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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Brief-Case: 미국 서남부의 무방류(ZLD) 시스템

환경보호 vs. 경제성 딜레마, 기술 혁신으로 돌파

김윤진 | 287호 (2019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무방류(Zero Liquid Discharge, ZLD)는 발전소, 공장 등에서 나오는 오·폐수의 98∼100%를 재활용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미국 텍사스 등 수자원이 귀한 지역에서 물 한 방울도 허투루 쓰지 않지 않겠다는 의지가 만들어낸 기술이다. 미국 서남부 일대의 주정부는 사업허가 단계에서부터 폐수 방류 여부를 까다롭게 심사함으로써 관련 기술 확산과 진보에 기여했고, 발전소 등 각 도입 주체들은 주어진 환경에 맞는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정부의 요구에 화답했다. 결과적으로 텍사스 발전소의 성공적인 무방류 시스템 도입 사례는 환경보호와 경제성이 결코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며, 기술 혁신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신기술 적용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간 긴밀한 신뢰 구축 △적응형 시스템을 통한 불확실성 대응 △지속적인 대중 교육을 통한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지속가능한 성장을 고민하는 한국 기업에 제시한다.



“물이 기름보다 귀해질 날이 올 것이다(We will be fighting over water not oil).”

쨍한 햇빛,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타들어 갈 듯한 날씨의 미국 남부 텍사스주. 일주일에 7일, 24시간 에어컨을 가동해야 하는 텍사스 사람들에게 전기는 생존을 위한 필수재이다. 그런데 이 전기를 생산하고 도시의 불빛을 밝히려면 반드시 치러야 할 비용이 있다. 바로 ‘물’이다. 석탄, 가스 등 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증기 터빈을 돌려야 하는데, 이때 발전용 터빈을 차갑게 식히고 오작동을 막는 데 엄청난 양의 냉각수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 캘리포니아, 텍사스, 네바다 등 서남부의 4000만 인구가 2000㎞ 콜로라도 강줄기에 의존해 산업용수, 농업용수, 식수 등을 조달하는 상황에서 냉각수를 무한정 끌어올 정도로 수자원이 풍부하진 않다는 점이다. 사막 한복판에 있는 세계 최대 유흥도시 라스베이거스의 경우 콜로라도강에 후버댐을 세워 만든 16만 에이커의 인공 저수지 ‘미드(Mead)’가 없으면 유지될 수조차 없다.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밤을 가능케 한 것도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미국이 총 2만1000명을 동원한 대규모 토목 공사로 쌓아 올린 이 댐이다. 이처럼 수자원 부족을 극복하기 위한 물 저장과 활용의 기술을 빼놓고 미 서남부 도시의 부흥을 논할 수는 없다. 이 지역의 도시 발전(發電)을 위한 물 재활용의 역사가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의 발전소들은 오래도록 물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총 1516㎿(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하며 중부 텍사스 지역 약 150만 가정에 전기를 공급하는 텍사스주 템플시 판다 천연가스 발전소도 예외는 아니다. 액화천연가스(LNG)로 물을 끓여 증기 터빈을 돌리는 이 발전소에서도 발전기 2대를 가동한 뒤면 어김없이 폐열을 식히고 난 뒤 냉각수가 쏟아져 나온다. LNG가 화석연료 중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가장 적게 배출하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낮은 에너지원이긴 하지만 이 역시 물 수급 문제로부터는 자유롭지 않다.



발전소 냉각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의 근원은 템플시 인근의 하수 처리장이다. 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이후 템플시에서 발전소 냉각탑에 사용하기 위해 판다 발전소에 공급한 도시 재생 폐수의 양은 50억 갤런에 달한다.1 실제 판다 발전소가 템플시 최고의 물 사용자일 정도다. 이 같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이 발전소는 ‘물 재활용’을 위한 설비를 구축했다. 템플 발전소가 현재 채택하고 있는 물 재활용 기술은 바로 오·폐수의 98∼100%를 다시 쓰는 ‘무방류(Zero Liquid Discharge, ZLD)’ 수처리 시스템이다.

