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게임과 경영

게이머를 교양인으로 만든 ‘문명6’

이경혁 | 272호 (2019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지금의 소비자들은 돈을 내고 서비스와 제품 등을 구매하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소비를 통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며 자신의 소비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드러낸다. 시리즈가 시작된 지 거의 30년이 다 돼가는 시뮬레이션 게임 ‘문명’은 최근 ‘문명 6’의 확장판에서 기후변화 이슈를 게임 내에서 직접 다룰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게임중독이나 부정적 시선에 대해 거부하는 발언들이 결국 게임의 부정적 프레임 안에서 맴도는 데 그치는 반면 아예 그 프레임을 벗어나 스스로의 가치, 그리고 소비자의 가치를 증명해내는 방식을 통해 ‘문명’ 시리즈는 여러 게임 중에서도 독보적인 브랜드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위치시킬 수 있었다.

편집자주
현대사회에서 게임은 세계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자 많은 사람의 생활 공간이며 동시에 첨단의 미디어이기도 합니다. 게임이 구성되는 원리, 스토리와 캐릭터에 반영되는 철학과 사람들의 행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또 하나의 게임판에서 생사를 건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경영자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국내 최고 게임컬럼니스트 이경혁 게임연구자가 ‘게임과 경영’을 연재합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유명한 광고 문구는 간혹 윤리적 차원에서 비판을 맞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시대의 마케팅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중심에 두는지를 말해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소비자의 소비는 이제 그저 돈을 써서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일을 넘어서 소비를 통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보여주고 자신이 하는 소비 활동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디지털콘텐츠산업의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게임도 일반 산업과 큰 맥락에서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인다. 한편으로는 보다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게임을 만들면서 저변을 넓혀나가는 전략선상에 서 있는 게임들이 있다. 또 한쪽에서는 자사의 게임을 소비함으로써 게이머가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의미에 주목하는 게임들도 있다. 아직까지는 대규모 성장세를 등에 업은 신규 산업이라는 측면에서 전자의 우세가 두드러지지만 미래 전략을 생각하는 마케터라면 점차 두터워지고 있는 작은 흐름들의 부각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번 글에서는 게임업계에서 이와 같은 맥락으로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사례들을 짚어 보고, 이러한 게임들이 어떤 방법을 통해 나름의 브랜드 가치를 구축해 올 수 있었는지를 곱씹어보고자 한다. 디지털콘텐츠의 미래를 일러주는 선행사례로써 게임 콘텐츠의 방법들은 언제나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와 문명을 다룬 콘텐츠, ‘시드마이어의 문명’
1991년 처음 등장해 현재까지 정식 넘버링으로는 총 6편, 추가 스토리와 스핀오프작 등을 포함하면 20여 편의 타이틀을 출시한 게임. 이쯤 되면 마니아들은 이미 감을 잡을 것이다. 바로 디지털게임 분야에서 최고의 게임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 된 ‘시드마이어의 문명(이하 ‘문명’)’ 시리즈 얘기다. 이제는 젊은 층에선 게임 내 대사가 일종의 유행어로도 사용될 정도로 보편화됐다.

