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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Brief-Case: 글로벌 화학섬유기업 ‘알칸타라’의 턴어라운드 전략

천연 가죽보다 촉감 좋은 프리미엄 소재
친환경 전략으로 시장 흐름 바꾸다

이미영 | 286호 (2019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일본계 이탈리아 화학섬유 제조기업인 알칸타라는 고급화·친환경 전략을 토대로 동명의 자사 제품 알칸타라를 인조가죽에서 친환경 프리미엄 소재로 탈바꿈해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1. 경쟁사들이 가격경쟁력을 내세울 때, 화학섬유가 지닌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해 천연 가죽과 경쟁하는 프리미엄 소재로 거듭났다.
2. 알칸타라는 제품을 고객사에 납품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고객사가 요구하는 맞춤형 제품을 제공해 패션, 자동차는 물론 IT, 주얼리 등의 글로벌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해 나갔다.
3. 탄소 중립 정책, 지속가능한 경영 등 기후변화 관련 정책을 선제적으로 도입해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변신, 프리미엄 소재 시장에서의 차별화 포인트를 확보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양성식(경희대 경제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최근 ‘가죽 시트를 테슬라 신차에 적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프리미엄 자동차 시트의 필수 요소와 같은 천연 가죽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가죽의 재질과 느낌이 나는 합성소재를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천연 가죽은 자동차를 꾸미는 최상의 액세서리나 다름이 없었다. 시트 가죽의 재질에 따라 차량의 급도 달라졌다. 합성섬유는 그저 경제성만을 고려했을 때 마지못해 선택하는 최후의 옵션에 불과했다.

테슬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들이 천연 가죽 대신 섬유 소재를 적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도요타의 프리우스는 내장재로 가죽 느낌이 나는 합성소재를 사용하고, 메르세데스벤츠도 주요 모델에 합성소재를 적용한 친환경 자동차를 선보였다.

자동차 업계에 불어 온 친환경 트렌드 덕분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세계기후변화협약 등을 통해 각국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자동차 기업들이 친환경 자동차를 개발해야 하는 이유가 점점 커졌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를 경험한 소비자들은 매연을 덜 발생시키면서 연비가 좋은 자동차를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자동차 시트가 천연 가죽인지 여부도 자동차를 선택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천연 가죽을 생산하기 위해 희생되는 동물이나 가죽을 생산하는 공정에서 발생하는 오염 물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동물 가죽이 들어가지 않은 차를 ‘비건(Vegan·채식주의자) 자동차’라 칭하기도 한다. 비건은 육류는 물론 계란, 생선 등 동물성 음식 섭취를 엄격하게 배제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다.

이탈리아에 위치한 일본계 화학 섬유 소재 기업인 알칸타라는 동명의 소재 알칸타라를 개발해 이러한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폴리에스테르와 폴리우레탄을 합성해 만든 화학 섬유인 이 소재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인조 스웨이드와 유사하다.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표면 처리 기술과 선명하고 다양한 색상,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천연 스웨이드나 가죽과 달리 액체에 거의 오염되지 않고 불에도 강한 게 특징이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알칸타라는 천연 가죽보다 가격대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업계로부터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 대표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인 람보르기니, 페라리는 물론 독일 자동차 브랜드 BMW, 폴크스바겐까지 알칸타라를 찾기 시작했다. 전체 매출 중 자동차 시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80%에 이른다. 이러한 이유로 알칸타라는 자사 제품이 인조 스웨이드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알칸타라 그 자체가 섬유 소재의 새로운 카테고리라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사실 알칸타라는 처음부터 소위 ‘잘나가는’ 기업은 아니었다. 2000년대 초 제품 품질 문제로 회사가 경영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안드레아 보라뇨 회장이 취임한 이후 알칸타라는 이전과 180도 다른 회사로 거듭났다. 여느 화학섬유 업체들처럼 가격경쟁력을 내세웠던 과거와 달리 천연 가죽과 견줄 수 있는 내구성과 촉감, 그리고 디자인을 갖춘 화학섬유 브랜드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 결과 알칸타라는 3년 만에 턴어라운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알칸타라는 선제적으로 친환경 정책을 도입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2009년부터 제품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저감하는 탄소 중립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친환경 소재라는 이미지를 각인했다. 환경에 민감해진 글로벌 브랜드들이 알칸타라 소재에 더욱 관심을 보이면서 매출도 크게 뛰었다. 2010년 회계연도 기준(2009년 4월∼2010년 3월) 6430만 유로에서 2018년 회계연도 기준 1억9185만 유로로 약 3배 넘게 성장했다. DBR은 지난 2월 알칸타라와 이탈리아 베네치아 국제대(VIU)가 개최하는 ‘국제 지속가능성 심포지엄’이 열린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호텔에서 보라뇨 회장을 만나 알칸타라의 턴어라운드 전략에 대해 들었다.

