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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5. 위기를 기회로 만든 중국의 AI 헬스케어

팬데믹 대항 플랫폼 만들어 의료 자문
원격진료, 의료 컨설팅 등 전방위 활약

박형서 | 296호 (2020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중국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발 이후 AI가 폐렴 진행 수준 평가, 대규모 인파의 발열 측정, 온라인 진찰, 의심 환자 동선 추적 등에 광범위하게 쓰였다. 이 같은 중국 AI 헬스케어의 눈부신 활약은 정부 차원의 정책적 뒷받침과 기업 차원의 기술 혁신 및 경영진의 리더십이 빚은 합작품이다. 특히 혁신 기업들의 서비스들은 팬데믹 상황에서 저력을 발휘했다. 예를 들어, 모바일 의료 서비스 클라우드 플랫폼 ‘웨이이’는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전염병 대항 플랫폼을 구축해 중국과 이탈리아 양국 의사들이 의료 자문을 구하는 소통 창구가 됐다. 또 e커머스 플랫폼 징동의 자회사 ‘징동건강’은 무상 원격진료, 의료 컨설팅부터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판매 등에 이르기까지 비대면 논스톱 서비스를 선보이며 종합 의료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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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가 2020년 3월11일 팬데믹(Pandemic, 세계 대유행)을 선언한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촉발된 위기는 이번 고비를 넘는다 해도 완전히 종식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최근 10여 년간 사스부터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까지 이어진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이 앞으로도 짧은 주기로 반복될 것이라는 게 의료계의 정설이다. 이런 감염병은 암, 뇌출혈처럼 개개인의 문제로 국한되는 종류의 질병과 달리 인간의 대면 활동을 극도로 위축시키고 세계 경제를 총체적 위기로 몰아갈 위력을 가진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의학적•사회적 대비를 위한 시스템 대전환이 인류의 생존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AI를 활용한 의료 기술과 비대면 진료 기반의 헬스케어 산업은 인류의 건강을 지킨다는 당위의 관점에서나,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나 꼼꼼히 준비하고 투자해야 할 분야임에 틀림없다. 중국의 AI 기업 사례를 통해 위기를 기회 삼아 미래 산업을 선도할 아이디어를 찾아보자.

위기를 기회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과 AI의 발전

의료 자원이 부족하고 면대면 접촉을 가급적 삼가야 하는 감염병 상황에서는 원격 의료 시스템을 갖추는 게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실제로 지금은 중국에서 자리 잡아 가던 ‘분급 진료’ 체계를 활용할 수 있는 적기다. 분급 진료란 중국 정부에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추진하는 제도로, 환자 질병의 경중 및 치료 난이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보다 위중한 병은 상급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여러 의료기관이 상호 협력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환자가 지역 보건소나 하급 병원에서 초진을 받으면 질병 등급에 따라 재배치되고, 위급 상황 시 상급 병원의 원격진료와 개입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 위해 환자들이 장거리 이동을 할 필요가 없다. 이 체계가 정상 작동하려면 상급 병원과의 데이터 공유 및 소통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야 하며, 하급 병원에서 진단 및 치료가 어려운 응급 질환 처리에 대비한 원격진료 시스템 및 자동 영상 판독 기술이 갖춰져야 한다.

1. AI 기업의 활약상

이번 위기 상황에서 중국 AI 기업들의 활약상은 다양한 측면에서 돋보였다. 먼저, 신속한 진단을 위해 2020년 1월28일 상하이 공공위생임상센터는 중국의 AI 헬스케어 기업인 이투헬스케어(Yitu healthcare)가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스마트 평가 시스템’을 정식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들의 CT 스캔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규 환자의 CT 영상을 분석함으로써 폐렴의 진행 수준을 자동으로 측정한다. 보통 의사가 환자 한 명을 수동으로 평가하는 데 5∼6시간이 소요되는 것과 달리 이 AI 시스템을 이용하면 몇 분밖에 안 걸린다.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한 발열 측정에도 AI 기업들의 솔루션이 적용됐다. 2020년 2월2일부터 베이징 북쪽에 위치한 칭허기차역은 바이두AI의 다중 체온 쾌속 측정 솔루션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 솔루션은 하나의 통로를 동시에 통과하는 200명에 대한 체온 검사를 1분 안에 완료한다. 또 다른 중국 AI 기업인 메그비(Megvii)사의 체온 측정 시스템 역시 이미 베이징 하이디엔 정부 건물 및 하이디엔구 일부 지하철역에서 이용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마스크나 모자를 쓴 사람의 체온까지도 신속하게 측정하며, 오차 범위는 0.3℃ 미만이다. 최대 3m 떨어진 사람의 체온도 검사할 수 있고 발열 의심자에 대해 1초당 최대 15명까지 경찰에 신고 처리할 수도 있다. 시스템 하나만으로 16개 보행자 통로를 관리할 수 있어 기본적으로 지하철역 입구 하나는 거뜬히 담당한다.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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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라우드 컴퓨팅과 플랫폼 산업의 발전