이 무방류 시스템은 물이 귀한 지역에서 물 한 방울도 허투루 쓰지 않고 발전소에서 새 나가게 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만들어낸 기술이다. 판다 발전소의 무방류 시스템은 분당 450갤런의 물을 재활용 가능하게 처리하며, 이 기술은 하천 등에서 끌어와야 할 원천수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기술의 진보 덕분에 수자원 낭비와 오·폐수 방류에 대한 염려 없이 전기를 마음껏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 한 방울도 새 나가지 않게’ 무방류(ZLD) 시스템

이처럼 템플 발전소를 비롯해 미국의 민간 발전소들이 활발히 도입 중인 무방류(ZLD) 시스템의 목적은 ‘물 재활용’이다. 원리를 단순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통상적으로 라면을 먹고 뒤처리를 할 때 건더기부터 건져낸 다음, 남은 국물을 하수구나 변기를 통해 버린다. 이때 남은 국물을 발전용 폐수라고 하자. 이 국물에는 스프의 각종 성분과 불순물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더러운 국물을 배출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해서 펄펄 끓여 졸이고, 또 졸이면 된다. 그렇게 끓일 때 나오는 깨끗한 수증기는 모아서 다시 물로 만들고, 졸이다 남은 스프 찌꺼기는 숟가락으로 긁어내어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증발시켜 얻은 물을 다시 라면을 끓이는 데 재활용한다. 이게 무방류의 대략적인 원리다.

이를 실제 시스템에 대입해 보면 라면 국물은 냉각수로 쓰인 뒤 배출된 오·폐수에 해당하고, 졸인 국물과 스프 찌꺼기는 수분 함유율 15% 미만의 염 슬러리(slurry, 흙과 같은 형태)와 고체인 염 케이크(salt cake)다. 오염된 물을 매립하기 쉬운 진흙과 돌멩이 형태로 만들어 처리하는 것이다. 이 결정화 과정을 거치면 폐수를 하천으로 흘려보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물 낭비나 오염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계속해서 폐수를 끓여 수증기로 증발시키는 데 필요한 증발 농축기(brine concentrator), 슬러리를 버리기 좋은 고체 찌꺼기로 만드는 결정기(crystallizer) 등은 무방류 시스템을 굴러가게 하는 핵심 장비다. 이 공정은 냉각수에 포함된 소금(염), 칼슘, 마그네슘 등의 이온 성분을 모두 제거해 폐수를 재활용 가능한 청정수로 만들어준다. 발전용 터빈을 돌릴 때는 반도체 제조와 마찬가지로 오작동과 철 구조물 부식을 막기 위해 깨끗한 물이 있어야 하는데, 증류수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 엄청난 시설 장비뿐 아니라 농축기, 결정기를 굴리는 데는 많은 양의 전기가 또 투입되기 때문에 전력 소모라는 대가가 따른다. 템플 판다 발전소를 짓던 2013년 당시 수처리 공정을 총괄하던 GE Water의 위비르 싱(Yuvbir Singh) 엔지니어는 “에너지와 물은 세계에서 귀중한 자원 중 하나이며 상호 의존적 관계”라며 “물을 생산하려면 전기가 필요하고, 전기를 생산하려면 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전기가 부족하고, 전기보다는 물이 상대적으로 풍부해 무방류 수처리의 개념이 생소하다. 그러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메마른 땅을 가진 미국 서남부에서 이처럼 물의 98∼100%를 재이용하는 시스템의 가치는 그 무엇에 비할 수 없다. 상대적으로 전기가 싸고, 물이 비싼 이들 지역에서 무방류 시스템이 도시의 성장을 견인할 혁신적인 대안으로 각광받는 이유다.



환경보호 vs. 경제성? 기술에서 답을 찾다

무방류 시스템의 가치는 기술을 통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경제성을 훼손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현재 텍사스주에서는 템플시 판다 발전소 외에도 오스틴시에 위치한 헤이즈 발전소, 과달루페 발전소 등 민간 발전소의 50∼75%가 무방류 혁신 시스템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발전소마다 규모, 장비 종류, 증발 농축 기술에는 차이가 있지만 주변 환경의 제약을 받아들이고 가장 비용 효율적인 방식으로 물을 재활용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2001년 설립된 헤이즈 발전소의 경우 처음 끌어오는 물의 75%가 강물, 25%가 하수 처리장에서 걸러진 도시 폐수다. 비교적 강에 인접해 강물을 구하기가 쉽고, 하수에 의존할 때보다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과달루페 발전소는 100%의 물을 인근 하천에서 조달한다. 반대로 강 유역과 멀리 떨어져 있는 판다 발전소의 경우 100% 도시 하수를 이용한다. 이런 각기 다른 방식은 입지에 맞는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을 고민하고 탐색한 결과다. 또 판다 발전소의 경우 기후가 건조하다는 특징을 살려 염전에서처럼 넓고 얕은 연못의 물을 자연 증발시키고 염만 남기는 방식을 택했다.