DBR mini box I : 알칸타라는…

알칸타라는 일본 도레이와 미쓰이그룹 소유 자회사다. 이탈리아에서 생산이 100% 이뤄지고 있으며 알칸타라에서 독자적인 제품 기획과 마케팅 활동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 회사로의 포지셔닝을 강조하는 이유기도 하다.

알칸타라 소재는 1970년 일본 도레이의 연구자인 고(故) 오카모토 미요시가 개발한 기술을 응용해 만들었다. 일본에선 엑센느(Ecsaine), 미국에선 울트라스웨이드(Ultrasuede)라는 브랜드로 판매됐다. 도레이그룹은 1972년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이탈리아 에너지 기업 ENI(당시 Anic)와 합작해 알칸타라1 를 설립했다. ENI는 1995년 모든 지분(49%)을 도레이에 넘겼고,이후 미쓰이그룹이 알칸타라 지분의 30%를 인수했다.


3년간 두 자릿수 적자… 알칸타라에 찾아온 위기

2004년, 알칸타라에 큰 위기가 닥쳤다. 2001년부터 3년간 매해 매출이 15∼20%씩 떨어졌다. 게다가 제품 품질 문제까지 겹치면서 시장에서의 신뢰도도 추락했다. 결국 회사는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알칸타라의 모회사인 일본 기업 도레이는 이 위기를 타개할 새로운 해법이 필요했다.

우선 알칸타라를 일으켜 세울 수장부터 물색했다. 고심 끝에 안드레아 보라뇨를 알칸타라 CEO로 급파했다. 당시 그는 도레이가 미국에 세운 또 다른 자회사 도레이 울트라스웨이드에서 임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보라뇨는 화학공학을 전공해 화학섬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데다 미국에 오기 전 알칸타라에서 일한 경험도 있었다. 게다가 이탈리아 출생으로 이탈리아 기업과 시장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다. 도레이 본사는 그를 알칸타라를 위기에서 구출할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보라뇨 회장은 이 제안을 수락하고 알칸타라 본사가 있는 밀라노로 날아갔다. 그가 처음 본 알칸타라 본사는 생각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회사 상황이 악화되자 사람들의 불안도 점점 커졌다.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과감한 정책이나 전략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밀라노 근처에 위치한 네라 몬토로 공장에는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생산 공정 프로세스가 표준화돼 있지 않은데다 공정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았다. 매번 생산하는 방식이 일정치 않아 고객들은 균질한 제품을 받아보지 못했다. 생산된 제품의 품질이 낮아 소비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보라뇨 회장은 당시 최고 기술로 개발한 알칸타라의 화학섬유 소재가 골칫덩이로 전락한 순간을 경험해야 했다.

우선 위기부터 수습해야 했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인력을 최소화해 회사의 지출 비용을 대폭 줄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내부적으론 많은 반발이 있었지만 보라뇨 회장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다음엔 생산 공정을 바로잡는 작업에 돌입했다. 상대적으로 이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알칸타라 소재는 최고의 기술력으로 개발한 첨단 소재였다. 부드럽고 가벼우며 내구성이 좋은데다 좋은 색감을 입힐 수 있는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보라뇨 회장은 “이미 알칸타라만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으니 생산공정 프로세스만 제대로 다잡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생산공정 효율화, 표준화 등에 집중해 원래 알칸타라의 장점을 되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천연 가죽과 경쟁하는 프리미엄 소재로

고군분투 끝에 원상 복구는 마무리가 됐다. 제품 공정 프로세스나 효율적인 인력 운영 등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미 시장에서 신뢰를 잃은 알칸타라가 언제 정상화될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보라뇨 회장은 새로운 타개책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코끼리도 앉을 수 있는 튼튼한 소파.”