클라우드와 플랫폼 산업도 일사불란한 위기 대응을 가능케 했다. 2020년 1월29일, 중국 최대 클라우드인 알리바바 클라우드(이하 알리클라우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는 기간 동안 전 세계 공공 과학기술 단체에 AI 컴퓨팅 크레디트 일정 용량을 무료로 풀겠다고 발표했다. 백신 개발 속도를 높이는 데 일조하겠다는 목적이었다. 2월3일에는 중국 대표 메신저 서비스인 위챗의 모듈 중 텐센트 클라우드 기반으로 운영되는 국가 정무 플랫폼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방역 전용 탭이 추가됐다. 이 플랫폼은 클라우드 컴퓨팅 능력과 표준화된 데이터 처리 과정을 거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실시간 동향, 방역, 자가 검진 및 의료 안내 서비스를 제공했다. 1 이와 동시에 핑안굿닥터, 하오다이푸온라인, 춘위닥터 등 플랫폼 기업과 우한협화병원, 우한통지병원 등 의료기관들까지 자발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온라인 진찰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2020년 1월 말 기준 다양한 등급 병원에서 온라인 진찰을 받은 환자 수는 450만 명에 달한다.

또한 2020년 2월9일부터 중국 AI 기업인 딥와이즈(深睿医疗)는 원격진료 시스템을 개발해 일반 사용자들에게 전염병 관련 최신 뉴스를 전달해주고 자연어 처리 기능이 탑재된 질의응답용 챗봇도 제공하고 있다. 딥와이즈는 CT 영상을 자동 분석해 흉부 질환 및 뇌졸중 진단을 내리는 의료 보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자체 플랫폼을 통해 병원 간, 그리고 의사와 환자 간 정보 교환과 원격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환자의 과거 병력 데이터 자동 수집, 진료 결과 보고서 자동 생성, 온라인 진료 등의 기능을 지원할 뿐 아니라 의사가 이미 퇴원한 환자의 건강 상태까지 수시로 확인한다. 병원 방문자들의 동선도 지속적으로 추적할 수 있게 해준다. 이 회사는 이런 시스템을 바탕으로 중국의 분급 진료 체계에서 사업 기회를 찾았다. 그리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발 이후 상급 병원의 원격진료를 도움으로써 환자들이 굳이 상급 병원에 가거나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할 필요를 줄여주고, 그만큼 환자의 생존 확률을 높여줬다. 현재 딥와이즈와 협력 관계에 있는 400여 개의 병원에서 해당 시스템을 설치해 활용하고 있다.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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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회사인 슈쿠테크놀로지에서는 전염병 확산 초기에 정예 전문가들로 조직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AI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AI 기술을 이용해 환자 진찰, 질병 경과 추적, 과학 연구 등 다방면에서 의사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또 희소한 의료 자원이 응급환자 치료에 집중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안배하며, 열이 나는 환자들을 분급 진료함으로써 교차 감염의 가능성을 최소화한다. 이 시스템은 현재 우한시 중심병원에 도입돼 전염병 사태에 대처하는 데 활용되는 중이다.2

직접적인 의료 분야 외에도 플랫폼을 통해 일반 시민들이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있다. 전염병 위험을 피하기 위해 각종 교육기관이 개학을 연기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음성 녹음방송 공유 플랫폼인 히말라야는 ‘수업이 멈추더라도 배움은 멈추지 않는다’는 슬로건하에 공식 교과과정 내용을 녹음방송으로 제공해 학생들이 자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학생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학교 교육을 임시로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대항한 조치였다. 그뿐만 아니라 ‘우한 폐렴 전염병 최신 정보’라는 특별 코너를 마련해 청중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가장 최근 소식은 물론, 관련 전문가들(의사, 간호사, 생물학자 등)의 강연도 들어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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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7일 칭화대와 리얼AI가 협력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화제 분석 플랫폼 역시 칭화대 컴퓨터공학부에서 개발한 최신 자연어처리기술 WarpNLP(Natural Language Processing)를 활용해 대중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키워드를 추출하고, 실시간의 정확한 정보가 전파되는 데 일조하고 있다.3 또 세계에서 가장 많은 거래량을 자랑하는 중국의 기차 예약 플랫폼인 12306의 경우 전염병 확산 이후 실명제를 실시해 열차 탑승자 중 환자가 발견되면 해당 확진자와 주변 좌석에 앉았던 밀접 접촉자 명단을 공개하고, 관련 부문에 연락을 취해 방역을 하고 있다.

