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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selling Author Interview: 『Rest』 저자 알렉스 수정 김 방

성공하는 사람은 의도적 휴식을 즐긴다

조진서 | 289호 (2020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만큼 휴식 시간도 소중하게 관리한다. 휴식을 자주, 잘해야 생산성이 높다. 회사 차원에서도 다음과 같은 직원 휴식 솔루션을 도입해야 한다.
1. 주 4일 근무제 혹은 일 6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라. 적게 일하는 기업은 성과도 좋다. 업종과 업무에 맞게 규칙을 정하라.
2.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탄력근무제는 ‘플렉시즘(탄력근무자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과 견제)’ 등의 악영향이 있다. 탄력근무제보다는 모두가 동등한 시간으로 주 4일 근무 혹은 일 6시간 근무를 하는 편이 낫다.
3. 조직문화부터 바꾸라. 더 오래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적게 일하고도 같은 성과를 내는 직원을 포상하라.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구창원(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레스트풀컴퍼니’의 설립자 알렉스 수정-김 방은 두 가지 요인을 꼽는다. 첫째, 의도적인 연습이다. 똑같이 1만 시간을 연습하더라도 목적의식이 있냐, 없냐가 중요하다. 성공하는 사람은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의식적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실패하는 사람은 별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연습한다. 둘째, 의도적인 휴식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쉴 때도 전략을 짠다. 자신이 얼마나 어떻게 쉬는지 잘 알고 있다.

알렉스 방은 저서 『Rest』1 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예를 든다. 일련의 독일 학자들이 1980년대 베를린의 음악학교 바이올린 전공 학생들을 연구했다. 이들은 최우수 학생들과 나머지 학생들 사이에서 차이점을 발견했다. 최우수 학생들이라고 해서 연습 시간이 특별히 긴 것은 아니었다. 대신 4시간 정도 단위로 연습을 끊어 했고, 그 시간 동안 모든 집중력을 다 쏟아부었다. 또 평균적으로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잤다.

그런데 가장 큰 차이는 여가 활동에 대한 태도였다. 연구진은 먼저 학생들에게 연습 시간과 여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그런 다음 일주일 동안 이들이 실제로 얼마나 연습하고 쉬는지를 기록했다.

결과를 보니 평범한 학생들은 여가 활동에 들이는 시간의 양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은 본인이 일주일에 15시간가량을 여가 활동에 쓴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기록해보니 그것보다 두 배 많은 시간을 여가에 쓰고 있었다. 이에 비해, 최우수 학생들은 본인들이 여가에 할당한 시간(25시간)을 꽤 정확하게 추측했다. 이들은 본인이 시간을 어떻게 분배하고, 어떻게 쓸지 고민하고, 실제로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평가하는 데에도 꽤 많은 노력을 할애했다.

이 연구의 결론은 성공하는 사람은 시간을 소중히 쓰는 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휴식을 취할 때에도 그렇다는 것이다. 알렉스 방은 이렇게 정리한다.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의도적인 연습과 1만2500시간의 의도적인 휴식, 그리고 3만 시간의 잠이 필요하다.”

알렉스 방은 휴식과 생산성의 상관관계를 연구한다. 원래는 IT 컨설턴트였다.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과학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15년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개인적인 번아웃 현상을 느껴 휴식의 시간을 갖기로 하고 아내와 함께 영국의 케임브리지에서 겨울 한 시즌을 보냈다. 그때까지 캘리포니아의 따뜻하고 밝은 날씨 속에서만 지내면서 그게 좋은 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춥고 어두컴컴한 영국의 겨울을 겪어보면서 비로소 휴식의 재생력(regenerative power)에 대해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이후 그는 휴식과 생산성에 대해 많은 사례와 연구 자료를 모아서 저서 『Rest』를 펴냈다. 책은 히트를 쳤다. 15페이지나 되는 서문은 허핑턴포스트 창업자 아리아나 허핑턴이 썼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紙에도 길게 소개됐다.

현재 그는 2020년 발간을 예정으로 후속작 『Shorter: Redesign Your Workday and Reinvent Your Life』을 준비하고 있다. 전작이 개인적 차원에서 휴식의 힘을 다뤘다면 이번엔 조직 차원에서 근무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인 차원에서는 넘지 못할 문화적, 사회적 편견의 벽이 있기 때문에 조직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단축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을 연구하기 위해 방한한 알렉스 방을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그의 부친은 195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계 역사학자였고 이름 중간에 들어 있는 ‘김’은 친할머니의 성이라고 한다.