알칸타라가 보라뇨 회장 취임 전, 광고를 통해 내세운 알칸타라 제품의 이미지였다. 무엇보다 기능성을 강조했다. 내구성이 좋아 오래 쓸 수 있다는 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는 여느 경쟁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인조가죽 섬유가 천연 가죽의 대체재로 널리 인식됐던 시절이었다. 가죽 소재보다 저렴하면서 튼튼하다는 점이 최대 장점으로 꼽혔다.

보라뇨 회장은 이러한 제품 포지셔닝이 알칸타라의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봤다. 알칸타라가 다른 경쟁사와 차별화한 제품으로 승부를 보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알칸타라 고유의 가치를 재정의하고 이를 통해 시장에서 새로운 포지셔닝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알칸타라가 천연 가죽의 대체재가 아닌 경쟁 제품으로 위상을 올려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알칸타라는 가격 대비 성능을 내세운 인조가죽 정도의 화학섬유 소재를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동안 알칸타라가 쌓아온 화학섬유 개발 노하우를 총동원해 경쟁사와 차원이 다른 고급 소재를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가죽만큼 부드러우면서 가죽보다는 훨씬 가볍고, 내구성도 좋은 소재 개발에 몰두했다.

보라뇨 회장은 “합성 소재를 만드는 방식이 매우 다양하다. 공정 과정에 따라 충분히 훌륭하고 고급스러운 소재를 만들 수 있다. 다만 화학섬유 제조기업들이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적은 비용으로 제조할 수 있는 소재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천연 가죽과도 견줄 수 있는 프리미엄 화학섬유를 내세워 시장을 공략한다면 새로운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회사 차원의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비용 절감을 하고 있는 상황에도 소재 연구개발을 위한 비용은 크게 늘렸다. 관련 핵심 인력들도 적극적으로 영입했다. 보라뇨 회장은 “취임한 후 1년 뒤인 2005년 비용 절감 효과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17% 감소했다. 그러나 이사회는 계속해서 연구개발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각종 소재를 제작하는 장인들을 찾아 이들의 노하우를 알칸타라 표면 처리 방식에 적용해 제품을 업그레이드했다.

그 결과 알칸타라는 엠보싱 기술과 레이저 기술을 적용해 소재 표면을 실크와 같은 보드라운 질감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소재의 무게는 가죽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가죽보다 더 튼튼했다. 불에도 잘 붙지 않고 잘 헤지지도 않았다. 인조가죽이 아닌 가죽보다 더 뛰어난 섬유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개발된 소재는 알칸타라를 대표하는 제품이자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담아 동명의 ‘알칸타라’로 지었다.

알칸타라만의 아름다움과 전통성을 새로운 가치로 내세우는 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보라뇨 회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바로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화학 소재가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개발도상국에서 제조되는 것과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섬유 선진국인 이탈리아에서 제조해 보다 견고하고 아름다운 소재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어필할 수 있다고 봤다. 쉽게 말해 가방, 신발 등 각종 가죽 제품이 ‘메이드 인 이탈리아’가 들어 있을 때 소비자들이 느끼는 고급스러움과 신뢰를 소재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인건비와 유지비가 동유럽이나 개발도상국보다 비싸더라도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제품이 지니는 가치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보라뇨 회장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는 그 자체로 알칸타라의 가치다. 만약 제품의 비용을 낮추기 위해 동유럽이나 중국 등 개발도상국 등에 공장을 옮겨 제품을 만든다면 고객들은 우리 제품을 외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인건비 때문에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한다면 현재 알칸타라 수요가 크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고객들이 가장 먼저 우리 제품을 사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대외적으로 알칸타라를 알리기 위한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2011년부터 이탈리아 로마 국립현대박물관 막시와 함께 알칸타라를 활용한 작품 전시회도 매년 열고 있다. ‘Can you imagine’이라는 주제로 처음 시작한 이 전시회에는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외에도 미국 LA, 일본 도쿄 등에서 알칸타라 소재로 만든 각종 제품 및 의류를 전시하기도 했으며, 최근엔 밀라노에서 열리는 패션위크에도 꾸준히 참여해 각종 창의적인 제품을 선보였다. 지난 1월엔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에서 이뤄진 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에 쓰이는 모든 의상을 알칸타라 소재로 제작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보라뇨 회장은 “알칸타라를 적용해 창의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활동이었다. 소비자들에게 장인정신과 기술이 결합한 프리미엄 소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큰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알칸타라의 노력은 실제 성과로 이어졌다. 알칸타라 소재의 독특함을 먼저 알아본 것은 패션업계였다. 질감이 부드러우면서 선명한 색감, 변형이 가죽보다 상대적으로 유연한 동시에 내구성이 좋다는 점에서 혁신적이고 새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명 디자이너들이 새롭게 디자인한 옷과 가방, 신발에 알칸타라 소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명품 브랜드들이 사용하는 소재로 알려지면서 알칸타라는 천연 가죽 못지않은 프리미엄 소재로 안착할 수 있었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반응이 왔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일부 자동차 모델에 인조가죽을 사용했던 자동차 제조기업들이 차별화된 디자인이나 내구성을 위해 알칸타라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보라뇨 회장 취임 3년 만에 흑자로 전환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고객 맞춤형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