네모난 블록을 잘 맞추면 한 줄이 없어지는 ‘테트리스’, ‘아도겐∼’과 ‘오류겐∼’으로 익숙해진 ‘스트리트 파이터’, e스포츠의 대명사 ‘스타크래프트’ 등과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는 인지도를 자랑하는 게임이지만 ‘문명’을 이야기할 때는 이러한 인지도보다 ‘문명’이 다루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보통 먼저 등장한다. 말 그대로, 이 게임은 바로 인류 문명을 다루기 때문이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게임의 규칙과 주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가죽 팬티를 입은 원시인이 빈터에 도시를 세우고, 이 도시들을 기반으로 플레이어는 원시 석기기술부터 시작해 중세와 르네상스, 현대를 거쳐 인터넷과 나노기술이 넘쳐나는 근미래 시대까지 자신의 문명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게임은 골자로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던 수많은 문명의 흔적을 통해 이뤄진다. 플레이어는 직접 로마, 수메르, 이집트, 잉카와 같은 고대의 문명뿐 아니라 미국, 호주 등 근현대에 새롭게 등장한 문명까지 폭넓게 준비된 여러 문명을 선택할 수 있다. 각각의 문명들은 실제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전성기를 만들어냈던 개별적인 특성들을 게임 안에서 드러낸다. 예를 들면, 이집트 문명의 경우에는 거대 불가사의를 남들보다 빠르게 짓는 데 특화돼 있고, 영국 문명은 르네상스 이후의 해양 진출에 특화된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구현된 게임 속 문명들과 함께 경쟁하며 자신의 문명을 최종 승리까지 이끌어내야 하는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며 다른 게임에서 맛보기 힘든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플레이어는 과학기술을 누구보다 빠르게 발전시켜 포화상태의 지구를 가장 먼저 떠나 우주 식민지로 진출하는 과학 승리를 달성할 수 있으며 경제력과 군사력을 끌어올려 타 문명을 모두 정복하는 정복 승리로 향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종교들로 벌어지는 종교 전쟁, 핵무기 개발로 인해 나타나는 냉전 체제 등 인류 역사의 상당 부분이 게임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문명’ 시리즈는 오랜 시간 머리를 싸매며 고민해야 하는 ‘전략’이라는 요소가 어떻게 ‘재미’로 변화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줬다. 한 편 한 편이 당시를 대표하는 게임의 자리에 오를 수 있던 이유다.

기원전 5000년부터 시작해 서기 3000년에 이르는 방대한 시간대를 모두 겪는 과정은 500턴에 이르며 실제 게임 플레이 시간은 한 판에 거의 1박2일에 이르곤 한다. 그러나 워낙 게임의 재미가 강렬한 탓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에 붙어 있는 플레이어들은 이 게임에 ‘타임머신’이라는 별명을 붙이기에 이르렀다. 아차 하고 게임에 빠져들었다가 밤을 새워 버리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게임 잠깐 했다고 몇 시간이 훌쩍 날아가는 이 현상은 강한 몰입감을 만들어내는 재미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문명’ 시리즈가 독보적인 게임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데는 그저 게임 자체가 시간을 잊을 정도로 너무 재미있다는 것 말고도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문명’의 브랜드 파워는 바로 재미를 다루면서도 동시에 대단히 지적이고 또 대단히 트렌디하다는 두 가지 지점으로부터 비롯된다.


‘문명’, 환경과 기후변화를 다루기 시작하다
2019년 2월, ‘문명’ 제작사인 파이락시스 스튜디오는 ‘문명 6’의 새 확장팩 스토리인 ‘몰려드는 폭풍(영문명 Gathering strom)’을 발매했다. 정식 넘버링 6편의 두 번째 확장팩인 ‘몰려드는 폭풍’은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새로운 콘텐츠로 자연재해를 선택했다. 즉, 기존의 게임 규칙에 지진, 화산 폭발, 가뭄, 홍수, 토네이도와 같은 새로운 재난 규칙들을 추가했다는 얘기다. 잘 개간해 둔 토지가 갑작스런 토네이도에 휘말리며 엉망이 되는가 하면 강 주변의 농지들이 홍수 대범람으로 망가지지만 홍수로 인한 토지 비옥화로 이후 더 나은 생산량을 보여주기도 한다.

기존의 게임이 타 문명과의 충돌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협력의 구조를 중심에 뒀다면 ‘몰려드는 폭풍’에서 게임은 인간의 문명이 대자연이라는 강력한 힘과 어떻게 대결하고 있는지를 다루기 시작한다. 홍수 통제를 위해 강 주변에는 댐과 같은 구조물을 올릴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됐고, 강력한 재해로 위태로워진 문명을 타 문명들이 힘을 모아 복구를 돕는 외교 옵션도 늘어났다.

게임이 자연재해를 다루는 방식은 비단 고대 시절의 그것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몰려드는 폭풍’ 은 이러한 재해를 현시대의 중심 과제 중 하나인 환경문제로 이끌어간다. 게임에는 지구 전체의 이산화탄소량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추가됐는데 개별 문명이 발전하면서 점차 탄소배출량이 증가하고 현대 시기에 이르면 슬슬 기후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거듭난다.