저서 『Rest』에서 당신은 ‘휴식은 의식적으로 뇌의 에너지를 회복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휴식은 숨 쉬는 것과 비슷하다. 누구나 숨 쉴 줄은 안다. 그런데 당신이 수영 선수나 달리기 선수나 오페라 가수라면 호흡법에 훨씬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될 것이다. 지구력을 높이기 위해, 목소리가 극장 뒤편까지 닿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호흡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주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사람들은 휴식도 생산적으로 한다. 휴식을 하루의 루틴 안에 포함하고 의식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무의식이 대신 일을 하도록 한다.

예를 들자. 어떤 영화배우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쓰다가 실패했지만 5분 정도 후에 무심코 머릿속에 그 이름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내가 신경을 쓰지 않는 동안에도 나의 무의식은 계속 그 배우의 이름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뇌는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무의식이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게 하는 능력은 훈련을 통해서 향상시킬 수 있다. 또 하루하루의 스케줄을 잘 조율해서 그런 능력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책에도 썼듯이 찰스 다윈, 표트르 차이콥스키 등이 그렇게 해서 큰 성과를 낸 인물들이다. 이런 프로세스를 나는 ‘의식적인 휴식(deliberate rest)’이라고 부른다.

낮잠도 중요하다. 그래서 『Rest』의 한 챕터를 낮잠에 할애했다. 이 챕터를 연구하면서 나도 낮잠을 자기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매일 소파나 해먹에서 낮잠을 잔다. 분명 낮잠을 자지 않을 때보다 일이 더 잘된다.


휴식을 싫어하지만 성공을 거두고 있는 기업인도 있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주 120시간을 일한다고 밝혔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사람들에겐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첫째, 그들도 실제로는 적당히 쉬면서 말을 안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둘째, 워커홀릭이라는 이미지를 공적으로 내세우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회사와 일에 열정을 바치고 있는지, 자신이 얼마나 프로다운 사람인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사회적·문화적 압박을 받으며 산다.

일론 머스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만일 그가 하루 8시간을 잤더라면 지금보다 더 성공했을 수도 있지 않냐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실제로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는 잠자는 것을 중요한 일로 여긴다. 빌 게이츠는 매년 1주일간의 여행을 꼭 챙긴다. 정말로 크게 성공한 사람 중에는 의식적인 휴식을 훈련하는 사람들이 많다.

흥미롭게도 과학자 중에는 음악이나 클라이밍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에게 있어서 음악이나 클라이밍은 과학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아주 진지한 취미다. 음악과 클라이밍은 절차가 중요하고 많은 집중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과학 연구 활동과 비슷하다. 하지만 클라이밍의 경우는 신체적 힘을 사용하는 활동이고, 음악은 예술적 재능을 사용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과학과 다르다. 그래서 이런 활동들은 과학자에게 휴식이 된다. 퓰리처상이나 노벨상을 추구하는 수준의 과학자들은 자신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진지한 취미활동들이 그들에게는 가치가 있다. 또 그들이 과학 연구를 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컴퓨터 게임이나 소셜미디어도 좋은 휴식이라고 볼 수 있을까.

게임은 그렇다. 게임은 굉장히 집중을 하게 만드는 활동이다. 적당히 하면 정신적으로 좋은 휴식이 될 수 있다. 소셜미디어는 그렇게 정당화하기가 어렵다. 우리의 뇌는 소셜미디어를 일의 연장으로 인식한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할 때 우리는 일할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나의 사회적 위치와 성공의 가치를 평가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쉬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휴식들만큼 회복력이 강하진 않다.


커피, 술, 마리화나 등도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심지어 미국에서는 LSD 같은 강력한 마약을 극소량씩 복용해 집중력을 높이는(microdosing)2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하는데.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다. 적당히만 하면 도움이 된다고 본다. 헤밍웨이가 술을 많이 마셔서 좋은 작가가 된 건 아니지만 첫 두 잔은 도움이 됐을 것이다. 또 내 주위에는 LSD를 극소량 사용하는 게 집중력과 창의력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거기까지 가고 싶지는 않다. 카페인을 즐기는 정도다.