알칸타라는 자사의 소재를 의류나 자동차 산업에 국한하지 않았다. 자사의 소재를 더 많은 산업에서 적용해 많은 소비자가 접할 수 있도록 B2B(기업 간 거래)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알칸타라의 마케팅 활동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고객 맞춤의 극대화(Extreme Customization)’다.

알칸타라의 고객 맞춤 전략은 섬세하고 적극적이다. 보라뇨 회장이 양장점에서 고객이 맞춤형 양복을 맞추는 과정에 빗대어 설명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는 “알칸타라의 고객 맞춤형 제품 개발 과정은 재단사와 고객이 상호 작용을 하며 맞춤형 양복을 제작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재단사는 양장점을 찾은 고객의 취향, 원단, 디자인을 파악한 후 고객의 체형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옷으로 점차 완성해 나간다. 알칸타라도 마찬가지다. 고객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의사소통을 진행하면서 고객이 원하는 소재를 만들어 제공한다”고 말했다.

실제 알칸타라가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알칸타라의 R&D센터에선 알칸타라 소재를 활용해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을 직접 디자인해 보여주는 콘셉트북을 제작한다. 고객사들이 더 다양한 제품에 알칸타라 제품을 적용할 수 있도록 상상의 폭을 넓혀주는 일종의 ‘참고서’를 만드는 것이다. 콘셉트북에는 다양한 문양, 색상, 디자인이 들어간 알칸타라 소재를 활용해 자동차 시트, 의류뿐만 아니라 가구, 항공기 등에 적용한 샘플 상품이 담겨 있다. 알칸타라는 2012년부터 이 콘셉트북을 일 년에 두 번 제작해 현대, 삼성 등 한국 대기업을 포함, 전 세계 각종 고객사 디자인부서에 송부한다.

콘셉트북을 받은 회사 중 한 곳이 알칸타라가 제안한 샘플 상품에서 힌트를 얻어 자사에 어울리는 제품을 개발하고자 한다고 가정해 보자. 알칸타라는 단순히 소재만 제공하지 않고 실제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 참여한다. 전 세계 어디에 있든 의뢰한 고객사를 찾아가 어떻게 제품을 만들지 구체적으로 논의한다. 최대한 고객사가 원하는 방향에 맞춰 알칸타라 소재를 적용할 수 있도록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때 알칸타라 연구개발센터에 신설된 애플리케이션 개발 센터(Application Development Center)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센터는 소비자 행동 연구와 소재 기술 연구팀 등 두 개 조직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연구원과 과학자들이 함께 모여 잠재적인 고객을 발굴하거나 고객들이 원하는 소재를 개발하는 데 집중한다. 실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 2∼3년이 걸리기도 한다. 이러한 인고의 과정 끝에 서로가 아이디어를 교환하면서 좋은 제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 끝에 알칸타라의 고객은 IT 제조업체, 가구업체 등까지 확대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태블릿 PC인 서피스(Surface)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2015년 서피스프로4(Surface Pro4) 출시를 앞두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제품의 외관을 감싸 제품의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현대적인 디자인의 소재를 찾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촉감과 두께였다. 슬림형 노트북인 서피스의 특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고객들이 손에 들고 다닐 때 불편함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알칸타라는 MS의 요구사항을 반영하기 위해 소재 개발을 시작했다. 서피스에 프로토타입 커버를 제공하면서 가장 적합한 모델을 찾아 나섰다. 마이크로소프트 디자인팀이 프로토타입 제품을 들고 다니면서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수차례 의견이 반영되면서 서피스에 가장 적합한 커버 소재를 개발할 수 있었다.