게임 속의 각 문명 지도자들은 플레이어를 포함해 AI들까지도 모두 산업 발전에만 신경 쓰지 탄소배출량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게임 후반부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빙하가 녹으며 해수면 상승이 시작된다. 해안 도시들의 경우 해수면 상승으로 멀쩡한 토지가 잠기면서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잘 꾸며놓은 도시나 거대 불가사의도 바다에 한 번 잠기고 나면 다시는 복구할 수 없기에 제방을 쌓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인간의 손만으로 쉽게 통제할 수 없음이 게임 속에서 끊임없이 드러난다.


역사에서 환경까지, 게이머를 교양 있는 소비자로 각인시키다
‘문명’ 시리즈는 여러 게임 중에서도 역사와 지식 방면으로는 기존의 게임들이 가졌던 것 이상의 가치를 품고 있다. 게임 안에는 실제 역사 속에 등장했던 수많은 기술과 제도, 인물과 도시들이 등장한다. 각각의 유닛과 건물, 기술들은 실존했던 역사적 맥락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디자인돼 있다. 예를 들어, 건축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먼저 발전돼야 하고, 건축 기술의 연구가 완료되면 콜로세움과 같은 건물을 지어 도시민들의 행복도를 올릴 수 있는 식이다.

이러한 역사 기반의 게임 디자인은 역사에 대한 지식을 단지 과거에 대한 서술로 고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게임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로 만들면서 이 시리즈를 역사 교과서 이상의 콘텐츠로 만들어냈다. 게임 안의 기술과 건물, 문명들은 ‘백과사전’이라는 부가 콘텐츠를 통해 실제로는 어떤 의미였고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소개된다.

이러한 점은 ‘문명’ 시리즈를 게임 이상의 무언가로 포지셔닝할 수 있는 결정적 근거가 된다. 게임은 재미를 추구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놓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재미 이상의 것을 플레이어들에게 제공한다는 것이 바로 문명이라는 프랜차이즈에 덧씌워졌다. 그리고 이러한 문명을 플레이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위치를 ‘재미를 추구하는 게이머’에서 ‘역사와 지식도 추구하는 게이머’로 바꿔놓는 일이 됐다.

‘몰려드는 폭풍’이라는 새 확장팩의 출시는 ‘문명’ 시리즈가 가진 이러한 가치가 어떻게 이어져 나가는지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가장 최근의 확장팩이 다루는 ‘문명’의 대주제가 환경 이슈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은 이 게임이 품으려는 지식이 그저 과거의 것이 아니라 당대의 고민과 현안에 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임은 지구의 총 이산화탄소량을 게임 시작부터 보여주며 산업시대 이후 급격하게 폭증하는 탄소배출량을 단순 수치로만 표시하는 게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듯 실제 게임 내에서 해수면이 상승하며 해안도시가 침수되는 결과로 그려내며 이 위기가 정확히 어디서부터 비롯했는지를 플레이어에게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그럼으로써 게임은 동시대의 중대 이슈인 환경 문제를 전면에서 다루는 게임이 됐고, 이를 통해 이 디지털 유희를 즐기는 이들이 현실의 고민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아님을 일깨운다. (그림 1)



디지털게임 콘텐츠는 첨단기술이 가장 구체적으로 집약되는 영역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콘텐츠의 이용과 소비가 오로지 놀이로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짙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소비자들의 격에 대해 사회가 다소 낮은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책이나 영화를 많이 보면 독서가, 영화 마니아라고 불리지만 게임의 경우라면 게임중독자라는 딱지가 붙는다.