베이조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3 가족 혹은 애인을 만드는 것도 좋은 휴식이 될까.

물론이다. 인생에서 일 이외에 신경을 쓸 무언가가 있어서 일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다. 가족이나 애인을 만드는 것도 삶의 균형을 찾게 해 주고, 잘만 한다면, 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만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되는 복잡한 관계는 권하고 싶지 않다. 대신 개를 키우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개를 두 마리 키우고, 개들 덕분에 많이 걷는다.

자식들의 경우는 다 자란 후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 어린아이들은 귀엽고 깜찍하지만 부모의 시간과 관심을 빨아들이는 뱀파이어이기도 하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건 아주 힘겨운 일이다. 그러나 하루 단위의 일과 삶의 균형으로 볼 게 아니라 인생 전체의 일과 삶 균형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엔 아이들이 어릴 땐 양육에 집중하다가 아이들이 다 자란 후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부모로서의 경험까지 담아낼 수 있어서 작품의 깊이가 더욱 깊어지더라.

여기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이 있다. 현대사회는 아이를 키우는 여성도 아이가 없는 사람만큼 회사에서 일해주기를 기대한다. 또 직장에 다니는 여성도 전업주부만큼 집에서 아이를 키워 주기를 기대한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기대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최근 주 4일제로 바꾸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다. 이런 기업들은 일을 조율하는 방법을 실험해가면서 아이가 있는 여성도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해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아이도 잘 키울 수 있도록 해주려 한다.



개인 차원에서 휴식이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겠다. 그런데 기업은 직원의 휴식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개인 차원에서 아무리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휴식 시간을 늘리고 싶어도 한계가 있다.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기업도 논의에 들어와야 한다. 일과 삶의 균형 문제나 커리어 매니지먼트 문제는 개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건 조직 차원의 문제이고 조직 설계 관점에서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아직도 많은 회사에서는 일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직원의 공헌도를 판단한다. 또 ‘상사가 퇴근하기 전까지는 퇴근해서는 안 된다’라는 문화적인 압박도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지식 노동자들은 의미 없는 회의, 불필요한 e메일, 상사의 나쁜 지시 등에 매일 2∼4시간을 버리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회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매일매일의 업무를 리디자인해서 직원에게 시간을 돌려주는 것이다. 직원의 연봉을 깎거나 소비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면서도 핵심 업무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휴식을 더 준다는 걸 단순히 비용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e메일이나 에버노트 같은 테크 도구들이 업무효율성을 쉽게 올려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도구들을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이 나쁜 조직문화와 나쁜 매니지먼트와 결합된다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기업 차원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의 인식 변화도 필요할 것 같다.

지구력보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우리의 일상 스케줄에 휴식을 충분히 넣는 것이 길게 봤을 때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앞서가는 분야가 있다. 프로 스포츠다.

스포츠 선수들은 이제 누구나 휴식을 중시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90년대에 프로 스포츠팀 최초로 잠 전문 코치를 고용했다. 선수들이 장거리 이동 후 시차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돕고 훈련과 훈련 사이, 경기와 경기 사이에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이는 1990년대 맨유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많은 의사가 말하듯 인간의 근육은 운동할 때가 아니라 잠을 잘 때 발달한다. 또 경기장과 훈련장에서의 모든 경험이 휴식하는 동안 체화된다. 휴식은 정말 중요하다.

한때 스포츠 선수들 사이에서는 ‘낮잠은 약해 빠진 사람이나 자는 것’이라는 마인드가 있었다. 이제는 다르다. 미국 프로농구(NBA)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수 중 하나인 르브론 제임스는 매일 12시간에서 13시간을 잔다. 제임스만 그런 것이 아니다. NBA 낮잠 시간(NBA nap time)이란 문화가 생겼다. NBA 선수들은 보통 밤 10시 정도에 경기를 마치고 새벽 2시쯤에 잠자리에 든다. 훈련은 아침 9시쯤 시작한다. 그러니 밤에 잠을 잘 시간이 부족하다. 대신 오후 3시부터 6시 사이에는 NBA 구단에서 아무런 훈련도, 미팅도 잡지 않는다. NBA 전체가 조용해진다. 이때가 바로 NBA 낮잠 시간이다.