보라뇨 회장은 “당시 서피스 광고를 보면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MS가 알칸타라 소재를 사용해 제품 전체 디자인이 훌륭하고 휴대하기도 용이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알칸타라라는 브랜드를 이용해 자사 제품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각 고객사가 요구하는 사항을 반영해 좋은 제품이 나오고 그 제품이 성공하면 결국 알칸타라도 함께 성공하게 되는 셈이다”고 말했다.

알칸타라의 고객은 MS사 외에도 선글라스 브랜드 레이벤, 보석 브랜드 스와로브스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으로 확대됐다. 가격이 고가인 프리미엄 제품이 아니더라도 프리미엄 소재나 장식을 활용해 디자인을 차별화하려는 니즈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축적된 노하우를 통해 알칸타라는 어떤 고객이, 어떤 요구를 해도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소재 기업으로 거듭났다. 그동안 고객을 위해 개발한 소재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색상이 약 200여 종에 달한다. 개발하는 기술도 고도화돼 1주일 안에 고객이 원하는 색상에 맞는 소재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친환경 소재를 내세운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의 진화

2009년 알칸타라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이탈리아 최초의 탄소 중립 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탄소 중립은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면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량을 신재생에너지 생산, 탄소 저감 활동 등으로 상쇄시켜 0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말한다. 당시만 해도 기후변화 관련 규제가 막 도입이 됐을 시점이었다.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글로벌 기업도 저탄소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았다. 탄소 저감 활동을 하기 위해선 회사가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이 위축되면서 기업들의 상황도 여유롭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탈리아의 화학섬유 제조 기업이 선제적으로 친환경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그저 보여주기식 친환경 정책이 아니었다. 보라뇨 회장은 친환경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급진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우선 생산 공장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2009년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탄소 중립 인증을 받은 기업이 됐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각도로 실행 방안을 모색했다. 다른 지역에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해 공장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상쇄하는 방식으로 탄소 저감 목표를 달성해 나갔다. 그뿐만 아니라 알칸타라 제품을 운송하는 업체, 원자재를 납품하는 협력사 등도 탄소 저감 정책에 동참하도록 유도했다. 2011년 이탈리아 기업 최초로 제품 생산 전 공정에 적용되는 EU 탄소 중립 인증을 받는 기업이 됐다.

여기에도 알칸타라의 성장 전략이 숨어 있다. 보라뇨 회장은 미래 소비자들이 친환경 제품이나 소재에 더욱더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정적인 단서는 그동안 알칸타라를 사용한 소비자들의 반응에서 나왔다.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소비자들은 천연 가죽을 선호했다. 하지만 여행을 즐기고, 새로운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자들은 알칸타라를 선택했다. 이들은 기능이 좋으면서 디자인이 우수하고, 어디에서도 사용이 용이한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관행을 고수하기보다 혁신적이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제품에 더 높은 점수를 줬다. 즉, 남들에게 보이는 것보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정체성이 반영된 제품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이때부터 알칸타라는 스스로 섬유 소재 기업에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하고 제안하는 기업으로 업(業)의 본질을 재정의했다.

보라뇨 회장은 “결국 고객을 상대하기 위해선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내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예측해야 한다. 2007년 이후 알칸타라는 프리미엄 소재라는 이미지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있었다.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했는데 친환경 이미지가 우리의 성장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알칸타라의 예상은 적중했다. 친환경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점차 확대됐다. 게다가 각 국가에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탄소 저감 정책을 시행해야 했다. 기존에 사용했던 가죽 소재보다 탄소를 덜 배출한 제품, 덜 배출할 수 있는 제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알칸타라의 주 고객인 자동차 업계도 마찬가지였다. 고객들이 지향하는 가치관, 생활양식을 반영한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천연 가죽을 거부하는 소비자들을 사로잡는 것이 그 과제 중 하나였다. 사실 천연 가죽을 제조할 때 엄청난 오염물질이 발생한다. 게다가 소나 양 등 가죽을 생산하기 위한 동물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까지 계산하면 그 양은 더욱 늘어난다. 이러한 이유에서 일부 소비자들이 가죽 제품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자동차에도 이러한 니즈를 반영한 것이다.