많은 게임산업 종사자가 산업의 다음 스텝을 고민할 때 게임에 달라붙는 부정적인 인식을 탈피할 방안을 모색하는 와중에 ‘문명’ 시리즈는 이러한 부정적 인식에 대항하기보다는 아예 전면적으로 이 게임을 플레이할 이유와 가치를 만드는 방향을 택했다. 굳이 ‘게임은 중독이 아닙니다’라는 메시지를 부가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게임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어떤 품격과 지성을 소유하고 있는가를 간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방안으로 제작사인 파이락시스는 자신들의 콘텐츠로 동시대의 이슈를 강렬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방안을 선택한 셈이다. 이를 통해 ‘문명’ 시리즈는 그 게임이 오랫동안 다뤄 온 인류 스스로의 역사라는 이슈에 기후변화 문제를 얹으면서 게임 콘텐츠뿐 아니라 이를 향유하는 소비자들의 품격까지도 향상할 수 있었다.


‘문명’, 나이키, 질레트… 소비로 자신을 드러내는 소비자에 주목하다

당대의 첨예한 이슈를 기업이 직접 건드리는 것은 한때는 매우 기피해야 할 일로 여겨지곤 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히려 동시대의 이슈를 직접 다룸으로써 자사의 상품을 구매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지위를 격상하는 방법이 새로운 마케팅 전략으로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략은 비단 파이락시스의 ‘문명’ 시리즈에서만 활용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대중적으로 더 널리 알려진 사례는 글로벌 스포츠 기업 나이키의 광고전략일 것이다.

미국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은 2016년 시범경기 직전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모두가 기립해 국기에 대한 예를 표하고 있을 때 자리에서 일어서기를 거부했다. 캐퍼닉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흑인으로서 인종차별이 이어지는 국가를 위해 기립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캐퍼닉의 이야기가 미디어에 실리면서 미국 여론은 극렬한 찬반으로 들끓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캐퍼닉의 행동을 지지하는 의견을 표명하는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어울리는 나라로 돌아가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이른바 셀럽들의 여러 의사 표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2018년 9월 나이키는 자사의 대표 카피인 ‘Just do it’의 30주년을 기념하는 스포츠맨 홍보대사로 콜린 캐퍼닉을 포함했음을 밝혔다.

수많은 지지와 반대가 엇갈리는 와중에 콜린 캐퍼닉에 대해 사실상 지지를 표명한 나이키의 ‘Just do it’ 30주년 광고 이후 한쪽에서는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는 영상을 업로드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이키의 온라인 매출은 31% 증가했다. 1 광고 공개 이후 일시적으로 주식이 급락했지만 이내 회복되면서 결과적으로는 훌륭한 성과를 낸 마케팅으로 남게 됐다. 2

한편 면도기 회사 질레트는 2019년 1월 오랫동안 남성 고객이 타깃이었던 자사의 제품 광고에 미투(Me too)라는 이슈를 전면적으로 다루는 메시지를 실어 보내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브랜드 창설 30주년을 맞아 기존의 슬로건인 ‘The best man can get(남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것)’을 ‘The best man can be(당신이 될 수 있는 최고의 남성)’로 교체하면서였다.

질레트의 이 광고 역시 SNS 등에서 큰 논란에 휩싸였다. 광고는 기존의 남성성이 만들어내는 부작용들을 가리키며 변화를 촉구했고, 많은 이는 일부 남성의 사례를 싸잡아 건드린다며 불만을 터뜨리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광고 홍보 전문가들은 이러한 질레트의 광고가 최근의 부진을 타개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라고 여기고 있다. 3

나이키, 질레트 사례와 ‘문명’ 사례는 각각 인종, 성별, 환경이라는 당대의 매우 첨예한 대립들이 오가는 주제를 기업들이 정면으로 다뤘다. 이러한 전략에 대해 ‘the atlantic’은 “사회적 책임을 직접 지고 가는 마케팅은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방법론”이라며 리서치기관 Sprout Social의 자료를 인용해 미국 소비자의 66%가 기업이 사회적 이슈에 공공의 입장을 취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4