인간을 보조하는 기계의 힘:
중국 AI 헬스케어 기업

익히 알려졌듯 AI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은 인공신경망 모델을 학습할 수 있는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다. 그러나 개인 정보, 특히 의료 분야와 같이 사생활과 직결되는 데이터는 대단히 민감한 사안으로 취급돼 수집 및 가공이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다른 국가에 비해 정부의 힘이 세고 상대적으로 데이터를 수월하게 수집할 수 있는 중국은 AI 기술을 육성하기에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칭화대와 중국과학원 같은 교육/연구기관은 물론 바이두, 텐센트, 메그비 등 사기업에서도 AI 의료기술에 활발히 투자하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 사회의 고령인구 증가에 따른 수요 증가가 예상되자 인간 의사를 대체하거나 병원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는 AI 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때마침 5G 기술이 개발되면서 온라인 통신 장벽이 낮아지고, 정부 정책 방향까지 맞아떨어진 덕에 2018년도 중국 AI 의료 시장 규모는 약 3조6000억 원(210억 위안)까지 커졌고, IDC 통계에 따르면 2025년까지 15조8000억 원 규모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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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의료업계에서 활용되는 경우, 대개 진료 과정에서 환자의 증상, 과거 병력, CT 스캔 영상 등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료 보조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이때 기업의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는 얼마나 많은 의료기관과 협력 체계를 구축해 데이터를 확보하는지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는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양이 기계 학습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사업의 확장성도 중요하다. 일정 규모를 이룬 기업이라면 직접적인 의료 진단 외에도 보험 처리, 의약품 판매, 병원/의사 추천 등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할 수 있다.

1. 징동건강(京东健康)

먼저, 의료 보조 분야에서 사업 확장성이 큰 곳은 2019년 5월 설립된 징동건강이다. 이 회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을 자제해야 하고 면대면 진료가 부담스러운 환경에서 종합 의료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강화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기존 사업 그대로 비대면 의약품 판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무상 원격진료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중국 베이하이시 등지에서 공식 코로나 진료 업체로 채택된 것이다. 나아가 3월23일, 해외 동포들을 위한 무상 진료까지 선보이며 각국 대사관을 통해 전 세계에 신규 서비스 론칭을 공지했다.

이처럼 징동건강은 이미 하고 있던 온라인 의료 서비스 외에도 의료 컨설팅, 건강식품 판매, 오프라인 커뮤니티 행사 주최 등 의료 플랫폼으로서 총체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기업가치도 2019년 말 기준 8조4000억 원에 달한다. (그림 4) 종합 온라인 쇼핑몰인 모회사 징동의 자원을 적극 활용해 의료와 실질적으로 무관한 전자기기, 의류, 화장품 등의 상품까지 한꺼번에 구매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게 차별점이다. 원격진료부터 의약품 구매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의 편의를 극대화했다. 2020년 1월26일 기준 일평균 진료 횟수가 약 10만 회에 달하며 피크타임 1시간 동안 1만 명 가까이가 진료를 요청하고 있다.4

2. 웨이이(微医)

모바일 의료 서비스 클라우드 플랫폼인 웨이이의 경우 코로나19 확산 이후 전 세계 전염병 대항 플랫폼을 구축했다. 그리고 실제 이 플랫폼은 이탈리아에서 바이러스가 퍼진 뒤 중국과 이탈리아 양국 의사들 간 소통 체계로 활발히 이용됐다. 2020년 3월16일 당시 이탈리아 내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규모가 가장 컸던 사르데냐섬의 가정의학과 전문의 루카 발카시아(Luca Varcasia)가 해당 플랫폼을 통해 중국 의료진에게 의료 자문을 구해온 것이 교류의 시발점이었다. 웨이이 소속의 쥐메이의사단체(菊梅医生集团)는 그로부터 이틀 뒤, 우한협화병원 감염내과 전문의 자오레이(赵雷)를 초빙해 루카와 여러 동료 의사를 대상으로 장장 7시간에 걸쳐 원격 강의와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5 이처럼 웨이이는 서양의학 AI 의료 상품과 한의학 AI 의료 상품을 모두 선보이면서 여러 의료기관의 니즈에 부응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아울러 이 플랫폼 역시 징동건강과 마찬가지로 원격진료, 24시간 온라인 의료 컨설팅, 병원 연결, 만성질환 관리, 건강관리 등 종합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사이트에 등록된 전문의에게 맞춤 진료 요청을 할 수 있는 식이다. (그림 5) 아울러 의료 서비스뿐만 아니라 금융, 보험 서비스까지 함께 다루면서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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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알리딩딩(阿里钉钉)