이렇게 ‘친환경’ 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자동차 업계의 새로운 과제 중 하나가 됐다. 과거에는 자동차 가격을 낮추기 위해 인조가죽을 찾았다면 이제는 고객의 니즈를 반영하기 위해 천연 가죽에 견줄 수 있는 프리미엄 기능성 소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점에서 많은 글로벌 기업이 친환경 정책을 빠르게 도입한 알칸타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히 알칸타라는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줄였는지를 공개하고 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탄소 저감 정책을 성실히 이행하고 투명하게 밝히는 회사와 협업하는 것이 자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저탄소 제품을 적용해 자사의 탄소 저감 목표를 달성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화학섬유 소재 회사들 중 알칸타라만큼 친환경 정책을 실행하고 있는 회사가 없다는 점도 큰 경쟁력이었다.

실제로 탄소 중립 정책은 알칸타라의 몸값을 높이는 데 크게 공헌했다. 한 시장조사 기관에 따르면 2015년 알칸타라 브랜드 가치는 2006년에 비해 약 14배 성장했다.

이 같은 성장에 힘입어 알칸타라는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전체 매출 중에서 90% 이상의 수요가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한국 등에서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알칸타라가 지닌 브랜드 가치와 디자인을 높이 평가한 결과다.

보라뇨 회장이 친환경 기업을 이끌기 위해 견지한 원칙은 ‘진정성’이었다. 그는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지속가능한 기업이 되기 위해 큰 투자를 해야 했다. 단기적인 상황에서 보면 비용이었다. 하지만 시장도, 소비자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제품과 제품 생산 과정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알칸타라는 시대적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고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 만약에 이러한 장기적인 투자 없이 친환경 기업이라는 이미지만을 좇았다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알칸타라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DBR mini box II: 진정성 있는 친환경 정책일 때 기업 경쟁력이 살아난다


알칸타라는 친환경 기업 이미지만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가 아니다. 실질적으로 지구 환경을 지키고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특히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 공조도 주도하고 있다. 2015년부터 베네치아 국제대학교(Venice International University, VIU)와 손잡고 이탈리아 베네치아 인근의 산 세르볼로(San Servolo)섬에 위치한 베네치아 국제대학교 캠퍼스에서 여는 ‘국제 지속가능성 심포지엄’이 대표적인 예다. 세계은행(World Bank) 파트너십 프로그램인 기후변화를 위한 연대(Connect4Climate)가 후원하고 있는 행사다. 이 행사에는 글로벌 기후변화 관련 석학들은 물론, 유럽 내 글로벌 브랜드 관련 부서 수장들이 참여해 각종 대책을 논의한다. 2019년 2월 5회를 맞이한 심포지엄 주제는 ‘민간 분야에서의 기후변화 대책 실행 방안 및 탈탄소화 확산 방안’이었다. 자동차 산업계에선 폴크스바겐과 BMW가, 에너지 산업계에선 BP와 셸 등이 참여해 실제 이들이 어떻게 기후변화 대책을 실행하고 있는지 발표했다.

기존 공장 부지에 추가로 짓는 신규 공장에 친환경 정책을 반영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급격히 늘어난 글로벌 수요를 맞추기 위해 알칸타라는 3억 유로i 를 들여 45만㎡(약 15만 평) 규모의 공장을 증설한다. 2019년 2월 기존 공장 부지에 1억300만 유로를 들여 1차 완공한 공장 전력의 65%는 자가발전을 통해 얻어낼 수 있도록 설계했다. 폐기물 중 78%를 재사용하고 재활용해 제품을 생산한다. 또한 2020년까지 바이오 원료를 이용한 제품 생산 기술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로써 신규 공장에선 탄소배출량(2018년 기준 4만3296톤Co2eq(메탄, 이산화질소 등의 배출량을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단위))이 약 25∼30% 감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신규 공장이 완공되면 현재 생산량의 1.7배, 고용인력 800명(2019년 기준 552명)으로 외형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베네치아=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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