가 된다. 또한, 조심스레 리스크를 점검한 참모가 다시 적토마를 타고 밖으로 나가면 장군이 된다. 아폴론이 술에 취하면 디오니소스가 되고, 디오니소스가 술에서 깨면 아폴론이 되는 것처럼 위대한 군인은 장군의 심장과 참모의 머리를 겸비하고 싸운다. 5



그렇다고 장군과 참모의 말을 언제나 5대5로 균형 있게 섞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이 터지기 전에는 참모의 분석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는 게 좋겠다. 누가 싸우자고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필승의 전략으로 상대방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떠드는 것은 호전광의 허언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개전(開戰)했다면 이제부터는 장군의 심장을 더 믿어야 한다. 엄숙한 출정식 자리에서 “우리 승률은 1할 미만이다”라고 외치는 이는 머리를 보존하기 어렵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이 무거운 이유는 카이사르가 주사위를 두 번 던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루비콘강을 건넜으면 주사위를 다시 던져보고 군대를 물릴 생각을 하느니 차라리 모두 함께 각오하고 뛰는 편이 승률이 높다. 마찬가지로 고대 중국인은 한 사안을 두고 두 번 점을 치지 않았다. 6 기원전 1200년 무렵 상(商)나라의 군주들은 전쟁과 같은 중대사를 앞두고 거북이 배 껍질을 지져서 점을 쳤다. 점을 치기 전까진 왈가왈부 토론할 수 있지만 일단 점괘가 나온 뒤에는 반대할 수 없다. ‘푸른 신호’가 나왔으면 이제 참모의 모자를 잠시 내려두고 ‘카멜레온’처럼 짙게 꾸민 뒤 모두 함께 ‘캐논볼’을 몰며 돌진해야 한다. 모두가 함께 뛰는 군대는 사기가 높고, 사기가 높은 군대는 승리한다. 장군들의 독려의 외침이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인 것과 마찬가지로 개전이 길(吉)하다는 갑골점의 점괘도 그렇게 스스로 적중률을 높인다.

거북이는 지져졌다. 화장을 고치고 키높이 굽을 넣자.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利涉大川) 7 ‘물러설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오직 승리를 향해 달려 나갈’ 뿐이다. 8


필자소개 안동섭 인문학자 dongsob.ahn@univ.ox.ac.uk
필자는 연세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중국 남송시대를 연구한 논문으로 동양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이의 거경에 대한 연구’ ‘Contested ConnectionConeection: the 12th Centurty Debate on Zhou Dunyi’s Hometown’ 등 다수 논문을 국내외 유력 학술지에 게재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1호 Local Creator 2019년 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