낮잠을 잘 수 있는 능력이 한 선수의 3점 슛 성공률을 10%포인트씩 바꿔놓을 수 있다. 3점 슛을 열 개 던져 여섯 개 집어넣느냐, 다섯 개 집어넣느냐가 달라지는 것이다. 낮잠은 인간의 에너지 레벨과 운동 능력에 중대한 차이를 만든다. 젊어서는 몸을 혹사할 수 있다. 하지만 커리어를 길게 가져가는 선수는 휴식의 가치를 알고 있다.

똑같은 차이가 지식 노동과 창의 노동에도 적용된다. 세계적 기업이 되려면 세계적인 스포츠 클럽이 하는 것처럼 조직원의 휴식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뇌의 능력과 우리 몸은 별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낮잠을 잘 수 있는 공간(sleeping pod)을 만드는 회사들은 그걸 깨닫고 있는 거다.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는 회사는 거기서 한 발짝 더 나간 것이고.


한국 기업들을 방문하는 이유는.

휴식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주 4일제 혹은 일 6시간 근무로의 전환이고, 그런 시도를 하는 기업 중 매출액이나 직원 수 기준으로 가장 큰 곳들이 한국과 일본에 있다.

일본의 대형 도시락 업체 중에는 여름 동안 주 4일제를 도입한 곳이 있고, 이커머스 업체 조조타운(Zozotown)은 일 6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4 한국에서도 주 4.5일제를 도입한 곳들이 있다. 우아한형제들, 화장품 업체 에네스티, 그리고 몇몇 출판사와 테크 스타트업들이다. 5

한국이든, 미국이든, 영국이든, 덴마크든 이런 시도를 하는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있다. 직원들의 일과 삶 균형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조직의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개선된다. 그러면서도 생산성이나 수익성에는 손실이 없다. 좀 더 적게 일하면서도 더 생산적으로 일하게 되는 것이다.

직원 간 협업 능력도 좋아진다. 4일만 일하고도 5일 일한 것 이상의 효과를 내게 하려면 직원들 간에 더 많은 협업과 협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 중 많은 부분은 본질적으로 협업이다. 내가 하는 일은 내 눈과 내 두뇌 사이에서 벌어지는 게 아니라 나와 누군가 다른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다. 서로가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둘 다 빨리 갈 수 있다.

처음에는 이런 변화가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나 가능한 줄 알았는데 조사해 보니 세계 어디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전 세계적으로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일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인간적이고, 더 행복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서구의 기업들이 일-삶의 균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한국 기업들이 이런 시도를 많이 한다는 점이 놀랍다.

역설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현재 너무 길게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조직 차원에서 해결해보려는 노력들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북유럽이나 네덜란드처럼 이미 대부분의 사람이 주 40시간 이내로 일하는 곳에서는 기업 차원에서는 그런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다.

훌륭한 회사는 직원의 체력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누가 4일 안에 일을 끝낼 수 있는가를 평가한다. 더 오래 일하도록 경쟁시키는 게 아니라 같은 일을 더 빨리 끝내도록 경쟁을 시킨다. 내가 주 4일 근무에 대해 얘기하면 ‘금요일부터 쉬니까 주말이 3일이 되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아니다. 금요일부터 쉬자는 게 아니라 목요일까지 일을 끝내야 한다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일을 적게 하자는 게 아니라 더 집중해서 빨리, 잘하자는 것이다.

다만 나는 한국 기업들이 진짜로 이런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도 확인하고 싶다. 말로는 주 4일 근무를 한다면서 하루 12시간씩 일하게 하는 건 아닌지 말이다.


한국에서 주 4일 혹은 4.5일 근무제가 도입된 회사들은 대체로 규모가 작다. 대기업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은데, 가능할까?