알리바바의 인트라넷 서비스 회사인 알리딩딩은 원래 의료 서비스보다 모바일 비즈니스 AI 플랫폼으로서의 성격이 강하지만 최근에는 의료 분야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일찍이 알리 클라우드와의 협력을 통해 특정 산업군별로 폐쇄적인 상품 및 기술 생태계를 조성하려 한 전략이 먹힌 셈이다. 원래 알리딩딩은 통신망을 디지털화해 관리하는 조직관리 서비스, 영상 통화 및 무료 비즈니스 통화, 커뮤니티 개설, 기업 e메일(C-mail), 기업 클라우드(C-space) 등 비즈니스에 범용적으로 활용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그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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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8년 8월 알리딩딩의 CEO 천항(陈航)이 돌연 의료 분야를 기업의 핵심 사업 4가지 중 하나로 삼겠다고 발표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이후 회사는 데이터 디지털화 서비스, 병원 내 업무 자동화 및 임상 프로세스 연동 서비스 등 의료진용으로 특화된 서비스를 플랫폼상에 연달아 출시했다. 현재 푸단대 부속 산부인과, 난징의대 부속 제2병원, 저장대 의대 부속 제2 병원 등 전국 2급 이상 병원의 약 26%가 알리딩딩을 이용하고 있으며, 2018년 고객 규모는 병원 3000개, 의사 30만 명을 돌파했다. 6 이 플랫폼은 단지 기업 및 병원 내부 소통뿐 아니라 기업 및 병원 간 소통도 가능도 가능케 함으로써 고객들의 의존도를 높이고 생태계를 구축하는 전략을 취했다.

4. 링이즈후이(灵医智惠)

한편, 의료 영상 판독 분야에서는 바이두가 2018년 설립한 AI 의료 브랜드 링이즈후이가AI 개발에 특화된 모기업인 바이두 브레인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다. 의료 영상 판독의 정확도는 데이터베이스 규모는 물론 AI 기술 자체의 정밀도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현재 이 회사는 임상 보조 결정(CDSS), 안구 영상 분석 시스템, 의료 빅데이터 전체 솔루션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3대 병원 의사 출신 전문가 수십 명을 인재로 보유하고, 인민위생출판사와 중산대 중산안과센터 등과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으며, 2019년 12월 기준 18개의 성과 도시에 걸쳐 1000개 이상 기업에 CDSS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5. 딥인포매틱스(杭州迪英加科技)

또 다른 의료 영상 판독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딥인포매틱스는 세포 종양 등을 판별해내는 데 특화돼 있으며 5초에 최대 1억 장의 이미지를 처리한다. (그림 7) 이 소프트웨어의 세포 검진 정확도는 95%에 달하며, 앞의 종합 서비스 회사들처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진 않지만 특정 의료 분야에 있어서는 인간 의사보다 진료 정확도가 높은 질 좋은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2018년 7월에는 레전드캐피탈, 장먼벤처캐피털, IDG캐피털, 쥔허캐피털 등 4곳의 투자처로부터 시리즈A 투자금 37억4000만 원(300만 달러)을 유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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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기업의 이인삼각 경주

물론 중국의 AI 기술력이 미국과 세계 1, 2위를 다툴 정도의 수준까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강력하게 작용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5년간 ‘의료 빅데이터 응용 및 발전의 촉진 및 규제에 관한 의견’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 등을 발표했으며, 2019년 7월 중국 위생부 주도하에 AI 의료기기 혁신 협업 플랫폼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계획에 호응한 기업들이 없었다면 정책이 결코 실현될 수도 없었다. 기술을 직접 개발해 판매하는 기업, 성장 가능성이 있는 투자처를 발굴하는 벤처캐피털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다.