게임을 하면서 굳이 환경문제를 되새겨야 할 이유는 없다. 마찬가지로 스포츠용품 구매와 인종 문제, 면도 제품과 젠더 문제는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이슈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소비자가 반응하는 이유는 이제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단지 제품의 기능과 효용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통해 소비자인 자기 자신의 사회적 지위 또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명’을 플레이하는 것은 그냥 게임을 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역사를 되짚을 줄 아는 게이머로서의 자신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행위다. 또한 ‘몰려드는 폭풍’과 같은 확장팩이 환경 이슈를 다룸으로써 과거뿐만 아니라 당대의 현실까지도 고려할 수 있는 일반 교양의 보유자임을 드러낼 수 있는 행위가 된다. 나이키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여전히 이어지는 인종차별의 문제에서 보편적인 인권을 지지한다는 것을 선언한 기업과 함께한다는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행위다. 이는 제품을 넘어, 혹은 제품이 품고 있는 가치를 포괄해 소비자가 자기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유용한 재료로 제품의 소비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문명’ 시리즈의 확장팩이 환경 이슈를 다뤘다는 점은 특히 이 제품과 브랜드가 디지털콘텐츠라는 점에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지점을 보여준다. 지식과 서사, 정보를 다루는 콘텐츠는 스포츠용품과 달리 사회적 이슈 자체를 상품의 중심에 둘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문명’ 시리즈는 말 그대로 환경문제를 본격적으로 게임화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게임의 부정적 이미지를 넘어선 ‘문명’의 성과에 주목하라

다른 제품과 기업들 또한 앞서 언급한 대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마케팅의 의미가 작지 않은 편이지만 디지털게임의 경우에는 좀 더 강렬한 효과로 작용한다. 게임은 오랫동안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 4차 산업혁명의 총아, 디지털시대의 뉴미디어콘텐츠로 각광받으며 주목해야 할 산업으로 받아들여져 왔으면서도 동시에 중독을 유발하는 제품, 유사 도박,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마약과도 같은 콘텐츠라는 시선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산업적 진흥과 이용 측면에서의 규제라는 독특한 두 측면을 함께 지녀 온 디지털게임의 입장에서 볼 때, 이 글에서 다룬 문명 확장팩 얘기는 큰 의미를 갖는다. 게임 콘텐츠가 무가치한 시간낭비로만 여겨지는 상황에서 시장을 확장하고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전략으로 ‘문명’ 시리즈는 자신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역사라는 중심 주제를 현시대의 사회 현안으로 확장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을 통해 자사의 게임 이용자들을 보다 교양 있는 시민으로 위치시킴으로써 크게 성공했다.

게임중독이나 부정적 시선에 대해 거부하는 발언들이 결국 게임의 부정적 프레임 안에서 맴도는 데 그치는 반면, 아예 그 프레임을 벗어나 스스로의 가치, 그리고 소비자의 가치를 증명해내는 방식을 통해 ‘문명’ 시리즈는 여러 게임 중에서도 독보적인 브랜드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위치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문명’ 시리즈의 성과는 비단 게임산업의 인사이트로만 머물 것도 아니다. 상품의 본질이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로 다가가는가를 파악하고, 이를 동시대의 시선과 연결해 보다 유의미한 소비자 가치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아직까지 전체 대중을 아우르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많은 뉴미디어 기반의 콘텐츠들이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디지털게임처럼 사회적으로 덮어씌워 진 부정적 이미지마저도 극복해 낸 게임 ‘문명’ 시리즈의 성공에 대해 깊이 연구해 보길 추천한다.

문명 6-확장팩 ‘몰려드는 폭풍’은 게임 속 지구의 이산화탄소량을 처음부터 보여준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점차 늘어나는 탄소배출량은 게임 후반부에 대규모 해수면 상승을 일으키며 해안도시의 침수 같은 이벤트로 이어지며 환경 문제가 곧 다가올 미래의 위협임을 가리킨다.


필자소개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grolmarsh@gmail.com
이경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등에서 일하다 퇴사한 후 현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게임문화 연구를 전공하고 있는 게임연구자다. 매체로서의 게임이 현대사회와 인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게임화’하는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사이트를 찾고 전파한다. 성균관대에서 ‘게임과 인문학’이라는 교양과목을 운영하고 있으며 시사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게임 관련 패널로 출연 중이다. 저서로는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공저)』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8, 공저)』 등이 있다.
  • 이경혁 | 현)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게임문화 연구, 게임연구자
    현)시사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게임 관련 패널
    grolmarsh@gmail.com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인기기사