세계적인 수처리 업체이자 이들 발전소에 무방류 시스템을 구축한 수에즈 관계자 부르스 카스니츠는 “각각의 발전소는 주변 환경에 맞게 경제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운영한다”며 “또 미국 텍사스에서는 이런 무방류 시스템을 도입하면 발전 사업허가를 받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인허가 기간도 크게 단축된다”고 말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주정부의 엄격한 관리를 받을 때보다 대관 및 발전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엄격한 규제가 무방류라는 환경 기술의 진보를 낳은 셈이다.

대표적인 물 재이용 프로젝트이자 2000년까지 미국에서 가장 큰 재생 용수 시스템이었던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시의 수처리 시스템(SAWS)도 주정부의 규제 강화로 인해 탄생했다. 텍사스주에서는 물 부족으로 멸종 위기에까지 처한 종을 구하기 위해 연방 법원이 대수층 사용을 제한했고, 이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으로 물 재활용 기술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이 시스템을 거쳐 만들어진 재생수는 전기발전소 외 샌안토니오시의 4개 군사 기지나 여러 병원, 대학, 데이터센터 등에 공급되고 있다. 이렇듯 SAWS가 효과적인 폐수 재사용 시스템을 구현한 덕분에 시는 지난 20년간 물 공급을 늘리지 않고도 인구를 두 배로 늘릴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웨스트 베이진(West Basin) 지구도 유사한 혁신 사례로 꼽힌다. 남 캘리포니아 지역의 약 백만 인구에 물을 공급하는 웨스트 베이진은 주정부 요구에 맞춰 1900년대 초부터 재활용된 물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했고, 대중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보존 및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수처리 기술을 고도화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혁신

이 같은 미국 서남부 수처리 시스템의 의미는 기술 혁신을 통해 환경보호와 발전을 ‘대립’되는 가치가 아니라 ‘양립’ 가능한 가치로 전환했다는 데 있다. 물이 부족하다고 해서, 혹은 사막 한복판이라고 해서 도시의 조명이 꺼지고 기업들이 문 닫아야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무방류 수처리 시스템을 구축한 수에즈는 발전소를 지역으로부터 몰아내지 않고도 수자원 고갈을 막고 전력 생산을 지속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미국의 민간 발전소들은 이 대안을 바탕으로 주정부의 규제를 따르면서도 가장 경제적이고 밀도 있는 방식의 발전을 채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템플 판다 발전소를 비롯해 텍사스 SAWS, 캘리포니아 웨스트 베이진 등 수처리 기술 혁신 사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미국 수환경학회(Water Environment Federation)가 꼽은 성공하는 수처리 프로젝트의 조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2 첫째, 이들 프로젝트는 대부분 이해관계자 간의 ‘신뢰’에 기반을 뒀다. 폐수 플랜트와 발전 시설의 설계 및 구현을 위해 규제기관뿐 아니라 도시 및 지역 설계자가 긴밀하게 협력했다. 아울러 수질이나 수량 변동 등 예기치 못한 운영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폐수처리장과 발전 시설도 힘을 합쳤다.

둘째, 적응형 시스템을 구축해 불확실성에 기민하게 대응했다. 성공적인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잠재적인 기술 결함이 예견되거나 환경 조건이 우호적이지 않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상황에 맞는 최적화 시스템의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프로젝트 관계자들이 지속적인 대중 교육을 통해 시민 인식 제고에 노력했다. 폐수 재활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반대를 줄이기 위해 소통에 힘썼다. 폐수 재활용의 취지와 필요성에 대한 명확한 의사소통이 없으면 지역 사회가 프로젝트를 차단하거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프로젝트의 필요성과 공공성을 알리고, 건강 및 안전 문제에 대한 염려를 불식하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꼽혔다.

최근 한국 정부와 기업들도 이런 무방류 시스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1300만 명 영남권 인구의 식수원인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이런 논의가 활발하다. 물론 한국의 경우 땅이 비좁고 강수량이 많아 부지 확보와 결정체 매립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막대한 전력비 등 운영비 조달도 난관 중 하나다.

이때문에 과연 무방류 시스템이 오·폐수방류로 골머리를 앓는 낙동강 수처리의 혁신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다만 미국 텍사스 등 서남부 발전소의 성공 사례들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 한국의 공공 및 민간기관들에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무엇보다 신기술의 도입과정에서 △이해관계자 간 긴밀한 신뢰 구축 △적응형 시스템을 통한 불확실성 대응 △지속적인 대중 교육을 통한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방류 시스템 적용에 앞서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충분한 사전 합의가 이뤄져야만 이 혁신적 수처리 기술이 환경보호와 경제성의 가치를 모두 잡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텍사스(오스틴)=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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