특히 중국의 AI 굴기를 이끈 동력으로 기업 경영진의 리더십을 빼놓을 수 없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2018년 9∼10월에 걸쳐 오스트리아, 중국, 독일, 프랑스, 일본, 스위스, 미국 등 7개국에서 각각 사업을 운영 중인 2700명 이상의 기업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 조사7 결과, 기업 내 AI 기술의 성공적 적용 여부는 세 가지 요소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 기업의 혁신 주기가 짧을수록, (2) 최고경영진이 AI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혁신을 주도하는 경향이 강할수록, (3) 다기능(cross-functional)팀을 조직해 여러 부서 간 협력을 이끌어내는 조직 구조가 갖춰졌을 때 기업의 AI 응용 속도가 더 활발하고 성공률 또한 더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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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조사 결과 혁신 주기가 10∼14개월에 달하는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의 기업에 비해 중국 기업은 평균 7.3개월마다 혁신을 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장기간에 걸친 느리고 확실한 품질 개혁을 꾀함으로써 시장을 선도했던 독일, 일본 등의 장인정신이 린스타트업(lean startup) 방식에 따른 신속한 혁신, 발 빠른 기술 개선이 요구되는 오늘날의 AI 창업 생태계에서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 85%에 달하는 중국 경영자들이 AI를 최우선 혁신 목표로 꼽은 반면, 독일과 프랑스 경영자들은 각각 53%와 52%에 그쳤다. 이 역시 AI를 다루는 중국 경영진의 적극성을 반영한다. 마지막으로, 조직 구조를 개편하는 데 있어서도 50%가량의 중국 기업들은 다기능팀을 새로이 조직해 AI 기술 혁신을 도모했다고 답했다. 이는 미국 기업의 28%, 독일 기업의 34%와 대비된다. 이는 중국이 AI 기술 접목의 성공 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세 가지 요인 모두에 대해 높은 성과를 기록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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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들에 주는 교훈

사람의 건강 및 생명과 직결돼 있어 신기술 도입에 대해 가장 보수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의료 분야에서도 AI의 활용이 본격화하고 있다. 물론 국내에도 전도유망한 의료 AI 스타트업이 존재하지만 AI 분야에서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을 인정받는 국가 위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료 AI 개발 부문은 규모가 작다. 그마저도 의료 영상 분석에만 치중돼 있다. 중국처럼 음성 데이터를 수집해 문자로 전사하거나 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자에게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응용 분야를 개척해 나갈 필요가 있다.

중국의 의료 AI 산업이 발전하게 된 배경에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지가 있긴 했지만 실질적인 기술 혁신을 주도한 것은 어디까지나 기업들이었다. 딥와이즈 같은 의료기관 협력 플랫폼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한 분급 진료 시스템을 기반으로 더 빠르게 성장하긴 했지만 이때 정부의 지침은 산업 발전의 촉매일 뿐 필수 원료는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책적 차원에서 별도로 장려한 적이 없음에도 몇몇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지역 또는 전문 영역에 따른 자발적 의료 연합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다만 이런 국내의 중소 규모 병원 및 연구센터 간 의료연합의 경우 연합 차원에서 자체 개발한 의료 보조 플랫폼을 활용할 뿐 통일된 시스템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국내 기업, 기관들은 이런 중국 시장의 선례를 통해 어떻게 플랫폼을 통합해 연속성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어떤 비즈니스 모델들이 효과적인지 확인하고, 국내에서 적용 가능한 모델부터 기업들이 선택적으로 응용해야 한다.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사회적 재난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사회적 격리를 실천해야 하는 상황은 원격 기술 및 플랫폼 산업이 발전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환경을 조성했다. 특히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이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유행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비대면 업무 처리를 보조하는 각종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중국에서 신속하게 보급되고 있는 원격진료 플랫폼들과 자동 진단 기술, 자동 자원 배분 체계는 사태가 진정된 뒤에도 의료 분야 인프라의 일부로 정착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의료 이외에도 교육,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생활 범위 원격화에 대한 수요가 보다 폭넓은 비즈니스 기회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위기로부터 파생되는 새로운 시장 기회를 파악하고, 지금의 고난을 새로운 혁신을 위한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필자소개 박형서 레전드캐피탈 전(前) 연구원 plary116@snu.ac.kr
박형서 연구원은 서울대에서 경영학과 사회학을 복수 전공하고 현재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정보학(Managerial Information Systems)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2019년 말∼2020년 초 레전드캐피털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기간 진행한 리서치를 기반으로 글을 작성했다.
  • 박형서 | 박형서 연구원은 서울대에서 경영학과 사회학을 복수 전공하고 현재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정보학(Managerial Information Systems)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2019년 말∼2020년 초 레전드캐피털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기간 진행한 리서치를 기반으로 글을 작성했다.
    plary116@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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