기업들은 이런 변화에 생각보다 잘 적응한다. 중국은 최근 주 5일제를 도입했고 한국은 약 15년 전에 도입했다. 일본에서는 파나소닉이 1965년 최초로 도입했다. 기업들은 예전부터 근무시간을 계속 줄여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탄력근무제라든가, 파트타임 근무제를 도입하는 대기업도 있다. 그러나 이는 만족스러운 솔루션이 아니다. 탄력근무제는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결국 그 제도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커리어에 악영향을 주며 끝나게 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플렉시즘(flexism, 근무시간이 유연한 사람에 대한 차별과 견제)이란 말이 섹시즘(sexism, 성차별)이란 말처럼 흔하게 쓰인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상사에게 당신이 탄력근무를 하겠다고 말을 해보자. 그 상사는 당신이 업무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갖게 될 것이다. 중요한 프로젝트는 당신에게 맡기지 않을 것이다. 좋은 제도를 가진 조직이라도 문화적인 변화가 없다면 탄력근무제는 당신을 커리어의 막다른 골목으로 인도할 것이다.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는 기업은 모두에게 시간을 돌려줌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 어린아이가 있든, 싱글이든, 모두가 4일 근무를 하면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다. 특히 이런 회사가 능력 있는 여성 직원을 영입할 수 있다.

탄력근무제에는 또 다른 단점이 있다. 스케줄링으로 인해 비효율이 증가한다. 내가 언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자발적으로 정해야 하는데, 사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누가 언제 자리에 없을지를 일일이 파악해서 미팅 시간을 정해야 하는 등 추가적인 일들이 발생하고, 잠재적 악용자도 나올 수 있다. 다 같이 동일하게 근무시간을 줄여버리면 그럴 일이 없다. 대기업일수록 탄력근무제보다는 주 4일제나 일 6시간 근무제가 더 매력적일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정부가 앞장서서 노동자의 주당 근로시간을 제한하려 하고 있다. 필요한 규제라고 보는지?

그런 종류의 규제는 필요하지만, 잘못 적용되기가 쉽다는 게 문제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산업과 정말 많은 일하는 방식이 있다. 따라서 정부 규제는 예외들을 둘 수 있을 만큼 유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의사가 되기 위한 레지던트 과정에서는 어느 정도의 수련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 8시간 근무만으로는 환자의 병세를 제대로 살펴볼 수 없고 최소 24시간을 쭉 지켜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근무하면 레지던트가 실수를 저지를 확률도 올라간다. 결국, 균형을 어디에서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의 문제인데, 이런 것을 정부가 일일이 정해 주기는 어렵다.

의사만이 아니다. 사무직 노동자를 위한 노동시간 규제와 생산직 노동자를 위한 노동시간 규제는 달라야 한다. 사무직 노동자를 위한 규제는 사무직에게만 적용돼야 한다. 풀타임 노동자와 파트타임 노동자도 이해관계가 다르다. 둘에게 노동시간 규제를 동일하게 적용한다면 풀타임 노동자는 너무 많이 일해서 손해를 볼 수 있고 파트타임 노동자는 더 일하고 싶은데도 일하지 못해서 손해를 볼 수 있다. 모두를 위한 규제를 만들다 보면 피해를 보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규제를 설계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에만 자율적으로 맡겨둘 수도 없다. 기업의 장기적 이익이나 노동자의 복지를 추구하기보다는 단기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도 분명히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쓴 책을 보면서 ‘rest’라는 영어 단어와 그 말을 한국어로 번역한 휴식(休息)의 차이에 대해생각하게 됐다. 休息이라는 단어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서서 숨을 쉬며 스스로(自) 마음(心)을 식힌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도 있다. ‘rest’와는 좀 다른 것 같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영어의 ‘rest’ ‘break’ 등은 사람이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TV나 보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vacation’ ‘sabbatical(안식일, 안식년)’ 등의 단어도 마찬가지로 의미가 얕다. 나는 그래서 이런 단어들보다는 ‘딥 플레이(deep play)’라는 표현이 의식적인 휴식이라는 개념을 더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는 미국에서 ‘스타워즈’ 영화와 함께 자란 세대다. 성장기에 아주 큰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좋아한다. 가끔 아들과 스타워즈를 모티브로 한 게임들을 함께 즐기는데 그럴 때마다 게임에 깊게 빠져들곤 한다. 이것이 바로 딥 플레이다. 休息, 그리고 딥 플레이라는 말에는 나 자신과의 공명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제 서양에서도 ‘rest’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보다 더 깊고 충실한 의미를 가진 개념이 됐으면 한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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